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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야기/과신대 소식

과신대 연구 모임을 소개합니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3. 27.

 

글_ 정대경 박사

 

2017년 초부터 과신대 연구모임에 참여해서 자연과학, 철학, 신학의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과 “자유의지,” “뇌과학과 인간” 등에 관한 논문과 책을 같이 읽어왔습니다. 올 3월부터는 1년 반 정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모임에서 Peter Harrison의 기포드 강연 출판물인 “The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 챕터 1과 2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해당 챕터들에서 해리슨은 현대인들이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지금의 방식대로 이해되어온 역사가 길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종교와 과학 사이 갈등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두 학제 간 갈등이라는 것이 실상 “과학”과 “종교”라는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해리슨은 고대로부터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해되어 오는가를 탐구합니다.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소위 종교(신학)와 과학(자연철학)이라는 학문적 태도가 고대에도 구분은 되지만, 두 학문적 태도 모두 존중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와 과학자는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신학자 또한 철학적, 자연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렇게 파악된 지식과 이해는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는 것을 넘어 인간의 윤리적 태도 또한 고취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과신대 연구모임에서는 우종학, 박희주, 신희성, 황소현, 전진권, 장재호, 이성호, 정대경 박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종교현상이라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텐데 (만약 종교라는 것이 폴 틸리히가 지적하는 방식대로 각 개인의 "궁극적인 관심과 그것에 대한 표현"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의사 결정 등이 이루어질 때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젝트의 종교적 의미 혹은 종교 윤리학 의미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독려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와서 그렇겠지요.

 

박사논문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이 신학자 혹은 신학적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나사 (NASA) 등에서 진행하는 자연과학,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 프로젝트들에 관한 윤리적 의미, 신학적 의미 등을 종종 강연하시는 것을 참 부러워했던 적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신대 연구모임이 추후 자연과학과 신학 사이 학제 간 연구 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과학, 과학기술 발전이나 정책결정 등에 있어 신학적, 종교적 의미 등을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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