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주간을 돌아보며

 

글_ 차정호 (대구대학교 과학교육부, 기초과정II 5기 수료자)

 

 

1. 지난 5주간을 돌아보며

 

달력을 열어 놓고 지난 일정을 돌아보니 과신대 기초과정 II를 시작한 게 8월의 마지막 주였다. 중간에 두 차례의 휴식을 포함하면 8주, 거의 두 달간의 긴 여정을 달려왔는데 어느덧 마무리할 시점에 와있다. 광고지를 보면서 등록을 할까 말까 고민하던 때로 돌아가 나의 상태를 생각해 본다.

 

남아공에 있을 때 온라인으로 기초과정 I을 수강했었다. 아니 그 이전부터 창조론(설)에 대한 많은 책을 읽으면서 꾸준하게 공부해왔는데 아쉬움이 많았다. 영상을 보든 책을 읽든 정보를 습득하면서 지식은 많아지는데 뭔가 머릿속으로는 잘 정리가 되지 않은 상태랄까. 정리를 도와줄 촉매가 필요했다. 우리 지역에는 책모임이 없으므로 내 유일한 대안은 기초과정 세미나 참석뿐이었다. 마침 2학기에는 월요일에 강의가 없었고, 기차 시간을 잘 따져보니 세미나 마치고 돌아오는 것까지는 가능하겠다 싶어 등록을 단행했다.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참가자들의 다양한 견해를 접했던 1주 차 시간을 통해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각계각층에 있다는 사실에 위로를 받았다. 특히 나보다 더 먼 경산에서 매주 이 세미나에 참석하는 분들로 인해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신학과 과학의 관계를 갈등, 독립, 대화, 통합으로 나누어 고찰했던 2주차 세미나는 내용이 다소 어렵게 다가오긴 하였으나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을 분석적으로 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3주 차 세미나에서는 성경에 창세기뿐 아니라 시편이나 예언서를 포함한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 하나님의 창조와 관련 언급이 다양하게 언급되어 있음을 보게 되었다. 이를 통해 그간 창조론에 관한 관심이 창세기 1, 2장에 편협되게 머물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더불어 성경을 일관되게 해석할 때 젊은 지구론의 바탕이 되는 문자적 해석이 입지가 좁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새로운 무신론의 핵심 주장을 종교의 폭력성, 비합리성, 그리고 비과학성 측면에서 살펴봤던 4주 차 세미나에서는 무신론의 주장에 대한 나의 관점을 정립할 수 있어 특히 의미가 있었다. 한때 관심을 가지고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샀지만 괜한 두려움에 책장에 꽂아만 두었는데 이제는 담담하게 읽을 용기가 생겼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이 이런 상황을 빗대는 게 아닐까 싶다.

 

5주차 세미나에서는 기존의 창조론 논의의 판을 뒤엎고자 ‘창조설’과 ‘창조론’이란 용어를 새롭게 정의하고 창조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논의했다. 창조과학 지지자나 과신대나 모두 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아니냐, 정작 중요한 것은 창조의 문제가 아니라 구원의 문제가 아니냐는 관점이 내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비록 창조과학 지지자들의 정치적 선동에 가까운 전파 활동이 여전히 이 판의 물을 흐리고 있지만, 창조론의 중요한 본질을 짚고 가는 것은 나름의 의미는 있어 보인다.

 

 

2. 과학의 도전과 나와 교회의 대응

 

이렇게 5주 간의 지적인 여정을 통해 내가 정리할 수 있는 과학의 도전은 1) 종교는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일 뿐이며 오히려 폭력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는 무신론의 공격, 2) 성경과 과학의 관계를 오해해서 둘을 일치시키기 위해 문자적인 성경 해석을 교조적으로 전파하는 창조과학 지지자들의 열광적인 활동, 그리고 3) 생명 공학 및 인공지능으로 대표할 수 있는 첨단 과학기술의 도전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1) 무신론의 공격에 대한 대응

 

무신론의 교회에 대한 공격은 이성적이고 지적인 것으로 포장되어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방법론적 무신론을 채택하는 과학 연구와 학교 과학교육을 통해 과대 포장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과학 연구가 가지는 한계나 과학적 연구 방법의 본질 등을 제대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과학’ 혹은 ‘통합과학’으로 배우는 교과서에는 과학의 본성(nature of science)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이 내용들이 학교 수업을 통해 제대로 가르쳐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그냥 한번 훑어보고 넘어가고 있다면, 이 부분의 중요성을 제기하고 실태를 밝히면서 상황을 개선해가는 일은 내 전문성의 영역에서 해볼 만한 과제라 하겠다.

 

한편 공교육에서 과학의 한계에 대해 가르치는 부분은 아무래도 미온적일 수밖에 없다.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종종 관련 내용은 무시되기 때문이다. 또한 수업이 이뤄진다 해도 강조되는 내용이 우리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교회에서는 과학의 한계와 무신론의 공격에 대한 논점을 주일학교나 특별 세미나 등을 통해서 이해시키려 노력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신 없는 사람들>의 내용을 주일학교 아이들의 눈높이 맞춰 설명하고 토론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어쩌면 그 책 내용으로 만화책을 출판해도 좋겠다.

 

2) 창조과학에 대한 대응

 

한때 창조과학 지지자로서 대학에서 교양 강의도 개설했던 내게는 10여 년 전의 내 행동에 대해 빚진 심정을 가지고 있다. 창조과학으로부터 돌아 선 이후 지금까지 지적인 순례를 지속해 오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자료도 차근차근 모으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아니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대학교에서 15주 동안 3학점으로 가르칠 수 있는 강의를 만들고 싶다.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수업이 아닌 같이 생각하고 토론하는 수업이 되었으면 한다. 60-70명이 수강하는 강의에서 어떻게 그런 활동을 할 수 있을지도 함께 고민할 지점이다.

 

교회 차원에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불과 며칠 전에도 시내 어떤 교회에서 열리는 창조과학 세미나 광고를 볼 정도로 창조과학 지지자들의 열심은 전방위적이다. 창조과학을 지지하는 성도들과의 관계가 걱정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반대를 표하기보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표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겠다. 그러나 만약 창조과학의 내용과 성경 사이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는 성도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가려운 곳을 긁어줘야 한다. 특별 강연이나 독서모임을 통해 성도들의 지적인 수준을 높이는 일에 교회가 힘쓸 필요가 있다. 성경해석에 관한 것도 좋고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것도 좋다. 성도들이 성경 해석에 조금의 유연성만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문자적 해석에 대한 집착에서 한 발만 물러설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창조과학의 입지가 좁아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한편으로는 창조과학을 포용하는 것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최근 몇 년동안 창조과학과 과신대 사이에 극명한 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김정형 교수님의 주장처럼 둘 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아니던가. 창조과학도 하나님의 창조라는 큰 우산 아래 함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대립각을 세우기 보다는 그쪽 진영의 열정적인 에너지를 선한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창조과학과 과신대의 대결 구도를 무신론과 창조론의 대결 구도로 프레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을 통해 창조에 대한 풍성한 논의가 진행되면 좋겠다.

 

3) 첨단 과학기술의 도전

 

당장이라도 실험실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 수 있을 수준으로 생명 과학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과학의 최전선에서 어떤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모르는 대중들은 어쩌면 곧 과학이 조물주의 자리를 차지할지도 모른다는 자부심과 두려움을 가질지도 모르겠다.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이긴 후로 인공지능의 발전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크다. 심지어 설교조차 인공지능이 하게될 수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이처럼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첨간 과학기술은 끊임없이 교회에 새로운 과제들을 던져주고 있다.

 

이에 대해 교회는 어떻게 반응할 수 있을까? 어쩌면 첨단기술의 발전을 교회와 신학이 따라가는 것은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일 것이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막연한 두려움만 키워갈 것인가. 무시 혹은 무관심은 교회를 우물 안 개구리 상태로 고립시킬 수 있다. 나는 바로 이 지점이 과신대가 기여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과학자와 신학자 사이의 대화를 통해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 내용이 가지는 신학적 함의를 논의하고, 이를 대중적인 언어로 풀어낼 사명이 과신대에 있다고 본다.

 

 

3. 마치며

 

지나간 세미나 자료들을 넘겨 보며 그새 공부한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을 발견한다. 때로는 너무 어려운 내용이라 입력조차 되지 않은 것들도 있었다. 그러나 매 시간마다 한두 가지 관점은 내 생각을 선명하게 정립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처음 제출했던 과제에서 나의 목표로 설정한 것도 바로 이 지점이었다. 그런 점에서 지난 두 달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나의 지적인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그 여정 가운데 대학에서 그리고 교회에서 강의를 열어 오랜 마음의 빚을 갚을 수 있기를 바란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의 도전에 대한 나와 교회의 대응

 

글_ 이현식 (육군 군목, 기초과정II 5기 수료자)

 

 

지난 5주 동안과학과 신학의 대화와 관련된 여러 책을 읽고 강의를 듣고 토론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참 감사하다. 먼저 이런 귀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과신대에 깊이 감사드린다. 새로운 안목을 열어주시고 기존의 시야를 넓고 풍성하게 해주신 교수님들과 모든 참가자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세미나를 마치면서 과학시대의 도전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정리하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참 의미가 있다. 나는 목회자로서 아래와 같은 대응을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1. 성도들이 성경을 제대로 읽을 수 있도록 가르치겠다. 설교와 성경공부 외에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하는지에 대한 친절한 안내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과학주의의 영향으로 성경을 과학책처럼 읽으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성경은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많아 믿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이다. 지성인조차도 성경을 대할 때는 모든 지성의 활동을 접고 문자적으로 성경을 읽으려 한다. 성경이 어떤 책인지, 성경을 읽을 때 어떤 관점과 태도를 가져야할 지 가르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위해서 <성경을 읽는 법>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과정을 열거나 도서를 읽도록 할 것이다.


2. 창조신앙에 대해 더 자주 설교해야겠다. 지난 몇 년간 내 설교를 돌아보니 창조신앙에 관해서는 거의 다루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 창세기 뿐 아니라 신구약 성경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창조 이야기를 토대로 성경적인 창조신앙에 대해서 설교할 필요를 깨달았다. 특히 창조신앙이 단순히 기원 논쟁이나 창조의 과정에 대한 논의를 넘어 더 포괄적이면서도 핵심적인 하나님 고백과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앙고백임을 드러내는 설교를 통해서 창조신앙이 오늘 자신의 삶의 구체적인 상황속에서 고백되도록 해야겠다.


3. 교회 내에서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탐구의 기회를 확대해야겠다. 특히 다음 세대를 양육하는 교사들과 부모들이 이런 기회를 갖도록 교사세미나, 부모 세미나 등에 반드시 이런 과정을 포함시키고자 한다. 현재 우리 교회에서는 어린이 부서 교사들이 매주 우종학 교수님의 <과학시대의 도전과 응답>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창조과학적 접근에만 익숙했던 몇몇 교사들이 처음에는 저항이 있었지만 책을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새로운 안목으로 과학과 신앙의 관계를 보기 시작한다는 보고를 받고 있다. 역시 교육이 중요하다.


4. 다음세대를 위한 과학과 신앙 캠프를 열어야겠다. 지난여름 방학에 학생부 담당 전도사와 중고등학생 중 희망자 몇 명이 과신대 과학캠프에 다녀왔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매우 좋았다. 더 많은 다음 세대가 이런 캠프에 참석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고 기회를 마련해주어야겠다.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무엇보다 목회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성도들의 영적성장 및 건강한 신앙 형성에 목회자의 역할이 상당히 큰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어느 단체나 리더 만큼만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하겠다.

 

과학주의가 점점 더 큰 소리를 내며 진리를 독점하는 것 처럼 보이는 세상에서, 다른 한편으로는 맹목적이고 문자주의적인 근본주의 신앙을 토대로 한 교조주의적 외침이 마치 기독교의 유일한 대변자인 것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건강한 성경적 관점과 과학에 대한 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한 기독교 신앙이 자리매김하도록 교회 내에서 목회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할 뿐 아니라 그런 동역자들과의 연대를 통해 과학시대에 이 세상 한가운데서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고 이미 이 땅에 임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사역을 해야겠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온라인 <기초과정I> 모집 안내 (8월)

 

온라인 <기초과정 I>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영상 시청 방법: 스마트폰에서 Gnowbe 어플을 다운로드(Android Google play store / Apple AppStore) 하신 뒤 회원가입을 하시고, 회원가입한 계정(이메일 주소)을 수강신청할 때 적어주시면 과신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도록 권한을 드립니다. (* 자세한 안내는 https://www.scitheo.org/386를 참고하세요.)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일시 : 2019.8.1(월) 12:00 ~ 2019.8.15(목) 24:00 
✓ 과제 :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 과제 제출일: 2019.8.15(목)까지 과신대 이메일로 제출 (scitheo.basic@gmail.com)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대학생, 대학원생 1만 5천원)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070-4320-212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온라인 <기초과정 I> 상시 모집

과신대의 핵심 프로그램인 <기초과정 I>
글로벌 마이크로러닝 플랫폼 
Gnowbe를 만나 
어디에서든 더 쉽게 만나고,
더 재미있게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과신대 <기초과정>이란?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온라인 <기초과정 I>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 개요]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1. 과학이란 무엇인가? / 2강-2. 창조의 광대함 / 2강-3. 창조의 역동성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1. 창세기 1, 2장은 과학일까? / 4강-2. 창세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등록 : 상시 모집 
✓ 과제 : <기초과정 I> 온라인 프로그램 내 퀴즈 80점 이상 /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수강방법]

 

1. 온라인 <기초과정 I>의 모든 진행과정은 Gnowbe를 통해 진행됩니다. 아래 사용방법을 참고하셔서 앱을 다운받으신 후 안내에 따라 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2. Gnowbe 어플리케이션 또는 홈페이지로 접속해 과신대 <기초과정 I> 프로그램을 구매하시면 됩니다. 

3. 영상을 모두 시청하신 후, 우종학 교수님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을 A4 1장 내외 분량으로 작성하셔서 제출하시면 수료가 됩니다. 

4. 수료자는 매월 1일과 15일에 개인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5. 궁금한 점이나 문의사항이 있으면 070-4320-2123(과신대 사무국)으로 연락주세요. 

 

 

[사용방법]

 

1) 어플리케이션 다운로드
- 스마트폰에서 Google Play(안드로이드) 또는 App Store(iOS)를 이용해 “Gnowbe(그노비)”를 다운받으세요.

 

* 컴퓨터로 접속을 원하시는 경우 web.gnowbe.com 으로 접속하신 뒤 회원가입(또는 로그인)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2) 회원가입

 

Gnowbe 어플리케이션을 누르면 
첫 화면이 나옵니다.

회원가입을 위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GET STARTED)를 눌러주세요.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단계입니다.

이름과 성을 차례대로 입력하시고

아래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NEXT)를 눌러주세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번호와 
이용 국가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CONTINUE)를 눌러주세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해서 올려주시고,

개인보호정책에 동의하는 
버튼(하얀색 작은 네모)을 클릭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START LEARNING)를 
눌러주세요.

 

 

3) 시작하기

로그인 하신 뒤 
내 라이브러리(My Library)로 들어가시면

과신대 기초과정 수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기초과정II> 5기 모집

과신대 기초과정 II 5기를 모집합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을 공부할 수 있는 <기초과정 II> 5기를 모집합니다. <기초과정 II>는 <기초과정 I> 수료자만 신청 가능하며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대한 심화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6주간 과신대 자문위원 교수님들과 함께 공부하는 집중 세미나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6주 과정을 수강하고 과제를 성실히 제출한 분들에게는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19년 8월 28일 ~ 10월 14일 (6주, 9월 16일, 9월 30일 휴강) 저녁 7:15~9:45
✔︎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6층 (서울시 관악구 쑥고개로 122)

✔︎ 수강자격: 과신대 기초과정 I 수료자

✔︎ 수료기준: 5회 이상 참석 및 보고서 성실 제출 
  (불출석한 세미나의 경우 관련 내용 에세이를 제출해야 합니다.)

 

✔︎ 세미나 강사

김근주 교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

박영식 교수 (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조직신학)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

 

✔︎ 등록비: 80,000원 (과신대 정회원은 50,000원)

  * 수강료 납부가 어려운 대학생/대학원생들에게 수강료의 일부를 소정의 장학금으로 지급해드립니다.

  * 세미나 조교로 간단한 업무 (간식, 강의안 등)를 담당할 분은 신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 등록과 수강료, 장학금, 조교 과련 문의는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주세요.

  * 문의 :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세미나 내용]

(1) 2019.8.26 : 세미나 개관 및 도입 - 과학과 신앙의 관계 (우종학 교수)
(2) 2019.9.2 : 과학과 신학의 관계: 갈등, 분리, 통합, 대화 (김정형 교수)
(3) 2019.9.9 : 성서해석과 과학 (김근주 교수)
(4) 2019.9.23 : 과학주의 무신론 (박영식 교수)
(5) 2019.10.7 : 창조론의 스펙트럼 (김정형 교수)
(6) 2019.10.14 : 발표 및 수료식 (우종학 교수)

 

[등록 안내]

1. 참가신청서 작성

2. 등록비 납부 - 계좌 이체: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입금할 때 입금자명에 본인 성명을 적어주세요.

** 등록비 납부가 확인되면 등록 완료 안내를 문자메세지로 보내드립니다.

** 등록 취소 및 등록비 환불은 강좌 7일 전까지만 가능하며 모든 환불은 거래수수료를 제외한 80% 금액만 환불해드립니다. (8월 26일 시작되는 강좌의 경우 8월 19일 자정까지 요청한 건에 대해서만 등록비 환불 가능)

 

(문의 : 070-4320-2123, scitheo.office@gmail.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온라인 <기초과정 I> 상시 모집 안내

과신대 온라인 <기초과정 I> 이용 안내

과신대 <기초과정>이 Gnowbe 글로벌 마이크로러닝 플랫폼을 통해

어디에서든 더 쉽게 만나고, 더 재미있게 학습하게 되었습니다.

 


[기초과정 I 개요]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1. 과학이란 무엇인가? / 2강-2. 창조의 광대함 / 2강-3. 창조의 역동성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1. 창세기 1, 2장은 과학일까? / 4강-2. 창세기는 어떻게 읽어야 하나?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등록 : 상시 모집 
✓ 과제 및 수료 기준 :
영상을 모두 시청하신 후, 우종학 교수님의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을 A4 1장 내외 분량으로 작성하셔서 제출하시면 수료가 됩니다. 수료자는 매월 1일15일에 개인 이메일과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드립니다.

 

 

[사용방법]

 

온라인 <기초과정 I>의 모든 진행과정은 Gnowbe를 통해 진행됩니다. 아래 사용방법을 참고하셔서 앱을 다운받으신 후 안내에 따라 등록을 하시면 됩니다. 혹시 어려움이 있다면 사무국으로 언제든 문의주세요. ^^ (사무국 연락처: 070-4320-2123, scitheo.office@gmail.com)

 

 

모바일(스마트폰 또는 태블릿)

PC

1. 회원가입

(1) Google Play(안드로이드) 또는 App Store(iOS)를 이용해 Gnowbe(그노비)”를 다운받으세요.

 

(2)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한 뒤 안내에 따라 회원가입을 진행해주세요.

 

* 회원가입이 어려운 경우 아래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1) Gnowbe의 웹 전용 사이트(web.gnowbe.com)로 접속해주세요.

 

(2) 웹 전용 사이트에 접속한 뒤 안내에 따라 회원가입을 진행해주세요.

 

* 회원가입이 어려운 경우 아래 설명을 참고해주세요.

2. 구매하기

아래 링크를 클릭해서 접속한 뒤 구매해주세요.

https://molamolla.com/online1th

 

* 과신대 <기초과정 I> 온라인 콘텐츠는 웹사이트를 통해서만 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어플리케이션 내 구매 불가)

* 구매는 이니시스(INICIS) 결제 시스템을 이용하기 때문에 해당 기능의 팝업 등이 차단되어 있을 경우 결제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확인해주세요. 

3. 강의듣기

어플리케이션으로 로그인 하신 뒤  내 라이브러리(My Library)로 들어가시면 기초과정 수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Gnowbe의 웹 전용 사이트(web.gnowbe.com)으로 다시 접속해 로그인 하신 뒤 기초과정 수강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 회원가입 안내

 

- 모바일(스마트폰 또는 태블릿)에서 회원가입한다면?

Gnowbe 어플리케이션을 누르면
첫 화면이 나옵니다.

회원가입을 위한 이메일 주소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GET STARTED)를 눌러주세요.

개인정보를 입력하는 단계입니다.

이름과 성을 차례대로 입력하시고

아래에는 비밀번호를 입력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NEXT)를 눌러주세요.

현재 사용하고 있는 휴대폰 번호와
이용 국가를 입력한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CONTINUE)를 눌러주세요.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사진을 촬영해서 올려주시고,

개인보호정책에 동의하는
버튼(하얀색 작은 네모)을 클릭하신 뒤

가운데 큰 동그라미(START LEARNING)를
눌러주세요.

 

- PC에서 회원가입한다면?

 

첫 화면에서 주황색 버튼(Log in or Create a New Account)을 눌러주세요.

 

여기에 회원가입할 이메일과 비밀번호를 입력하시고, 하얀색 버튼(이동)을 눌러주세요.

 

이후 안내하는 대로 개인정보를 입력해 회원가입을 마무리하시면 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온라인 기초과정 여름방학 특별 이벤트

 

온라인 <기초과정 I>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분들도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편하게 과신대 기초과정에 참여하실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기초과정 I>은 집중강좌로 구성되고, <기초과정II>는 6주의 세미나 과정으로 구성됩니다. <기초과정 I>을 수료한 분은 이후 세미나 과정인 <기초과정 II>를 신청할 자격이 주어지며 두 과정을 모두 마친 분들은 심사를 거쳐 과신대에서 발급하는 기초과정 수료증을 수여합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영상 시청 방법: 스마트폰에서 Gnowbe 어플을 다운로드(Android Google play store / Apple AppStore) 하신 뒤 회원가입을 하시고, 회원가입한 계정(이메일 주소)을 수강신청할 때 적어주시면 과신대 콘텐츠에 접속할 수 있도록 권한을 드립니다. 

 

✓ 강사 : 우종학 교수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과신대 대표) 
✓ 강좌 구성
[1부. 과학의 도전] 1강. 도입 / 2강. 과학이란 무엇인가? / 3강. 과학에 대한 건강한 시각
[2부 성경해석] 4강. 창조기사를 어떻게 읽을까? / 5강. 성경과 과학 함께 읽기
[3부. 무신론의 도전] 6강. 무신론의 도전 / 7강. 과학주의 무신론 / 8강. 과학과 무신론의 차이 / 9강. 기적적 창조와 자연적 창조
[4부. 창조론의 스펙트럼] 10강. 다양한 창조 / 11강. 진화와 진화주의 / 12강. 창조론에 대한 바른 시각

✓ 일시 : 2019.6.24 (월) 12:00 ~ 2019.7.7 (일) 24:00
✓ 과제 :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서평 (A4 1장 내외)

✓ 과제 제출일: 2019.7.7 (일)까지 과신대 이메일로 제출 (scitheo.basic@gmail.com)

■ 수강료 : 3만원 (과신대 정회원 1만 5천원) 1만원 (대학생, 대학원생)

■ 신청 : 온라인 신청 → 송금 → 신청완료

■ 계좌 :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문의 : 070-4320-212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기초과정II>를 마치며

 

최성일 (신일고등학교 영어교사)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시편 8편 1절, 3~5절)

 

 

저는 작년 페북에서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를 알게 된 후, 곧바로 기초과정 1과 2를 연이어 들었습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는 온통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파묻혀 살았던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서울의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올해 30년인데, 약 5년 전부터 아이들에게 복음을 본격적으로 전하게 되면서, 여러 가지 현실적 문제들에 부딪히게 되었고, 그중 하나가 “진화론”의 문제였습니다.

 

2017년 고3 어느 수업 시간에 진화론을 비판했다가 공부 잘하는 학생들 두 명이 찾아와 항의하였고, 작년에는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다가 “선생님도 그런 책 읽으세요? 그거 진화론이에요.”라는 말을 교회에 착실히 다니는 한 학생으로부터 듣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교육현장에서 진화론은 신앙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진화론에 대해 고민하던 중, 교회 전도사님의 설교를 통해 페북 모임을 알게 되고, 이 순간까지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쉽지만은 않았던 기초과정 1, 2를 너무나 재밌게 듣게 된 이유는 현장에서 고민하던 바로 그 고민을 함께하는 선배님들과 동지들이 매우 많고, 또 열정 또한 매우 뜨겁다는 것, 그리고 진화론에 대하여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오해와 진실을 바르게 정리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 모임을 만드신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우종학 교수님,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구약학 교수이신 김근주 목사님, 장로회신학대학교 조직신학과 김정형 교수님, 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과 박영식 교수님으로 이루어진 최고의 강사진으로부터 “현대 과학을 품는 창조신앙(김정형 교수)”, “성경해석과 과학(김근주 교수)”, “과학주의 무신론(박영식 교수)”, “창조론의 스펙트럼(우종학 교수)” 등의 강의를 들으며, 20명에 가까운 4기 기초과정2 참석자들은 정성껏 발제하고 뜨겁게 토론하며, 과학과 신학의 관계 회복과 바른 신앙 정립을 위해 늦은 밤까지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주교재인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우종학)과 <오리진>(하스마)과 과제 교재인 <창조기사 논쟁>(해밀턴), <과학이 종교를 만날 때>(이안 바버), <신 없는 사람들>(맥그라스), 참고 도서인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우종학) 등등을 읽고,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제도 하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대니얼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의 새로운 무신론 과학자들의 논리가 여지없이 격파되는 것을 보았고, 그들의 허상을 확실히 “과학적, 신학적”으로 확인하고, 무엇이 진실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얻었던 가장 귀중한 세 가지 진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두 가지 책이 성경과 자연이라는 것, 둘째로 이 둘은 원저자가 같으므로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신학은 성경의 진리에 대한 영원한 근사요, 과학은 자연이라는 실재에 대한 영원한 근사라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원리를 통해 과학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졌고, 오히려 과학이야 말로 창조주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신실함을 구체적으로 더욱 깊이 맛볼 수 있는 수단이며, 학교 현장의 아이들에게 매우 자연스럽게 다가갈 수 있는 귀중한 통로임을 깨달았습니다. 신앙적으로도 성경이 제시하는 진리와 자신의 성경 해석 간의 영원한 간극이 있음을 알고, 항상 겸손해야 하며,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함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어떤 학생에게도 과학이 지겹고 딱딱한 것이 아니라 매우 황홀한 공부이며, 절대로 신앙의 적이 아니라 매우 소중한 동반자임과 신앙이라는 것이 막무가내식의 권위주의적 강요가 아님을 설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과학과 신학과의 관계에 대한 역사적 고찰에서 화이트헤드의 체계적 융합론에 매료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교회와 과학이 서로 조화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답답한 현재 기독교회의 숨통을 열어주는 것 같았습니다.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완전한 패러다임의 이동과 천사가 끌고 다니는 행성들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온 우주에 동일하게 작동하는 중력의 법칙으로 행성들이 움직인다는 패러다임의 이동이 수 백 년에 걸쳐 일어났듯이, 진화론도 하나님의 창조 방법임을 교회가 인정하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쉬프트를 통해서 잘못된 성경해석이 바로 잡히게 되고, 이것을 통해 비합리적이고 비상식적인 기독교계의 관행들과 제도들이 사라지게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생명공학의 현기증 나는 발전 속도에 비해 너무나도 느리고, 심지어 역주행하는 기독교회는 이대로 가면 복음을 전할 힘을 잃는 것은 물론 복음을 가로막는 애물단지가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미 많은 과학자들과 과학자 지망생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심지어 어린 학생들도 비과학적이고 권위적인 교회에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지금의 기성세대는 차세대들에게 우주와 인간을 설명하는 과학도 분명히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영역이요, 하나님의 완전한 구원을 더욱 풍성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영역임을 알려줄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될 최후의 질문은 “과연 인간은 무엇인가?”일 것입니다. 만일 기성세대인 우리가 하나님의 또 하나의 책인 자연을 과학적으로 이해하려 하지 않고 배척만 한다면, 우리는 차세대들에게 온전한 복음을 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는 복음의 진보를 위해 사활적인 중요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성세대는 과학을 통해 드러나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장대한 계획과 사랑과 신실하심을 적극 수용하고, 그 속에 포함된 함의를 일상에 적용하여 과학기술 문명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합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이 없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인간의 무절제한 욕심으로 인해 더 크고 근원적인 빈부격차가 생겨날 것입니다. 진화주의를 포함한 근현대의 과학주의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한 기독교회에서 가장 무리 없이 인정하는 대표적 변신론가인 C.S. Lewis가 평생을 두고 싸웠던 대상입니다. 138억년에 걸친 장구한 세월 속에 깨알같이 들어박혀 있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우리가 최대한 있는 그대로 향유하며 후손들에게 전해주려면, 우리는 과학을 과학주의로부터 구해내고 신학을 고루한 근본주의적 문자주의에서 구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디 더욱 많은 분들이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참여하여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권의 책을 자세히 설명하시고 풀어주시고 융합하시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듣고 배우며, 인간으로 태어난 그 즐거움을 함께 만끽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임마누엘 샬롬~!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무신론과 종교비판

알리스터 맥그래스 <신 없는 사람들>(IVP, 2012)을 읽고

 

글_ 홍승표

 

 

* 이 글은 과신대 <기초과정II> 과제로 제출된 글입니다. 

 

무신론자들이 종교에 관해 비판할 때, 그들은 종교가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즐겨 사용한다. 즉, 종교는 진리가 아니며 가상의 허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글에서는 ‘폭력적 기독교’, ‘비이성적 기독교’, ‘비과학적 기독교’로 나눠 그 논증들에 대한 나의 의견을 낼 것이다.

 

 

1. 종교는 폭력적이다

 

해리스와 히친스 같은 학자들은 종교적 신념이 곧장 자살 테러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만약 모든 종교적 신념이 테러로 이어진다면, 세계의 모든 곳에서는 테러와 폭력이 쉬지 않고 자행될 것이다. 이와 같은 논란에 대해 시카고 대학 정치 과학 교수 로버트 페이프는 ‘자살 테러와 이슬람 근본주의 사이에, 아니 세상의 그 어떤 종교 사이에도 연관성은 찾아볼 수 없다.’고 발표하며 자살 폭탄 테러의 근본 동기가 정치적인 것이었음을 알려 준다.

 

기독교의 근본은 ‘사랑’이다. 사랑이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온전하게 잘못된 해석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것이다. 예수는 몸소 자신의 가르침과 행동에서 줄곧 폭력을 반대했었다. 유대 민족을 로마의 압정으로부터 구원할 메시아로 인식되었던 예수는 유대 민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오히려 인내하고 사랑할 것을 가르친다. 그리고 백마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었다. 이는 기독교의 근본이 폭력보다는 비폭력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확실히 하는 대목이다. 물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가르침을 따르지 않지만, 이는 종교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일신상의 문제이다.

 

종교가 폭력을 유발한다면, 종교가 없는 사회는 어떨까? 구 소련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받아들여 소련 내에서 종교를 없애고자 했었다. ‘종교가 만악의 근원이다’라는 이론이 인정되려면 소련은 그 어떤 폭력도 자행되지 않는 지상낙원이었어야 했다. 그러나 당시 공산당 정부는 비폭력과 지상낙원과는 거리가 먼 정책들을 시행했었다. 이는 종교가 사회적 폭력의 근원이라는 의견이 틀리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폭력은 종교에서부터 기인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과 욕망에 의해서 발생한다. 옛날의 각종 정복 전쟁이나 정치적인 문제들로 인해 발생한 세계대전 등을 통해 보았을 때, 종교는 오히려 전쟁 원인의 주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몇 개의 사례들로 종교가 폭력적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오늘 서울에 비가 왔다는 이유로 ‘서울은 항상 비가 오는 곳이다’라고 규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2. 종교는 비이성적이다

 

무신론자들은 종교를 ‘무조건적이다’라고 비판한다. 믿음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없으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거나, 또는 그 믿음을 남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동시에 그들은 믿음을 증명해내라며 압박해내기도 한다.

 

뛰어나 철학자이자 역사가 이사야 벌린 경은, 인간의 확신을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한다.

 

1. 실증적 관찰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2. 논리적 추론을 통해 세워질 수 있는 것들

3. 둘 중 어느 것으로도 입증될 수 없는 것들

 

1번은 자연과학을 통해, 2번은 논리와 수학을 통해 입증될 수 있다. 그리고 3번째 범주는 인간의 문화를 형성했고 인간 실존의 방향과 목적을 제시했지만, 이성이나 과학을 통해서 입증되지 않는 가치나 관념 같은 것과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 사람은 이성과 양심을 부여받았으며, 형제애의 마음으로 서로를 대해야한다’라는 세계 인권 선언의 진술 같은 것이다. 이와 같은 진술은 물증이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신념이 물증이 없다 해서, 이 같은 발언들이 ‘비이성적인’ 발언으로 취급되지는 않는다.

 

무신론은 모든 세계관은 이성적으로나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 있다는 불편하지만 사실인 진실을 거부한다. 즉 이들은 그저 ‘열성 무신론’이라는 종교를 가지고 그들의 색안경으로 세상을 보려는 자들에 불과하다.

 

어떤 이들은 아우슈비츠 학살과 같은 각종 만행들을 ‘신의 비도덕적 행위’로 취급하여 종교를 공격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만행들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의해서 자행된 일들이다. 내가 오늘 아침에 사과를 먹었다고 가정해보자. 사과를 먹은 것은 신의 뜻인가? 정답은 오직 신만이 알고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도깨비 방망이가 아니다. 금 나오라고 기도해봤자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즉답’을 요구한다. 이는 어찌 보면 강력한 근본주의적 믿음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인간은 인간의 욕심에 의해서 일어난 만행들의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려는 습성이 있다. 요즘에는 그저 그 범인 찾기의 대상이 신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대표적인 예로 히친스와 도킨스가 신에 대해 퍼붓는 저주가 있다.

 

‘이성적’이라는 단어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 누구도 ‘이성’의 한계성을 명확하게 지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 대부분이 이성적으로 여기는 보편적 가치는 확실히 존재한다. ‘무고한 살인은 나쁜 것이다.’,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나쁜 것이다.’, ‘부모를 폭행하는 것은 나쁜 것이다.’라는 명제들은 이에 속한다고 단언할 수 있다. 종교가 비이성적이라면, 이와 같은 명제들에 반기를 들고 ‘살인해라’, ‘도적질해라’, ‘불효해라’라며 오히려 권장할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타적인 사랑을 우선으로 하는 종교다. 그렇다면 오히려 기독교는 어떤 것보다 이성적인 것으로 취급받을 여지도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3. 종교는 비과학적이다

 

과학은 단지 세상의 형태와 과정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려고 노력한다. 과학은 그 의미와 가치 판단의 문제에 큰 도움을 주는 학문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종교는 여러 가지로 곡해되어왔다. 맥그라스의 의견에 따르면, 과학이 해야 할 질문은 ‘이것이 합리적인가?’가 아니라 ‘이것이 참이라고 생각할 근거는 무엇인가?’이다.

 

그렇기에 과학은 종교에 대한 과학 이론을 입증하지 않는다. 아직 과학은 세상의 기원에 관련된 문제들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렇기에 세상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데, 과학은 이 가설들 중 어느 하나도 확실한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과학적 사실과 세상의 기원에 관한 가설을 통합시켜줄 수 있는 절대적 이론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과학은 실증적이다. 이는 관찰 가능한 것에서 멀어지게 된다면, 그 이외의 것들은 전혀 입증해낼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다. ‘사랑’, ‘우정’, ‘연민’과 같은 보편적 가치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내기란 어렵다. 그러니 무신론자들이 과학을 들이밀며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세상 모든 가치를 가시화하려는 몽매한 노력에 불과하다. 과학은 도덕의 기준을 세울 수 없다.

 

또한 과학은 인간의 가치관과는 거리가 멀다.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과학은 답을 해줄 수 없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많은 사람들의 철학적 논고에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과학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입증할 뿐, 눈에 보이지 않는 가치 같은 것들은 입증할 수 없다.

 

 

4. 결론

 

종교는 폭력적이지도, 비이성적이지도, 비과학적이지도 않다. 이는 몇 개의 사실을 가지고 전체를 일반화 시키려는 그릇된 생각이다. 그러나 어째서 이와 같은 비판이 나오느냐라는 질문에 대해, 나는 ‘나를 비롯한 교인들이 완전하지 않아서’라고 답하겠다. 교인들이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에, 이에 대한 오해와 비판들이 더욱 더 불거진 것이 아닐까. 때문에 종교 비판을 감정적으로만 받아들이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수용을 통해 현재 기독교가 앓고 있는 문제점을 조금 더 확실하게 파악하고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또 하나의 과제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온전히 알 수 없음을 고백한다. 하나님은 여백이시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채운 부분만 가지고만 이야기한다. 우리가 변호한다고 일일이 대답해봤자, 그것은 온전한 대답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변호하는 것이 변호가 된다면, 하나님은 궁색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변호가 필요 없다. 하나님에 대한 변호는 나의 신앙에 대한 변호일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수많은 무신론의 도전에 맞서게 된다. 동시에 어째서 종교를 비판하는지에 대해 알 수 있을 때 종교는 한층 높은 차원으로 나아가게 된다. 마르크스의 종교 비판을 통해 교계가 변화된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신을 변호하는 것이 온전한 변호라고 할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무기력하게 ‘알 수 없다’라는 태도로만 일관한다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던 예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종교에 대한 비판을 대할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그 문제에 대해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다시 용기를 내어 학생들 앞으로: 온라인 <기초과정I>을 듣고

다시 용기를 내어 학생들 앞으로

 

글_ 김신자

 

* 이 글은 온라인 <기초과정 I> 1기 수료생인 김신자님께서 무신론 기자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을 읽고 쓴 감상문입니다.

 

고등학교 학생들 특히 이과반 학생들과의 종교학 수업에서 특히 창세기 1장 특히 창조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에는 왠지 싸~한 수업 분위기를 종종 느끼곤 하였다. 이과 수업을 통하여 지구과학, 생물학 등을 배우고 있는 자신들의 지식과 성경에서 말하는 창조 이야기는 뭔가 안 맞는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번 과신대 온라인 <기초과정1>을 통해 나 자신의 무식함과 이미 열심히 듣고 읽었던 창조과학의 근거가 흔들리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과반 학생들과의 만남에 자유함을 가질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과학으로 창세기를 증명해보려는 노력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를 확실히 깨달았을 뿐 아니라, 한 교수가 박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과학과 신앙은 서로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라 서로 도움이 되며 수용해야 함을 동감하며 나 자신이 열린 사고를 가져야 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창조주가 진화라는 방법을 사용해서 생물을 창조했다고 보는 진화 창조론의 입장에 열린 사고를 가지고 수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아니 말이 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연현상 자체도 신의 영역이라는 점과 이런 자연현상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한 교수의 발언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을 학생들에게 충분이 이해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자연현상 자체는 신이 부여한 물리법칙과 우주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신의 섭리를 통해 일어나는 일이라는 사실이 곧 믿음이며, 하나님의 창조는 지금도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설명할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므로 과학과 신앙은 서로 다른 영역의 내용을 다룬다는 분리적 입장이 아니라, 과학과 신앙을 연결해서 봐야 한다는 통합적입장에 지지를 보낸다. 신앙은 과학자의 동기나 연구 태도 그리고 윤리에 영향을 주고, 과학이 신앙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한 교수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자연세계를 연구한 결과들이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데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 해야 한다.

 

과학은 절대 진리라기보다는 계속 변하는 속성이 있기 때문에 너무 과학에 의존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신앙에는 결국 합리성이나 과학으로 담보할 수 없는 믿음의 영역이 있다. 결국 우리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데에는 결정적으로 이 믿음이 작용한다는 한 교수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과학과 신앙, 신앙과 과학을 바라보는 상보론자들은 신앙을 변증 하기 위해서 과학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과학이 매우 유용하다는 온건한 입장을 받아들이고 싶다. 과학에서 출발해서 신앙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하더라도, 신앙의 입장에서 보면 과학으로 발견되는 수많은 지식이 오히려 신앙에 도움이 된다. 이런 내용이 무거웠던 이과반 학생들과의 수업을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용기를 나에게 주는 것 같다.

 

한창 반항하고 싶어 하는 십대들에게 무조건 성경말씀이니 믿으라고 윽박지를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과학과 신앙, 신앙과 과학을 새롭게 바라 볼 수 있는 시야를 열어준 과신대 <기초과정I>과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쓰신 우종학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싶다. 앞으로 너무 어려워서 감히 만져보려고도 하지 않았던 과학 분야의 책들, 특히 무크따에 소개된 책들을 읽어보면서 많이 공부하려고 한다. 성경말씀을 잘 읽으려면, 잘 이해하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서라도 많이 배워야 함을 깨닫게 됐다.

 

과신대 <기초과정I> 온라인 2기 모집 안내: https://www.scitheo.org/332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