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3. "미세조정"과 "다중우주"는 신에 관해 무엇을 말할까요?

 

"미세조정"과 "다중우주"는 신에 관해 무엇을 말할까요?
What do “fine-tuning” and the “multiverse” say about God?

 

 

어떠한 세계관을 가진 과학자들이라도 우리 우주의 물리적 상수와 초기 우주 상태가 절묘하게 생명체를 위해 미세조정되었다는 것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물리학에서 다중 이론은 우리 우주가 수많은 우주, 즉 다중우주라고 알려진 것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예측합니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미세조정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부 무신론자들은 하나님 대신 다중우주를 주장합니다. 신의 존재가 과학적 질문이 아니기 때문에, 과학만으로는 어떤 결론도 도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서 정연한 우주는 생명체에 꼭 맞는 세상의 창조주로서의 하나님을 이해하는 기독교인들의 믿음과 공명합니다. 신앙의 눈을 통해 보았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의 터전인 지구를 포함하는 풍부하고 복잡한 우주를 만드는 인격적인 하나님을 봅니다. 비록 다중우주 이론이 궁극적으로 우리의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한다고 해도, 그 다중우주 자체는 여전히 하나님의 창조물일 것입니다. 과학적인 설명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으며,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경이와 찬양을 증대시킬 뿐입니다.

 

미세조정은 자연의 물리적 상수의 놀라운 정교함과 우주의 초기 조건을 나타냅니다. 지구와 같이 거주 가능한 행성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선 이러한 기본적인 상수들이 적절한 값으로 설정되어야 합니다(예를 들어, 적절한 라디오 방송국을 찾기 위해 다이얼을 조정하는 것처럼). 심지어 우주가 만약 약간만 다른 값으로 물리적 상수를 가졌다면, 우주는 생명체를 지지할 수조차 없었을 것입니다. 우주는 너무 빨리 팽창하거나, 결코 탄소 원자를 형성할 수 없었거나, DNA와 같은 복잡한 분자를 절대 만들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중우주는 우리 우주가 무한히 많은 우주 중 하나라는 생각입니다. 존재할지도 모르는 가능한 많은 우주 중에서 각각 다른 세기의 힘과 입자의 성질을 가지고, 우리 우주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체를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극히 적은 수의 우주 중 하나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세조정과 다중우주에 어떻게 반응할까요?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요?

 

 

미세조정은 "딱 적당한" 성질을 나타냅니다.

 

우리 우주는 정교한 값으로 설정된 몇 가지 속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 값을 약간 변경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생명체가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 세 가지 예가 있습니다.

 

중력의 세기

 

수십억 년 전에 빅뱅이 발생했을 때, 우주의 물질은 균일하게 분포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엔 별, 행성 또는 은하는 물론, 우주의 암흑 공간에 떠있는 입자하나 조차 없었습니다. 빅뱅으로부터 우주가 팽창됨에 따라, 중력은 그 물질을 매우 부드럽게 잡아당겼고, 덩어리로 모아진 그 물질들은 결국, 별과 은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력은 딱 적당한 세기의 힘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만약 조금만 강했다면, 모든 원자는 하나의 큰 공으로 뭉쳐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우주의 앞길은 우주 대수축 안에서 순식간에 붕괴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중력이 조금만 더 약했더라면, 팽창되는 우주는 원자들을 너무 넓게 분포시켜서 그 원자들은 결코 별과 은하로 모일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별이 형성되기 위해 중력의 세기는 완벽하게 알맞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완벽하게'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글쎄요, 만약 우리가 중력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킨다면-말하자면, 10억 분의 1 정도의 아주 적은 양이라도 크거나 작게 중력의 세기를 바꾼다면-우주는 너무나 달라져서 거기엔 별도, 은하도, 행성도 없을 거라고 합니다. 그리고 행성이 없다면, 생명도 없을 것입니다. 값을 약간만 바꾸면, 우주는 아주 다른 경로를 따라 진화합니다. 그리고 현저하게, 이러한 다른 경로들 모두는 생명체가 없는 우주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우리 우주는 생명체에 우호적이지만, 이것은 오로지 우리 우주가 지난 137억 년간 액체의 물과 풍부한 화학작용을 겸비한 거주 가능한 행성을 탄생시킨 특별한 방법으로 전개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탄소의 형성

 

탄소는 알려진 모든 생명체의 근간이 되는 원소입니다. 탄소 원자는 융합 반응에 의해 별들의 중심에서 형성됩니다. 이 반응에서, 세 개의 헬륨 원자가 충돌하고 융합되어 하나의 탄소 원자를 만들게 됩니다. 그러나 그 융합 반응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에너지 수위가 아주 적당한 방법으로 따라와줘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세 개의 헬륨 원자가 융합되기 전에 서로 튕겨져 나올 것입니다.

 

이러한 범상치 않은 에너지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서는 두 가지의 물리적 힘(강력과 전자기력)이 아주 적당한 방법으로 협력해야만 합니다. 강력이나 전자기력에 약간만이라도 변화가 주어진다면, 에너지 수위를 망가뜨려 탄소의 생성을 크게 감소시킵니다. 두 힘의 값은 탄소가 효율적으로 생성되도록 조정되어서 우리가 평생 필요로 하는 만큼의 풍부한 원소의 양을 얻게 해 주었습니다.

 

DNA의 안정성

 

모든 원자는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을 가지고 있으며, 그 주위를 빙빙 도는 전자구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원자가 다른 원자와 결합하여 분자를 만들 때, 전하를 띤 양성자와 전자는 서로를 잡아당기는 상호작용을 합니다. 양성자의 질량은 전자의 질량의 약 2000배 정도(정확히 말하자면, 1,836.15267389 배)가 됩니다. 그러나 만약 이 비율이 단지 조금만이라도 바뀐다면, 많은 화학물질의 안정성은 손상될 것입니다. 결국 이것은 생명체의 기본 구성 요소인 DNA를 포함하여 많은 분자가 형성되는 것을 막게 될 것입니다. 신학자이면서 과학자인 알리스터 맥그라스(Alister McGrath)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전적으로 생물학적인] 진화과정은 탄소의 범상치 않은 화학적 성질에 달려 있는데, 이는 탄소끼리의 결합뿐 아니라 다른 원소와도 결합도 가능하게 만들어, 지구의 온도에서 안정하면서도 고도로 복잡한 분자를 만들며, 유전 정보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특히 DNA].

 

몇 가지 예가 있습니다.

 

미세조정에 대한 증거는 모든 종교와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는 물리학자와 천문학자에 의해 인식되어 왔으며,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불가지론자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스티븐 와인버그(Steven Weinberg)는 이렇게 썼습니다.

 

... 자연의 법칙과 우주의 초기 상태가 그것을 관찰할 수 있는 존재를 감안해야 하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우리가 알고 있듯이, 여러 물리량 중 하나라도 약간의 다른 값을 가진다면 생명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미세조정의 함의

 

일부 불가지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은 미세조정을 단순히 운 좋은 사건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것은 그저 태연하게 어깨를 한 번 으쓱하는 정도입니다. 미세조정은 더 이상의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말 그대로라고 말하지요. 몇몇 사람들은 더 특정한 주장을 합니다.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법칙은 반드시 삶과 양립해야만 한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단순히 그 사실을 알리기 위해 여기에 있지는 않았을 거라고요. (이것은 "인류의 원리"라고 불리는데, 대표적인 기독교인이자 물리학자인 존 폴킹혼의 이 [훌륭한 소개]를 보십시오.) 철학자인 존 레슬리(John Leslie)는 이러한 추론에 반대하여, 총살형 집행에서 멀쩡하게 살아남게 되는 예를 비유로 듭니다 (이는 천문학자이자 바이오로고스의 대표인 데보라 하스마Deborah Haarsma에 의해 여기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물론 생존자는 왜 그렇게 있을 것 같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고 싶을 것입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학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왜 우주가 그런 방식인지를 알고 싶어 궁금해할 것입니다. 천문학자인 프레드 호일Fred Hoyle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 사실에 대한 상식적인 해석은 초월적인 지성이 화학과 생물학뿐 아니라 물리학에도 손을 댔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물리학자 프리먼 다이슨Freeman Dyson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우주와 세부적인 우주 구조를 자세히 살펴볼수록, 나는 우주가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이 생겨날 것을 알고 있었음에 틀림없다는, 더 많은 증거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다중우주에 관한 여러 이론들이 제시되었습니다. 다중우주 모델에서는 우리 우주 외에 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합니다. 이 각각의 우주는 물리학의 기본 상수의 속성과 값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우주는 별을 형성하기에 알맞은 중력을 갖겠지만, 대부분의 많은 우주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소수의 우주만이 생명체에 적합할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다른 우주에 살 수 없기 때문에, 그것들 중 하나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이 우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면, 그들 중 하나가 생명체에 적합할 만큼 특정한 조건을 제공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그리 놀랍지 않을 것입니다. 과연 다중우주는 미세조정을 잘 설명하고 하나님을 가리킬까요?

 

 

다중우주의 과학

 

"다중우주"라는 용어는 실제로 여러 다른 과학적 모델에서 사용됩니다. 다양한 다중우주 모델들은 이론물리학과 우주론에서 비롯되며, 그중 주요한 모델들은 풍부한 수학을 기본으로 합니다. 다중우주의 한 가지 버전은 끈 이론에서 비롯됩니다. 끈 이론은 각 입자를 11차원 공간에서 작동하는, 미세하게 진동하는 끈으로 묘사함으로써 물리학의 4가지 근본적인 힘을 통합하기 위해 지금까지 개발된 최고의 이론입니다. 미세조정이나 다중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끈 이론이 발명된 건 아니었습니다. 다중우주의 예측은 이론수학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끈 이론은 실험적으로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으나, 그것을 시도해보는 것은 도전적일 것이며 강입자 충돌기와 같은, 혹은 그 이상의, 거대한 에너지를 요구할 것입니다.

 

다중우주의 또 다른 버전은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비롯됩니다. 이 이론은 거의 균일한 온도와 물질/반물질의 불균형과 같은 우주의 성질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개발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에서 우주는 첫 순간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팽창합니다 (약 10-33초 만에 1026 배의 비율로). 그 순간, 초기 우주에서의 미세한 요동은 거의 은하의 크기로 팽창되어 오늘날의 우주에서 우리가 보는 구조를 만들어냈습니다. 인플레이션은 초기 우주로부터 남겨진 열복사인 우주배경복사의 성질에 대해 특정한 예측을 했으며, 그러한 예측은 완전히 확인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이론은 철저히 테스트되고 확인된 것입니다. 놀랍게도 인플레이션 이론의 대부분 버전에서도 다중우주를 예측합니다. 새로운 우주는 상전이에 의해 형성되는데, 이는 물이 끓기 시작하면서 많은 거품을 만들고, 각 거품은 각기 다른 성질의 우주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아마도 우주에 대한 가장 큰 질문은 "이것이 과학인가?"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다른 우주를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우리가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주론자들은 다중우주가 과학의 영역에 있는지 그들끼리 논쟁합니다. 그중 일부는 다중우주를 설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과학적 추론의 본질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직접적으로 테스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일부는 비록 모든 예측이 테스트될 수 없다 하더라도, 그 예측의 일부만이라도 확인된다면 (우주배경복사와 같이) 물리적 이론 (인플레이션과 같은)도 확인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합니다.

 

또한 과학자들은 설사 다중우주 모델이 옳다고 하더라도, 다중우주가 미세조정을 제거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예를 들어, 엄청난 팽창률을 산출하기 위해서 인플레이션 이론은 정확한 값을 취하기 위한 특정 매개변수가 필요합니다. 인플레이션이 과거에 미세조정된 것으로 나타난 우리 우주의 몇몇 성질들을 설명할 수 있다 하더라도, 미세조정은 제거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다중우주 자체의 기원으로 한 단계 거슬러 올라가게 됩니다.

 

 

우주든지 다중우주든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일부 무신론자들이 다중우주가 신의 존재 가능성을 약화시킨다고 주장할 때, 그들은 과학 자체가 주장할 수 있는 것을 과장합니다. 다중우주 모델은 매력적이며, 이 우주에서 과학적 질문들에 답을 해주지만, 과학적 수준에서 다른 우주에 대한 예측은 사실상 검증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비록 다중우주 모델이 과학적 수준에서 잘 정립되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은 신을 대신하지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어떤 과학이론도 그것을 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적 신앙의 관점에서 과학은 단순히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물리세계를 탐구할 뿐입니다.

 

다중우주를 연구하는 물리학자 중에는 다중우주를 하나님의 창조라고 여기는 기독교인도 있습니다. 다중우주는 신중히 고려해야 할 신학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예를 들어, 물리학자 로버트 만Robert Mann의 주장을 보세요). 그리고 물리학자 제럴드 클리버Gerald Cleaver가 썼듯이, 만약 다중우주 이론이 옳다고 밝혀지게 되면,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창조의 아름다움, 화려함, 다양함, 그리고 광대함을 이해하는 다음 단계"가 될 것입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후변화 제국의 프로테스탄트] 8. 지구온난화와 집중호우

 

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이번 여름은 유독 장마가 길어졌습니다. 평균적으로 장마는 중부지방 기준 6월 24일 정도에 시작되어, 7월 24일 정도에 종료되는 특성을 가지는데, 올해는 8월까지 장마가 이어졌고 집중호우도 매우 두드러졌습니다. 기상백과에 따르면 장마의 어원은 ‘댱마’(長)+‘맣’으로 ‘긴’ ‘오랜’이란 뜻의 한자어 ‘장’(長)과 ‘비’를 의미하는 ‘마ㅎ’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즉, 여러 날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말하는 것으로 중국에서는 이 장마를 ‘메이유’, 일본에서는 ‘바이유’라고 부릅니다. 일본어와 중국어로 장마의 발음은 조금 다르지만, 한자로는 ‘매우’(梅雨)로 같은 글자입니다. 매화(梅花) 열매가 익을 무렵부터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한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라지요. 올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 모두 장마 동안 강한 집중호우로 막대한 재산 피해와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장마는 어떻게 발생하는 걸까요?

먼저 비가 내리게 되는 과정을 설명하겠습니다. 공기를 구성하는 것은 대부분 질소(78.03%)와 산소(20.95%)인데, 분자량은 29g/mol 정도로 수증기(H2O)의 분자량 18g/mol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즉 습한 공기일수록 가벼운 것입니다. 보통은 비라고 하면 물이 떨어지는 현상이니까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되기도 하고, 실제로 습도가 높으면 몸이 처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공기가 무겁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는 가벼워서 상승하는데, 이 과정에서 공기가 차가워지면서 공기 속의 수증기가 응결됩니다. 마치 차가운 음료가 담긴 캔이나 병 겉면에 물이 고이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렇게 응결된 수증기인 물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현상을 비(강수)라고 하지요.

 

장마 기간 동안 구름띠, 정체전선, 북태평양 고기압, 하층 수증기 유입 및 상층제트의 위치. (출처 : 기상청 장마백서)

 

앞의 그림에서 보듯이 여름에는 주로 우리나라 남쪽에 북태평양 고기압 세력이 위치하고 그 고기압을 따라 열대 지역에서부터 다량의 수증기가 한반도로 유입됩니다. 반면 대기 상층에는 상대적으로 차가운 공기가 자리합니다. 그런데 수증기를 머금은 공기가 상승하면서 점점 온도가 내려가서 응결하기도 하지만, 대기 상층에 차가운 공기가 자리하면 갑자기 많은 양의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장대비를 뿌리게 됩니다. 대기 하층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와 대기 상층의 차갑고 건조한 공기가 맞닿은 부분이 위의 그림에서 표현된 정체전선(장마전선)이고, 큰 공기의 기단이 서로 세력 다툼을 하며 위도상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장마전선이 중부지방에 걸리기도 하고 남부지방에 걸리기도 합니다.

 

 

시베리아의 ‘이상고온’ 현상과 역대급 장마


지난 글에서 소개한 ‘시베리아 산불’ 기억하시나요? 작년 여름과 올해 여름 시베리아 지역에 폭염이 지속하면서 전례 없는 산불이 발생하고 있는데, 유난히 강하고 긴 이번 장마가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현상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 나왔습니다. 지구 상 가장 기온이 낮은 곳으로 꼽히는 시베리아에서 이상고온 현상이 발생하면서 6월 평균 기온이 30도를 넘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최고기온이 38도를 넘어서기도 했지요.

이 같은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은 기압계의 ‘블로킹’ 현상과 맞물려 발생했습니다. ‘블로킹’이란 고기압이 정체되거나 매우 느리게 이동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농구나 배구의 ‘블로킹’ 같이 통상적으로 중위도 지역에서 동쪽으로 흘러가야 하는 고기압/저기압 패턴(기압계)이 정체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시베리아 지역의 경우 여름철 고기압이 자리 잡으면 구름이 없고 일사량이 많아지면서 온도가 올라가는 특성을 보이는데, 올해는 상당히 넓은 지역에서 이러한 현상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 주변 기압 배치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베리아의 ‘블로킹’ 현상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기 상층의 찬 공기가 계속해서 정체되었고, 이 공기가 열대 지역에서 유입되는 수증기와 만나 평년보다 집중호우가 더 강하게 발생한 것으로 기상청은 분석했습니다. 일반적으로 7월 말이 되면 장마전선이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하여 장마가 끝나지만, ‘블로킹’ 때문에 길이 막혀 계속 한반도에 장마전선이 머물면서 폭우를 쏟아냈다는 얘기지요.

6월 하순께 동시베리아와 우랄산맥 바이칼호 부근에 블로킹이 발생하여 북극에서 내려온 찬 공기를 가두어 북태평양 고기압의 확장을 막았으며, 그 결과 정체전선(장마전선)이 한반도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폭우를 쏟아냈다고 기상청은 분석했다. (자료: 기상청 제공)

 

지구온난화의 영향

 

앞서 말씀드린 시베리아 지역의 이상고온 현상은 지구온난화 현상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여름에는 북극의 해빙이 많이 녹았기 때문에, 알베도 피드백이 강하게 작용했고 다른 지역보다 더 심각한 이상고온 현상을 보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앞으로는 더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를 통해 보고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연구 결과를 하나 소개해드리자면, 극한(extreme) 강수의 빈도나 강도는 확률이 점점 높아질 뿐 아니라 가뭄 발생에 대한 확률 또한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폭염과 가뭄이 빈번히 발생하면서 동시에 올해처럼 집중호우가 강해지기도 한다는 것인데 강수량의 평균값 측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을지 몰라도, 사회 경제적 피해는 매우 극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문제는 영화 <기생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집중호우와 같은 기상재해는 주거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더 큰 피해와 이재민을 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선진국들은 이산화탄소를 이미 많이 배출했으면서 다른 나라들을 견제하려 들고, 개발도상국들은 집중호우나 폭염, 한파 등 기상재해 발생 시 국민들이 입는 피해가 불평등하다는 사실이 가슴 아픕니다. 그리고 우리 손에 의해서 오늘도 꾸준히 이산화탄소 배출이 진행되고 기후변화와 기상재해가 발생한다는 것 또한 가슴 아픈 일입니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책]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 파란하늘 빨간지구 | 동아시아

 

글_ 윤세진 (구일고등학교 과학교사)

 

 

2004년에 개봉된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는 재난영화 중에서도 상당한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제작된 영화이다.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북극의 빙하가 녹으면서 북극의 해수 밀도가 낮아지고, 그 때문에 전 세계의 해류 순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표층수가 심층수로 하강하는 작용이 멈추게 된다. 이로 인해 해류 순환이 중단되면서 적도와 극 사이의 에너지 교환이 중단되고 결국은 전 세계가 급격하게 빙하기로 접어든다는 줄거리이다.

 

그림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Thermohaline_circulation (책 100쪽 참고)

 

영화가 개봉될 당시에 사람들에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경고를 주기도 했지만, 영화니까 좀 과장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만일 이 영화가 과장된 거 아니냐는 의견이 있는 사람들은 조천호 교수의 책 “파란하늘 빨간지구“를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조천호 교수는 국립기상과학원 원장을 역임하면서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기후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에 접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기후위기에 대한 많은 기고 활동을 하였으며 그 결과를 모아 이번 책을 썼다. 그 결과로 이 책은 기후 위기와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지구의 탄생으로부터 인간의 탄생까지의 간략한 지구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는 인간이 지구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닌 지구의 일부분임을 상기시키는 것이며, 결국 인간의 활동은 지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생각하자는 저자의 생각을 볼 수 있다. 특히 인간의 역사가 기후 변화와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해주는 것을 통해 기후가 역사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특히 현대는 지질학적으로 신생대의 홀로세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활동에 의한 인류세(Anthropocene)의 도래를 다루어 지구의 기후 변화와 인류 역사의 연관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인류세는 인간 활동이 특히 생태계와 기후에 중대한 환경적 결과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20 세기 중반 이후 현재까지를 말한다.

 

<인류세에 대한 참고자료>

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홀로세-가고-인류세-올까/

2. https://ko.wikipedia.org/wiki/인류세

3. 인류세의 타당성에 대한 논란들에 대한 연구 논문: 김지성, 남욱현, 임현수(2016)가 정리한 “인류세(Anthropocene)의 시점과 의미”(http://jgsk.or.kr/xml/06438/06438.pdf)

 

 

그다음으로는 인류에 의해 증가된 온실 가스에 의해 발생하는 극한 날씨(폭설과 폭염, 태풍의 증가 등)의 일상화를 다룬다. 특히 현재 발생하고 있는 온난화에 의한 이상 기후 현상은 이미 30-40년 전에 대기 중에 발생한 온실 가스에 의한 것임을 확인해 주고 있다. 이는 현재 기후 위기 현상에 대한 인식이 부족함과 아울러, 지금 이에 대한 대책을 “실행“하지 않으면, 미래세대는 현재보다 더한 기후 위기 상황을 맞게 될 것이라는 경고이다.

 

다음으로 다루는 것은 기후 문제는 다양한 문제들과 연동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후 위기와 관련된 것으로 인구 증가 문제, 물 부족 문제, 식량문제, 생태계 파괴 문제, 급작스런 기후 변화 문제 등이 대표적이라 하겠다. 이 문제들은 각자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따라서 기후 변화에 대한 해결책도 단순한 대중적 요법으로 해결될 수 없다. 다양한 관점에서 기후 위기 문제를 바라보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비로소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상적인 것은 기후 변화 또는 기후 위기를 올바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학적 소양이 필요함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기후 위기에 대한 주장을 하는 것에 대해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수행하는 정당한 비판은 과학의 특성상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후 위기에 대한 부정론자들이 과학적인 근거가 없이 주장하는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비판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과학적인 활동의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일상에서 종종 일어날 수 있는 상황들로, 내가 모르는 과학과 관련된 의견을 청취할 경우에는 그 근거가 과학적인지를 확인해 보는 것이 필요함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일반 사람들이 과학이라는 이름만 따라갈 것이 아니라 스스로 과학적인 사고와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과학은 완벽함을 추구하지만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은 아니며, 따라서 부단히 다양한 증거를 찾고 그 증거들이 보여주는 일관성을 바탕으로 과학이 이루어짐을 알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자주 언급하는 것이 이산화탄소를 필두로 하는 온실 가스로 인한 지구의 온난화이다. 산업혁명 이래로 꾸준하게 증가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주 심각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다양한 자료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특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자연재해들(폭염, 폭설, 태풍, 기근 등)의 발생 빈도와 발생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있는 것이 결국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때문이라는 경고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림출처: https://bit.ly/2RqyqNJ

 

이산화탄소를 비롯한 기후 위기를 초래하는 여러 요소들을 발생시킨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이 발생시키는 이산화탄소에 의한 피해는 선진국이 받는 것이 아니라 저개발국가에서 받게 되는 모순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기후 위기에 대한 책임을 선진국이 나서서 해결하려는 자세를 촉구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후 위기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고사하고,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 조차 부족한 상황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온도 상승의 경우에는 지구 평균 기온을 웃돌고 있는 상황이다.

 

기후 변화 혹은 기후 위기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논의되기 때문에, 피부에 와 닿지 않는 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이 기후 위기는 이미 우리에게 다가와 있다. 1980년대 대기 중에 방출된 이산화탄소에 의한 온실화 효과가 쌓여 현재 기후 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저자의 경고는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하고 있다.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한 물 부족과 식량부족 문제가 정치적인 지형을 바꾼 여러 사례를 통해 기후 변화가 우리 일상의 문제에 실제로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2100년까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이내로 안정시키자는 목표를 설정하였다. 그 이후 기후 변화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과를 토대로 2018년 IPCC에서는 2도도 위험하니 1.5도로 제한해야 극단적인 기후 변화를 피할 수 있다고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40년 경에 지구 평균 온도는 1.5도 상승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온도가 이 한계를 넘어가면 되돌아올 수 없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래 그림은 지구의 현 상태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두 개의 미래를 나타낸 것이다. 만일 현재 지구 상태에서 온실 가스가 계속 방출된다면, 지구는 빠져나올 수 없는 “찜통 계곡”에 빠지게 된다. 이를 막기 위해 온실 가스 배출을 줄여 안정된 지구로 가야 한다. 이에 대한 책임은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다.

 

그림 출처 : https://www.pnas.org/content/115/33/8252 (책 121쪽 참고)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View vol.40 (20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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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9.



과신대의 소식을 전하는

과신대 VIEW - 40호





과신대 칼럼

메노키오와 갈릴레오,
교회 권위의 위기


최종원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과신대 자문위원)

17세기 유럽 교회가 겪은 위기는 교회 중심의 세계관이 무너져 내리면서 생긴 권위의 위기이기도 하다. 교회 자체적으로 반복되는 윤리적 위기와 함께 과학 발전이 던지는 신학의 위기도 있다. (더보기)


[과신대 사무국 소식]

이번달에는 과신대에 무슨일이?! 
사무국 소식을 만나보세요!  
(더보기)

[과신대 이야기 - Story]
[김영순 교수 인터뷰]
: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다문화 인문학

인터뷰 : 백우인 (과신대 출판팀장)

다문화융합연구소는 7월 7일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다문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콜로퀴움을 개최했고, 7월 17일에는 <다문화사회와  다종교 교육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과학과 신학만의 대화에만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와 대화의 장은 사회 전반의 주도적인 이슈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양한 분야가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더보기)
과신대 온라인 북클럽
“코로나19와 하나님” 후기
(박영식 교수 진행)

글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지난 8월 19일과 26일, 2주간 과신대 온라인 북클럽이 진행되었습니다. 북클럽에서 다루었던 책은 『하나님과 팬데믹』 (톰 라이트 지음, 비아토르, 2020)과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월터 브루그만 지음, IVP, 2020)라는 책이었습니다. 본 지면에서는 1부에서 다루어진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더보기)

[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기후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글_ 김진수  
(과신대 정회원,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지구공학이나 이산화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해도, 지구의 기후가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더보기)

[Coming Soon]

[랜선 북클럽] 샤르댕 모임 안내

온라인 중심의 “랜선 북클럽 샤르댕”을 시작합니다. 9월 모임은 9월 21일(월) 오후 7시 30분에 역시 Zoom meeting으로 모입니다.

이번에는 루터교 오세조 목사님이 샤르댕의 대표 저서 "인간현상"에 대해서 발제해 주십니다. 


자세한 사항은 
홈페이지를 참고해주세요. 
(더보기)


[과]
<쉽게 쓴 후성유전학>
러처드 C. 프랜시스 | 김명남 옮김 | 시공사
 
글_ 윤세진 
(과신대 교사팀장, 구일고등학교 과학교사)

20세기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중심이 된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유전자나 유전공학으로 대변되는 생명과학이 중심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었다.  (더보기)


[과]
<미움 받을 용기>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게 지음
전경아 역 | 인플루엔셜 | 2014
 
글_ 최성일 (과신대 기자단)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공신학과 함께 인류 사회에 큰 등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이 제 소견이자 바람입니다.  (더보기)


[과책 ]
"진리는 간단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신의 언어> 서평


프랜시스 S. 콜린스 지음 | 이창신 옮김
김영사 | 2018
 
글 : 이혜련 (과신대 기자단)

나는 늘 ‘하나님이 나에게 어떻게 말씀하실까?’하는 궁금증이 있었다. 교회에서 흔히 듣는 대답은 기도하면 성경으로, 환경으로, 자연스럽게 알려주신다는 거였다. 성경을 읽어도 모르겠어서 항상 기드온처럼 증거를 요구하는 기도를 많이 했다. 그런데 콜린스는 DNA가 바로 ‘신의 언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그 부분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많은 질문에 대한 해답이 되었다. (더보기)


[바이오로고스]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2. 무엇이 하나님을 창조했을까요?

번역 :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는 많은 주장들이 수세기에 걸쳐 제안되었습니다. 잘 알려진 한 가지 주장은,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지기 때문에 물질세계 외부에 있는 "첫 번째 원인"이 반드시 있었을 거라는 주장(야기되지 않은 원인, uncaused cause)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중 많은 부분에 대한 응답은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창조하셨습니까?" 입니다. (더보기)



과신대와 뜻을 함께 할 협력교회를 모집합니다. 

과신대는 과학주의 무신론이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복음의 변증과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위해 건강한 창조신학을 교육하고 연구합니다. 

과신대의 비전과 사역을 지지한다면 과신대와 함께하는 교회로 동참해 주세요. 

과신대는 앞으로도 한국교회에 꼭 필요한 기독교 교육 컨텐츠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보급하기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많은 지지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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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신대를 후원하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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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엽, 권*렬, 김*수, 노*경, 박*경, 이*민, 조*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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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및 단체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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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신도중앙교회), 권*렬(한우리교회), 걷는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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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기 후원

 김*수

-

** 과학과 신학의 대화 후원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과.신.대 비전>

과학과 신학의 대화(과.신.대)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원자 예수 그리고 성령의 사역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성경의 권위를 존중하고 일반계시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추구하는 단체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균형 잡힌 대화를 목표로 2가지 비전을 갖습니다.        

1
-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연구하는 과학의 결과와 하나님의 특별계시인 성경의 내용을
함께 읽어가며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연구합니다.
이를 위해 과학 및 일반학문과 신학의 대화를 위해 노력합니다.

2
-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통해 창조주와 창조세계를 바르게 배우도록 한국교회에 균형 있는
교육을 제공하며 이를 위해 목회자들과 함께 노력합니다.

<자문위원>

  강상훈 교수 | 베일러대학교 생물학
  권영준 교수 | 연세대학교 물리학
  김근주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기석 교수 | 성공회대학교 총장
  김기현 목사 | 로고스서원 대표
  김성신 교수 | 한양대학교 심리뇌과학부
  김요한 목사 | 새물결플러스 대표
  김익환 교수 |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정형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근한 교수 | 유타대학교 기계공학부
  박영식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일준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기독교통합학문연구소
  박치욱 교수 | 퍼듀대학교 약학대학
  박화경 교수 | 한일장신대학교 대학원 신학과
  박희주 교수 |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박희규 교수 | 이화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백경민 교수 | 숭실대학교 정보사회학과
  송수진 교수 | 고려대학교 글로벌경영학과
  신은철 교수 | 카이스트 경영공학부
  신희성 교수 | 인하대학교 수학과
  오세조 목사 | 팔복루터교회
  우종학 교수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윤철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이길연 교수 | 경희대학교 의대, 외과과장
  이문원 교수 | 강원대학교 과학교육학부 명예교수
  이상은 교수 | 서울장신대학교 조직신학
  이정모 관장 | 국립과천과학관
  이현식 목사 | 강남중앙교회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임범진 교수 | 연세대학교 의대, 병리학교실
  장왕식 교수 | 감리교신학대학교 종교철학
  전성민 교수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구약학
  정대권 교수 | 항공대학교 항공전자정보공학
  정삼희 목사 | 신도중앙교회
  정  준  목사 | 더처치
  조성호 교수 | 서울신학대학교 신학
  차정호 교수 | 대구대학교 화학교육
  최승언 교수 |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
  최종원 교수 | 밴쿠버기독교세계관대학원 서양사
  팽동국 교수 | 제주대 해양시스템공학
  허  균 교수 | 아주대 의과대학 신경과
  현요한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황소현 교수 | 차의과학대학교 병리과/의생명과학과
<운영위원>

  우종학 | 대표

  강사은 | 실행위원장
  정대경 | 연구팀장
  윤세진 | 교육팀장
  백우인 | 출판팀장
  이승훈 | 미디어팀장
  이신형 | 북클럽팀장
 
  구형규 | 감사
  김성래 | 감사

  최경환 | 기획실장
  장민혁 | 행정간사
  이슬기 | 미디어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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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사무국 소식 202009

 

1.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번 50명 이상이 참석해서

열띤 강의와 대담을 나누던

콜로퀴움의 현장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예기치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도 있습니다.

 

이제 자리를 어느 정도 잡은

과신대 <기초과정>과 <핵심과정>은

입소문을 타고 꾸준하게

신청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역북클럽 모임과 교사 모임도

온라인으로 꾸준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사무국에서도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과신대 필독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신대 유뷰트는

강연 녹화 영상을 업로드하거나

홍보 영상을 올리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사무국 소식도 유튜브로 올리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구독자가 약 2,500명 정도인데,

1만명을 목표로 한 번 달려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도 꾸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팔로워는 600명 정도 됩니다.

장민혁 간사님께서 과신대의 강연이나

책 속 명언을 편집해서 카드뉴스로 만드는데

내용이 아주 상당히 좋습니다.

인스타그램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겠습니다. 

 

* 과신대 유튜브: bit.ly/35ixWkJ

* 과신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citheo_official/

 

 

3. 매월 월말 정산을 하면서

과신대 정회원들의 후원에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매주 한 두 분씩 정회원으로

등록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가 여러 모양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기초를 닦아야 할 때인 거 같습니다.

성서를 새롭게 읽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두려움 없이 타자를 품을 수 있을 때

교회는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과신대도 미약하지만

새로운 기독교를 세우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함께 동역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1서 4:18)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2. 무엇이 하나님을 창조했을까요?

 

무엇이 하나님을 창조했을까요?

What created God?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하는 많은 주장들이 수세기에 걸쳐 제안되었습니다. 잘 알려진 한 가지 주장은, 모든 결과는 원인을 가지기 때문에 물질세계 외부에 있는 "첫 번째 원인"이 반드시 있었을 거라는 주장(야기되지 않은 원인, uncaused cause)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 중 많은 부분에 대한 응답은 "만약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면, 무엇이 하나님을 창조하셨습니까?" 입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다음과 같을 것입니다. “만약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원인을 가진다면, 왜 하나님은 이에 해당되지 않습니까?” 혹은 “하나님의 기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까?” 

 

그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하나님"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도 과학이 설명하는 원인 체계 안의 또 다른 원인일 뿐이라면,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원인 역시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이 창조 질서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어떤 존재(신학자들이 "초월"이라고 부르는)라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요구는 헛다리 짚는 격일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근대적 개념은 종종 하나님이 우주의 기원과 도덕 법칙을 위한 설명으로 하나님을 묘사하는 계몽주의의 "이신론" 운동에 크게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신론의 하나님은 더 낮은 층에 있는 우리들을 귀찮게 하지 않는, "다락방" 안에 있는 흰 머리의 노인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역사적 기독교 신학과 확연히 다릅니다. 왜냐하면 거기에서 하나님은 창조주이자 유지자로서 창조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5-17은 그리스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계시된 하나님은 단순히 우주의 시작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과거, 현재 혹은 미래의 모든 존재에 대한 설명입니다. 매 순간 모든 시간과 공간과 사건이 존재함은 하나님의 유지하시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우발적입니다. 다시 말해, 그것들은 존재할 필요는 없지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 존재의 원인을 묻는 것이 옳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신학자들은 하나님을 필연적 존재로 이해했습니다. 필연적 존재의 원인을 묻는 것은 파란색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가를 묻는 것과 같이 범주가 잘못된 질문입니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우주의 시작점(빅뱅)에 대한 강력한 증거가 발견된 것은 이 토론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빅뱅"을 시간, 공간 및 물질이 영원하지 않고 일시적인 증거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실제로 창조주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기독교인들에게 신중할 것을 권합니다. 비록 몇몇 현재의 이론들("다중우주"에 관한 이론들과 같은)이 제안하는 것처럼 우주가 경험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시작점을 가지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은 여전히 창조주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이론들 중 어느 것에 의해서도 기독교인으로서 위협당하는 것처럼 느끼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누구도 왜 처음에 아무것도 없지 않고, 무언가가 존재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기 때문에, 과학은 그 질문에 답할 능력이 없습니다. 모든 세계관은 그 자체가 야기되지 않은 원인을 믿어야만 하며,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야기되지 않은 원인을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이해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랜선 북클럽 샤르댕 모임 안내

 

글_ 강사은 (과신대 실행위원장)

 

 

온라인 중심의 “랜선 북클럽 샤르댕”을 시작합니다.

 

모임을 인도해 주실 분은 '루터교 팔복교회'의 오세조 목사님과 '성공회 제자교회'의 박상용 부제님입니다.

 

고심 끝에 과학과 신학을 두루 걸친 인물 중 ‘샤르댕’의 이름을 빌려서 북클럽명을 정하게 되었는데요. 이름을 정한 김에 샤르댕이 누구인지를 다뤄보아야 할 것 같아서 만화 "샤르댕 인간현상"을 기본서로 2회에 걸쳐 '1. 샤르댕은 누구인가?' '2. 샤르댕의 대표작'에 대해서 다뤘습니다. 발제는 오세조 목사님께서 해주셨습니다.

 

2번(8월, 9월이나 10월)에 걸쳐서 “샤르댕”에 대한 소개 시간 정도를 갖고, 다음 책은 리처드 스윈번의 “신은 존재하는가”를 다루기로 했습니다. 이 책은 성공회 박상용 부제님께서 다뤄 주시겠습니다.

 

 

8월 모임에서는 루터교 오세조 목사님의 찰진 발제 덕분에 샤르댕에 대한 이해를 높인 시간이었습니다.

 

샤르댕은 예수회 신부, 고생물학자, 진화철학자로서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다르게 말하면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과학과 신학의 균형을 잘 잡은 인물이다 싶습니다.

 

빅뱅이 우주 모델의 표준으로 받아들여지기 전부터 빅뱅으로 시작하는 우주를 받아들인 과감함도 놀라웠습니다. 진화와 원죄에 대한 생각을 다듬어 "교리를 더욱 실제적이고 보편적이고 '우주진화론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매우 실제적입니다. 한국 개신교는 아직 고만고만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만 둘러보면 사고의 폭은 이렇게 넓고 다양하게 펼쳐져 있습니다.

 

9월 모임은 9월 21일(월) 오후 7시 30분에 역시 Zoom meeting으로 모입니다.

 

이번에는 루터교 오세조 목사님이 샤르댕의 대표 저서 "인간현상"에 대해서 발제해 주십니다. 

 

랜선 북클럽 샤르댕은 지역에 관계없이 어디에서나 참여 가능한 온라인 모임입니다. 온라인 멤버로 참가를 희망하시는 분은 페이스북 과학과 신학의 대화 페이지나 클럽에 댓글이나 메신저로 알려 주시면 단톡방에서 함께 소통하고 주제와 책 선정에 참여하실 수 있고, 무엇보다 한국에서 희귀한 교파에 속하신 분들로부터 거침없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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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7. 기후를 원상태로 되돌릴 수 있을까?

 

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비가역’(非可逆)의 사전적 의미는 ‘변화를 일으킨 물질이 본디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음’입니다. 예를 들면, 길바닥에 쏟은 물은 다시 주워 담아 원래의 상태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난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지구공학이나 이산화탄소 포집과 같은 기술로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혁명 이전 수준으로 되돌린다고 해도, 지구의 기후가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연구가 발표되고 있습니다.

온도 상승의 지연효과

일반적으로는 이산화탄소 농도가 증가하면 지구의 온도는 올라가고, 이산화탄소 농도가 감소하면 지구의 온도는 내려갑니다. 하지만 기후과학자들은 단순히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춘다고 해서 지구의 온도가 빠르게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온도 상승의 지연효과 때문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높은 시간이 햇빛(태양열)이 가장 강하게 내리쬐는 정오가 아니라, 오후 2시부터 4시 사이인 현상을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정오와 한낮에는 해가 머리 위에서 비추기 때문에 작은 면적에 많은 태양에너지가 모이지만, 해의 위치가 내려오면 햇빛이 비스듬하게 비추게 되면서 단위 면적당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의 양은 적어집니다. 실생활에서 손전등을 비스듬하게 비추면 넓은 면적을 비추게 되지만 빛의 세기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저위도 지역보다 극지방이 더 추운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극지방은 햇빛이 비스듬하게 들어와서 작은 양의 태양에너지만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계절이 변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태양이 북반구를 수직으로 비추는 계절엔 북반구가 더운 반면 남반구는 춥습니다. 반대로 태양이 북반구를 비스듬히 비추고 남반구에 햇빛을 수직으로 내리쬐면 북반구는 추워집니다.
 

(일러스트: 이예은)


들어오는 태양에너지의 양만 생각하면 정오의 온도가 가장 높을 텐데, 어째서 정오를 지난 오후의 온도가 가장 높을까요? 온도는 들어오는 에너지와 나가는 에너지의 차이에 의해 변화량이 결정됩니다. 지면으로 들어오는 태양에너지가 정오에 최대라고 하더라도 지면을 식히며 지면이 방출하는 에너지 양은 최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흔히 ‘땅이 데워지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현상을 엄밀히 말하면 정오가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해가 중천에 있으므로 들어오는 에너지의 양이 많은데, 지면을 식히는 에너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지면의 온도는 계속 오르게 됩니다. 그러다가 태양열보다 지면에서 방출하는 에너지가 커지는 시점부터 지면의 온도는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비슷한 효과로 자정이 아니라 동이 트기 전, 즉 태양열이 들어오기 직전까지 지면은 계속 에너지를 잃어 하루 중 가장 낮은 온도가 됩니다.

지구온난화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인다고 해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지연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지구의 3분의 2는 바다가 차지하고 있는데, 바다는 육지보다 열용량이 커서 더 많은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고 지구의 높은 평균 온도는 서서히 감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온도가 천천히 감소하는 동안, 폭염이나 다른 기상이변 현상도 발생할 것이고, 지구의 평균 온도를 다시 되돌릴 수 없다는 점에서 비가역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현재 산업구조상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배출량을 늘리지 않는 것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봉쇄 조치를 한 국가들이 있습니다. 그로 인해 경제적 피해가 일어나자, 각국 정부가 봉쇄를 풀고 여행 제한을 완화하는 걸 보면서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우선주의의 관점으로 접근하지 않을까 우려가 되었습니다.

 


나비효과

나비효과라는 말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로렌츠가 1972년 “브라질에서 나비가 날갯짓을 하면 텍사스에서 토네이도가 일어날까?”(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로렌츠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날씨를 예측할 때, 입력값이 0.50617이었지만 소수점을 일부 생략하고 간소화하여 0.506을 입력했더니 완전히 다른 날씨가 예측되었다고 합니다. 이에 다른 기상학자가 갈매기 날갯짓 한 번으로 날씨가 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첨언하였고, 로렌츠는 갈매기보다는 나비의 날갯짓이 연구 결과를 조금 더 극적으로 보여주리라 생각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실제로 저 역시 미래의 기후를 예측하기 위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자주 사용하는데, 10-14 정도로 아주 작은 값을 관측값에 더해서 시뮬레이션을 하면 완전히 다른 결과를 보곤 합니다. 이 정도로 작은 값은 관측기기로 측정하기도 불가능한 값이고,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오차입니다. 따라서 나비효과는 작은 변화일지라도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도미노처럼 큰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기후 시스템은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인간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예측하기란 불가능합니다. 게다가 나비효과처럼 작은 차이에도 큰 변화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습니다. 작은 변화로 시작된 일들은 도미노처럼 연쇄반응이 일어나 어느 순간 되돌릴 수 없는 상태가 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동 하나하나조차 소홀히 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물론 이산화탄소 농도를 낮추면 지구의 기온이 낮아지고 북극온난화와 같은 연쇄적인 증폭 현상을 막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북극온난화로 인해 죽은 북극곰은 다시 살아돌아오지 않습니다.

 


해수면 상승, 산불, 이상 기온

지구온난화가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현상은 해수면 상승입니다. 가장 자명하게 일어나는 현상일 뿐 아니라, 전 세계 인구 중 약 30%, 즉 24억 명이 해안가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만큼 영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열대 지역의 투발루나 몰디브 등도 육지가 물에 잠기면서 기후난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수면은 왜 상승하는 걸까요?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면서 바닷물 온도가 상승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열팽창, 남극 및 그린란드의 빙하가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2100년에는 해수면이 약 1-2m 정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때엔 많은 지역이 침수될 뿐 아니라 태풍, 폭풍해일, 쓰나미 등이 올 때 더 높을 파도로 오기 때문에 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고, 농경지로 바닷물이 넘어오는 등 사회 경제적으로 큰 피해가 예상됩니다.

지구온난화와 동반되는 해수면 상승과 피해 역시 비가역적입니다. 먼 미래에 이산화탄소 농도를 줄이고 지구 온도를 낮춘다고 하더라도, 해수면의 높이는 하강하지 않고 계속 상승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바다의 평균 수심은 약 3,700m인데 바다 깊은 곳에서는 계속 열팽창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지난 겨울 호주는 역대 최악의 산불을 겪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속적인 지구온난화로 인한 온도 상승과 빈번한 가뭄을 원인으로 꼽았습니다. 올 여름에는 시베리아의 온도가 30°C 이상을 웃돌면서 툰드라라고 불리는 영구동토층에서 많은 산불이 발생했습니다. 이 역시 지구온난화가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입니다. 타버린 산림이나 방출된 이산화탄소는 지구 온도를 낮춘다고 해서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멈추어야 한다고, 그래야 살 수 있다고.


성경의 많은 이야기도 비가역적인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범죄하고 다시 회개하는 과정에서도 전쟁에서 희생당하거나 심판받아 죽은 자들이 살아 돌아오진 못합니다. 하지만 과거 경험을 통해서 ‘범죄의 결말’을 배웠음에도 또 범죄하고 다시 대가를 치릅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대체 왜 또 저러나’ 답답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 사용과 배출을 생각하면, 우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

출처 : 복음과상황(http://www.gosco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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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와 인간이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와 아들러의 “인간 이해”를 읽고

 

 

모든 것에서 인간중심주의를 벗겨내야 한다고 강조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나시고, 사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재림하시고, 심판하시는 모든 것들이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과학과 신학의 대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우리가 다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조직신학에서의 마지막 연구 분야가 “인간론”이라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론”은 개인적으로 현재 가장 관심이 많이 가는 주제입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이 개인적으로 엄청난 의미로 다가오고 있고, 그래서 인간을 본연의 인간이 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사로서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성서학자인 우찌무라 간조 선생께서 “한 사람을 알려면, 전 인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고 했을 때, 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너희의 스승은 단 한 분 하나님이다”는 성경 구절을 통해 “인간은 인간을 가르칠 수 없고, 다만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이 교사가 할 일이겠구나”라는 나름대로의 교육(개똥)철학을 갖게 되어, 여전히 무지 가운데 있지만, 인간으로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 맛보며, 가정과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그 맛을 공유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과신대에 발을 들인 것도 그런 노력의 하나였습니다. 그동안 과학과 신학의 훌륭한 전문가들로부터 양질의 강의를 들어서 많이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학교 현장에서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과 자주 상담하면서 심리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졌습니다. 그 첫 책이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이었고, 두 번째 책이 아들러의 “인간 이해”였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1956년 교토에서 태어나 고등학생 때부터 철학에 뜻을 두고, 교토대에서 고대 그리스 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1989년부터는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면서, 고대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 심리학에 관해 왕성한 집필 및 강연 활동을 한 학자이며, 현재 일본 아들러 심리학회가 인정한 카운슬러이자 고문입니다. 이 책의 공저자인 고가 후미타케는 20세 말에 아들러 심리학의 상식을 뒤엎는 사상에 큰 충격을 받고, 기시미 이치로 선생을 끈질기게 찾아가 문답식으로 아들러 심리학을 배운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점이 바로 철학자와 청년 간의 치열한 논쟁이었습니다. 그런 논쟁을 읽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의 각 현안별로 이런 대화 문화가 꽃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 이해”의 저자 알프레드 아들러는 1870년 2월 오스트리아 빈 근교에서 태어나 1937년에 작고한 빈 정신분석학의 거장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 가장 많이 연구되어 알려진 프로이트, 그리고, 칼 융과 달리 우리나라에는 위의 “미움받을 용기”가 출간된 2014년부터 일반인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진 학자입니다. 저는 프로이트와 융의 심리학에 대해서는 주워들은 것만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프로이트, 융, 아들러를 비교해서 연구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만, 아들러의 심리학이 가장 인간적이고 제게 큰 도움이 된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아들러가 학교 교육에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22개의 아동 병원을 운영하면서 아동 교육과 치료에 힘썼기 때문입니다. 아들러가 겸손과 실천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것은 이론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직접 그런 상황을 겪은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러는 4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형이 매우 명민했던 반면, 자신은 여러 가지 질병에 시달리는 허약 체질이었고, 밑의 남동생이 어려서 죽는 것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안팎의 고통을 잘 이겨낸 아들러가 인간 이해의 최고 적임자는 “참회하는 죄인”이라고 주장했는데, 이것은 이와 같은 철저한 자신의 경험에서 나온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책 한 권 읽은 사람이 가장 위험하다”라는 말이 있어서, 개인적인 느낌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보다, 이 두 권의 핵심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들을 아래와 같이 초서하여 보았습니다. 괄호는 쪽수입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키워드

 

  • 프로이트의 트라우마를 부정하는 아들러의 목적론(37)

  • 현재의 불행한 상태는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다(54-57)

  • 용기의 심리학: 자유를 선택하여 미움받을 용기, 변화하겠다는 용기(63)

  •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105-106)

  •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된다(120-123)

  • 아들러 개인심리학의 행동 목표: 자립할 것, 사회와 조화를 이룰 것(126)

  • 아들러 개인심리학의 심리적 목표: 내게는 능력이 있다는 의식, 사람들은 내 친구라는 의식(126)

  • 과제 분리,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163)

  •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177)

  • 인정받기를 바라지 말라(177)

  • 자유란 미움을 받는 것이다(186-187)

  • 공동체 의식/감각을 가져라(217-218)

  • 인간관계는 수직관계가 아니라, 수평관계이다. 남을 칭찬하려고도, 남에게 칭찬받으려고도 하지 말라(227-228)

  •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가라(251)

  •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여 자기를 수용하라(261)

  • 인간의 최대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287)

  • 인생은 선이 아니라 점의 연속이다.(300-301)

  •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319)

 

아들러의 “인간 이해” 키워드

 

  • 인간 이해의 근본적 문제들은 지나친 교만과 자만심을 가지고 접근하면 안 된다. 그와 반대로 진정한 인간 이해는 겸손하게 실천해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 발전되어 왔다.(15)

  • 인간에게 가장 힘든 일은 자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일인지도 모른다.(25)

  • 열악한 오늘날의 교육 현실에서 진정한 인간 이해는 오직 “참회하는 죄인”에게만 가능하다.(26-28)

  • 생명이 없는 자연의 움직임과 인간의 정신활동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 여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를 둘러싼 쟁점이 등장한다. ‘인간 공동생활의 논리’라든가 ‘절대적 진리’라는 우리의 개념은 부분적으로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개념들과 일치한다.(42-43)

  • (인간은 물질적 존재 상태를 부정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우리의 공동체 의식은 가족을 넘어 그의 동료, 민족, 인류, 동물이나 식물, 생명이 없는 존재들, 온 우주에 이르기까지 확대될 수도 있다.(62)

  • 리가 마치 다른 사람인 듯 행동하고 느끼는 이 능력의 원천은 우리에게 내재된 공동체 의식의 존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우주적 감정이며 우리 안에 살고 있는 전 우주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피할 수 없는 특성이다.(83)

  • 누군가에게 최대한의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서는 그 영향력 아래 있는 사람이 자신의 권리가 제대로 보장된다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권위주의에 대한 철저한 배격)(85)

  • 태만은 다른 사람에 대한 주의력 결핍이나 관심 부족 상황에서 생기는 현상이다. 주의력 결핍은 동료 인간에 대한 관심 부족이 원인이다.(126)

  • 우리는 오로지 경험적 사실에 의한 확증된 길을 걸을 뿐이며 우리가 꿈을 통해 발견한 사실들이 다른 관찰 결과에서도 입증되고 확인될 때만 그것을 받아들일 것이다.(140)

  • 여성의 열등함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181)

  • 모든 행동과 표현 양식은 공통의 한 점을 향해 모아진 것이며, 그가 어느 지점에서 움직이든 간에 그의 목표를 알게 되면 우리는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인식할 수 있다.(203)

  • 인간의 성격은 우리에게 있어서 도덕적인 판단 근거가 될 수 없고, 그 사람이 자신의 주위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또 어떤 연관성 속에 처해 있는가 하는 사회적 인식의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한다.(232)

  • 삶의 기쁨이란 삶의 진정한 조건을 긍정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254)

  • 이렇게 해서 우리는 수천 년 전에 인류가 이미 섬뜩하리만큼 확실하게 예감했던 관점에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성경책에도 나와 있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도다”라는 구절이다.(256)

  • 단지 자신의 허영심을 충족하기 위해서 종교적 욕구의 만족을 그릇된 방법으로 추구하는 현상도 만날 수 있다. 그것은 신과 닮으려는 노력의 흔적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263)

  •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면 누구나 동등하다는 법칙(Gesetz der Gleichheit alles dessen, was Menschenantlitz tragt)을 침범해서는 안 된다.(274)

  • 개개인을 공동체와 연결시켜 주는 연대감을 통해서만 사람들의 불안은 제거될 수 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음을 의식하는 사람만이 불안 없이 생을 통과해 갈 수 있다.(291)

  • 인간 이해를 위한 세 가지 삶의 과제: 사회적 과제(나와 너의 관계의 문제), 직업의 문제, 사랑과 결혼의 문제. 한 사람이 이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그 방법과 그가 저지르는 과오 사이에 놓여 있는 거리로부터 우리는 그의 개성, 인격, 삶의 방식에 관한 결론들을 이끌어낼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다시 우리의 인간 이해에 대한 자료를 얻고 활용하게 될 것이다.(294)

  • 오늘날까지도 우리가 우리 자신을 타인과 완전히 똑같이, 평등하게 느끼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진보를 의미하며 그것은 우리를 도와 심각한 오류로부터 보호해 줄 것이다.(320)

  • 권위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쓸모가 있는 것인가...... 그 밖에도 저절로 인정받을 수 있는 권위가 아니라면 권위는 강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학교는 모든 아이가 자신의 정신적 발달 단계에서 만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학교는 아이들에게 유리한 정신적 발달의 요구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어떤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 학교는 정신기관의 발달 조건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런 학교만이 비로소 “사회적 학교”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356)

  • 이렇게 유아기 때부터 시작된 열등감은 대부분의 인간들에게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우월감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은 사소한 형태로는 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형제들 간의 경쟁이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점수 경쟁으로 나타나지만, 범위를 넓혀 보면 인간 삶의 크고 작은 모든 권력관계 속에 나타난다. 심지어 가장 평등해야 할 친구나 연인 관계, 부부 간에도 우위(권력)를 차지하고자 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암투가 계속되기 때문에 인간은 따뜻한 동지애를 잃어버리고 서로에게 높은 담을 둘러치며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마음의 병을 앓게 된다. 그로부터 연유한 갈등과 고통은 좀처럼 극복되지 않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을 때까지 그것에서 놓여나지 못하고 그것과 씨름하게 된다.(367, 역자 홍혜경 님의 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두 등불, 공공신학과 개인심리학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에 나오는 키워드들이 다 아들러의 “인간 이해”에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기시미 이치로는 아들러 심리학의 핵심 개념들과 철학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화하여 이 책을 썼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운 심리철학을 아주 잘게 부수고 잘 소화시켜서, 세파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서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은 독자의 입술에 조금씩 흘려서 먹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알고 있는 상식에 반대되는 충격적인 주장들이 있어서 가끔 싸리에 걸리기도 했었지만, 저의 경우는 잘 삼켜서 정신발달에 큰 영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러의 심리철학을 이 책을 통해서 쭉 들으면서, 저는 이상하게 이분이 성경 강해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인상을 항상 받았습니다. 아들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네 가지 키워드는 공동체 의식, 열등감, 우월(인정)욕구, 허영심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공동체 의식은 우주적 공동체를 말하는 것이어서, 마침 공부하고 있던 삐에르 떼야르 드 샤르댕(1881~1955)과 아는 사이였나 라고 반문했을 정도였습니다.

 

포스트 코로나는 이전과 절대 같을 수 없다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바일 것입니다. 때마침 공공신학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데,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공공신학과 함께 인류 사회에 큰 등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것이 제 소견이자 바람입니다. 인간이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가 된 인류세에 우리가 우주적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지으신 아름다운 인간과 우주를 잘 보전하고 가꾸어 나가면 참 좋겠습니다. 아들러가 강조한 “참회하는 죄인”으로서, 우리 마음속의 열등감이라는 지옥의 불꽃을 잘 제어하고, 허영심이라는 악덕의 바람을 최대한 빼고, 삶과의 현실적인 연대감을 회복하여서, 진실로 “남을 자신보다 더 낫게 여기고, 남들에게 주는 것이 남들로부터 받는 것보다 더 복되다”는 우리 주님의 가르침이 매일매일의 삶의 원리가 되는 하나님 나라를 꿈꾸어 봅니다. 

 

 

글_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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