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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북클럽 이야기

[분당/판교 북클럽] 신구약 중간사와 기독교의 기원 탐구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10. 1.

[분당/판교 북클럽 9월모임 후기]

 

박정수, <고대 유대교의 터·무늬> (새물결플러스, 2018)

시간/장소 : 9/29일 금요일 저녁 성공회분당교회

발제: 박철성 님

 

나는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에 공백, 느부갓레살의 예루살렘 패망 후,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기에, 독립된 나라없는 백성들이 500년간을 유대교 라는 분리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종교를 자리매김해서 초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것이 늘 궁금했다.

 

책의 시작은 앗수르, 바빌론 등의 강압통치를 일삼은 제국의 몰락을 경험한 키루스(고레스)가 페르시아 속국들에게 종교와 관습을 허락하는 "문화정치"로 시작된다. 유대 예루살렘 성전, 바빌론의 마르둑과 이집트의 신들,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제사가 허락되었고 정복민들에게 마치 이전 왕조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는 안정감을 주려는듯 그는 바빌론의 후계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강사은 님의 표현처럼 고레스 덕분에 유다가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의 연장선 상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귀환이 시작되었으나 이는 그땅에 남아있던 대다수 백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치 6.25때 서울이 북한군에게 3일 만에 점령되어 남아 있던 대다수 서울시민들이 서울 수복후 부역자로 몰린 것과 같은 상황이 떠올라 한동안 상심에 잠기었다.

 


초기 귀환 그룹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꿈꾸며 이방인이 되어버린 남은 자들을 부정하다하여 성전 재건에 참여시키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사마리아 이방인(?)과 정치적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는 페르시아에 의해 좌절되었다.


20년 후에 (기원전 538년 ~ 515년) 성전재건 목표 수정하여 성전 자치 공동체의 지위에 한정하며 이방인 혼합주의자/동화주의자들을 받아들인 후에 성전이 재건되었고, 에스라 7-10장 성전 완공 후 50년 후 458년 에스라가 종교특사로 파견되며 도시재건과 개혁,성벽건설까지 완성되었다. 


초막절 희생제사 - 에스라의 수문 앞 광장 율법 낭독에서 총회를 주관한 느혜미야 총독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회복을 이루는 모습이 성경에서 정말 감동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공적인 영역은 제한되었고, 개인적인 종교적인 면의 성과에 머물러서 성전제사와 공통체의 제의적 정결에 집중되었다.

 


정훈재 님이 소개한 <시편 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처럼 시편 첫 권은 현실 왕조/왕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뒷 권으로 갈수록 왕이 없는 식민지 백성의 바램이 묵시적으로 변화한다. 오늘 현실의 시련 앞에서 먼미래에 경험하게 될 구원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현하게 되고 성전 제사장 세력에서 제외된 에스겔 등에 의해서 교회에서 찬양할때 늘 부르던 "젊은이가 꿈을 꾸고 노인이 환상을 보는" 묵시문학의 태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300 영화로 익숙한 페르시아가 야만이 아닌 나름 관용적인 개방정책으로 헬레니즘 이전에 이미 그리스 문화가 에후드 지역에 가득했고 디아스포라와 함께 이러한 배경이 초대기독교가 널리 확장된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팔레스타인 지명은 로마 통치시절 잦은 유대 봉기를 괘씸하는 여긴 로마황제가 블레셋을 본따 rename 된 것으로 유대인들은 태생부터 싫어 할만한 단어라 하겠다.


모임 뒷 부분은 김자현님이 유엔 회의 중에 구술 문화권의 중동의 외교관들이 상당한 언변이 강하다고 설명을 들었고, 유대교의 미쉬나 완성과 성전 보조직에 한정되었던 레위인들을 사독 가문으로 대표되는 신정정치의 승리자(?) 제사장계급이 파트너로 연합함으로써, 서기관 계급이 태동하는 과정을 살려보았고 외경으로 접하는 마카비 혁명을 다음시간에 고대하며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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