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회 콜로퀴움] 신경과학 시대에 인간을 다시 묻다

 

신경과학 시대에 인간을 다시 묻다.

 

오늘날 생물학, 유전학, 고인류학,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분야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는 눈부신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학적 연구 결과만으로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충분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단순히 인간에 대한 생물학적ㆍ신경과학적 사실들을 나열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인간에 대한 설명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심리철학자 김남호 박사님은 '구성적 인격 이론'을 통해 오랜 시간 철학자들이 물었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려 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뭔가 다른 능력을 갖고 있고, 제한적이지만 의지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심리철학에서 다루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자아에 대한 탐구, 아울러 자유의지에 대한 논의를 다룰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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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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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강신청 기간: 9월 14일(월) 12시까지

* 영상시청 기간: 9월 7일~9월 18일(금)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사 소개

김남호 박사_ 2004년 울산대학교 철학과를 졸업(B.A.)한 뒤에, 2010년 독일 브레멘(Bremen) 대학에서 철학 학사(BA)와 예술학 학사(BA) 학위를, 2017년 독일 본(Bonn) 대학에서 철학 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2016년부터 울산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문 분야는 철학적 인간학, 형이상학, 윤리학이며, 주요 논문으로는 “인격, 인간인격, 그리고 인격 동일성”(2017) 외 다수가 있다. 저서로는 『철학자가 된 셜록 홈즈: 현대 심리철학으로의 모험』(새물결플러스, 2018)이 있으며, 역서로는『철학의 모든 것』(요나스 피스터 저, 손영식 외 공역, 북코리아, 2019)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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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짚신벌레도 주체적 경험을 즐긴다.

  • 저는 "전자도 주체적 삶을 즐긴다"에 공감했었습니다.

    "우주의 끝에 있는 전자 하나도 하나님께서는 이끄십니다."라는 C.S. Lewis의 말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ㅎ

    휘페르테스 2020.08.08 14:43
    • 우주의 끝에 있는 전자 하나도 하나님께서는 이끄십니다 라는 C.S 루이스의 말 너무 좋네요. 메모해놓고 저도 인용해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완식 2020.08.14 13:55 DEL

 

짚신벌레도 주체적 경험을 즐긴다.

- 21회 콜로퀴움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에 대한 소감 -

 

글_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故 신영복 선생은 <나무야 나무야>라는 책의 머리말에서 글을 쓰기 위해 떠난 여행은 편한 것이 아니었으며 좋은 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그런 부담감 없이 다시 떠나보고 싶다는 소회를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어딘가 여행을 다녀왔는데 그 여행지가 너무 좋았다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청산유수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말을 할 법 한데, 처음부터 이런 이야기를 할지 저런 이야기를 할지를 생각하며 여행을 하다 보면 여행의 참 맛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21회 콜로퀴움 강의를 들으면서 그 분의 마음이 딱 제 마음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강의 내용에 빠져들다 보면 강의가 끝나고 나서 이 얘기 저 얘기할 말이 참 많을 터인데 강의 처음부터 어떻게 소감문을 써야 할지 무슨 내용을 넣어야 할지를 생각하며 듣다 보니 강의 듣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이번 콜로퀴움 주제가 철학과 관련된 내용이다 보니 철알못(철학을 알지 못하는 사람)인 저로서는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이라는 강의 제목부터가 사뭇 긴장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강의였으며 나름 느끼고 생각할 게 많았습니다. 다음은 개인적으로 느낀 소감들을 몇 가지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21회 콜로퀴움은 감리교신학대학교의 장왕식 교수님께서 강의를 맡아주셨습니다. 강의 주제는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입니다. 좀 더 정확히 하자면 ‘과정신학적 관점에서 본’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자연주의는 결국 허무주위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자연주의를 과정신학 입장에서 보면 우주를 우연으로만 해석할 것이 아니라 창조적으로 해석하여 허무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자연주의 철학 또는 과학을 우리는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허무주의로 인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본 후에 그러한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수단으로써의 과정신학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 Science is truth >

"과학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과학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 미국의 대통령 자문 위원, Fouci 박사 -

 

이번 콜로퀴움 강의를 들으면서 제가 가장 깜짝 놀란 말이 ‘Science is truth’, 즉 ‘과학이 진리다’라는 말이었습니다. 물론 번역하는 사람의 의도나 가치관에 따라 ‘진리’라고도 할 수 있고 ‘진실’이라고도 할 수 있겠으나 실질적으로는 진리라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진리는 오직 하나, 예수 그리스도로 생각해왔던 기독교 신앙적 입장과는 상반되는 것이라 다소 당황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과학이 우리 삶을 그리고 우리 가치관을 이렇게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타깝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과학은 하나님을 배제한 자연주의를 말하는 과학이요, 허무주의로 향하는 과학을 말하는 것입니다.

 

 

< 자연은 스스로 목적이다? >

 

‘자연은 스스로 목적이다’라는 말은 자연주의를 가장 잘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가 목적이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개입이나 도움도 사실 필요치 않게 되는 것이죠. 즉, 자연주의는 우리의 삶에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습니다. 경희대 물리학과 김상욱 교수가 쓴 <울림과 떨림>이란 책을 예전에 참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단순히 물리학적인 내용을 넘어서 인문학까지 가미한 흔적이 보여서 그런지 개인적으로는 유익하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책의 끝부분에 ‘의미나 가치는 인간이 만든 상상력의 산물이고 우주에는 인간이 생각하는 의미는 없다’라고 언급했는데 이 말은 저에게 매우 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저는 현재 교회에서 고등부 교사로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와 초등학교를 다니는 자녀 2명이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교회에서 배우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과 교회에서나 집에서 함께 하고 있는 셈입니다. 아직까지는 저에게 왜 다르냐고 심각하게 물어오는 학생은 없었지만 간혹 어떤 학생들은 이러한 차이로 인한 갈등에 힘겨워 하다가 결국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다는 말을 듣곤 합니다. 스스로가 목적이 되어 존재하고 있는 우주와 자연이 선택하여 진화하게 된 사람과 동물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을 가르치는 교육적 환경에서 결국 무신론과 유물론자들이 되어가는 학생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해 옴을 느낍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계적 결정론으로부터 또는 이기적 유전자가 지배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교육 환경으로부터 학생들뿐만 아니라 허무주의에 치닫고 목적의식 없이 무의미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을까요?

 

 

 

< 짚신벌레도 주체적 경험을 즐긴다 >

풀잎 하나가 생성할 때도 인간 이성은 그것을

기계적 원인들을 통해 이해해서는 안 된다.

- 칸트, 판단력 비판 -

 

앞서 ‘과학이 진리다’라는 말에서 좌절감을 느꼈다면 위의 칸트의 말은 저를 다시 일으켜 주고 산소를 공급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칸트의 말은 바로 목적론적인 세계관을 의미하는 것이며, 과정신학을 만든 화이트 헤드 또한 칸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합니다. 과정신학의 목적론적 세계관은 자연주의의 기계적 결정론에 의한 무신론과 유물론이 만든 허무주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짚신벌레도 빛이 있다면 빛을 향해 움직이고, 아메바도 설탕가루를 향해 움직인다고 합니다. 비록 미물일지라도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심지어 양자역학에서는 전자마저도 주체적인 경험을 즐긴다고 합니다.

 

“양자 얽힘의 결과로서 일어나는 어떤 조건에서 아원자 입자들은 ‘자유롭게’ 그 어떤 물리적 사건들에 의해서도 제약받지 않은 채 반응한다. 그들도 체험하고 결단한다.”

_ 존 H. 콘웨이, 사이먼 코헨

 

콘웨이와 코헨의 말은 주체적 경험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됩니다. 진화의 역사에서 소수의 선구적 물고기들이 과감히 땅 위로 진출해 양서류, 포유류가 되었다고 하는 볼드윈 효과 또한 진화에서 있어서도 능동성을 강조한 말입니다. 짚신벌레도 주체적 경험을 즐긴다는 말이 참 재미있게도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하물며 미물도 그러한데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과정신학은 곧 유기체의 철학을 바탕으로 우연과 필연, 기계와 목적, 진화와 창조를 함께 생각한다고 하였습니다. 혹자는 이 말을 이도저도 아닌 모호한 입장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균형 잡힌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우연과 기계와 진화만을 주장하는 자연주의는 결국 허무주의로 귀결됩니다. 필연과 목적과 창조만 주장하는 신앙은 근본주의로 나아가게 됩니다. 모든 사물이 정도를 지나치면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는 뜻으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도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을 통해 접한 강의에서 과정신학의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었으나 자연주의를 극복하는 방안으로서의 목적론적 세계관을 설명한 과정신학은 목적성을 가지고 주어진 삶을 의미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를 준 좋은 강의였다고 생각합니다.

 

 

서두에 언급한 故 신영복 선생의 <나무야, 나무야>에 나온 글을 인용하여 짧은 소감문을 마칠까 합니다. 그 분의 글이 우연과 필연, 기계와 목적, 진화와 창조를 함께 생각하는 과정신학의 개념과 맥을 같이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빛과 그림자, 이 둘을 동시에 승인하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정면에서 직시하는 용기이고 지혜라고 생각됩니다. 빛은 어두움을 만들고 어둠은 빛을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용기와 지혜는 당신의 말처럼 ‘결합의 방법’입니다. 선량하나 나약하지 않고 냉철하나 비정하지 않고 치열하나 오만하지 않을 수 있는 ‘결합의 지혜’, ‘결합의 용기’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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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콜로퀴움]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근대 세계는 기독교 신앙에 심각한 도전과 충격을 가져다 주었다. 과학은 신의 존재를 부정할 만큼 ‘과학적’이 됐으며, 그에 반하여 기독교 신앙은 더욱 근본주의로 치닫고 있다. 이 깊은 골을 매우기 위해서는 과학적 자연주의에 대한 성찰과 논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과정신학은 과학과 신학이 서로 양립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었던 두 세계관의 근본적인 종합을 제안한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오랜 시간 과정신학을 연구해 온 장왕식 교수를 통해 자연주의 철학과 기독교 창조론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화해할 수 있는지 살펴본다. 

 

*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해주시면 이메일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20년 7월 6일(월) 낮 12시 (시청기간: 7월 17일 낮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연 순서

1부 강연(약 90분) :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 과정신학적 관점" (장왕식 교수)
2부 대담(약 30분) : 장왕식 교수, 최경환 사무국장 

 

* 강사 소개

장왕식 교수현재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교수로 봉직하면서 종교철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현대종교철학연구소 소장직을 겸하고 있다. 미국 에모리 대학교에서 교환교수로 가르친 바 있으며, 한국 화이트헤드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감리교 신학대학교에서 조직신학과 종교철학을 공부한 후, 미국 클레어몬트 대학원에서 화이트헤드 연구로 철학박사학위를 획득하였다. 역서로 『화이트헤드 풀어 읽기』, 『과정형이상학과 화이트헤드』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생성과 과정의 철학에서 종교철학의 문제를 다룬 책인 『동양과 서양, 종교철학에서 만나다』와 과정신학의 입장에서 다윈주의의 문제를 다룬 『종교적 상대주의를 넘어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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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콜로퀴움 후기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 19회 과신대 콜로퀴움 후기 -

 

 

이번 19회 과신대 콜로퀴움은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김성신 박사님이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이란 주제로 뇌과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뇌과학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부분, 뇌와 관련된 사이비 과학, 뇌 결정주의, 뇌를 관찰하는 방법, 기억에 대한 이야기, 뇌과학의 미래 등에 대해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본 후기에서는 그중에서 주요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였습니다. 이번 콜로퀴움은 온라인으로 진행이 되어서 다소 아쉬움이 있었으나, 내용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나름 좋은 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선, 김성신 박사님이 계시는 기초과학연구원은 전국 30개의 기초과학연구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세계적 수준의 뇌이미징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시설은 아시아에서는 최고이며, 세계에서도 그리 많지는 않다고 합니다. 나름 자부심도 느껴지고 앞으로 우리나라 뇌과학 분야가 많이 발전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뇌과학의 연구 범위

 

뇌과학의 연구 범위는 분자 생물학에서 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그렇다고 뇌과학과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학제 간 학문으로 물리학, 생물학, 화학, 수학, 컴퓨터, 인문학, 사회학 등 공동연구와 협력이 필요한 과학 분야입니다. 뇌과학을 통상적으로는 Neuroscience라고 하는데 의학 분야에서는 Neurology, 생물학 분야에서는 Neurobiology라고 합니다.

 

 

뇌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것들

 

우리가 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것으로는 우선,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이 인간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으며 기능적인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뇌를 10%만 사용한다는 말도 있지만 실제로 인간은 자기 뇌의 100%를 24시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영화 <루시>를 보면서 저 또한 제 뇌를 업그레이드 해보고 싶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기도 했었습니다만 영화와 실제는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깨달았으니 앞으로는 영화에 너무 몰입되지는 말아야겠습니다.

 

특정 주파수 대역의 음악이 뇌 발달에 효과가 있다는 모차르트 효과 역시 검증이 되지 않은 사이비 과학이니 주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또한 영화 프레임 중간중간에 팝콘이나 콜라 이미지를 삽입하면 영화가 끝나고 사람들이 팝콘과 콜라를 많이 찾는다는 이야기 가 있는데, 역시 검증이 되지 않은 사기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 재밌는 것은 머리가 크면 똑똑하다는 말이 있지만 이 또한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하니 머리가 크신 분들의 희망이 조금은 실망으로 바뀔 것 같습니다.

 

 

뇌과학계의 신천지

 

이번 강연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의외였고 놀라웠던 내용은 바로 뇌과학계에도 신천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뇌과학연구원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한국뇌연구원(정보출연연구소)과 명칭도 비슷해서 자칫 혼돈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책이나 미디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뇌호흡은 검증이 전혀 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김성신 박사님이 뇌과학자로서 자괴감까지 느낄 정도라고 하니 그런 단체에서 나오는 정보나 교육 프로그램 등은 조심해야겠습니다. 심지어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이라는 학교까지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으니 많은 주의가 요망됩니다.

 

한국뇌연구원 (정부출연연구소)

 

 

뇌 결정주의(Neuronal Determinism)

 

혹시 사이코패스의 뇌가 일반인과 다르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사이코패스의 뇌는 전두엽 부분의 활성화도가 일반인보다 낮습니다. <괴물의 심연>이라는 책의 저자인 제임스 팰런은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신경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본인의 뇌가 사이코패스의 특징을 보이고 있음을 우연히 발견합니다. 왜 그런가 하여 자기 가문을 추적해보니 조상 중에 그러한 범죄자들이 있었음을 발견합니다. 아동포르노 수집가들 역시 전두엽 부분에서 일반인과는 다른 점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들의 전두엽 아래쪽에 종용이 있는데 이 종용 제거 수술 후에는 충동 성향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한편 정치성향이나 이타성에 따라 역시 뇌 활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절대적이지는 않기 때문에 해석에 주의해야 하며 참고용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뇌를 관찰하는 기술 

 

뇌를 관찰하고 자극하는 기술 중에 투명뇌 기법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5년 전에 MIT 뇌신경학과의 정광훈 교수가 개발했습니다. 투명 뇌 기법이 신기해서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좀 더 확인해 보니 이 기법은 투명한 하이드로겔을 주입해 뇌의 모양을 보존하여, 뇌 조직의 단백질과 DNA 그리고 유전물질인 RNA까지 시각화하는 기술입니다. 뇌의 구조와 분자 구성을 시각화하고 이를 적용하여 뇌지도를 만드는 연구는 다양한 뇌질환의 원인을 규명하고 근본적인 치료법 개발을 앞당길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기술을 개발한 정광훈 교수는 2019년에 백악관에서 수여하는 젊은 과학기술자 대통령상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왼쪽: 보통 쥐의 뇌 / 오른쪽: 화학처리를 통해 투명해진 뇌 (출처 : 인터넷)

 

뇌 관찰 기술 중에 핵자기공명영상(MRI)이 있습니다. 이 기술은 뇌과학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차원으로 촬영하여 3차원으로 재구성하는 것인데 비수술로 뇌를 볼 수 있고 촬영도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이름의 기능성 핵자기공명영상(FMRI)은 뇌의 활성화된 정도를 볼 수 있어서 손가락을 움직임에 따라 뇌 활성화를 확인 가능합니다. 핵자기공명영상(MRI)은 스냅사진으로, 기능성 핵자기공명영상(FMRI)은 동영상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뇌의 핵심 기능 기억

 

뇌의 기능 중에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기능은 기억일 것입니다. 서울대 김형 교수는 기억에 대하여 ‘바다에 흘러가는 빙산’이라고 정의를 하였습니다. 빙산의 윗부분에 해당하는 것을 ‘서술적 기억’이라고 하고, 바다에 잠긴 부분을 ‘암묵적 기억’이라고 합니다. 서술적 기억은 느끼고 보고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암묵적 기억은 느낄 수 없고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 무의식의 개념과는 다른 기억의 한 종류입니다. 암묵적 기억의 예로는 몸으로 익히는 운동학습이 있습니다. 뇌 과학의 혁명이자 동시에 흑역사를 보여주는 책 <환자 H.M>을 보면 해마체에 관련된 흥미로운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책 내용 중에 해마체를 제거한 후 새로운 장기 기억이 형성은 안되지만 운동 기억은 남아 있게 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래서 서술적 기억과 암묵적 기억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현재는 이런 기억을 조작(삭제, 변형, 생성, 인출)하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기억을 조작하는 영화로서 토탈리콜이 있는데요, 주인공 크웨이드는 기억 조작을 통해 화성에 간 경험을 기억에 주입하게 됩니다. 이처럼 어떤 감정이 기억될 만한 부분의 해마체를 자극하면 실제 경험한 것처럼 조작이 가능하게 됩니다.

 

 

뇌과학의 미래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자면 뇌과학의 미래에 대해 영화나 미디어에서 보는 것처럼 너무 과장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을 듯 싶습니다. 매트릭스나 로보캅, 퍼시픽림, 트랜센던스 같은 영화를 보면 뇌와 기계 간 인터페이스에 관한 내용도 나오고, 일론 머스크는 생각만으로 의사소통과 정보 전달하는 시스템 만드는 흥미로운 연구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눈으로 보는 것과 꿈을 꾸는 것을 재생하는 마인드 리딩 기술이 연구되고 있으나 제한된 영역 내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보일 뿐 확대 해석은 경계를 하는 게 좋습니다.

 

 

 

< 대담 요약 >

 

질문 :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 또는 하나님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은 무엇인가요?

 

답변 : 지인이 모든 것은 뇌의 전기적인 화학적인 반응인 것이라며 신앙을 떠나기도 하였지만, 저는 오히려 뇌를 신비롭게 한 것은 하나님의 본성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고, 존재를 생각하게 되었으며, 연구의 고비마다 만남을 허락하시는 은혜를 누리기도 하였습니다.

 

질문 : 치매로 인해 기억이 없어진다면 인간의 정체성도 상실될 거 같은데 이것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답변 : 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계속 하나님을 잊고 심지어는 망각의 수준까지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런 것들을 볼 때, 하나님이 인간을 보실 때 거의 장기기억상실증 환자로 보시지 않으실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시공간을 초월하는 분이시고, 기억이라는 것이 시공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치매로 인한 기억 상실이 구원과 과연 연관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질문 : 앞에서 설명한 습관에 의해 형성되는 암묵적 기억을 신앙생활에 접목하면 어떨까요?

 

답변 : 영성이나 지성도 훈련을 해서 암묵적 기억이 증가되도록 한다면, 뇌과학적인 측면에서 가속성과 시냅스가 발달하여 인간 뇌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게 되어 효율성이 증가하게 되고, 결국 믿음이 좋은 뇌로 변화하는 영적인 부분에서도 뇌과학적인 메커니즘이 존재할 것으로 봅니다.

 

질문 : 인간의 뇌가 동물의 뇌와 다른 점이 뭔가요? 

 

답변 : 동물도 사회성과 이타심, 감정이 있습니다. 심지어 언어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과 가장 큰 차이점은 장기적인 예측 능력이라고 봅니다. 즉, 미래에 대한 상상이 큰 차이라고 봅니다. 특히 이런 상상력에 의한 창의력이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창의력은 연구하기도 가장 힘든 부분이기도 합니다.

 

 

* 이번 19회 과신대 콜로퀴움을 위해 기꺼이 시간을 내주시고 많은 자료를 준비해주셔서 훌륭한 내용을 강연해 주신 김성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향후에 박사님의 신앙 간증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습니다.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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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회 콜로퀴움] 케노시스 창조론: 하나님의 자기 비움과 사랑의 창조

 

케노시스 창조론

하나님의 자기 비움과 사랑의 창조

 

 

케노시스(kenosis) 개념은 20세기 신학계의 지형도를 뒤흔든 진보적이고 파격적인 주제 중 하나였습니다. 케노시스는 빌립보서 2:7에서 예수께서 자신을 비워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것을 나타내는 그리스어입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창조란 하나님의 자기 비움 행위이며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케노시스 개념이 창조와 연결되면서 철학과 과학과 신학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살펴봅니다. 현대 신학자들은 창조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리고 현대 과학과 어떻게 공명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해주시면 이메일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20년 6월 8일(월) 낮 12시 (시청기간: 6월 19일 낮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연 순서

1부 강연(약 90분) : "케노시스 창조론: 하나님의 자기 비움과 사랑의 창조" (강태영 박사)
2부 대담(약 30분) : 강태영 박사, 최경환 국장 

 

* 강사 소개

강태영 박사_ 경북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와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서 창조신학을 전공해 신학 박사(Dr. theol.) 학위를 받았다. 석사 과정에서는 기독론을 주로 공부했고, 박사 과정에서는 신학과 과학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했다. 

 

 

**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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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콜로퀴움]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2020년 첫 번째 콜로퀴움 주제는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입니다.  

이번 강연에서는 젊은 뇌과학 연구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의 김성신 박사님을 모시고 이야기를 듣습니다. 본 강연은 뇌과학의 연구 대상과 몇 가지 중요한 주제들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뇌과학에 대한 오해들을 점검해봅니다. 이어서 뇌과학을 소재로 한 흥미로운 영화들을 소개하고 이와 관련된 윤리적, 철학적 문제를 다뤄 볼 계획입니다.  

또한 강연자의 주된 관심 분야인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역사를 살펴본 다음, 뇌의 활동을 관찰하고 조절하는 최신기술과 성과들을 소개하며 뇌과학의 향후 발전 전망에 대해서도 소개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 과학자로서 뇌과학 분야의 연구에 대한 생각과 고민들을 나눠볼 것입니다. 

최근 뇌과학의 동향과 연구를 소개받을 수 있는 귀한 강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신비하고 놀라운 뇌과학의 매력에 흠뻑 빠져보시면 어떨까요?

 

*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만 진행됩니다. 수강신청을 해주시면 이메일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링크를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 일시: 2020년 5월 5일(화) 낮 12시 (시청기간: 5월 15일 낮 12시까지)

* 등록비: 5,000원 (과신대 정회원, 청소년은 무료)
   등록비 입금 계좌: 카카오뱅크 3333-08-9187954 (최경환)

 

* 강연 순서

1부 강연(약 50분) :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 (발표: 김성신 박사)
2부 대담(약 50분) : 김성신 박사, 최경환 국장 

 

* 강사 소개

 

김성신 박사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 

서울대에서 화학공학과·전기컴퓨터공학과를 복수전공했다. 이후 2013년 미국 남가주 대학교(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17년부터 IBS에서 선정한 영사이언티스트 펠로우로 선정돼 성균관대학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에서 뇌과학 연구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세상의빛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의 연구실 홈페이지는 http://clmnlab.com 이다.

 

 

** 정회원 가입을 원하실 경우 입회신청서와 후원약정서를 제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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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형 교수의 <창조설 논쟁(creationism)을 넘어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를 듣고

  •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곱셈과 나눗셈이 수학에서 암묵적으로 먼저 계산하는데에 동의하는것처럼

    창세기도 암묵적동의로 넘어가주는 것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아담과 하와의 범죄에서 여성목회자 안수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에는 틀림 없다고 봅니다.

    증인 2020.01.08 23:52

 

김정형 교수의 <창조설 논쟁(creationism)을 넘어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을 듣고

 

2019.12.23 제18회 과신대 콜로퀴움

요약 정리: 송윤강 

 

 

김정형 교수님의 이 강연은 현재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창조론 또는 창조과학과 진화론 사이의 논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흔히 교회에서 ‘창조론’이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창조설(creationism)이다. 김 교수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교리를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이라 불리어야 맞다고 한다.

 

이 둘 사이의 차이는 핵심 질문이 다르다. 창조설은 창조자 하나님을 기본 전제로 한다. 그래서 하나님에서 대하여 질문하지 않는다. 대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의 기원에 대하여 질문을 한다. 이 세계의 역사에 대해 질문하고, 세계가 운행되는 메커니즘에 대하여 질문한다. 그래서 질문은 When과 How이고 과거지향적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 더 나아가 우주가 언제 어떻게 만들었는지 질문하고 있다.

 

반면에 창조론의 핵심 질문은 누가(Who) 왜(Why)이다. '어떤 분이, 어떤 성품을 가진 분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들었느냐'이다. 미래 지향적이고, 이 땅이 아니라 위에 계신 분, 영원하신 하나님이 관심의 대상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은 같은 ‘론’이라는 접미어를 쓰고 있지만 관점이 전혀 다르다. 진화론의 ‘론’은 Theory다. 과학의 논리를 따른다. 반면에 창조론의 ‘론’은 doctrine이다. 신앙의 논리를 따르는 교리(신조)다. 서로 차원이 다른 것이다. 교리의 문법과 과학의 문법은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흔히 창조론과 진화론을 대립시키면서 같은 범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섞이고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창조론, 즉 창조설(creationism) 주장 때문이다. 창조설에서는 ‘창조자 하나님을 믿습니다’를 전제로 하여 이 세상을 설명하려고 한다. 그래서 관심 영역이 과학의 영역과 중첩된다. 과학자가 관심이 있는 영역은 이 세상, 지구의 과거 역사와 우주와 생명의 기원과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창조설에서도 이러한 과학의 영역에 대하여 공통적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창조신앙과 과학이 섞이는 혼동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설의 역사는 매우 짧다. 특히 창조과학의 역사는 100년 정도이며 본격적으로는 1960년대에 시작했다. 그러나 창조론의 역사는 2000년이 넘는다. 구약시대까지 포함하면 3000년이 넘는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창조론을 믿는다. 그러나 창조설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견해가 가능하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란이 되고 이 수정란으로부터 한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은 매우 신비롭다. 수정란의 세포는 단 하나이다. 그런데 이 단 하나의 세포가 서로 기능이 다른 세포로 분화되어 팔, 다리, 목, 귀, 코, 눈, 뇌가 된다. 그런데 그 신비로운 과정을 과학자들이 밝혀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긍정하면서도 이 아기는 하나님의 작품임을 우리는 믿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언제 이 아기를 만드셨는가? 창조는 한 순간이라면 수정할 때인가? 그러면 하나님은 특별한 기능을 가진 단 하나의 세포만 창조하시고 나머지는 그 메커니즘에 의하여 자동적으로 이루어지게 설계하신 것인가? 하나님은 건강한 한 아기가 태어날 수 있도록 열 달 동안 일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놀라운 지혜로 우리의 생명을 창조하셨고 그 일부를 과학자들이 밝힌 것이다.

 

우리는 과학의 발전을 긍정하면서 얼마든지 아기는 하나님의 작품으로 믿을 수 있다. 이처럼 과학과 창조론은 서로 차원이 다르다. 서로 섞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과학의 발견을 통하여 창조 신앙을 깊고 넓게 확장하여 풍성하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과학혁명 시대가 아니라 과학 시대를 살고 있다. 과학혁명 시대(16~17세기)는 이미 지나간 것이다. 과학혁명의 시대는 기존의 세계관과 새로운 세계관이 충돌하던 시대다. 전문가는 어느 것이 옳은 지 판단할 수 있지만 비전문가는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비전문가는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보수적 입장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때는 보수적 입장을 취해도 용납이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혁명이 끝났다. 이제는 과학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다. 서로 논쟁을 하다 가도 누군가 과학적 사실을 언급하면 거기서 논쟁이 종결된다.

 

현대과학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이야기한다. 빅뱅을 탐구하고 있고, 지구의 탄생, 자연선택, 복잡한 생명체 탄생, 인류의 탄생, 인류의 문명과 미래를 이야기한다. 이제는 자연 과학을 넘어 일반 역사를 포괄하는 ‘빅 히스토리 Big History’를 말하고 있다. 이런 시대에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여전히 과학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창조설을 가르치려 하고 있다.

 

창조 이야기와 관련된 창세기 1장의 해석은 이미 1600년전 성 어거스틴이 살아 있을 때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때도 과학이 있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과학자들과 대화를 하면서 창세기의 주석을 다섯 번이나 고쳐 썼다. 그만큼 창세기는 어거스틴에게도 해석이 분분하고 어려운 책이었던 것이다. 어거스틴은 다섯 번째 고치면서 이렇게 말했다.

 

“통상적으로 비그리스도인도 땅과 하늘 이 세상의 다른 요소들, 별의 운동과 궤도, 별의 크기와 상대적 위치, 일식과 월식의 예측, 해와 계절의 순환, 동물과 나무와 돌들에 관해서 얼마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며, 이 지식이 이성과 경험으로부터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이때 혹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서의 의미를 제시한다고 하면서 이러한 주제에 대하여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어떤 불신자가 듣게 된다면 그것은 부끄럽고 위험한 일이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보고 무식하다 무지하다 고 조롱하고 경멸하는 그와 같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 관해서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 중에서.

 

그런데 4세기경 성 어거스틴이 문제 의식을 가졌던 이러한 상황이 오늘날 한국교회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어거스틴의 조언에 따라 이러한 당혹스러운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것인가?

 

 

위 그림은 창세기 1장을 문자적 표현에 충실하게 재현한 그림이다. 평편한 지구, 땅 밑에 땅을 받치는 기둥(욥기 38장, 시편 104편)이 있고, 궁창이 있다. 궁창 위에 물이 있다(노아의 방주 때 사라졌다고 한다). 궁창에 창문이 있어 물이 쏟아진다. 해와 달과 별은 궁창 위를 다닌다(궁창 너머가 아니다). 하나님의 위치도 나온다(시 104편). 궁창 위 하늘에 계신다. 성경을 문자 그대로 충실하게 그리면 이런 그림이 나온다.

 

이것을 지금 받아들일 수 있는가? 지금의 상식으로는 창세기의 이러한 그림을 매우 당혹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가 쓰일 당시에는 이러한 세계관을 받아들이기가 어렵지 않았다. 그 시대 사람들의 과학상식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 내용을 하나님의 계시라고 하지 말고, 그 당시의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면 이해하면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시는 그 시대의 상식을 통해서 전달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 시대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춰준 것이다.

 

유치원 수준의 아이에게 탄생을 말해줄 때 난자와 정자가 수정되어 나왔다고 설명하지 않는다. 엄마 배꼽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이것은 말도 안 되는 설명이지만 아이는 믿는다. 아이는 배꼽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다. 엄마 품에서 엄마의 사랑으로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아이는 엄마가 이야기하는 사실이 아니라 진리를 포착한 것이다. 이것이 눈높이 교육의 통찰이다.

 

하나님도 동일한 방식으로 과학의 발전 전에 그 때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그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하나님의 전하고자 하는 진리를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 1장의 주인공은 이러한 그림이 아니다. 주인공은 하나님이다. 세계 모습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주인공을 읽어야 한다.

 

종교개혁가 존 칼빈은 창세기 주석에서 성경에서 천문학이나 고도의 기술을 배우려 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함으로써 마치 성경을 과학 서적처럼 다루는 일에 대해 강력히 경계했다.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자화상을 그리신다. 즉 인간의 지성과 마음의 능력에 적응하신다. 좋은 웅변가는 청중의 한계를 잘 알고 거기에 적응한다. 하나님은 우리 수준으로 오시기 위해 몸을 굽히셨다. 하나님은 때로 입, 눈, 손, 발을 소유하신 분으로 자기를 나타내신다”라고 하였다. 이것을 이해하면 과학적 세계관과 성경의 문자적 내용이 다름에 대하여 그렇게 당혹감을 가질 필요가 없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창조 이야기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창세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의 장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을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이 장르이다. 장르에 따라 읽기 방식이 달라져야 한다. 예를 들어 “내 마음은 호수요”라는 시를 읽으면서 마음 안에 물이 얼마나 있고, 물고기가 얼마나 있느냐 묻는 것은 잘못된 질문이다.

 

창세기는 역사책 과학책이 아니다. 시스타인 성당 천정에 그려져 있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그림을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하얀 긴 수염 기른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이 과연 그런 모습을 가진 분이신가? 하나님은 어떤 형상을 가지신 분이 아니다. 그러면 그러한 묘사는 잘못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예술작품으로 인정한다. 그 그림은 사진이나 사실화가 아니라는 것일 알기 때문이다. 그 그림은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는 고유한 신학적 해석을 전달하는 예술작품이다. 그런데도 이것을 사실로 보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창조설은 기원론의 한 형태이다. 과학과 비슷하게 창조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과학은 세상의 기원에 대하여 하나님 없이 설명한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창조설은 하나님을 전제하고 세상의 기원을 설명한다.

 

과학이 하나님 없이 자연계를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과학이 하나님을 개입시키지 않고 자연계를 설명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개입시키면 과학은 발전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하나님이 화가 나서 일어난다는 식으로 설명하면 지층의 문제를 더 이상 탐구할 필요가 없어진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과학은 하나님을 배제시키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이 그런 과정을 통하여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런데 창조설은 하나님을 전제로 하고 세계를 설명하려다 보니 과학적 결과를 이용하기는 하지만 입장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온다

 

과거에는 평편한 지구, 천동설을 주장하기도 했다. 지금도 지구의 나이는 6000년 밖에 되지 않았다고 젊은 지구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와 2장의 창조 이야기 사이에는 긴 간극이 있다고 ‘간극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또는 창세기의 하루를 나타내는 히브리 원어 ‘욤’이 24시간이 아니라 긴 시대로 보는 ‘날 시대 창조설’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창세기가 과학임을 포기하고 진화론을 어느 정도 수용하는 해석도 있다. ‘점진적 창조설’은 종 내부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종 간의 대진화 인정하지 않는다. 반면에 ‘진화적 창조설’은 대진화까지 인정하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는 젊은 지구 창조설과 진화적 창조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다. 물론 창조과학의 유익이 있다. 과학을 잘 모르면서 문자주의 신앙을 가진 분에게 신앙을 공고히 해준다. 그러나 과학을 아는 사람에게는 말이 안 되기 때문에 복음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데 이러한 다양한 창조설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창조신앙을 가질 수 있다. 창조설 논쟁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다. 창조신앙의 핵심 진리는 창조주 하나님이 누구시고, 왜 이 세상을 만들었는지 이다.

 

그 대답은 사도신경에 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더 많은 교파들이 공통적으로 받아 들이고 있는 니케아 콘스탄티노플 신조에는 “우리는 전능하신 아버지, 한 분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 그리고 하늘과 땅 눈에 보이는 것과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만드신 창조자임을 믿습니다.”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것을 요약하면 세 가지를 뽑을 수 있다.

1)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 하나님: 세속주의와 모든 우상에 맞서는 유일하신 신으로 인정한다.

2)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믿는다

3) 천지의 창조자: 자연은 하나님이 소중하게 만드신 작품이다. 함부로 다루면 안 된다. 이것이 창조신앙이다. 영혼 구원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세 가지는 창조설 입장이 달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기본적인 신학의 토대다. 창조설 논쟁에 빠져서 이 중요한 진리를 간과하면 안 된다. 이것이 창조설을 넘어서는 신앙이다.

 

 

과학을 받아들여도 창조신앙이 위협받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의 발견이 믿음을 더욱 풍성하게 할 수 있다. 과학자가 밝히는 과학의 규칙을 받아들이면 신실하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새로운 발견(입자, 행성, 별, 생명…)을 통하여 우주를 만들고 역사에 관여하면서 매일 새로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아름다운 우주의 모습을 탐구하면서 그 속에서 드러나면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과학과 신학이 충돌하지 않고 서로 확증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이 생명의 의미나 인생의 목적에 대한 답을 줄 수 없다. 무신론은 우연이고, 목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유신론의 입장에서는 모든 자연만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이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또 과학을 품으면 더 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지구를 넘어서는 하나님, 160억년 우주보다 큰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생명의 탐구를 통하여 생명의 경이에 감탄하면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의 한 없는 깊이를 느낀다. 과학이 발전한다고 신비가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을 통하여 더 많은 더 큰 새로운 신비가 느껴진다.

 

한국 기독교가 인간의 진화에 대하여 매우 보수적 입장이다. 진화론이 무신론을 함축한다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생명의 역사 생명의 메커니즘에서 결코 하나님이 배제되지 않는다. 진화론은 무신론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논리적 필연 관계가 없다. 도킨스 같은 사람은 진화론이 무신론의 근거가 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다. ‘하나님 없이 연구하는 것’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은 매우 다른 것이다. ‘방법론적 자연주의’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형이상학적 자연주의와 다른 것이며 진화론은 종교적으로는 중립이다. 진화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다. 과학적 탐구를 알고 배우고 지식으로 습득하는 것이다. 진화론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까지만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며 결코 과학으로 밝힐 수 있는 분이 아니다.

 

그러면 진화론에서 인간의 출현과 인간의 탄생에 대한 창세기의 이야기는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인가?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도 이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당시 기독교인 뿐 아니라 일반인도 반발했다. 일반인도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모든 종을 하나하나 특별하게 순간적으로 독립적으로 완성된 형태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랜 시간을 걸려서 간접 창조도 하신다. 창세기에서도 하나님이 직접 식물을 하나하나 따로따로 만들지 않으셨고, 하나님은 땅 보고 내라고 명령하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과정을 창조하실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가 창조신앙의 핵심이 아니다. ‘왜 나를 만드셨는가’가 핵심 질문이다. 과학자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창조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지 않는다.

 

창세기 언어를 다큐멘터리의 언어로 이해하면 안 된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과정을 보면 하나님이 토기장이처럼 묘사되고 있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는 하나님’.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하여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마치 사람의 모습처럼 묘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러므로 창세기의 이야기를 절대 과학적 언어로 이해하면 안 되는 것이다. 과학과 같이 언급되는 순간 그 의미가 왜곡된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제18회 콜로퀴움 "창조설을 넘어 창조론으로"

 

창조설(creationism)을 넘어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과학 시대를 맞이해 자신의 신앙이 무너질까 걱정하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할까? 창조에 대한 다양한 입장 중에서 어느 것이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부합하는 것일까? 이런 걱정과 고민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최근 『창조론: 과학 시대 창조 신앙』(새물결플러스, 2019)을 출간한 김정형 교수님을 모시고 다양한 창조설을 넘어 성서의 본래적 메시지와 기독교 전통에 충실한 ‘창조론’을 소개받습니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영상 링크는 12월 24일 오후에 이메일을 통해 보내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12월 23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등록비: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5,000원 (청소년은 무료)
* 과신대 정회원은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모두 무료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창조설을 넘어 창조론으로" (김정형 교수)

     휴식(8:20-8:30)  
2부 대담(8:30-9:30) 패널: 김정형 교수, 우종학 교수

 

 

강사 소개

 

김정형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했으며(M.Div.), 미국 버클리 연합신학대학원(GTU)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Ph.D.). 2010년 국제과학종교학회(ISSR)에서 주최한 존 폴킹혼 80세 기념 국제논문대회에서 공동대상을 수상했으며, 이 논문을 토대로 이듬해 기독교 종말론과 과학적 우주론 간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논문을 완성했다. 지금은 장로회신학대학교 연구지원처 조교수로 일하면서, 여러 대학과 교회 및 기관의 초청으로 하나님 나라 신학, 창조론, 신학과 과학 등을 강의해오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분단 한국을 위한 평화의 신학』(나눔사, 2015), 『예수님의 눈물』(복있는사람, 출간 예정) 등이 있고, 공역서로는 『몰트만의 신학』(크리스천헤럴드, 2008),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동연, 2015) 등이 있으며, 현재 블로그 ‘온돌왕자의 God-Talk’를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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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아담 해석, 어떻게 해야 할까?

 

제17회 과신대 콜로퀴움 "바울의 아담 해석"을 듣고

 

요약정리: 최경환

 

 

'바울의 아담 해석'이라는 주제는 신약학, 그중에서도 바울신학에서는 그리 주목을 받은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주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권연경 교수님 역시 이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고 하네요. 1시간이 넘게 열강을 해주신 권연경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주제가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인류의 기원과 아담의 역사성 문제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해서 언급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고, 만약 아담의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신자의 구원도 흔들리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종적 보루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의 아담 해석'이라는 주제는 신약학, 그중에서도 바울신학에서는 그리 주목을 받은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주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고, 권연경 교수님 역시 이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고 하네요. 1시간이 넘게 열강을 해주신 권연경 교수님의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겠습니다. 

 

 

지금 이 주제가 다시 부각되는 이유는 오늘날 과학에서 말하는 인류의 기원과 아담의 역사성 문제가 대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중에서 바울이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비해서 언급한 부분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고, 만약 아담의 역사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신자의 구원도 흔들리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최종적 보루라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죄와 죽음의 기원이 허구라면, 이를 해결하는 그리스도의 복음 역시 허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합니다. 그런데 바울의 설명이 진실이라면 오늘날 진화론적인 설명은 사실이 될 수 없습니다. 오늘날 과학의 설명이 맞든지 아니면 바울의 설명이 맞든지.

 

이 두 설명 체계의 통합이 불가능하다고 한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바울의 아담 해석은 유연하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역사적 아담을 포기해도 바울의 그리스도 복음은 훼손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우리는 바울의 아담 해석을 그 당시의 문화적 한계이자 시대적 한계로 설명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아담의 실존 여부와 상관없이 죄와 죽음의 실존을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피터 엔즈는 <아담의 진화>(CLC, 2014)에서 바울의 복음은 역사적 아담 없이도 가능한지를 탐구합니다. 결국 논의의 쟁점은 바울의 설명을 부분적으로라도 부정하는 성경 해석이 타당한가로 좁혀집니다. 바울이 자신의 논의를 전개하기 위해 끌어온 아담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역시 늘 논의되는 이야기로 어디까지가 성경의 권위이고 어디까지가 문화적 상대성이냐는 물음과도 연관됩니다. 

 

권연경 교수님은 바울이 아담을 언급하지 않고서 죄와 죽음을 언급하는 본문들을 살펴보면서, 아담과 죽음이 반드시 필연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갈라디아서의 경우, 죄는 율법과 연결되고, 로마서 1장이나 에베소서 2장의 경우도 죄와 죄책을 언급하는 본문에서 아담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말하기 위해 아담이 반드시 동원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대속적인 설명 부분에서도 성경에서 그것을 아담의 죄와 연결하는 부분은 없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본문으로는 고전 11:1-16과 딤전 2:12-15이 있는데, 두 본문 모두 바울은 창세기를 독창적으로 해석함으로써 자기만의 주장을 펼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남성과 여성의 차별에 대한 바울의 주장을 그저 오늘날에는 전혀 설득력이 없는 말로 무시합니다. 이 두 본문은 바울의 명시적 권고였는대도 말이죠. 그렇다면 바울이 아담을 언급한 부분은 복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일까요? 아니면 문화적 산물일까요? 

 

바울의 아담 해석은 고전 15장과 롬 5장에 본격적으로 등장합니다. 고전 15장에서는 아담의 몸과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대조하면서 이야기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몸과 둘째 사람 그리스도의 몸이 대조를 이루면서 그려집니다. 롬 5장에서는 "한 사람"의 비극적인 행위가 어떻게 "모든 사람"의 죽음으로 연결되는지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아담의 행위와 죄와 죽음의 관계가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한 사람"과 "모든 사람"이라는 대조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개인의 행위가 전 세계적인 파장을 가져왔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결국 이는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면서 권연경 교수님은 다음과 같은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1. 바울은 역사적 아담의 존재를 당연한 것으로 전제했다.

2. 바울은 다양한 목적으로 아담(하와)을 언급한다.

3. 바울은 아담과 죄와 죽음을, 혹은 아담과 죽음을 연결하고, 그리스도께서 이 죄와 죽음을 해결하신다고 말한다.

4. 하지만 죽음이 항상 죄의 결과로 제시되는 아니다. 죄 이야기 없이 죽음과 부활이 대조되기도 하고, 죽음이 피조적 존재 자체의 본질인 것처럼 나타나기도 한다.

5. 아담/그리스도의 대조는 한 행동의 전 세계적 파장을 부각하기 위한 것이다.

6. 아담이 죄와 죽음의 원인이지만, 아담이나 모든 사람의 “죄책”이 바울의 관심은 아니다.

7. 바울은 아담이 야기한 죄의 통치와 그리스도께서 가져다준 은혜의 통치를 대조한다.

8. 바울의 당면 관심은 이 통치 개념을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을 해명하는 데 있다.

9. 바울에게서 복음의 피는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역사적 아담이라는 살점 한 파운드를 잘라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보다 구체적인 탐구와 치밀한 사색을 필요로 한다. 여기에는 바울 외, 다른 신약 저자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방식을 숙고하는 것도 중요할 것이다.

 

 

2부 대담 시간에는 민경구 교수님과 함께 구약과 신약에서 아담이 어떻게 묘사되고 있으며, 원죄 개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민감한 주제여서 그런지 약간의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도 있었지만, 정직하고 진솔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문제를 풀어가려는 진지한 태도가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성서학과 신학은 철학이나 사회학 혹은 종교학과 같은 인접 인문학과의 대화 혹은 대응을 통해 그 내용을 재구성하는 작업을 많이 했다면, 앞으로는 과학이 더욱 중요한 대화의 파트너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현대 과학은 발전과 도전은 신학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끼치고, 기존의 교리와 가치에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역사성 논쟁뿐 아니라 인간론, 기독론, 종말론 등 다양한 기독교 교리가 이제 새롭게 재구성되어야 할 운명에 처했습니다. 이 도전이 두려워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직하게 직면하고 어떻게 우리의 전통과 신학을 해석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앞으로 과신대도 성서학자들과의 공동 작업을 통해 성서를 새롭게 읽고 해석하는 해석 공동체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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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콜로퀴움] 바울의 아담 해석: 죄의 기원에 대한 신약의 목소리

 

바울의 아담 해석

: 죄의 기원에 대한 신약의 목소리

 

아담의 역사성 논쟁에서 빠짐없이 제기되는 질문은 바로 신약성서에서는 아담을 역사적인 인물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은 아담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죄가 들어왔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온인류가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는데, 만약 아담의 역사성이 부인된다면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도 무너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논쟁점은 과역 바울이 이해한 아담의 죄는 무엇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과연 무엇이었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이번 콜로퀴움에서는 신약성서가 말하는 죄의 기원과 기독교 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11월 11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등록비: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5,000원 (청소년은 무료)
* 과신대 정회원은 현장 수강, 온라인 수강 모두 무료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바울의 아담 해석" (권연경 교수)

     휴식(8:20-8:30)  
2부 대담(8:30-9:30) 패널: 권연경 교수, 우종학 교수

 

 

강사 소개

 

권연경 교수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풀러 신학교(M.Div.)와 예일 대학교 신학부(S.T.M.)를 거쳐 런던 대학교 킹스 칼리지에서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이자,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연구위원을 맡고 있다.

저서 : 「로마서 산책」(복있는사람), 「행위 없는 구원」(SFC출판부), 「네가 읽는 것을 깨닫느뇨」(SFC출판부), 「갈라디아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성서유니온선교회),「일상,부활을 살다」(복있는사람), 「로마서 13장 다시읽기」(뉴스앤조이),「갈라디아서 산책」(복있는 사람), 「위선」(IVP), 공저 : 「한국교회, 개혁의 길을 묻다」(새물결플러스), 공역 : 「IVP 성경신학사전」(IVP), 「예수의 정치학」(IVP), 역서 : 「기독교와 문학」(크리스챤다이제스트) , 「고린도전서」(SFC출판부)

 

 

패널 소개

 

우종학 교수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 거대 블랙홀과 은하 진화를 연구하는 천문학자. 연세대학교 천문학과를 졸업하고, 예일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산타바버라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UCLA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미 항공우주국(NASA) 허블 펠로십(Hubble Fellowship), 한국천문학회 학술상을 수상했다. 〈천체물리학 저널〉 등 국제 학술지에 약 100여 편의 논문을 게재했고, 연구 이외에도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강연과 저술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를 새롭게 조명하며 연구하고 교육하는 단체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설립해 대표를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블랙홀 교향곡》을 비롯하여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대화》 (공저) 《기원》 (공저)이 있고, 《현대과학과 기독교의 논쟁》 《쿼크, 카오스 그리고 기독교》 《우주의 본질》 (공역)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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