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오리진

데보라 하스마, 로렌 하스마 / 한국기독과학자회 옮김

IVP | 2015년 3월 25일 | 초판 2쇄 | 351쪽 | 17,000원

 

 

나는 현재 과신대 주부기자로서

과신대 독서 길잡이 10단계 책을

한 달에 한 권, 순서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과연 평범한 주부인 내가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읽고 있다.

 

지난달에는 [개혁신학 vs 창조과학]을 읽었는데,

기초과정도 두 번 들었고,

앞의 책들을 읽은 뒤에

순차적으로 읽은 터라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음 책은 [과학시대의 도전과 응답]이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기초과정과 일치하기도 하고,

이미 두 번 읽은 터라,

다음 책인 [오리진]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리진을 읽자마자 곧 후회했다.

책의 난이도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기초과정을 다시 들어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면서,

이번에 핵심과정을 신청했는데,

내가 참 교만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반성을 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과학이 그려낸 우주의 어마어마한 광대함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가, 아니면 무의미한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인 우리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193쪽)

 

 

[오리진]은 제목 그대로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기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창세기’가 생각나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창세기의 여러 가지 의견들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는데,

이 책은 나에게 오히려 반전을 주었다.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자 기원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게다가 각 장마다 마지막 부분에

토의할 문제들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주일학교 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다루면

정말 재미있게 토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부인 나에게는 생소한 과학 단어들이

몇 가지 있어서 읽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재미난 상상을 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여러분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다고 생각하나?

 

정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빛이 뿅 생겨나고,

동물들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동물들이 뿅뿅 생겨나는 장면’을 상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셔서

미생물이 진화하고 복잡한 생명체가 되어,

현대 인류 공동의 조상을 지나

마침내 현대 인류까지 기다리셔서

영혼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을 상상하는가?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들은 진짜 있었던 최초의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중에서 선택받은 한 쌍의 부부일까,

아니면 인류를 대표하는 집단이었을까?

 

기원이라는 게 이렇게

여러 가지 재미난 질문을 안고 있다.

 

 

나는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안고 있었기에

신령한 자매가 아닌, 이상한 자매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오리진]을 읽으며,

내가 질문을 하는 게 정상이었구나.

 

우리는 왜 질문을 할까,

우리는 왜 우리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할까?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에는 결국 예배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까지 질문하고 있다.

 

넘쳐나는 질문이 교회에서

감당이 안 됐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강추한다.

물론, 처음에는 혼란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 있다.

하지만 과신대 추천도서를 지금까지 읽어본 결과,

이제야 무언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님은 나를 왜 부르셨을까?

인간은 결국 이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왜 살아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허한 발버둥만 치다가

인생이 종결될 것 같다.

 

그.러.니.

 

[오리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핵심과정 후기)

 

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 과신대 핵심과정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 강의 후기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자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이신 우종학 교수님께서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이라는 주제로 창조의 다면적 이해와 창조 관점의 발전 과정, 현대 창조론의 스펙트럼과 이슈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며,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를 종합한 건강한 창조신학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영화 <건축학 개론>이 생각났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수지 분)이 대학교 시절에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다는 풋풋하고 애틋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나온 영화 같은데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가는군요. 승민과 서연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서로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상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끝내 마음을 닫아 버린 승민, 오랜 세월이 지나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결국 서로가 각자의 길을 택한다는 스토리로 끝을 맺게 됩니다.

 

 

이번 강의에서 우종학 대표님은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변함이 없지만 해석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뜻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오해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해는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 내용 중 제빵사의 비유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비유에는 무신론자와 크리스천 과학자, 그리고 창조과학자가 나옵니다. 무신론자는 오븐 안에서 빵이 스스로 진화했다고 봅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는 무신론자와 같이 빵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스스로 진화한 것이 아니고 제빵사가 오븐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는 오븐 자체를 부정합니다. 오븐은 보지 못하고 빵이라는 결과물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빵 하나를 놓고도 이토록 관점이 다른데 천지창조는 오죽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조의 관점은 크게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인정하는 부류로 나누어지며,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는 세부적으로 젊은 지구론, 점진적 창조론, 지적설계로 분류되며, 생물진화를 인정하는 부류는 열린 진화, 계획된 진화, 인도된 진화, 지적 설계로 분류가 됩니다. 이중 지적설계는 신이 설계한 자연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두 부류에 공통적으로 위치하게 됩니다. 참으로 다양한 창조의 관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바는 이러한 관점들 사이의 편견과 선입견이 오해를 낳고 더 나아가서는 닫힌 마음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같이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가 타인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셨던 숭고한 예수님의 사랑이 빛이 바라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러한 다양한 창조의 관점을 두고 갈등과 대립으로 반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혼돈이며 무질서입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인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해석하는 우리의 모습이 혼돈이요 무질서라면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무질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질서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종학 대표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던 케노시스(Kenosis), 즉 예수님의 자기비움일 것입니다. 전능성을 비우시고, 영원성도 비우시고, 전지하심과 지위까지 비우시면서 우리의 가슴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신 창조주를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7~8절)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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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 삶은 미완성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낳고키우고결혼시키고나면죽고...또....>

    아담 2020.07.04 11:45

 

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백경민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조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우리 부부에게는 17개월 된 딸이 있다. 이름은 백이은.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40이 넘어서 얻은 첫 자녀라서 그런지 점차 ‘딸 바보’가 되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육아’다. 이은이가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커 가는지를 하루하루 눈에 꼭꼭 담아 두려 하고 있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 자신 그리고 나의 부모이다. 어머니는 이은이가 태어나기 딱 1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10년 간 암투병을 하시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시고 하나님 곁으로 떠나가셨다. 당시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어머니의 암투병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마지막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이은이가 찾아왔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땠을까가 계속 상상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아주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예전에 어머니와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집은 부산 어느 달동네였다. 어머니는 장을 보거나 연탄을 나르기 위해 매일 나를 등에 업고 몇 번의 등산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내 귀를 스치는 소리로만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은이를 재우기 위해 아파트 밖을 매일 서성거리면서 그리고 매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서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달동네의 가파른 고갯길을 몇 번을 오르셨을 그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작년에 이은이가 태어났을 때 귀에 문제가 있었다. 난청이 발견되어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귀하게 얻은 딸에게서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감정이 좀 진정되고 이은이가 무사히 언어 발달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나와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무릎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암일 가능성이 있으니 암이라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때 옆에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시고 오열을 하셨다. 물론 다행히 나는 암은 아니어서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때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아픈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은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과연 무슨 심정이었을까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두 말 하지 않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였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삼수 끝에 원하던 학교에 입학통지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던 그 날 “합격”이라는 문구가 스크린에 뜨자마자 어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그렇게 목놓아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어머니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사실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를 알기에는 이은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은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머니의 그 감정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요즈음 나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통해 나를 보고 있고 내 옆에 서있었던 어머니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느꼈던 감정을 한땀한땀 나도 같이 느껴 가면서 인생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부모로서의 감정을 다 느꼈을 때 나도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은이도 한 자녀의 어머니로 느껴갔으면 한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읊조렸던 것 같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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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0. 다윈 이전,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해석은 어떠했나요?

 

다윈 이전,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해석은 어떠했나요?

How was the Genesis account of creation interpreted before Darwin?

 

 

서론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이론이 진화와 6일 창조 개념 사이의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흔들 거라고 추측합니다. 사실 창세기 1-2장의 문자적 6일 해석은 1859년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이전에도 기독교 사상가들이 지지하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초기의 기독교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작품들은 다윈의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창세기의 해석을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 사상

 

고대세계의 위대한 지식 센터 중 하나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3세기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는 창조에 대한 초기 기독교 사상의 예를 보여줍니다. 

 

<원리론>과 <켈수스를 논박함>으로 잘 알려진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핵심 교리들을 제시하였고, 이교도들의 비난으로부터 그 교리들을 지켜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창조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설명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오리게네스 이전에 창조 이야기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을 옹호한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견해는 그를 따르는 초기 교회 사상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1]

 

초기 5세기 동안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고백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수십 편의 작품을 썼으며, 그 중 몇몇은 창세기 1-2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2]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라는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앞 두 장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이해에 맞춰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3]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창조 이야기는 더 단순하고 비유적인 형식으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발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이는 생물진화와 양립하는 견해입니다.[4]

 

 

 

후기 기독교 사상

 

역사에서는 창세기 1-2장에 대한 비문자적인 해석이 많습니다. 13세기 저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특별히 과학과 종교의 만남에 관심이 많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아퀴나스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과학적 발견 사이에 가능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신학대전>에서 그는 창조의 모든 6일이 실제로는 하루를 말하는 게 아니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안했었던 이론)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능성을 가지도록 창조하셨다는 견해에 동조합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날, 하나님은 실제로는 아니지만 “땅에 나타나기 전에” 밭의 모든 식물들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땅에 식물들이 생겨나기 이전에”, 다시 말해, 잠재적으로…모든 것들은 구별 되지 않고 함께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창조될 때 관찰될 수 있는 적당한 질서 때문이었습니다.[5]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관점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직전인 18세기 말 존 웨슬리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 성직자이자 감리교 운동의 초기 지도자였던 웨슬리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성경은 청중에 적합한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역사(창세기)에서 이 영감받은 필자는 … 먼저 유대인을 위해 썼습니다. 교회의 유아 시절에 맞게 그의 내러티브를 맞추면서 사물을 그 드러난 지각할 수 있는 모양에 따라 묘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빛에 대한 이후의 발전에 따라 그 겉모양 아래에 놓여 있는 신비를 이해하는 데로 나아가도록 남겨 두었습니다.[6]

 

웨슬리는 또한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쓰진 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쓰였다"고 주장했습니다.[7] 

 

19세기 프린스턴 신학교는 보수적인 칼빈주의와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견고하게 수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프린스턴 신학자 B. B. 워필드는 진화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적절한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확고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서로 조화로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가 마크 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무오성에 대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리의 가장 현대적인 수호자였던 B. B. 워필드 역시 진화론자였다.”[8]



결론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서 창세기의 문자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군림하지는 못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견은 성경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는 선동으로 여겨져서는 안되고, 성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도우미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매우 불분명하고 우리의 시야를 훨씬 벗어나는 사안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믿음을 침해하지 않으 면서도 성경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서두르지 말 아야 하며, 단호하게 한 입장을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만약 진리추구에서 더 많은 진전이 이러한 위치를 전복시키게 된다면, 우리 역시 무너질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의 가르침과 일치하기를 바라면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전투가 될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기를 바라야 합니다.[9]

 


 

[1] Peter C. Bouteneff, Beginnings: Ancient Christian Readings of the Biblical Creation Narratives(Grand Rapids, MI: Baker, 2008).

[2] Gillian Clark, Augustine: The Confession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3] Bishop of Hippo Saint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Ancient Christian Writers, no. 41 (New York: Newman Press, 1982).

[4] For a further discussion of Augustine’s perspective on creation, see chapter 6 of Francis Collins’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New York: Free Press, 2006), as well as chapters 8 and 15 of Alister McGrath’s A Fine-Tuned Universe: The Quest for God in Science and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9).

[5] St. Thomas Aquinas, “Question 74: All the Seven Days in Common,” in The Summa Theologica of St. Thomas Aquinas, 2nd ed., trans.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London: Burns Oates and Washbourne, 1920). Also available online at “Summa Theologica,” New Advent (accessed Oct 21, 2011).

[6]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Bible (Grand Rapids, MI: Francis Asbury Press, 1987), 22, quoted in Falk, Coming to Peace, 35. Also available online at John Wesley, “John Wesley’s Notes on the Bible,” Wesley Center Online (accessed Oct 21, 2011).

[7] John Wesley, A Survey of the Wisdom of God in the Creation: or, A Compendium of Natural Philosophy, 3rd ed. (London: J. Fry, 1777), 2:463, quoted in Falk, Coming to Peace, 35.

[8 Mark A. Noll and David N. Livingston, eds., B. B. Warfield: Evolution, Science, and Scripture (Grand Rapids: Baker, 2000), 14.

[9]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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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5. 기후변화의 요단강, 티핑 포인트

 

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이산화탄소 피드백


첫 연재글(352호·2020년 3월호)에서 이산화탄소 이야기를 했지요. 매년 인류가 화석연료 사용과 토지사용 변화로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5ppm 이상인데, 약 3ppm 정도는 해양과 육상의 식생(주로 숲)이 흡수하여 대기 중에는 약 2ppm씩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해양과 육상의 식생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극심한 지구온난화에 시달렸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즉, 지구의 기후시스템 자체가 지구온난화를 완화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많은 과학자가 연구한 미래의 전망은 매우 어둡습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양의 피드백(feedback)이 현재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는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는 예측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산림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폭염과 토양 수분 손실 등 건조 현상이 잦아지면 산림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를 예전처럼 흡수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 식생으로 흡수되어야 할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더 많이 쌓여 지구온난화는 증폭합니다. 

그뿐 아니라, 해양의 이산화탄소 용해도는 온도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납니다. 예를 들면 차가운 탄산음료 안에는 많은 이산화탄소가 녹아(용해) 있는데 상온에 두면 김이 빠지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해양이 따뜻해지면 온난화 진행 속도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예상됩니다.

 

 

메탄 피드백


지구 대기를 오염시켜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외에도 메탄, 이산화질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눈여겨볼 온실가스는 메탄인데, 메탄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와 비교하면 지구온난화를 28배나 더 일으킨다고 합니다. 다행히 대기에 존재하는 메탄의 농도는 이산화탄소보다 현저하게 낮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메탄은 일반적으로 습지(22%)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외에도 화석연료 및 천연가스(19%), 가축의 되새김질(16%), 쌀을 생산하는 논(12%), 화재(8%), 쓰레기 매립(6%) 등에서 배출됩니다. 자연적 발생뿐 아니라 인위적인 요소가 작용하며 대기 중 메탄가스 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북극 주변의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입니다. 영구동토층이란 지층의 온도가 연중 0℃ 이하인 부분을 말합니다. 지난 연재에서 얘기했다시피, 북극 일대는 가장 빠르게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는 지역인데 해빙뿐 아니라 얼어 있던 육지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곳엔 다량의 유기물이 지표 아래에 매몰되어 있는데요. 지구온난화로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표면에 두껍게 덮여 있던 눈이 녹고 습지가 형성되며, 얼어 있던 미생물들이 토양에서 활성화해 메탄가스를 방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불타는 얼음’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인데, 일부 영구동토층이 녹은 지점에 불을 붙이면 가스레인지보다도 잘 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땅속 메탄가스가 타면서 만들어내는 현상인데요. 이렇듯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 지역이 녹으면 메탄가스를 통해 양의 피드백을 만들어내고 계속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기 때문에 현재 학계의 관심은 이곳에 쏠려 있습니다.

 

 

 

기후 티핑 포인트


티핑(tipping)은 ‘균형을 깨뜨리는 것’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란 뜻으로 엄청난 변화가 작은 일들에서 시작될 수 있고 대단히 급속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앞서 언급한 피드백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특정 순간 갑자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면 이를 ‘기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30cm 막대자를 책상 위에서 천천히 밀어낼 경우, 무게중심이 되는 자의 15cm지점이 책상을 벗어나는 순간, 자는 툭하고 떨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임계점이 기후 현상에서도 존재한다는 이론이 바로 기후 티핑 포인트입니다. 과거 빙하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온도에 관해 기록된 자료를 보면 급격한 기후변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11,500년 전쯤에 그린란드의 온도가 40년 동안 무려 8℃나 상승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화 <투모로우>(2004)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에 빙하기가 닥쳐오는 대재앙 상황을 그려냅니다. 영화에서 북극의 빙하가 다량으로 녹아서 해양의 염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난류의 흐름이 끊겨 갑자기 빙하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설정은 고기후 연구에서 발견한 과학적 내용을 배경으로 삼은 것입니다. 아직도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후 티핑 포인트가 어느 시점에 생길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구 시스템 모형이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도입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불확실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지금 기후 시스템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기후 임계점, 기후 티핑 포인트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산화탄소의 수명


국제에너지기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류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세계 에너지 소비가 6% 감소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도 8%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습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기간이나 2차 세계대전 끝 무렵보다도 훨씬 큰 폭의 이산화탄소 감소량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조기 사망과 경제적 트라우마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였을 뿐 경제 상황이 회복되면 배출량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와해되면 그동안 분출하지 못했던 소비심리가 단기간에 증폭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온실가스 배출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산화탄소 문명’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한 가지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당장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시겠지만, 이미 우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미래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해서 1,500ppm이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현재는 410ppm 수준입니다.) 늘어난 이산화탄소 중 65%에서 80%는 20년에서 200년 사이에 해양이 흡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몇 백 년에서 몇 천 년 동안 서서히 줄어든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수천 년간 계속 대기 중에 남아서 계속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현상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한들 이미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중 일부는 몇 천 년 동안 대기 중에 남아서 계속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지구온난화라는 큰 짐을 지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비가역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산화탄소 농도 미래 전망 결과. (출처: Inman, 2008 Nature Climate Change)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생각한다면 과학자처럼

데이비드 J. 헬펀드 저, 노태복 역, 더퀘스트, 2017

 

글_ 윤세진 (구일고등학교 과학교사, 과신대 실행위원)

 

 

과학은 하나의 전공이나 분야가 아니다. 과학은 체계적으로 사고하겠다는 약속이며, 가설을 검증하고 사실을 관찰함으로써 우주를 설명하고 지식을 쌓아가겠다는 맹세다. - 아툴 가완디(Atul Gawande) - (47쪽)

 

요즘 코로나바이러스증후군-19(Covid-19)이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언론이나 SNS를 통해 쏟아지는 수많은 정도들이 우리 주위에 널려 있다. 그 덕분에(?) 너도 나도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용어가 익숙해졌고, 어떤 사람은 그 특징이나 증상 등을 웬만한 의사 못지않게 알기도 하고 설명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나름의 잘못된 대처 방식까지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1] 삶과 죽음이 달려 있고, 일상적인 용어를 사용해서 그런지 의사나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보다 더 호소력 있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나마 일반인들의 이러한 것은 애교 수준이다. 요즘에는 가짜 뉴스를 넘어서 사이비 과학이 등장하고 있다. 저자는 사이비 과학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런 그릇된 정보 중 일부는 과학으로 가장해 전문용어를 구사하고 회의를 개최하며 학술지까지 발간한다. 일부 집단에서 이렇게 부르면 정치적으로 옳지 않지만, 나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사이비과학’이라고 명명한다. 겉으로는 과학의 언어와 형식을 표방하지만, 과학의 기본 원리를 뒷받침하는 모든 내용을 거부하는 뚱딴지같은 지식의 집합체를 정의하는 말이다. 이 사이비과학은 오류 가능성에 구애받지 않으며, 진정한 과학 탐구를 추구하는 이들의 사상과 업적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23쪽) 

 

과학 기술의 시대에 과학과 기술을 도용하는 이런 사이비 과학은 빨리 사라져야 하지만, 쉽사리 없어지기 어려운 점이 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생각에 과학은 어렵고 나는 과학을 잘 몰라도 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과학을 공부하기 싫어한다. 또한,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도 “과학”을 제대로 배우기보다는 나열된 지식을 배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과학을 잘 이해하지 못하니 과학을 빙자해서 사람들을 속이려는 시도들이 너무 많다. 이런 사이비 과학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모든 사람들이 과학을 제대로 배워 “과학적 소양”[2]을 갖추는 것이 필요하다.

 

 

이 책은 과학자로서 일반 사람들이 알았으면 하는 과학적 사고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한 것이다. 특히, 1장의 공원 산책하기에서는 일상적인 삶의 주변에서 보고 느끼는 것들에서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과 과학의 중요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특히 현재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중대한 문제 - 기후변화 같은 - 를 해결하려면, 낭만적인 접근보다는 과학적인 접근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어렸을 적 가졌던 호기심을 유지하면서 과학적 사고(비판적 사고)를 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장의 과학이란 무엇인가에서는 과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그 견해가 다양할 것이라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는 자신이 제시하는 과학에 대한 견해도 일반적인 것이 아닌 자신만의 견해라는 것을 밝힘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만의” 과학에 대한 견해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는 암시를 하고 있다. 특히 과학을 “진리를 찾는 활동이라기보다는 ‘자연의 반증 가능한 모형을 찾기 위한 체계’라고” 정의하는 것을 통해 과학에서 중요한 점은 포퍼(Karl Popper)에 의해 강조된 비판적인 사고라는 사실을 언급하여 수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의 차이를 설명해 준다.

 

이후의 장에서는 과학을 좀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는 여러 사례들을 제시해 주어 “과학적인” 사고를 접하게 해 준다. 아주 큰 숫자를 이해하는 방법(3장)에서는 원자의 크기와 태양계의 크기 등을 다루면서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너무 많은 숫자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중에 인상적인 것은 시각이 0.02초보다 더 빠른 시간은 직접 지각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즉 사람은 연속적인 시간을 시각이 지각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간격을 뇌에서 메꿔 주며, 이 원리를 이용해 영화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봉투 뒷면에서 발견한 것들(4장)에서는 숫자를 다룰 때 추산(혹은 어림)하는 방법, 즉, 알 수 없는 양을 대략적으로 추산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는 수를 다룰 때 맥락을 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어떤 숫자가 제시되는 상황을 알지 못하면, 그 숫자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없다. 예를 든 것의 하나가 미국 언론의 식인 상어에 대한 헤드라인 문제이다. 언론에서는 식인 상어 문제로 호들갑을 떨고 있었지만, 정작 저자의 추론에 의하면 식인 상어에 물려 죽는 사람은 연간 100만 명 중 1명도 채 되지 않는다. 반면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30분에 두 명, 흡연으로는 130초마다 두 명이 죽는다. 맥락이 없는 숫자는 이렇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래프를 보는 방법(5장)에서는 그래프를 과학적으로 그리는 방법과 함께 이를 제대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을 다루고 있으며, 확률과 통계(6장, 7장)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의 차이(8장)에서는 확률과 통계에 대한 기초적인 개념을 다루면서 과학적인 측정에서 나타나는 오차와 그에 따른 표준편차, 가우스 분포, 푸아송 분포 등의 개념을 설명한다(사실 이 부분의 개념은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상관관계가 있는 두 양에 대해 인과관계로 설명하면 안 된다는 주의를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보도되는 많은 기사에서는 서로 상관관계가 있는 것을 대부분 그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하여 보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자들이 이 책의 8장을 정독했으면 좋겠다.

 

과학의 특징에 대한 재 언급과 그와 관련된 뇌의 특성(패턴을 찾으려는 성향과 그로 인한 문제점), 모형에 대한 설명을 다루는 9장은 또 다른 측면에서 과학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장에서는 프록시라는 개념이 중요시되는데, 이는 측정할 수 없는 어떤 정량적인 데이터가 그 특성이나 측정도구의 한계로 인해 측정할 수 없을 때 그 데이터를 대신 측정할 수 있는 대용물에 의존하게 되는데, 이를 프록시라고 한다(218쪽). 예를 들면 특정한 시기 이전의 고기후에서 산소 동위원소의 비율을 통해 기온을 추정하는 경우이다.

 

과학적 사고 습관의 필요성(10장), 과학이 아닌 것들(11장), 잘못된 정보와 비합리적인 결정의 문제(12장), 우리가 가져야 할 과학적 태도(13장) 등에서는 우리가 접하는 많은 정보들을 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아야 할 필요성을 여러 자료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에 수학적인 계산 과정이 나와 있어 그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과학이 수학의 도움을 받아 자연현상에 대한 이론적 모형을 세우는 것임을 알게 된다면, 그 정도의 수고로움은 필요하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중 몇 가지는 다음과 같다.

 

  1.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얼마 상승하는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 얼음과 물의 밀도를 비교해보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 사실 해수면 상승은 빙하가 녹는 것보다는 기온 상승으로 인한 바닷물의 팽창이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

  2. 우리 뇌는 패턴을 찾도록 진화했지만, 편견 없이 종합적인 데이터를 찾는 데는 미숙하고, 따라서 뇌는 객관적이고 공평한 패턴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냥” 패턴을 찾기 때문에 잘못된 패턴을 찾는 경우도 많다는 것.

  3. 과학의 세계는 증명이 관건이 아니다. 그것은 수학과 철학의 몫이다. 흔히 과학은 정확성을 추구하는 정밀한 분야라고 알려져 있지만, 과학은 측정과 설명에 내재적이고 불가피한 불확실성을 지니고 있음을 스스로 알고 있으며, 자연계의 모형을 세우고 검증할 그러한 불확실성을 통계를 통해 명시적으로 설명한다”(369). 불확실성을 통계를 통해 명시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과학은 자연이라는 실재에 조금씩 다가가는 하나의 근사(approximation)”[3]라는 말과 통하는 점이 있다. 

과학이라는 활동은 그릇된 생각을 교정하는 발걸음을 재촉하기 위한 여러 습관과 기법을 개발해냈다. 이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아마도 회의주의다. 많은 사람들은 회의주의를 꽤 부정적으로 여기지만, 그것이야말로 과학자의 최고의 자질이다. 누군가의 데이터에 회의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 한 측정이 어떤 외부적 효과에 의해 편향됐거나 혼동됐는지를 늘 살피는 것은 과학에서 필수적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의 모형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며, 그 모형을 자연에 관한 더 나은 설명에 의해 대체될 수 있는 잠정적인 근사로 인식하는 태도는 훨씬 더 필수적이다. 누군가의 데이터가 그가 세운 모형과 일치하더라도, 그때의 행복감은 두 가지 모두에 대해 철저하게 회의적으로 살피는 비평가에 의해 누그러져야 마땅하다. (585쪽)

 

과학자는 건전한 회의적 사고, 판단을 미루는 자세, 그리고 올바른 상상력을 가져야 한다는 에드윈 허블의 말은 단지 과학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 시대에 어떤 분야에 속하든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이 아닐지.

 

과학은 어렵다. 그러나 과학은 우리 일상에 많이 들어와 있으며,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과학에 좀 더 친해져 보면 어떨까? 아니, 그 이전에,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들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 보는 시도를 해 보면 어떨까?

 

 


[1] 류충열(2020.04.01) 가짜 뉴스가 코로나 19보다 더 무서운 사회. http://www.hi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994

[2] 과학적 소양이란 개인적인 의사 결정, 사회적 문화적 사건에의 참여, 경제적 생산을 위해 필요한 과학적 개념과 과정에 대한 지식과 이해, 능력 등으로 정의된다. (NRC 저, 서혜애, 오필석, 옹재식 번역(2000). 국가과학교육기준. 서울: 교육과학사)

[3] 우종학(2017).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82쪽. 서울: 새물결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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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37 (20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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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6.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37호





과신대 칼럼

과학-신학 대화는
인격신을
논할 수 있는가?


장재호 교수 
감리교 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즉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논의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진화 과정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더보기)


[과책 ]

카터 핍스 | 인간은 무엇이 되려 하는가? | 김영사 | 2016
 
글 : 최성일 (과신대 기자단)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떠오른 카터 핍스의 이미지를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균형잡힌 제너럴리스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더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제 20회 콜로퀴움 (김성신 박사)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후기

글 : 김완식 (과신대 기자단)

이번 19회 과신대 콜로퀴움은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김성신 박사님이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이란 주제로 뇌과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뇌과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 뇌와 관련된 사이비 과학, 뇌 결정주의, 뇌를 관찰하는 방법, 기억에 대한 이야기, 뇌과학의 미래 등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더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
이제는 『만들어진 신』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습니다.

-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

글 : 김완식 (과신대 기자단)

도킨스는 과학이 아직 해명하지 못한 부분에 신의 설계를 슬쩍 집어 넣는 지적 설계론의 ‘틈새의 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지적 설계론이나 도킨스나 모두 동급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더보기)

[Coming Soon]

[온라인 기초과정] 6월 한정 특별 할인!!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초과정>을
6월 한달 간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더보기)

[과신톡] 성소수자 정신건강의 이론과 실제
(2020년 6월 22일, 온라인)

줌(ZOOM)으로 진행되는 이번 과신톡 행사에서는 그동안 성소수자의 정신건강에 대한 연구와 강연을 꾸준히 해오신 장창현 선생님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세한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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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칼럼]
Homo sensibilisㅡ색채론
 
글 : 백우인 (과신대 출판팀장)

비가 내리는 것은 수 없이 많은  동그라미의 세계가 펼쳐지는 것이다.  세상에게 몸이 있다면 사선으로 유성우처럼 쏟아지는  비의 입구는  세상의 옆구리다. (더보기)

[바이오로고스]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9. 화석 기록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번역 :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기독교인들에게 화석 기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더보기)

[과책 ]
윤철민 |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
CLC | 2013
 
글 : 이혜련 (과신대 기자단)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마치 상식처럼 알고 있던 ‘에덴동산에서는 모두 초식을 했을 것이다.’, ‘휴거’,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다.’ 등등의 지식이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더보기)


[Coming Soon]

[과신대 핵심과정 2기] 안내
(6/22 - 8/3, 온라인 강연)

성경과 신학, 과학, 그리고 윤리를 포함한 주요 내용을 배울 수 있는 새로운 교육과정, "과신대 핵심과정 2기"가 개설됩니다.

자세한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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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콜로퀴움] 안내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2020년 7월 6일 온라인 강연)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오랜 시간 과정신학을 연구해 온 장왕식 교수를 통해 자연주의 철학과 기독교 창조론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화해할 수 있는지를 살펴봅니다.

자세한 사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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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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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 후원
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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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과 신학의 대화 후원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박희규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백경민 교수 |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송수진 교수 |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오세조 목사 | 팔복루터교회
  우종학 교수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은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조직신학
  이정모 관장 | 국립과천과학관
  이현식 목사 | 강남중앙교회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장왕식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정삼희 목사 | 신도중앙교회
  정  준  목사 | 더처치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차정호 교수 | 대구대학교 화학교육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황소현 교수 | 차의과학대학교 병리과/의생명과학과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강사은 | 실행위원장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이승훈 | 미디어팀장
  이신형 | 북클럽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장민혁 | 행정간사
  이슬기 | 미디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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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4. ‘고작 1℃’여서 문제 없다고?

이미지 출처: https://www.greenqueen.com.hk/

 

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기후변동과 기후변화


지난 글에서 설명한, 매년 기후의 상태가 변하는 ‘경년변동성’(經年變動性)이 기억나시는지요? 2018년에는 한파와 폭염이 있었습니다. 서울 기준 연 최저기온 -17.8℃, 연 최고기온은 39.6℃를 기록했습니다. 반면 2019년에는 겨울이 별로 춥지 않았고, 여름도 별로 덥지 않았습니다. 2019년 1월 최저기온은 -10.1℃이었고, 여름철 최고기온은 36.8℃이었습니다. 이렇듯 해마다 온도의 변화가 다르게 나타나는데, 이것을 ‘기후변동’이라고 합니다. 이와 달리, 기온이나 강수량 등의 ‘평균값’이 한 방향으로 꾸준히 변하는 것을 ‘기후변화’라고 합니다. 

지난 글에서 ‘기후’를 사람이 가진 성격에 비유할 수 있다고 했는데요. 이 기후의 값은 대개 20년에서 30년을 관찰한 평균 날씨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수많은 기후변화 중 하나인 지구온난화는 많이 들어보았을 것입니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의 평균 기온이 꾸준히 상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1880년에서 2020년, 전 지구 연평균 기온 대비 연도별 연평균 기온과 30년 이동 평균 기후 값. (출처: NASAGISS)

 

위 그래프는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발표한 1880년부터 2020년까지의 지구 연평균기온 도표입니다. 점과 직선으로 연결된 선은 연도별 연평균 기온을 의미하고, 곡선은 30년간의 평균기온인 기후 값을 나타냅니다. 매년 기온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경년변동성도 있지만 1970년대부터 뚜렷하게 상승하는 추세를 볼 수 있습니다. 기후 값을 의미하는 곡선도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기후 값이 변하는 기후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의 기온이 점점 오르고 있기 때문에 명백한 지구온난화입니다. 다음 그림(142쪽)은 지구온난화가 공간적으로 어떠한 분포를 가졌는지를 나타냅니다.

이 그림은 대륙별로 1951년부터 1978년 사이의 평균 기온에 견주어 2010년부터 2019년의 평균 기온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보여줍니다. 그림을 보시면 대부분의 지역이 노란색이나 적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범주를 보면 0.2℃ 이상의 온난화가 이뤄진 지역을 진한 색으로 표시했기 때문에 지구 대부분의 지역이 온난화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같은 바다보다는 육지의 온난화 경향이 뚜렷하고, 남반구보다는 북반구가, 그리고 열대지역보다는 중·고위도 지역에서 온난화 경향이 강합니다. 그중에서도 북극 지역의 온난화가 가장 심한데, 다큐멘터리 <북극의 눈물>이나 언론을 통해서 많이 접하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고작 1℃만 상승했지만


지구온난화는 18세기 산업혁명 이후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해 일어난 현상입니다. 그 결과 지구의 평균 기온은 고작 1℃밖에 상승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1℃는 체감하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 수치입니다. 하지만 연평균 기온 1℃의 상승은 여름철 폭염 발생 빈도를 145배나 증가시킵니다. 과거에는 매우 드물게 일어나던 폭염 현상은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더 강하고 빈번하게 나타났다는 사실이 관측되었습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143쪽) 과거(1951년에서 1980년)를 나타내는 청색 선 보다 최근(2005년에서 2015년)의 분포를 나타내는 적색 선이 오른쪽으로 치우쳐져 있습니다. 현재에 가까운 시기일수록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모습입니다. 가로축은 기온과 기후 값의 차이를 표준편차로 나눈 값인데, 최근에는 과거에 비해 높은 기온이 나타날 확률이 증가했음을 나타냅니다. 

 

1951-1978년 연평균 기온 대비 2010-2019년의 연평균 기온 차이.(출처: NASAGISS)

 

특히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극한(extreme) 기온 현상이 관측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아래 도표의 가로축 기온의 4, 5, 6 강도의 폭염 현상이 과거에는 없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최근 들어 빈번해진 것입니다. 따라서 매해 여름마다 자주 갱신되고 있는 최고 기온은 자연 변동성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들이 평균 기온을 상승시키면서 확률적으로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인재(人災)라는 연구 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습니다.

 

북반구 여름철(6, 7, 8월) 기온의 확률분포. 가로축은 정규화 된 기온, 세로축은 발생 빈도 확률. (출처: Hansen and Sato 2016 Environ. Res. Lett. 11 034009)

 

극한 기온 현상이 빈번히 발생하게 된 이유는 평균기온 상승이 토양을 더 건조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여름철 시장에 가면 상인들이 대야에 물을 받아 바닥에 뿌리곤 했습니다. 시멘트 바닥에 물을 끼얹으면 순간적으로 열기가 가라앉는데, 물이 수증기로 증발하면서(기화) 주변의 열을 빼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지표 토양에 수분이 있으면 폭염이 오더라도 수분이 기화하면서 기온 상승을 억제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균기온 상승으로 토양의 수분이 고갈된 상황에서 여름철 폭염이 발생하면, 기화할 수분이 없기에 폭염은 억제되지 못하고 계속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사막 지역은 사막화가 더 가속되기도 합니다.

 

 

북극의 기온이 급상승하는 이유


북극은 주로 바다로 이루어져 있고 기화할 물도 많은데 왜 지구온난화가 가장 극심하게 나타나는 지역이 되었을까요? 그 이유는 바로 반사율(albedo)에 있습니다. 여기서 한 번 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보고자 합니다. 돋보기로 검은색 색종이를 태웠던 기억을 가지고 계시는지요? 검은색은 태양열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돋보기로 빛을 모아주면 쉽게 타지만, 흰색 종이는 쉽게 타지 않습니다. 흰색은 모든 빛을 반사하기 때문입니다. 

북극 지역은 주로 해빙(바닷물이 얼어 있는 것)이나 눈이 바다와 육지를 덮고 있어 희게 보입니다. 따라서 많은 양의 태양열이 반사되어 낮은 기온을 유지합니다. 하지만 지구의 이불이라고 할 수 있는 온실가스로 인해 기온이 상승하기 시작하면, 해빙이나 눈이 녹고 바다와 육지의 표면이 노출됩니다. 바다와 육지 모두 해빙이나 눈보다는 태양열을 잘 흡수하기 때문에 기온이 빠르게 상승하고 그러면 다시 해빙과 눈이 녹습니다. 결과가 다시 원인 제공을 하는 순환이 증폭되는 것을 피드백이라고 합니다. 극심한 건조와 폭염을 증폭시키고 평균기온을 높이는 이런 파괴적인 피드백 작용을 통해 북극 지역의 기온은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지구온난화, 폭염, 북극이 녹아내리는 현상 등 지구가 직면한 문제는 나와 별 관계없는 먼 나라 이야기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건 과학자들이나 정부 당국자들이 할 일이지, 자신의 일상과는 무관하게 여기는 것이지요. 그러나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자기계발과 개인 자산 운용 등에 시간과 노력을 들이듯, 우리와 우리 후세대가 살아가야 하는 터전과 환경에 대한 관심과 책임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일상이 실천과 관심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생기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제21회 콜로퀴움]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근대 세계는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도전과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 ‘과학적’이 됐으며, 그에 반하여 기독교 신앙은 더욱 근본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 깊은 골을 매우기 위해서는 과학적 자연주의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정신학은 과학과 신학이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두 세계관의 근본적인 종합을 제안한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오랜 시간 과정신학을 연구해 온 장왕식 교수를 통해 자연주의 철학과 기독교 창조론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화해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해주시면 이메일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20년 7월 6일(월) 낮 12시 (시청기간: 7월 17일 낮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연 순서

1부 강연(약 90분) :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장왕식 교수)
2부 대담(약 30분) : 장왕식 교수, 최경환 사무국장 

 

* 강사 소개

장왕식 교수현재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대종교철학연구소 소장직을 겸하고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가르친 바 있으며, 한국 화이트헤드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공부한 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화이트헤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역서로 『화이트헤드 풀어 읽기』, 『과정형이상학과 화이트헤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생성과 과정의 철학에서 종교철학의 문제를 다룬 책인 『동양과 서양, 종교철학에서 만나다』와 과정신학의 입장에서 다윈주의의 문제를 다룬 『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가 있다.

 

**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 정회원 입회 신청서 : bit.ly/2ZfJd2q
> 정기 후원 신청서 : https://bit.ly/2VLxHa6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년 6월 온라인 기초과정 특별 할인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초과정>을 6월 한달 간 50%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합니다.

 

✓ 영상 시청 방법: 온라인 <기초과정> 특별 할인 수업은 구글 클래스룸으로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자에게는 클래스룸 접속 코드를 보내드립니다. 구글 클래스룸 수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구글 계정(이메일)이 필요합니다. 계정이 없는 분은 미리 만들어주시기 바랍니다. 

 

※ 등록 신청: bit.ly/2AlP7EP

 

✓ 일시 : 2020.6.10~6.30 (영상은 7월 5일까지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 강사: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의 내용
[1부 과학의 도전] 1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2강. 과학의 특성과 한계
[2부 성경 해석] 3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4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5강. 무신론의 도전 6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4부 창조의 스펙트럼] 7강. 창조론의 스펙트럼 8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기초과정을 수료하신 분은 <핵심과정>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핵심과정 안내: bit.ly/2XyUnwp) 


■ 수강료 : 30,000원  15,000원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등록비 납부가 확인되어야 수강신청이 완료됩니다. 등록비 납부가 끝나면 사무국에서 안내 문자를 발송해드립니다. 안내에 따라 구글 클래스룸에 들어오시면 수업을 들으실 수 있습니다.

 
* 궁금한 사항은 언제든지 과신대 사무국으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문의 : 070-4320-2123, scitheo.office@gmail.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