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기초과정 I>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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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시청 방법: 스마트폰에서 Gnowbe 어플을 다운로드(Android Google play store / Apple AppStore) 하신 뒤 회원가입을 하시고, 회원가입한 계정(이메일 주소)을 수강신청할 때 적어주시면 과신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도록 권한을 드립니다.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일시 : 2019.6.24 (월) 12:00 ~ 2019.7.7 (일) 24:00
✓ 과제 :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 과제 제출일: 2019.7.7 (일)까지 과신대 이메일로 제출 (scitheo.basic@gmail.com)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1만 5천원) 1만원 (대학생, 대학원생)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070-4320-212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고인류학, 진화생물학, 유전학 등의 발전은 성서해석과 전통적인 교리에 큰 도전을 주었다. 만약 인간이 진화했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의 죄와 타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대근동학과 구약학을 전공한 김구원 교수에게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에서부터 타락의 의미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 들어본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의 기원은 무엇이며, 타락에 숨겨진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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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2019년 7월 1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죄의 기원과 타락" (김구원 교수)

     휴식(8:20-8:30) 책 증정 이벤트 
2부 대담(8:30-9:30) 과학자와 신학자의 대화 (김구원 교수, 오세조 목사, 최경환 실장)

 

 

강사 소개

김구원 교수 (개신대학교대학원 구약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시카고 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가릿 문헌과 사무엘상 본문을 비교문학적으로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브릴 출판사의 세계적인 구약 연구 시리즈인 의 145번째 책으로 출판됨으로써 한국인 최초로 이 시리즈의 저자가 되었다. 현재는 서양고대문화사학회 연구이사이며,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궁금해? 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사무엘상(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 

 

패널 소개

오세조 목사 (팔복루터교회, 루터대학교 강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미국 House Research Institute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다가 귀국해서 루터대학교에서 목회자 과정을 마쳤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구약전공)을 수료했으며, 현재 용인에 위치한 팔복루터교회를 담임하며, 루터대학교에서 '신학과 과학', '자연과학의 이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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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0) 2019.06.0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느 9:6)

 

박혁순 (조직신학, 한일장신대 겸임교수)

 

 

현재 다중우주론(또는 평행우주론)이 직면한 문제는, ‘과연 그것이 과학인가? 정작 형이상학 또는 추리소설이 아닌가?’ 하는 비판과 반론이다. 이것은 대개 우리 우주의 유일성을 지지하는 실험물리학자들에 사이에서 특히 그러하다. 다중우주론이 실험적으로 입증되지 않는 (또는 입증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같은 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혹독한 평가를 받는다.

 

다른 한편, 대중적으로 다중우주론을 소개하고 있는 이론물리학자 브라이언 그린과 미치오 카쿠는 그것이 공허한 사변이 아니라 기존의 천체물리학 및 미시물리학이 심화되면서 얻어진 결과라는 입장에 서있다. 브라이언 그린은 이렇게 말한다. “과학의 고속도로 중 통행량이 가장 많은 길들을 골라 서서히 주행하다 보면 다양한 다중우주 후보들과 마주치게 된다. 이들은 찾는 것보다 피하는 것이 더 어렵다.” 그리고 “물리학이 잡고 있던 자동차의 운전대를 수학에게 넘겨주면 어김없이 다중세계로 접어든다”라고! 이렇게 해당 연구자들은 다중우주론이 수학적 모순이 없는 수준까지 지향하기 때문에 억측과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고 역설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중우주는 어떠한 양태로 존재한다고 설명될까? 몇가지 모형을 상정할 수 있다고 하지만,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거품의 모양처럼 존재할 수도 있고, 잘려진 식빵처럼 우리 우주와 무한히 겹쳐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면 다중우주 또는 평행우주의 규모는 어떠할까? 가쿠와 그린은 “우주에는 매 10^10^122m 마다 우리와 완전히 똑같은 복사본이 존재한다”고 할 정도다. 그러니 우리 우주 역시 “단순한 평행우주가 아니라 ‘평행우주 속의 평행우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내가 다중우주론을 통해 신학적 사유실험이 촉진되는 이유는 바로 물질에 대한 우리의 전이해가 수정되어야 할 지점에 있다. 가령 인류의 역사 이래 현재까지 우리는 물질 또는 물질성을 가장 신뢰할만한 근거로 여겨왔다. 특히 “물질 개념의 명확성과 단순성(강경한 실재론)은 많은 과학자들과 철학자들에게 큰 호소력을” 지녀왔고 “그것은 그들의 지식과 존재의 기초가 될 견고하고 이해 가능한 토대를 향한 종교적 열망을 만족 시”켰다.” 특히 근대 유물론자들에게 있어서 물질이란 ‘진짜로 존재하는 것’이자 물적 조건이 인간의 정신과 사회체제를 규정하는 유일한 근거라고 확신하는 편에 섰다. 비록 그리스도교 신학이 ‘하나님’을 물질에 앞서는 존재의 근원 혹은 제1원인으로 상정해왔다 하더라도, 대개 물질이란 우리 눈앞에 드러나 감각될 수 있기에 ‘최소한도로’ 정신과 관념에 대비되는 분명한 실재로 믿어져 왔다. 더구나 근대과학의 발전에 의해 하나의 강한 신념의 형태로 ‘과학주의’가 등장하면서는 정신, 영혼, 사후세계, 신 등은 증명될 수 없는 의혹의 영역으로, 반대로 물질만이 반복적 실험과 증명이 가능한 신뢰의 영역으로 고착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다중우주론의 등장은 우리의 세계, 아니 우리 우주에 있어서 ‘분명한 것’, ‘실재하는 것’으로서 분명한 기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었던 물질적 영역, 즉 우리 우주의 물리적 실제가 임의적·우발적·상대적이라는 문제를 함의하고 있다. 다시 말해 수많은 평형우주 가운데 “어떤 곳은 우리와 똑같고, 또 어떤 곳은 조금 다르지만, 대부분은 우리가 사는 세계와 완전히 딴판”이라는 추정이 나오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주마다 다른 상수값을 지니고 있고, 그런 우주는 대략 10^124개 또는 10^500로 추산된다.

 

 

더 나아가 물질 또는 물질성은 그저 수학식(수학식), 즉 비물질의 관념이나 추상일 뿐일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이론에 대한 좋은 유비는 주로 청소년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즐기는 3D 게임이다. 그 게임 안에는 이른바 ‘물리엔진’이라는 것이 있어서 가상공간에서 포탄이 날아가는 속도가 정확히 구현되어 있고 포탄과 차량의 충돌에 따른 결과도 실제 공간에서처럼 나타난다. 만약에 그 가상공간에 사는 인지적 존재가 있다면 그는 그 세계가 실재하는 세계라고 믿을 것이다. 이렇듯 컴퓨터 프로그램 언어나 수식(數式)으로 짜인 우주의 구조 속에서 인지적 존재들은 정작 비물질의 것들을 ‘물질로서’ 느끼게 설정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다른 우주들과 무한히 겹친 상태로 우리와 함께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호 간에 그 물질적 실제를 감각적으로 경험하지 못하거나 실험하지 못한다면 과연 우리가 간주해온 그 물질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흙, 공기, 물, 불, 쇠, 나무 등과 같은 것들이 저편의 우주에서는 도무지 현상되지도 인식되지도 못한다면 물질성이라는 것은 얼마나 임의적일까? 이렇듯 우리가 물질이라고 확정한 것, 물질이기 때문에 보편타당한 기준이라고 단정한 것이 여타의 우주에서는 비물질 또는 일종의 ‘관념’일 수 있는 것이고 최악(?)의 경우 이 모든 우주들은 ‘무’(無) 또는 ‘공’(空)이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혹이다. 사실 이렇게 우주를 바라보았던 이론이 불교 형이상학이었으며, 흔히들 알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하는 구절의 내용이다. 흥미롭게도 붓다는 이와 관련해 “모래알 같이 수많은 중생에, 모래알 같이 수많은 세계가 있는데, 그 모두가 개별적 실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다 환상도 아니”라고 했다.

 

다른 한편, 기독교 역사 2천년 동안 플라톤의 ‘이데아-현상계’ 구도의 이원론이 기독교 신학에 뿌리 깊게 내려 있는 문제로 하여 근대기 이후 수많은 방식의 비판과 반성이 이루어져 왔는데, 다중우주론의 도전으로 이것을 극복하기가 다시 요원해질 것 같은 우려가 든다. 왜냐하면 참으로 있는 세계, 영속적으로 있는 실제가 우리 우주가 아니라고 하니까 말이다. 이런 생각, 기우일까?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