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진

 

오리진

데보라 하스마, 로렌 하스마 / 한국기독과학자회 옮김

IVP | 2015년 3월 25일 | 초판 2쇄 | 351쪽 | 17,000원

 

 

나는 현재 과신대 주부기자로서

과신대 독서 길잡이 10단계 책을

한 달에 한 권, 순서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과연 평범한 주부인 내가

어느 정도까지 소화할 수 있을까

살짝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읽고 있다.

 

지난달에는 [개혁신학 vs 창조과학]을 읽었는데,

기초과정도 두 번 들었고,

앞의 책들을 읽은 뒤에

순차적으로 읽은 터라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음 책은 [과학시대의 도전과 응답]이었다.

그러나 책의 내용이 기초과정과 일치하기도 하고,

이미 두 번 읽은 터라,

다음 책인 [오리진]에 도전하기로 했다.

 

하지만 오리진을 읽자마자 곧 후회했다.

책의 난이도가 껑충 뛰었기 때문이다.

기초과정을 다시 들어야 하나

살짝 고민을 하면서,

이번에 핵심과정을 신청했는데,

내가 참 교만했구나 하는 것을

깨닫는 반성을 하며 책을 읽게 되었다.

 

과학이 그려낸 우주의 어마어마한 광대함을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는가? 스스로 의미 있는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가, 아니면 무의미한 존재라는 느낌이 드는가?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인 우리의 가치는 무엇을 기준으로 결정되는 것일까? (193쪽)

 

 

[오리진]은 제목 그대로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먼저 ‘기원’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창세기’가 생각나고,

지금까지 읽어왔던

창세기의 여러 가지 의견들에 대한 것들이 떠올랐는데,

이 책은 나에게 오히려 반전을 주었다.

 

총 1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자 기원에 관한 흥미로운 주제들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게다가 각 장마다 마지막 부분에

토의할 문제들을 제공해주고 있어서

주일학교 고등부나 청년부에서 다루면

정말 재미있게 토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부인 나에게는 생소한 과학 단어들이

몇 가지 있어서 읽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러 가지

재미난 상상을 할 수 있었는데,

예를 들어 여러분은 하나님이 세상을

어떻게 만드셨다고 생각하나?

 

정말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빛이 뿅 생겨나고,

동물들이 있으라 말씀하시니까

동물들이 뿅뿅 생겨나는 장면’을 상상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이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기다리셔서

미생물이 진화하고 복잡한 생명체가 되어,

현대 인류 공동의 조상을 지나

마침내 현대 인류까지 기다리셔서

영혼을 불어넣으시는 장면을 상상하는가?

 

아담과 하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들은 진짜 있었던 최초의 인간일까?

아니면 인간중에서 선택받은 한 쌍의 부부일까,

아니면 인류를 대표하는 집단이었을까?

 

기원이라는 게 이렇게

여러 가지 재미난 질문을 안고 있다.

 

 

나는 기존에 다니던 교회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안고 있었기에

신령한 자매가 아닌, 이상한 자매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오리진]을 읽으며,

내가 질문을 하는 게 정상이었구나.

 

우리는 왜 질문을 할까,

우리는 왜 우리의 기원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할까?

결국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에는 결국 예배란 무엇인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것까지 질문하고 있다.

 

넘쳐나는 질문이 교회에서

감당이 안 됐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강추한다.

물론, 처음에는 혼란에 빠져서 허우적거릴 수 있다.

하지만 과신대 추천도서를 지금까지 읽어본 결과,

이제야 무언가 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하나님은 나를 왜 부르셨을까?

인간은 결국 이 지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기원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왜 살아야 할지,

아무 것도 모른 채 공허한 발버둥만 치다가

인생이 종결될 것 같다.

 

그.러.니.

 

[오리진] 읽으세요. 두 번 읽으세요. ^^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핵심과정 후기)

 

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 과신대 핵심과정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 강의 후기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자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이신 우종학 교수님께서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이라는 주제로 창조의 다면적 이해와 창조 관점의 발전 과정, 현대 창조론의 스펙트럼과 이슈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며,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를 종합한 건강한 창조신학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영화 <건축학 개론>이 생각났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수지 분)이 대학교 시절에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다는 풋풋하고 애틋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나온 영화 같은데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가는군요. 승민과 서연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서로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상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끝내 마음을 닫아 버린 승민, 오랜 세월이 지나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결국 서로가 각자의 길을 택한다는 스토리로 끝을 맺게 됩니다.

 

 

이번 강의에서 우종학 대표님은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변함이 없지만 해석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뜻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오해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해는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 내용 중 제빵사의 비유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비유에는 무신론자와 크리스천 과학자, 그리고 창조과학자가 나옵니다. 무신론자는 오븐 안에서 빵이 스스로 진화했다고 봅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는 무신론자와 같이 빵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스스로 진화한 것이 아니고 제빵사가 오븐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는 오븐 자체를 부정합니다. 오븐은 보지 못하고 빵이라는 결과물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빵 하나를 놓고도 이토록 관점이 다른데 천지창조는 오죽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조의 관점은 크게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인정하는 부류로 나누어지며,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는 세부적으로 젊은 지구론, 점진적 창조론, 지적설계로 분류되며, 생물진화를 인정하는 부류는 열린 진화, 계획된 진화, 인도된 진화, 지적 설계로 분류가 됩니다. 이중 지적설계는 신이 설계한 자연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두 부류에 공통적으로 위치하게 됩니다. 참으로 다양한 창조의 관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바는 이러한 관점들 사이의 편견과 선입견이 오해를 낳고 더 나아가서는 닫힌 마음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같이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가 타인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셨던 숭고한 예수님의 사랑이 빛이 바라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러한 다양한 창조의 관점을 두고 갈등과 대립으로 반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혼돈이며 무질서입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인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해석하는 우리의 모습이 혼돈이요 무질서라면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무질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질서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종학 대표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던 케노시스(Kenosis), 즉 예수님의 자기비움일 것입니다. 전능성을 비우시고, 영원성도 비우시고, 전지하심과 지위까지 비우시면서 우리의 가슴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신 창조주를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7~8절)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 삶은 미완성인 것같습니다. 그래서 삶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식을낳고키우고결혼시키고나면죽고...또....>

    아담 2020.07.04 11:45

 

이은, 나, 그리고 어머니.

 

백경민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조교수, 과신대 자문위원)

 

 

우리 부부에게는 17개월 된 딸이 있다. 이름은 백이은. 결혼 후 5년 만에 얻은 딸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나이가 40이 넘어서 얻은 첫 자녀라서 그런지 점차 ‘딸 바보’가 되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나의 가장 큰 관심사는 ‘육아’다. 이은이가 무엇을 보며, 무엇을 느끼며, 어떻게 커 가는지를 하루하루 눈에 꼭꼭 담아 두려 하고 있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가장 많이 돌아보게 되는 것은 나 자신 그리고 나의 부모이다. 어머니는 이은이가 태어나기 딱 1년 전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10년 간 암투병을 하시다가 결국 이겨내지 못하시고 하나님 곁으로 떠나가셨다. 당시 해외에서 일하고 있었던 나는 어머니의 암투병을 함께 하지 못했지만 다행히 어머니의 마지막은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어머니를 보내고 이은이가 찾아왔다. 이은이를 키우면서 그렇게 가정적이지 못하셨던 아버지와 함께 나와 내 동생을 키우셨던 어머니의 모습이 어땠을까가 계속 상상이 되었다.

 

 

내가 태어나서 아주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을 예전에 어머니와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집은 부산 어느 달동네였다. 어머니는 장을 보거나 연탄을 나르기 위해 매일 나를 등에 업고 몇 번의 등산을 하셨다고 하셨다. 그 때 나는 그게 그렇게 와 닿지는 않았다. 아니 그냥 내 귀를 스치는 소리로만 지나갔었다. 하지만 이은이를 재우기 위해 아파트 밖을 매일 서성거리면서 그리고 매일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면서 어린 나를 등에 업고 달동네의 가파른 고갯길을 몇 번을 오르셨을 그 모습이 아련하게 다가왔다.

 

작년에 이은이가 태어났을 때 귀에 문제가 있었다. 난청이 발견되어서 조기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았던 것이다. 우리는 귀하게 얻은 딸에게서 문제가 발견되었을 때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 감정이 좀 진정되고 이은이가 무사히 언어 발달을 하게 되면서 나는 나와 어머니가 겪은 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대학 1학년 때 무릎이 갑자기 아파서 병원을 갔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가 암일 가능성이 있으니 암이라면 다리 하나를 절단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때 옆에 앉아 있었던 어머니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시고 오열을 하셨다. 물론 다행히 나는 암은 아니어서 살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다. 그 때 나는 어머니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냥 내가 아픈 것이 우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은이가 아프다는 사실을 통해 어머니를 이해하게 되었다. 그 때 어머니는 과연 무슨 심정이었을까를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얼마 전이다. 살면서 언제가 가장 기뻤냐고 물어보았다. 어머니는 두 말 하지 않고 내가 원하던 대학에 합격하였을 때라고 말씀하셨다. 삼수 끝에 원하던 학교에 입학통지를 인터넷으로 확인하던 그 날 “합격”이라는 문구가 스크린에 뜨자마자 어머니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며 그렇게 목놓아 우셨던 기억이 난다. 그 때 나는 내가 대학에 합격했다는 사실이 중요했지 어머니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사실 그 감정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닐 것 같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성취했을 때 부모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일까를 알기에는 이은이가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이은이를 키우면서 나는 어머니의 그 감정을 이해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요즈음 나는 자녀를 키우면서 자녀를 통해 나를 보고 있고 내 옆에 서있었던 어머니를 보고 있다. 그리고 그 어머니가 느꼈던 감정을 한땀한땀 나도 같이 느껴 가면서 인생이 성숙해짐을 느낀다. 그리고 그렇게 온전히 부모로서의 감정을 다 느꼈을 때 나도 삶의 끝자락에 서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감정을 이은이도 한 자녀의 어머니로 느껴갔으면 한다. 얼마 전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 날 하늘을 보면서 그렇게 읊조렸던 것 같다. 

 

“엄마. 보고 싶습니다. 이제는 엄마를 조금 더 이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때도 지금도 사랑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