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대의원 정준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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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정준(이하 정)] 저는 현재 과신대 독서모임이나 콜로키움, 과신대 교사모임 장소로 이용되고 있는 교회, 더처치의 담임목사입니다. 과신대와 인연을 맺게 된것은 2015년 페북을 통해 우종학 교수님과 페친을 맺으면서부터입니다. 제가 과학고를 나와서 공대를 다니다가 경영학과로 재입학하고, 졸업 후에는 신대원을 졸업해 목사가 되었습니다. 전공 편력이 심한 편인데, 사실 목사가 되어서도 신학과 과학, 과학과 신학의 문제는 중요하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들더군요. 그런데 막상 목사가 되니깐 선제적으로 알고, 대응도 해야할 이런 부분에 너무 무지하고 심지어 준비가 안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과신대를 알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또 좋은 지적 도전과 가이드를 받을 수 있어서 감사하더군요. 


[과] 목사님께서 설교하실 때  창세기와 관련해서 불편함을 느끼거나 성도님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정] 목회 현장에서 보면 사실 드러내놓고 창세기에 관련한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지는 않아요. 한국의 교인들은 일단 성경에 쓰여져 있는 부분은 일단 의심없이 믿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니까요. 물론 그런 생각은 그렇게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이겠구요. 그래도 더러는 이런 질문들을 받게 되죠. 창세기가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부분들, 이해가 안되거나 믿기지 않는 부분들 말이에요. 

정말 6일만에 온 우주만물들이 만들어졌을까? 아담과 하와가 최초의 사람이라면, 그 아들들은 누구랑 결혼했을까? 진짜 그 때에는 사람이 900년 넘도록 살았을까? 등등... 

최근에 안수집사님 한 분이 이런 문제에 대해 저와 질문과 격론을 벌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절 보고 창세기를 부정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창조를 믿지 않고, 창세기에 명백히 기록된 내용을 함부로 해석한다며 성경해석과 설교 코드에 동의하지 못하겠다며 교회를 안나오시게 되는 일이 있었습니다. 시작과 발단은 6일창조와 무에서 유의 창조에 관한 의견차이였는데(그 분은 오직 성경에 나온 문자 그대로만 믿어야 한다 vs. 저는 창세기의 기록은 당시 우주와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필요하다면 당시의 신화적, 상징적 체계로 읽고 해석해야 한다) 급기야 므두셀레가 969세 산 것을 왜 그대로 믿지 않느냐는 문제로 확대되었죠. 사람이 천수를 누리지 못하는 유한한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본문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며 너무 문자 자체에 집중하지 마시라 권면드렸습니다. 결국은 성경을 있는 그대로 믿고 보지 못한다면 예수님의 치유 이적과 부활은 어떻게 믿겠느냐며 도저히 제 얘길 듣지 않으시려 하더군요. 이런 아픔이 있었습니다. 아마 목회적 성공, 교회의 수적 부흥을 위해서는 창세기는 너무 깊이 안 건드리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지와 오해는 그대로 둘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이것이 딜레마죠.


[과] 과신대에서 '목회자  창조과학에 답하다'는 주제로 7회 콜로퀴움이 열렸었는데  목회자의  입장에서  이러한 과신대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싶습니다.


[정] 개인적으로 이번 콜로키움은 참 좋았습니다. 문제는 교회를 현재 불출석하고 있는 그 집사님이 꼭 오셨으면 했는데, 안 오셨다는 것이 아쉬웠죠. 따지고 보면 그 집사님도 피해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분에게 창세기와 성경을 어떤 방식으로 읽고 해석해야 하는지 처음 가이드를 해주신 분이 저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그렇긴 하지만요. 저는 과신대가 목회자들에게 적어도 창세기의 창조사건에 관한 과학과 신학적 소양을 제고하는데 역할을 감당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교회는 목사님의 설교와 가르침이 바뀌어야 양육받는 성도들이 달라지니까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의 문제 같은데, 목회자가 변해야 성도들이 변하고, 성도들이 변해야 목회자도 변하는 것이겠죠. 다만 저는 목사라서 그런지 목회자들이 더 앞서서 이런 지적 소양을 갖추고, 과학과 신학에 대한 탐구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런 면에서 과신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사람이 설 자리가 축소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혹자는 종교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종교(특별히  기독교)가 과학시대에 요청받는 것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 글쎄요. 저는 종교의 역할(기독교의 역할)이 더 줄어든다고 보진 않습니다. 과학의 발전이 종교의 역할과 수준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주는 것이죠. 사람들의 설 자리가 축소되기보다는 이전보다 훨씬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더 많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이것은 철학적이면서 종교적인 질문이고,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이에 대한 답은 과학만으로는 답해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종교개혁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리로, 인간은 인간의 자리로’, 결국 인간을 하나님의 자리에서 인간이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려놓았듯, 과학이 발달할수록 기독교가 과학의 영역까지 침범하거나 과학 위에 서려하지 말고, 과학의 결과물을 수용하면서, 기독교는 본질적인 역할에 충실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이 가르치신 참 사람다움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을 해야 가치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등 이런 가이드의 역할은 종교(기독교)만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 과신대 북클럽이 서울 남부지역 과 분당/판교, 전주, 제주도 등 여러 곳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북클럽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가운데 살짝 권유를 하신다면 어떤 부분이 있는지요? 

[정] 지금도 잘 하고 있지 않은가요?  다만 독서모임이 진행되면 아무래도 처음 입문자와 꾸준히 관련 책을 몇 년간 읽어온 사람과는 차이가 있을 수 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독서모임은 점점 더 어려운 책을 택할 수 있는 위험성도... 과신대 제자 양육 시스템을 도입해야할까요? (웃음) 결국 다양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독서모임이 각 지역별로 진행, 확대되고 있다면 이제는 다양한 수준의 다양한 모임들로 확산될 필요도 있다고 봅니다. 신앙생활도 혼자보다는 교회라는 공동체가 필요하듯이 책도 혼자보다는 같이 읽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단순한 지식 축적만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감에 있어 더불어 함께 걷는 길동무를 얻고 연대해가는 힘이 과신대 독서모임에서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정준 목사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정준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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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2 / 2018.05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