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사무국 소식 201908

 

토요일 하루 종일 중고등학생들을 모아서

캠프를 진행하겠다는 무모한 도전!

 

그 도전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30여 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즐겁게 캠프를 진행했습니다. 

 

두 번째 캠프라서 그런지 조금 여유가 생겼네요.

무엇보다 찬양인도를 최경환 실장에서

이진호 간사로 바꾼 것은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 청소년 캠프 후기: https://www.scitheo.org/396

 

 

우종학 교수님의 새로운 책,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과학과 신앙에 대한 대중강연을 많이 해 오셨는데

사실 우종학 교수님의 전공은 천체물리학

그중에서도 블랙홀이라는 사실, 아셨나요?

 

저희 사무국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겠죠?

8월 22일(목) 저녁에 청어람ARMC와 함께

우종학 교수님께 블랙홀 특강을 듣는 시간을 준비했습니다.

곧 홍보물이 나갈테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책을 썼다고 하니

자녀들을 데리고 오셔도 좋은 거 같습니다. 

(그나저나 자리가 좁으면 어쩌죠?^^;;)

 

 

과신대 포럼을 기억하시나요? 

지난 2017년 11월에 "포스트휴먼과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제로 제3회 포럼을 개최하고

그 이후로 진행하질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꼭 개최하려고 하는데요.

 

감사하게도 9월에 버클리연합신학교에 과학신학을 가르치시는 로버트 J. 러셀 교수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 과신대와 유관 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 "과학신학 심포지엄"을 준비했습니다. 

 

심포지엄 주제는 "신, 인간, 자연"입니다. 

세 가지 주제를 나눠서 각각 전문가가 발표를 하고

마지막으로 러셀 교수님의 강의와

국내 과학신학 전문가들의 패널 토론도 준비 중입니다.

 

역시 자세한 일정과 소식은 추후에 저희 홈페이지를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마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열리는 과학신학 학술 행사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기대해주세요~

 

 

혹시 "바이오로고스"Biologos라고 아시나요?

 

과신대처럼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연구하고 교육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관으로 인간 게놈 프로젝트 총책임자이자 <신의 언어>로 유명한 프랜시스 콜린스가 세운 단체입니다. 사실 과신대의 롤모델이기도 하죠.

 

바이오로고스 홈페이지에 가면 Common Questions라는 코너가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평소에 궁금했던 내용을 잘 정리해서 올린 칼럼입니다. 

 

과신대 정회원이자 [과신책] 코너를 통해 꾸준하게 서평을 써 주신 김영웅 박사님께서 바이오로고스의 허락을 받고 이 칼럼을 번역해주셨습니다. 앞으로 과신대 홈페이지를 통해 하나씩 글 보따리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기대해주세요. 유익한 내용이 정말 많습니다.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https://www.scitheo.org/397

 

 

마지막으로 과신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1. 자비의 하나님, 과신대가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를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가 되게 해주십시오. 하나님을 부인하고 무시하는 시대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널리 전하는 단체로 쓰임받게 해주십시오.

 

2. 과신대를 섬기고 후원하는 교회와 후원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함께 꿈꾸고 지성의 제자도를 위해 헌신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지혜와 은총을 내려주시옵소서. 과신대가 정직하고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도록 저희를 말씀으로 늘 인도해주십시오.

 

3.  모든 영역과 삶의 현장에서 주인되신 하나님, 한국교회가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세상과 사회 속에서도 주님의 빛을 드러내고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로 해주십시오. 학문의 영역에서 특별히 과학을 통해서도 주님의 이름이 높아지게 하시고, 주님의 주권이 드러나게 하시옵소서.

 

4. 주님, 과신대가 진행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사역 위에 함께 해주십시오. 가장 치열한 학문의 영역에서 과학과 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학생들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하고자 애쓰는 교사들에게 힘을 주시옵소서. 과학신학 심포지엄과 콜로퀴움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기회가 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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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발전할수록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이 구체화된다

 

강응섭 (예명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정신분석학-리더십학 교수)

 

 

‘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계통발생적 측면에서나 개체발생적 측면에서 줄곧 제기되어 왔다. 인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역사 이전 시기에는 그림, 건축 등 비언어적 형태로, 역사 시기에는 언어적 형태로 기록을 남겼다. 비언어적 형태는 언어적 형태 속에 스며들어 그 흔적을 공유해 왔다.


우리는 창세기 2장에서 그 흔적을 본다. 자연의 초기 모습, 이미지로 그려지는 역사 이전 시기의 그 모습은 역사 시기의 산물인 언어를 통해 드러난다. 실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서 언어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언어는 역사 이전 시기의 모습을 역사 시기에 전하려고 도입한 고난도의 기술(Technic)이다. 그 기술을 터득한 이래로 인간은 계속해서 그 기술을 정교하게 만들어 왔고, 그것을 이용해 기록 문화를 남겨 왔다.


철기시대의 산물인 ‘쟁기’로부터 ‘정보화 기술’과 ‘디지털 기술’이 대두되기까지 우리는 지금, 네 번에 걸친 산업혁명의 산물들과 공존하며 살고 있다.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과 이어져 있다. 창세기 2장은 그 질문에 근거하여 서술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다”(5절)는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6절)와 대조를 이룬다. 6절은 1장 2절의 ‘깊음(테홈)’에서 시작되는 물의 오름과 연관된다. 즉, 5절과 6절의 대비는 물의 내림과 물의 오름의 대비, 물의 없음과 물의 있음의 대비를 보여 준다.


우리는 보통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고 말하는데, 창세기 2장에서는 물이 아래서 위로 올라온다고 말한다. 물이 아래서 위로 올라오는 모습은 안개 낀 새벽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지면을 적실 정도로 충분한 안개가 올라왔다. 대류 현상의 물기로 인해 충분한 수분을 머금은 흙은 하나님이 사람을 짓는 재료가 된다. 그리고 바람은 지어진 사람을 말린다. 그래서 7절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라고 기록한다. 기록 문자가 없던 시기의 모습을 기록 문자로 정리함으로 인간의 기원을 담고 있는 5~7절은 ‘나는 누구인가’를 질문하는 이에게 큰 실마리를 제공한다.

 

바울은 이 구절을 고린도전서 15장 45절에서 다루었다. 그러면서 ‘생령’(산 영)과 ‘살려 주는 영’을 대비한다. ‘산 영’(a living soul, ψυχη, psyche)은 창세기 2장 7절의 네페쉬(nephesh)의 번역이다. 기독교에서 보통 ‘영혼’이라고 말하는 ‘프시케’는 심리학(Psychology), 정신분석학(Psychanalysis)의 어근이 된다. 히브리어 ‘네페쉬’는 목구멍을 지칭하는 해부학적 용어이자 ‘갈증’이란 의미를 지닌 정동적 용어이다. ‘네페쉬’는 살기 위해 마시고 먹고 호흡하는 통로인 목구멍이자, 자신의 갈급함을 표현하는 말을 전달하는 통로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의 최초 이름(명사)은 ‘네페쉬’였다. 그 ‘네페쉬’가 곧 ‘프시케’다. 살려 주는 마지막 아담인 예수로만 부활을 맞이하는 자가 ‘산 영’이다.

 


인문학의 역사는 ‘프시케’에 관계된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그리스 인문철학자들에 의해 ‘프시케’는 인간 중심의 세계를 만드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되었다. 이런 세계관은 산업혁명의 배경이자 후경이 된다. 산업혁명은 인간의 삶에 큰 변화를 주었지만 그에 따른 역효과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프시케’는 이전보다 더, 새로운 형태의 고뇌를 하게 되었고, 고뇌하는 인간의 ‘프시케’에 관한 연구가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 의해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진행되었다. 인간 고뇌에 대한 탐구와 산업혁명의 진전 시기는 서로 겹친다. 프로이트(1856~1939)는 이 둘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던 접점 시기에 활동했다. 그는 ps(psi, 프사이)-system을 구상하면서 몸 밖과 몸 안의 관계를 정립하고자 그 과정과 진행을 도면으로 그렸다. 물론 프로이트의 도면은, 여러 다양한 학자들의 견해 중, 하나의 견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의 도면을 간과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프로이트는 제2차 산업혁명이 한창 여물어 가던 시기에, 곳곳에서 나타난 폐단의 인과관계를 연구했던 신경학자였다. 그는 그 문제를 진단하고자 몸 밖과 몸 안을 대조시키면서 ‘감각-기억-무의식-의식’이라는 가교 장치를 마련한다. ‘무의식’은 몸 밖과 몸 안을 잇는 하나의 장치다. 프로이트는 이걸 ‘비계’(飛階)라고 불렀다. 건물을 짓기 위해 세우는 장치에 비유한 것이다. 비계를 통해 작업하다 보면, 도면에 그려진 것이 현실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하나님이 흙으로 빚고, 그것에 생기를 불어 넣어 아담이라는 생령이 되었듯이.


하나님의 이런 일하심은 네페쉬, 프시케로서의 인간을 만들었다. 창세기 3장은 이 인간이 어떤 과정을 통해 하나님과 자연과 사귀는지를 보여 준다. 에덴에서의 삶 기록은 기록 이전의 역사를 잘 나타낸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다스릴 자(1장 26절)로서 네페쉬인 아담을 만들었다. 그 일을 할 공간인 에덴에 아담을 데려다가 다스리는 일을 수행하게 했고, 그 일을 도울 하와도 주었다. 다스리는 일은 각 실재에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다. 다스리는 일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술은 무엇이며, 염두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아담에게 규율을 주었고, 아담은 그것을 준수하는 가운데 실재와 소통하면서 다스림을 수행해야 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이 제시한 규율은 아담과 하와에 의해 파괴되었다. 하나님이 심혈을 기울인 네페쉬로서의 아담과 하와, 이 둘은 하나님의 규율을 이뤄내지 못했다. 왜일까? 뱀이 등장하여 소통을 방해했기 때문이고, 뱀의 제안을 듣고 방황이 부족했던 탓이다. 하나님의 제안을 염두에 두었다면 더 방황했어야 했다. 속는 자는 방황하지 않지만, 속지 않는 자는 방황한다.


왜 방황이 어려운가? 하나님이 그렇게 지어서인가? 인간이 속임수를 피할 능력을 개발하지 못해서인가? 다시 말해, 속임 구조로 만들어져서인가, 인간이 속임에 안주해서인가? 이 두 가지 질문은 수렴되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양날의 주장처럼 이어져 왔다: <나는 존재한다 그러므로 나는 생각한다>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 전자는 방황 없는 ‘믿음의 시대’를 대변하고, 후자는 방황하는 ‘이성의 시대’를 대변한다. 의심은 근대를 출범하게 했다. 의심은 속지 않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에서 비롯되었다. 속지 않으려는 인간의 무기는 의심이다. 그것은 곧 이성에 대한 신뢰였다. 


그런데 이 신뢰 역시 속임임을 밝힌 연구가 제시되었다. ps(psi, 프사이)-system을 정립한 프로이트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뒤엎었다. 믿음의 시대에서 이성의 시대로 이어져 온 서양사회는 또 다른 형태의 속임 구조를 밝힌 프로이트로 인해 적잖이 불편해했다. 프로이트의 이러한 주장이 무신론적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 대한 교리에서 비롯된다. 정말 속고 있는 이가 누구인지, 누구의 의심이 믿음에 근거한 것인지를 깊이 상고해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하나님이 지은 인간의 원래 모습이 어떠했는지? 기록 문자가 없던 시기의 일을 기록 문자로 남긴 창세기 도입부로 돌아가 논의를 다시 시작하면 프로이트의 작업이 의미 있지 않을까? 


과학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에 관한 견해가 차곡차곡 쌓이면서 지금까지 주장되던 이론은 새로운 질문을 받게 된다. 이런 질문을 통해 이전에 내렸던 주장을 새롭게 생각해 보는 기회가 주어졌다. 과학이나 기술이 발전한다는 것은, 새로운 과학 이론이나 기술이 제기된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으심, 하나님이 갖고 있던 도면을 밝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대 환경에서 ‘나는 누구인가’에 접근하는 또 하나의 방식은 무엇인가? ‘나는 속고 있는가’, 이 질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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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신학 심포지엄 발표자를 모집합니다.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에서 “신, 인간, 자연”과 관련된 학제 간 연구를 발표할 연구자들을 모집합니다.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은 “신, 인간, 자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신학, 철학, 과학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초대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종교와 과학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해온 버클리연합 신학대학원(GTU & CTNS)의 로버트 J. 러셀 교수의 초청강연과 과학신학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리뷰 및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하고 네트워크하는 장이 될 것입니다.


발표 주제는 신, 자연, 인간과 관련된 과학, 철학, 신학 사이 다양한 학제 간 연구입니다. 구체적인 연구 주제로는 아래와 같습니다. 

 

- 과학과 철학, 신학 학제 간 연구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연구방법론
- 신학에서 논의되는 궁극적 실재인 신 개념과 철
학적 자연주의 등에서 다루는 자연 개념 사이의 비교
- 우주, 생명, 인간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빅뱅
우주론, 진화론과 신학적 창조론 사이의 양립가능성
- 인간에 대한 환원론적-물리주의적 이해와 신학적 이

- 생물의 진화역사 내 멸종과 죽음, 먹이사슬 등 자연악과 신정론
- 유전자 편집기술, 트랜스휴머니즘, 인공
지능과 기독교
- 종교의 기원에 대한 고인류학적 이해와 신학적 이해 사이 양립가능성
- 몸-마음 문제에 관한
과학적, 철학적, 신학적 이해와 인간의 영혼 이해
- 양자역학의 비결정성, 카오스 이론과 신의 섭리
- 자연법칙
과 기적에 대한 철학적-신학적 이해
- 인류가 초래하고 직면한 환경위기와 기독교 등을 포함합니다.


발표를 원하시는 연구자께서는 250자 내외의 초록을 과학신학 심포지엄 조직위원회 (sym.scitheo@gmail.com)로 8월 30일까지 제출하시기 바랍니다. 

 

선정된 연구자는 7페이지 분량의 최종 원고와 발표에 사용할 PPT를 심포지움 2주 전에 제출해야 합니다.


관련 연구자와 선생님들께서는 많은 참여와 홍보 부탁드립니다.

 

* 문의 및 연락: 070-4320-2123

* 과학신학 심포지엄 프로그램 안내: https://www.scitheo.org/403

 

과학신학 심포지엄 안내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은 “신, 인간, 자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신학, 철학, 과학 학제 간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과 연구자들을 초대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은 종교와 과학 학제 간 연구를 선도..

www.scitheo.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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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신학 심포지엄 안내

 

국내 과학신학 연구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을 개최합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신, 인간, 자연”이라는 주제로 신학, 철학, 과학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논문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준비했습니다. 특별히 이번 심포지엄은 종교와 과학의 학제 간 연구를 선도해온 버클리연합신학대학원(GTU & CTNS)의 로버트 J. 러셀(Robert J. Russell) 교수님을 모시고 과학신학의 주요 주제들을 소개받습니다. 과학신학의 연구 성과와 국내 학자들의 연구를 소개받는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주제: 신, 인간, 자연 God, Human, Nature

 

◎ 일시: 2019년 9월 30일 오후 2:00 - 9:00
 장소: 강남새사람 교회 (강남구 삼성동 113번지 HS타워 지하 2층, 선정릉역)

 

☞ 등록 신청: https://bit.ly/2kzeb3i

 

 프로그램

 

○ 세션1 (God, 신)
2:20 - 2:50 - 세션1 주제 리뷰톡, "자연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속 창조" (장로회신학대학교 김정형 교수) 
2:50 - 3:10 - 세션1 주제 심화톡, "하나님의 세계-내-행위: 아서 피콕을 중심으로" (명지대학교 정대경 교수) 
3:10 - 3:30 - 질의응답 및 토론


 세션2 (Nature, 자연)
3:30 - 4:00 - 세션2 주제 리뷰톡, "과학이 본 자연, 신학이 말하는 자연" (미래신학연구소 강태영 교수) 
4:00 - 4:20 - 세션2 주제 심화톡, "동물행동학의 인간학적 도전과 신학적 응답: 새로운 포스트휴먼 신학을 향하여" (명지전문대학 이성호 교수) 
4:20 - 4:40 - 질의응답 및 토론


 세션3 (Human, 인간)
4:50 - 5:20 - 세션3 주제 리뷰톡, "신의 지능과 사물의 지능: 지능의 본성에 대한 신학적 연구" (한신대학교 전철 교수) 
5:20 - 5:40 - 세션3 주제 심화톡, "인간은 특별한 존재인가? 존 호트의 information 개념과 장자의 氣 개념을 중심으로" (감신대학교 장재호 교수)
5:40 - 6:00 - 질의응답 및 토론
6:00 - 7:00 - 저녁식사 및 국외-국내 과학신학 단체들 소개


 세션4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7:00 - 8:00 - “Five Issues at the Frontier of Theology and Science” (GTU & CTNS, Robert J. Russell 교수)
8:00 - 9:00 - “한국에서의 과학과 신학”
                        부산대학교 김유신 교수
                        서울대학교 우종학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윤철호 교수
                        서울대학교 최승언 교수
                        아주대학교 허 균 교수


 공동주관: 과학과신학의대화, 미래신학연구소, 이수포럼, 한국과학생명포럼, 한신대종교와과학센터

 공동후원: 강남새사람교회, 과학과신학의대화, 미래신학연구소, 한국연구재단

 문의 및 연락: 070-4320-2123,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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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초과정I> 모집 안내 (8월)

 

온라인 <기초과정 I>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영상 시청 방법: 스마트폰에서 Gnowbe 어플을 다운로드(Android Google play store / Apple AppStore) 하신 뒤 회원가입을 하시고, 회원가입한 계정(이메일 주소)을 수강신청할 때 적어주시면 과신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도록 권한을 드립니다. (* 자세한 안내는 https://www.scitheo.org/386를 참고하세요.)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일시 : 2019.8.1(월) 12:00 ~ 2019.8.15(목) 24:00 
✓ 과제 :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 과제 제출일: 2019.8.15(목)까지 과신대 이메일로 제출 (scitheo.basic@gmail.com)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대학생, 대학원생 1만 5천원)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070-432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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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왜 나에게 이런 일이?

[과신책] 학자의 읽기

 

 

하나님께 소리치고 싶을 때: 욥기

크레이그 바르톨로뮤 | 이레서원 | 2017

 

김영웅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가장 흔한 질문 중 하나일 것이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 질문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를 향한 신뢰, 그리고 지금 자신이 처한 어려운 상황 사이에서 혼란을 일으킬 수 있으며, 자칫하다간 자신의 신앙까지도 잃어버릴 수 있는 단초가 되기도 한다.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이 자신의 고난과는 아무 상관도 없이 느껴지고, 자신만 숨 막히는 어둠 속에 홀로 덩그러니 버려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고난과 훈련의 유익함을 배울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는 '욥기'가 아닐까 한다. 하나님과 사탄과의 대화 가운데, 왜 욥이 고난 받게 되는지를, 욥기의 시작부터 우리 독자들은 쉽게 알 수 있지만, 정작 불가항력적인 고난을 실제로 받았던 욥은 그 고난이 끝난 이후에도 그 이유를 몰랐다. 다만, 그 고난으로 인하여 욥은, 욥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친구들과의 대화 가운데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게 된 영적 교만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을 마침내 대면하고 이를 회개하게 된다. 이후 욥은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고, 하나님께선 욥에게 고난 이전의 모든 소유보다 갑절의 축복을 더하여 주신다. 

고난을 겪고 나서, 그 고난이 왜 자신에게 임했는지 정확히 알게 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아니, 정말 그 직접적인 이유를 우린 알 수 있기나 한 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이 지나고 나서야 그 고난을 회고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고, 비로소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극심한 고난 중에서는, 절망 가운데 깊이 빠져 있다가도 간헐적으로 온전한 분별력을 되찾기도 하고, 이내 다시 끔찍한 고통 속으로 되돌아가기도 하는 사이클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고난됨은 어쩌면 이러한 반복적이고 비생산적인 크고 작은 감정과 고통의 요동과, 그 때문에 늘 정체되어 수렁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경우, 자신에게 찾아온 고난이 자신이 지은 죄의 결과로 인한 저주일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알기 전보다 오히려 더욱더 힘든 내면세계의 혼돈과 붕괴를 경험하게 되기도 한다. 

크레이그 바르톨로뮤는 그의 책, '하나님께 소리치고 싶을 때: 욥기'에서, 욥기가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것은, '모든 고난이 죄의 결과로 빚어지는 것이 아님'을 말한다. 뿐만 아니라,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 그들 생각의 저변에 깔린 인과응보적인 논리를 물리치시고,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는 대답만을 하신 사건에서도, 우린 죄와 고난의 인과적인 관계가 항상 성립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고난이 자신의 죄와 무관하다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답답하겠지만, 이 문제에 대한 정답은, "모른다"거나 "context-dependent"하다는 것이 가장 '성경적'일지도 모르겠다. 

고난의 원인(Why)을 밝혀내는 것보다는, 어쩌면 그 고난으로부터 무엇을(What) 얻을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하나님의 목적은 Why보다는 What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욥의 친구들은 모두 욥에게 닥친 고난의 원인(Why)에 중점을 두고 조언 아닌 조언을 했다. 그들은 모두, 순종은 복으로, 죄는 심판으로 인도한다는, 기계적이고 단순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믿었고, 그 방정식에 하나님을 대입하여 기계적으로 얻은 해와 욥의 상황이 일치하지 않음을 간파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저자는, 그 친구들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What)이 지닌 의미를 알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곧 하나님은 종종 예기치 못한 방식,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방식으로 일을 행하신다는 점(What)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알고 있던 일반적인 해법을 욥의 특수한 사례에 적용하려 했다. 마치 하나님을 다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고 욥의 고난은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식에서 벗어나는 것처럼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말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어리석음일 뿐이었다. 그들의 하나님은 방정식에 갇혀 그 규칙대로 움직이는 존재였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대로 그들은 하나님(What)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하나님의 목적은 욥이 그분을 알게 되는 데에 있었다고 해석한다. 그것도 이성적인 논리에 의해서가 아닌 생생한 체험을 통해서 말이다. 저자 역시 Why가 아닌 What에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 세계는 광대하고 다양하며 불가사의하기까지 하다. 인간은 피조물로서 그 세계를 통제할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일을 쉽게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불가사의한 모든 것까지도 통제하시는 분이시다. 불가사의는 우리의 이해를 넘기 때문에,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이해를 넘어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광대하고 경이로운 계획 가운데서는, 부당한 일들까지도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에 쓰임 받게 되는 일도 허다하다. 하나님은 그 일들까지 사용하셔서 모든 것을 바로 잡으시고, 심지어는 이전보다 더 낫게 만드시기도 한다. 욥은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런 상황까지도 그분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데 사용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어찌 보면 고난도 하나님을 더 알아가는 과정의 일환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당연한 진리이겠지만, 인간은 불완전하고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절대적인 기준을 창조주인 하나님의 섭리에서 찾는다면, 고난을 당할 때 본능적으로 하는 왜(Why)의 질문 대신, 그 고난으로 인해 깨닫게 될 무엇(What)에 좀 더 초점을 둘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하며 과거지향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현재와 미래까지도 스스로 파괴해 버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그 고난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하나님의 메시지에 그를 향한 신뢰와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철저히 하나님 앞에 솔직히 드러내어 귀를 기울여 보자. 적어도 고난을 당하고 있는 이웃에게 욥의 친구들과 같은 우를 범하지 않을 순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앞으로도 또 맞이하게 될 고난에 대한 면역이나 근력도 생겨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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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판교 북클럽 7월 모임 후기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일시 : 2019년 7월 19일(금) 오후 7시
장소 : 성공회 분당교회(https://www.skhbundang.or.kr/)
책 : 피터앤즈의 ‘성경 영감설’

 

 

— 굽먹이냐 삶먹이냐.

 

부먹/찍먹보다 더 유서 깊은 논쟁이 성서 번역에서의 굽먹/삶먹 논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유월절에 관한 율법에서 (히브리어 원문 상)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는 ‘구워’ 먹을 것을, 신명기, 역대하에서는 ‘삶아’ 먹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NIV에서 ‘구워’ 먹는 것으로 통일된 것은 그 나름의 ‘번역철학’에 기인한 것이었군요.

 

“출 12:12-13(“...그 고기를….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와 신 16:5-7(“... 그 고기를 구워먹고…”)에서 출애굽기의 강조점은 아주 분명하지만 신명기의 경우 히브리어 원문에서 ‘삶아서[베잇-쉰-라멛] 먹고’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NIV 신명기의 구절이 ‘삶다’의 의미가 아니라 ‘굽다’의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NIV가 이렇게 다룬 이유는 동일한 법이 서로 모순되게 진술되었을 리가 없다는 성경관에 근거한 ‘번역철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언어적 사실을 숨겨서는 안된다. 대하 35:13절도 ‘삶아’인데 NIV는 ‘굽고’로 번역되었다.”(pp. 127-128 요약)

 

뭐 그렇다고 저자 피터앤즈가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강조를 하지는 않습니다. 원어를 공부하면 뭐하겠습니까? 번역을 하겠지요.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저는 이 말 보다는 “번역은 창작이다”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된 인간의 책 성서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66권 정경이 완성된 것은 약 4세기경입니다. 확정된 성서 목록은 367년 아타나시우스 서간에 처음으로 등장하죠. 성서가 ‘하나님의 책’이라고 강조되었던 비중에 비해 ‘인간의 책’이라는 점은 거의 강조되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150년간 고대 근동 문헌들의 발견은 성서를 새로 보게 합니다. 저자는 “성서는 역사적 산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둘은 한쪽만 선택할 수 있거나 충돌되는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한 성육신 유비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정경 형성사에서 보듯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인정한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죠. 성서는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전 인류에게도 가치있는 고전이겠습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 구약은, 성서는

 

다신교적 환경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신은 제국의 신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노예들의 신이었습니다. 인간을 노예가 아닌 존귀한 자로, 심지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여긴 것은 당시 사회상에서는 아주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입니다. 성서가 쓰여진 시대의 메시지가 그러할진대 노예 제도의 정당성 제공을 위해, 여성 인권 차별의 근거와 성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용도로 성서가 이용되는 것을 정경 66권이 이미 완성되고 인쇄술과 휴대용 전자기기의 발달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구약성경의 권위 혹은 규범성에 대해 숙고할 때 성경의 성육신적 차원을 떼어놓아서는 안된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규칙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경의 성육신적 요소는 오늘까지 지속된다. 각 세대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 세대가 살고 있는 세계와 복음이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무대 뒤의 하나님’

 

구약성서 안의 제각기 다른 하나님에 대한 묘사들은 다양한 색깔과 질감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초상화를 이루는 것과도 같은데요. 한편, 인간의 책이기도 한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과 ‘무대 뒤의 하나님’ 즉 실재의 하나님에 대한 구분된 이해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성서를 가까이 하는 우리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 작은 소회

 

이번 모임에서 어떤 분은 삶은 옥수수로 입맛을 돋궈 주셔서, 어떤 분은 미국 출장 후 집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참석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먹거리를 장만하고 챙기는 것, 출장으로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는 것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인데 말이죠. ^^

 

— 다음 모임 안내

 

다음 모임은 8월 23일(금) 저녁 7:30분에 피터 앤즈의 ‘성서 영감설’ 4장~끝까지 함께 읽고 토론하게 됩니다.
분당/판교 지역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참석하실 분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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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기초과정 I> 상시 모집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초과정 I>
글로벌 마이크로러닝 플랫폼 
Gnowbe를 만나 
어디에서든 더 쉽게 만나고,
더 재미있게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과신대 <기초과정>이란?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온라인 <기초과정 I>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 개요]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1. 과학이란 무엇인가? / 2강-2. 창조의 광대함 / 2강-3. 창조의 역동성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1. 창세기 1, 2장은 과학일까? / 4강-2. 창세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등록 : 상시 모집 
✓ 과제 : <기초과정 I> 온라인 프로그램 내 퀴즈 80점 이상 /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수강방법]

 

1. 온라인 <기초과정 I>의 모든 진행과정은 Gnowbe를 통해 진행됩니다. 아래 사용방법을 참고하셔서 앱을 다운받으신 후 안내에 따라 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2. Gnowbe 어플리케이션 또는 홈페이지로 접속해 과신대 <기초과정 I> 프로그램을 구매하시면 됩니다. 

3. 영상을 모두 시청하신 후, 우종학 교수님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을 A4 1장 내외 분량으로 작성하셔서 제출하시면 수료가 됩니다. 

4. 수료자는 매월 1일과 15일에 개인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5. 궁금한 점이나 문의사항이 있으면 070-4320-2123(과신대 사무국)으로 연락주세요. 

 

 

[사용방법]

 

1)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 스마트폰에서 Google Play(안드로이드) 또는 App Store(iOS)를 이용해 “Gnowbe(그노비)”를 다운받으세요.

 

* 컴퓨터로 접속을 원하시는 경우 web.gnowbe.com 으로 접속하신 뒤 회원가입(또는 로그인)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 회원가입

 

Gnowbe 어플리케이션을 누르면 
첫 화면이 나옵니다.

회원가입을 위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GET STARTED)를 눌러주세요.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단계입니다.

이름과 성을 차례대로 입력하시고

아래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NEXT)를 눌러주세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번호와 
이용 국가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CONTINUE)를 눌러주세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해서 올려주시고,

개인보호정책에 동의하는 
버튼(하얀색 작은 네모)을 클릭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START LEARNING)를 
눌러주세요.

 

 

3) 시작하기

로그인 하신 뒤 
내 라이브러리(My Library)로 들어가시면

과신대 기초과정 수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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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기초과정II> 5기 모집

과신대 기초과정 II 5기를 모집합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과정 II> 5기를 모집합니다. <기초과정 II>는 <기초과정 I> 수료자만 신청 가능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대한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주간 과신대 자문위원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집중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6주 과정을 수강하고 과제를 성실히 제출한 분들에게는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19년 8월 28일 ~ 10월 14일 (6주, 9월 16일, 9월 30일 휴강) 저녁 7:15~9:45
✔︎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6층 (서울시 관악구 쑥고개로 122)

✔︎ 수강자격: 과신대 기초과정 I 수료자

✔︎ 수료기준: 5회 이상 참석 및 보고서 성실 제출 
  (불출석한 세미나의 경우 관련 내용 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 세미나 강사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영식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조직신학)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 등록비: 80,000원 (과신대 정회원은 50,000원)

  * 수강료 납부가 어려운 대학생/대학원생들에게 수강료의 일부를 소정의 장학금으로 지급해드립니다.

  * 세미나 조교로 간단한 업무 (간식, 강의안 등)를 담당할 분은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등록과 수강료, 장학금, 조교 과련 문의는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 문의 :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세미나 내용]

(1) 2019.8.26 : 세미나 개관 및 도입 - 과학과 신앙의 관계 (우종학 교수)
(2) 2019.9.2 : 과학과 신학의 관계: 갈등, 분리, 통합, 대화 (김정형 교수)
(3) 2019.9.9 : 성서해석과 과학 (김근주 교수)
(4) 2019.9.23 : 과학주의 무신론 (박영식 교수)
(5) 2019.10.7 : 창조론의 스펙트럼 (김정형 교수)
(6) 2019.10.14 : 발표 및 수료식 (우종학 교수)

 

[등록 안내]

1. 참가신청서 작성

2. 등록비 납부 - 계좌 이체: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입금할 때 입금자명에 본인 성명을 적어주세요.

** 등록비 납부가 확인되면 등록 완료 안내를 문자메세지로 보내드립니다.

** 등록 취소 및 등록비 환불은 강좌 7일 전까지만 가능하며 모든 환불은 거래수수료를 제외한 80% 금액만 환불해드립니다. (8월 26일 시작되는 강좌의 경우 8월 19일 자정까지 요청한 건에 대해서만 등록비 환불 가능)

 

(문의 : 070-4320-2123,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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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

  • 좀 심한 오역이 보이네요.

    번역 내용 중에,
    "진화적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과는 달리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명백하게 기독교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우주의 지적 원인과 생명 발달의 존재가 시험할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부분은 원문에
    "In contrast to EC, YEC, and OEC, Intelligent Design (ID) does not explicitly align itself with Christianity. It claims that the existence of an intelligent cause of the universe and of the development of life is a testable scientific hypothesis." 에 해당하는 영역인데요.

    블래즈 2019.08.08 21:43
  • 이건 제대로 번역하면,

    "명백하게 기독교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 "명시적으로 기독교를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가 되어야하고,

    "우주의 지적 원인과 생명 발달의 존재가" => 우주와 생명발달에 있어서 지적인 원인이 존재한다는 것이" 가 되어야합니다.

    특히 첫번째는 좀 악의적으로 비칠 수 있는 오역인데요... 다른 입장에 대한 소개라고 하더라도 성실하게 번역하고 감수하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블래즈 2019.08.08 21:52
    • 아주 좋은 지적입니다.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 실수가 보이네요. 편집부 측에서 말씀해주신대로 수정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악의는 전혀 없었습니다. 저의 미숙한 점 때문입니다.

      김영웅 2019.08.12 01:08 DEL
    • 그리고 자기소개를 해주시면 앞으로 과신대 관련 글 번역도 담당해주시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전 완전 처음이라 실수 투성이일 게 분명하거든요. 그런데 댓글 다신 거 보니까 저보다 잘 하실 것 같아요.

      김영웅 2019.08.12 10:24 DEL
  • 귀한 의견 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상에 실수나 잘못된 부분은 조금씩 수정해서 더 좋은 번역으로 만들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조언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08.14 11:47 신고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

 

 

바이오로고스는 진화주의, 지적설계, 창조론과 어떻게 다른가요?

How is BioLogos different from Evolutionism, Intelligent Design, and Creationism?

 

번역: 김영웅 / 감수: 박희주

 

 

바이오로고스는 기원에 대해서 진화적 창조론(Evolutionary Creationism)이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인간을 포함해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심을 확고히 믿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영감을 받은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임을 분명히 믿습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땅에서 생명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으로 진화과학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증거를 받아들이지만, 공개 토론에서 번번히 생물학적 진화를 수용한다고 하는 무신론적 세계관, 즉 진화주의(Evolutionism)는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진화주의는 일종의 과학주의로써 모든 실재는 원칙적으로 과학에 의해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바이오로고스는 과학이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것에 제한되어 있다고 믿으며, 기적과도 같은 초자연적인 사건 역시 실재의 일부라고 믿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Young Earth Creationism)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이 성서를 충실하게 읽는다면, 6천 년에서 1만 년 사이의 나이를 가진 젊은 지구를 받아들일 거라고 합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인간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와 공통조상을 공유한다고 보는 견해와 성서는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진화가 기독교에 직접적인 위협을 가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지구 창조론(Old Earth Creationism)에 따르면, 지구의 나이(46억 년)와 우주의 나이(137억 년)에 대한 과학적인 증거는 확고합니다. 이러한 견해는 창세기 1장에 나오는 6일간의 창조가 실제로는 오랜 기간을 의미한다는 전형적인 주장입니다. 오랜 지구 창조론은 모든 생명 형태의 공통조상을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종종 생명의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에 새로운 종을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창조하셨다는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을 받아들입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공통조상이나 진화를 배제할 경우, 현대 과학의 여러 분야에서의 과학적 증거들을 거의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경이 쓰인 문화적, 신학적 맥락이 창조 이야기에 대한 최선의 해석으로 이끄는 결정적 열쇠라고 믿습니다.

 

진화적 창조론,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랜 지구 창조론과는 달리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은 명백하게 기독교와 부합하지 않습니다. 지적설계론은 우주의 지적 원인과 생명 발달의 존재가 시험할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주장합니다. 지적설계론 논쟁은 종종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는 과학 이론 중 일부를 지적하면서 지적설계자의 직접적인 행동에 호소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합니다. 바이오로고스에서는 우리의 지적인 하나님이 우주를 설계하셨다고 믿지만, 어떻게 하나님이 자연현상을 관장하는지에 대한 자연스러운 설명 추구를 포기해야 할 과학적이거나 성경적인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과학적 설명이 우주의 설계자, 창조자 및 유지자로서의 하나님이 하신 역할과 같은 강력한 신학적 이해를 보완해준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의 나이와 진화에 대한 견해가 다를 수 있지만 신앙의 본질에 대해서는 모두 합의를 보고 있습니다. 바로 모든 사람은 죄를 지었으며,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만 온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에 동의합니다. 우리가 DNA의 복잡성이나 돌고래의 아름다움, 아니면 은하수의 광대함을 상상할지라도, 우리는 그 모든 것을 만드신 신성한 예술가 하나님에게 우리의 마음 중심을 높여 함께 찬양 드릴 수 있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