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9. 화석 기록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화석 기록은 무엇을 보여주나요?
What does the fossil record show?

 

 

화석은 지구 역사의 광대한 기간 동안 생명체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보여주어, 먼 과거를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합니다. 전 세계에 걸쳐 암석층 안에서의 화석 배열은 고도로 질서정연하며, 과도기적 화석들이 풍부합니다. 화석 증거만으로는 모든 생명체가 공통조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지만, 화석 기록은 그 결론과 일치합니다 (그리고 그 결론을 상당히 시사합니다). 공통조상을 전제로 하여 과도기 화석을 어디에서 발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예측은 놀라운 발견을 가져왔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화석 기록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돌아볼 수 있도록 해주는 놀라운 선물입니다.

 

화석은 희귀하고, 풍부하며, 다양합니다.

 

화석은 바위, 호박, 타르, 얼음 또는 다른 매질을 통해 보존된 고대 생물들의 흔적입니다. 고생물학자라고 불리는, 화석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고대 생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서 살았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밝히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사용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오래 전에 살았던 생물로부터 화석화된 이빨 또는 뼈가 나온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건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1600년대에 화석이 체계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하자, 그 화석을 해석하는 방법에 대한 격렬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화석은 생물의 잔재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화석이 돌, 즉 뼈나 이빨 또는 껍질이 아닌 주변 암석과 같은 종류의 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어떻게 그것들이 지구 깊숙이 매장될 수 있었는지에 대한 알려진 메커니즘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더욱이 화석은 종종 어떤 현존 생물과도 닮지 않았으며, 그 당시 종은 창조된 이래로 "고정되어"있다거나 변하지 않는다고 널리 믿었기 때문입니다. 멸종은 불가능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1600년대 후반에, 사실상 화석이 과거 생물의 굳어진 잔재라는 주장이 논쟁에서 이기기 시작했습니다. 존 레이(John Ray)와 윌리엄 스미스(William Smith)와 같은 헌신적인 기독교인들은 화석의 본질과 분포를 기술하고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러한 초기 크리스천 지질학자들은 먼 과거에 살았던 생명체의 창조주로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화석화는 극도로 희귀한 사건이지만, 화석은 풍부합니다. 어째서 일까요?

 

화석화의 가능성은 지역의 조건과 유기체의 구성에 따라 크게 좌우됩니다. 죽은 이후, 대부분의 생명체들은 공기에 노출되기 때문에 재빨리 먹히거나 분해됩니다. 화석화되기 위해서는 유기체가 저산소 환경에서 보존되어야만 합니다 (산소는 죽은 유기체를 분해하는 호기성 종속 영양 박테리아가 자랄 수 있게 합니다). 나무 수액에 갇힌 곤충 한 마리; 늪지에 갇힌 철기 시대의 인간; 홍수로 인해 퇴적물에 하류로 휩쓸려 퇴적물에 갇힌 공룡 - 이런 것들은 희귀한 사건이지만, 생명체가 오래 동안 존재해왔고, 또 많은 생물들이 지구 위에 흔적을 남겼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날 지구 역사의 대부분에 걸친 거대한 화석의 컬렉션을 가지고 있게 되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화석은 그린란드에서 발견된 미생물 덩어리인데, 37억 년이나 되었답니다.

 

대부분의 화석은 이빨과 뼈와 같은 단단한 신체 부위를 가진 생물체에서 유래하지만, 많은 다른 종류의 화석도 존재합니다. 빙하 안에 얼려진 매머드는 수천에서 수천만 년 동안 놀랍게도 거의 분해가 되지 않은 채 보존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가끔 공기에 노출되기 전까지 원래의 색을 그대로 간직하는, 자연 그대로의 나뭇잎을 고대의 호수 바닥에 짓눌린 채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예로는 공룡의 피부, 깃털의 자국, 꽃가루, 무척추동물이 기어가거나 구멍을 판 흔적, 조개, 알이 보존된 공룡의 둥지, 그리고 "석화된" (고생물학자는 "광물화된"이라는 단어를 선호합니다) 나무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심지어 화석화된 공룡 뼈 안에 보존된 연조직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다양한 화석이 형성되는 과정을 화석학(taphonomy)이라고 부르며, 고생물학의 흥미로운 연구 분야입니다. 

 

 

퇴적암에 분포된 화석은 고도로 질서정연합니다.

 

화석은 퇴적암에서 가장 흔하게 발견되고, 화성암(마그마로 형성된 암석)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며, 변성암(열과 압력에 의해 변형된 암석)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퇴적암은 광물 및 유기물질이 퇴적되고 궁극적으로는 지층(strata)이라 불리는 층으로 단단하게 합쳐지면서 형성됩니다. 때로는 이러한 현상이 급속하게 발생할 수 있지만, 전형적으로 주목할 만한 층들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수백만 년이 걸립니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된 지층은 오래되지 않은 지층 밑에서 발견됩니다. 마치 재활용 수거함 안에서 보통 지난 주 신문이 오늘 온 광고지들보다 아래에 놓이는 것처럼 말이지요. 지질학자들은 이를 중첩의 원리(principle of superposition)라고 부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암석층은 기울어지거나 접혀지거나 부서지거나 또는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종종 이러한 결과를 만드는 일련의 사건들을 밝혀낼 수 있습니다. 암석의 각 층에 있는 화석은 따라서 그 층들이 형성될 때의 환경에서 살았던 각 종류의 생물 표본인 것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지층은 읽히고 해석될 수 있는 생명의 역사에 대한 책의 "페이지들"인 것입니다. 

 

화석은 몇 가지 방법으로 놀랍게도 질서 있게 분포되어 있습니다. 다윈의 시대가 오기 훨씬 전, 어떤 종류의 화석이 암석 기둥 내에서 항상 서로 같이 발견된다는 사실이 관찰되었습니다. 즉, 어떤 종류의 생물들은 서로 같이 발견되었고, 다른 종류의 생물들과는 같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삼엽충은 더 낮고 오래된 층에서 발견되었고, 거대 곤충과 양치류는 그보단 덜 오래된 층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으며, 공룡은 그보다도 더 오래되지 않은 층에서 더 많이 발견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층에 있는 화석 군의 순서는 각 대륙에 걸쳐서도 장소에 상관없이 매우 일관적입니다. 어떤 한 화석 군이 다른 화석 군으로 대체되는 이런 패턴은 너무 일정하여 동물군 천이의 원리(principle of faunal succession)라고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동물군 천이는 멸종의 증거(종의 90%까지 손실된 대규모 또는 대량 멸종 사건조차도)뿐만 아니라 새로운 종들의 일상적인 출현 증거도 보여줍니다. 두 아이디어는 모두 1800년대에는 놀라운 것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진화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 조차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어떤 기독교인들은 모든 화석이 수천 년 전 노아의 홍수 때 퇴적되었다고 믿습니다(창 6-9장). 이 경우가 참이라면, 모든 유형의 화석은 섞여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삼엽충과 꽃 피는 식물을 같은 층에서 결코 발견하지 못했으며, 그랜드 캐년에서는 공룡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비록 그것들이 발견되었지만, 암석 시대에 예상했던 대로, 근처에 있는 Grand Staircase 층군의 높은 층에서 였습니다). 화석 기록은 (다른 지질학적 증거와 마찬가지로) 재앙적이었던 전지구적 홍수 사건이 한 번도 없었음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홍수 이야기에 대한 역사적 근거가 전혀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기록은 신학적인 역사(theological history)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신학적 목적을 위해 실제 사건(아마도 지역적 홍수 사건)을 굉장히 비유적인 언어로 기술했다는 말입니다. 성경무오성에 헌신된 많은 성경학자들과 과학자들은 성경적인 그리고, 과학적인 이유로 홍수지질학을 거부합니다. 

 

화석은 또한 다른 방식으로도 질서를 보여줍니다. 특정 암석층은 그 암석층이 포함하고 있는 화석에 의해서 전세계적으로 식별 가능할뿐 아니라, 암석 기둥의 윗부분으로 갈수록 계통 내의 더 큰 생물체로의 경향을 볼 수 있습니다. 크기의 경향은 계통 내에서만 일어나며, 계통 간에 일어나지 않습니다. 포유동물은 위로 올라갈수록 커지지만, 공룡만큼 커지지는 않습니다. 더구나 작은 유기체는 모든 층에 존재하지만, 큰 동물은 바닥 층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젊은지구 홍수지질학과 일치되기 어렵지만, 암석층이 형성되기까지 수백만 년이 걸렸고 생명체가 공통 조상과 관련이 있다는 전제 하에서 예측 수 있는 것들과는 정확히 일치합니다. 

 

과도기 화석은 풍부합니다. 

 

진화 이론에 대한 많은 비판자들은 한 종에서 다른 종으로의 진화적 전환을 보여주는 "과도기 화석"의 부재를 언급합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 맞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다른 알려진 두 종 사이에 존재하는 계통에 확실히 해당되는 화석을 찾는 것은 아주 드뭅니다. 왜 그런지 한 비유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가족 묘지에서 무덤을 무작위적으로 골랐다면, 그 무덤이 여러분의 직계 조상인 증조 할아버지(여러분의 직계 조상)의 것일 가능성은 낮겠지만, 아마도 먼 친척(즉, 여러분의 가족이긴 하지만 직계 조상은 아닌)의 무덤일 가능성은 꽤 높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화적인 가계도의 "무성함”(bushiness) 때문에, 서로의 직계 조상이 아닌 가까운 관계의 종이 많이 존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진정한 과도기적 형태는 극히 희귀한 것으로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진화론적으로 "사촌"인 종들이 훨씬 흔합니다. 그 종들은 그러나 가까운 공통 조상을 공유하기 때문에 여전히 과도기적이라고 여길 수 있습니다. 

 

시조새가 전형적인 예입니다. 시조새는 비조류 공룡에서 조류로의 전환을 나타내지만, 어떤 현생 조류의 직계 조상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은 많은 수의 과도기 화석이라 할 만한 것들을 발견했습니다. 그것들은 대부분 소위 "소진화론적" 전환에 주로 해당되지만, 각각의 주요 제안된 진화적 전환에서도 존재합니다. 가끔 과도기 화석의 전체 순서가 알려지기도 합니다. 이러한 주요한 전환들의 예는 육지에 적응하는 어류의 많은 계통 중 하나, 공중비행으로 진화하는 초기의 수각류 공룡의 한 계통, 수상 서식지에 적응하는 육상 포유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진화하는 영장류의 한 계통 등입니다. 이제 우리는 한 가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바다에서 육지로의 전환입니다.

 

 

전환기에서 땅으로: 바다 생물에서 육지 동물로

 

육지 동물(또는 사지 동물)의 화석은 약 3억 7천만 년 전의 암석에서 처음 나타납니다. 더 오래된 암석에서는 바다 생물만 발견될 뿐입니다. 그러나 1998년, 과학자들은 3억 7천만 년 전의 화석화된 지느러미를 발견했는데, 인간의 손가락 5개와 비슷한 8개의 가락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느러미는 의심할 여지없이 물고기의 지느러미였습니다. 이는 이 화석이 과도기적 형태의 강력한 증거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화석 기록을 조사할 때 커다란 성공 사례 중 하나는 물에 적응된 척추 동물과 육지에 적응된 척추 동물 사이에 거의 완벽한 화석화된 전환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진화 생물학자 닐 슈빈(Neil Shubin)은 1998년에 발견된 지느러미보다 더 완전한 과도기적 표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과도기적 육지/수중 동물을 품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던 암석의 정확한 나이를 결정한 후, 그와 그의 팀은 그 나이에 해당하는 북극의 침식된 암석에서 하나의 표본을 찾기 위해 4번의 여름을 보냈습니다.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그들은 아가미와 비늘이 있는 물고기를 발견했지만, 그 물고기는 악어 같은 평평한 머리와 얕은 곳에서 동물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강한 지느러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표본의 이름은 틱타알릭(Tiktaalik)으로 붙여졌으며, 진화 이론의 예측력을 보여주는 놀라운 예입니다. 

 

화석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해 말해줍니다. 

 

가끔 화석의 아름다움과 경이는 진화에 대한 논쟁에서 잊혀집니다. 우리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날 때, 우리가 발견한 모든 새로운 화석은 선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선물은 우리 행성 위에서 벌어진 생명의 역사라고 할 수 있는, 광대하고 복잡한 퍼즐의 작은 조각과도 같은 것이지요. 기독교인들에게 화석은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에 대해 반추해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바다에 사는 파충류 군인 모사사우르스를 생각해 보지요. 스쿨버스만큼 긴 이 무시무시한 포식자는 2천만 년 동안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참고로 비교해서, 호모 사피엔스는 지상에서 오로지 20만 년 동안 존재하고 있습니다!)

 

모사사우르스와 같은 멸종된 생물의 거대한 수와 다양성, 상이점,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광대한 시간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그의 세계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요?

 

첫째, 그들은 포식과 멸종이 인간이 생겨나기 오래 전인 수백만 년 동안 실재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이 말은 일부 기독교인이 믿는 것처럼, 포식과 멸종이 타락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한 세상의 일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무시무시한 생명체(욥 38-41장)의 힘과 포악함에서도 기뻐하시는 창조주에 대한 묘사와 일치하지만, 아마도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 관련된 오랜 시간은 하나님이 엄청난 시간을 들여 창조하신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은 참을성이 좋으십니다. 그 오랜 시간에 걸친 셀 수 없이 수많은 종의 출현은 창조가 "단번에 끝난" 사건이 아니라 지속 중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관찰은 창세기 1장에 나오는 창조 기간을 우리가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끼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엄청나게 많은 대다수의 생명체가 더 이상 지구에서 볼 수 없다는 사실과 씨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은 한동안 존재했었습니다. 평생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서나 인간에게 사용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선하신 기쁨과 목적을 위해 존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것은 어떠한 방법으로도 창조하실 수 있으셨지만, 이러한 방법으로 (즉, 칼빈의 해석으로 일반계시) 그렇게 하기로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고대의 아름답고 매혹적인 화석은 우리에게 그 방법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피조물의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주는 고된 일에 대해 과학자들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신학 대화는 인격신을 논할 수 있는가?

 

과학-신학 대화는 인격신을 논할 수 있는가?

 

장재호 교수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과학과 종교의 대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지난 수십 년간 영미권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어 왔습니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여러 신학대학에 관련 과목들이 개설되고 있고, 과신대를 중심으로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퍼져가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여러 생산적인 논의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 대화의 난제도 종종 등장합니다. 그 중 하나가 창조/진화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신의 인격성을 논하는 일입니다. 즉 과학에서 말하는 우주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논의가 기독교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해도, 진화 과정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논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조직신학/종교철학에서 신 존재를 논증하는 데에도 비슷한 난제로 등장합니다. 우주의 근본 원인, 도덕의 근원, 미의 근원을 신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이 신이 인격적 모습을 지닌 야훼 하나님임을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인슈타인도 신을 종종 언급했지만, 그가 말한 신이 영원한 가치나 신비의 궁극적 근원을 의미하는 것이지, 구약에 등장하는 인격적인 신의 모습으로 간주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스티븐 호킹(Steven Hawking)은 자연의 비인격적 법칙만으로도 지금의 우주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신론 과학주의자들은 보통 우주가 맹목적이고, 무모하며, 비인격적이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과학신학자 존 호트(John Haught)는 『과학과 신앙(Science and Faith)』 2장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서도 신의 인격성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호트는 우주가 비인격적이라고 주장하는 과학주의자들을 향해, 과학이 인격적 신에 대한 믿음이 합리적인지 아닌지를 결정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습니다. 과학을 근거로 인격적 신을 배제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는 모든 자연 과학이 정의상 신에 대한 어떠한 가정도 제외해야 하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과학만으로 인격적인 신을 찾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우주의 진화 과정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호트는 하나님의 인격성이 성경에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주목합니다. 그는 구약의 전통에서 하나님의 인격성은 언약의 체결과 이행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고 지적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그것을 이행하시는 내용이 성경에 반복해서 등장합니다. 이에 주목하며 호트는 우주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로 보인다는 점에서 접합점을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우주가 결코 과학주의가 단언하는 것처럼 본질적으로 비인격적이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합니다. 우주의 드라마는 처음부터 인격성의 함양을 약속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는 창조적인 결과를 미래에 허용함으로써 그 약속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고 봅니다.

 

과학이 우주를 아직 끝나지 않은 드라마로 묘사했다면, 신학은 그 드라마를 하나님에 의해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미래를 향한 여정으로 읽어냅니다. 피조물을 향한 하나님의 인격적인 돌봄은 그분이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는 미래를 피조물에게 선사한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호트는 하나님이 곧 세계의 미래라고도 말합니다. 모든 피조물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는 것보다 더 인격적인 돌봄을 확실히 드러내는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온 피조물에게 자신 이상의 존재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심어주는 것보다 더 큰 인격적인 관심을 보여주는 것은 없습니다.

 

 

과학의 발전으로 알게 된 우주는 장대한 역사와 엄청난 규모를 비인격적 표현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 광대한 역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인격성을 배제할 필요도 없습니다. 자연의 모든 진화 과정을 하나님의 직접 개입으로 설명하는 것은 다소 문제가 있지만, 자연을 향한 약속, 그리고 그 약속을 이해하는 신실함 속에서 우리는 구약에 등장한 인격적 하나님을 말할 수 있습니다.

 

상상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광대하고 오랜 세월의 우주 앞에서 인간은 그저 사소한 존재에 불과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호트와 같이 우주의 시공간적 광대함이 낭비된 시간이 아니라, 생명과 감정이 등장하고, 언약을 체결하고 이행하는 속성을 포함한 모든 의식적인 인격성이 등장하기 위한 드라마의 프롤로그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리학, 천문학을 포함한 과학의 새로운 발전은 우리에게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크기의 우주와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 새로운 생각거리를 제공합니다. 자연을 거대한 드라마로 이해하는 관점은 세계에 인격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세계를 향해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시는 신 이해를 제공합니다. 오늘도 아직 끝나지 않은 대 자연의 드라마 속에 인격적으로 함께 하시며, 미래의 약속으로 전 피조물들을 이끄시는 인격적인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하루가 되길 소원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