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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북클럽 이야기

서울남부 북클럽 이야기 (17-11)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3. 9.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진희 (서울 남부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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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과신대 서울남부 북클럽의 회원입니다. 무크따, 창조론자들, 최초의 7일, 오리진과 같은 책에 관심을 가지고 북클럽에 참여해오다가,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에도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창조기사논쟁 북클럽이 처음 열렸을 때 저는 첫 번째 발제자로 <리처드 E. 에이버벡>을 발제하게 되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선호하면서, 창조과학처럼 극단적 문자주의는 반대하는 입장이어서, 에이버벡의 발제문을 준비하며, 문자적 해석과 고대근동문헌과 비교한 문학적 해석을 조화시키려는 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어지는 다음 북클럽에 두 차례 참석하며 토드 비일, 트램퍼 롱맨의 관점도 보게 되었는데, 트램퍼 롱맨은 에이버벡과 토드비일에 비해 문자적 해석의 한계를 더 많이 보여주고, 대안적 해석을 보여줌으로써 신앙적으로 더 자유롭고 신선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의 “날들”을 에이버벡이나 토드비일과는 달리 문자적으로 24시간으로 해석하지 않고, 첫 3일은 “영역이나 거주지 창조”, 뒷 3일을 “창조될 거주자들이 채울 장소”로 해석함으로써, 문자적 24시간 해석에 매이지 않고, 문학적으로 새로운 의미를 도출해 냄으로써 성경 해석에 있어서, 신앙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데에 도움이 되는 모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발제에 이어서는, 롱맨의 창조기사 해석에 대해서, 에이버벡, 토드비일 등 신학자들이 동의하는 점과 동의하지 않는 점을 다룬 논평을 봄으로써 타 신학자의 관점에서 롱맨의 해석과 일치하는 부분과 한계점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에이버벡은 롱맨의 주장이 너무 오늘날의 과학에 의존한다는 점과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의 한계점을 지적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저 같은 경우 아담 창조 이야기를 비유로 해석하는 것이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만, 한편으론 이 해석이 가져올 한계점을 생각하면서 아담 창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더 생각할 필요가 있음을 일깨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북클럽에서는 발제 뒤에 토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데, 그 시간을 통해서 독서모임에 함께하는 많은 동료들한테 질문을 던질 수 있고, 독서 모임 안에서 고단수(?)이신 분들에게 흥미로운 답변을 많이 들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신앙적 선배들이나 신대원 출신 목사님들도 많이 계셔서 무신론자들의 도전에 응답하여 신앙에 도움 되는 말을 많이 듣고, 격려 받을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혹시 본인의 신앙이 무신론자나 이성의 도전에 직면하시거나, 기독교 신앙에 대해서 폭넓게 알고 싶으시면 과신대 독서모임에 참여하시는 것도 훌륭한 선택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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