[2018 베리타스 포럼 고려대 생생 후기]


5월 24일! 베리타스 포럼은 강연장이 꽉 찰 정도로 뜨거운 관심과 반응 속에서 시작되었다. <존재하는 것들: 과학자와 철학자의 기독교적 사유>라는 제목으로 과학자와 철학자가 기독교적 유신론관점에서  우주와 우주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초청된 과학자는 과신대의 대표인 우종학 교수였다. 30분 동안 밀도 있는 내용, 광활한 우주의 모습, 신념에 찬 주장들, 강하게 호응하는 청중들...


지금부터 그날의 열기를 지면에 옮겨보려고 한다. 청중들의 공감을 많이 얻은 내용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결정하며 행동한다. 그런 결정과 행동들이 모여서 역사를 이루어갈 때 유신론자들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고 섭리로 이끈다고 고백한다. 자연 세계 안에는 수많은 우발적인 사건들이 있다. 그런 우발적인 사건을 통해 생명체도 변하고 진화도 일어나고 지구도 변화하지만 그렇게 우연하게 일어나는 사건들의 과정이 하나님이 세계를 섭리하고 다스리는 과정이라고 고백 한다 ”는 것이다.


두 번째로 우 교수는  과학자로서 자연을  탐구를 할 때 우리의 경험과 이성이 갖는 한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과학은 어떤 존재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설명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많은 면 중의 한 면을 드러낼 뿐이며 또 한 면을 보는 것마저도 경험의 배반을 생각해볼 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자연의 실재를 잘 드러내 보여주는 유용한 도구라고 말했다. 이런 과학의 한계성은 우주를 과학 외적인 방법으로도 탐구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의미다. 


세 번째로 자연계에서 일어나는 ‘우발성’에 대한 오해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우발적이라는 것은 필연이 아니라는 의미일 뿐이지  무목적이라든가 계획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목적인에 대한 설명이 아니며  우발성은 작동원리에 대한 설명이라고 강조했다. 우 교수는 기독교 유신론 과학자로서, 우주와 세상의 이치를 설명할 때 유신론적인 설명이 훨씬 설득력 있고 풍성하게 말해줄 수 있다고 주장하며 C.S.루이스를 인용했다. “나는 해가 떠오르는 것처럼 기독교를 믿는다. 해가 떠올라서 세상이 환하게 된 것처럼 기독교를 믿고 나서 이 세상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태양이 떠오른 것을  보지 못했다하더라도 태양이 떠올라서 세상을 밝게 비추었다고 믿는 것이  환해진 이유를 더 잘 설명해주는 것처럼 신의 존재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신이 존재한다고 믿고 세상을 보는 것이, 우주가 보여주는 많은 특성을 훨씬 더 잘 설명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증거주의와 과학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증명되는 것만 진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증명되지 않더라도 ‘유신론의 관점’에서 세상을 봤을 때 훨씬 더 통일감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이 된다면 얼마든지 이것은 ‘진리’에 가까운 진리라고 믿을 수 있다. 우 교수는 ‘신이 존재한다.’, ‘십자가에 구원의 길이 있다.’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동의하는 것이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에 대한 믿음은 아니며 진리에 대한 믿음은 진리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우리의 삶을 던지고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단언했다. 진리는 증명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헌신을 요구한다는 명언과 함께 말을 맺었다.


강연이 끝나고  기독교만이 절대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가, 진리에 대한 동의가 모호한 이 세상에 진리를 어떻게 추구하고 지킬 수 있으며 또 무신론 친구들의 반론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가 등 여기저기서 삶의 자리에서 고민해온 의미 있는 질문들이 이어졌다. 청중들로 하여금 초집중해서 듣게 했던 질문 중에  비판적 실재론과 기독교의 인간관으로 질문에 답하는 우교수의 이야기를 옮기면서 후기를 마친다. 많은 기독 청년들이 과학시대의 도전과 무신론적인 억지 주장들에 담대하게 응답하기를 소망한다.


Q. “포스트모던이라는 진리에 대한 동의가 최소화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진리를 추구하고 지켜갈 수 있는가?”   


우 교수: 반실재론은 논의의 여지가 없다. 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증거를 통해서 ‘실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인간은  자기만의 렌즈를 끼고 보기 때문에 인간의 세계관이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다고 해서 구성된 상대주의에 불과한 것일까? 그렇지만은 않다고 본다. 과학의 경우에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게 됐을 때 빠른 속도로 과학적 합의가 이루어진다. 합의의 내용들이 잠정적이고 가변적인 내용들이라고 하더라도 자연이라는 실재를 반영하는 그 내용이 ‘구성주의’에 불과한 것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비판적 실재론이 얼마나 실재와 가까울 것이냐가 중요하다. 비판적 실재론을 우리는 건강하게 지고 가야한다고 본다. 더 중요하게 기독교 유신론의 입장에서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창조를 신앙으로 고백하는 입장에서 이 비판적 실재론을 붙들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 이후에 나온 것으로 실재론의 한계와  비판을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는 있지만 상대주의까지 갈 수는 없다.


Q. 무신론 친구의 반론은 성서의 인간의 모습이 너무 나약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만들어서 죄를 짓게 하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계획된 것이라면 인간의 노력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라는 무신론 친구의 질문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 교수: 기독교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인간과 대비되는 하나님이다. 하나님에 대해 그리는 이미지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인간관을 갖고 있다. 인간은 가장 하나님다운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이다. 선악과를  만들어서 인간을 테스트 한다는 관점은 옳은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악을 선택할 수도 선을 선택할 수도 있는 자유까지도 주셨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양보 즉 케노시스다. 전능하신 신이 인간을 로봇처럼 조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신을 배신할 가능성까지도 열어주시는 창조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폭력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만 희년의 개념을 보면 약자를 보호하는 하나님이고 서로 사랑하고 평화를 이루며 정의롭게 살라는 가르침을 보여주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비우셔서 인간에게 자유를 허락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무신론 친구에게 그릇된 인간관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필요하다. 




작성 | 백우인 기자 (과신대 기자단)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