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신학의 대화 × 바른교회아카데미

 

“난처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 부탁합니다!”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과학적 질문



목회자가 목회 현장에서 부딪히는 실제적인 과학적 질문을 과학자와 신학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질문하고 대화하는 강연입니다. 성도들의 눈높이에 맞춰서 창조와 과학에 대한 교육을 어떻게 할지, 진화이론과 관련해서 난처한 질문을 어떻게 신학적으로 풀어갈지 등 실제적인 논의를 토론합니다. 1부는 사전에 미리 준비한 몇 가지 질문을 사회자와 패널이 함께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진행하고, 2부는 참석한 목회자가 실시간으로 질문을 하고 응답하는 시간으로 구성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5.13 (월) 19:00-21:30

 장소: 열매나눔재단 지하 강당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 퇴계로20길 37)
  * 오시는 길: https://bit.ly/2Z68Obk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수강료: 1만원 (온, 오프라인 수강 가능) 

 

 프로그램

19:00-20:00 1부 패널 Q&A  “창조와 과학, 이런 게 궁금했습니다!”
          (패널: 우종학, 김근주, 김정형 교수, 사회: 이한일 목사)
20:00-20:15 휴식 (질문지 작성)
20:15-21:30 2부 청중 Q&A  “난처한 질문에 솔직한 대답 부탁합니다!”
          (진행: 최경환 실장, 목회자와 과학자의 허심탄회한 이야기)

 

 패널 소개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한일 목사 (송학대교회 청년부 담당) 
최경환 실장 (과신대 기획실장)

 

 수강 신청

* 사전 등록자에게는 과신대 온라인 <기초과정I>을 무료로 들을 수 있는 권한을 드립니다. 온라인 강의를 미리 듣고 대담에 참석하시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행사 당일 간단한 식사와 간식을 드립니다. 일찍 오셔서 함께 교제 나누시길 바랍니다. 

* 온라인 수강 신청자에게는 5월 14일 오전 9시에 문자 및 이메일로 "YouTube"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온라인 수강자에게는 5월 15일 오전 9시까지 영상 다시보기 권한을 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1) 참가신청서 작성 시 등록 구분에 "현장 등록" 혹은 "온라인 수강 등록" 체크
  (2) 등록 마감일: 2019년 5월 12일 밤 12시
  (3) 등록비 납부
  - 등록비: (국내) 10,000원  /  (해외) 10$ (USD)
  - 등록계좌: (국내)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해외) paypal.me/scitheo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알리스터 맥그래스 <신 없는 사람들>(IVP, 2012)을 읽고

 

글_ 홍승표

 

 

* 이 글은 과신대 <기초과정II> 과제로 제출된 글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에 관해 비판할 때, 그들은 종교가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즐겨 사용한다. 즉, 종교는 진리가 아니며 가상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폭력적 기독교’, ‘비이성적 기독교’, ‘비과학적 기독교’로 나눠 그 논증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낼 것이다.

 

 

1. 종교는 폭력적이다

 

해리스와 히친스 같은 학자들은 종교적 신념이 곧장 자살 테러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모든 종교적 신념이 테러로 이어진다면, 세계의 모든 곳에서는 테러와 폭력이 쉬지 않고 자행될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시카고 대학 정치 과학 교수 로버트 페이프는 ‘자살 테러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아니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사이에도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발표하며 자살 폭탄 테러의 근본 동기가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알려 준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이다. 사랑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온전하게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예수는 몸소 자신의 가르침과 행동에서 줄곧 폭력을 반대했었다.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정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로 인식되었던 예수는 유대 민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인내하고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었다. 이는 기독교의 근본이 폭력보다는 비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실히 하는 대목이다. 물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지만, 이는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신상의 문제이다.

 

종교가 폭력을 유발한다면, 종교가 없는 사회는 어떨까? 구 소련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소련 내에서 종교를 없애고자 했었다.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이론이 인정되려면 소련은 그 어떤 폭력도 자행되지 않는 지상낙원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 정부는 비폭력과 지상낙원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시행했었다. 이는 종교가 사회적 폭력의 근원이라는 의견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폭력은 종교에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의해서 발생한다. 옛날의 각종 정복 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발생한 세계대전 등을 통해 보았을 때, 종교는 오히려 전쟁 원인의 주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사례들로 종교가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늘 서울에 비가 왔다는 이유로 ‘서울은 항상 비가 오는 곳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2. 종교는 비이성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무조건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거나, 또는 그 믿음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믿음을 증명해내라며 압박해내기도 한다.

 

뛰어나 철학자이자 역사가 이사야 벌린 경은, 인간의 확신을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1. 실증적 관찰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2. 논리적 추론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3.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것들

 

1번은 자연과학을 통해, 2번은 논리와 수학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그리고 3번째 범주는 인간의 문화를 형성했고 인간 실존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했지만, 이성이나 과학을 통해서 입증되지 않는 가치나 관념 같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형제애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한다’라는 세계 인권 선언의 진술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물증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신념이 물증이 없다 해서, 이 같은 발언들이 ‘비이성적인’ 발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무신론은 모든 세계관은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불편하지만 사실인 진실을 거부한다. 즉 이들은 그저 ‘열성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그들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들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은 아우슈비츠 학살과 같은 각종 만행들을 ‘신의 비도덕적 행위’로 취급하여 종교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만행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서 자행된 일들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를 먹은 것은 신의 뜻인가? 정답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금 나오라고 기도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즉답’을 요구한다. 이는 어찌 보면 강력한 근본주의적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일어난 만행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습성이 있다. 요즘에는 그저 그 범인 찾기의 대상이 신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히친스와 도킨스가 신에 대해 퍼붓는 저주가 있다.

 

‘이성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누구도 ‘이성’의 한계성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대부분이 이성적으로 여기는 보편적 가치는 확실히 존재한다. ‘무고한 살인은 나쁜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부모를 폭행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명제들은 이에 속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종교가 비이성적이라면, 이와 같은 명제들에 반기를 들고 ‘살인해라’, ‘도적질해라’, ‘불효해라’라며 오히려 권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타적인 사랑을 우선으로 하는 종교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독교는 어떤 것보다 이성적인 것으로 취급받을 여지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3. 종교는 비과학적이다

 

과학은 단지 세상의 형태와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은 그 의미와 가치 판단의 문제에 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종교는 여러 가지로 곡해되어왔다. 맥그라스의 의견에 따르면, 과학이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 합리적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참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무엇인가?’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종교에 대한 과학 이론을 입증하지 않는다. 아직 과학은 세상의 기원에 관련된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학은 이 가설들 중 어느 하나도 확실한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가설을 통합시켜줄 수 있는 절대적 이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실증적이다. 이는 관찰 가능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 이외의 것들은 전혀 입증해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다. ‘사랑’, ‘우정’, ‘연민’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기란 어렵다. 그러니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들이밀며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세상 모든 가치를 가시화하려는 몽매한 노력에 불과하다. 과학은 도덕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또한 과학은 인간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은 답을 해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많은 사람들의 철학적 논고에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입증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같은 것들은 입증할 수 없다.

 

 

4. 결론

 

종교는 폭력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다. 이는 몇 개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 시키려는 그릇된 생각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와 같은 비판이 나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를 비롯한 교인들이 완전하지 않아서’라고 답하겠다. 교인들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와 비판들이 더욱 더 불거진 것이 아닐까. 때문에 종교 비판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수용을 통해 현재 기독교가 앓고 있는 문제점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여백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채운 부분만 가지고만 이야기한다. 우리가 변호한다고 일일이 대답해봤자, 그것은 온전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변호하는 것이 변호가 된다면, 하나님은 궁색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변호가 필요 없다. 하나님에 대한 변호는 나의 신앙에 대한 변호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많은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게 된다. 동시에 어째서 종교를 비판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때 종교는 한층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통해 교계가 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신을 변호하는 것이 온전한 변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무기력하게 ‘알 수 없다’라는 태도로만 일관한다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대할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글_ 최경환

 

지난 4월 9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부천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신 인간 과학>입니다. 오늘은 1장 우주에 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면 할 일을 다 했고, 세계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신은 세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연 자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범신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범재신론도 있다(panentheism). 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신이 자연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범재신론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초월해 계시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재하고 성령이 세상을 감싸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의 두 가지, ‘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영을 바람이나 숨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침투하는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와 같은 로고스의 역할, 성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분으로 해석한다.

 

2. 과학에는 신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런데 과학자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 전체를 볼 수 없다. 부분을 볼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삶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전체를 말하려는 욕구, 욕망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이유. 왜 인간은 뭔가를 궁금해 할까? 왜 원인을 찾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인과율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인과율이 깨진다. 왜 존재하는지, 왜 거기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원인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원인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원인의 그물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4. 뒤르는 '자연과학은 대상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하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물의 외면을 보고 관찰하려고 하는 사고, 반면 사물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 이 둘은 다를 수 있다. 과학은 대상의 일부를 쪼개서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의 연관성과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는 시도는 과학적인 연구만으론 안 된다.

 

5. 직관과 상상의 방랑. 과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관과 비과학적인 상상이 과학자의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뮈토스를 로고스로 설명하는 것, 하지만 뮈토스의 영역이 존재한다.

 

6. 모든 진리 주장에는 믿음이 걸려 있다.

 

7. 신앙은 어떻게 검증 가능한가? 종말에 이르러?

 

8. 우리 삶에서 원인과 결과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파사데나 북클럽]

 

| 김영웅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

 

이번 달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에서는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었습니다. 많은 분량, 다양한 관점, 압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내용, 그리고 감정이 배제되지 않은 치열한 논쟁까지도 모두 담고 있는 흥미진진한 책이었습니다. 게다가 모임에 참석한 전원이 적극적으로, 그러면서도 건전하게, 토론에 참여해 주셨기 때문에 탁월한 발제를 담당해주셨던 이지형 목사님의 수고에도 불구하고 계획했던 진도의 절반밖에 마치지 못한 채 나머지는 다음 달로 미뤄야 했습니다. 그만큼 모임은 훌륭한 발제에 이은 서로 간의 경청과 깊이 있는 토론으로 풍성하게 채워졌으며, 덕분에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수평적 관계에서 스스럼없이 접하며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토론 문화가 개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진다면 (목회자들과 함께 하는 성경공부 시간이나 소그룹 모임)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 짙은 생각도 잠시 혼자서 해보았습니다.

 

2시간 반이란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발제는 책의 내용을 짧게 요약한 정도의 수준이 아니라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들려졌습니다. 신학을 전공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놓치고 말았을 (저도 포함됩니다) 관점까지 덧붙여서 보다 책의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주신 이지형 목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발제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어떤 정석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다음 달이 벌써부터 기대가 됩니다.

 

모든 참석자들의 진지한 참여가 정말 고마웠습니다. 특히 원죄사건과 죄의 전가 부분에서 아우구스티누스와 사뭇 다른 입장을 가진 메노나이트에 대한 소개는 신선한 자극이 되어주었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고,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아담의 역사성과 죄의 기원, 그리고 창조-타락-구속 플롯에 의거하여 예수까지 이어지는 구속사건이 복음주의를 벗어나게 될 경우에는 그다지 중요한 이슈가 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과감한 생각도 덕분에 할 수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칼빈의 영향력 아래 장로교로 대표되는 한국 교회에서 신앙과 믿음을 훈련받아온 저와 같은 기독교인에게는 정말 또 다른 세상을 접하며 지경이 넓혀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전부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는 기독교의 경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과연 기독교의 핵심 교리라고 믿어왔던 것이 우리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다른 모습의 기독교에서도 핵심 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을까요. 혹시 우린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릴 적부터 보고 듣고 훈련받아온 신앙과 믿음을 하나의 해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그 해석이 가능했던 진리 그 자체로 여기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래서 우리가 친숙한 그 장막 안에서만 참이라고 인정되면, 장막 밖에서도 참이어야만 한다는 폭력의 논리에 잠식당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장막을 걷어낼 수는 없는 걸까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고 있진 않았을까요. 과연 우리가 믿는 것만 진리일까요. 진리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이런 자세가 과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뜻이며 예수의 방식일까요. 아담의 역사성에 대한 논쟁도, 과학과 신앙 간의 문제도 어쩌면 아주 지엽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 건 아닐까요.

 

고대 근동의 과학과 현대 과학 사이의 괴리, 그에 따라 수정되어지는 성경 해석. 과신대는 이러한 과정에서 고민과 갈등을 겪는 기독교인들에게 가이드가 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과 다른 입장은 언제든지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그 다른 입장을 틀린 입장으로 만들어 배척하지 않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배척함은 곧 다름을 틀림으로 만들어버리는 행위와 같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물론 하나님의 존재도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들에게도 내지 않는 분노를 하나님의 창조를 다른 방식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에게 낸다는 것은 어찌 보면 정말 우스운 얘기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에 대해 마침 어제 모임에서 나왔던 얘기 중에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다른 의견이 있으면 그것들을 그저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는 것입니다. 대신 서로의 입장을 비난하거나 논리적 결함을 찾아내거나 하는 방식으로 흠집 내고 적대시하는 행위를 자제하고서 말이지요. 즉 어떤 해결책이나 답을 찾는 방법이 아니라 다름이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존재하면서 존중 받는다면 그것 자체가 메시지가 되지 않을까 하는 제안인 것입니다. 어쩌면 이것이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는 기독교인들을 위한 해독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어떤 한 입장의 우월성과 다른 입장의 열등성을 들춰내고 강조하여 어느 입장이 더 논리적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 찾아내는 것이 목적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신, 한 테이블 위에 올려놓아 진 여러 다양한 해석과 입장 중 무엇을 택하든 전적인 개인의 자유로 열어두고 서로를 존중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목적이진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나아가 우리가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궁극적인 문제는 과학과 신앙 간의 문제가 아니라, 어쩌면 그보다 더 크고 일반적인 나와 타자 간의 문제가 아닐까 하고도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부족한 건 더 완벽한 논리도, 더 발달된 과학도 아닌, 배려와 존중, 사랑이진 않을까요.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분당/판교 북클럽]

 

글_ 강사은

 

2018년 2월에 시작한 분당/판교 북클럽이 1년을 훌쩍 넘어 새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진(IVP)’을 포함하여 총 8권의 책을 발제하고 토론하고 후기를 쓰는 시간으로 가득 채웠는데요. 첫 모임부터 꾸준히 이 모임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멀리 판교에까지 오셔서 <기초과정 1>을 강의해 주시기도 했고 최근에는 김근주 교수님을 모시고 과신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돌을 전후해서 ‘오리진’을 읽는 것은 돌잔치 이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이 모임을 시작했는지를 되새기고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년 이내로 지어졌을 리가 없는 증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우주와 동식물의 진화 증거는 제 신앙의 지평도 넓혀 주었습니다. 이 과학의 증거들이 아니었다면 문자적인 성서 해석/적용과 경험적인 사실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제가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삶’(디트리히 본 회퍼)이 그리스도인의 삶 아니겠습니까? 신이 없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하고 오롯이 홀로 서서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삶이죠. 한 마디 더 붙이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죠.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북클럽이지만 단독자의 삶들을 엮어 외롭지 않게 꿋꿋이 서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북클럽이 하고 있다 싶습니다.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는 1년에 1회 정도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을 선정해서 새로 참여하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 ‘오리진’의 남은 1/3을 읽고 토론합니다. 1년에 한번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글_ 심왕찬

 

 

어제(3/28)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의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북클럽 베테랑 1명과 무경험자 4명이 모여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머리말부터 4장까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는 마침 모임 장소를 제공해주시는 백우인 선생님의 생일이어서 백선생님의 맛있는 샌드위치로 저녁을 함께 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시작했습니다. 

 

북클럽 참여와 인도 경험이 풍부하신 백우인 선생님께서 발제를 해주시고, 각 장마다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잘 요약, 설명해주셔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한 여러 질문과 토론, 창조과학 및 교회의 현주소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은, 4장의 내용 중에서, 하나님께서 (빅뱅과 진화를 통해) 창조를 하신 후에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주에 부여하시고 붙들고 계시는 법칙 안에서 끊임없이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섭리하고 계시며, 인간과 자연에게도 그 안에서 자유를 주셔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모임은 4월 25일(목)에 모여서, 5장부터 9장까지 각자 돌아가며 1장씩 발제하고 나누기로 했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MC:SUBJECT|*
View this email in your browser

과신대 가입하기

과신대 후원하기





2019.04.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23호

과신대 칼럼

 " 다양한 생명체가 살고있는
유일한 천체 - 지구행성 " 



이문원 교수
강원대학교 명예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성경은 하나님이 엿새 동안에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심히 좋아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우주, 태양, 지구, 달 등 천지들을 만드신 후, 그곳에서 인간이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지구환경을 마련하시고 매우 만족해하셨다는 것이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태양계를 비롯해서 우주에서 생명현상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우주의 지구를 제외한 어떤 곳에서도 생명체의 존재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지구가 생명체가 존재하는 유일한 천체임을 확인하고 있다. 그러면 오직 지구행성에만 인간을 비롯해서 다양한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게 된 요인은 무엇인가?  (더보기)

저는 유신론적 진화론이 전통신학과도 부합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바질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그 당시의 자연철학 이론인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을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성서를 해석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자연과학을 받아들이는 입장, 이 입장이 전통신학의 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통신학과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고 봅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함께하는 분들을
인터뷰로 만나보는


 " 과신대 사람들 " 

(19)
정대경 박사

명지대학교 

[과신Q]
매월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과 신학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씩 골라
[과신Q]라는 제목으로 연재해주십니다.
교회에서 혹은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다면,
[과신Q]를 주목해 주세요.


(4)
창세기 1장을 비유로 읽으면 소설이 되는거 아닌가요?


(글보기)

[Coming Soon]

Coming Soon!
[14회 콜로퀴움] 유전자가위가 오려낸 과학과 신앙

2019.4.29 (월) 저녁 7:30 /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멸종동물 복원, 난치병 치료, 맞춤아기 등 생명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윤리적, 신학적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이오테러, 우생학적 문제 등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은 과학이 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의 이슈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윤리, 철학,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수강신청)

Coming Soon!
<기초과정 I> 온라인 2기 모집!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 <기초과정 I>이 다시 한번 온라인 수업으로 찾아옵니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이제는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더보기)

■ 수강신청 기간 : 2019년 3월 26일(화)~2019년 4월 12일(금) 밤 12시까지

과신대 연구모임을 소개합니다!

2017년 초부터 과신대 연구모임에 참여해서 자연과학, 철학, 신학의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과 “자유의지,” “뇌과학과 인간” 등에 관한 논문과 책을 같이 읽어왔습니다. 올 3월부터는 1년 반 정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더보기)


[과학자의 읽기]

김영웅 박사님의 서평을 연재합니다.
과학자가 읽은 신학책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페미니즘의 눈을 통하여 기독교의 본질을 고찰하다

페미니즘과 기독교 | 강남순 | 동녘 | 2017

(글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13회 콜로퀴움 후기

"삼위일체 창조자와 그의 피조세계로서의 세계" 강의 후기 (심기주, 과신대 기자단)

판넨베르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관계 맺으면서도, 자신과는 구분 짓는 그 독특함에 굉장히 주목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운 주님이나 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빠’라고 굉장히 친밀하게 칭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님이 아니야(요18장)’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자기 자신과 구분 지으셨다. 즉, 나사렛 예수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더보기)
기초과정 II (4기) 엿보기

새로운 무신론에 대한 이해 (박영식, 서울신학대학교)

도킨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교가 폭력적이고 반이성적이며 반과학적이어서는 안 됩니다만, 도킨스의 눈에 그리스도교는 그렇게 비춰졌고, 그의 주장이 또한 많은 이에게 환영받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우리가 갖고 있는 신앙(신학)을 재검토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거창한 웅변과 변증이 겉으로는 진리 자체를 변호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자신의 진리 주장을 변호하는 것에 급급할 때가 얼마나 많았는지 반성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더보기)

[과신대 Book Story - 신간 & 서평 소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칼 W. 가이버슨, 프랜시스 S. 콜린스
새물결플러스 | 2019


서평 | 이신형

이 책은 결국 진화로 대표되는 과학과 창조로 대표되는 신학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본다. 지구의 역사와 다윈의 진화론, 하나님의 존재, 아담과 하와로 대표되는 인간, 그리고 빅뱅으로 알려진 우주의 시작까지 다양한 주제를 과학의 관점에서 또 신학의 관점에서 들여다보고 조화시키고자 노력한다. (더보기)


[북클럽 소식 - Book Club]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더보기)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희 교수 | 캘리포니아대학교 인류학과
  이정모 관장 | 서울시립과학관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장현일 | 총무이사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강사은 | 북클럽팀장
  심왕찬 | 미디어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이진호 | 행정간사
Copyright © 2018, 과학과 신학의 대화 SCITHEO, All rights reserved.
www.scitheo.org

Our mailing address is:
scitheo.office@gmail.com

Want to change how you receive these emails?
You can update your preferences or unsubscribe from this list.

'과신대 View > 2019 과신대 View'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과신대 View vol.23 (2019.4)  (0) 2019.04.05
과신대 View vol.22 (2019.3)  (0) 2019.03.08
과신대 View vol.21 (2019.2)  (0) 2019.02.13
과신대 View vol.20 (2019.1)  (0) 2019.01.11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 하나님을 알아가기 가장 좋은 학문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 칼 W. 가이버슨, 프랜시스 S. 콜린스 | 새물결플러스 | 2019

 

송성원

 

 

지난 주에 있었던 일이다. 오랜만에 아이들을 일찍 재우는 데 성공하고 아내와 영화를 한 편 봤다. 인터스텔라. 개봉한 지 5년여 지난 영화이고 계속 마음으로는 보고 싶었던 영화지만 육아의 일상에 영화가 비집고 들어오기가 어디 쉬운가. 우주 SF 영화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지만 실제로 일어날 개연성은 없어 보이는 웜홀을 통한 항성 간 여행 이야기다. 감독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내가 영화를 보는 느꼈던 건 ‘하나님이 지으신 우주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혹은 ‘하나님이 이 지구를 얼마나 특별하게 지으셨나.’ 하는 것들이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토성의 고리, 경외감마저 불러일으키는 블랙홀의 놀라운 위용, 지구가 살기 힘들다고 먼 길 떠났건만 발 닿는 곳마다 지구가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인지 느끼게 되는 절망 가득한 외계 행성들. 장면 장면마다 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 떠올랐다. 이것이 하나님의 작품이구나.

 

과학은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가장 좋은 학문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세상 그 자체를 연구하기 때문이다. 문학이나 인류학, 사회학, 경제학, 경영학, 사학, 고고학, 심리학 같은 여타의 학문들은 대부분 인간의 산물들은 연구한다. 그 속에서 하나님의 미세한 소리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반면에 물리, 화학, 생물, 천문은 모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다. 인간의 손에 때묻지 않았다. 가장 기본적인 네 가지 힘, 세상 모든 원소들을 줄 세운 주기율표, DNA로 기록된 디지털화된 정보, 그리고 광대한 우주 그 어느 것도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고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마저도 저자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에 제약을 받는데, 자연은 어떤 제약도 없이 오롯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모습 그대로 과거부터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때문에 창조주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그 길은 분명 과학에 있다.

 

교회의 많은 성도들, 특히 목회자들이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아쉽다. 그 분들은 과학과 하나님이 서로를 반대한다고 생각하고, 과학을 배척해야만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지구 창조론의 아쉬운 점은 이런 데 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은 물론 본받을만하다. 하지만 그를 위해 꼭 과학을 저버려야만 했을까. 400여년 전 갈릴레이의 종교 재판 시절보다 더 퇴보한 모습이다. 당시 갈릴레이가 주장하는 지동설을 반대했던 교회의 논리는 성경에 따르면 천동설이 옳기 때문이 아니었다. 당시의 과학적 근거들이 천동설을 더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학 연구가 더 진행되어 지동설이 더 확실한 과학으로 자리 잡으면 교회는 얼마든지 지동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의 젊은 지구 창조론자들은 오랜 우주의 역사를 반대하기 위해 과학적 근거를 들지 않는다. 성경 인물의 나이를 다 더해서 연대를 계산해보면 6000년쯤 된다는 것이 유일한 근거이고, 성경은 무조건 옳아야 하기 때문에 과학이 제시하는 증거들을 다 틀렸다고 말한다.

 

이는 오히려 무신론자가 좋아할만한 논리다.

 

대전제 : 과학과 하나님은 양립할 수 없다. 즉, 과학이 옳다면 하나님은 틀렸다.
소전제 : 과학은 옳다.
결론 : 그러므로 하나님은 틀렸다.

 

이것이 무신론자가 전개하는 연역적 주장이다. 젊은 지구 창조론도 동일한 전제를 세우는 것 같다.

 

대전제 : 과학과 하나님은 양립할 수 없다.
소전제 : 하나님은 옳다.
결론 : 그러므로 과학은 틀려야만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우리가 왜 무신론자들이 세운 전제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학이 하나님의 창조 원리를 이해하려는 학문이라면 과학도 옳고, 하나님도 옳다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다. 나 송성원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나는 그 사실을 믿는다. 그런데 만약 내가 ‘나는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가 만나 수정하고, 자궁에 착상 후 세포 분열에 분열을 거쳐 신체의 각 부위로 자라나고 열 달 가량 자라다가 산도를 통해 태어났다’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건가?

 

 

나는 전문 과학자가 아니라 이 정도 예시 밖에는 들지 못한다. 반면 세계적인 물리학자 칼 가이버슨과 세계적인 생물학자 프랜시스 콜린스는 이 책을 통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정교하고 더욱 놀라운 설명을 들려준다. 자신의 전문분야에서 오랜 연구를 통해 발견한 과학적인 사실들을 차례차례 설명하고, 그런 과학적 사실들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배척받는 현실에 마음 아파하며, 또 그런 과학적 사실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DNA를 통해서, 암석을 통해서, 우주를 통해서 곳곳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하나님을 찾아가는 방법이 바로 과학인 것 또한 알려준다.

 

전체적으로 ‘자주 묻는 질문’ FAQ의 모음집 같은 형식을 띄고 있어 많은 질문이 등장한다. 질문 하나하나가 한 권의 책으로 엮어야 할 만한 중요한 주제를 품고 있다. 다양한 질문을 한 권의 책에 담으려는 의도인 듯 각각의 답변은 언뜻 요약된 느낌이 든다. 그 때문인지 이 책에는 각주가 많이 달려 있고, 마지막 장에는 더 깊이 생각하기 위해 읽어야 할 책들을 폭넓게 소개해 주고 있다. 마치 이 책의 독자가 이 한 권으로 만족하지 않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바라기는 많은 교회에서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서는 과학을 버려야 한다는 요즘의 분위기가 하나님을 잘 믿기 위해 과학을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변화되면 좋겠다. 그래서 더 많은 학생들이 생물학, 천문학, 지질학, 물리학, 화학을 연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르네상스 과학 혁명의 시대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창조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과학 연구를 더 열심히 하는 시대가 다시 한 번 찾아왔으면. 돈만 밝히고, 권력을 탐하고, 성적으로 타락하고, 인본주의와 다원주의적인 사상에 매몰되어 가는 시대에 다시 고개를 들고 우리의 창조자에게 시선을 향하는 역할이 그리스도인들이 앞장 서서 감당해 냈으면. 과학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과학에 앞장서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진화론적 창조가 가능하다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 칼 W. 가이버슨, 프랜시스 S. 콜린스 | 새물결플러스 | 2019

 

구형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의 원제목은 ‘The language of science and faith’이다. 저자인 프랜시스 콜린스와 칼 가이버스는 과학과 종교가 어떤 관계인지, 과학의 진리와 성경의 진리는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 기독교인으로 진화를 어떻게 신앙과 조화시킬 수 있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이 책을 기록하였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라는 책을 이미 10년 전에 저술하였다. 이 번 책은 「신의 언어」의 후속 편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전편인 신의 언어에서 저자는 의사이자 유전학자로서 무신론자였다가 신앙을 갖게 된 과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인류의 기념비적 업적인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총책임자로 일하면서 깨닫게 된 하나님의 창조 섭리를 바이오로고스라는 용어를 통해 설명하기도 하였다. 그 후 독자들로부터 받게 된 여러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라는 책을 쓰게 된 것이다.

 

콜린스는 「신의 언어」에서 다양한 창조론에 대해서 소개하고 설명하였다. 젊은 지구 창조론, 오래된 지구 창조론, 지적 설계론, 유신론적 진화론이 그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유신론적 진화론이 더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하였다. 후속편인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에서는 유신론적 진화(바이오 로고스)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하며 이와 관련된 기독교계 안의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서 답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진화가 하나님의 창조 방법이라면 왜 그렇게 평판이 좋지 않는가?’라든지 ‘사회적 다윈주의를 어떻게 봐야하는가?’, ‘진화가 일어났다는 최고의 증거는 무엇인가?’, ‘진화는 정말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는가?‘, ’대진화에 대한 증가가 있는가?‘ 등에 대한 답변을 명쾌하게 풀어낸다.

 

또한 진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서도 답을 한다. 예를 들면 지적설계론자들이 DNA 염기서열의 유사성을 공통조상이 아닌 동일한 DNA패턴을 사용하여 설계하신 창조의 증거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있다. 콜린스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답한다.

 

DNA의 세부적인 분석은 그런 결론들이 말이 안 되는 것으로 만든다. 왜냐하면 생명체 안의 게놈은 자신이 의도하는 기능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유전자만 공유하는 게 아니라 부서진 유전자도 공유하기 때문이다(P.64).

 

이러한 답변은 인간 유전자 지도가 완성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직접 그 프로젝트를 담당했던 과학자로서 연구결과를 통해 설명하니 답변에 더 신뢰가 간다. 콜린스는 기독교계 안에서 제기된 진화에 대한 반론들에 대해 하나하나 답하면서 진화적인 창조(바이오 로고스)가 가능하다는 것을 논증한다. 또한 민감하고 중요한 부분인 인간의 진화에 대해서 여러 장을 할애하여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그중 진화의 우연성에 대해 반대적인 시각인 수렴적인 진화에 대해 설명한 부분은 신선하게 다가온다. 이것은 기독교인이며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생물학 교수인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의 견해를 소개한 것으로 의식, 도덕성, 영성을 가능하게 하는 큰 두뇌를 가진 인류가 우연이 아니라 불가피하게 출현했다는 주장이다.

 

하나님께서 진화의 과정을 계획하셨다고 하는 것이나 진화의 과정을 인도하셨다고는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른 견해이다. 진화의 단계들이 무작위적으로 진행된다고 해도 각각의 단계에서는 선호되는 특정한 방향이 있다는 설명이다. 콜린스는 증거가 쌓여감에 따라 이런 통찰을 수용하는 사람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 하며 이러한 견해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책 안에는 생물학 이외에도 물리학과 관련된 내용도 많이 있다. 아마도 물리학자인 칼 가이버슨이 기여한 부분일 것이다. 오래된 지구 연대와 관련된 내용과 인류원리라고 부르는 미세조정에 대한 부분이 그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수 십 억년이고, 빅뱅으로 우주가 시작되었다는 것,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여러 암석의 나이를 밝히는데 신뢰할 만한 방법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계 안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부분이다. 하지만 아직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나 과학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이러한 부분들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다루는 질문들은 ‘어떻게 우주의 나이가 수 십 억년인지 알 수 있을까?’라든지, ‘빅뱅이론은 믿을 만한가?’, ‘방사성 연대측정법은 믿을 만한가?’, ‘미세조정은 하나님을 가리키는가?’등이다.

 

기독인이며 과학자인 저자들은 자신이 믿는 신앙과 과학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둘을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풍성하게 이해하는 수단으로 조화롭게 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가치 있는 일이다. 우리가 기독인으로서 과학을 공부하며 던질만한 질문들에 대해서 먼저 고민했던 분들이 친절히 답해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궁금한 질문들에 대한 답부터 하나씩 찾아 읽다보면 놀라운 방법으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다시 용기를 내어 학생들 앞으로

 

글_ 김신자

 

* 이 글은 온라인 <기초과정I> 1기 수료생인 김신자님께서 무신론 기자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을 읽고 쓴 감상문입니다.

 

고등학교 학생들 특히 이과반 학생들과의 종교학 수업에서 특히 창세기 1장 특히 창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왠지 싸~한 수업 분위기를 종종 느끼곤 하였다. 이과 수업을 통하여 지구과학, 생물학 등을 배우고 있는 자신들의 지식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 이야기는 뭔가 안 맞는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번 과신대 온라인 <기초과정1>을 통해 나 자신의 무식함과 이미 열심히 듣고 읽었던 창조과학의 근거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과반 학생들과의 만남에 자유함을 가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과학으로 창세기를 증명해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확실히 깨달았을 뿐 아니라, 한 교수가 박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학과 신앙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며 수용해야 함을 동감하며 나 자신이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창조주가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생물을 창조했다고 보는 진화 창조론의 입장에 열린 사고를 가지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니 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연현상 자체도 신의 영역이라는 점과 이런 자연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한 교수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충분이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 자체는 신이 부여한 물리법칙과 우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신의 섭리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곧 믿음이며,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므로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의 내용을 다룬다는 분리적 입장이 아니라, 과학과 신앙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통합적입장에 지지를 보낸다. 신앙은 과학자의 동기나 연구 태도 그리고 윤리에 영향을 주고, 과학이 신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한 교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자연세계를 연구한 결과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 한다.

 

과학은 절대 진리라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과학에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신앙에는 결국 합리성이나 과학으로 담보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이 있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이 믿음이 작용한다는 한 교수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과학과 신앙, 신앙과 과학을 바라보는 상보론자들은 신앙을 변증 하기 위해서 과학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과학이 매우 유용하다는 온건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싶다. 과학에서 출발해서 신앙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지식이 오히려 신앙에 도움이 된다. 이런 내용이 무거웠던 이과반 학생들과의 수업을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주는 것 같다.

 

한창 반항하고 싶어 하는 십대들에게 무조건 성경말씀이니 믿으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신앙, 신앙과 과학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 과신대 <기초과정I>과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쓰신 우종학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앞으로 너무 어려워서 감히 만져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과학 분야의 책들, 특히 무크따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보면서 많이 공부하려고 한다. 성경말씀을 잘 읽으려면, 잘 이해하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라도 많이 배워야 함을 깨닫게 됐다.

 

과신대 <기초과정I> 온라인 2기 모집 안내: https://www.scitheo.org/332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