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 남부 북클럽]

 

 

글_ 오세조

 


여행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좋은 안내서는 필수이다. 물론 사전 정보 없이 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경험적으로 보면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런 현상은 책도 마찬가지이다. 출판시장에 나오는 책들은 엄청나지만, 독자로서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다. 책의 사전 정보 없이 출판사의 화려한 홍보에 책을 구입하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대중들은 일단 유명 저자들의 책은 믿고 사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유명 저자라고 해도 다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유명 저자의 책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책은 재미가 없고, 너무 어렵다. 이처럼 책의 독자로서는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으며, 쉬운 책을 고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특별히 과학책의 경우는 더욱더 심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정모 관장의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이정모 관장 스스로가 밝혀 듯이 2007년부터 그동안 쓴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물론 출판을 위해 새로 손질은 했다. 과신대 회원으로서 반가웠던 점은 과신대의 대표인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교향곡』의 서평과, 과신대 자문위원인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기원』의 서평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모든 책들을 요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 대신 머리말에 등장하는 이정모 관장의 대학교 선배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정모 관장에 따르면, 그 대학선배는 노트를 4등분한 후, 두 번째와 세 번째 칸을 합하고는 이곳에 ‘책에서 얻은 정보’를 파란색 볼펜으로 쓴 후, 첫 번째 칸에는 관련 있는 ‘다른 책의 정보’를 빨간색 볼펜으로 적고, 네 번째 칸에는 검은색 볼펜으로 ‘독후감’을 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약 200권 정도를 정리했다고 한다. 물론 이정모 관장도 따라 했지만, 볼펜을 자주 잊어버려서 곧 포기했다고 한다. 하긴 이정모 관장이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볼펜이 필수였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화 된 현대에 이런 형식의 자신만의 책 노트를 볼펜이 없다고 못한다는 것은 핑계인 것 같다. 충분히 한 번 시도해볼만한 좋은 방법이다. 인터뷰를 기회로 이정모 관장과 페이스북 친구 된 지금, 한 가지 부러운 점은 이정모 관장이 다른 과학작가들과 매우 친하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이정모 관장의 성격 때문인지 그의 글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 그러나 신뢰가 간다.

 

요즈음에 ‘뇌호흡’ 등의 사이비과학이 점점 더 극성이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김우재 교수가 이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런 시대에 신뢰할만한 책을 추천하는 이정모 관장의 이 책은 올바른 과학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여행안내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단점. 바로 이정모 관장이 추천한 책을 사기 위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정모 관장의 말대로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구입한 책 가운데 읽게 되는 것이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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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심왕찬

 

어제는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 세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먹기 위해 모이는 북클럽으로, 책 나눔은 2순위입니다.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

 

어제는 백우인 선생님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샌드위치 대신 북클럽 지기가 요리한 닭볶음탕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가끔 이렇게 주 메뉴인 샌드위치 말고 다른 요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인간, Great Mystery' 1-7장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이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1장씩 발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한 사람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고, 각자 준비해온 발제를 듣고 나누게 되니 더 유익하고 풍성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박용덕 목사님과 서종원 선생님이 처음으로 참석해주셔서 어느덧 회원이 8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만남과 나눔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6월에는 마지막 목요일인 27일 저녁에 모여서 '인간, Great Mystery' 나머지 부분을 나눌 예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저녁 메뉴는 이변이 없는 한 샌드위치입니다. ^^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이나 메시지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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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김찬영

 

이번 모임에서는 <신 인간 과학>의 챕터 3에 해당하는 ‘정신’을 주제로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정신, 의식,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특히, 영어에서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과 한국어에서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이 다름을 지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리키는 영단어 ‘Mind’는 ‘심리철학(Mind of Philosophy)’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가슴이나 감정으로 이해되는 'Heart'가 아니라 머리나 이성으로 이해되는 ‘Mind’입니다. 즉, 서양권에서의 'Mind'는 마음의 이성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이성적인 능력보다는 감정적인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차이로 인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최경환 실장님이 심신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셨고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는 책에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인데 라디오에 비유하면서,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주파수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우리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와 관련하여 틸리히 신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박영식 교수님께서 설명하시기도 하고 또 다른 신학 이야기로 나갔는데 맥락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박영식 교수님께서 흥미로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에 대해서 인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이 인격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과 관계하는 데에 있어서 인격적이기 때문에 인격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는 아마도 신의 자체적 속성으로서의 인격성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 속에서의 인격성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과학보다는 신학적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도 자유로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다과를 즐기면서 즐겁게 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에는 1학기 종강 모임으로 모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참여해 주세요.

 

  • 다음 모임: 6월 25일 낮 12시
  •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8층 박영식 교수 연구실
  • 읽을 책: <신 인간 과학> 4부 새로운 세계관을 향하여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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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경환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신 인간 과학> 2부 “생명”을 함께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맘 편히 이야기하며 질문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립니다.

 

1. 신학은 항상 '성서 적합성'과 '현실 적합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과 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명’을 같은 수준에서 생각해야 하는가? 부활은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인가? 예수는 생명을 주러 왔다고 했을 때, 그건 생물학적 생명을 말하는 건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건 또 뭔가?

 

3. 우리는 흔히 창조라고 하면,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 뭔가를 나누기도 하고, 분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둠'을 만드셨는가? 하나님이 '물'을 만드셨는가? 아니다. 있는 것 중에서 가르고, 나누고, 모으시면서 창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해해야 하나님의 창조를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있은 것 중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막고, 보호하는 것도 창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창조에 대해서 은연중에 어떤 선입견을 갖기고 있는 것 같다.

 

4. 즉각적 섭리가 아니라 시간적이고 매개적인 섭리로 이해해야 물리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에게 엄청난 지식을 집어 넣을 때, 그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질병을 갑자기(순식간에) 치료한다고 했을 때, 과연 몸에 어떤 무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를 통해서 진화를 일으키시고 느리게 창조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주의 진화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담아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신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치유 활동을 하시는데, 우리 생각으로는 뭔가 빨리 진행되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게 병일 수도 있다.

 

5.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날 물리 세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 어쩌면 우연이야말로 실재고, 우리는 그걸로 필연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자연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우연의 사건이다. 우연 속에서 리듬을 만든 것이다. 사건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자연의 습관이 자연법칙이다.

 

6. 신학적 의미에서 '죄'를 자연과학적으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폭력'이지 않을까? 하나님의 자유는 나의 자유가 아니라 상대방을 자유케 하는 자유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힘을 주는 전능이다.

 

 

부천 북클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참여해 주세요.

 

  • 다음 모임: 5월 28일 저녁 7시
  •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8층 박영식 교수 연구실
  • 읽을 책: <신 인간 과학> 3부 인간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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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우종학 

 

과신대 관악북클럽 모임 장소를 이번 한 번만 바꾸어 모이게 되어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렸습니다. 이 동네에 마지막으로 온 것이 20년도 넘은 듯한데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변해서. ^^

 

어제 북클럽 모임에서 지구의 태고성에 관해 주로 과학적 관점의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데이비스 영의 두꺼운 책을 마지막으로 다루는 날이었고, 구형규 선생님의 발제로 지층, 화석, 시간 측정, 변성암 화성암 들을 다루는 챕터들을 훑으며 공부했고, 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중에서 아이소크론법에 대해 주로 발제를 했습니다.

 

다양한 책들을 공부하지만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그리고 책의 내용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지질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해서 다루는 내용이 많이 나왔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반창조과학 모임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주제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요. 과신대는 무신론의 도전과 과학시대에 건전한 창조신학을 세우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단체입니다.

 

카페 '거기'를 처음 가보았습니다. 백우인 목사님이 카페를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많이 늦었네요. 건강식 그리고 맛도 최고인 샌드위치와 커피가 먼저 몸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곤 오랜만에 보는 분들의 수다로 워밍업을 하다가 책의 내용으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는 과학자가 아닌 분들, 평범하게 교회 다니는 분들이 신앙과 과학의 문제, 그리고 전반적인 신앙과 교회,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종종 바쁠 때는 북클럽 모임에 가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오가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만 쏟지 않는다면 항상 모임을 통해서 재충전이 됩니다.

 

이 두꺼운 책을 끝냈고 6월에는 얇은 책으로 모입니다. 바로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입니다. 과학적이고 신학적인 내용보다는 15명의 저자들의 경험담과 스토리가 담겨있는 책이라 쑤욱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하시면 좋습니다.

 

 

  • 6월 관악북클럽 모임
  • 책: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IVP, 2019)
  • 날짜: 6월 14일 금 저녁 7시
  • 장소: 서울대입구역 더처치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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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자연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원자와 분자, 암석과 별이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리진’(IVP) 3장에 나오는 이 짧은 문장이 11장 이후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열쇠가 되어줍니다.

 

처음부터 불사의 존재로 지어진 존재가 인간인 것도 아니며(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자연 역시 이전에 없었던 가시와 엉겅퀴를 어느 순간 갑자기 내기 시작한 것도 아니겠습니다.

 

성서는 참 어려운 책입니다. 특히 창세기 앞장은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이해 가능합니다. 과학의 도움이 없으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지성이라는 훈련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독서를 하고 토론에 참가하며 시행착오를 견뎌내어서 성서와 과학의 간극을 메꿔내겠습니다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학교 시절에 진화론 문제에 정답을 쓰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서 일부러 틀린 답안을 선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자녀 세대에게조차 그런 인지부조화의 상황을 죄책감까지 안고 맞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창조과학을 가르치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진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소리소문없이 고민하는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실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오리진’ 13장에는 자녀 연령에 따라 이 주제를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있습니다.

 

 

발제를 준비한 최윤희 님이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면 하나님을 배신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라는 것은 자유의지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이겠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성서를 통해서든 과학을 통해서든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할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5.18 때 왜 사람들이 가족과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며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가, 절절히 깨달아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부여한 자유 의지라는 것을요” / 박철성 님)

 

 

다음 모임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과학, 전통, 신학, 성경에 대한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인간의 타락과 진화’(새물결플러스)를 읽고 토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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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제주 북클럽 모임에서는 가족 바베큐 파티가 있었습니다. 함께 읽은 책은 존 월튼의 <아담과 하와의 잃어버린 세계>였습니다. 명제 7~12을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어제 맛난 바베큐 스테이크와 포도주와 직접 볶으신 커피 모두 일품이었습니다. 나무 가득한 정원도 좋았구요. 그리고 이번 책은 우리가 성경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읽고 공부해야 할 지 커다란 혜안을 준 것 같아요. 저자의 관점에서 또는 당시 역사적 상황과 독자들의 상황에서 읽혀져야 한다고 배워왔지만... 우리는 그동안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또는 수동적으로 배우고 받아들였단 생각이 들어요."

 

※ 제주 북클럽 문의: paeng@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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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강서구로 북클럽]

 

 

4월 25일 강서/구로 북클럽의 두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5~9장까지를 읽고 나눴습니다.
한 사람이 1장씩 맡아서 발제를 하니 부담도 적고 좋았습니다.

 


윤세진 선생님의 짧은 후기를 덧붙입니다.

 

"비 오는 목요일 저녁, 독서 모임이 시작되었다.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를 읽는 두 번째 시간이었다. 벌써 익숙해진 맴버들, 오늘 새로 정태훈 형제가 왔다. 아이티 계열에서 일하고 있다는.. 오늘은 주로 신학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했고, 백우인 샘의 탁월한 설명력은 첫 번째 모임과 다름없이 모든 이야기의 핵심을 잘 찔러 주었다. 꼬마 손님 두명(소명, 소원)도 함께 하고, 맛있는 음식이 함께했던 두 번째 모임.. 마음은 벌써 세 번째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다음 모임은 5월 30일(목)에 할 예정이며, 나눌 책은 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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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 남부 북클럽]

 

 

글 | 김남수

 

* 다음 모임은 6월 8일(토)에 이정모 관장님의 2019년 신간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과 함께 합니다.

 

 

문과 출신이다. 흔히 세인들이 말하는 “문돌이”


회사에서도 글 쓰는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많다. 비록 작성하는 글의 대부분이 최대한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감사 보고서'이기 때문에 인간미가 없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보고서를 못 쓴다는 이야기는 듣지 않는 편이다.

 

굳이 얼굴에 금칠을 하는 듯한 말을 하는 까닭은, 우종학 교수님과 이정모 관장님처럼 이과 출신이면서 멋진 글을 쓰는 분들 때문이다. 문돌이들이 설 땅이 어디인지... 가뜩이나 AI, 빅데이터 등의 신기술로 인해 전통적인 문과 영역이 위협받고 있는 마 당에... 위기다^^

 

이정모 관장님의 책은 술술 읽히는데, 그 속에 뭔가가 있다. 통찰력과 인간에 대한 애정, 사회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과학은 이정모 관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소재일 뿐. 그래서인지 쉽다. 과학은 어렵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책. 그것이 이 책을 마주한 첫 생각이다.

 

 

두 번째로는 “기-승-전-정치”로 전개되는 에피소드가 많다는 것이다. 다소 정파적으로 느껴질 만큼 이정모 관장님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비판을 많이 한다. 아마도 이 책의 에피소드는 대부분 2016년 즈음에 쓰신 듯하다. 유독 그때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촛불, 광화문, 헌법재판소, 각종 주사, 국정교과서, 민주주의, 봄.


덕분에 이 책을 읽는 동안 그 당시 추억들이 생각나서 좋았다. 친구들과 광화문에 갔던 일, 아들과 함께 아스팔트 위에 앉았던 기억. 처음 보는 분이 나누어준 초에 촛불을 이어 붙이면서 느꼈던 감정. 그리고 정교분리를 주장하며 교회에서 정치 이야기를 하면 안 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세상을 향한 사랑으로 충만해야 할 교회에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말라니... 도대체 정치와 연결되지 않은 일상사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스스로를 격리하고 고립시키는 교회가 씁쓸.

 

마지막으로는, 본인의 견해를 분명하고 단호하게 주장하는 것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이다. 올림픽 응원을 통해 국가주의를 비판하고, 처참한 환경에서 사육되고 있는 동물과 관련된 분노, 환경 보호에 대한 명확한 입장. 특히 육식을 싫어하는 사람으로서 물고기가 통증을 느낀다는 것, 민주적인 투표를 할 정도로 지능이 있다는 내용은 새로운 과제를 받은 느낌. 물고기도 먹지 말아야 하는가 고민을 하게 될 듯하다.

 

이처럼 이정모 관장님은 과학을 소재로 다양한 분야에 명확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런 모습이 예수쟁이들의 본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좋은게 좋다고 넘어가면서 상대방이 듣기 좋을 말만 하는 교회 문화를 예수님이 어찌 생각하실지. 예수의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두렵고 떨림이 있는 가운데 사랑과 용기가 필요하다.

 

* 생각을 듣고 싶은 주제가 많네요.. 교회는 AI시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교회와 동성애. 생활인(또는 감사담당자)으로서 어떻게 예수쟁이로 살아가야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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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경환

 

지난 4월 9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부천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신 인간 과학>입니다. 오늘은 1장 우주에 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면 할 일을 다 했고, 세계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신은 세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연 자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범신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범재신론도 있다(panentheism). 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신이 자연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범재신론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초월해 계시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재하고 성령이 세상을 감싸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의 두 가지, ‘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영을 바람이나 숨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침투하는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와 같은 로고스의 역할, 성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분으로 해석한다.

 

2. 과학에는 신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런데 과학자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 전체를 볼 수 없다. 부분을 볼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삶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전체를 말하려는 욕구, 욕망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이유. 왜 인간은 뭔가를 궁금해 할까? 왜 원인을 찾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인과율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인과율이 깨진다. 왜 존재하는지, 왜 거기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원인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원인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원인의 그물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4. 뒤르는 '자연과학은 대상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하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물의 외면을 보고 관찰하려고 하는 사고, 반면 사물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 이 둘은 다를 수 있다. 과학은 대상의 일부를 쪼개서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의 연관성과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는 시도는 과학적인 연구만으론 안 된다.

 

5. 직관과 상상의 방랑. 과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관과 비과학적인 상상이 과학자의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뮈토스를 로고스로 설명하는 것, 하지만 뮈토스의 영역이 존재한다.

 

6. 모든 진리 주장에는 믿음이 걸려 있다.

 

7. 신앙은 어떻게 검증 가능한가? 종말에 이르러?

 

8. 우리 삶에서 원인과 결과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