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과신대 교사팀 모임 안내

 

2020년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과신대 교사팀 모임을 소개합니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오전에 모이는

과신대 교사 모임은

백우인 선생님께서 운영하시는

카페 '거기'에서 모입니다.

 

2020년부터는 선생님들께서 자신의 전공 과목을

중심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교수법을 발표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성경적인 창조론을

가르칠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면서 이야기 꽃을 피울 예정입니다.

자문위원 교수님들도 함께 할 예정입니다.

 

모임 일정은 아래와 같습니다. 

 

날짜

주제

발표자

1월 18일

창조에 대한 다양한 견해 분석

서광 선생님

2월 15일

(특강) 교회학교 교육을 위한 제안 

조성호 교수님

3월 21일

과학과 신앙의 관계

구형규 선생님

4월 18일

우주의 기원

정종명 선생님

5월 16일

진화와 창조

윤세진 선생님

6월 20일

(특강) 인류의 삶 터인 지구

이문원 교수님

7월 18일

과학이란 무엇일까?

서광 선생님

9월 19일

창세기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백우인 선생님

10월 17일

창조론 성경공부 교재 연구

전희경 선생님

11월 21일

초등학생을 위한 창조론 교수법

김예지 선생님

12월 19일

송년 모임

전체 교사

 

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시는 선생님들은

언제든지 모임에 함께 참여할 수 있으니

저희 사무국으로 연락 주세요.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갈 길을 가 보자!

  • 와우 저도 이같은 고민을 하고 이곳에 찾아왔는데
    좋은 정보를 주시니 감사합니다!.
    창조가 단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닌 창조의 역사가 지속되는 것으로 보고있네요. 혹은 재창조라고 말해도 괜찮을까 싶습니다.
    저에게도 희망이 생깁니다.

    증인 2020.01.08 23:24

 

김정형 | 창조론-과학시대 창조신앙 | 새물결플러스 | 2019

 

전희경 (과신대 교사팀)

 

 

창조론에 대하여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 밴쿠버 기독교 세계관 대학원에서 3년간 공부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과학자와 신학자의 자리가 아니라 과학 교사의 자리에서 저의 역할을 잘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올해 8월 한국에 귀국했습니다. 한국의 학교와 교회에서 기독교 세계관을 기반으로 한 과학교육과 교회교육을 하겠다는 사명을 안고 말이죠.


3년 만에 귀국한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의 모습은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양극단으로 심하게 양분되어 있었습니다. 교회 역시 양극단으로 나뉜 채, 말씀 안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오히려 세상과 담을 쌓고, 교회만을 위한 사역을 강화하는 전략을 취하는 듯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나름 생존하려고 저항과 평안을 오가며 균형을 잡으려고 긴장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내 몸과 맘이 유학생활 때와는 또 다른 힘듦으로 고생을 하고 있구나… 이것은 한국 생활 재적응 중이겠지… 인생은 늘 적응이구나…’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습니다. 


교회의 선배, 후배, 친구들이 한 사람씩 저에게 찾아와 물어봅니다. 공부하고 온 것이 무엇이며, 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과학교육을 해야 하는지, 교회에서 궁금하고 답답했던 것, 교회의 문제점도 주저리 이야기합니다. 다들 나름 훌륭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인데, 순수하면서도 묵직하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인데, 3년 만에 만난 우리의 교회는 너무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변함없음’은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더군요. 그리고 교회의 주일학교와 사역자님들의 ‘창조론’에 대한 이분법적인 프레임과 ‘타락-구속’의 강조는 여전했으며, 그 벽의 두께는 제 생각보다 훨씬 더 두껍다는 것을 실감하기도 했습니다.


‘그래, 아자 아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갈 길을 가 보자.’

 

2020년에는 교회에서 중등부 교사와 교육위원회로 봉사하기로 했습니다. 중등부 담당 목사님과 선생님들이 ‘창조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물어도 보고 도움도 요청하셨습니다. 전 뭐가 신이 나는지 블라블라 저의 생각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괜스레 조심스러워도 합니다. 교회는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걸까요? 이런 변화의 바람을 기대하면서도 의심스러워할 때 김정형 교수님의 <창조론-과학시대 창조신앙>을 알게 되었고, 읽게 됐습니다.

 

 

먼저 이 책의 저자가 한국인 신학자라서 좋았습니다. 북미와 유럽의 유명한 신학자의 책이 아닌 한국인 신학자의 책이라서 반가웠습니다. 한국교회의 문화를 알고 한국 신학적 시각에서 풀어내는 이야기가 궁금하기도 했고 기대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이 책의 저자 김정형 교수는 <창조론- 과학시대 창조신앙>에서 창조론에 대한 용어들을 먼저 정리하고, 자신이 창조론에 대해 풀어나갈 이야기가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출발함을 밝힙니다. 그리고 이 책은 ‘창조-진화의 논쟁’이나 ‘창조의 기원과 시기’를 말하는 창조론이 아님을 말하였다. ‘창조론’을 ‘The doctrine of Creation’으로 표현하고, 이는 조직신학의 한 범주라고 말합니다. 창조와 진화에 대한 견해라든가 창조의 기원과 방식에 관한 창조론은 ‘창조설(Creation)’이라 명명하고, 이를 신학 교리인 창조론(The doctrine of Creation)과 구분합니다. 창조론은 엄연한 신학이기에 창조론과 창조설은 논하는 범주가 다름을 강조합니다. 한국교회에서 창조론이라고 하면 창조설, 특히 창조과학과 동일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오해를 지적하고, 창조론의 신학적 의미가 축소되거나 생략되고 있는 교회 현실을 안타까워합니다.


“창조론은 창조-계속 창조-새 창조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창조론이란 삼위일체 하나님이 과거에 세상과 만물을 창조하셨고, 현재도 살아계셔서 다스리고 계시며, 미래에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다시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이 세상을 새 하늘 새 땅으로 새 창조 하신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과거에 한 번에 이룬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역사하시고 미래에도 역사하시고 완성될 큰 프로젝트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과학혁명의 시대를 거치고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교회는 고대 근동의 과학관을 가지고 성서를 해석하는 창조설을 붙잡기보다 기독교 정통주의 창조 신학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현대과학이론은 포용하고 현대과학주의는 비판하면서 기독교 창조신학을 더 풍성하게 정립해 나가자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하나님의 창조 프로젝트’는 크리스토퍼 라이트가 말하는 ‘창조-타락-약속-십자가-미션-심판-새 창조’라는 7막의 드라마 성경 이야기와 김홍전 목사님이 주장하는 ‘하나님의 뜻과 경륜을 따라 하나님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 사상과 맥을 같이 하는 것 같습니다. 그 통합의 깨달음이 저는 기뻤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시대를 따라, 시대를 거친, 그리스도인들을 통해 드러나게 하시고, 풍성하게 알게 하신다는 것 말이죠. 창조론을 창조 프로젝트로,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완성으로 그려낸 김정형 교수님의 신학적 통찰이 놀라웠으며 큰 울림을 줬습니다. 


이 책에서 특별히 흥미로운 부분은 과학이론, 진화이론, 생물과학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과학 이론을 신학적으로 해석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과학책을 과학적 사고로 읽어 내려가듯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학이론에 대하여, 진화이론에 대하여, 두려워하거나 무관심하지 말고 제대로 보자는 것이죠. 이 과학이론들의 내용이 무엇이며, 과연 이 이론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반하는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오랜만에 생물학 책을 만났고,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 말하는 진화이론을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리고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저자는 그리스도인들도 현대 과학이론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진화이론은 하나님의 창조를 반대하는 것도, 신앙을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화이론은 생명의 적응과 변화, 그리고 다양성을 말하는 과학이론일 뿐입니다. 

 

 

이 책을 읽어가면서 창조론에 대한 통찰과 재미에 빠져 있다가도 머리 한 구석으로는 계속 한국교회 현실을 생각했습니다. 창조 신학은커녕 창조연대와 창조 방식에 집착하는 교회, 창조설(창조과학)이 전부이고 다른 의견은 위험한 견해로 보고 있는 현실 말입니다. 저는 한국교회에서 그동안 창조과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현대 과학에 무관심해진 것이 결국 창조론에 대한 오해와 무지를 가져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제 교회의 창조론 교육은 눈높이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조론에 대한 오해와 이해의 측면에서 교회 내의 세대 간 특징에 맞게 눈높이 교육이 실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전략적이고 실제적인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창조설을 주장하기보다는 다양한 창조설이 있다는 것을 알기고, 진화 이론과 진화주의 구분하고, 과학과 신학에 관심 갖기 정도의 학습목표를 잡고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시간은 오래 걸린다는 것을 미리 각오하고 말이죠. 그래도 천천히 그리고 재미있게 해보려고 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사무국 소식 202001

연말연초는 헤어짐과 만남의 시간입니다.

2020년 새해를 시작하며 과신대 사무국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희 과신대와 오랜 시간 함께했던

이진호 간사님이 퇴사를 했습니다. 

 

대학원 마지막 학기이고 졸업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끝까지 잘 마무리하길 바랍니다.

퇴사 선물(?)로 최경환 간사가 누스바움의 <인간성 수업>이라는 책을 선물했습니다.^^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거겠죠.

새롭게 과신대를 섬겨주실 두 분의 간사님을 소개합니다. 

장민혁 행정간사님과 이슬기 미디어간사님입니다.

두 분의 간사님께서 2020년에 사무국에서 함께 일하게 됐습니다.

 

최경환 실장님은 사무국장으로 직책을 바꿔

사무국을 더욱 안정적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여러분의 많은 응원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장민혁 행정간사님
이슬기 미디어 간사님

 

교사팀에서도 2019년 모임을 마무리하고

2020년 모임을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2020년 교사 모임은 선생님들께서 자신의 전공을 학생들에게

잘 전달하기 위한 전략과 방안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관심 있는 과학 선생님들은 주저하지 마시고

꼭 참석해주세요.

조만간 구체적인 안내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교사팀에서 이번 방학부터

교회학교 어린이부와 청소년부를 위한 과학 특강을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교회에서 겨울성경학교나 수련회를 진행할 때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특강을 부탁하실 일이 있으면

저희 과신대 사무국으로 연락 주세요.

과신대 교사팀에서 교회 상황에 맞게 특강을 해드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클릭해주세요.

https://www.scitheo.org/466

 

 

지난 1년 동안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해 주신

백우인, 손민아, 심기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매월 과신대뷰 발행을 위해 애써주셔서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2020년에는 새로운 기자단이 활동을 합니다.

이번에는 6명이 기자단으로 활동해주시기로 했습니다.

새로운 기자님의 활약과 활동을 기대합니다.

 

 

지난 몇 달간 저희 과신대에서 고 심왕찬 선생님 유가족을 위한

주택자금을 모금했는데,

많은 분이 동참해주셔서 애초에 예상했던 금액을 거의 모았습니다.

지금까지 198명이 동참해 주셔서

총 29,710,604원이 모금됐습니다.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도움의 손길을 보내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들의 소중한 후원금을

유가족에게 잘 전달해드리겠습니다.

 

 

과신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1. 2020년 한 해도 주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과신대 사역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사무국이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과신대를 도와줄 도움의 손길도 많이 보내주시길 기도해주세요.

 

2. 한국교회가 신앙과 이성이 조화를 이루는 건강한 공동체로 거듭나도록 기도해주세요. 창조주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고백과 그분의 창조 세계를 탐구하고 알아가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주세요.

 

3. 과신대를 섬기는 분들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과신대 교사팀으로, 기자단으로, 연구팀으로, 북클럽지기로 섬기는 분들이 기쁨과 감사함으로 봉사하고 많은 이들을 선한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7. 과학지식의 틈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일까요?

  • 과학지식의 틈이 하나님이라고 하는게 위험하다는데에 동의합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을 빛이라 한줄로 알고 있습니다.

    문이라고도 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증인 2020.01.08 23:34

 

과학지식의 틈이 하나님을 증거 하는 것일까요?
Are gaps in scientific knowledge evidence for God?

 

 

과학의 모든 분야에는 풀리지 않은 질문들이 있고, 우리들의 이해에도 틈새가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전형적으로 이런 것들을 열린 연구 질문이라고 봅니다. 다른 이들은 종종, 과학이 어떤 사건이 일어난 방법을 설명할 수 없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한 주장을 "틈새의 신"(god-of-the-gaps) 주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이 위험한 이유는 과학이 항상 발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과학 지식의 틈새가 하나님을 믿는 근거가 된다면, 과학자들이 그 간격을 채우게 될 때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성경의 하나님은 그 틈새의 신보다 더 크십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은 과학이 설명할 수 있는 영역뿐 아니라, 틈새의 영역이 있는 자연세계에서도 항상 일하신다고 믿습니다.

 

 

틈새의 신 정의하기

 

틈새의 신 주장은 과학적 설명에서의 빈 틈을 신의 역사와 그에 따른 신의 존재에 대한 지표 혹은 증거로 사용합니다. 그러한 주장은 과학이 아직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대해서 자연적이고 과학적인 원인 대신 신의 역사를 상정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정은 만약 어떤 일이 일어난 이유를 과학이 설명해내지 못한다면, 신이 반드시 그에 대한 설명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의 역사나 존재에 대해 틈새의 신 주장을 사용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미래의 과학적 발견을 부인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지속적인 발전과 함께 틈새의 신 설명은 종종 자연적인 메커니즘으로 대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장이 변명의 도구로 이용될 때, 과학연구는 불필요하게 신에 대한 믿음과 상충될 수 있습니다. 최근의 지적설계 운동은 이 문제를 집중 조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눈이나 박테리아 편모의 환원불가능한 복잡성과 같은 특정한 지적설계 주장은 새로운 과학적 발견에 의해 급속도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틈새의 신 설명하기

 

아이작 뉴턴과 피에르 사이몬 드 라플라스의 익숙한 이야기는 틈새의 신 논쟁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뉴턴은 중력을 설명하기 위한 수학 방정식을 고안하여 탁월한 정확도로 행성의 움직임을 설명하고 예측했습니다. 연필과 종이를 사용하면 태양과 행성 궤도를 매우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행성들은 태양뿐 아니라 행성들 상호 간의 중력에도 영향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태양 주위의 궤도에서 화성을 지나칠 때, 화성과 지구 사이에는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중력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이 작은 행성 간 상호작용이 종종 발생하기 때문에 - 많은 경우에는 일 년에 여러 차례 - 뉴턴은 이러한 중력 섭동이 축적되면 천천히 태양계 질서에 엄청난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저런 파괴적인 힘에 대응하기 위해 뉴턴은 하나님께서 가끔 태양계를 조정하고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개입하셔야만 할 거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따라서 태양계의 지속적인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의 정기적인 특별 조치가 필요했다고 보았던 것입니다.

 

뉴턴은 또한 행성들이 모두 태양 주위를 같은 방향과 같은 평면에서 어떻게 돌고 있는지 설명하기 위해 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중력이론은 태양을 향하여 어떤 각도로 기울어지든지 상관없이 모든 행성의 운동과 완전히 양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발견한 것과 거리가 멀었습니다. 행성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며, 거의 모든 궤도가 같은 평면에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은 트랙 위에서 달리는 선수처럼 태양 주위를 돕니다. 뉴턴은 오직 하나님만이 우아하게 이런 일들을 가능하게 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6개의 기본 행성은 태양을 중심으로 거의 원 궤도를 그리며, 같은 방향으로, 거의 같은 평면에서 돌고 있다. […] 그러나 단순한 기계적 원인이 규칙적인 수많은 움직임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 태양, 행성 및 혜성의 가장 아름다운 시스템은 지적이고 강력한 존재의 간섭과 통치로부터만 진행될 수 있다.

Sir Isaac Newton, Isaac Newton’s Philosophiae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comp. and ed. Alexandre Koyre and I. Bernard Cohen, rev. ed. (Lond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2).

 

이 두 가지 예에서 - 하나는 행성의 계속되는 운동과 관련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움직임의 기원에 관한 것 - 뉴턴은 교과서처럼 틈새의 신 추론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많은 설명을 해내기 위해 과학이론을 제안했었고, 그러고도 설명되지 않았던 틈새를 메우기 위해 신을 차용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뉴턴이 두 가지 모두에서 틀렸다는 것을 압니다. 행성이 경험하는 중력섭동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거의 평균 영점으로 균형이 맞춰집니다. 최종 결론은 행성 운동이 극도로 안정적이라는 사실입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정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밝혀낸 것은 뉴턴의 이론을 간단하게 응용한 것이기도 합니다. 뉴턴은 그의 직감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모든 계산을 했던 게 아니었습니다. 행성의 질서정연한 움직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뉴턴은 태양계가 어떻게 스스로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는지 또는 자연적으로 형성되는 시스템에서 행성운동이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습니다. 단순히 천문학이 이 지점까지 발전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뉴턴 이후 수십 년 동안 천문학자들은 태양계가 회전하는 물질의 큰 성간 구름으로부터 자연적으로 형성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크고 천천히 회전하는 성간 구름은 그 자체의 중력 아래에서 붕괴되고, 팬케이크와 같은 것으로 평평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토성의 고리는 성간 구름의 잔재가 여전히 남아 존재하는 흥미로운 예입니다. 물질은 팬케이크의 평면에서 큰 덩어리들로 모여지게 됩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동일한 평면에서 동일한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든 덩어리들의 집합이 존재하게 됩니다 - 마치 우리 태양계처럼 말이지요.

 

과학사에서 그러한 에피소드는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사실 그 에피소드들은 아주 일반적이어서 과학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자연현상에 신을 끌어들여서 설명하는 과정을 통칭하기 위해 틈새의 신이라는 문구가 만들어졌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행정부에서 관료를 지낸 프랑스의 수학자 피에르 사이몬 드 라플라스와 관련된 상황에 의해서 그러한 틈새의 신 추론의 위험이 뉴턴 이후 한 세기 동안 집중 조명되었습니다. 라플라스는 뉴턴의 운동법칙을 정교하게 다듬고 확장했으며, 우주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바라보는 눈을 확대하는 데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인 시대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신의 간섭을 불러들이지 않고도 우주의 역학을 설명하는 폭넓은 텍스트를 쓸 수 있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라플라스는 자신의 이론에서 신의 부재에 관해서 나폴레옹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라플라스, 그들은 당신이 우주의 시스템에 대하여 이 거대한 책을 썼으며, 창조주에 대해서는 언급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라플라스의 대답은 유명합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그 가설이 필요 없습니다." 물론, 신은 여전히 우주의 존재에 대한 가설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뉴턴은 과학적 설명의 결함을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으로 사용했기 때문에 라플라스의 이론은 당시의 유신론적(?) 변증법에 불필요한 타격을 가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엔 위험이 있습니다. 만약 과학지식의 틈새가 신의 존재에 대한 논증으로 사용된다면, 과학이 발전해서 그 부족한 설명의 틈을 메우게 될 땐 무슨 일이 벌어지겠습니까?

 

 

신을 향한 포인터: 미세조정과 도덕률

 

'신의 언어'의 첫 번째와 세 번째 챕터에서 프랜시스 콜린스 박사는 자신의 신앙의 여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신 하나님을 향한 포인터를 언급합니다. 이 포인터 중 하나는 우주의 미세조정입니다. 미세조정은 물리학의 기본법칙이 정교하게 삶에서 균형 잡힌 것처럼 보이는 방식을 나타냅니다. 이 정밀도는 과학이 제공할 수 없는 설명을 요구합니다. 미세조정의 의미에 대한 열띤 논쟁이 있는데, 일부 비평가들은 하나님을 미세조정자로 불러들이는 것이 틈새의 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과학 안에서는 자연법칙의 상세한 특성을 설명하는 어떤 방법도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미세조정 논쟁은 과학을 넘어서서, 과학이 연구하는 세계가 왜 그러한 특성을 가지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형이상학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콜린스가 언급한 또 다른 포인터는, C. S. 루이스를 따른 도덕률입니다. 도덕률은 인류에 대한 암묵적이고 보편적인 윤리 기준입니다. 콜린스는 도덕률을 중력과 같은 법칙과는 달리 아주 빈번하게 위반되어지는 보편적인 법으로 묘사합니다. 전반적으로 도덕률은 진화의 산물에서 기대되는 행동유형과 일치합니다. 그러나 콜린스가 지적한 것처럼 이타적인 행동은 종종 가장 잘 확립된 다윈의 진화 과정으로부터 기대되는 것을 훌쩍 넘어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틴 노왁과 같은 이론가들에 의해 개발된 수학적 모델은 자연선택이 이타성을 위한 유전자를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지만, 캘커타의 마더 테레사와 같은 위대한 성인들의 급진적인 자기희생은 그 모델이 설명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기원에 대한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설명도 현재 우리가 관찰하는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기에는 불충분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진화심리학이 인간의 도덕성을 설명할 수 있거나, 이론물리학이 그러한 완벽한 자연 상수를 설명할 수 있다면, 유신론적 변증법은 어떤 식으로든 신용을 잃게 되지 않을까요?

 

 

번역: 김영웅 박사 (미국 City of Hope Staff Scientist, 과신대 정회원)
감수: 강상훈 교수 (미국 베일러대학교 생물학과, 과신대 자문위원)

 

과신대는 바이오로고스(Biologos)의 허가를 받아 홈페이지에 올라온 Common Questions를 번역해서 소개합니다. 바이오로고스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추구하는 미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단체입니다. 이 코너를 통해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원문: https://biologos.org/common-questions/are-gaps-in-scientific-knowledge-evidence-for-god)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정회원 최승주, 최승진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 훌륭하십니다!.
    그동안의 겪었을 고통이 상당히 크셨을 줄로 아는데 다행인줄로 압니다.

    증인 2020.01.08 23:19
과신대 정회원이신 최승주, 최승진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네, 맞습니다. 두 분은 쌍둥이 자매입니다. 언니 최승주님이 먼저 과신대 정회원이 되시고, 얼마 전에 동생 최승진님도 정회원에 가입하셔서 두 분을 만나 뵙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두 분 모두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셨더군요.) 

 

 

1. 과신대 정회원들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승주: 저는 천안에서 살면서 세 아이를 키우고 있는 최승주입니다. 엄마이자 아내이자 개척교회 목사님의 장녀이자 사회복지학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 학생입니다. 과신대는 4년 전쯤 교회에서 진행하는 창세기 성경공부를 통해 알게 됐습니다. 그때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때 과신대에 대해서 알게 됐습니다. 그때 너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창세기가 과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니 이전 믿음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죠. 그 이후로 과신대를 알게 되어 꾸준히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승진: 저는 최승진입니다. 언니를 통해서 과신대를 소개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시간이 없어서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과신대를 통해 공부를 해 보니 제가 가지고 있던 괴리가 해결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저는 휴직 중인 교사입니다. 남편과 함께 잠깐 서울에 올라와 살았지만 다시 광주로 곧 내려갑니다. 저는 학부와 대학원에서 자연과학을 공부하면서 창조과학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때는 그게 전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구소 생활을 할 때 창조과학 강사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내가 공부하는 과학을 부정하면서 창조를 공부한다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그 괴리가 상당히 컸습니다. 과신대를 통해 창세기는 과학책이 아니라 구원과 복음에 대한 책이라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제 아이를 위해서라도 이런 내용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2. 과신대에 문을 두드리기까지의 신앙 여정이 궁금합니다. 

 

승주: 어릴 때부터 보수적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서 그런지 그 안에서 지내는 것이 편하고 좋았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정확하게는 94년 10월에 아버지한테 선물로 받은 책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진화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고 저는 과학자가 되어야겠다고 꿈을 꿨습니다.^^ 그래서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삐그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는 나쁘고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만화 피카추도 보지 않았습니다. 거기에 진화에 대한 내용이 나오거든요. 그만큼 진화를 이데올로기로 봤습니다. 대학교에서 생물학을 공부했지만, 학문과 신앙이 따로 놀았습니다. 내적 갈등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물어볼 곳도 없었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접게 됐습니다. 그리고는 사람에게 관심을 옮겨 국제보건학과 사회복지학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만약에 그때 과신대를 만났다면 지금도 과학을 하고 있을지 모르죠.^^

 

그리고 또 한 번의 갈등이 있었는데요. 남편을 따라 방글라데시에서 3년 정도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국제학교에서 과학교사로 봉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칠까 고민하다가 지적설계 교과서로 가르쳤습니다. 그때도 제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아이들에게 그대로 투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지식과 내용이 짧았기 때문에 그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때 만약에 궁금한 것들을 질문할 수 있는 장이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혼자서 고민하고 삭혔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런 편협한 사고와 생각을 전달하지 않고자 지금이라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경환: 이런 고민과 노력들이 누적되고 쌓여서 지금의 논의들이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다 때와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승진: 예전에 창조과학을 공부하면서 이분들이 전문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어요. 제가 알고 있는 과학 지식을 다르게 가르치고 틀린 지식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게 됐죠. 창조과학에서는 기존 과학 지식은 조작된 것이고, 잘못됐다고 가르치잖아요. 흐름이 비슷해요. 과학이 이러이러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이죠. 그럴수록 저는 점점 더 어려웠습니다. 

 

저는 과신대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진화생물학이라는 것을 공부해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종학 교수님이나 김정형 교수님의 책을 읽으면서 이 분야의 전문가들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3. 현재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말씀해주시겠어요?

 

승주: 저는 <한국리더십학교>라는 단체에서 공부를 했는데, 여기를 졸업한 여성 동문들이 모임을 만들었어요. 여기에서 제가 과학과 신학에 대한 내용을 발제한 적이 있어요. 거기에서 창조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많은 동문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요. 또 제가 아이들을 기독대안학교에 보내고 있어요. 기독대안학교이니 창조주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교육을 합니다. 그런데 큰 애의 중학교 설명회를 참석했는데, 당시 과학 선생님이 지적설계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하셨어요. 저는 거기에 앉아서 표정관리가 안 돼서 참 혼났습니다. 아이들에게 정답을 미리 던져주고, 다른 걸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교육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선생님을 찾아갔어요. 비판을 하러 찾아간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러 갔습니다. ‘선생님, 우리 학교는 어떤 과학 교과를 가르치고, 어떤 목적으로 가르치나요?’ 선생님도 깜짝 놀라셨죠. 선생님도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하셨는데, 본인은 지금 지적설계에 가까운 입장이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우리 학교는 기독교 안에 있는 다양한 관점을 두루 가르칠 것이라고 하셔서 지금까지 서로 질문을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학부모들과 함께 이 내용을 나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이 일도 하고 싶습니다. 

 

승진: 지금 하고 있는 학교에서 아이를 가르치는 교사일 뿐입니다. 언제 제 삶이 바뀔지는 모른다고 생각하는데, 정말 하고 싶은 것은 삶에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제 학창 시절을 돌아볼 때, 정말 저의 삶에 영향을 주는 선생님을 많이 만나지는 못했어요. 이제는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휴직하는 동안 인구학이나 미래학과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변화하는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는데, 이제 학교로 돌아가면 학생들의 삶에 정말 실제적인 영향을 주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지금 학교 교육은 많이 무너져있어요. 요즘에는 학생의 인권만 있고, 교육 자체는 없는 것 같아요. 교육은 부모님이나 교회에서나 할 수 있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저도 내 아이가 준비된 그릇이 되어 잘 쓰임 받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휴식 4년 동안 충전을 많이 했습니다. 초심으로 다시 돌아가 제가 맡을 아이들이 잘 인도하고 싶습니다. 

 

승주: 저는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의외로 아이들은 생각이 열려있고 편견이 없는데, 오히려 선생님들이 상당히 닫혀 있습니다. 주일학교 교사들도 과신대에서 공부를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창세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면 좋겠습니다. 

 

 

4. 앞으로 과신대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과신대 기초과정 홍보를 잘해서 널리 퍼뜨리면 좋겠어요. 핵심적인 내용과 키워드를 잘 정리해서 사람들이 검색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해요. 좀 더 욕심을 부리면, 어린이들이나 중고등학생들을 위한 콘텐츠도 많이 만들면 좋겠습니다. 요즘 교회학교가 많이 줄었다고 하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하고 있는 교회도 많거든요. 영상이나 캠프나 모두 좋습니다. 좋은 프로그램을 많이 개발해서 많이 보급해주세요. 

 

또 페이스북을 하지 않는 분들에게 어떻게 정보가 전달될 수 있는지도 고민해주시기 바랍니다. 필요하시면 불러주세요. 저희도 열심히 돕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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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 칼럼] 태동기가 마무리되는 해가 되길

태동기가 마무리되는 해가 되길

 

 

2020년 새해가 불쑥 다가왔습니다. 2017년 초에 단체 등록을 마치고 태어난 과신대도 이제 4년 차를 맞습니다. 한 해를 보내며 과신대 사역을 돌아보니 물심양면으로 이 사역에 함께한 과신대 정회원들과 후원자들이 생각납니다. 자문위원으로 섬겨주신 분들, 실행위원회에서 직접 몸으로 뛰어 주신 분들, 그리고 사무국 간사님들의 수고도 떠오릅니다.

 

2017년 여름, 과신대 사역을 위한 정기 후원 공지를 처음 올리면서, 우선 3년 동안 후원해 주시고 과신대가 잘 세워질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모양새를 갖춰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2년 반 동안 사무국도 생기고 다양한 사역들도 시도해 오면서 과신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습니다. 함께 뛰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2020년은 과신대의 태동기를 마무리 짓는 해가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과신대 사무국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교육 프로그램들이 실속 있게 운영되고 연구모임도 활성화되고 북클럽들을 통해 네크워크와 지역거점이 생기고 온라인 사역들이 활발하게 시작되는 해가 되리라 기대하며 무엇보다 정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간절히 기다립니다.

 

먼저 실행위원회와 사무국에 변화가 있습니다. 과신대 사역은 교사팀, 출판팀, 북클럽팀, 과신대 기자단, 연구모임 등등 여러 팀으로 구성되어 모임들을 갖습니다. 직장이 있지만 자원해서 사역을 맡으신 분들의 섬김으로 교육과 연구 사역들을 해오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 팀들을 총괄하고 사무국을 지휘하고 실행에 옮기는 역할을 하는 분이 바로 실행위원장입니다. 장현일 선생님께서 지난 2년 반 동안 실행위원장을 맡아 수고해 주셨습니다. 사무국을 처음 만들어 맨땅에 집을 짓듯 하나하나 구조를 만들어가야 했는데 정말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새해에는 북클럽 모임을 열심히 섬겨주시고 인터넷 사역을 맡아주셨던 강사은 선생님께서 새롭게 실행위원장으로 섬겨주십니다. 강 위원장께서는 가족 사랑도 지극하신 분인데, 과신대 사역에 깊이 동감하고 함께 사역하는 동지십니다.

 

사무국에는 2년 반 동안 행정과 회계, 그리고 영상 업무까지 담당하던 이진호 간사가 사직하고 자신의 대학원 연구에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현재까지 최장의 경력을 가진 간사라 많은 분들이 아쉬워합니다. 그러나 정회원으로 앞으로도 함께 과신대 사역을 해나갈 것입니다. 후임으로는 장민혁 간사를 뽑았습니다. 조기졸업을 앞두고 있는 학생 신분이지만 나이에 비해 성숙한 모습으로 책임감 있게 행정간사 업무를 잘 감당해 줄 것으로 기대합니다. 1월부터 월요일과 목요일에 출근하여 사무국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도록 힘을 쏟을 것입니다. 한 분 더 소개합니다. 영상 간사로 함께 일하게 된 이슬기 간사입니다. 아직은 근무시간이 짧고 주로 재택근무로 영상 업무를 담당하실 예정이지만 앞으로 영상 사역을 중점적으로 늘려나갈 계획이라 큰 기대가 됩니다. 정회원들과 직접 만날 기회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격려해 주시고 응원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무국은 최경환 실장을 중심으로 행정, 사무, 회계, 회원 관리 등의 기본 업무를 수행하고 콜로퀴움 등 행사를 실행하는 역할을 합니다. 종로 쪽에 가실 일이 있는 분들은 낙원상가에 있는 과신대 사무실에 방문해서 간사들을 격려해 주셔도 좋겠다 싶습니다. 점심을 사주시면 더 좋아할 것입니다.

 

한 달에 한번 발간되는 과신대뷰의 구독자도 많이 늘었답니다. 과신대 홈페이지에 쌓이는 글과 자료들이 제법 구색을 갖추고 있고 하루 방문자가 꽤나 증가했다는 소식입니다. 과학과 신앙에 관한 자료를 찾을 때 과신대 홈페이지가 아카이브 기능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듯 해 뿌듯합니다. 앞으로는 동영상 자료들을 제작하여 유튜브를 많이 보는 청소년들과 노년층의 자료 접근성을 높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새해의 변화 중 하나는 바로 기초과정 2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5기까지 진행된 과신대 기초과정2는 6번의 세미나로 이루어진 만만치 않은 교육 과정입니다. 과신대 정예 멤버를 기르는 과정이라고나 할까요. 보통 20명이 수강해서 10명이 수료합니다. 수료율이 낮은 이유는 여러 책을 읽고 서평을 내야 하는 등 보고서가 만만치 않고 대학원식 세미나로 진행되는 6주 과정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세미나보다는 강의 위주로 과학과 신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좋겠다는 피드백을 주셨습니다.

 

맞는 이야기입니다. 책을 읽어가며 세미나를 따라가기 어려운 직장인들이나 학생들을 위해 보다 접근성이 높은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8-10번의 강의로 새롭게 디자인하고 있습니다. 기초과정 1에서 4시간 강의를 들었다면 기초과정2에서는 각 분야 전공자인 교수들께 심도 있는 강의를 듣도록 준비하고 있습니다. 성서학, 신학, 과학, 과학철학, 과학신학, 윤리와 환경 등의 분야를 포괄하는 짜임새 있는 커리큘럼을 준비 중이고 3월에 개강할 예정입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거점 지역에 모여서 함께 온라인 강의를 들을 수 있는 방법도 모색 중입니다. 많은 조언과 관심을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느 신학교나 단체에서도 제공할 수 없는 최상의 커리큘럼으로 제공되는 좋은 교육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20년 콜로퀴움은 벌써 기획이 끝났습니다. 과학과 신학, 철학 다양한 분야 전문가들을 모시고 깊이 배우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의 과신톡과 북콘서트도 진행될 예정이며 온라인 북클럽 모임도 기획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2020년에 참 할 일이 많습니다.

 

 

새해가 시작하는 시점에 다시 한번 강조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과신대 사역은 여러분의 참여와 헌신으로 이루어집니다. 관심 분야에 적극 참여해 주시고 시간이 되시면 자원봉사로 섬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무국이 안정적으로 돌아가려면 풀타임 간사가 꼭 필요합니다. 지난 3년 가까이 과신대를 후원해 주신 분들께 큰 감사를 드리면서 앞으로도 더 큰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올해부터는 월별 수입지 출상 황도 정회원들께 투명하게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지금보다 30-40% 재정 후원이 늘어야 사무국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주변에도 많이 알려주시고 후원을 독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2020년은 과신대 태동기를 마무리하는 해가 되면 좋겠습니다. 사무국도 자리 잡고 교육과 연구 프로그램도 형태를 갖추고 재정 후원도 안정되어 과신대 사역이 흔들림 없이 굴러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2021년부터 5년간은 과신대의 성장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후원자도 두세 배, 아니 다섯 배 이상 늘어나고 한국교회를 섬기는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단체로 성장하는 기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2026년부터 5년간은 과신대의 사역들이 많은 열매를 맺는 수확기가 되어 2030년쯤 되면 과신대 사역이 필요 없을 정도로 한국교회에서 과학과 신앙 문제가 사라지면 참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과신대도 기쁜 마음으로 해체할 수 있겠지요. 물론 한국교회 상황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고 과신대는 조금 더 오래 사역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정회원 여러분. 여러분은 왜 과신대를 후원하십니까? 왜 과신대 사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다들 분명 그 답을 갖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할 일이 많습니다. 아직 관심을 다른데 돌리기는 이릅니다. 팍팍한 우리 일상이지만 조금 더 힘을 내서 봉사하고 후원하고 과신대가 2020년에도 필요한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올 한 해 여러분의 삶과 공동체에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2020년 1월 1일

과신대 대표 우종학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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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없음의 과학

  • 무신론자로 살기위해서는 상당한 신학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가봅니다.
    신에 대한 존재를 인식하는 본능을 구별하고 그것을 억제하거나 인식하려고 한다니 영국에 사는 사람들은 대체로 신학적 식견이 대체로 높은게 아닌가 보여질때도 있습니다.

    반기독교적인 사람으로 인해 오히려 기독교내의 부패가 보여지고 도려질 수 있다는 통찰력이 돋보이는 서두였습니다!.

    한가지 의문점은 리처드 도킨스가 제시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이 신학에서 제시하는 자유의지라는 개념하고 상반된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문명이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도 아직 정립이 되지 않았습니다.

    증인 2020.01.09 00:00

 

적을 통해 배우는 신앙

리처드 도킨스 외 | 신 없음의 과학 | 김영사 | 2019

 

글_ 최경환

 

 

이런 책을 읽을 때에는 마음을 열고 읽을 필요가 있다. 메롤드 웨스트팔이라는 기독교 철학자는 프로이트, 마르크스, 니체를 기독교를 위한 예언자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들은 기독교를 날카롭게 비판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기독교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부패하고 썩은 것을 도려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미 성서 안에도 예언자적 전통은 기존 야훼 신앙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무신론의 수호자 4명에게서 우리는 기독교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을 경청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네 명의 학자들은 자신의 책이 출간된 이후 다양한 토론과 논쟁의 자리에 참여했고, 그 이후 어느 정도 자신의 입장을 더 업그레이드할 수 있었다. 이 책은 결과물이다. 책 내용을 요약하기보다는 읽으면서 나름대로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간단하게 소개하려 한다.  

 

  1. 의미가 중요하다는 변명

    저자들은 흔히 신학자들은 사실에 관심이 없고, 그 의미에 관심을 둔다고 말한다. 즉, 성서해석이나 교리를 해석할 때, 그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것은 그저 상징이나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것이 신학자들의 변명이다. 그러면서 일반 성도들에게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믿으라고 강요한다.

    예를 들어, 연옥 교리를 말할 때, <가톨릭 백과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만일 죽은 사람이 하늘나라로 곧장 간다면 우리가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해도 소용이 없다. 그런데 우리는 그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는 하늘나라로 곧장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연옥이 존재하는 것이 틀림없다. 이상으로 증명 끝” (46쪽)

    신학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말할 때, 그것이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부활은 역사적/실증적/과학적 입증의 대상이 아니라 그저 신학적 의미가 중요하다고 할 때, 그것은 기독교 교리나 진리에 어떤 의미를 던져주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신학자들은 종종 기독교의 진리가 과학적 입증 방식에 따라 증명되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기독교는 원래 있지도 않은 사실 위에 온갖 화려한 건물은 지은 것인가? 

    하지만 일반적인 역사학에서도 근대의 실증주의적 역사관은 이미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고대인들에게 사실/역사/과학의 의미는 분명 오늘날 우리의 생각과 다르다. 만약 오늘 우리의 시각으로 고대의 메시지를 사실/허구의 이분법으로 구분한다면 그 역시 시대착오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2. 무신론자도 믿음이 필요하다?

    도킨스는 무신론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적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흔히 우주의 기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이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하는 무신론자들의 신념 역시 결단과 지적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스럽게 창조주나 지적 설계자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고 말한다. (57쪽)

    결국 무신론자도 결단과 헌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말았다. 

  3. 신앙의 이중장부

    저자들에 따르면 기독교인들은 이중적으로 사고한다. 스스로 믿음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기도한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지극히 이성적으로 행동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믿음 없음을 회개한다. 상당히 모순적이다.

    그러면서 믿음은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부활 사건이 대표적이다. 기독교인들은 부활이 완전히 객관적인 사실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믿음이고 신념이라고 말한다. 마치 불합리하기 때문에 믿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4. 비겁한 신학자들

    “여기 있는 모든 분이 제리 폴웰 같은 쉬운 표적을 겨냥하고, 학식 높은 신학 교수들은 못 본 체한다는 비난을 받아왔어요. 다른 분들은 그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느끼는 점은 학식 높은 신학 교수들이 자기들끼리나 지식인에게 하는 말과 신도들에게 하는 말이 완전히 다르다는 겁니다. 신도들에게는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106쪽)

    “네. 그런데 학식 있는 신학자들이 목사나 전도사에게 말하면, 목사들은 하나도 알아듣지 못할 겁니다.” (107쪽).

    이건 그냥 뼈 아프게 듣자!!

  5. 종교의 해로움

    네 명의 학자들이 동일하게 지적한 것은 “종교의 해로움”이다. 예를 들어, 점성술은 종교와 비슷하게 미신적 사고를 조장 하지만, 적어도 종교처럼 해롭지는 않기 때문에 폐기시킬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156쪽) 하지만 종교는 세속적 기준으로 봐도 해롭다.

    종교인들이 철저하게 이분법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해롭지 않을 수도 있다. 신앙을 온전히 사적 영역에 가두고, 공적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세속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에 해로운 것이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종교인들을 그렇지 못하다. 자살 폭탄 테러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나름대로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사회생활을 하고 인간관계를 맺는다.

    그렇다면, 다시 질문해 보자. 만약 종교가 세속적인 기준에 의해서 해롭지 않으면 되는 걸까? 반대로 종교가 세속적인 기준으로도 이롭고 유익하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종교가 해롭다는 이들의 주장은 그동안 종교가 공공의 유익을 위해 봉사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로 들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오히려 공공신학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공공선과 인간의 번영에 기여하는 종교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미로슬라브 볼프의 <인간의 번영>을 참고

    하지만 또 다시, 이들의 주장이 정확한지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말 이들의 말처럼 종교는 인류 역사에서 해롭기만 했는가? 미국의 실용주의 철학자 리처드 로티 역시 종교가 서구 역사에서 얼마나 잔인한 전쟁을 많이 일으켰으며 해로웠는지를 지적한다. 이에 대해 월터스토프는 과연 종교가 해롭기만 했냐고 반문한다. 30년 전쟁을 통해 관용과 배려의 정신을 서구 역사에 심어 놓은 것이 바로 기독교였고, 미국의 인권운동과 해방운동에도 기독교는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다. 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자들이(심지어 민주주의가) 얼마나 많은 인민을 학살하고 폭력적인지를 따져봐야 한다. 어쩌면 종교 자체가 해로운 것이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거나 과도한 정치적 열망이 타자에게 강요될 때, 끔찍한 일들이 벌어진다고 할 수 있다.

    1990년 이후 비판이론가였던 하버마스가 종교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속 사회에 종교의 귀환을 요청한 이유도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공론장에 들어오면 안 된다고 말했던 하버마스는 왜 다시 종교를 소환한 것일까?

  6. 증거주의

    도킨스는 “자기가 어떤 것을 증거 없이 믿는다는 이유로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며 산다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치게 됩니다.”라고 말한다. (157쪽)

    증거주의(evidentialism)에 입각해서 지식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용인되는 것 같지만, 또 이것만으로는 우리의 지식이 확보되지 않는다. 증거주의 인식론에 대한 여러 학자들의 비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개혁주의 인식론을 통해 증거주의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최근에 나온 <그리스도인을 위한 서양 철학 이야기>를 참고하면 좋다.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대부분은 정확한 증거에 기반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습관에 의해서, 누군가의 권위에 의해서, 혹은 막연히 ‘그냥’ 믿으며 살아간다. 물론 정확한 팩트 체크와 증거에 기반해서 신념 체계를 확립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우리의 신념이 구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7. 실용주의 진리관

    도킨스와 데닛은 모두 종교와 예술을 실용적인 가치 체계로 인정한다. 즉 그것이 실재 세계와 대응하는 진리는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인간관계나 어떤 기능을 수행하면 된다는 식이다.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환상적입니다. 누가 뭐래도 아름다운 이야기죠! 믿지 않아도 모든 대목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186쪽)

    이는 리처드 로티의 실용주의적 종교관과 유사해 보인다. 다만 로티와 다른 점은, 로티는 우리가 그동안 진리라고 여긴 모든 것들도 동일하게 실용적인 기능으로써 존재하기 때문에 과학이나 종교나 예술이나 모두 동일한 레벨이라고 말한다는 것이고, 도킨스와 데닛은 과학은 전통적인 진리대응론에 상응하지만, 종교는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킨스와 데닛은 지독한 근대적 합리주의 체계 속에 갇혀 있다고 할 수 있다.

  8. 결론

    궁극적으로 네 명의 학자가 종교에 대해서 지적하는 것은 그것의 해악성 때문이 아니다.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종교는 똑 같이 나쁜 것이다. 종교의 해악성에 있어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사실의 차원에서는 이슬람이나 기독교나 정도의 차이는 없다. 모든 종교는 이성보다 믿음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성과 믿음이 늘 양립불가능한 것이지 물을 수 있다. 히친스도 인정하듯 모든 사람은 인지부조화 속에서 살아간다. 정부를 열렬히 비판하는 사람도 세금은 꼬박꼬박 내고, 자식은 공립학교에 보낸다. 말로는 자신이 어떤 것을 믿고 어떤 것을 따라 산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복잡하고 선명하지 못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헷갈려한다. 이것을 자아의 분열이라고 할 수도 있고, 복수적 자아라고 할 수도 있다. 이념적 자아와 현실적 자아가 분열되고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오랜 시간 인간은 신을 믿고 종교적 세계관 속에서 살아왔다. 어떤 철저한 근대인도 그 습속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이미 우리의 몸속에는 종교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맹장을 떼낸 사람이라도 할지라도 그 상흔은 남아있는 것처럼. 서구 사회에서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될수록 근본주의 종교가 증가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이 책의 저자들의 바램과는 다르게 과학적 세계관이 증가하면 할수록 종교는 공적인 영역에서 자리를 박탈당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하게 자리를 지킬 것이다. 어떤 이는 종교가 최후의 발악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만약 종교가 계속해서 다른 모습으로 진화한다면, 어쩌면 인간의 삶에 있어서 종교는 결코 지울 수 없는 신의 흔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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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인천 북클럽] 공명: 창조, 섭리, 그리고 관계성

  • 과거 신학을 철학으로 하려던 토마스 아퀴나스 처럼 이제는 신학을 과학으로 하려는 시도들이 시도되고 있지는 않나 봅니다.

    증인 2020.01.08 23:38

 

모임 일시: 2019.12.9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 연구실
교재: 존 폴킹혼, <과학으로 신학하기> (모시는사람들)

 

 

2019년 마지막 모임을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가졌습니다. 이번 학기에는 존 폴킹혼의 <과학으로 신학하기>를 읽었는데, 내용이 쉽지 않아서 다들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5장부터 끝까지 읽고 이야기를 나누려 했는데, 실제로는 5장을 자세히 다루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언급만 했습니다. 책 내용을 간단히 정리하고 기억을 더듬어 토론 내용을 정리해봅니다. 

 

1. 폴킹혼의 과학과 신학의 역할, 목적을 분명하게 구분합니다. "과학의 관심사는 과정에 있고, 신학의 관심사는 목적과 의미에 있다"(161쪽)고 말합니다. 하지만 과학과 신학은 상호 공명할 수 있고, 경쟁 관계가 아니라 상보적이라고 말합니다. 

 

"'어떻게'와 '왜'는 별개의 대답들이지만, 이들이 답을 내는 형식들은 양립하면서 서로 맞아떨어져야 한다." (161쪽)

 

2. 창조론은 시간의 기원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기원을 밝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법칙과 규칙 그리고 이론이 가능하게 하는 창조자입니다. 양자이론과 일반상대성 이론의 법칙을 만든 분이 하나님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증명할 방법은 없습니다. 이 우주에 'Made in God'이라는 도장이 찍혀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 우주를 관찰하고 연구해서 신의 흔적을 밝히려는 시도가 있다면 그것은 "과학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충하는 것"입니다.(164쪽) 

 

그러고 보면 신학은 과거에 학문의 여왕으로 자리매김을 했지만 이제는 과학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거 같습니다. 신학은 과학의 결과를 수용하면서 그 내용을 보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이런 현실이 씁쓸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욱 분명하게 밝히려는 과학이야말로 과거 신학의 역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3. 폴킹혼은 많은 과학자들이 인정하고 이야기하는 '인류학적 원리'를 통해 충분히 신학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과학자들은 인류학적 원리를 통해 다중우주론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폴킹혼이 보기에 이는 너무 과도한 존재론적 낭비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과학적 사변은 오히려 과학정신과 상반된다고 말합니다.(172쪽)

 

 

4. 과학에서 말하는 '우연과 필연'에 대해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폴킹혼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신의 섭리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유전적 돌연변이가 없다면, 새로운 종들의 출현은 불가능할 것"이고, "돌연변이가 일어나는 실제 비율이 자연선택을 통해서 걸러지고 유지됨으로써 흥미로우리만치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들이 전개"된다고 합니다.(174쪽)

 

창조자 하나님은 일시적으로 개입해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드러나는 과정을 통해 일하십니다. 아서 피코크가 말한 것처럼 "창조의 역사는 영원 속에 미리 그려진 고정된 악보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조물들과 창조자 모두가 참여하여 조금씩 만들어가는 즉흥곡으로 봐야 한다."(175쪽)

 

그렇기 때문에 '무로부터의 창조'(creatio ex nihilo)뿐만 아니라 '연속 창조' 혹은 '계속적 창조'(creatio continua) 역시 같이 고려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발전에 반드시 신의 개입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 발전은 "창조자가 창조에 부여하여 내재된 풍부한 결실성을 표출한 새로운 양태들로 이해되어야 할지도" 모릅니다.(176쪽) 이미 완벽하게 만들어진 세계보다 진화하고 있는 세계가 더 멋진 세계일 수 있습니다. 

 

5.  진화론을 통해 창조를 이해하면 신정론의 문제도 해결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은 "스스로를 형성해 가는 피조물의 세계가 지불해야 할 필연적 비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177쪽) 죽음과 탄생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인격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자유의지라는 어쩌면 위험한 선물을 통해서 구현되듯이, 이 자연 세계 역시 고통과 기형이라는 피할 수 없는 대가를 통해 더 좋은 세계를 형성해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free will defence는  free process defence와 함께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6.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할 때 그동안에는 흔히 자연현상이라든가 법칙을 거스리는 방식으로 이해해왔는데, 오히려 자연을 완성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은 열린 성격을 갖도록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이 세계와 끊임없이 상호작용한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일단 "자연의 제정자인 신은 틀림없이 자연 과정의 개방적인 기질 안에서 일하시지 그 기질에 반해서 일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184쪽) 초대교회의 교회 오리겐은 "더운 여름에 시원한 봄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했습니다.(185쪽)

 

7. 양자이론이 가져온 새로운 세계 이해는 신학에도 여러 가지 통찰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양자이론은 "원자속 세계에 깊이 들어앉아 있는 관계성의 존재를 입증했다"라고 합니다.(188쪽) 이는 마치 삼위일체 하나님이 '사귐으로서의 존재'(being as communion)라는 진리를 간접적으로 알려준다고 합니다. 사랑의 상호 소통이라 불리는 페리코레시스의 핵심은 상호적 관계성이기 때문입니다. 폴킹혼은 "물리 세계에 대한 과학의 묘사는 이 세계가 삼위일체 신의 창조물이라는 믿음과 눈에 띄게 공명한다"라고 말합니다.(190쪽)

 

8. 폴킹혼의 책을 읽으며 그동안 과신대에서 들었던 내용이 조금씩 정리되는 느낌입니다. 다시 한번 이 책을 꼼꼼하게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쉽게도 이 책은 절판되어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는 없습니다. 다시 좋은 번역으로 새롭게 재탄생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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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수련회 과학 특강 강사 지원

  • 초등4~6학년생에게도 적당한 강의인가요? 문의드려요

    사이다 2019.12.10 23:09
    • 안녕하세요. 과신대 사무국입니다. 만약 초등학교 겨울성경학교 특강을 원하시면 초등부 교사를 소개시켜드릴 수도 있습니다. 연락주세요~^^

 

겨울 수련회 특강 때문에 고민이신가요? 

학생들에게 과학과 신학을 조화롭게 가르쳐 주실 신뢰할만한 강사를 구하고 계신가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과 교회에서 가르치는 창조가 서로 달라 고민하고 계신가요?

 

현직 과학 선생님들로 구성된 과신대 교사팀에서 과학 특강을 해드립니다. 

겨울 수련회 기간 중 학생들에게 과학과 신앙을 함께 가르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오랜 시간 숙련된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신앙의 눈으로 과학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드립니다.

 

아래 신청서를 작성해 주시면 과신대 사무국에서 과신대 교사팀 강사를 파견해드립니다.

 

※ 겨울수련회 특강 신청: https://bit.ly/38nlfnU

 

◎ 특강 내용: 우주의 탄생과 하나님의 창조, 과학과 신학의 관계, 과학주의 무신론에 대한 대응

◎ 프로그램: 과신대 강사가 1시간 정도 특강을 하고, 학생들과 30분 정도 대화하는 시간으로 구성

◎ 강사비: 20만원 (강사비는 교회 형편에 따라 조율 가능, 과신대 협력 교회는 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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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과신대 기자단을 모집합니다

 

2020년에 과신대 기자단으로 활동하실 기자를 모집합니다. 

과신대 기자단은 아래와 같은 활동을 하게 됩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 기자단 신청: https://forms.gle/Ey35caVWo7wdhGLi8

◈ 기자단 활동 기간: 2020.1.1~2020.12.31
모집 대상 : 과신대 사역을 깊이 공감하고 지지하는 분
모집 인원: 2~3명
활동 내용: 매월 한 개의 글을 과신대 홈페이지에 올립니다. 
(인터뷰, 서평, 행사 후기, 기획 기사 등)

모집 마감 : 2019. 12. 29(일)
발표 : 2019. 12. 31(화) 개별 통보


혜택: 과신대 모든 행사 무료 참석, 두 달에 한 번씩 3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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