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사람들 (6) 최자인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최자인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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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본인의 소개를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최자인(이하 최)]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대학교 외교학전공 석사과정 2학기 재학 중인 최자인입니다. 공부를 따라가는 것을 버거워하고 있고 ... 예수님의 복음이 주는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궁금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 가운데 있습니다.

[과] 서울남부 북클럽 모임을 알게 된 경위와 참여하게 된 동기를 소개해 주세요.

[최] 저희 과 안에는 윤영관 교수님을 중심으로 하여 일주일에 한 번씩 팀 켈러 목사님의 설교를 듣고 나누는 '지혜모임'이 있습니다.  제가 희수 언니(서울남부 북클럽 회원)를 만나게 된 곳이었어요. 그 곳에서 희수 언니가 깊고 끈기 있게 사고하는 모습을 보면서 언니에 대한 궁금증과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 언니와 대화하면서 서울남부 북클럽 모임을 알게 됐습니다.

[과] 3개월 정도 꾸준히 참여하고 계신데 소감이 있다면?

[최] 먼저 3개월 정도의 참여라는 것이 3번 정도 나간 것 밖에 되지 않아서 소감을 나누기에 약간의 민망한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도 나누자면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에 다양한 길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과신대 모임에 참여하면서 제가 생각보다 이분법적이고 극단적인 사고를 즐겨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주로 진리를 알아가고자 하는 다양한 방법들 가운데 어느 것도 정답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성경이라는 틀 안에서 다양한 추론을 해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과] 과신대에서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포럼과 콜로퀴움, 그리고 교육과정 등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과신대의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최] 먼저는 제가 과신대의 사역을 경험한 기간이 길지 않기 때문에 많은 점을 이야기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다만 과신대의 사역이 '개방성'을 지향하는 것 같다고 느꼈고, 그렇기에 그것이 과신대만의 특징과 장점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표출해 나가는 것이 우리 사회가 가진 배타성이라는 특성 때문에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신대 사역은 기존의 것에서 벗어나 또 다른 목소리를 내주는 것 같아서 감사했습니다. 연역과 귀납을 통해 특정 학문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듯이, 과신대는 신학과 과학 간의 소통을 마련함으로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신대가 나아갈 방향이나 북클럽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최] 과신대가 과신대의 자리를 묵묵히 잘 지켜나가 주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신대 화이팅 :)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최자인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자인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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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10 / 2018.03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사람들 (5) 팽동국 교수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현재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제주대학교 팽동국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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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한파가 계속되는 날씨입니다. 건강을 기원하며 교수님의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팽동국 교수(이하 팽)] 저는 제주대학교 해양 시스템 공학과에서 음향학을 가르치고 있고 의료용 초음파와 수중음향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부에서 해양을 전공했고 석사로 물리해양과 수중 음향 그리고 박사 때 의료용 초음파를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교회 생활은 초등학교 고학년 때 시골에서 서울로 유학 오게 되면서 다니게 되었고 중고등부 시절을 지나 교회 생활과 신앙의 기초가  쌓여졌으나 대학에 와서 사회문제와 정의 독재와 교회의 역할 등의 문제로 회의와 방황을 하다가 1990년도부터 남서울 교회 청년부를 다니면서 새롭게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미국 보스톤과 펜실베니아 스테이트 컬리지, 로스엔젤레스에서 유학하는 동안 지역교회에도 속해 있었지만 코스타 집회도 참석하며 섬겼고, 2003년에 제주대학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과] 교수님의 청년 시절의 고민의 내용과 모습이 지금 우리 모두의 것으로 느껴집니다. 과신대에 어떻게 참여하게 되셨는지  궁금하고 제주도에  진행 중인 북클럽 모임에 대해서도 소감이랄까요? (혹은  모임을 결성하고 변화의 모습을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


[팽] 우종학 교수와는 세기말부터 거의 매년 코스타 집회에서 만나서 같이 동역하고 섬기고 있었습니다. 우 교수는 코스타 첫 참석 때부터 신앙과 학문의 통합 같은 중요한 문제 제기를 했었고 그 계기로 그 일을 책임지고 섬기는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당시 창조과학에 기반을 둔 생각을 하고는 있었지만 몇 가지 근본적으로 궁금한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그 중 창조과학에서는 부분적인 것만을 비판하지만 거시적인 패러다임이라던가 체계를 만들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아쉬움과 그 한계를 깨닫고 있었습니다. 그 때 마침 미국 캠퍼스 사역자 한 분의 소개로 물리학자라고 소개한 모리스의 소책자를 통해서 6일 창조 가능성을 얘기하는 우주 물리에 대한 책을 읽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2000년 초, 저녁 집회가 끝난 밤 10시쯤 우교수와 둘이서 얘기가 시작되어 거의 밤새워서 질문하고 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습니다. 지금도 그랬지만 그 때도 책 제목을 몰라서 나중에 그 책을 보내준다고 했고 보내준지는 기억을 못하겠지만 그 책에 대한 답은 우교수에게 한 마디로 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그 책의 모든 내용은 가장 기본적인 중력의 법칙을 무시한 가정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 학계에서는 전혀 받아들여질 수 없는 내용이다’ 그 뒤로도 가끔씩 이런 내용을 얘기하곤 했었는데 2007년인가 제가 LA에 연구교수로 가 있을 때 샌프란시스코에서 모임이 있었는데 거기서 우교수와 같이 차를 타고 오가며 다시 여러 궁금한 점들을 물어가면서 창조과학의 한계와 문제점을 알게 되고 여러 다른 복음적인 해석 방법이 있다는 것을 충분히 공감하게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이런 내용을 책으로 쓸 예정이라고 해서 적극 지지한다고 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무끄따 책이 나오더군요. 우교수 책의 초안을 읽고 그동안 읽었던 하아스마 부부의 오리진 책과 비교해서 간단한 몇 가지 제안을 했었는데 덕분에 별로 한 일 없이 감사의 글에 제 이름이 언급되었지요. 그 후에도 십 수년을 서울과 제주에서 기회 될 때 마다 만나며 대화를 나누며 과신대에 대한 계획과 일정들에 대한 얘기를 들었고 적극 지지자로서 저의 바뀐 생각과 경험들에 비추어 격려도 하고 중요성도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제주에 있어서 한계가 있기에 직접적으로 도와주지도 못하고 소식만 듣고 있어서, 무엇이던지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했더니 자연과학 전공자도 아닌데 자문위원에 제 이름이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주에 있다보니 모임에도 못 가고 아무 일도 안하며 자문 위원으로 있자니 맘도 편하지 않아 이런 저런 궁리를 하다가 북클럽 지방 모임 하는 것을 보고 제주 모임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교수 만나서 자연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과신대 모임을 주도적으로 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려 했었는데 어느 날 페이스북에 몇 년 전에 학생들과 책나눔 모임을 하면서 우교수의 무끄따 책을 함께 읽고 제주 방문 일정에 맞추어 모임에 초청 하고 저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고 찍었던 사진이 떠 올라, 바로 제주 모임에 대한 생각을 페북을 통해서 밝히며 2~3 사람만 모여도 하려고 했더니 7분이나 적극적으로 답을 해서 작년 11월 1일에 첫 모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모임을 하면서 창조과학에서 ‘회심’-회의가 들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경험들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다양한 경험과 신앙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혹은 특정한 계기로 짧고 격렬하게 바뀌었던 자신의 시각들을 나누었는데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고민과 답을 찾으려고 하는 평신도 뿐 아니라 젊은 목회자 분들도 참여했다는 사실이 고무적이고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목사 또 교수라는 직함으로 서로 부르거나 불려지면 그렇지 않은 평신도 입장에서 자유로운 생각을 나누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어색해도 우리 모임에서는 모든 직함 빼고 그냥 형제 자매 혹은 성도로 부르기로 정하였습니다. 세 번 만났는데도 아직도 적응이 안 되어 직함이 툭 튀어 나오기도 하고 아직도 어색해서 직함과 호칭을 거의 부르지 않는 폐단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습니다. 어린 아이도 있고 바쁘기도 한 상황임에도 서귀포 애월 삼양 신제주 구제주 등 생각보다 멀리 퍼져 있어서 운전하는 시간이 꽤 됨에도 아이들 데리고 오는 부부도 있고 아르바이트 일정 조정해서 오기도 하고 아이 맡기고 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 번 모임 모두 얘기하다 보면 3시간도 모자랄 정도로 풍성하면서도 아쉬움을 느끼는 열기가 있습니다. 지금 현재 하아스마 부부의 오리진 책의 각 장을 읽고 한 사람이 가능한 짧게 발제하고 서로 질문하고 토론하고 생각을 나누는 시간을 갖고 있고 장소는 제주 반석교회에서 모이고 있습니다.


[과] 거룩한 부담감이 제주 북클럽을 만들게 하고 귀한 사역으로 이어지게 되었네요. 과학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모습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청소년들의 논리적이고 지성적인 질문들-과학과 관련된-에 답하기 위한 노력과 관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팽] 인지과학이 발달하고 양자 생물학 등의  연구 결과물들은 신앙의 기본을 흔들기도 합니다. 자유의지가 있는지, 신앙이 유전자에 의해 가능한지, 등등 성도들에게  질문이 생깁니다.

어려운 질문이고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답할 전문가도 아니고 지식도 부족합니다. 다만 한 가지 드는 생각은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두려움으로 기독 신앙인들이 움츠려들거나 지나치게 방어적이거나 강한 거부를 할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기에 궁극적으로 과학기술 발전을 하게 되면 창조주이자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더 드러날 것을 신뢰해야 될 것 같습니다. 또한 반대로 과학적 무신론이나 과학만능주의에 너무 쉽게 빠지거나 양보해서 성경 내용을 가볍게 여기거나 너무 쉽게 왜곡하거나 소홀히 하지 않아야 될 것 같습니다.


[과] 과신대가  추구하는 사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지 궁금하고 더 필요한 사역이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팽] 과신대가 창조과학에 대항하는 유신론적 진화과학이라는 이름이나 그런 것을 지향하는 모임이었다면 저는 아마 관심자였을 수는 있지만 참여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라는 이름과 지향하는 점에서 보다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문제인 과학 시대에 성경을 어떻게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의 보다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한다고 생각되었기에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었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이 시대에 그리고 인지과학 유전공학 로봇공학 등 인간과 생물에 대한 관점이나 정의 자체가 부분적으로 바뀔 수도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현재 이전 시대에서는 경험해 보지 못했던 빠른 변화 가운데 살아가고 있고 거의 매일 새롭게 밝혀지는 과학적 사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변화는 더 가속화 될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성경의 문자적인 내용과 상충되어 보이는 혹은 성경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미묘한 문제들을 만나게 되는데 이럴 때 어떻게 성경적 신학적으로 이해하고 해석하여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서 더 알아가는 문제는 매우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몇 천 년 전에 특정한 상황의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들려진 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읽고 우리조차도 변화는 속도에 적응해 나가기 버거운 이 시대에 어떻게 그 말씀을 읽고 이해하고 해석해서 이 시대에 적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는 생각보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과학과 기술뿐만 아니라 사회와 문화 경제 등 모든 부분에서 변화의 속도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국가와 사회와 개인, 가족과 결혼과 성, 교회와 예배의 형태 등 다양한 문제들에서도 마찬가지로 다변화 되어 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어떻게 성경을 통해 본질과 진리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이 변화되고 다양화된 시대에 적응하여 효과적으로 성경적 진리를 밝히 드러내는데 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과신대 모임이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최근에 교회의 타락과 교조적인 모습에 환멸을 느끼는 청년들과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 시대에 오히려 더 성경적 진리를 알아가야 하고 그 진리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이는 사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다변화된 사회에서도 그 진리는 여전히 중요하고 빛이 더 날 수 있다는 소망을 바라보게 하는 모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더 밝히 알게 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아니 나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할 수 있는 그런 과신대 모임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시작해서 먼저 기반을 잘 닦은 다음에 인문 사회 경제 등의 문제들까지도 확장되거나 연합할 수 있는 과신대가 되면 더 좋겠습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팽동국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팽동국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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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9 / 2018.02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사람들 (4) 박영식 교수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현재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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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이하 과)]
안녕하세요, 교수님. 인터뷰에 앞서 간단한 본인 소개 및 전공 분야를 설명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영식 교수(이하 박)]
안녕하세요. 저는 박영식이라고 합니다. 지금 서울신학대학교 교양학부 교수로 있습니다. 전공은 조직신학입니다.

[과]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과신대와 함께하게 되셨습니까?

[박] 제가 어떻게 과신대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예전에 우종학 교수님이 번역한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읽다가 번역이 잘못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별아저씨의 집’이라는 블로그를 통해 수정을 요청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때가 계기가 되어 우종학 교수님을 알게 되고 어쩌다 보니, 자문위원으로도 이름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과] ‘과학과 종교(신학)의 대화’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반적인 수업 분위기가 어떠한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 일단 수업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학생이 적지 않습니다.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과학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몰라서 그렇죠. 특히 고등학교 때 이과를 나온 학생들이 유심히 수업을 듣곤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이 ‘어렵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이런 분야의 학문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 교수님은 ‘과학과 신학 간의 대화’를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십니까?

[박] 일단 저는 과학과 신학은 완전히 다른 분야의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학과 사회가 각각의 독립적인 학문인 것처럼, 과학과 신학 역시 개별적으로 보아야하는 학문입니다. 그런데 질문이 제기될 때에는 경우가 달라집니다. 질문이 발생하면 두 학문은 만날 수 있는 ‘접점’이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사회학적인 변동에 수학적 패턴이 나타나는 경우가 있고, 경제활동 내에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대한 물음이 있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저는 과학과 신학이 오른손과 왼손처럼 딱딱 맞아야 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각 학문은 각자의 위치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질문이 제기되었을 때에는 각자가 대답하는 질문이 서로 상충되거나 대립되기보다는, 공명을 이룰 수 있으면 좋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은 서로 다른 악기죠? 서로 다른 악기임에도 불구하고 피아노와 바이올린은 충분히 합주할 수 있습니다. 그것과 같이 신학과 과학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고 작동하지만, 동일한 테마(Theme)를 두고 같이 합주하면 아름답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과] 앞으로 과학과 신학이라는 학문 내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박] ‘섭리’라는 기독교 개념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조명해야 하는 지에 대한 문제를 연구해보고 싶습니다. 프랜시스 콜린스는 창조 이후에 인간의 진화에 대해 신이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렇다면, 초자연적인 섭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도 제기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물질세계 내에서 창조주의 섭리를 과학과 함께 고찰해보는 연구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지금까지는 ‘과학’을 신학자들이 어떻게 조명하고 해석해왔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면, 이제는 ‘신학’이라는 주제를 과학자들이 어떻게 바라볼지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가령, 예수님의 부활체(體)를 현대 물리학에서, 생물학에서, 의학에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와 같은 문제를 다루어보는 것이죠.

옛날에는 이러한 주제를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벽을 통과하는 장면과 같은 경우는 이전 시대의 인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어떻습니까? Wi-fi를 보면 충분히 벽을 뚫고도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편재하기까지 합니다. 이곳에도 있고, 저곳에도 있고……. 근원적으로 부활, 재림은 과학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 마지막으로 과신대 VIEW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 제가 한 말씀을 드릴 입장이 아닌데요...(웃음) 앞으로도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시고, 힘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작성 | 이준봉,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박영식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영식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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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7 / 2017.12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사람들 (3) 이택환 목사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그소망교회 이택환 목사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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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고운 가을 날 맛있는 커피와 샌드위치로 브런치를 나누며 귀한 말씀으로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택환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사람에게서 빛이 나는 걸 경험하게 됩니다. 정성스럽게 장미를 보살피는 어린왕자가 지었을 것 같은 미소! 그 미소를 닮은 이 목사님의 미소가 빛이 났습니다. 

이택환 목사님과의 인터뷰 내용을 짧은 지면에 옮겼습니다.
 
[과신대 (이하 과)] 과신대와 함께 하게 된 교수님만의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이택환 목사 (이하 이)] 온누리 교회에 출석하면서 창조과학을 접하게 되었고 의학과 관련된 선교단체에서 오랫동안 간사로 섬겼습니다. 선교회에서 수련회 기간 동안 의대와 공대 교수들이 와서 창조과학 특강을 했는데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과학적으로 해석하는 내용을 학생들이 매우 관심을 갖고 들었습니다. 성경 본질에서 벗어나는 신학교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잘못된 가르침을 보고 문제인식을 했고 뜻을 같이 하는 분들을 만나게 되어 그 때부터 과신대 멤버가 되었습니다.

[과] 그소망 교회가 그리스도를 소망하는 교회, 그리스도의 소망이 되는 교회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여러 사역가운데 ‘엘피스 포럼’이 눈에 띕니다. 엘피스 포럼은 어떤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요? 

[이] 우종학 교수님께서 과학의 도전과 신학의 반응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해주셨고, 과학을 비롯하여 미술과 신앙, 동성애에 대한 정신의학적 이해 등 오늘날 현실의 이슈가 무엇인지, 그 이슈를 성경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지를 배우고 성찰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보다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과] 보통은 세상지식과 성경을 따로 생각하는데서 신앙의 불균형을 초래하기도 하고 특히 실천적인 부분에서 갈등을 겪는 성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한 목사님의 아이디어를 듣고 싶습니다.

[이] 성도들과 책 나눔이나 강연과 같은 소통과 나눔 속에서 오늘날 급변하고 가치관이 혼란한 사회를 성경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며 삶에 적용할 것인지를 묵상할 수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또 교회는 성도들의 삶을 이해하고 일상생활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에서의 본인의 역할과 위치가 성경에서 어떻게 만나지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과] 목사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과신대가 정말 중요한 사역을 담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신대를 보다 잘 알리고 과신대가 좀 더 점검해야 한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 생존이 필요합니다. 생존 자체가 힘입니다. 목회자들이 먼저 관심을 갖고 교회에 알리고 신학교에도 과신대가 찾아가고 선교단체에도 우리 과신대가 할 수 있는 사역을 찾아 나서야합니다. 강좌, 인테넷 글, 페이스 북 등등 교회에 까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과신대가 가서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합니다. 강사 발굴도 필요하겠지요. 임택규 선생님처럼 과학과 신학을 통합할 수 있는 일꾼을 발굴해야합니다. 다양한 분야의 패널도 구성해야겠고요. 교재 개발과 후원도 정말 필요합니다. 

[과] 애정과 관심이 담긴 말씀 가운데 과신대 사역의 생명력이 느껴지네요. 감사합니다. 한 걸음 한걸음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과신대가 되기를 기도해 봅니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성 | 백우인, 과신대 기자단



이 글은 이택환 목사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이택환 목사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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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6 / 2017.11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사람들 (2) 권영준 교수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계신 연세대학교 물리학과 권영준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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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이하 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교수님. 반갑습니다.


[권영준 교수 (이하 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과]  먼저 교수님께서 연구하시는 분야에 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권]  저는 입자물리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소립자라고 보통 이야기하는데요, 원자보다 더 작은 규모의 세상이죠. 입자물리학은 환원주의(reductionism)의 끝판왕(?)이지만, 저는 사실 환원주의를 신봉하는 편은 아니에요. 가끔 사람들이 ‘가장 작은 단계의 입자를 연구하면 그 이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이 분야를 연구하는 것으로 오해를 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기대를 하지는 않습니다. 자연현상이 얼마나 다양하고 복잡하게 움직이는지를 인정하기 때문이죠. 특히 인간의 능력으로는 아직까지 가장 작은 단계에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더 복잡한 단계, 예를 들어 세포나 생체, 기상현상 등을 모두 설명하지는 못한다는게 저의 생각입니다. 

그러면 제가 왜 입자물리학을 연구하느냐? 재미있으니까. 그리고 아름다우니까.

저에게는 입자 현상 자체가 재미있고 아름답기 때문에 연구하는 것이죠. 누군가에겐 반도체나 생명과학 같은 분야가 아름답고 재미있을테고 그들의 분야와 연구를 존중하지만 저에게는 입자물리학이라는 분야가 가장 재미있어요. 하지만 결코 이것이 더 우월하거나 뛰어나다는 뜻은 아닙니다. 위에 말한 것과 같이 가끔 극단적인 환원주의자(reductionist)들은 가장 낮은 단계의 문제 해결을 통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계산 능력이 그렇게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또 어떤 작은 시스템이 많이 모였을 때에는 작은 시스템에서는 몰랐던 복잡한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것을 물리학에서는 창발성이라고 하고 저는 그것을 인정합니다. 예를 들어 태풍은 물 분자가 공기 중에서 떠돌아다니다 구름이 되고 비가 되는 현상인데 이것은 아무리 물분자를 떼어놓고 연구한다고 해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저는 분명히 환원주의와는 선을 긋고 싶습니다.

[과 우리나라 기초과학은 그 기반이 약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실 때 어떤 점이 고쳐져야 할까요?

[권]  우리나라는 기초과학을 중-고등학교 때 많이 접하는데 그것들이 대부분 입시와 연결 되어서 수업 시간에도 점수를 잘 받기 위한 문제풀이 연습만 시키니까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죠. 물리의 경우도 공을 위로 던졌다 아래로 던졌다 하는 문제만 반복해서 풀고 똑같은 유형이 나왔을 때 바로 답을 쓸 수 있게 (훈련시키죠). 그러니까 그런 문제풀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재미가 없고 (기초과학에) 완전히 마음을 닫게 됩니다. 기초과학에 대해 트레이닝 받을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는 것이죠. 

기초과학에 대한 본질적인 흥미나 아름다움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정책을 결정하면 ‘어떤 걸 해야 새로운 기술이 개발되어 대박이 나고 경제적으로 돈을 많이 벌까’ 라는 소위 선택과 집중에 의한 투자로 기초과학을 보게되죠. ‘돈이 되는 것, 인공지능, 줄기세포’ 와 같은 키워드 몇 개만 가지고 맴돌게 되는데 사실 건강한 기초과학이 되려면 개개인의 과학자들이 자유롭게 상상하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기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계속해서 탐구할 수 있는 저변을 만들어주는게 시급합니다. 그러면 그 안에서 어떤 사람은 대박을 치고 노벨상도 탈 수 있는 것이죠. 지금은 거꾸로 그런 저변을 깔아주지는 않고 노벨상을 탈만한 곳이 어딘지를 찾아서 투자하려고 하니까 모두가 힘들죠.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입시와는 상관없는 기초과학 교육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어요. 사실 과학이라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고 아름답거든요. 그걸 알게되면 사람들이 그렇게 싫어하지 않을텐데 (말이죠). 모짜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모두가 아름답다고 느끼지만 그 악보를 보고 읽고 해석한 뒤 그 안에서 모짜르트의 음악이 아름답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과학도 마찬가지에요. 비록 내가 뭐 뉴턴의 방정식을 못 풀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그 이론들이 말하는 정말 멋지고 아름다운 자연 현상들을 접했을 때 가슴이 뛰고 설레는 느낌을 줄 수 있는 것. 그게 바로 기초과학 교육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  과신대 활동 외에도 ‘기독교변증 컨퍼런스’ 등과 같이 과학과 신앙에 관련된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권] (웃음) 왜 처음에 저를 불러주셨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큰나무교회 목사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영혼에 대한 과학자의 입장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셨어요. 그 변증 컨퍼런스의 큰 주제는 ‘기독교를 우리가 철학적, 논리적으로 방어(defence) 할 수 있다’ 즉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가 엉터리라고 말할 때 엉터리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저에게 바라신 것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혼’에 대해 그 존재가 없다고 말하는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 근거를 달라는 것이었어요.

아까도 말씀 드렸지만 저는 창발성을 믿기 때문에 영혼의 존재를 인정합니다. 최근 뇌과학에 대한 많은 연구들을 통해 사실은 일반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뇌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죠. 이제는 물리, 화학, 생물학적으로 뇌 안에서 뇌세포가 작동하는 기작들을 굉장히 잘 이해하게 됐어요. 그렇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환원주의와 관련해서 입자물리학자인 제가 기본 입자, 소립자를 다 알게 되어 그것으로 인해 일어나는 복잡한 시스템을 설명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처럼, 제가 뇌과학에 전문가는 아니지만 뇌과학에 대해서도 조금은 겸손해질 필요는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뇌에서 뇌세포, 신경세포들이 반응하는 현상들을 다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정신이나 영혼이라고 하는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은 다른 영역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물리학에 초전도현상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초전도체가 처음 발견되었을 때 사람들은 초전도체의 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초전도체 현상으로만 설명되는 것들이 발견되니까 초전도현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죠. 그러니까 우리가 인간의 삶이나 사회 현상 같은 곳에서 영혼이라는 개념을 도입해 설명할 수 있는 면(aspect)들이 존재한다면 영혼이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영혼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환원되고 설명되는지 이해 못한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과]  과학자의 입을 통해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사람들에겐 흥미로운 경험이었을 것 같아요.

[권]  하하,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사실 저는 이쪽(과학과 신앙에 대한 분야)으로는 별로 활동을 해오지 않았어요. 따로 공부한게 없으니까 활동할 것도 특별히 없었는데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우종학 교수님을 뵙고 ‘아, 이 분이 정말 옳은 걸 하고 계시는구나’ 해서 일단 친구 신청을 했죠. 그러다 우종학 교수님께서 작년 어느날 과신대 2차 포럼을 할 때 나와달라고 요청하셔서 처음 나갔던게 (인연이 됐죠).

[과]  그 때 패널로 처음 과신대와 함께 하셨죠.

[권]  그러니까요. 제가 낄 자리가 아니었는데…(웃음) 개인적으로는 2000년대 초반 연대 천문학과의 어떤 교수님께서 지금 우종학 교수님이 하시는 것과 비슷한 관점에서 과학과 종교, 과학과 신앙의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 그 말씀을 듣고 제가 ‘오, 그게 맞는거 같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 

[과 과학과 신앙에 관한 고민을 그 때 처음 하시게 된거네요?

[권]  말하자면 그렇죠. 중-고등학교 때는 소위 창조과학 스타일의 설교를 교회에서 들어왔고 학교에서 배운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교회에서 들은게 맞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대학에서 물리학을 배워보니 아무래도 창조과학 스타일의 설명이 한계가 있었죠. 그렇지만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니까 나는 그냥 나에게 맡겨진 물리나 열심히 공부하자고 생각하며 20년 가까이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뒤 연세대에 돌아와 그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고 우리가 관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리고 또 하나 우연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2006년, 제가 미국에서 안식년을 지내고 있을 때 제가 연구원 시절 다녔던 미국의 캠퍼스 교회 목사님으로부터 우연히 연락이 왔습니다. 그 분께서 당신 교회에 와서 과학과 신앙에 대해 강의를 해달라고 하셨죠. 아는게 없어 다급해진 저는 동네 서점에 가서 책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는데 그 때 우연히 발견한 책이 프란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였습니다. 제목과 표지만 보고 조금 있어보여서(?) 꺼냈던 그 책이 굉장히 도움이 됐죠.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자가 신앙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기가 맡은 영역에서 정직하게 과학을 하는 모습이 제게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물리학의 유명한 교수이자 나중에 성공회 신부가 된 존 폴킹혼의 책을 몇 권 사서 읽어봤어요. 폴킹혼은 특히 입자물리학자여서 (저와) 비슷한 말(language)을 사용하고 있었고, 이 사람이 했던 치열한 고민과 해결책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들이 큰 공감이 되었습니다. 

[과 젊은 친구들 중에는 교회 안의 잘못된 과학에 대한 가르침 때문에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친구들을 위한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권]  일단 자연과학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이 전혀 불신앙도 아니고 죄도 아니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왜냐하면 자연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자연을 연구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이 주셨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내가 모차르트에 대해 알고 싶으면 위인전을 읽는 것보다 그 사람의 작품을 보는 것이 더 좋잖아요. 그 안에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들어있으니까. 마찬가지로 내가 하나님을 잘 알고 싶으면 하나님이 사람을 통해서 하신 일들을 열심히 연구하는 것도 좋지만 (그건 성경이죠)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하신 일을 연구해봐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리고 하나님이 자연을 통해서 하신 일을 연구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니까 걱정말고 과학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과 유익한 인터뷰 시간이었습니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권] 감사합니다.



이 글은 권영준 교수님과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권영준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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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5 / 2017.09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신대 사람들 (1) 최승언 교수

과신대와 함께 하는 분들을 인터뷰를 통해 만나보는 시간
과신대 사람들


이번 호의 주인공은 과신대 자문위원으로 활동해주고 계시며 지난 1회 콜로퀴움의 발제자로 만나뵀던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학과 최승언 교수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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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하 과)] 
안녕하세요, 최승언 교수님. 본격적인 인터뷰에 들어가기 앞서 간단한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최승언 교수 (이하 최)]
저는 1985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에서 천문학과 과학교육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교수이며, 지난 8년 동안은 낮은 교회(통합, 관악노회 소속)를 개척하여 섬기고 있습니다. 104기로 장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과신대에서는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입니다. 천문학을 통한 자연과학, 과학교육을 통한 사회과학, 신학을 통한 인문학에 대하여 조금씩 공부하면서 여러 학문 분야를 나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해 왔어요. 


[과] 과신대의 비전에 함께 하기로 결정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최] 유학시절부터 창조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들이 얘기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가를 이야기해 주고 싶었지요. 1985년 귀국 후에 나는 창조과학을 이야기하는 많은 분들을 만났지요. 그리고 매우 심한 논쟁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온누리 교회가 본산지이기에 그 교회를 다니면서 창조과학의 무의미함을 전해보려 하였지만 나를 둘러싼 견고한 무리들과 교회 권력, 그리고 극보수적인 신앙 신봉은 내가 더 이상 그 교회에 서 있을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요. 그리고 나만의 투쟁과 기도는 나로 하여금 장신대 학부의 “종교와 과학”, “현대과학의 이해”라는 학부 교양과목을 지난 20년간 가르치게 했고, 신대원 과정을 마칠 수 있게 했지요. 지금은 SNS를 통하여 많은 분들에게 창조과학의 어이없음을 쉽게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도 마음과 행동을 같이 할 수 있지만, 나의 젊은 시절은 그렇지 못했지요. 지금도 중세시대의 신앙관을 가진 성도들은 창조과학의 믿음을 참 신앙이라 믿고 있지요. 지금은 과학과 신학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나도 과학 혹은 신학을 공부하는 나이든 분들과 “이수포럼”을 매달 한 번씩 하고 있어요. 페북을 통해 우종학 교수와 연결되었고, 과신대를 열었기에 아주 쉽게 동참이 되었지요. 어쩌면 나는 창조과학 투쟁 1세대 중의 한 사람이 아닌가 하네요. 


[과] 지난 2월 과신대의 '첫' 콜로퀴움의 발제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주제가 <과학교육과 기독교> 였는데요, 아주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기독교인들에게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교육은 오랜시간 논란의 중심이었죠. 크리스찬들이 과학교육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또 다음 세대를 위한 과학 교육은 어때야 할까요?


[최] 고등학교까지의 과학교육은 과학지식을 이해하고, 문제를 풀어 정답을 내는 것이 거의 전부였지요. 정답을 잘 해결하는 것이 과학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과학을 공부하면 많은 과학지식(결과로서의 과학)을 알게 되지요. 그러나 과학교육에서는 과학을 하는 것(탐구, 사고 등을 포함하는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즐길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과학 활동에서는 모든 학문 영역이 융합적으로 일어나지요. 예를 들면 국어, 영어, 수학은 자신의 생각들과 표현들을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해석하는 도구가 되지요. 사회과학의 여러 영역들이 과학, 과학기술의 교육 및 연구에 영향을 줍니다. 이렇게 과학을 거시적인, 그리고 미시적인 안목을 갖고 공부하는 훈련이 참과학교육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에 의한 과학교육은 더 이상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지요. 이러한 의미에서도 창조과학은 과학교육과는 너무 멀리 있는 것이지요. 기독교인이건 비기독교이건 관계없이 참과학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물론 이를 수행하는 교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교수/학습에 대하여 전문가를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결과로서의 과학만을 과학교육으로 이해하면 과학지식이 많은 교사가 역량이 있는 교사가 되지만, 과정으로서의 과학에 대하여 무능한 교사지요. 미래 세대에는 검퓨터가 우리보다 더 많은 지식을 알고 있을 거예요.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으로서의 과학을 훈련해야 우리 세대가 미래에 희망이 있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어요. 예수님은 풍성한 삶을 함께 해주시는 분이지, 우리로 하여금 따분한 삶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참과학교육을 통하여 기독교인이나 비기독교인이나 예수님이 가르쳐 주시는 풍성한 삶으로 인도되었으면 합니다.


[과] 지구과학교육학과 전공 교수님이셔서 여쭤봅니다. 아무래도 창조과학과의 논쟁에서 가장 이슈가 되는 두 분야가 지구과학과 생물학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지구과학과 성경 사이의 균형 잡힌 시각이란 어떤 것일까요?


[최] 나는 생물학에 대하여 모르기에 화학진화와 생물 종의 진화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분야를 연구하는 분들에게 큰 실례를 범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내가 천문학을 공부했기에 우주가 생성되어 어떻게 시간에 따라 변화되어(이를 천문학에서는 우주의 진화라고 부릅니다) 왔는지를 이해하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굳이 표준빅뱅이론의 여러 모습들을 창세기의 우주 진화 표현과 비교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마도 창세기를 지금 썼다면 창세기 저자는 표준빅뱅이론으로 보여주는 우주의 모습을 그리면서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를 창조하셨고, 이 우주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리와 같이 하신다고 썼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창조의 하나님이 중요하지, 창조과학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천문학과 지구과학에서 과학자의 발견을 중심으로하는 해석을 비기독교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주 편협한 견해입니다. 과학자들의 발견과 해석인 우주의 진화, 땅의 진화를 과정으로서의 과학으로 공부하면서 창조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그 분이 나를 선택하셔서 풍성한 삶으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예수님의 구원, 성령님의 성화는 모두 같은 맥락에서 다루어져야 하겠지요. 우리나라 교회는 예수님의 구원에 너무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의 창조와 성령님의 성화는 덜 고려하는 것 같아 보입니다.) 


[과] 과학에 관심이 많은 크리스찬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 강의나 도서가 있으시다면?

[최] 과신대에서 추천하는 도서들이 좋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는 것은 간접 경험이고, 직접적인 경험으로서의 과학을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느낌이 남다르지요. 자신의 생각을 제한하지 말고, 다른 분들의 이야기에 귀를 열었으면 합니다. 


[과] 마지막으로 과신대 View 독자분들께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최] 우리는 모든 공부를 몇 가지로 압축하여 정리해 준 것으로 공부해 왔기에 그런 공부 스타일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면 그 분야에 대해 정리가 되어 전문가 같이 보이지만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연구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말하는 reviewer에 불과하지 하나님께서 주신 creator 혹은 creative follower의 역할은 훈련이 되어있지 않기에 하기 어렵습니다. 창조 신앙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내가 하나님께서 주신 창조의 역할을 자신의 각 삶의 분야에서 행동하는 것입니다. 과신대의 여러분들의 삶이 창조의 삶, 구원의 삶, 성화의 삶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 최승언 교수님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홈페이지 http://suchoe.snu.ac.kr 를 참고해주세요. **


이 글은 최승언 교수님과 서면으로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응해주신 최승언 교수님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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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04 / 2017.08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