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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Biologos 자료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9. 타락 이전에 죽음이 있었을까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3. 8.

 

타락 이전에 죽음이 있었을까요?
Did death occur before the Fall?

 

 

 

인간은 생명의 역사에서 매우 늦게 나타납니다. 화석 기록은 인간이 나타나기 이전에 많은 생물들이 죽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은 죽음을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로써 묘사하는 성경 구절과 상충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3장의 저주는 동물이 아닌 아담과 이브가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타락 이전의 동물의 죽음은 기독교 교리와 양립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장과 그 외 여러 성경 구절들은 육체적 죽음이 아닌 주로 영적인 죽음에 대하여 인간들에게 말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서론

 

과학자들이 하나님의 창조물을 연구할 때, 생명의 역사에서 인간이 매우 늦게 나타났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화석 기록에 따르면 많은 생물들이 인간이 나타나기 오래전에 죽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사실 많은 생물종들이 수백만 년 이전에 멸종되었습니다 (공룡이 가장 유명한 예입니다). 이것은 인간이 존재하거나 죄를 짓기 훨씬 전의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는 다른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몇몇 주요 성경 구절들은 죽음을 죄의 결과로 가르칩니다 (창 2:16-17, 창 3:19, 창 3:22, 롬 5:12-21, 고전 15장). 과학적 증거에 비추어 볼 때 이러한 성경 구절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인간이 죄를 짓기 이전에 동물들이 죽을 수 있었을까요? 이러한 성경 구절에서의 죽음은 육신적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영적인 죽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상황에 따라 가리키는 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일까요? 이러한 질문들을 깊이 생각해 보기 위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계시와 자연에서의 하나님 계시를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학적인 증거는 다른 질의응답 편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거기에 우린 타락과 죄에 대한 많은 글들도 실어놓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이 죽음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지, 그리고 두 개의 계시가 어떻게 상충되지 않을 수 있는지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동물의 죽음

 

죄와 죽음에 대해 가르치는 성경 구절들은 분명하게 인간의 죽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절들은 동물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을까요? 토마스 아퀴나스 (1225-1274)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원래 하나님의 창조는 서로서로를 죽이는 동물들을 포함한다고 믿었으며, "동물의 본질은 인간의 죄에 의해 바뀌지 않았다"라고  말했습니다. 1 다니엘 하렐 목사는 동물의 죽음에 대해 논리적으로 주장하며 “에덴동산에는 죽음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아담이 금지된 과일을 먹기 훨씬 전에 벌레와 박테리아에 의해 넘쳐 났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2 또한 동물의 죽음은 균형 잡힌 생태계 안에서 개체군 수를 유지하는 데에도 필요합니다 (더 많은 내용은 아래를 참조). 일부 성경 구절은 육식동물을 창조를 위한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일부로 묘사합니다 (욥 38:39-41, 욥 39:29-30, 시 104:21, 29). 또 다른 성경 구절들은 양을 죽이는 대신 "양과 함께 누워있는 늑대"에 대하여 말합니다 (사 11:6-7, 사 65:25). 그러나 이러한 구절들은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지칭하는 것이지, 원래의 창조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동물의 죽음과 고통은 다른 신학적인 질문을 제기하지만, 죄의 결과로써 죽음에 대해 성경이 가르치는 것과는 모순되지 않습니다.

 

 

인간의 죽음: 육신적 혹은 영적?

 

창세기 2-3장의 전통적인 해석 중 하나는 죄가 육신의 죽음을 낳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가 없었다면 불멸이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17에 보면,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이렇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3:19에서 하나님은 이 형벌을 실행에 옮기시고 아담에게 노동과 죽음으로 저주하셨습니다.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와 아담을 대비하면서 아담의 타락을 모든 인류에게 해당되는 육신적 죽음의 원인으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 칼빈은 아담의 죄가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갑작스럽고 고통스러운 죽음, 그리고 인간의 육신적인 면과 영적인 면이 분리된 원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칼빈은 만약 아담이 죄를 짓지 않았다면, 더 완화된 육신의 죽음이나 죽음 없이 삶에서 다음 삶으로 "넘어가는 일"이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첫 번째 사람은 더 나은 삶으로 넘어갔을 것이며 올바르게 남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영혼과 육체의 분리, 부패, 어떤 종류의 파괴도 없었으며, 간단히 말해서 아무런 폭력적인 변화도 없었을 것입니다."3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유한하게 창조되었으나 이사야 65:20-25에서 언급된 것처럼 오래도록 건강한 삶과  우아한 죽음을 맞이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은 역대상 29:28에서 다윗 왕이 "오래 살면서 부와 명예를 누린 좋은 노년기에" 죽었다고 나오는 것처럼 순수하게 긍정적인 용어로 오랜 삶의 끝에 있는 죽음에 대해서 말합니다.

 

이 구절들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은, 죄의 결과는 육신의 죽음이 아니라 영적인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아담이 지를 짓지 않았다면, 인간은 오늘날 우리가 그렇듯 여전히 죽음을 맞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죽음과 함께 오는 "상실감, 내세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끝내지 못한 일에 대한 후회"가 없었을 것입니다.4 브라질 파라나 복음주의 대학의 장로교 목사이자 교수인 A.  C. 디아스는 "아담과 함께 세상에 들어선 죽음은 인간을 하나님으로부터 분리한 어떤 것, 즉 하나님께로 다가갈 수 있는 권한이 사라졌고,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그 권한이 회복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영적인 죽음으로 이해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5 물론 여전히 어떤 죄는 가인의 손에 의한 아벨의 죽음, 그리고 다윗 왕의 간음 이후에 어린 아들이 죽은 것과 같은 육신의 죽음을 가져오고 있습니다 (삼하 12:13-14).

 

창세기 2-3장의 본문은 저주를 영적인 죽음으로 해석하는 것을 뒷받침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3:19의 저주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아담은 흙으로부터 유한하게 창조되었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에게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 죽을 거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930년까지 살았습니다 (창 5:5). 그들이 나무 열매를 먹은 날 무슨 일이 일어났었습니까? 아담과 이브는 수치심을 느꼈고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져 영적으로 죽은 것입니다.

 

아담과 이브가 완전히 이상적인 인간으로 창조된 불멸의 존재는 아니었습니까? 이것은 잘 알려진 아이디어이지만, 성경 텍스트 안에서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첫 인간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주 좋았더라”로 묘사되었고 하나님께 기쁨이었지만 (창 1:30-31), 완벽하거나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진 않았습니다. 또한 생명나무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타락 이전에 동산 안에 이 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창 2:9). 그리고 이 나무는 그 열매를 먹는 자에게 영생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창 3:22).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셨다면, 생명나무의 목적은 무엇이었겠습니까? 그 나무는 오직 인간이 처음부터 유한할 때만 필요한 것입니다.6

 

신약성경에서 바울은 죄와 죽음의 관계에 대해 많이 썼습니다. 때때로 바울은 영적인 죽음을 분명히 언급했지만, 또 어떤 때는 육신의 죽음도 명확하게 언급했습니다 (고전 15:35-42). 그러나 심지어 고전 15장에서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영생은 우리가 지금 경험하는 단순한 세상적인 삶보다는 훨씬 더 나은 어떤 것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죽음"도 역시 단순히 육신의 죽음 이상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롬 5:12-21에서 좀 더 명확해지는데, 여기에서 죽음은 은혜, 칭의, 그리고 의의 선물, 즉 예수님의 승리로 인한 새로운 영적인 삶과 대조됩니다. 

 

 

육신의 죽음은 하나님의 원래 계획의 일부일까요?

 

에덴동산은 인간이나 동물에게 죽음, 고통, 심지어 위험도 없는 완벽한 장소로서 명성이 높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원래의 창조물들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 단지 “좋은”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창세기 1-2장에서 몇몇 구절들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안전하지 않았고 고통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D. C. 스패너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위험을 암시하는 단어인 "정복"을 임무로 주셨다는 점을 지적합니다.7 또한 창세기 2장은 아담과 이브를 동산 안에 두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이것은 거주민들을 광야로부터 그리고 위험한 동물들로부터 보호하는, 벽으로 둘러싸인 울타리였습니다. 성경은 새로운 창조에서 하나님 계획의 절정은 눈물과 고통과 죽음이 없는 장소 (계 21:4)이지만, 첫 번째 창조가 이러한 특징을 공유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식물과 동물의 죽음은 실제로 건강한 생태계에서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식물은 동물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동물은 죽으면 땅에 영양분을 되돌려 줍니다. 포식자가 없다면, 일부 종의 개체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다른 종을 몰아내고 심지어는 멸종시킬 수도 있습니다. 포식자는 가장 개체 수가 많은 종을 골라 먹는 경향이 있어 다른 종이 성공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그 종의 성장을 제한합니다.8

 

인간의 죽음을 긍정적인 면에서 보는 것은 더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궁극적인 악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9 예수님은 그의 친구 나사로의 죽음에 결국 애통해하셨습니다 (요 11장). 바울은 죽음을 죄의 삯이라고 했으며 (롬 6:23), 멸망시킬 최후의 적이라고 기록했습니다 (고전 15:26). 신약성경은 죽음을 악으로 강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약속된 삶의 방식과 죽음은 양립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다가올 하나님 나라가 현세에 도래했음을 의미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나라가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육신의 죽음이 계속되는 현실은 구속된 미래의 약속과 상충됩니다. 믿는 자들이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옷을 입을 때에만 마침내 죽음은 정복될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은 또한 사랑의 깊은 표현으로 성경에 나타나기도 합니다. 새로운 나라로 안내하기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이지요. 예수님은 사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은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5:13). 그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롬 5:6-8). 기독교는 희생적인 사랑의 최고의 증거로서 십자가를 붙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2:23-25). 여기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비유로서 건강한 생태계에서 죽음의 역할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유기체의 죽음이 생명의 재생과 번영을 허용하듯이 예수님의 죽음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거듭남과 새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아마도 진화의 서사시에서 생물학적인 죽음은 목적 없는 낭비가 아니라 새 생명을 위해 죽음의 부정적인 면을 구속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알려주는 하나의 힌트일지도 모릅니다.

 

 

<미주>

  1. Saint Thomas Aquinas. Summa Theologica, Part 1, Question 93, Article 1 (web article).

  2. Daniel Harrell. “Death’s Resurrection,” BioLogos Forum, December 18, 2009.

  3. John Calvin. Commentaries on the First Book of Moses, called Genesis, trans. by John King. ch3 v19 (p. 97).

  4. George Murphy “Human Evolution in Theological Context” BioLogos scholarly essay which includes a discussion of human and animal death (PDF), p. 6.

  5. Quoted by Marcio Antonio Campos in “Did peace and love reign in the world before the original sin?” BioLogos Forum, March 7, 2011 (blog).

  6. See Deborah and Loren Haarsma, “Three interpretations of the Tree of Life,” supplemental material to Origins: Christian Perspectives on Creation, Evolution, and Intelligent Design (Grand Rapids, MI: Faith Alive Christian Resources) 2011 (PDF).

  7. D. C. Spanner in Biblical Creation and the Theory of Evolution, Paternoster, 1987 (author website).. . . the mandate given to man in Genesis 1:28 which reads, “Be fruitful and multiply, and fill the earth and subdue it; and have dominion . . . over every living thing” charged man with “subduing’” the earth. The Hebrew word for “subdue” is kabas, and in all its other occurrences in Scripture (about twelve in all) it is used as a term indicating strong action in the face of opposition, enmity or evil. Thus, the land of Canaan was “subdued” before Israel, though the Canaanites had chariots of iron (Josh. 17:818:1); weapons of war are “subdued,” so are iniquities (Zech. 9:15Micah 7:19). The word is never used in a mild sense. It indicates, I believe, that Adam was sent into a world where all was not sweetness and light, for in such a world what would there be to subdue? The animals, it suggests, included some that were wild and ferocious, and Adam was charged to exercise a genuinely civilizing role and to promote harmony among them.

  8. Fuz Rana, “Predators Essential for Life’s Diversity” Reasons to Believe. March 2012.

  9. This paragraph and the next borrow heavily from Daniel Harrell “Death’s Resurrection,” BioLogos Forum, December 18, 2009.

 

  •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 감수: 김익환 교수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과신대 자문위원)

  • 원문: bit.ly/3qqlC9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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