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창세기는 실제 역사일까요?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

 

창세기는 실제 역사일까요?
Is Genesis real history?

 

 

서론

 

남자는 흙으로부터, 여자는 갈비뼈에서. 말하는 뱀. 두 개의 신비한 나무. 거대한 홍수. 언어의 혼란.

 

우리는 이런 이야기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 앞장에서 묘사된 모든 사건이 실제일까요? 창세기는 우리에게 정확한 역사를 제공하는 것일까요?

 

과거의 사건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역사로 고려될 수는 있습니다. 창세기는 과거의 사건, 즉 하나님이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것과 같은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창세기는 역사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신학적 역사이며, 어떤 부분을 기술할 때는 비유적인 언어를 사용합니다. 창세기의 저자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창조 방법(물질적인 용어로)이나 창조에 소요된 시간을 말해주는 데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는 창세기가 다른 고대 이야기들처럼 생생한 이미지를 사용해 과거의 사건을 기술한 진실한 이야기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우리가 답을 알기 원하는 과학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습니다. 텍스트를 자세히 읽어보면 의미가 명백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장에서, 해와 달과 별이 없는 세 번의 저녁과 아침이 있다고 하지만, 이것들은 우리가 이해하는 정상적인 날이 아닙니다(비록 텍스트에서는 정상적인 날로 기능하지만, 그것들은 문학적인 의미의 날입니다). 혹은 창세기 2:7을 고려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아담을 흙으로부터 지으시고 그의 콧구멍 안으로 숨을 불어넣으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이 언어는 다소 비유적이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하나님은 손이나 폐가 없으신 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영감과 권위

 

창세기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창조될 때, 그것을 지켜 본 인간은 아무도 없었으며, 하나님이 창세기 저자에게 현상이나 사건을 단순히 베껴 쓰도록 하지도 않았습니다. 영감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닙니다. 

 

창세기 1장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청중에게 하나님의 창조적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이스라엘 저자의 설명을 봅니다. 우리는 창세기 내레이터가 이해한 것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믿으며, 그래서 우린 그것을 세상의 권위 있고 진실된 이해를 제공하는 것으로 수용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늘날 과학적 이해에 따라 창조 사건을 재구성하거나 우리의 현대적 세계관의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게 하려고 의도되지는 않았습니다.

 

창세기의 장르와 문학 양식

 

역사를 묻는 것은 곧 장르를 묻는 것과 같습니다. 종종 사람들이 창세기를 역사로 파악할 때, 그들은 창세기를 다른 문학 장르(예: 신화)나 다른 문학 양식(예: 시)으로 파악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그들은 창세기를 신화나 시로 파악하는 것을 창세기의 진리 주장을 훼손하거나 희석시킨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리는 다양한 장르나 문학적 양식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가 진리 주장을 전달하는 방법 - 내레이터의 의도가 무엇인지 - 물을 필요가 있습니다.

 

창세기는 진리 주장을 여러 족보와 함께 주로 내러티브로 제시합니다. 창세기 1-11장은 인류의 기원을 이야기하며, 이는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으로 이어집니다. 창세기 12-50장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족 이야기 중에서 의미심장하게 전개된 사건들을 이야기해주며,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의 배경을 제공합니다. 창조 (1-2장)와 아담과 이브의 최초 불순종 행위(3장)를 포함하는 초기 사건들은 이스라엘의 이야기로 이끄는 인간 이야기의 시작 에피소드입니다.

 

우리는 구약성경과 고대 세계의 내러티브가 과거 사건과 관련된 진리를 어떻게 제시하는지 연구함으로써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내러티브가 실제 사건을 다룰지라도, 그 사건은 신학적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기술된 것입니다.

 

 

신학적 목적을 위한 수단

 

고대든 현대든 발생한 사건의 시간 순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진 내러티브는 거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리얼리티 TV 쇼를 생각해 보세요. 한 에피소드가 촬영되면 수많은 카메라들이 다양한 사건과 대화를 잡아내는 데 사용됩니다. 그런 다음 감독은 쇼의 의도에 맞는 일관된 이야기를 제작하기 위해 원본자료를 선택, 배열 및 편집합니다. 감독이나 관객 모두 최종 작품으로부터 원본자료를 재구성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상황은 어떤 특정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건들을 선택적으로 이야기해주는 역사적인 설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세기와 같은 고대의 내러티브도 같은 경우입니다.

 

고대의 저자들은 사건의 세부 사항보다는 사건의 의미에 더욱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내러티브들은 대부분의 현대 역사의 내러티브와는 다릅니다. 우리가 만약 그들이 기록한 사건을 명제적 진리 주장으로 축소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내러티브의 모든 부분을 놓치게 될 것입니다.

 

고대의 내러티브가 과거에 대한 해석이라고 할 때, 그것은 보통 단순히 과거를 기술하기 위해 쓰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현재를 위한 겁니다. 고대의 내러티브는 실제 사건과 실제 인물을 기초로 하고 있지만, 현대의 독자가 기대하는 스타일에 맞췄을 때의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다루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대의 내러티브는 나레이터내레이터 시대의 세상을 기술하고, 그 세상을 설명하며 청중들이 포용할 수 있는 시각을 제공합니다. 내레이터가 청중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것은 과거의 사건을 재구성하는 데 쓰일 세부 사항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세계관인 것입니다.

 

사례 연구: 창세기 6-9장의 홍수 사건

 

창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에 이러한 접근 방법을 적용해 보도록 합시다. 창세기 6-9장의 노아와 홍수 이야기입니다. 창세기의 홍수 이야기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실제로 발생한 재앙적인 지역 홍수 사건에 관한 훨씬 더 오래된 이야기들을 토대로 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오래된 전설은 창세기가 기록된 문화적 배경의 일부였습니다. 영감을 받은 창세기 저자는 죄의 심각성과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하신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고대의 문학 관습을 사용하여 이러한 오래된 이야기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어떤 과거의 홍수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신학적 요점들을 제공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하여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의 모든 부분에서처럼 홍수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의 일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창조물과 그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대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해한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계시이지, 과학이나 자연사의 어떤 사실에 대한 계시가 아닙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의 세부사항을 재구성하려는 시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신학적 요점을 놓쳐버렸습니다.

 

 

창세기의 이야기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갈등과 해결에 초점을 맞춥니다. 처음부터 하나님의 목적은 지구 전체에 그의 임재가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드러내는 존재이고 땅을 정복해야 합니다. 즉 창조계 안에 질서와 결실을 가져와야 하는 것입니다(창 1:2). 인간이 하나님께 반역했을 때(창 3) 갈등이 이야기로 들어오게 됩니다. 샬롬은 흩어지고 지구는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심판과 자비를 베푸실 때까지(창 6-9) 더 큰 타락이 진행됩니다(창 4-6). 그런 다음 인간은 하나님이 당신의 임재를 다시 시작하시기 (언약) 이전에 하나님의 임재를 회복하려고 시도합니다 (창 11).

 

창세기 1-11장은 인류의 첫 이야기이며 위기로 끝이 납니다. 이 내러티브는 하나님의 처음 목적과 인간의 처지에 대한 진실되고 참된 평가를 내립니다. 창세기 12-50장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나라가 시작되는 이야기입니다.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과의 관계를 세우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살기 위한 구조를 제공하며, 지상에 세워질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기초를 놓습니다.

 

결론

 

모든 내러티브는 목적과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는 고대 내러티브의 모음집이며 고대 세계의 문화와 문학 양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지고 합쳐졌습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내러티브처럼, 창세기의 내러티브는 내레이터가 자신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메시지를 구체화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든 세부 사항을 제거합니다. 

 

창조 내러티브는 성경에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전달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 내러티브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감을 받은 저자가 과거의 사건을 통해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해석을 내놓는 것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목적에 대한 진리를 드러낸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의 진리는 우리가 그것을 창조의 "분명한 사실"을 재구성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저자는 과거의 사건을 기록했지만(예: 우주와 인류의 창조, 인류 최초의 무죄와 반역),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환기적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유익하게 읽을 수 있지만, 창세기의 원청중과 문화적 맥락에 대해 더 배운다면 신학적 이해는 더욱 풍성해질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삶에 대한 본문의 관련성과 중요성을 지속해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감수: 김기현 연구위원 (로고스서원, 과신대 자문위원)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