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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야기/과신대 사람들

과신대 사람들 (2) 권영준 교수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7. 30.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권영준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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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이하 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반갑습니다.


[권영준 교수 (이하 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과]  먼저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분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권]  저는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소립자라고 보통 이야기하는데요, 원자보다 더 작은 규모의 세상이죠. 입자물리학은 환원주의(reductionism)의 끝판왕(?)이지만, 저는 사실 환원주의를 신봉하는 편은 아니에요. 가끔 사람들이 ‘가장 작은 단계의 입자를 연구하면 그 이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현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지를 인정하기 때문이죠. 특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직까지 가장 작은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더 복잡한 단계, 예를 들어 세포나 생체, 기상현상 등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가 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느냐?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아름다우니까.

저에게는 입자 현상 자체가 재미있고 아름답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죠. 누군가에겐 반도체나 생명과학 같은 분야가 아름답고 재미있을테고 그들의 분야와 연구를 존중하지만 저에게는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가 가장 재미있어요. 하지만 결코 이것이 더 우월하거나 뛰어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가끔 극단적인 환원주의자(reductionist)들은 가장 낮은 단계의 문제 해결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계산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작은 시스템이 많이 모였을 때에는 작은 시스템에서는 몰랐던 복잡한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창발성이라고 하고 저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태풍은 물 분자가 공기 중에서 떠돌아다니다 구름이 되고 비가 되는 현상인데 이것은 아무리 물분자를 떼어놓고 연구한다고 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분명히 환원주의와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과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그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실 때 어떤 점이 고쳐져야 할까요?

[권]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을 중-고등학교 때 많이 접하는데 그것들이 대부분 입시와 연결 되어서 수업 시간에도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문제풀이 연습만 시키니까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죠. 물리의 경우도 공을 위로 던졌다 아래로 던졌다 하는 문제만 반복해서 풀고 똑같은 유형이 나왔을 때 바로 답을 쓸 수 있게 (훈련시키죠). 그러니까 그런 문제풀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가 없고 (기초과학에) 완전히 마음을 닫게 됩니다. 기초과학에 대해 트레이닝 받을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는 것이죠. 

기초과학에 대한 본질적인 흥미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어떤 걸 해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대박이 나고 경제적으로 돈을 많이 벌까’ 라는 소위 선택과 집중에 의한 투자로 기초과학을 보게되죠. ‘돈이 되는 것, 인공지능, 줄기세포’ 와 같은 키워드 몇 개만 가지고 맴돌게 되는데 사실 건강한 기초과학이 되려면 개개인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계속해서 탐구할 수 있는 저변을 만들어주는게 시급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대박을 치고 노벨상도 탈 수 있는 것이죠. 지금은 거꾸로 그런 저변을 깔아주지는 않고 노벨상을 탈만한 곳이 어딘지를 찾아서 투자하려고 하니까 모두가 힘들죠.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입시와는 상관없는 기초과학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과학이라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아름답거든요. 그걸 알게되면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지 않을텐데 (말이죠).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 악보를 보고 읽고 해석한 뒤 그 안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이 아름답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과학도 마찬가지에요. 비록 내가 뭐 뉴턴의 방정식을 못 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론들이 말하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들을 접했을 때 가슴이 뛰고 설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기초과학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신대 활동 외에도 ‘기독교변증 컨퍼런스’ 등과 같이 과학과 신앙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권] (웃음) 왜 처음에 저를 불러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나무교회 목사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영혼에 대한 과학자의 입장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 변증 컨퍼런스의 큰 주제는 ‘기독교를 우리가 철학적, 논리적으로 방어(defence) 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가 엉터리라고 말할 때 엉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저에게 바라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에 대해 그 존재가 없다고 말하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는 것이었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창발성을 믿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많은 연구들을 통해 사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죠. 이제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으로 뇌 안에서 뇌세포가 작동하는 기작들을 굉장히 잘 이해하게 됐어요. 그렇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환원주의와 관련해서 입자물리학자인 제가 기본 입자, 소립자를 다 알게 되어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제가 뇌과학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뇌과학에 대해서도 조금은 겸손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뇌에서 뇌세포, 신경세포들이 반응하는 현상들을 다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이나 영혼이라고 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에 초전도현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초전도체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초전도체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초전도체 현상으로만 설명되는 것들이 발견되니까 초전도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삶이나 사회 현상 같은 곳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할 수 있는 면(aspect)들이 존재한다면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영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원되고 설명되는지 이해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과]  과학자의 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권]  하하,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저는 이쪽(과학과 신앙에 대한 분야)으로는 별로 활동을 해오지 않았어요. 따로 공부한게 없으니까 활동할 것도 특별히 없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우종학 교수님을 뵙고 ‘아, 이 분이 정말 옳은 걸 하고 계시는구나’ 해서 일단 친구 신청을 했죠. 그러다 우종학 교수님께서 작년 어느날 과신대 2차 포럼을 할 때 나와달라고 요청하셔서 처음 나갔던게 (인연이 됐죠).

[과]  그 때 패널로 처음 과신대와 함께 하셨죠.

[권]  그러니까요. 제가 낄 자리가 아니었는데…(웃음)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연대 천문학과의 어떤 교수님께서 지금 우종학 교수님이 하시는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과학과 종교,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오, 그게 맞는거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과 과학과 신앙에 관한 고민을 그 때 처음 하시게 된거네요?

[권]  말하자면 그렇죠. 중-고등학교 때는 소위 창조과학 스타일의 설교를 교회에서 들어왔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교회에서 들은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배워보니 아무래도 창조과학 스타일의 설명이 한계가 있었죠. 그렇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나는 그냥 나에게 맡겨진 물리나 열심히 공부하자고 생각하며 20년 가까이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 연세대에 돌아와 그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우리가 관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또 하나 우연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2006년, 제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있을 때 제가 연구원 시절 다녔던 미국의 캠퍼스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우연히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께서 당신 교회에 와서 과학과 신앙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고 하셨죠. 아는게 없어 다급해진 저는 동네 서점에 가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 우연히 발견한 책이 프란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였습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조금 있어보여서(?) 꺼냈던 그 책이 굉장히 도움이 됐죠.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자가 신앙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정직하게 과학을 하는 모습이 제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물리학의 유명한 교수이자 나중에 성공회 신부가 된 존 폴킹혼의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봤어요. 폴킹혼은 특히 입자물리학자여서 (저와) 비슷한 말(language)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사람이 했던 치열한 고민과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들이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과 젊은 친구들 중에는 교회 안의 잘못된 과학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권]  일단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이 전혀 불신앙도 아니고 죄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자연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내가 모차르트에 대해 알고 싶으면 위인전을 읽는 것보다 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좋잖아요. 그 안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으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잘 알고 싶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신 일들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성경이죠)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하신 일을 연구해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하신 일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니까 걱정말고 과학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과 유익한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권] 감사합니다.



이 글은 권영준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권영준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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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5 / 20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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