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김응빈 외 지음 | 송기원 엮음 | 동아시아 | 2017


정훈재 박사 (LG전자 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2010년 5월 미국의 저명한 생물학자 크레이그 벤터(Craig Ven ter)는 ‘화학적 합성 유전체에 의해 제어되는 세균 세포의 창조’라는 제목의 논문을 <사이언스>에 발표합니다. 이 논문은 합성된 유전체 정보에 의해 유지되는 생명체를 새롭게 만들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대상은 '미코플라스마 미코이데스'라고 하는 동물의 장 속에 기생하는 세균이었습니다. 이 세균은 가장 적은 수의 유전자 수 (약 530개 정도)를 가지고 있고, 100만 쌍의 DNA를 유전 정보로 갖는 상대적으로 단순한 생명체라고 합니다. 크레이그 벤터의 연구팀은 유전자 데이터 베이스의 정보를 바탕으로 이 세균의 모든 유전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뒤 다른 종의 세균에 이식시킵니다. 그 종이 갖고 있던 원래의 유전체는 미리 제거된 상태였습니다. 이 다른 종의 세균 세포는 인간이 합성한 유전체만을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 세균은 자기 복제에 의한 재생산과 대사 등 정상적인 생명체로서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크레이그 벤터는 이를 Syn 1.0이라 호칭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했다고 선언합니다. 이어서 2016년 3월 크레이그 벤터의 연구팀은 Syn 1.0 유전체의 크기를 반으로 줄이고 유전자를 채 500개도 갖지 않은 생명체 Syn 2.0을 만들었다고 <사이언스>에 발표합니다. 즉 이 생명체는 지구상에 생존하고 있는 생명체 중 유전자 수가 가장 적은 생명체로 자연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구를 이끈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2003년도에 종료된 인간 유전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생물학자로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란 새로운 개념을 처음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인공 유전체를 합성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의 유전체 조작이 가능해진 것은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에 의해 유전체를 조작하는 것이 정확하고 빠르면서 비용도 저렴해졌기 때문이라 합니다.


과학의 발전이 가속화되고 세분화되면서 많은 새로운 개념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합성생물학도 아직 뚜렷하게 정립된 개념은 아니라고 합니다. 미국의 대통령 생명윤리 연구자문위원회에서 정의한 합성생물학이란 ‘기존 생명체를 모방하거나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인공 생명체를 제작 및 합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문’입니다. 이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에서의 제작 및 합성의 개념을 생명체에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이 분야의 기술은 발전하고 있었습니다.


크레이그 벤터 박사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세균 세포의 창조’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동안 종교의 영역이었던 ‘생명의 창조’라는 개념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고 온 셈입니다. 그의 세균 세포 합성을 ‘창조’라 호칭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의 연구가 보여준 것은 이전에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생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아닐지라도 ‘점진적인 창조’도 아니라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 대상도 세균에서 시작해서 이제는 점차 복잡한 생명체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멸종 동물을 재생하거나 인간 유전체를 합성해 작동 방식을 실험하려는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기존의 생명체에서 얻은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이 새로운 생명체를 설계하고 필요한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해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명과학 발전은 우리의 삶과 사회기반 및 가치관 자체에 중대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혁명에 가까운 변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있어 보입니다. 정부는 연구를 장려하면서도 그와 수반되는 시스템 구축에는 매우 취약한 방식을 선택했다 합니다. NGO들은 과학적 내용을 객관적으로 수용하려는 태도 없이 반대하는 입장을 택했으며, 연구 결과에 수반되는 좀 더 근본적인 사회 변화 등은 등한시한 채 주로 ‘먹어서 안전한가’ 등 단순하고 소모적 문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종교계는 생명 과학의 발전에 관심이 없으며, 변화의 내용과 속도를 불감한 채 마치 중세와 비슷하게 여전히 과학과의 담쌓기가 종교를 지켜줄 수 있을 것으로 믿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어떤 종교이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명에 대한 경외와 존중을, 변화하고 있는 생명과학의 현실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중에게 전달하고 지켜내야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저자들의 문제의식은 시작합니다.



이 책은 다섯 명의 저자의 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생명공학을 공부한 두 명의 과학자와 정책을 공부한 사회과학자, 철학과 윤리학을 공부한 두 명의 신학자가 모여 2015년부터 ‘합성 생물학’과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에 대해서 함께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과학기술과 사회’ 문제에 관심이 있는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을 모집해서 공부에 참여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연세대의 교수/연구원이며 연세대 과학기술정책전공 소속이기도 합니다.


저자들은 각각의 과학적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함께 공부하면서 다른 전공 기반의 다른 시각에서 느꼈던 문제의식을 정리하여 이 책에 담았습니다. 저자들은 이 책에 ‘과학적인 내용의 설명을 주 내용으로 하는 일반 과학 서적과 달리, 과학 지식에 이어 거버넌스 시스템이나 이런 과학적 변화를 수용하는 가치관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합성생물학에 대해서 우연히 알게 되었고, 찾아보다 보니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이 책이 나온 건 2017년 4월로 벌써 1년 반이나 지났습니다. 책 표지 하단에 ‘질주하는 생명과학의 혁명을 99%의 사람들은 눈치조차 못 채고 있다!’고 쓰여있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생명과학과 전혀 상관이 없는 전공 때문인지, 실제로 저도 이러한 책이 나온 지 1년 반이 되도록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이슈를 던지는 책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정작 이 책은 전혀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인간이 생명을 설계하고 만들어낼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오싹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시장 자본주의의 힘은 이 새로운 과학기술을 극한까지 밀어붙일 가능성이 큽니다. 적절한 정책적 대응이 전체 사회의 컨센서스에 기반해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그 끝에 도달할 모습에 대해 얼마나 낙관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제기하는 이슈들에 대해서 우리 사회가 좀 더 경청하고 고민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