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과신뷰/Biologos 자료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23. 진화적 창조는 성경무오성과 양립하나요?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8. 5.

진화적 창조는 성경무오성과 양립하나요?
Is Evolutionary Creation compatible with biblical inerrancy?

 

 

 

기독교인들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졌으며 우리의 삶에 권위를 가진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오할까요 (즉, 아무런 오류가 없을까요)? 성경무오성과 창조에 대한 진화적인 이해를 모두 함께 수용하는 게 가능할까요? 모든 진화적 창조론자들이 성경무오성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그 용어 이면에 있는, 성경이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생각에 천착해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떻게 성경무오성과 성경의 권위에 대한 다른 입장들이 진화적 창조와 양립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권위를 가집니다.

 

기독교인들은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된 성경이 권위를 가진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우리의 신앙과 삶을 관장하고 뒷받침합니다. 성경에 계시된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집니다. 비록 성경은 고대 문헌들의 모음집이지만, 수천 년 전 믿는 자들에게 그랬듯이 오늘날에도 의미를 지니며 권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계속해서 성경의 의미를 조명하여 성경을 "살아 역사하게" 만드십니다(히 4:2).

 

기독교인들은 성경의 권위에 대해서 아주 강력한 입장을 취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경에 포함된 모든 문서들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 말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하기로 선택하신 방법을 통해 글로 쓰여진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에 걸쳐 이 신성한 기록이 가지는 권위와 영감에 대한 확실한 증언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 3:16).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 1:20-21). 예수님은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이 자기를 관한 것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눅 24:27).

 

우리가 비록 하나님을 궁극적인 저자라고 여길지라도, 우리는 성경은 완성된 모양으로 하늘에서 곧장 떨어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메시지를 전달할 저자로서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그 저자들은 그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시하신 것들을 베껴 쓴 복사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들만의 문화를 가지고 살았으며 그들의 지역 언어와 개념을 가졌던 실제 사람들이었습니다. 예수님(로고스, 혹은 하나님의 말씀)이 완전한 하나님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신 것처럼 성경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입니다.

 

위에 언급된 모든 것은 진화적 창조와 일치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이를 전적으로 지지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공동체 안에서는 성경의 권위와 진실성에 대한 입장이 (우리의 헌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용어와 개념에 대한)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무오성"이란 용어는 성경의 신빙성을 확언합니다.

 

성경적 권위에 대한 유력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입장 중 하나는 무오성이라고 부릅니다. 여러 시대에 걸쳐서, 기독교 전통의 많은 갈래들은 이 성경무오성이 성경의 본질에 대해 묘사한 중요한 것으로, 또한 성경의 궁극적인 신뢰성을 확증하는 것이라고 인식해왔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5세기에 이 개념을 사용했으며, 루터와 칼빈 모두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가톨릭 교리문답서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감을 받은 저자들이 확언한 모든 것을 성령께서 확언하신 것으로 간주해야 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이 확실하고 충실하며 오류가 없이 진리 (하나님이 거룩한 성경에 의지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를 가르친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1)

 

계몽주의 시대 동안 성경무오성에 대한 도전을 반박한 프린스턴 신학자 A. A. 핫지(A.A. Hodge)와 B. B. 워필드(B. B. Warfield)는 그들의 1881년 저서 '영감'에서 무오성을 정의하고 방어했습니다. 그들은 축자영감설을 거부하고 성경의 저자들이 인간이었다는 점의 한계를 인정했으며, 진실성과 정밀성을 구별했습니다.

 

기록의 정밀성 (세부 사항의 철저한 해석을 포함)과 절대적인 문자성(성경이 결코 공언하지 못하는), 그리고 한편으로는 정확성 (확인하고자 하는 사실이나 원리에 대한 정확한 기록을 보장하는) 사이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 교회의 교리가 예외 없이 성경 원문에 모든 확신을 유지하는 것이 바로 정밀성인데, 정확성은 정밀성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2)

 

 

일부 진화적 창조론자들은 성경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을 지지하는 반면, 또 다른 일부는 그렇지 않습니다.

 

"무오성"이란 용어가 의미하는 것과 그것이 수반하는 것은 다양한 그룹과 개인들에 의해서 계속해서 정제됩니다. 1978년, 200명이 넘는 복음주의권의 리더들이 3일에 걸쳐 시카고에 머물면서 성경무오성에 대한 시카고 선언을 작성했습니다. 그 선언에는 요약 진술서, 일련의 기사들 (몇몇 확인 및 거부 진술서들) 및 상세한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도움이 되는 많은 구절 중에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감이 성령으로 하나님이 인간 저자를 통해 그분의 말씀을 주셨던 일이라는 것을 확언합니다. 성경의 기원은 거룩합니다. 이 거룩한 영감의 방식은 우리에게는 대부분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영감이 인간의 통찰력 정도로 줄어들 수 있다거나, 어떤 종류의 의식 상태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부인합니다.3)

우리는 하나님께서, 영감으로 된 그의 역사 가운데, 그가 선택하시고 준비하신 저자들의 독특한 개성과 문학적 스타일을 사용하셨다고 확언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가 택하신 단어들을 저자들이 그대로 사용하도록 해서 저자들의 개성을 무시하셨다는 것을 부인합니다.4)

 ... 역사는 역사로, 시는 시로, 과장과 은유는 과장과 은유로, 일반화와 유추는 일반화와 유추로 반드시 취급되어야 합니다. 성경 시대의 문학 관습과 우리 시대의 문학 관습 사이의 차이점은 반드시 있기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비연대기적 내레이션과 부정확한 인용문은 전통적이었고 수용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 당시에는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의 저자들에게서 이런 것들을 발견할 때는 그들의 잘못으로 간주해서는 안됩니다. ... 성경은 무오합니다. 그러나 현대적 기준에 의해서 절대적으로 정확하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성경이 말해주는 것을 선하게 만들고 저자가 집중하기 원하는 진리의 기준을 달성한다는 의미에서 그렇습니다. 성경의 진실성은 문법이나 철자법의 불규칙성, 자연에 대한 경이로운 묘사, 거짓 진술에 대한 보고서(예: 사탄의 거짓), 혹은 어떤 구절과 다른 구절 사이에 존재하는 외견상의 모순으로 인해 부정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의 소위 "현상"을 그 현상 자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에 반하여 설정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5)

 

이러한 무오성에 대한 표현은 영감의 방식이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성경 저자들의 인간성을 인정한다는 것이며, 성경의 문학적 양식과 고대 문학 관습의 너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또한 성경 저자들이 자연 현상에 대해 과학 이전 단계의 이해를 하고 있었음을 가정하며, 텍스트의 명백한 어려움을 말끔히 설명하려 들지도 않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으로 성경의 진실성을 확인하려는 일부 기독교인들은 시카고 선언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한 번 보세요.

 

우리는 성경무오설과 성경무오성이 역사와 과학 영역에서의 주장은 배제하면서, 영적, 종교적 혹은 구속적 주제에만 국한된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또한 지구 역사에 관한 과학적 가설이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뒤집을 수 있도록 적절하게 사용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부인합니다. 6)

 

이러한 주장은 중요한 질문을 야기합니다. 창조와 홍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이며, 과학은 우리의 성경 이해를 돕기 위해 적절히 사용될 수 있을까요? 성경의 참 가르침은 성실하고 성경을 잘 아는 기독교인들에게서조차 논쟁의 문제로 남아 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 자체가 무오하다고 확증하도록 만듭니다. 비록 그들이 지구 나이, 진화 및 노아의 홍수와 관련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것에 대하여 아주 다른 결론에 이를지라도 말입니다. 시카고 선언은 "창조와 홍수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이라는 구절에 의해 젊은지구론의 입장과 같을까요? 일부 오랜지구론자들과 진화적 창조론자들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들은 이 선언을 긍정하지 않습니다.

 

 

무오성은 성경이 확언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위의 예는 우리가 성경의 진실성을 확증하는 것이 주어진 성경구절의 참된 가르침을 분명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과 다를 수 있음을 보도록 도와줍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무오성은 성경의 주어진 일부가 가르치는 것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해결하려고 의도되지도 않았습니다). 신학자 케빈 밴후저(Kevin Vanhoozer)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경이 무오하다고 말하는 것은 저자들이 (그들이 증언할 때) 확신하는 모든 것에서 진리를 말하고, (올바른 독자가 올바르게 읽을 때) 그들이 결국에는 진실되게 말한 것처럼 보일 거라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7)

 

밴후저의 정의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격려되도록 상기시켜줍니다. 무오성은 해석의 도전적인 과제로 나아갈 때 성경이 진실되다고 믿는 자세입니다(또는 자세여야만 합니다). 우리는 냉소적이지 않은 대신 궁극적인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발견되기를 소망하면서 명백한 모순이나 텍스트적인 어려움을 해결하는 힘든 일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역사적인 주장(예: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심)이지만 동시에 명백하게 비유적인 언어(예: 예수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포도나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의 빵이다")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 극단 사이에는 신중한 해석이라는 힘든 작업을 요구하는 매우 골치 아픈 (그리고 상당한) 회색 지대가 있습니다. 성경무오성을 단언하는 기독교인들은 유아들이 세례를 받아야만 하는지, 또는 여성들이 모든 목회 사역을 할 수 있는지, 또는 아담과 이브가 역사적 인물인지에 대해서 긍정적인 입장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무오성에 대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성경의 적절한 해석에 대한 의견의 불일치입니다.

 

진화적 창조론자들은 성경은 지구가 수 천년 밖에 되지 않았다거나, 인간은 나머지 생명체들과 생물학적으로 아무런 연관이 없다는 것을 확언하고 가르친다고 믿지 않습니다. 성경의 인간 저자들은 이런 것들을 믿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그들이 지구가 3층 구조의 우주에서 중심에 있으며 감정이 우리의 신장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말이지요. 그들의 시대와 장소를 감안할 때, 우리는 그들이 그런 것들에 대해 다르게 믿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영감으로 쓰여지게 하시면서, 하나님은 인간 저자들을 그들의 특정 문화로부터 어떤 보편적인 관점으로 끌어올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통해서 가르치셨습니다. 성경이 창조 기록에서 확언하는 바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방법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 창조를 좋게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오성의 교리는 진화를 포함한 현대과학을 받아들이는 것과 완전히 같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신학자 J. I. 패커(J. I. Packer)는 언젠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8)

 

나는 성경의 무오함을 믿으며 나는 성경을 인쇄본으로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해석상 창세기의 앞장들과 그 밖의 다른 부분에서 성경이 말하는 어떤 것도 진화의 생물학적인 이론과 어느 쪽으로도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의 진실성을 설명하는 다른 방법들

 

무오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용어인 반면, (성경의 권위와 영감에 똑같이 헌신한) 다른 부류의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무오성은 성경의 특정 해석과 연관되어 있으며 정통성을 테스트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로 사용됩니다. 불행하게도, 전선은 이미 그려져 있으며, "무오성"이라는 용어가 운반하는 수하물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경의 신빙성에 대한 그들의 헌신을 설명하는 다른 방법을 선호합니다.

 

시카고 선언을 4년 앞선 로잔 언약은 "오류 없이"라는 문구를 사용하지만, 과학에 대한 더 강력한 주장을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성경 전체의 거룩한 영감, 진실성과 권위를 오직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으로, 성경이 확언하는 모든 곳에서 오류가 없으며,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규칙으로 확언한다. 

 

풀러 신학교(Fuller Theological Seminary)는 1970년대 성경에 대한 선언에서 "무오성"을 제거했을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풀러 신앙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은 거룩한 자기 드러냄에 대한 필수적인 부분이자 신뢰할만한 기록입니다. 거룩한 감동으로 된 모든 구약과 신약성경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며 믿음과 실천의 유일하고 절대적으로 확실한 규칙입니다. 그것들은 상황과 목적에 따라, 또한 살아있는 힘으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에 대한 경건한 순종에 의거하여 해석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명칭은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기 때문에, 기독교인들은 가끔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는 사람들보다 성경적 권위에 대해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신학적으로 공통점이 더 많습니다.

 

이러한 성경 묘사에 헌신한 많은 사람들은 "무오성"을 사용하는 사람들과 똑같은 해석을 합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무오성을 지지하나요?

 

정통성의 범위 내에서, 가능한 한 포괄적으로 남으려는 바람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기독교인이 성경을 묘사하기 위해 "무오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여부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입장을 취하지는 않습니다.

 

이 주제는 종종 과하게 격양되곤 합니다. 우리는 양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반대편 사람들 안에서 선한 의지가 있을 것이라는 가정으로 시작하라고 촉구합니다. 누군가가 무오성을 믿는다는 것은 결코 그들이 경직되고 정교하지 않은 성경 해석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무오론자로서의 정체성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것은 결코 그들이 성경의 온전함과 신뢰성에 대해 타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중요한 주제를 더 깊이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자료 제공과 직접 대화 기회 제공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의심 없이 믿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명령하고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되도록 노력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묵상할 때만이 가능합니다.

 

 

<미주> 

  1. The Catechism of the Catholic Church, II.107.
  2. A. A. Hodge and B. B. Warfield, Inspiration (Grand Rapids: Baker, 1979), 28-29.
  3. The Chicago Statement on Biblical Inerrancy, 1978, Article VII, 3.
  4. Chicago Statement, Article VIII, 3.
  5. Chicago Statement, Exposition, 6-7.
  6. Chicago Statement, Article XII, 4.
  7. Kevin Vanhoozer, “Augustinian Inerrancy: Literary Meaning, Literal Truth, and Literate Interpretation in the Economy of Biblical Discourse,” Five Views on Biblical Inerrancy (Zondervan, 2013), 207.
  8. Packer, J.I., The Evangelical Anglican Identity Problem (Oxford: Oxford-Latimer House, 1978), 5.

 

 

  • 번역: 김영웅 박사(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 감수: 김기현 목사(로고스서원 대표, 과신대 자문위원)
  • 원문: https://bit.ly/3jmgNMt

댓글1

  • 무슬림도 코란의 무오성을 주장합니다. 심지어 그 언어조차 무오성의 구성인지라 번역도 불가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에 순종해야하는 이유를 무오성에서 찾는것은 아니겠지요
    글 잘 읽었습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