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회 콜로퀴움] 신앙의 경줄과 위줄 찾기: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신앙의 경줄과 위줄 찾기
: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한국사회는 최근 페미니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도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와 기독교는 여전히 페미니즘을 두렵고 무서운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기독교는 전혀 상관이 없고, 더 나아가 완전히 이질적인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페미니즘과 기독교와 어떻게 만나는지를 살펴보면 자연스럽게 과학과 기독교가 만나는 지점에 대해서도 좋은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과신대와 페미니즘의 콜라보! 과신대에서 듣는 페미니즘 특강! 기대해주세요~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10월 22일(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등록비: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5,000원 (청소년은 무료)
* 과신대 정회원은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모두 무료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신앙의 경줄과 위줄 찾기" (백소영 교수)

     휴식(8:20-8:30)  
2부 대담(8:30-9:30) 패널: 백소영, 송수진 교수, 사회: 우종학 교수

 

 

강사 소개

 

백소영 교수 (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이화여자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기독교학/기독교사회윤리학을 전공(B.A., M.A.)했고, 미국 보스턴대학교 신과대학에서 기독교사회윤리학/비교신학으로 박사학위(Th.D.)를 받았다. 이화여자대학교 이화인문과학원 HK연구교수(2007-13),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초빙교수(2016)를 거쳐 현재는 강남대학교 기독교학과 초빙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2005),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2009), 개정판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201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콘텐츠 전자책 제작지원 도서), 『드라마틱: 예수와 함께 보는 드라마』(2010), 『잉여의 시선에서 본 공공성의 인문학』(책임저자, 2011), 『인터뷰 on 예수』(2011), 『세상을 욕망하는 경건한 신자들』(2013,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교회를 교회되게』(2014), 『사회적 영성: 세월호 이후에도 ‘삶’은 가능한가』(공저, 2014), 『왜 눈떠야 할까: 신앙을 축제로 이끄는 열여섯 마당』(공저, 2015), 『삶, 그 은총의 바다』(2016),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2017), 『드라마 속 윤, 리』(2017),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2018, 세종우수교양도서)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대학 강단만이 아니라 교회 및 시민단체 대중특강, 그리고 〈CBS 크리스천 나우〉, 〈C스토리〉, 〈CBS 성경사랑방〉, 〈CBS 아카데미, 숲〉, 〈CGN 크리스천의 문화 읽기〉 등 매체를 통해 기독교적 세계관과 공동체 윤리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패널 소개

 

송수진 교수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

 

P&G에서 마케터로 활동하다가 경영학을 공부하고, 미국 University of Rhode Island에서 경영학 박사 학위(Ph.D.)를 받았다. 현재는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세 자녀의 엄마이자 전문 지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각각의 소명을 모두 지켜내고 싶은 대한민국의 흔한 엄마이자 사회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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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합리화인가, 순수함인가

 

[과신책] 학자의  읽기

 

합리화인가, 순수함인가
엔도 슈사쿠 | 침묵 | 홍성사 | 2003

 

김영웅

 

 

기적이 일어날 거란 기대는 일찌감치 접었다. ‘침묵’이라는 제목으로부터 이야기의 결론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긍정적일 수 없을 결론을 예측하며 난 책을 펼쳤다. 엔도 슈사쿠를 처음 만났다.

 

이 책에서의 침묵은 하나님의 침묵을 의미한다. 고난과 역경 한가운데 놓인 하나님의 백성을 기적을 일으켜 구해주는, 영화나 소설 속의 슈퍼 히어로나 마법사 하나님이 아닌, 17세기 일본, 천주교의 박해 중심에서의 하나님은 철저히 침묵하시는 하나님이었다.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까지도 좌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시고 묵인하시는 하나님.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자 죽음도 무릅쓰고 극심한 고통을 담대히 선택한 자신의 백성들 앞에서도 하나님은 그렇게 끝까지 침묵만을 지키셨다. 기적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엔도 슈사쿠의 ‘침묵’은 실화와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하여 만들어진 소설이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포르투갈 신부가 일본에서 박해를 받다가 결국 배교하게 되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역사적인 사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느낌을 줄 만큼 소설적인 요소보다는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면이 잘 부각되어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로드리고 신부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쓰인 편지조차도, 덕지덕지 찢어지고 빛바랜 모습으로 어느 박물관엔가 보관되어 있을 법한 기분도 들게 만든다. 그만큼 이 책은 소설이지만 아주 현실적이다.

 

현실적인 글쓰기로 쓰인 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은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두가 한 번쯤은 직접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침묵은 머리를 통하지 않고도 그저 공감이 된다. 때로는 의심으로, 때로는 분노로, 때로는 적의에 가득 찬 채 하나님께 따지고 원망하며 화를 내 본 우리 자신들의 유쾌하지 않은 경험을 상기시키게 만든다. 이 책은 비록 지금으로부터 4세기나 차이나는 17 세기를 배경으로 하고, 문화와 언어가 다른 일본이란 낯선 곳에서 벌어진 일을 그려내고 있지만, 21세기 현재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이 여전히 똑부러지는 답을 내놓지 못하고 가슴이 한없이 답답해지는 이유는, 바로 시공간과 사건을 초월하여 동일한 결론을 모두 경험하고 그것이 마음속에서 끝내 대답되지 않은 채 치유되지 않은 상처처럼 뿌옇게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침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이런 침묵하심에서 하나님의 동일하심을 찾는 건 신자로서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다.

 

이야기의 플롯은 예수의 수난 과정과 많은 부분이 닮아 있다 (여기엔 저자의 의도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 개인적으로 나는 그 의도가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의 죽으심 때에도 철저하게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메시지이지 않겠냐는 추측에서 찾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침묵을, 여전히 이해하진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 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로드리고 신부를 예수에 대치시키고, 로드리고 신부를 돈을 받고 판 기치지로를 예수를 은 30냥에 판 유다에 대치시킨다. 또한 관리들에 의해 조롱당하는 장면이나, 감옥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나귀를 타게 되는 과정, 그리고 취조당하는 과정에서 오늘 밤 반드시 배교할 것이라는 통역의 말에서 베드로가 닭 울기 전 예수를 세 번 부인하게 될 것이라는 예수의 예언을 상기시키는 것까지도 모두 예수의 수난 과정 중에 있었던 여러 가지 장면들과 겹쳐지게 만든다.

 

그러면서 읽는 우리들은 자연스럽게 예수께서 받으셨던 육체적, 정신적 고난을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때에도 침묵하셨던 하나님을 비로소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닮은 부분이 여럿 있다 하더라도 큰 차이점도 있다. 로드리고 신부는 예수처럼 극심한 육체적 고문을 당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십자가를 지지도 않았고, 최후의 죽음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그는 끝내 예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를 자신의 발로 직접 밟고 배교했다. 마치 예수의 말 그대로 닭 울기 전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절박하고도 극단적인 상황을 통하여 엔도 슈사쿠는 우리에게 묻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정답은 책의 결말에도 주어지지 않는다. 여전히 열려져 있는 질문인 것이다. 통역이 계속해서 지껄였던 ‘형식적’으로만이라도 배교를 하라는 말이 귓전에 남아 있다. 단지 성화를 밟는 행위가 과연 신앙을 져 버리게 되는 것과 동일한 의미일 수 있을까? 로드리고 신부는 기도를 하며 예수님의 음성을 들은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예수는 우리들에게 밟히기 위해서 존재한다는, 신부가 들었던 그 음성이 내겐 끝내 소화되지 않을 음식처럼 목에 걸려있다.

 

갈릴레오가 자신이 주장해 온 지동설을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자기 목숨을 자기 스스로 구했던 것처럼,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동설을 거론할 때면 모든 사람이 갈릴레오를 떠올리는 것처럼, 어쩌면 성화를 밟고 배교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목숨은 물론이고 여러 신도들의 목숨까지도 살린 로드리고 신부의 행위는 결국 예수 믿는 신앙을 져버린 것이 아니라, 살아남아 실제적으로 일본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진 않았을까? 아니면, 신부가 만약 신도들의 죽음뿐 아니라 자신의 죽음을 과감하게 선택했었다면, 자신 앞을 먼저 간 배교의 스승, 페레이라 신부도 끝내 회개하고 다시 순교하며 신앙을 순수하게 지킬 수 있지 않았을까?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캘리포니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이 책이 전달해 주는 우울함은 그 힘이 무척이나 강력하다. ‘합리화’하는 행위와 ‘순수한’ 신앙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재정의해보는 기회가 된 건 좋은데, 내 안에 남아 있는 이 찝찝함은 어쩐단 말이냐!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을 다녀와서

 

2019년 9월 30일 선정릉역 근처에 위치한 강남새사람교회에서 2019 과학신학 심포지엄이 진행됐습니다.

 

이번 행사는 미래신학연구소, 과학과신학의대화, 이수포럼, 한신대학교종교와과학센터, 한국과학생명포럼이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습니다. 

 

국내에서 과학신학을 연구하는 단체들이 힘을 합쳐서 진행한 행사였던 만큼 많은 학자들과 관심자들이 참여를 했습니다. 

 

 

2시부터 6시까지는 각각 신, 인간, 자연이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6명의 학자들이 관련 주제로 발표를 하셨습니다.

 

먼저 세션 1 '신' 발표에서는 김정형 박사님께서 "자연의 역사와 하나님의 계속적 창조"라는 주제로 과학과 신학의 관계 및 최근 과학신학의 이슈와 주제들을 개괄적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이어서 정대경 박사님께서는 좀 더 심화된 주제로 들어가 Divine Action에 대한 최근 논의를 발표하셨습니다. 물리 세계 내에서 하나님께 어떻게 간섭하시고 섭리하시는지를 소개하셨는데, 어려운 내용을 친절하게 잘 소개해주셨습니다. 

 

 

세션 2 '자연'에서는 강태영 박사님께서 과학에서 '자연'을 어떻게 다루고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설명해주시면서 자연 인식의 한계를 동시에 지적해주셨습니다. 과학 내에서도 '자연'을 해석하는 관점이 변화하고 있음을 말씀하시면서 신학과의 대화도 가능하게 됐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어서 이성호 박사님께서는 최근 동물행동학의 연구 동향을 소개하면서 '동물 연구'(Animal Studies)라는 학제 간 연구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이제는 인간과 동물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동물의 도덕성, 사회성, 심리적 특성을 연구하는 분야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고, 종교와 동물의 관계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마지막 세션 3 '인간'에서는 전철 박사님께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지능과 지성의 차이 그리고 영성이 과연 무엇인지 설명하셨습니다. 인간을 단순히 정보의 총합이라든가, 계산 가능한 능력이라는 개념을 넘어서 타자를 수용하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궁극적으로 영원한 생명과 영성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재호 박사님께서는 존 호트의 information 개념과 장자의 '기' 개념을 비교하면서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성은 무엇인지 밝혀보고자 했습니다. 오래된 지혜로부터 새로운 사유의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오후 세션이 모두 끝나고 다같이 교회 카페에서 도시락을 먹으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딱 적당한 인원이 참석해서 심포지엄을 진행하기도 너무나 수월했습니다.

 

특별히 과신대 정회원분들이 자원봉사자로 섬겨주셔서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나서 저녁 7시부터는 로버트 러셀(Robert J. Russell) 교수님의 특강이 진행됐습니다.

 

"신학과 과학의 경계에서의 다섯 가지 이슈들"이라는 제목으로 현대 과학과 신학이 만나는 지점을 핵심적으로 소개해주셨습니다. 오랜 시간 이 주제로 연구하신 러셀 교수님의 연륜과 깊이가 묻어나는 강의였습니다. 이형주 박사님의 통역도 너무나 재미있고 훌륭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행사를 공동 주최한 각 단체의 대표님들이 나와서 "한국에서의 과학과 신학"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진행했습니다. 과학신학의 불모지와 같았던 국내에 선구자와 같은 역할을 하셨던 원로 교수님들께서 나와서 현재 한국기독교와 교회에 과학에 대한 바른 이해성경해석, 창조신학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허균 교수님께서는 자본과 기술에 포섭된 과학이 생명의 신비와 소중함을 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최승언 교수님께서는 개인적인 신앙 체험과 기도가 과학자에게도 전혀 낯선 것이 아니라며 개인적인 이야기도 해주셨습니다. 

 

윤철호 교수님께서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자연신학을 더욱 연구하고 학자들과 연대할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해주셨고, 우종학 교수님께서는 앞으로 과학신학에서 다룰 문제와 주제가 미래지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특별히 앞으로 과학신학 관련 단체들이 교회와 젊은 세대를 어떻게 가르치고 교육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왔습니다. 그리스도인 청소년과 청년들이 잘못된 창조론 때문에 신앙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자는 다짐도 했습니다.  

 

 

이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학술대회임에도 불구화고 80명이 넘는 분들이 참가하셨습니다. 참가 구성원도 다양했습니다. 신학생, 목회자,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마지막까지 경청을 해주셨습니다. 질문도 뜨거웠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과학신학을 연구하는 학자들뿐 아니라 교회 목회자, 학생, 그리스도인들이 관심을 갖고 동참해주신다면 한국교회를 위해 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