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 중간사와 기독교의 기원 탐구

[분당/판교 북클럽 9월모임 후기]

 

박정수, <고대 유대교의 터·무늬> (새물결플러스, 2018)

시간/장소 : 9/29일 금요일 저녁 성공회분당교회

발제: 박철성 님

 

나는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에 공백, 느부갓레살의 예루살렘 패망 후, 도대체 무슨일이 일어났기에, 독립된 나라없는 백성들이 500년간을 유대교 라는 분리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종교를 자리매김해서 초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을까
하는 것이 늘 궁금했다.

 

책의 시작은 앗수르, 바빌론 등의 강압통치를 일삼은 제국의 몰락을 경험한 키루스(고레스)가 페르시아 속국들에게 종교와 관습을 허락하는 "문화정치"로 시작된다. 유대 예루살렘 성전, 바빌론의 마르둑과 이집트의 신들, 그리스의 아폴로 신전제사가 허락되었고 정복민들에게 마치 이전 왕조의 지배가 계속되고 있는 안정감을 주려는듯 그는 바빌론의 후계자를 자처하기도 했다. 강사은 님의 표현처럼 고레스 덕분에 유다가 살아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의 연장선 상에서 포로로 끌려갔던 유대인들의 귀환이 시작되었으나 이는 그땅에 남아있던 대다수 백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갈등의 시작이었다.


나는 이 대목에서 마치 6.25때 서울이 북한군에게 3일 만에 점령되어 남아 있던 대다수 서울시민들이 서울 수복후 부역자로 몰린 것과 같은 상황이 떠올라 한동안 상심에 잠기었다.

 


초기 귀환 그룹 스룹바벨은 다윗 왕조의 부활을 꿈꾸며 이방인이 되어버린 남은 자들을 부정하다하여 성전 재건에 참여시키지 않았고 이에 반발한 사마리아 이방인(?)과 정치적 독립을 달가워하지 않는 페르시아에 의해 좌절되었다.


20년 후에 (기원전 538년 ~ 515년) 성전재건 목표 수정하여 성전 자치 공동체의 지위에 한정하며 이방인 혼합주의자/동화주의자들을 받아들인 후에 성전이 재건되었고, 에스라 7-10장 성전 완공 후 50년 후 458년 에스라가 종교특사로 파견되며 도시재건과 개혁,성벽건설까지 완성되었다. 


초막절 희생제사 - 에스라의 수문 앞 광장 율법 낭독에서 총회를 주관한 느혜미야 총독과 함께 이스라엘의 종교적 회복을 이루는 모습이 성경에서 정말 감동적으로 서술되고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공적인 영역은 제한되었고, 개인적인 종교적인 면의 성과에 머물러서 성전제사와 공통체의 제의적 정결에 집중되었다.

 


정훈재 님이 소개한 <시편 사색, 시편 한 권으로 읽기>처럼 시편 첫 권은 현실 왕조/왕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뒷 권으로 갈수록 왕이 없는 식민지 백성의 바램이 묵시적으로 변화한다. 오늘 현실의 시련 앞에서 먼미래에 경험하게 될 구원에 대한 강력한 희망을 표현하게 되고 성전 제사장 세력에서 제외된 에스겔 등에 의해서 교회에서 찬양할때 늘 부르던 "젊은이가 꿈을 꾸고 노인이 환상을 보는" 묵시문학의 태동을 이해하게 되었다.


300 영화로 익숙한 페르시아가 야만이 아닌 나름 관용적인 개방정책으로 헬레니즘 이전에 이미 그리스 문화가 에후드 지역에 가득했고 디아스포라와 함께 이러한 배경이 초대기독교가 널리 확장된 토양이 되었을 것이다. 참고로 팔레스타인 지명은 로마 통치시절 잦은 유대 봉기를 괘씸하는 여긴 로마황제가 블레셋을 본따 rename 된 것으로 유대인들은 태생부터 싫어 할만한 단어라 하겠다.


모임 뒷 부분은 김자현님이 유엔 회의 중에 구술 문화권의 중동의 외교관들이 상당한 언변이 강하다고 설명을 들었고, 유대교의 미쉬나 완성과 성전 보조직에 한정되었던 레위인들을 사독 가문으로 대표되는 신정정치의 승리자(?) 제사장계급이 파트너로 연합함으로써, 서기관 계급이 태동하는 과정을 살려보았고 외경으로 접하는 마카비 혁명을 다음시간에 고대하며 마무리 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바울 당신은 어찌 그러셨소~

분당 판교 북클럽 8월 모임 후기

 

 

바울! 어찌 이런 일을~

 

유사과학을 신봉하는 이들이 과학을 엉뚱하게 변곡시킬지라도 성서 문자를 손대는 경우는 못본 것 같은데 바울은 (히브리) 성서 텍스트를 수정해서까지 자신의 논리를 전개시키는군요. 음... 바울은 적어도 문자주의자는 아니라는?

 

시편 95편에서 40년 광야는 ‘징벌’이었던 것을 히브리서에서는 시편에는 없던 “그러므로”(3:10)를 삽입해 징벌이 광야 이후의 것이 되도록 변경해 인용했습니다.

 

——


(히 3:7)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히 3:8)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히 3: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히 3: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히 3:11)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

 

왜? 바울의 유비에 있어 광야 40년은 쉽게 설명해 탄생-삶-죽음 중에서 ‘삶’에 해당하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삶’ 자체가 징벌인 것으로 관계지을 수는 없는 노릇인거죠. 암요~

 

히브리서는 시편 95편처럼 40년의 광야 생활을 하나님의 진노로 정의하지 않는다. 히브리서에서 하나님의 진노는 히브리서를 읽는 독자들이 “믿지 아니하는 악심”(히 3:12)을 버리지 않으면 임하는 것으로, 굳이 말하자면 40년의 기간이 지나 임하는 것이다. p. 200

 

한 때는 구약성서에도 없는 내용이 신약에서 발견되면 무척 신기해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역시 영감으로 쓰여진 책이라 구약에서 밝히지 않았던 것을 성령의 영감을 받은 사도들이 (기적적인 방식으로) 신약에서 그 비밀을 밝힌 것이겠거니.... 식의 생각이었죠.

 

유다서 9절의 모세 시체 쟁탈전이 그런 예입니다.
모세의 시체를 두고 천사와 사탄(?)이 서로 차지하려고 싸웠다? 아주 흥미롭죠. 뭔가 심오한 뜻이라도 있는 줄 알았었다는..... 저의 흑역사입니다. ㅜㅜ

 

요즘에 와서야 그저 고대인들의 공유하고 있던, 조금 과장해서 고대인의 상상력의 발현이겠거니 하게 됩니다만 이렇게 말하면 상처받으실 분도 있을테니 어떻게 포장을 해야 할까요. ㅠㅠ


(아~ 하지만 나는 루비콘 강을 건너 버렸어~. 아니지~ 성경’쩍’으로 요단강을 건너 버렸어~. 아!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하나? 그럼 다시 루비콘 강으로....)

 

 

피터 앤즈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은 2가지 관점으로 사도들의 히브리 성서 해석 관점을 이해하자고 합니다. “1. 그리스도 목적적. 2. 교회 목적적” 차원에서 그들은 구약, 즉 히브리 성서를 이해했다는 것이죠. 비록 이것이 사도들의 해석 관점에 대한 완전한 이해는 아닐지라도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고대와 비교할 수 없는 고도의) 해석 관점을 사도들에게 강요하는 것보다 훨씬 덜 부자연스럽다고 말이죠. 사도들이 빅뱅, 블랙홀, 진화, 성소수자에 대한 현대 정신의학계의 연구 결과를 알 리가 없죠.


이 지점에서 우리가 속한 종교는 성경교가 아니고 그리스도교(기독교)라는 점을 기억해 봅니다. 적어도 바울의 해석관점이 문자적이지 않았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피터앤즈는 성서 해석이 과학의 산물이라기보다 예술적인 활동(문학적이기도)이고 개인의 작업이라기보다 공동체의 작업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방어할 요새의 관점이 아니라

 

“나는 성경해석을 우리가 함께 여행하는 여정, 우리가 함께 하는 순례길로 보기 원한다. 여행의 길을 가면서 주변의 경치를 즐기다 보면, 보다 많은 사람과 만나 이야기하게 된다. 그리고 그럼으로 우리의 해석도 더욱 풍부하게 될 것이다.” p. 232

 

라고 말이죠.

 

분당/판교 북클럽 9월 선정 도서는 신구약 중간사를 다룬 “고대 유대교의 터·무늬”(박정수, 새물결플러스)입니다.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2부까지 읽고 오시면 되겠습니다.

 

p.s. 구운 계란, 찐 고구마로 배불려 주신 김란희님께 감사드립니다. 급히 조문을 가시는 길이셨죠. ❤️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