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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Biologos 자료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21. 우리는 창세기의 홍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6. 11.

우리는 창세기의 홍수 사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How should we interpret the Genesis flood account?


 

창세기 6-9장의 노아와 방주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유명하면서도 논쟁의 여지가 많은 단락 중 하나입니다. 전 지구적인 대재앙, 그리고 나무로 만들어져 물에 떠있는 동물원과도 같은 커다란 배를 중심으로 이 이야기는 수천 년간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습니다. 현대까지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그 이야기를 비교적 최근에 일어났던 전 세계적인 실제 사건이라고 추정했으며, 이러한 해석은 계속해서 젊은지구창조론자들의 핵심적인 특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대 과학의 발견은 성경의 고대 세계에 대한 새로운 지식의 폭발적인 증가와 더불어 이러한 해석이 그 본문을 읽는 최선의 방법인지 여부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여기에는 모든 진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고, 성경은 영감을 받은 것이며,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간증은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고 믿는 많은 기독교 학자들과 과학자들의 업적이 담겨있습니다.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증거는 이제 분명합니다. 지구 전체를 덮는 전 세계적인 홍수는 없었으며, 오늘날의 모든 동물과 인간이 하나의 방주 안에 있었던 승객들로부터 유래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학과 성경을 연관시키기

 

하나님의 창조세계 안에서의 발견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해석과 충돌을 일으킬 때, 기독교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옵션이 있습니다.

 

1. 과학의 결과를 수용하기 위하여 신앙을 버린다.

2. 우리의 성경 해석을 유지하기 위해 과학적 증거를 거부한다.

3. 우리의 성경 해석을 하나님의 창조 증거의 빛 아래서 재고해본다. 

 

기독교인들은 정의상 옵션 1을 거부합니다. 옵션 2는 끔찍한 역사적 기록을 가지고 있으며, 많은 저명한 역사 신학자들은 기독교인들에게 과학 결과를 무시하거나 묵살해버리라고 촉구했습니다. 옵션 3은 기독교인들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전통을 대표하며, 역사적으로 우리는 잘못된 성경 해석을 바로 잡는 데 도움이 되는 자연세계에 대한 지식의 많은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의 발견(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은 태양계 안에서 지구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를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려고 하는지, 아닌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바꾸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자연의 책"의 저자이자 성경책의 신성한 저자이심을 믿기 때문에, 홍수 이야기의 적절한 해석이 우리가 자연계에서 발견해온 것들과 상충하지 않을 거라고 믿습니다.

 

 

고대의 맥락 안에서의 성경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수천 년 전에 살았던 평범한 인간과의 만남을 기록한 것입니다. 성경학자 존 월튼이 말했듯이, 성경은 우리 모두를 위해 쓰여진 것이지, 우리에게 쓰여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창세기가 그것을 쓰고 전해 받았던 사람들에게 무엇을 의미했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어떤 사건 (또는 사건의 기억)을 사용하여 청중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비유적인 방식으로 다시 들려주는 것이 흔한 일이었습니다. 홍수 이야기가 고대 이스라엘의 수사학과 신학에서 구전되어온 실제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이라는,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좋은 증거가 있습니다. 창세기 기록은 고대 세계에서의 재앙적 홍수에 대한 많은 이야기(홍수 이야기와 뚜렷한 유사점을 가지는 바빌론의 길가메쉬 서사를 포함하여) 중 하나입니다. 

 

이것은 창세기 6-9장이 다른 문화 속의 이야기로부터 빌려온 이야기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러나 물 재앙에 대한 공통된 문화적인 기억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역사적인 홍수 사건의 정확한 본질이나 시기는 창세기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이야기의 목적은 사실 목록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메시지를 원청중에게(그리고 성경의 힘으로 모든 역사에서 모든 하나님백성에게)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홍수 이야기 해석하기

 

창세기 홍수 이야기는 저자들 (및 원청중)이 일련의 실제 사건들을 이야기해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많은 문학적 단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야기는 "과장법"이라고 알려진 문학적 장치를 사용하여, "지구 상 모든 생물"의 대표들을 태운 거대한 방주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 위에도 흐르는 홍수를 묘사합니다. 이것들은 독자들에게 그러한 묘사의 사실성을 파악해내라고 도전하지는 않지만, 고대 저널리즘보다는 신학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중요한 단서들입니다. 

 

저자들이 일련의 사건들을 문자적으로 관련 지으려 하지 않는다는 다른 단서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노아에게 "정결한" 동물을 "부정한" 동물과 다르게 대하라는 명령입니다. 비록 그 범주가 성경 이야기에서 훨씬 나중에 나오는 모세 시대까지 히브리 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았었지만 말이지요. 홍수 이야기를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또 다른 단서는 창세기와 세부적으로는 창세기 1-11장의 "원시 내러티브"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성경학자들은 창세기 1-11장이 창세기의 나머지 부분과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원시 내러티브는 우주 역사의 거대한 범위를 포괄하는 동시에, 그들의 언어에서는 굉장히 비유적입니다. 이 내러티브는 창세기 12장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시작하는 하나님백성 이야기에 대한 웅장하고 시적인 "서론" 역할을 합니다. 또한 실제 사건들 (우주의 창조와 인류의 특별한 부르심과도 같은)을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의 단순한 기술보다는 이야기의 목적과 더욱 관련된 수사학적이면서 신학적인 방식 아래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고대 사람들(이스라엘 사람들을 포함하여)이 역사를 어떻게 기술할 건지에 대한, 특별히 역사가 시작되는 즈음의 "원시 시대"와 관련한, 완전히 전형적인 형태입니다.

 

 

홍수 이야기 안의 고대 우주론

 

우리는 고대 문학의 렌즈를 통해서 홍수 이야기를 읽을 필요가 있을 뿐 아니라, 고대 우주론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고대 근동 지역의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망원경이나 위성 및 기타 현대 과학 장비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우주를 그저 매일 관찰되는 모습으로 묘사했을 뿐입니다. 고대 근동 지역의 사람들은 비가 하늘 위에 위치한 바다(이는 하늘이 왜 푸른지 알려줍니다)로부터 내린다고 생각했으며, 그 바다는 지구를 감싸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는 왜 깊은 우물이 항상 물에 닿는지 알려줍니다). 그들은 또한 "지구 전체"를 그들이 가지고 있던 지도(오늘날 대부분의 중동 지역을 이루는)의 끝으로 단순하게 여겼습니다.

 

홍수 내러티브들은 이러한 고대 사람들의 세상에 대한 공통된 이해에 의거합니다. "창공"(우주의 바다를 떠받치고 있는 하늘의 견고한 돔)이 붕괴되고 "깊은 샘"이 위로 폭발할 때, 지구는 물로 인한 대재앙을 겪으며 창세기 1:2에 기록된 것처럼 혼돈의 상태로 돌아간 것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혼돈에 대처하기 위해, 하나님은 지구를 혼돈에 빠뜨리신 뒤 재창조로써 세상을 "다시 시작"하시며 질서를 회복하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지구와 우주의 모양에 관해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홍수 이야기를 읽습니다. 예를 들자면, 그 이야기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말해준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 본문을 읽을 때 자신들이 믿는 대로 읽습니다. 원청중들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는 것을 놓쳤기 때문이지요. 이와 비슷하게, 물의 근원, 방주의 부력, 지질학적 효과, 혹은 홍수 이후의 동물 이주나 이와 비슷한 질문들에 대한 추측은 그 이야기의 요점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홍수의 의미

 

일부 사람들에게는, 여기에 간략하게 설명된 홍수 이야기에 관한 관점이 텍스트가 가진 신성한 영감을 부인하면서 그 이야기를 완전히 인간의 창작품으로 치부한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선택하셨으며, 그들을 인도하기 위하여 하나님 자신을 인간의 제한된 지식에 맞추셨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과학적인 자료를 주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새로운 문학 장르를 선사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노아, 방주 및 홍수 이야기는 심판과 은혜에 대한 영감이 깃든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이 이야기는 여러 세대 동안 하나님의 죄에 대한 증오와 그가 지은 피조 세계에 대한 사랑에 대해 하나님 백성을 가르쳤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우리는 다시는 지구를 파괴하지 않으실 거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주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 안에서 완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인데, 이 사건은 하나님은 인간이 아닌 하나님 스스로에게 죄에 대해 심판하시기로 택하신 사건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렌즈를 통해, 성경의 홍수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은혜와 사랑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 번역: 김영웅 박사(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 감수: 김근주 교수(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과신대 자문위원)
  • 원문: https://bit.ly/2StaJ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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