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책] 과학자의  읽기

 

두 세계관의 유쾌한 공존
신의 언어 | 프랜시스 S. 콜린스 | 김영사 | 2009

 

김영웅

 

 

군에서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했던 나는 그 해 제대를 했다. 2000년도는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하나의 작은 이정표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2000년도는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인류 역사에서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벌어진 놀라운 해였다. 세계적으로 10년이 넘게 투자된 Human Genome Project가 완성되던 해였기 때문이다. 그 해엔 네 종류의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전체 약 30억 개 길이의 인간 유전체 서열이 모두 밝혀졌음이 공식적으로 선포되고 공개되었다. 우리 몸의 설계도 초안이라 할 수 있는 DNA로 이루어진 유전자 지도가 드디어 처음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밝혀 유명해진 제임스 왓슨의 뒤를 이어 미국에서 Human Genome Project를 끝까지 이끌었던 책임자로서 2000년 6월 백악관에서 열렸던 이 프로젝트의 성공적 완성을 축하하며 선포하는 감격적인 자리에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 옆에 서있던 사람의 이름은 프랜시스 S. 콜린스였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이다.

 

 

이 책은 전문 과학도서도 아니고 신학도서도 아니며 자서전도 아니다. 그러나 저자의 진솔한 목소리가 곳곳에 잘 침투되어있어 이 모두가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책이다. 물리와 화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되어 Human Genome Project를 이끈 과학자로서, 불가지론자와 무신론자를 거쳐 나와 같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고 하나님나라를 소망하고 살아내며 유신론적 진화를 믿는 신앙인으로서, 그리고 과학과 신앙 사이에 벌어진 어처구니없는 커다란 간극 사이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질문하고 답을 해온 선배로서의 프랜시스 콜린스를 우린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논리 정연하면서도 진정성이 여과 없이 드러난 필체는 덤이다.

 

생물학자인 나에게 그의 목소리는 이 분야를 앞서간 그 어느 누구의 목소리보다도 호소력이 있었다. 진지하게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 모두를 포함해서, 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그의 진솔한 내러티브는 분명 하나의 빛으로 작용하여 우리의 어두웠던 부분을 밝혀줄 것이다.

 

 

그가 이끈 프로젝트가 역사상 처음으로 밝혀낸 것은 인간의 모든 염색체의 뼈대가 되는 DNA의 염기서열이다. 그는 이를 감히 ‘신의 언어’라고 표현한다. 세계적으로 수없이 많은 과학자들이 관여하여 어렵사리 밝혀낸 그 암호와도 같은 염기서열은 분명 현대과학과 지성이 일궈낸 쾌거일진데, 그 프로젝트 리더가 자신의 입으로 그 암호를 ‘과학의 언어’가 아닌, 종교적 색채가 단박에 드러나는 ‘신의 언어’라고 표현했음은 실로 의미심장하다. 여기서 우린 과학과 신앙에 대한 그의 입장을 잘 알 수 있다. 제목만 곰곰이 씹어봐도 우린 그 안에서 과학적 세계관과 기독교적 세계관이 잡음 없이 공존하며 더욱 풍성하게 서로를 강화시키고 성숙시키며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다.

 

그렇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생물학적 진화를 정의할 때 필수요소인 DNA 변화를 직접 목격한 증인으로서, 진화를 엄연한 과학적 사실로 인정하는 동시에 그 진화의 정교한 메커니즘이 다름 아닌 신의 창조방법이라고 믿는다. 나 역시 그렇다. ‘유신론적 진화’라는 말이 주는 불완전한 뉘앙스 때문에 책에서 ‘바이오로고스’라 칭하자고 제안까지 하는 그의 관점을, 나도 한 명의 과학자이자 기독교인으로서 이제는 기꺼이 그리고 기쁘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게도 그리스도인이자 과학도로서 하나님을 수호하고자 하는 순진한 마음에 진화라는 단어를 방어적으로 거부했던 때가 있었다. 대학원생 초창기 시절이었다. 어떤 유전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 방편으로 생물학자들은 그 유전자의 염기서열이 다른 종들과의 그것과 얼마나 비슷한지, 또 진화 단계 중 어느 단계에서부터 보존되어 왔는지 비교하여 보여주곤 한다. 이를테면, A라는 유전자는 포유류인 생쥐와 침팬지에서는 비슷한 염기서열로 존재하지만, B라는 유전자는 양서류인 개구리나 어류인 물고기에서부터 존재한다면, A보다는 B가 더 역사적으로 훨씬 더 오래되고 더 기본적인 기능을 한다는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포유류에서만 중요한 유전자보다는 척추동물 전체에서 중요한 유전자라는 사실이 던지는 의미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난 다른 종과 인간의 유전자 염기서열을 비교한다는 데에 불편함을 느꼈었다. 비교하는 행위 자체가 진화를 인정하는 기본적인 행위와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결국 하는 수 없이 비교를 하긴 했지만, 난 그때 뭔지 모를 죄책감을 느꼈었다. 마치 사탄의 폭력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후미에를 밟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 책을 읽고 약 15년 전의 그 찜찜함을 다시 소환해보니 감회가 새롭다. 과학과 신학의 사이에서 어정쩡한 입장으로 당당하지 못하고, 어디서도 말 못할 괴리감을 가슴에 간직한 채 보냈던 그때가 아련하게 떠오른다. 그 당시 내게 만약 이 책이 손에 쥐어져 있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다. 뭔가 아주 많이 달라지진 않았을까?

 

엄연한 과학적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화라는 단어가 들어가기만 하면 알러지 반응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여기거나, 진화나 과학을 신앙인이라면 마땅히 거부해야 한다거나 제한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과학과 신앙은 충분히 함께 갈 수 있으며, 그 유쾌한 공존이야말로 원래의 자리이며 하나님의 섭리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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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2일 과신대 <기초과정II> 4기 수료식이 있었습니다. 

6주간 함께 공부하고 토론하면서 정이 많이 들었는데

벌써 수료라고 하니 시원섭섭하네요.

 

<기초과정II>는 <기초과정I>을 수료한 분들만

참여할 수 있는 과신대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특별히 이번 4기부터는

우종학 교수님 외에 과신대 자문위원이신

김근주, 김정형, 박영식 교수님께서

강사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수업은 각자 이번 세미나에서 배운 내용을 나누고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이끌어 갈지 이야기하는 시간으로 채웠습니다.

 

여전히 한국에서는 이 문제로 고민하고 갈등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이 있고

교회에서도 쉽게 이 문제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구조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모임과 친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과 위로를 얻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눔을 마치고 난 후 수료증을 나눠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6주간 4권의 책을 읽고, 4개의 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상당히 힘든 과정이었음에도

끝까지 살아남으신 분들에게

작지만 멋진 수료증을 증정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과신대 <기초과정II>는 1년 두 차례 진행됩니다. 

다음 5기 과정은 9월 중 개설될 예정이니

과신대 소식을 잘 귀 기울여 주세요. 

 

그동안 모두들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여러분들이 서 있는 곳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음 세대를 세우는 일에 귀하게 쓰임 받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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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 송기원 엮음 | 동아시아 | 2017

 

윤세진(구일고등학교 생명과학 교사)

 

 

2018년 11월 26일 중국 남방과기대 허 젠쿠이(贺建奎)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법을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 아기인 ‘루루’와 ‘나나’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 쌍둥이 아이는 유전자를 교정한 최초의 인간인 셈이다.[1] 이 발표 이후,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과학 윤리, 유전자 가위 기법, 생명경시 풍조 등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전자 가위 기법을 비롯한 최근의 생명공학 기법들의 발달은 생명과학 또는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합성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영역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진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최근에 합성 생물학이나 유전자 가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여 관련된 기사들이 국내외에서 많이 쏟아지고 있으며 책도 출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라는 책은 이 문제를 과학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지 않고 철학적, 윤리적, 제도적 관점의 논의도 함께 다루고 있다. 과학적 기법만을 다루면 자칫 건조해질 수도 있고, 윤리적, 철학적 측면만 다루면 실제적인 부분에 속하는 과학 영역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편집을 한 느낌이다. 특히 합성 생물학과 관련된 제도적인 측면을 함께 다루어 줌으로써 합성 생물학의 다양한 논의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는 괜찮은 책이다.

 

 

합성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본 구성단위인 유전자 수준부터 직접 설계하고 합성해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나 세포 소기관, 단백질들로 구성되어 있는 생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칭한다.[2] 이러한 합성 생물학에서는 생명체를 이해할 때 모듈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모듈적인 접근 방법이란 명확히 구별되는 기능을 갖는 모듈들이 네트워크로 조직화되어 기능을 수행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말한다.[3] 합성 생물학의 생물학적 기술의 기반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는 멘델에 의해 시작된 유전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분자 구조가 밝혀지면서 분자생물학의 출현하였고, 계속해서 발전된 생명 공학과 최근에 급속도로 발전된 유전자 합성 기술의 발전과 그 비용 감소,차세대 염기서열 해독기술의 발전 등이 합성 생물학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다.[4]

 

합성 생물학이 다루는 범위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5] 첫째로,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세포를 기계적인 장치의 하나로 인식하여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원하는 기능을 가진 세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로는 기존과는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보자는 것으로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로는 기존의 DNA 재조합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개념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허 젠쿠이 교수 논란과도 연관이 있으면서 합성 생물학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이 크리스퍼-카스(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법이다. 이 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크리스퍼-카스 기법에 사용하는 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크리스퍼 유전자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잘라낼 유전자 부위를 저장 지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은 21개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21개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 사슬은 생물체 내에서 아주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특정 유전자 부분을 찾아내는 기능을 한다. 다음으로 카스 9 단백질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찾아낸 특정 유전자를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한다. 이 시스템은 세균이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과정을 연구하던 중에 발견된 것이다.

 

크리스퍼 작동 원리 .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225775/figure/F1/

 

이 책에서는 이런 기법들을 이용하여 합성된 합성 생물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관점을 여러 관점들을 묶어 세 가지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6] 먼저 기계라는 관점과 생물이라는 관점을 대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물체를 기계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은 데카르트에서 완성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확실하게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합성 생물학의 관점은 생물체를 기계적인 관점으로 보며 사람도 동물과 동일하다는 견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본다. 두번째로는 공학적인 관점과 비공학적 관점의 대비이다. 공학적인 관점은 당연히 기계적인 관점과 연결되는 것이며, 비공학적인 관점은 공학적인 관점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지향적 느낌[7](목적을 위한 수단)을 갖는 관점 대 지향적 느낌과 비지향적 느낌[8]의 혼합적인 관점이다. 지향적 느낌은 수단적 관점이 강하고, 그에 비해 두 느낌이 혼합된 부분은 기존에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 느끼는 전통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합성 생물학에 의해 생물이 창조된다고 보는 것은 그것과 동일하게 사람도 창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한다면, 도덕적 윤리적인 인간도 과학기술을 통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9] 이에 따라 고민해야 할 중대한 한 가지 문제는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의 향상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의 능력이 바람직한 방향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로 인간의 바람직한 부분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바람직하지 않은 쪽의 증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합성 생물학에 의해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면, 그 인간의 도덕성까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편, 합성생물학에 대해 종교계는 아직도 무관심한 상태인데, 이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의 한계, 생태계 문제, 신과 인간의 재 개념화 등과 같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채로 기술만 발전하게 된다면, 합성 생물학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성 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날 결과의 비예측성에 대한 연구자의 책임, 생물체와 생태계에서 연구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에 따른 후속조치도 각각의 책임에 걸맞도록 명확하게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합성 생물학의 연구 또는 발전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합성 생물학의 생명체(혹은 생물)에 대한 접근 방법은 환원주의적인 접근이며, 물리 화학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생물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존재 한다.[10] 그 중의 하나가 “창발성”이라는 개념이다. 물리 화학적인 접근만으로는 생물의 “창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생물을 기계로 본다면, 또는 생물이 물질이라고 본다면, 또는 생물을 공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모듈의 네트워크라고 본다면, 이는 ‘생명이 무엇인가?' 라는 각자의 개념을 반영하는 것이며,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합성 생물학은 생물체에 대한 공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면서, 과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주장을(생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합성 생물학이 생물을 창조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실제로 생물을 창조하기보다는 유전자를 바꿔치기한 것이 아닌가? 일견 합성 생물학이 보여주는 결과는 생물을 새롭게 창조했을 때 나타날 만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합성 생물학이 달성하고 추구해 온 것은 “생명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다. 따라서 생명을 새롭게 창조하여 신에게 도전하고 있다는 진술은 조금은 과장되고 선정적인 선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결국은 생물/생명은 무엇인가?”이다.

 

 


[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중국서-유전자-편집-아기-출산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6352815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607-3

[2]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2017). 송기원 엮음, 18.

[3] 같은 책, 21.

[4] 같은 책, 26~27.

[5] 같은 책, 28~36.

[6] 같은 책, 243~248.

[7] 같은 책, 244.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성취하도록 우리를 충동하는 느낌.

[8] 같은 책, 244. 어떤 원인의 결과로 발생하지만 뚜렷한 실체를 지향하지 않는 하나의 상태로서의 느낌.

[9] 같은 책, 148.

[10] 이것이 생물학이다(2016). 에른스트 마이어,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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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신학의 대화 × 바른교회아카데미

 

“난처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 부탁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과학적 질문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과학적 질문을 과학자와 신학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강연입니다.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창조와 과학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할지, 진화이론과 관련해서 난처한 질문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풀어갈지 등 실제적인 논의를 토론합니다. 1부는 사전에 미리 준비한 몇 가지 질문을 사회자와 패널이 함께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2부는 참석한 목회자가 실시간으로 질문을 하고 응답하는 시간으로 구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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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9.5.13 (월) 19:00-21:30

 장소: 열매나눔재단 지하 강당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퇴계로20길 37)
  * 오시는 길: https://bit.ly/2Z68Obk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1만원 (온, 오프라인 수강 가능) 

 

 프로그램

19:00-20:00 1부 패널 Q&A  “창조와 과학, 이런 게 궁금했습니다!”
          (패널: 김근주, 김정형, 우종학 교수, 사회: 이한일 목사)
20:00-20:15 휴식 (질문지 작성)
20:15-21:30 2부 청중 Q&A  “난처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 부탁합니다!”
          (진행: 최경환 실장, 목회자와 과학자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패널 소개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이한일 목사 (송학대교회 청년부 담당) 
최경환 실장 (과신대 기획실장)

 

 수강 신청

* 사전 등록자에게는 과신대 온라인 <기초과정I>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권한을 드립니다. 온라인 강의를 미리 듣고 대담에 참석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행사 당일 간단한 식사와 간식을 드립니다. 일찍 오셔서 함께 교제 나누시길 바랍니다. 

* 온라인 수강 신청자에게는 5월 14일 오전 9시에 문자 및 이메일로 "YouTube"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온라인 수강자에게는 5월 15일 오전 9시까지 영상 다시보기 권한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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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스터 맥그래스 <신 없는 사람들>(IVP, 2012)을 읽고

 

글_ 홍승표

 

 

* 이 글은 과신대 <기초과정II> 과제로 제출된 글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에 관해 비판할 때, 그들은 종교가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즐겨 사용한다. 즉, 종교는 진리가 아니며 가상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폭력적 기독교’, ‘비이성적 기독교’, ‘비과학적 기독교’로 나눠 그 논증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낼 것이다.

 

 

1. 종교는 폭력적이다

 

해리스와 히친스 같은 학자들은 종교적 신념이 곧장 자살 테러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모든 종교적 신념이 테러로 이어진다면, 세계의 모든 곳에서는 테러와 폭력이 쉬지 않고 자행될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시카고 대학 정치 과학 교수 로버트 페이프는 ‘자살 테러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아니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사이에도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발표하며 자살 폭탄 테러의 근본 동기가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알려 준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이다. 사랑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온전하게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예수는 몸소 자신의 가르침과 행동에서 줄곧 폭력을 반대했었다.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정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로 인식되었던 예수는 유대 민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인내하고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었다. 이는 기독교의 근본이 폭력보다는 비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실히 하는 대목이다. 물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지만, 이는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신상의 문제이다.

 

종교가 폭력을 유발한다면, 종교가 없는 사회는 어떨까? 구 소련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소련 내에서 종교를 없애고자 했었다.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이론이 인정되려면 소련은 그 어떤 폭력도 자행되지 않는 지상낙원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 정부는 비폭력과 지상낙원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시행했었다. 이는 종교가 사회적 폭력의 근원이라는 의견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폭력은 종교에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의해서 발생한다. 옛날의 각종 정복 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발생한 세계대전 등을 통해 보았을 때, 종교는 오히려 전쟁 원인의 주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사례들로 종교가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늘 서울에 비가 왔다는 이유로 ‘서울은 항상 비가 오는 곳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2. 종교는 비이성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무조건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거나, 또는 그 믿음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믿음을 증명해내라며 압박해내기도 한다.

 

뛰어나 철학자이자 역사가 이사야 벌린 경은, 인간의 확신을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1. 실증적 관찰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2. 논리적 추론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3.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것들

 

1번은 자연과학을 통해, 2번은 논리와 수학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그리고 3번째 범주는 인간의 문화를 형성했고 인간 실존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했지만, 이성이나 과학을 통해서 입증되지 않는 가치나 관념 같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형제애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한다’라는 세계 인권 선언의 진술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물증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신념이 물증이 없다 해서, 이 같은 발언들이 ‘비이성적인’ 발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무신론은 모든 세계관은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불편하지만 사실인 진실을 거부한다. 즉 이들은 그저 ‘열성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그들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들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은 아우슈비츠 학살과 같은 각종 만행들을 ‘신의 비도덕적 행위’로 취급하여 종교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만행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서 자행된 일들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를 먹은 것은 신의 뜻인가? 정답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금 나오라고 기도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즉답’을 요구한다. 이는 어찌 보면 강력한 근본주의적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일어난 만행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습성이 있다. 요즘에는 그저 그 범인 찾기의 대상이 신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히친스와 도킨스가 신에 대해 퍼붓는 저주가 있다.

 

‘이성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누구도 ‘이성’의 한계성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대부분이 이성적으로 여기는 보편적 가치는 확실히 존재한다. ‘무고한 살인은 나쁜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부모를 폭행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명제들은 이에 속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종교가 비이성적이라면, 이와 같은 명제들에 반기를 들고 ‘살인해라’, ‘도적질해라’, ‘불효해라’라며 오히려 권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타적인 사랑을 우선으로 하는 종교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독교는 어떤 것보다 이성적인 것으로 취급받을 여지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3. 종교는 비과학적이다

 

과학은 단지 세상의 형태와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은 그 의미와 가치 판단의 문제에 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종교는 여러 가지로 곡해되어왔다. 맥그라스의 의견에 따르면, 과학이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 합리적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참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무엇인가?’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종교에 대한 과학 이론을 입증하지 않는다. 아직 과학은 세상의 기원에 관련된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학은 이 가설들 중 어느 하나도 확실한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가설을 통합시켜줄 수 있는 절대적 이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실증적이다. 이는 관찰 가능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 이외의 것들은 전혀 입증해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다. ‘사랑’, ‘우정’, ‘연민’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기란 어렵다. 그러니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들이밀며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세상 모든 가치를 가시화하려는 몽매한 노력에 불과하다. 과학은 도덕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또한 과학은 인간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은 답을 해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많은 사람들의 철학적 논고에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입증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같은 것들은 입증할 수 없다.

 

 

4. 결론

 

종교는 폭력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다. 이는 몇 개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 시키려는 그릇된 생각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와 같은 비판이 나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를 비롯한 교인들이 완전하지 않아서’라고 답하겠다. 교인들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와 비판들이 더욱 더 불거진 것이 아닐까. 때문에 종교 비판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수용을 통해 현재 기독교가 앓고 있는 문제점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여백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채운 부분만 가지고만 이야기한다. 우리가 변호한다고 일일이 대답해봤자, 그것은 온전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변호하는 것이 변호가 된다면, 하나님은 궁색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변호가 필요 없다. 하나님에 대한 변호는 나의 신앙에 대한 변호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많은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게 된다. 동시에 어째서 종교를 비판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때 종교는 한층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통해 교계가 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신을 변호하는 것이 온전한 변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무기력하게 ‘알 수 없다’라는 태도로만 일관한다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대할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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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경환

 

지난 4월 9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부천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신 인간 과학>입니다. 오늘은 1장 우주에 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면 할 일을 다 했고, 세계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신은 세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연 자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범신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범재신론도 있다(panentheism). 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신이 자연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범재신론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초월해 계시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재하고 성령이 세상을 감싸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의 두 가지, ‘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영을 바람이나 숨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침투하는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와 같은 로고스의 역할, 성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분으로 해석한다.

 

2. 과학에는 신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런데 과학자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 전체를 볼 수 없다. 부분을 볼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삶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전체를 말하려는 욕구, 욕망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이유. 왜 인간은 뭔가를 궁금해 할까? 왜 원인을 찾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인과율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인과율이 깨진다. 왜 존재하는지, 왜 거기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원인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원인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원인의 그물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4. 뒤르는 '자연과학은 대상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하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물의 외면을 보고 관찰하려고 하는 사고, 반면 사물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 이 둘은 다를 수 있다. 과학은 대상의 일부를 쪼개서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의 연관성과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는 시도는 과학적인 연구만으론 안 된다.

 

5. 직관과 상상의 방랑. 과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관과 비과학적인 상상이 과학자의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뮈토스를 로고스로 설명하는 것, 하지만 뮈토스의 영역이 존재한다.

 

6. 모든 진리 주장에는 믿음이 걸려 있다.

 

7. 신앙은 어떻게 검증 가능한가? 종말에 이르러?

 

8. 우리 삶에서 원인과 결과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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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파사데나 북클럽]

 

| 김영웅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

 

이번 달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에서는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많은 분량, 다양한 관점, 압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 그리고 감정이 배제되지 않은 치열한 논쟁까지도 모두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었습니다. 게다가 모임에 참석한 전원이 적극적으로, 그러면서도 건전하게, 토론에 참여해 주셨기 때문에 탁월한 발제를 담당해주셨던 이지형 목사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계획했던 진도의 절반밖에 마치지 못한 채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뤄야 했습니다. 그만큼 모임은 훌륭한 발제에 이은 서로 간의 경청과 깊이 있는 토론으로 풍성하게 채워졌으며, 덕분에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수평적 관계에서 스스럼없이 접하며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토론 문화가 개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진다면 (목회자들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 시간이나 소그룹 모임)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 짙은 생각도 잠시 혼자서 해보았습니다.

 

2시간 반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발제는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들려졌습니다. 신학을 전공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놓치고 말았을 (저도 포함됩니다) 관점까지 덧붙여서 보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신 이지형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발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정석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달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모든 참석자들의 진지한 참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특히 원죄사건과 죄의 전가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사뭇 다른 입장을 가진 메노나이트에 대한 소개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고,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담의 역사성과 죄의 기원, 그리고 창조-타락-구속 플롯에 의거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구속사건이 복음주의를 벗어나게 될 경우에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과감한 생각도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의 영향력 아래 장로교로 대표되는 한국 교회에서 신앙과 믿음을 훈련받아온 저와 같은 기독교인에게는 정말 또 다른 세상을 접하며 지경이 넓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전부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는 기독교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과연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고 믿어왔던 것이 우리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다른 모습의 기독교에서도 핵심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혹시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훈련받아온 신앙과 믿음을 하나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 해석이 가능했던 진리 그 자체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친숙한 그 장막 안에서만 참이라고 인정되면, 장막 밖에서도 참이어야만 한다는 폭력의 논리에 잠식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장막을 걷어낼 수는 없는 걸까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고 있진 않았을까요. 과연 우리가 믿는 것만 진리일까요.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자세가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의 방식일까요. 아담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도, 과학과 신앙 간의 문제도 어쩌면 아주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고대 근동의 과학과 현대 과학 사이의 괴리, 그에 따라 수정되어지는 성경 해석. 과신대는 이러한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이드가 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다른 입장을 틀린 입장으로 만들어 배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척함은 곧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와 같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물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내지 않는 분노를 하나님의 창조를 다른 방식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우스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에 대해 마침 어제 모임에서 나왔던 얘기 중에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것들을 그저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대신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거나 논리적 결함을 찾아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흠집 내고 적대시하는 행위를 자제하고서 말이지요. 즉 어떤 해결책이나 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다름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존재하면서 존중 받는다면 그것 자체가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인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해독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한 입장의 우월성과 다른 입장의 열등성을 들춰내고 강조하여 어느 입장이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 진 여러 다양한 해석과 입장 중 무엇을 택하든 전적인 개인의 자유로 열어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목적이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궁극적인 문제는 과학과 신앙 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크고 일반적인 나와 타자 간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더 완벽한 논리도, 더 발달된 과학도 아닌, 배려와 존중, 사랑이진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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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판교 북클럽]

 

글_ 강사은

 

2018년 2월에 시작한 분당/판교 북클럽이 1년을 훌쩍 넘어 새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진(IVP)’을 포함하여 총 8권의 책을 발제하고 토론하고 후기를 쓰는 시간으로 가득 채웠는데요. 첫 모임부터 꾸준히 이 모임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멀리 판교에까지 오셔서 <기초과정 1>을 강의해 주시기도 했고 최근에는 김근주 교수님을 모시고 과신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돌을 전후해서 ‘오리진’을 읽는 것은 돌잔치 이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이 모임을 시작했는지를 되새기고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년 이내로 지어졌을 리가 없는 증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우주와 동식물의 진화 증거는 제 신앙의 지평도 넓혀 주었습니다. 이 과학의 증거들이 아니었다면 문자적인 성서 해석/적용과 경험적인 사실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제가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삶’(디트리히 본 회퍼)이 그리스도인의 삶 아니겠습니까? 신이 없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하고 오롯이 홀로 서서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삶이죠. 한 마디 더 붙이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죠.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북클럽이지만 단독자의 삶들을 엮어 외롭지 않게 꿋꿋이 서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북클럽이 하고 있다 싶습니다.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는 1년에 1회 정도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을 선정해서 새로 참여하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 ‘오리진’의 남은 1/3을 읽고 토론합니다. 1년에 한번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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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심왕찬

 

 

어제(3/28)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의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북클럽 베테랑 1명과 무경험자 4명이 모여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머리말부터 4장까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는 마침 모임 장소를 제공해주시는 백우인 선생님의 생일이어서 백선생님의 맛있는 샌드위치로 저녁을 함께 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시작했습니다. 

 

북클럽 참여와 인도 경험이 풍부하신 백우인 선생님께서 발제를 해주시고, 각 장마다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잘 요약, 설명해주셔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한 여러 질문과 토론, 창조과학 및 교회의 현주소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은, 4장의 내용 중에서, 하나님께서 (빅뱅과 진화를 통해) 창조를 하신 후에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주에 부여하시고 붙들고 계시는 법칙 안에서 끊임없이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섭리하고 계시며, 인간과 자연에게도 그 안에서 자유를 주셔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모임은 4월 25일(목)에 모여서, 5장부터 9장까지 각자 돌아가며 1장씩 발제하고 나누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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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C:SUB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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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4.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3호

과신대 칼럼

 "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있는
유일한 천체 - 지구행성 " 



이문원 교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성경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주, 태양, 지구, 달 등 천지들을 만드신 후, 그곳에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지구환경을 마련하시고 매우 만족해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태양계를 비롯해서 우주에서 생명현상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주의 지구를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생명체의 존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지구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천체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 오직 지구행성에만 인간을 비롯해서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더보기)

저는 유신론적 진화론이 전통신학과도 부합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바질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그 당시의 자연철학 이론인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을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성서를 해석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자연과학을 받아들이는 입장, 이 입장이 전통신학의 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통신학과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고 봅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 과신대 사람들 " 

(19)
정대경 박사

명지대학교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4)
창세기 1장을 비유로 읽으면 소설이 되는거 아닌가요?


(글보기)

[Coming Soon]

Coming Soon!
[14회 콜로퀴움] 유전자가위가 오려낸 과학과 신앙

2019.4.29 (월) 저녁 7:30 /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멸종동물 복원, 난치병 치료, 맞춤아기 등 생명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윤리적, 신학적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이오테러, 우생학적 문제 등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은 과학이 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의 이슈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윤리, 철학,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수강신청)

Coming Soon!
<기초과정 I> 온라인 2기 모집!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 <기초과정 I>이 다시 한번 온라인 수업으로 찾아옵니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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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신청 기간 : 2019년 3월 26일(화)~2019년 4월 12일(금) 밤 12시까지

과신대 연구모임을 소개합니다!

2017년 초부터 과신대 연구모임에 참여해서 자연과학, 철학, 신학의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과 “자유의지,” “뇌과학과 인간” 등에 관한 논문과 책을 같이 읽어왔습니다. 올 3월부터는 1년 반 정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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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페미니즘의 눈을 통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고찰하다

페미니즘과 기독교 | 강남순 | 동녘 | 2017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13회 콜로퀴움 후기

"삼위일체 창조자와 그의 피조세계로서의 세계" 강의 후기 (심기주, 과신대 기자단)

판넨베르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관계 맺으면서도, 자신과는 구분 짓는 그 독특함에 굉장히 주목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운 주님이나 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빠’라고 굉장히 친밀하게 칭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님이 아니야(요18장)’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자기 자신과 구분 지으셨다. 즉, 나사렛 예수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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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과정 II (4기) 엿보기

새로운 무신론에 대한 이해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교가 폭력적이고 반이성적이며 반과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만, 도킨스의 눈에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비춰졌고, 그의 주장이 또한 많은 이에게 환영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신학)을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거창한 웅변과 변증이 겉으로는 진리 자체를 변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진리 주장을 변호하는 것에 급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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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칼 W. 가이버슨, 프랜시스 S. 콜린스
새물결플러스 | 2019


서평 | 이신형

이 책은 결국 진화로 대표되는 과학과 창조로 대표되는 신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구의 역사와 다윈의 진화론, 하나님의 존재, 아담과 하와로 대표되는 인간, 그리고 빅뱅으로 알려진 우주의 시작까지 다양한 주제를 과학의 관점에서 또 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조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더보기)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이진호 | 행정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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