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식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지난 월요일 서울대 입구역 근처에 있는 더처치 교회에서 과신대 <기초과정 II> 네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함께 모인 분들과 ‘새로운 무신론’의 입장들을 살펴보면서 기독교 신앙은 이에 대해 어떻게 답변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지요. 연령층과 사회적 배경이 서로 다른 분들이 함께 모여 생각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제겐 그 모임 자체가 주는 도전이 매우 크게 다가왔습니다. 배고픈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야 할까요? 기존 교회 안에서 채워지지 않는 부분을 이런 모임을 통해 충족해 나가는 이 분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열정적인 그리스도인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주로 우리는 리처드 도킨스의 새로운 무신론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최종적으로 우리가 신앙과 신학에 대해 ‘비판적이고 까칠한’ 친구로 그를 환대할 수 있어야만 참된 그리스도교인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실 성서적 신앙은 종교비판적이고 무신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형상금지 명령이야말로 고대 종교 사회에 가장 강력한 종교 비판일 수 있으며, 실제로 초기 기독교는 무신론으로 낙인찍히기도 했으니깐요.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유한한 인간 실존을 우상화하려는 종교적 광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교가 폭력적이고 반이성적이며 반과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만, 도킨스의 눈에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비춰졌고, 그의 주장이 또한 많은 이에게 환영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신학)을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거창한 웅변과 변증이 겉으로는 진리 자체를 변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진리 주장을 변호하는 것에 급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임에서 저는 그리스도인의 진리관에 대해 몇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첫째,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과 우리의 진리주장 사이의 거리두기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 둘째 우리의 진리 주장은 임시적이며 가변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셋째 그리스도교의 관점에서 진리는 종말론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시기 전까지 우리의 진리 주장은 유예 기간에 놓여 있다는 점을 말했습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 보니, 이러한 제 생각은 판넨베르크의 진리 이해에서 많은 것을 빚지고 있었더군요.


아무튼 우리의 진리주장은 독단과 방임, 절대주의와 상대주의, 우상화와 세속화의 양극단에서 균형을 잡으면서 사랑 안에 놓여 있는 자유와 인내로 결실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그 분과 그분의 진리는 독점될 수도, 독단적으로 주장되어서도 안 된다고 보았습니다. 진리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이야말로 참으로 우리를 모든 독단과 독선에서 자유케 하여 사랑으로 이끕니다. 


새로운 무신론에 대해 논의하면서 정작 우리는 밖이 아니라 안으로, 점점 더 우리 자신의 신앙의 깊이로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죠. 무신론의 도전에 대한 신앙의 변증이 아니라 신앙에 대한 성찰의 문제로 옮겨가게 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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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가 오려낸 과학과 신앙

 

멸종동물 복원, 난치병 치료, 맞춤아기 등 생명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윤리적, 신학적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이오테러, 우생학적 문제 등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은 과학이 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의 이슈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윤리, 철학,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4월 29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가위" (송기원 교수)
2부 대담(8:20-9:20) 과학자와 신학자의 대화 (송기원 교수, 방연상 교수, 우종학 교수)

 

강사 소개

송기원 교수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미국 코넬 대학교에서 생화학 및 분자 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 대학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1996년부터 연세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2004년 풀브라이트 장학금(Fulbright Scholar)을 받으며 밴더빌트 대학교 화학과 및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전공 방문 교수를 지냈고, 2014년부터 연세 대학교 언더우드 국제 대학의 과학 기술 및 정책(Science Technology and Policy) 전공 겸직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50여 편의 SCI 논문을 게재했다.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제5기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생명 과학에 관한 사회적·윤리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연세 대학교에서 ‘과학 기술과 사회’ 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포럼 참여 교수들을 중심으로 2014년 연세 대학교 언더우드 국제 대학 내에 과학 기술 및 정책 전공을 개설하여 전공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생명 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공저), 『과학은 논쟁이다』(공저)가, 옮긴 책으로는 『미래에서 온 편지』(공역), 『분자 세포 생물학』(공역) 등이 있다. 

 

패널 소개

방연상 교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문화 간 연구Inter-Cultural Studies와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생명 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공저), 『타자를 향한, 타자와 함께하는 선교』, 『우분투』, 『타자와 책임』, 『Ethical Responsibility Beyond Interpretation』이 있고, 옮긴 책으로 『좋은 세계화 나쁜 세계화』(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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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정대경 박사

 

2017년 초부터 과신대 연구모임에 참여해서 자연과학, 철학, 신학의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과 “자유의지,” “뇌과학과 인간” 등에 관한 논문과 책을 같이 읽어왔습니다. 올 3월부터는 1년 반 정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모임에서 Peter Harrison의 기포드 강연 출판물인 “The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 챕터 1과 2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해당 챕터들에서 해리슨은 현대인들이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지금의 방식대로 이해되어온 역사가 길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종교와 과학 사이 갈등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두 학제 간 갈등이라는 것이 실상 “과학”과 “종교”라는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해리슨은 고대로부터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해되어 오는가를 탐구합니다.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소위 종교(신학)와 과학(자연철학)이라는 학문적 태도가 고대에도 구분은 되지만, 두 학문적 태도 모두 존중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와 과학자는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신학자 또한 철학적, 자연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렇게 파악된 지식과 이해는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는 것을 넘어 인간의 윤리적 태도 또한 고취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과신대 연구모임에서는 우종학, 박희주, 신희성, 황소현, 전진권, 장재호, 이성호, 정대경 박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종교현상이라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텐데 (만약 종교라는 것이 폴 틸리히가 지적하는 방식대로 각 개인의 "궁극적인 관심과 그것에 대한 표현"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의사 결정 등이 이루어질 때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젝트의 종교적 의미 혹은 종교 윤리학 의미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독려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와서 그렇겠지요.

 

박사논문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이 신학자 혹은 신학적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나사 (NASA) 등에서 진행하는 자연과학,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 프로젝트들에 관한 윤리적 의미, 신학적 의미 등을 종종 강연하시는 것을 참 부러워했던 적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신대 연구모임이 추후 자연과학과 신학 사이 학제 간 연구 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과학, 과학기술 발전이나 정책결정 등에 있어 신학적, 종교적 의미 등을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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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사역의 꽃은 바로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북클럽 모임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12개의 모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책부터

현대 과학과 최근 성서해석에 대한 책까지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성별과 출신에 상관없이

함께 모여서 즐겁게 책을 읽고 토론합니다.


과신대 북클럽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니 함께 하실 분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 주세요.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클럽을 소개합니다. 

지역 북클럽을 클릭하시면

모임 소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남부 북클럽]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


[서울구디 북클럽: 청소년]


[장신대 북클럽]


[분당/판교 북클럽]


[인천/부천 북클럽]


[수원남부 북클럽]


[광주 북클럽]


[전주 북클럽]


[제주 북클럽]


[미국 파사데나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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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

<기초과정 I>이 

드디어 온라인 수업으로 개설됩니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의 내용

1부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진행방식 : 수강신청을 한 분들에게 영상으로 강의를 수강할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1주일 동안 12개의 강의 영상(약 15분씩)을 시청한 후 간단한 테스트 문제를 제출하면 됩니다. 이후에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를 읽고 독후감을 써서 제출하면 수료가 됩니다.


■ 수료자격 : 테스트 답안 및 서평 제출 (<기초과정 I>을 수료하면 <기초과정 II>에 수강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 과제 

1) 강의 영상을 모두 시청한 후 온라인으로 출제되는 간단한 테스트 문제에 답변을 작성해 제출

2)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IVP) 독후감 제출 (분량 A4 1매 내외, 보내실 곳: scitheo.office@gmail.com)


■ 수강신청 기간 : 2019년 3월 26일(화)~2019년 4월 12일(금) 밤 12시까지                     

■ 영상수업 기간 : 2019년 4월 15일(월) 낮 12시~4월 21일(일) 밤 12시까지

■ 과제제출 기간

1) 테스트 문제 제출 : 2019년 4월 21일(월) 밤 12시까지

2) <무크따> 독후감 제출 : 2019년 4월 28일(일) 밤 12시까지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대학생, 신학생은 1만 5천원, 중복할인 불가)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scitheo.office@gmail.com / 070-43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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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 입회신청서 : goo.gl/YYP76E
>> CMS 후원 신청서 : goo.gl/rUYmZ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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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남부 북클럽]






| 오세조 (수원남부 북클럽 회원)



비가 온 다음날인지 조금은 춥기도 하고 조금은 세상이 깨끗해진 느낌이 드는 오늘, 오리진을 함께 읽기 위해 모임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잠시 후 약속시간이 되자, 회원분들이 한 두 분씩 도착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오늘 발제를 맡으신 정훈재님이 발제를 시작했다.

참고로 오늘이 수원남부 북클럽 모임에서 가장 많이 모인 날인 것 같다. 특별히 오늘 처음 합류하신 박상용 전도사님은 올해 성공회대를 졸업하시고 이제 부제서품을 기다리시는 분이신데 오스트리아에서 신학석사를 마치신 분이시다.

또한 오늘 발제를 맡아주신 정훈재님께서는 분당/판교 북클럽에서 활동하시는 회원분이신데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도 마침 ‘오리진’으로 진행을 해서 오늘은 특별강사로 초빙을 한 것이다.

오늘 함께 읽어야 발제부분은 오리진 1-6장까지로 1-2장, 3-4장, 5-6장까지 2장씩 발제를 한 후, 질문 및 토의시간을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한 어린 학생분들이 발제내용을 잘 이해할까 걱정했는데...

이런, 이런.. 내가 학생회원분들이 어리다고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질문도 하는 것이다.

발제가 끝난 후에, 김남수님은 오늘 학생들에게서 오랜만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셨다고 하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초롱초롱한 눈빛이 앞으로 수원남부 북클럽만의 매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발제와 토론이 다 끝난 후에 회원분들의 각자 스케줄때문에 점심식사는 하지 못하고 다음 일정과 몇 가지만을 토의한 후 다음 만남을 소망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그분을 기독교 교리에 가두는 것은 아닌가?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학생들이 소위 목회자라는 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고 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래서 어린아이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까?

다음 번 책인 이정모 관장님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의 발제날이 더욱 더 기다려지는 것은 아마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어린 회원님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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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8일에 진행된 제13회 과신대 콜로퀴움은 "판넨베르크가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이용주 교수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1시간 정도의 강의가 끝나고 2부 대담 시간에는 우종학 교수님의 사회로 이용주 교수님과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최승언 교수님께서 패널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2부 대담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를 손이 가는대로 적어봤습니다. (역시 콜로퀴움의 하이라이트는 대담시간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면 좋겠지만 강의를 들으며 필기한 내용이라 부정확한 부분도 많고 생략도 많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대담 정리: 최경환 실장



최승언: 판네베르크만큼 현대 과학을 잘 사용한 신학자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판넨베르크가 복잡계 과학을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종학: 판네베르크가 우발성과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주: 우발성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필연성도 아닙니다. 판넨베르크는 신플라톤주의의 필연성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신이 왜 세상을 창조했느냐? 창조신앙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의 창조이야기에 따르면 신은 이 세계와 인간이 신을 섬기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이 세상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 과학에서는 우발성이 어떤 의미인가요?


: 우리는 우연을 상당히 맹목적이고 무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천문학자들은 spontaneous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이 상당히 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의 법칙들이 상당히 규칙적인 것 같지만, 하나 하나의 개체들은 상당히 우발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자연현상을 우리가 보기에 우연과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 둘이 서로 작용하고, 이 둘을 매개하는 그 무엇이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발현시킵니다.



: 기독교의 창조론은 유일신론과 다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법칙성, 영은 우발성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도 한 번 더 설명해 주시죠.


: 아들은 서로 다른 것들이 규칙성 가운데 작용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원한 아들을 로고스라고 말합니다. 로고스는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판넨베르크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철학적 매개를 사용해서 설명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영의 개념도 스토아 철학을 차용합니다.


: 판넨베르크는 영을 장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가시적으로 보이는 물체의 비가시적 근원, 유한한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장처럼 활동하는 영,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유비적인 관계를 설명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에 기초해서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인위적이라는 비판을 안 받을 수 없습니다.


판넨베르크의 과제이기도 한데, 그는 세상의 혼동과 무질서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태초에 근원적 혼돈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일원론을 강조하기 위해 무로부터의 창조를 형성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이 전통을 따라갑니다.


신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판넨베르크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top-down 방식을 취하지만 과학적인 실재와 공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판넨베르크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법칙성을 강조합니다. 우발성은 법칙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배타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초월성이라는 것은 설명될 수 없는 뭔가 신기한 것, 법칙성과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은 법칙성과 우발성 가운데 계신다면, 하나님의 내재성이 초월성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초월성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 자연현상 가운데도 우연성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는 영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파악되지 못하기 때문에 희미하게 볼 뿐이죠. 영이신 하나님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사랑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본성을 알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우리와 관계맺고 일하고 계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자기 초월의 근원입니다. 초월을 공간적으로나 무관계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지만, 스스로 공간과 시간 안에 들어오시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초월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월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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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에는 과신대 콜로퀴움을 잘 마쳤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조직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삼위일체론과 창조론을 소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고 온라인으로도 많은 분들이 시청해 주셨습니다. 2부 대담 시간에 우종학 교수님께서 작성하신 질문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시죠~



1. 우발성과 자연법칙 -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판넨베르크는 신의 자유와 신의 사랑, 두 개의 키워드를 사용해서 창조를 표현합니다. 우주는 반드시 존재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이 자신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창조해야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우주의 존재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입니다. 이것은 신의 자유를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된 우주가 단지 신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소모적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소멸적 특성만 갖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이 존재하도록 붙들고, 창조된 모든 것이 그 완성된 형태로 나가도록 하는 신의 행위는 바로 사랑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혹은 우발성과 우연성을 제거하여 기계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피조물들이 고유한 완성의 형태로 나가도록 보존하고 협력하고 돕는 사랑입니다.


보존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만들어진 창조물의 본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시간의 방향으로 따지자면 과거가 기준이 되는 사랑이고, 섭리는 피조물들이 완성되도록 돕는 미래적 목표를 위한 사랑입니다.



2. 자연법칙과 틈새 찾기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자연 사건들의 우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규칙성들의 한계를 숙고하면서, 문제를 자연 사건들의 규칙성의 틈새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은 이 자연 사건들의 틈새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유혹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은 자연 과정들 속에 담지된 그 틈새들을 메우고 있으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그 자체로 자동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하나님은 전체 세계의 창조자가 아니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틈새들은 자연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언제나 다시금 메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를 들어 비유기적 과정들로부터 생명이 기원한다는 사실이 물리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 주장이 미래에도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물리학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각 새로운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 또한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라는 것뿐이다."


판넨베르크가 틈새의 신 방식의 접근을 비판하는 관점이 흥미롭군요. 심지어 무생물에서 생물이 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에도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과학이 새로운 발견을 하면 새로운 신학적 문제가 대두되겠지요. 생명의 출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란 얘깁니다.



3. 진화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 우발성은 이신론적, 기계론적 신관을 오히려 깨트려 주었다.


"다윈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신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오류에 속한다.…신학은 (모든 종이 세계의 시작 이래로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이론의 세계관적 전제에 갇혀있었고 인간에 대한 관념론적 과대평가를 통해 눈이 흐릿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학에 경고음을 일으킨 것은 다윈의 종의기원설이 일으킨 의문, 곧 창조 속에서 인간이 갖는 특별한 지위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란 바로 신의 목적을 설정하는 목적론적 자연관이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의 우연성에 대한 강조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은 유기체적 생명의 출현이 갖는 목적적합성을 설명해주었다. 목적적합성의 설명은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에 따르면 오로지 계획하는 이성을 가정할 때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자연선택설은 친구들과 적들 모두에게 유신론적 하나님 표상에 대한 반박으로 보였다. 양측 모두에게 진화의 자연선택설은 종들의 생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단지 기계론적인 설명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된 것입니다.


"알트너가 지적했던 것처럼 진화의 새로운 세계상은 창조 사건의 역동성을 시간 안에서 열려 있는 과정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기계론적인 자연관은 하나님을 기껏해야 이신론적으로 보아 과거 한때의 자연질서의 창시자로 받아들이도록 했고, 자연사건 과정 속에서 계속 창조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진화는 이런 기계론적인 자연관과 이신론적인 신관을 깨트리게 해 주었다는 것이지요.



4. 장이론 - 과학과 신학의 결합인가? 차용인가?


판넨베르크의 입장이 창조과학식으로 물리학과 신학을 직접적으로 결합하려는 건 아닌가? 자연과학과 대화하려는 판넨베르크의 접근이 성령의 내재적 역사를 장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지, 혹은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 사이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장과 같은 물리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성령의 일하심을 유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불명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장의 개념을 유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성령을 어떤 에너지 개념으로 물리적 실체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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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클레어는 종군 간호사 출신의 당찬 잉글랜드 여성입니다. 우연히 2백년 전 스코틀랜드로 가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짜임새 있게 잘 엮은 미드 '아웃랜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2백년 앞선 역사 지식, 의학 지식, 과학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클레어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다름아닌 '마녀'입니다.


이런 상황이 21세기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과학을 현대판 마녀로 정죄하거나 과학의 이름으로 신앙을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신앙 보다는 과학이 더 신뢰할 만한 무엇이긴 합니다. 교회 설교 중에도 자주 듣지 않습니까? '과학적으로' 라는 말이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배경이 다른 지인들과 대화할 때 '성경에 쓰여 있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다는 '과학적으로' 라는 말이 더 잘 먹히는 세상이죠. 이왕이면 수치도 기억하면 멋있기까지 합니다. 바꿔 말하면 과학은 날마다 새로와지는데 신앙의 언어는 너무나 old해져 있습니다. 첫 독자들이 마주한 창세기는 그렇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18세기에 떨어진 클레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리진'(IVP) 1장~6장의 내용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녀 재판도 없을테고 클레어의 선한 의지 그대로 잘 받아들여졌을 텐데요. 오리진 전반부는 앞으로 200년이 지난 뒤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과학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과학도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도 이 책의 설명을 넘어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중고등 자녀에게도 과학과 신앙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기본 소양 도서로 권하고 싶군요.


'오리진'(IVP)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초를 다지기에 좋은 책입니다. 앞으로 2회 더 이 책으로 토론할 분당/판교 북클럽에 참가하실 분들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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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광주 북클럽]






| 김재호 (광주 북클럽지기)



오늘(39)에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 '광주 북클럽'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회원으로 5명의 회원이 모여 무크따 1~2장을 함께 읽으며 첫 이야기를 열었는데요, 모임에는 과학자 출신의 교사, 의사선생님, 수영선생님, 무명관 관장님, IT계열 회사원(비기독교인)으로 다양한 영역의 회원들이 모인 덕에 즐겁고 흥미로운 독서모임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비기독교인이면서도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깊은 흥미를 갖고 참여하신 회원님의 비판적 견해가 창조과학에 기초한 신앙이 얼마나 객관적인 논리와 지지를 얻을 수 있겠는지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교재는 우종학 교수님의 무크따 1~2장이었으며, 함께 읽고 주제별 논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시작과 함께 모임을 강타했던 주제는 과학을 품지 못한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이었습니다. 실제로 회원들이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얼마나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져왔는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태도를 갖고 있을 것 같았다'는 일반인들의 선입견과 '진화론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 표출'로 대변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 등의 경험담은 본 모임이 왜 의미있는지에 대한 반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진화이론과 진화주의를 구분하여 이해하려는 관점, 갈릴레오 재판에 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형이상학적 관점과 과학을 엮어본 진화창조론 등의 이야기들은 회원들에게 일종의 신앙적 해방감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나 기독교인이면서도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에 관한 도서들에 큰 흥미를 느끼던 모습에 불편감을 느꼈던 기억들에 대한 해소의 시간이었습니다.

 

광주지역에서도 관신대 북클럽을 통해 기독교계에서 창조와 과학에 대한 자유롭고 폭넓은 대화 문화가 자리잡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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