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연구모임 후기 (2019년 7월)

 

정대경 팀장 (명지대, GTU, Ph.D.)

 

 

7월 과신대 연구모임은 피터 해리슨 책 “The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의 챕터 6과 판넨베르크의 “The Historicity of Nature”의 편집자 서문, 챕터 1과 2를 읽고 모였습니다. 해리슨은 자신의 챕터 6에서 고대, 중세까지 "인간의 내적인 덕목"으로 여겨지던 scientia 라는 개념이 18-9세기를 거치면서 "자연에 대한 지식 혹은 지식체계” 등으로 점차 자리매김하고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더불어 19세기 중반까지도 여전히 자연철학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자연과학”이라는 용어가 자연을 연구하는 학문적 태도 혹은 학제에 서서히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것도 지적합니다.

 

모든 단어나 개념들의 정립이 초기에 그러하듯, 과학(science)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전반에 걸쳐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활동을 일컫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생리학도 과학이고, 낚시법도 과학으로 불렸다지요.

 

17세기 뉴턴으로부터 다윈의 스승이었던 19세기 존 헨슬로우에 이르기까지 자연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지배적인 정서는 자연에 대한 연구와 인간에 대한 연구 모두 신적인 질서, 아름다움을 드러낸다고 보는 관점이었습니다. 일례로 헨슬로우는 자신이 출제한 식물학 시험에서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들이 받아왔던 건강한 학문과 종교교육에 자연과학이 굳건히 자리 잡은 것을 보니 참으로 기쁘다.” (151쪽, 박희주 역)

 

 

19세기에 들어오면서 여전히 종교적인 동기가 자연을 연구하는 지배적인 요인이었지만 점차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해리슨은 17세기에는 자연철학, 곧 현대적 의미의 자연과학이 종교적인 활동임을 강조했었다면, 19세기에는 자연신학이 귀납적 과학연구라는 점을 강조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합니다. 이러한 변화에는 권위있는 학문적 태도가 더 이상 종교적-신학적 태도가 아니라 귀납적-경험적 태도라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이지요.

 

19세기 후반부터 윌리엄 제임스, 막스 베버 등이 과학적 연구로부터 개인의 도덕성 훈련 등의 덕목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다시 말해, 과학연구는 인간 혹은 개인의 도덕적 본성을 훈련하는 학문과 태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막스 베버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 “오늘날 과학(Wissenschaft)은 비종교적이며 그 누구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159쪽, 박희주 역)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나아가 자연과학은 기존의 자연철학으로부터도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종교와 과학이 분리되기 시작한 원인에 대해 해리슨은 3가지를 강조하는데,

 

“과학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집단이 등장했다는 것,
종교적-도덕적 요소가 배제된 "과학적 방법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는 것,

"과학-과학자”를 여타 다른 학문적 태도-학자들과 날카롭게 구분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이 가운데 흥미로운 점은 1864년 발족한 “X-club” 같은 일군의 학자들이 정치적인-사회적인 이유로, 전문성의 이유로 이중직을 유지하고 있었던 과학자-성직자를 배제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연구의 엄밀성과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두 가지 일을 전문적으로 하기 어려워진 환경도 있겠지만 정치적인, 사회적인 이유도 있었다는 것이지요. 또 다른 분리의 배경에는 기존 지배적이었던 학문적 태도, 하나의 거대한 이론적 체계를 만들고, 그 안에 각 학문을 통해 얻어지는 데이터들을 해석해내는 학문적 태도가 점차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한 것에 그 원인이 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러한 붕괴를 형이상학의 종말이라고 부릅니다. 판넨베르크에 따르면, 하이데거는 니체로부터, 어거스트 콩트는 실증 학문의 출현들로부터, 빌헬름 딜타이에 따르면, 역사적 사유 방식의 출현 때부터 형이상학은 종말을 맞이하였다고 봅니다.

 

흥미롭게도 판넨베르크는 이러한 형이상학의 붕괴는 곧 신학과 철학이 분리되었기 때문에, 혹은 철학 안에서 현실의 총체로서의 세계 개념, 곧 철학적 신론이 배제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지적합니다. (판넨베르크, 신학과 철학, 1권, 20쪽.) 단순히 개별 학문들의 전문화, 세분화, 자립화의 결과가 아니라 말입니다. 일리 있습니다. 각 학문들이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면서 각 학문들을 통합할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틀이라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직관적 인식, 그것과 더불어 사회적-정치적 동기로 인해서 종교와 과학은 더 이상 인간의 내적인 덕목을 함양하는 차원이 아니라, 각각 세계를 다른 방법으로 연구하고 창출해내는 연구방법과 지식체계로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세기 초 앤드류 화이트 같은 학자들을 통해 종교와 과학 사이의 전쟁 혹은 갈등 모티프가 강조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해리슨은 종교와 과학, 두 단어의 개념사적인 접근을 통해 현대 종교와 과학이 이해되고 있는 방식은 역사 안에서 고정적이지 않았다는 것, 두 학제 간 관계가 필연적으로 갈등에 놓여있다고 볼 근거는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듯합니다.

 

 

이후 토론을 통해 함께 모인 과신대 연구모임 연구자들은 자연주의의 한계, 자연과학의 권위와 유용성, 자연과학자들의 전문 연구 그룹 내 학문적 태도와 일반 대중들 앞에서 대중강연을 할 때의 태도 사이의 간극 등의 논의들을 다루었습니다. 해리슨 책을 통하여 종교와 과학 사이 관계를 정립하기 위해 과학과 종교가 각각 무엇인지를 정리했다면 다음 모임부터는 신학과 과학이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실재, 세계를 이해하는데 상호작용이나 협력, 대화가 가능할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자연과학 이론은 실재하는 세계를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표현하는지 등에 관한 과학적 실재론 논쟁, 신학 이론 또한 실재를 표현하는 진술일 수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 신학적 실재론 논쟁, 나아가 신학과 과학이라는 구분된 학제가 주어진 실재를 이해하는데 상호협력이 가능하다고 피력해온 과학신학 내 비판적 실재론 등의 개념들을 가지고 연구하고 토론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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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7호

과신대 칼럼

  기술이 발전할 수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구체화된다  



강응섭 교수

예명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정신분석학, 리더십학 교수


철기시대의 산물인 ‘쟁기’로부터 ‘정보화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대두되기까지 우리는 지금, 네 번에 걸친 산업혁명의 산물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져 있다. 창세기 2장은 그 질문에 근거하여 서술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다”(5절)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6절)와 대조를 이룬다. 6절은 1장 2절의 ‘깊음(테홈)’에서 시작되는 물의 오름과 연관된다. 즉, 5절과 6절의 대비는 물의 내림과 물의 오름의 대비, 물의 없음과 물의 있음의 대비를 보여 준다.  (더보기)

소소한 사무국 소식을
정회원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립니다.


 과신대 사무국 이야기 
 

과신대 사무국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지난 달 과신대 사무국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페이스북이나 YouTube에 뭔가 올라오긴 하던데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사무국 직원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사무국의 소소한 소식들을 모아 정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 사무국 소식 보러가기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5)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은 뭘 하셨나요?


(글보기)

[Coming Soon]

Coming Soon!
과신대 <기초과정 I> 온라인 (8월) 상시모집!

날짜: 2019.8.1 - 15 (2주)
등록비: 3만원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초과정 I>이 글로벌 마이크로러닝 플랫폼 "그노비Gnowbe"를 만나 더 쉽고 재미있게 학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신대 기초과정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위한 입문과정으로 과신대 정회원이라면 누구나 반드시 들어야 할 필수 코스입니다! 

자세한 등록 안내는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 늦게라도 기한 내 추가등록이 가능합니다.

(더보기)

Coming Soon!
[과신대 x 청어람 북토크] 우주의 신비, 블랙홀을 찾아서


날짜: 8/22 (목) 저녁 7:30
장소: 서울시 종로구 낙원상가 청어람홀

거대 블랙홀과 우주 진화를 연구해온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특강!
블랙홀의 탄생에서부터 최근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블랙홀을 통해 우주의 신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청어람 ARMC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공지사항을 기대해주세요!

주최: 과학과 신학의 대화, 청어람 ARMC
후원: 김영사

Coming Soon!
<기초과정 II> 5기 모집!


날짜: 8/26 - 10/14 (월요일, 6회)

과학과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과정 II> 5기를 모집합니다. <기초과정 II>는 <기초과정 I> 수료자만 신청 가능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대한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주간 과신대 자문위원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집중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6주 과정을 수강하고 과제를 성실히 제출한 분들에게는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더보기)


[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하나님께 소리치고 싶을 때: 욥기 |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 2017

(글보기)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로서,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

번역: 김영웅 / 감수: 박희주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청소년 캠프 후기] 2회 청소년 캠프를 마치며

7월의 어느 토요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에 어린 청소년들이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궃은 날씨에도 이들이 먼 길을 찾아온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요??

과신대 청소년 캠프가 열렸던 그 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러분께만 특별히 공개합니다!

(더보기)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신간 소개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우종학 지음 | 김영사 | 2019

오랜만에 우종학 교수님의 신간이 나왔습니다!
대중을 위한 쉽고 재밌는 블랙홀 입문서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술술 읽히는 책이랍니다! :-)

-

블랙홀의 정체, 기원, 특성에서 블랙홀 연구의 최전선까지 빠져드는 블랙홀 이야기!

은하와 중심 블랙홀의 연결고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서울대 우종학 교수가 들려주는 경이롭고 매혹적인 블랙홀의 세계

(책 정보 더보기 - 김영사)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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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6호

과신대 칼럼

  다중우주론이 지닌  
  신학적 함의  



박혁순 교수
조직신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다른 우주들과 무한히 겹친 상태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에 그 물질적 실제를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거나 실험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간주해온 그 물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흙, 공기, 물, 불, 쇠, 나무 등과 같은 것들이 저편의 우주에서는 도무지 현상되지도 인식되지도 못한다면 물질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임의적일까? 이렇듯 우리가 물질이라고 확정한 것, 물질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기준이라고 단정한 것이 여타의 우주에서는 비물질 또는 일종의 ‘관념’일 수 있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이 모든 우주들은 ‘무’(無) 또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이다.  (더보기)

하지만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제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는 것은 제가 그만두어야 다른 사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거지요. 물론 마침 서울시립관장 자리가 나서 저는 이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곳에서 서로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 과신대 사람들 " 

(20)
이정모 관장

서울시립과학관
소소한 사무국 소식을
정회원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립니다.


 과신대 사무국 이야기 
 

과신대 사무국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지난 달 과신대 사무국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페이스북이나 YouTube에 뭔가 올라오긴 하던데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사무국 직원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사무국의 소소한 소식들을 모아 정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 사무국 소식 보러가기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5)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은 뭘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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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ing Soon]

Coming Soon!
[청소년 캠프] 신과 함께 season 2 

날짜: 2019.7.20 (토) 오전 9:30
장소: NPOpia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5층 500호)

감동과 재미와 배움이 있는 과신대 청소년 캠프가 7월 20일에 시작됩니다. 교회학교 중고등부 교역자, 교사, 학생들을 "신과함께"(신앙과 과학이 함께) season 2에 초대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이해하고 공부하는 과신대 청소년 캠프는 중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현직 선생님들이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더보기)

Coming Soon!
과신대 x 그노비(Gnowbe) - 기초과정 온라인 상시 개설!


과신대의 교육과정이 Gnowbe 글로벌 마이크로러닝 플랫폼을 통해 어디에서든 더 쉽게 만나고 더 재미있게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온라인 기초과정은 Gnowbe(그노비)를 통해 언제든 과신대 홈페이지를 통해 수강 신청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논리를 넘어서는 은혜

예기치 못한 기쁨 | C. S. 루이스 | 홍성사 | 2018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과신톡 후기] 천동성과 지동설의 대화
(강사은, 과신대 북클럽팀장)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과학자에 가까운 사람을 꼽으라면 누구를 말할 수 있을까요? 저는 도마가 생각납니다. 그의 '회의'와 '질문'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오랜 전통 중에 하나입니다. 과학은 지식이 아니라 태도이고 생각하는 방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그대로, 측정 데이터가 말하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 신 앞에 정직한 태도이고 과학 하는 자세이자 신앙하는 자세이기도 합니다.  (더보기)

 

[콜로퀴움 후기]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강의 요약
(송윤강, 과신대 정회원)

구약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이 고통 받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실패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방신을 섬기는 바벨론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이방신이 하나님께 대적하여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고, 그의 선하심은 변함이 없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조상 대대로 쌓인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고 조상 탓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신앙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더보기)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과학과 종교>
토머스 딕슨 지음
고유서가 | 2017


서평 | 최경환 (과신대 기획실장)

“과학은 우리의 감각이 우리를 속이며 기본적인 직관이 우리를 잘못된 방향으로 인도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이기도 한다. 반대로 우리가 밤하늘을 별을 보면서 거창한 과학 이론을 떠올리거나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감탄과 경이의 언어는 어느 정도 종교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22-23쪽). 과연 어떤 것이 상식적이고 직관적인지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더보기)

<인간의 타락과 진화>
윌리엄 T. 카바노프, 제임스 K. A. 스미스 편집
새물결플러스 | 2019


서평 | 심기주 (과신대 기자단)

아담은 단지 모든 인류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용도가 아니다. 놀랍게도 우리는 아담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우리에게는 죄를 지을 수도 있고 짓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다.   (더보기)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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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5호

과신대 칼럼

  다중우주론이 지닌  
  신학적 함의  



박혁순 교수
조직신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다른 우주들과 무한히 겹친 상태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에 그 물질적 실제를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거나 실험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간주해온 그 물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흙, 공기, 물, 불, 쇠, 나무 등과 같은 것들이 저편의 우주에서는 도무지 현상되지도 인식되지도 못한다면 물질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임의적일까? 이렇듯 우리가 물질이라고 확정한 것, 물질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기준이라고 단정한 것이 여타의 우주에서는 비물질 또는 일종의 ‘관념’일 수 있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이 모든 우주들은 ‘무’(無) 또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이다.  (더보기)

하지만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혼자 할 수 없습니다. 서로의 공간이 꼭 필요합니다. 네트워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도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지요. 제가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을 더 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는 것은 제가 그만두어야 다른 사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도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을 한 거지요. 물론 마침 서울시립관장 자리가 나서 저는 이곳에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여러 곳에서 서로의 역할을 하면서, 서로 공유할 수 있는 연대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 과신대 사람들 " 

(20)
이정모 관장

서울시립과학관
소소한 사무국 소식을
정회원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립니다.


 과신대 사무국 이야기 
 

과신대 사무국에선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지난 달 과신대 사무국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페이스북이나 YouTube에 뭔가 올라오긴 하던데 그게 뭔지 궁금하다면?
사무국 직원들이랑 친해지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모르겠다면?
사무국의 소소한 소식들을 모아 정회원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 사무국 소식 보러가기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5)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하나님은 뭘 하셨나요?


(글보기)

[Coming Soon]

Coming Soon!
[과신톡]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결


날짜: 2019.6.8 (토) 오후 2:00
장소: 성공회 제자교회 (경기도 오산시 세남로14번길 25, 1호선 세마역 도보 5분 거리)

과신대의 수원남부 북클럽에서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님을 모시고 <과신톡>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이정모 관장님께서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 기고하신 에세이를 엮어서 출판한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만 1, 2>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주십니다.

특별히 "천동설과 지동설의 대결"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과학과 종교의 갈등으로도 널리 알려진 이 사건을 통해 또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주실지 벌써 기대가 됩니다. 누구든지 참여하실 수 있으니 주위에 계신 분들은 꼭 참석해 주세요.

(더보기)

Coming Soon!
과신대 <기초과정 I (온라인 3기)>가 돌아옵니다!


이번 <기초과정 I (온라인)>은 특별히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위한 이벤트로 진행됩니다! (물론 일반도 등록 가능합니다^^) 특별한 기회 놓치지 말고 이번 여름 방학을 알차게 보내보시죠!

(더보기)

Coming Soon!
[제 15회 콜로퀴움]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날짜: 2019.7.1 (월) 저녁 7: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고인류학, 진화생물학, 유전학 등의 발전은 성서해석과 전통적인 교리에 큰 도전을 주었다. 만약 인간이 진화했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의 죄와 타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대근동학과 구약학을 전공한 김구원 교수에게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에서부터 타락의 의미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 들어본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의 기원은 무엇이며, 타락에 숨겨진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더보기)


[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바울을 이해하기 좋은 길잡이

단숨에 읽는 바울 | 존 M. G. 바클레이 | 새물결플러스 | 2018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5월 과신대 연구모임
(정대경, 과신대 연구팀장)

해리슨도 마찬가지로 근세 이후 르네상스, 종교개혁, 새로운 자연철학의 출현 등에 의해 자연과 인간을 바라보는 기존 시각이 바뀌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정신적-도덕적 층위가 물리적 층위로 환원 축소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내적인 덕목을 지식을 통해 실현하는 종교적-자기성찰적 개념들이었던 scientia와 religio 같은 개념들이 외재적 개념들, 곧 기독 종교의 핵심 교리와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적 체계들로 개념적 전환이 일어났다 주장합니다.  (더보기)
[제 1회 목회자 살롱] "난처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 부탁합니다!"

질문 중에는 교회에서 과신대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으로 성도들을 가르치고 교육하면 기성 성도들이 시험에 빠지고 혼란스러울 것이라는 염려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우종학 교수님은 한 번 반대로 생각해 보자고 하셨습니다. 기성 성도들이 기존에 알고 있던 창조과학이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신앙을 버리거나 교회를 떠나지는 않습니다. 심각한 고민에 빠지거나 신학적으로 혼란스러울 수는 있겠죠. 하지만 청년들이나 청소년들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젊은지구 창조론 때문에 신앙을 버리거나 교회를 떠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교회는 99마리 양보다 우리를 떠난 1마리 양에 신경을 더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 (더보기)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김응빈, 김종우, 방연상, 송기원, 이삼열 지음
동아시아 | 2017


서평 | 윤세진 (구일고등학교 생명과학 교사)

최근에 합성 생물학이나 유전자 가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여 관련된 기사들이 국내외에서 많이 쏟아지고 있으며 책도 출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라는 책은 이 문제를 과학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지 않고 철학적, 윤리적, 제도적 관점의 논의도 함께 다루고 있다. 과학적 기법만을 다루면 자칫 건조해질 수도 있고, 윤리적, 철학적 측면만 다루면 실제적인 부분에 속하는 과학 영역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편집을 한 느낌이다.  (더보기)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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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정회원이자 실행위원으로 함께 하셨던 故 심왕찬 선생님을 기억하며 장학금을 모금하고자 합니다.

 

이미 부조하신 분들도 있고 개인적으로 성의를 표하신 분들도 있겠지만 장학금을 모금해서 故 심선생님의 뜻이 4명의 자녀들의 삶을 통해서 이어질 수 있도록 정성을 모아보고자 합니다.

 

함께 마음을 모아주실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기간: 8/14 (수) ~ 8/23 (금) 자정까지


* 모금 방법: 계좌이체 (신한은행 100-032-022282 과학과신학의대화)
- '보내는 이' 이름에 장학금 표기 (예. 김성명장학금) 또는 입금 후 사무국으로 연락(scitheo.office@gmail.com 혹은 facebook 메세지)


* 장학금 모금액은 기부자의 이름을 별도로 표기하지 않고 과신대 이름으로 전달할 예정입니다.


* 원활한 모금액 전달을 위해 기간 내에 참여해주시기 바랍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청어람X과신대]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 북토크

 

거대 블랙홀과 우주 진화를 연구해 온
우종학 교수님의 블랙홀 특강!

 

블랙홀의 탄생에서부터 최근 연구 성과에 이르기까지
블랙홀을 통해 우주의 신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강의_ 우종학 교수(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사회_ 박현철 연구원(청어람ARMC)

 

일시_ 2019.8.22(목) 7:30 pm.

장소_ 낙원상가 5층 청어람홀
(오시는 길: https://www.scitheo.org/257)

 

 등록신청_ https://bit.ly/2ZyM0AV

 

※ 본 행사는 무료 행사입니다. 현장에서 우종학 교수님의 책을 판매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해석해야 할까요?
How should we interpret the Bible?



서론

 

바이오로고스에서는 성경이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인 권위 있는 말씀이라고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의 중요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시고 그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는지, 어떻게 사람들이 하나님을 거부했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는지, 어떻게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지파와 언어와 백성과 나라로부터 부서지고 죄 많은 백성을 은혜로 구속하시고 양자 삼아주셨는지, 어떻게 하나님 나라가 세상에 침입하여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는지를 말이죠.

 

성령께서는 기독교 신자들의 마음과 가슴 속에 있는 성경의 "큰 이야기" 속 진리를 증거합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을 사용해 죄의 확신과 회개 및 믿음을 주신다고 믿습니다. 성경을 손에 든 모든 사람은 누구나 문화와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성경을 유익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성령께서는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명백한 해석을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우리가 읽은 것을 해석해야만 합니다. 해석은 단지 텍스트에 대한 이해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려운 구절을 위한 어떤 특별한 기술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성경을 이해하는 방법은 우리의 기준과 문화적 기대에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가끔 이것들은 성경의 저자가 의도한 바를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의 기원과 말씀의 전반적인 목적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를 조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특정한 텍스트를 읽을 때, 우리는 저자의 의도, 문학적 양식과 관습, 언어 및 원청중의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야만 합니다.

 

 

성경의 기원

 

개신교 성경의 66권은 다양한 종류의 문헌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수 세기 동안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온 수십 명의 저자에 의해서 세 가지의 다른 언어(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로 쓰였습니다. 구약성경은 약 1000년이라는 기간 동안 쓰였고 통합되었습니다. 신약성경은 약 100년에 걸쳐 쓰였습니다. 구약의 마지막 책과 신약의 첫 번째 책 사이에는 수백 년의 기간이 존재합니다.

 

많은 글이 1세기경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권위를 가진다고 이해되었지만, 초대교회가 그리스도교 운동과 관련된 다양한 문서들을 분류하고 오늘날의 성경을 구성하는 권위 있는 저서들을 완성하기까지는 수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사이에는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오늘날 사용 가능한 성경의 여러 버전과 번역본은 수 세기 동안 다양한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의 연구와 공동작업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목적

 

성경은 도덕 지침서나 믿어야 할 명제들의 모음집으로 쓰이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목적은 인간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계시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 따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합니다(딤후 3:16-17). (바울은 여기서 구약성경을 말하고 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절을 신약성경에도 적용된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목적 가운데 무엇보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합니다(15절).

 

 

성경의 저자는 무엇을 하려고 하는 걸까요? 그들은 무슨 문학 양식과 관습을 사용했나요?

 

성경 구절을 해석할 때, 맨 먼저 우리는 저자가 무엇을 의도했는지 파악해야 합니다. 가끔 저자들은 무슨 일이 생겼다거나 앞으로 생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어하고, 가끔은 어떤 것을 설명하거나 묘사하고 싶어하기도 하며, 가끔은 또 어떤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지침을 주고 싶어합니다. 그리고 가끔 그들은 훈계하거나 명령을 하고 싶어합니다.

 

모든 언어와 문화에는 이러한 종류의 의도를 소통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는 이러한 의도를 각기 다른 문학적 양식으로 표현합니다. 이런 문학적 양식들은 특정한 관습이나 규칙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것들은 그 문화와 시대에 해당하는 사람들만이 특정하게 깨닫고 쉽게 해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또는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이동하면서 문학적 양식과 그 양식에 내재된 관습 모두 우리가 기대하거나 쉽게 깨닫는 것들과는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도 있습니다.

 

고대 히브리 시편, 15세기 일본의 하이쿠, 18세기 영국의 소네트 및 21세기 미국의 랩과 연관된 문학적 양식과 관습은 비록 모두 시로 분류될 수 있지만, 매우 다릅니다.

 

묵시문학처럼 성경에서 우리가 발견한 일부 문학적 양식은 다른 어떠한 문화권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삼행시의 구조 같이 성경에 나오는 일부 언어 관습이나 언어유희와 말장난은 번역 과정에서 모호해지거나 손실될지도 모릅니다. 성경의 일부 문학적인 관습은 숫자를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서사시(작은 단위)로 내러티브를 구성하거나, 강조를 위해 이중 따옴표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성경을 손에 들고 익숙하지 않은 문학적 양식을 완벽하게 해석하거나 전체의 의미에 기여하는, 익숙하지 않거나 모호한 관습의 중요성을 즉시 깨달을 거라고 기대하진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의 문화와 언어를 광범위하게 연구한 학자와 번역자의 전문성을 따지게 됩니다. 그들은 문학적 양식과 관습에 대한 우리만의 문화적인 기대가 성경 해석을 방해할지도 모르는 부분을 확인하도록 우리를 도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성경은 역사를 분명히 기록하지만, 성경이 사용하는 문학적 양식과 관습은 우리 자신이 언어, 문화 및 시대로부터 역사를 읽어오면서 기대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어떤 종류의 언어가 사용됩니까?

 

저자의 목적을 파악하고, 그들이 사용하는 문학 양식과 관습을 아는 것 이외에도, 해석 일부는 저자가 사용하는 언어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의사소통 중 일부는 매우 단순합니다. 그러나 상당수의 의사소통은 그저 단어를 정의하는 것만으로는 명시되지 않는 추론을 이끌어내는 청중에게 달려 있습니다.

 

또한, 우리의 언어 사용의 많은 부분은 어떤 면에서 비유적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으로 돌아가서 직설법, 은유법, 과장법, 완곡어법, 제유법, 완서법 및 관용적 표현 등을 배워야 했던 모든 어휘를 생각해 보십시오. 성경은 이러한 모든 종류의 비유법의 많은 예를 가지고 있습니다.

 

더 복잡하게 만들어 볼까요? 단어 자체는 비유적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에서 poimen의 주된 의미는 목자, "양을 돌보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비유적 의미는 "교회 지도자"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다"라고 요한복음 10:14에서 말씀하실 때, 예수님은 백성을 위한 그의 사랑에 대해 비유적으로 말씀하는 은유로써 목자의 첫 번째 의미("문자적" 의미)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11에서 바울은 목자(두 번째 비유적 의미, "목사")를 포함하는 교회 안에서의 역할들을 열거하지만, 그 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그 구절을 비유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그건 그저 매우 단순한 열거일 뿐입니다).

 

비유적 언어는 어디에서나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문학적 형식에 국한되지도 않습니다. 시도 매우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고, 역사도 다양한 이미지와 비유법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는지, 아니면 단순히 어떤 텍스트의 문학 양식에 기초하지 않고 사용되는지에 대해 딱 잘라서 말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해석 과정은 복잡하고 다층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청중의 문화적 배경은 어떠했나요?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저자가 누구를 대상으로 썼는지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위해서(for us) 쓰였지, 우리에게(to us) 쓰인 것이 아닙니다. 문화적 규범, 상징 및 성경에 대한 청중의 친숙함은 모두 성경이 쓰이고 이해되는 방식에 기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족장들의 긴 수명은 우리가 현재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더 큰 상징적 의미를 부여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나이는 모두 5의 배수이며, 가끔 7이나 14가 추가되어 수사학적인 의미를 나타냅니다.

 

신약성경에 나오는 문화적 중요성은 그 예로 누가복음 15장에 기록된 탕자의 이야기를 들 수 있습니다. 문맥을 무시하고 그 우화를 직설적으로 그대로 읽으면, 우리는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과 용서,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을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문화적 틀 안에서 고려될 때, 훨씬 더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학자 케네스 베일리에 따르면, 그 유대인의 아들은 유업을 요구하며 수치스럽게 행동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탕진하면서 더욱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아들의 행동은 'kezazah'라고 하는, 단절의 의식을 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습니다. 이 의식은 마을의 거절과 아버지의 분노 섞인 반대를 동반했을 것입니다. 또한, 탕자는 다음 마을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구걸해야만 하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가혹한 냉대 대신, 사랑과 자비의 환영이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를 만나기 위해 뛰어나갔습니다. 그 아버지 나이의 남자들, 그리고 중동 문화 속에서 구별된 남자들은 언제나 천천히 위엄 있게 걸었기 때문에, 이 표현은 의미심장한 세부묘사인 셈입니다. 뛰어감으로써 아버지는 탕자 덕분에 수치와 굴욕을 선택했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입 맞추고, 최고의 옷을 입히고, 잔치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원래 이 이야기를 중동 청중에게 들려주셨을 때, 그들은 아마도 현대 독자들보다 더 깊은 방식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이해했을 것입니다. 이런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원청중과 그 문화에 대한 인식을 통해 성경을 읽으면 그 부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훨씬 더 증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창세기를 어떻게 해석할까요?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창세기의 앞 장들을 읽는 방법에서 강경하게 분열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우리는 우리가 21세기의 아이디어와 질문을 염두에 두면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이오로고스 커뮤니티의 학자들은 창세기의 앞 장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하며, 이러한 다양한 생각을 드러내는 많은 글을 웹사이트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는 창세기의 권위와 영감에 대한 헌신과 더불어 원청중이 이해했을 것들을 회복하려고 시도하는 창세기의 해석 방법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바이오로고스는 창세기 앞 장들을 비유적인 언어를 통해 실제 사건을 묘사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는 다른 고대 근동의 문헌들이 사건을 묘사했던 방식과 일치합니다.) 신앙적으로 우리는 창세기가 진실이라고 믿습니다. 비록 그 목적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과학이나 역사에 관한 지식을 전달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인류에 대한 계획을 계시하는 것이란 사실을 알지만 말이지요.

 

 

결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권위 있게 쓰였음을 믿습니다. 성경이 단순한 문학 작품은 아니지만, 믿음의 독자들에게는 살아 역사하는 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가장 중요한 방법입니다.

 

성경 읽기를 통해 유익을 얻기 위한 고급 훈련은 없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에는 우리가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양한 성경 구절을 가장 잘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크지만, 우리의 구원이 완전한 지식을 얻는 것에 달리지 않다는 사실에서 우린 안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에 근거하는 것이지, 성경의 완벽한 해석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성경을 깊게 탐구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 안에 거하며 창조를 회복하는 하나님의 더 큰 계획과 목적을 보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감수: 김근주 연구위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과신대 자문위원)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

 

 

그리스도인은 왜 진화적 창조를 고려해야 할까요?

Why should Christians consider evolutionary creation?

 

번역: 김영웅 / 감수: 박희주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 눅 10:27


진화는 성경적 믿음에 비추어 고려해야 할 도전적인 주제입니다. 그래서 종종 그 주제에 대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기보다는 그것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는 편이 더 쉽습니다. 그러나 진화적 창조가 창조주와 우리의 관계 그리고 신자와 비신자 모두를 포함한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유익을 준다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인은 모든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진화를 공부해야 합니다. 진화는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공부입니다. 창조 그 자체는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 전달하신 것에 대한 보완적인 계시이며, 하나님은 창조된 질서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생명체가 언제,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그의 영광과 존귀로 보여주십니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자연에서의 규칙적인 패턴은 하나님의 규칙적이고 신실하신 통치하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종을 창조하셨고, 우리가 과학적으로 창조과정을 묘사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중력법칙이 행성의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것처럼, 진화의 과학적 모델은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둘째, 진화적 창조를 고려하는 것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을 믿음 안에서 제자화하는 것을 포함해 교회와 복음 전도에 도움이 됩니다. 반진화적 태도는 과학을 추구하거나 믿음을 고수하는 것 사이에서 잘못된 선택을 함으로써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최근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복음주의 교회가 젊은이들 사이에서 신뢰를 잃어버리는 주요 원인은 사실상 우리가 자연에서 발견한 모든 증거와 모순되는 반진화적 창조 모델의 주장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진화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는 복음전도를 방해할 수도 있습니다. 만약 피전도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기 전에 진화 과학을 거절해야만 한다고 듣게 된다면 말이지요. 반면 진화를 하나님이 허락하신 과정으로 여기고 공부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은 과학이 무신론적 세계관을 낳는다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화 과학이 하나님이 일하신 과정을 묘사한 것이고 (무신론을 증명하는) 어떤 하나의 세계관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적 진화 과학)을 과학의 일부가 아닌 세속적인 철학으로 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문화는 최신 의사소통 수단을 밝혀낸 새로운 생물의학적인 진보에서부터 기본입자에 대한 발견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기술로 가득 차 있기에,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곧 과학을 이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진화 과학은 현대 생물학에 필수적이기에 교회가 공적 영역에서 효과적인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진화의 증거와 그것이 지닌 함축적 의미를 가지고 씨름해야만 합니다. 기독교가 이런 논의를 잘 알고 있다면, 줄기세포에 대한 논의라든가 태아, 노인, 장애인을 돌볼 때 DNA 정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슈와 같은 생명윤리적 토론을 이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은 최첨단 연구에 전폭적으로 참여하고, 무력한 사람들을 괴롭히기보다는 보호하기 위한 도구로서의 과학을 지지함으로서, 우리가 창조 질서 속 하나님의 역사를 사랑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과학은 우리의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리가 과학을 통해 창조 질서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우리의 일을 통해 창조주를 증거하고 창조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