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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콜로퀴움

판넨베르크에게 드리는 질문 4가지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3. 20.



지난 월요일에는 과신대 콜로퀴움을 잘 마쳤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조직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삼위일체론과 창조론을 소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고 온라인으로도 많은 분들이 시청해 주셨습니다. 2부 대담 시간에 우종학 교수님께서 작성하신 질문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시죠~



1. 우발성과 자연법칙 -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판넨베르크는 신의 자유와 신의 사랑, 두 개의 키워드를 사용해서 창조를 표현합니다. 우주는 반드시 존재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이 자신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창조해야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우주의 존재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입니다. 이것은 신의 자유를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된 우주가 단지 신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소모적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소멸적 특성만 갖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이 존재하도록 붙들고, 창조된 모든 것이 그 완성된 형태로 나가도록 하는 신의 행위는 바로 사랑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혹은 우발성과 우연성을 제거하여 기계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피조물들이 고유한 완성의 형태로 나가도록 보존하고 협력하고 돕는 사랑입니다.


보존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만들어진 창조물의 본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시간의 방향으로 따지자면 과거가 기준이 되는 사랑이고, 섭리는 피조물들이 완성되도록 돕는 미래적 목표를 위한 사랑입니다.



2. 자연법칙과 틈새 찾기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자연 사건들의 우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규칙성들의 한계를 숙고하면서, 문제를 자연 사건들의 규칙성의 틈새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은 이 자연 사건들의 틈새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유혹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은 자연 과정들 속에 담지된 그 틈새들을 메우고 있으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그 자체로 자동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하나님은 전체 세계의 창조자가 아니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틈새들은 자연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언제나 다시금 메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를 들어 비유기적 과정들로부터 생명이 기원한다는 사실이 물리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 주장이 미래에도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물리학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각 새로운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 또한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라는 것뿐이다."


판넨베르크가 틈새의 신 방식의 접근을 비판하는 관점이 흥미롭군요. 심지어 무생물에서 생물이 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에도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과학이 새로운 발견을 하면 새로운 신학적 문제가 대두되겠지요. 생명의 출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란 얘깁니다.



3. 진화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 우발성은 이신론적, 기계론적 신관을 오히려 깨트려 주었다.


"다윈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신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오류에 속한다.…신학은 (모든 종이 세계의 시작 이래로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이론의 세계관적 전제에 갇혀있었고 인간에 대한 관념론적 과대평가를 통해 눈이 흐릿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학에 경고음을 일으킨 것은 다윈의 종의기원설이 일으킨 의문, 곧 창조 속에서 인간이 갖는 특별한 지위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란 바로 신의 목적을 설정하는 목적론적 자연관이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의 우연성에 대한 강조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은 유기체적 생명의 출현이 갖는 목적적합성을 설명해주었다. 목적적합성의 설명은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에 따르면 오로지 계획하는 이성을 가정할 때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자연선택설은 친구들과 적들 모두에게 유신론적 하나님 표상에 대한 반박으로 보였다. 양측 모두에게 진화의 자연선택설은 종들의 생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단지 기계론적인 설명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된 것입니다.


"알트너가 지적했던 것처럼 진화의 새로운 세계상은 창조 사건의 역동성을 시간 안에서 열려 있는 과정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기계론적인 자연관은 하나님을 기껏해야 이신론적으로 보아 과거 한때의 자연질서의 창시자로 받아들이도록 했고, 자연사건 과정 속에서 계속 창조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진화는 이런 기계론적인 자연관과 이신론적인 신관을 깨트리게 해 주었다는 것이지요.



4. 장이론 - 과학과 신학의 결합인가? 차용인가?


판넨베르크의 입장이 창조과학식으로 물리학과 신학을 직접적으로 결합하려는 건 아닌가? 자연과학과 대화하려는 판넨베르크의 접근이 성령의 내재적 역사를 장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지, 혹은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 사이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장과 같은 물리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성령의 일하심을 유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불명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장의 개념을 유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성령을 어떤 에너지 개념으로 물리적 실체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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