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 최경환

 

지난 4월 9일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부천 북클럽 모임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책은 여러 명의 학자들의 대담 내용을 엮은 <신 인간 과학>입니다. 오늘은 1장 우주에 대한 내용을 나눴습니다. 함께 이야기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봤습니다.

 

1. 신은 세계 밖에 있는 존재인가? 이신론자들은 신이 세상을 만들면 할 일을 다 했고, 세계는 프로그램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스피노자의 경우, ‘신 즉 자연’이라는 말을 했는데, 신은 세계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을 움직이게 하는 것, 자연 자체,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인다. 범신론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는 범재신론도 있다(panentheism). 신 안에 모든 것이 있다. 신이 자연을 품고 있는 그림이다.

 

그럼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판넨베르크는 삼위일체론적으로 설명하면서 범재신론과 유사한 설명을 한다. 하나님 아버지는 초월해 계시지만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내재하고 성령이 세상을 감싸는 이미지라 할 수 있다.

 

성서에서 하나님에 대한 정의 두 가지, ‘하나님은 영이다’, ‘하나님은 사랑이다.’ 판넨베르크는 영을 바람이나 숨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비유가 아니라 실제에 가까운 설명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침투하는 바람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주의 질서와 같은 로고스의 역할, 성령은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분으로 해석한다.

 

2. 과학에는 신이 필요한가? 필요 없다. 그런데 과학자는 종교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연 전체를 볼 수 없다. 부분을 볼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삶에 대한 전체적인 지식을 알고 싶어 하고, 그 전체를 말하려는 욕구, 욕망은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자연에 대한 동기뿐 아니라 내용 자체도 종교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생명이란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3. 존재와 이유. 왜 인간은 뭔가를 궁금해 할까? 왜 원인을 찾고 싶은가? 어쩌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일 수 있는데, 그걸 무시할 수 있을까? 인과율적인 세계관은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서는 필요한 것일 수 있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세계관에서는 이런 인과율이 깨진다. 왜 존재하는지, 왜 거기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원인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적어도 원인이 있더라도 단순하게 제시할 수 없는 사건이 존재할 수 있다.

 

기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에게서 원인을 찾으려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그것만이 원인은 아닐 수 있다. 원인의 그물망이 엄청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할 수도, 다 알 수도 없다. 원인이 없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어느 하나로 원인을 파악할 수는 없다.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4. 뒤르는 '자연과학은 대상 자체에만 매달리고 있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다.'라고 말한다. 관계의 구조를 파악하려고 하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기 힘들다.

 

사물의 외면을 보고 관찰하려고 하는 사고, 반면 사물의 내면을 보려는 시선, 이 둘은 다를 수 있다. 과학은 대상의 일부를 쪼개서 관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구조의 연관성과 전체적인 구조를 보려는 시도는 과학적인 연구만으론 안 된다.

 

5. 직관과 상상의 방랑. 과학은 교과서가 아니다. 정답이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직관과 비과학적인 상상이 과학자의 종교적 심성이 아닐까? 존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사람들에게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설명하는 것. 뮈토스를 로고스로 설명하는 것, 하지만 뮈토스의 영역이 존재한다.

 

6. 모든 진리 주장에는 믿음이 걸려 있다.

 

7. 신앙은 어떻게 검증 가능한가? 종말에 이르러?

 

8. 우리 삶에서 원인과 결과는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어느 것 하나로 설명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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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판교 북클럽]

 

글_ 강사은

 

2018년 2월에 시작한 분당/판교 북클럽이 1년을 훌쩍 넘어 새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진(IVP)’을 포함하여 총 8권의 책을 발제하고 토론하고 후기를 쓰는 시간으로 가득 채웠는데요. 첫 모임부터 꾸준히 이 모임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멀리 판교에까지 오셔서 <기초과정 1>을 강의해 주시기도 했고 최근에는 김근주 교수님을 모시고 과신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돌을 전후해서 ‘오리진’을 읽는 것은 돌잔치 이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이 모임을 시작했는지를 되새기고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년 이내로 지어졌을 리가 없는 증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우주와 동식물의 진화 증거는 제 신앙의 지평도 넓혀 주었습니다. 이 과학의 증거들이 아니었다면 문자적인 성서 해석/적용과 경험적인 사실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제가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삶’(디트리히 본 회퍼)이 그리스도인의 삶 아니겠습니까? 신이 없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하고 오롯이 홀로 서서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삶이죠. 한 마디 더 붙이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죠.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북클럽이지만 단독자의 삶들을 엮어 외롭지 않게 꿋꿋이 서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북클럽이 하고 있다 싶습니다.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는 1년에 1회 정도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을 선정해서 새로 참여하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 ‘오리진’의 남은 1/3을 읽고 토론합니다. 1년에 한번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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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심왕찬

 

 

어제(3/28)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의 첫 모임이 있었습니다.


북클럽 베테랑 1명과 무경험자 4명이 모여서 '과학과 하나님의 존재' 머리말부터 4장까지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어제는 마침 모임 장소를 제공해주시는 백우인 선생님의 생일이어서 백선생님의 맛있는 샌드위치로 저녁을 함께 하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시작했습니다. 

 

북클럽 참여와 인도 경험이 풍부하신 백우인 선생님께서 발제를 해주시고, 각 장마다 질문과 의견을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책 내용을 잘 요약, 설명해주셔서 읽은 내용을 기억하고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책 내용에 대한 여러 질문과 토론, 창조과학 및 교회의 현주소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았던 것은, 4장의 내용 중에서, 하나님께서 (빅뱅과 진화를 통해) 창조를 하신 후에 가만히 계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주에 부여하시고 붙들고 계시는 법칙 안에서 끊임없이 자연과 상호작용을 통해 섭리하고 계시며, 인간과 자연에게도 그 안에서 자유를 주셔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모임은 4월 25일(목)에 모여서, 5장부터 9장까지 각자 돌아가며 1장씩 발제하고 나누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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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사역의 꽃은 바로 회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운영되는 북클럽 모임입니다.

현재 전국적으로, 아니 전 세계적으로

12개의 모임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책부터

현대 과학과 최근 성서해석에 대한 책까지


대학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교수님부터

중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연령과 성별과 출신에 상관없이

함께 모여서 즐겁게 책을 읽고 토론합니다.


과신대 북클럽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 있으니 함께 하실 분은

아래 연락처로 문의해 주세요.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클럽을 소개합니다. 

지역 북클럽을 클릭하시면

모임 소식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남부 북클럽]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


[서울구디 북클럽: 청소년]


[장신대 북클럽]


[분당/판교 북클럽]


[인천/부천 북클럽]


[수원남부 북클럽]


[광주 북클럽]


[전주 북클럽]


[제주 북클럽]


[미국 파사데나 북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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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남부 북클럽]






| 오세조 (수원남부 북클럽 회원)



비가 온 다음날인지 조금은 춥기도 하고 조금은 세상이 깨끗해진 느낌이 드는 오늘, 오리진을 함께 읽기 위해 모임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했다.

잠시 후 약속시간이 되자, 회원분들이 한 두 분씩 도착했다. 서로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오늘 발제를 맡으신 정훈재님이 발제를 시작했다.

참고로 오늘이 수원남부 북클럽 모임에서 가장 많이 모인 날인 것 같다. 특별히 오늘 처음 합류하신 박상용 전도사님은 올해 성공회대를 졸업하시고 이제 부제서품을 기다리시는 분이신데 오스트리아에서 신학석사를 마치신 분이시다.

또한 오늘 발제를 맡아주신 정훈재님께서는 분당/판교 북클럽에서 활동하시는 회원분이신데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도 마침 ‘오리진’으로 진행을 해서 오늘은 특별강사로 초빙을 한 것이다.

오늘 함께 읽어야 발제부분은 오리진 1-6장까지로 1-2장, 3-4장, 5-6장까지 2장씩 발제를 한 후, 질문 및 토의시간을 함께 했다. 개인적으로는 함께 한 어린 학생분들이 발제내용을 잘 이해할까 걱정했는데...

이런, 이런.. 내가 학생회원분들이 어리다고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질문도 하는 것이다.

발제가 끝난 후에, 김남수님은 오늘 학생들에게서 오랜만에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셨다고 하셨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 초롱초롱한 눈빛이 앞으로 수원남부 북클럽만의 매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발제와 토론이 다 끝난 후에 회원분들의 각자 스케줄때문에 점심식사는 하지 못하고 다음 일정과 몇 가지만을 토의한 후 다음 만남을 소망하며 헤어졌다.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을 잠시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으시는 분이신데, 우리는 그분을 기독교 교리에 가두는 것은 아닌가?

또한 나이는 어리지만, 상상력이 풍부한 어린 학생들이 소위 목회자라는 나보다 하나님의 사랑을 더 느끼고 있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이래서 어린아이같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을까?

다음 번 책인 이정모 관장님의 ‘저도 과학은 어렵습니다’의 발제날이 더욱 더 기다려지는 것은 아마도 초롱초롱한 눈빛을 가진 어린 회원님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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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클레어는 종군 간호사 출신의 당찬 잉글랜드 여성입니다. 우연히 2백년 전 스코틀랜드로 가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짜임새 있게 잘 엮은 미드 '아웃랜더'의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여러 복잡한 상황 속에서 2백년 앞선 역사 지식, 의학 지식, 과학 지식을 이용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클레어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다름아닌 '마녀'입니다.


이런 상황이 21세기에도 그다지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과학을 현대판 마녀로 정죄하거나 과학의 이름으로 신앙을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해 버리기도 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솔직히 요즈음 사람들에게는 신앙 보다는 과학이 더 신뢰할 만한 무엇이긴 합니다. 교회 설교 중에도 자주 듣지 않습니까? '과학적으로' 라는 말이죠. 사회 생활을 하면서 배경이 다른 지인들과 대화할 때 '성경에 쓰여 있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보다는 '과학적으로' 라는 말이 더 잘 먹히는 세상이죠. 이왕이면 수치도 기억하면 멋있기까지 합니다. 바꿔 말하면 과학은 날마다 새로와지는데 신앙의 언어는 너무나 old해져 있습니다. 첫 독자들이 마주한 창세기는 그렇지 않았을텐데 말이죠.


18세기에 떨어진 클레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리진'(IVP) 1장~6장의 내용을 알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습니다. 그렇다면 마녀 재판도 없을테고 클레어의 선한 의지 그대로 잘 받아들여졌을 텐데요. 오리진 전반부는 앞으로 200년이 지난 뒤에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과 과학의 '관계'는 어떠한가?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 과학도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도 이 책의 설명을 넘어서지 않을 것 같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는 중고등 자녀에게도 과학과 신앙의 조화로운 관계 설정을 위한 기본 소양 도서로 권하고 싶군요.


'오리진'(IVP)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초를 다지기에 좋은 책입니다. 앞으로 2회 더 이 책으로 토론할 분당/판교 북클럽에 참가하실 분들을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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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광주 북클럽]






| 김재호 (광주 북클럽지기)



오늘(39)에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 '광주 북클럽' 첫모임이 있었습니다.

 

첫 회원으로 5명의 회원이 모여 무크따 1~2장을 함께 읽으며 첫 이야기를 열었는데요, 모임에는 과학자 출신의 교사, 의사선생님, 수영선생님, 무명관 관장님, IT계열 회사원(비기독교인)으로 다양한 영역의 회원들이 모인 덕에 즐겁고 흥미로운 독서모임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비기독교인이면서도 과학과 신학의 대화에 깊은 흥미를 갖고 참여하신 회원님의 비판적 견해가 창조과학에 기초한 신앙이 얼마나 객관적인 논리와 지지를 얻을 수 있겠는지에 대한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교재는 우종학 교수님의 무크따 1~2장이었으며, 함께 읽고 주제별 논제들을 다루었습니다.

 

시작과 함께 모임을 강타했던 주제는 과학을 품지 못한 기독교에 대한 일반인의 선입견이었습니다. 실제로 회원들이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로부터 기독교가 얼마나 비과학적이라고 여겨져왔는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하는 태도를 갖고 있을 것 같았다'는 일반인들의 선입견과 '진화론에 대한 맹목적 거부감 표출'로 대변되는 기독교인들의 태도 등의 경험담은 본 모임이 왜 의미있는지에 대한 반증이 되기도 하였습니다.

 

이어서, 진화이론과 진화주의를 구분하여 이해하려는 관점, 갈릴레오 재판에 대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이해, 형이상학적 관점과 과학을 엮어본 진화창조론 등의 이야기들은 회원들에게 일종의 신앙적 해방감 같은 느낌을 안겨주기도 하였습니다.

 

특히나 기독교인이면서도 '이기적 유전자(리처드 도킨스)' 등 진화에 관한 도서들에 큰 흥미를 느끼던 모습에 불편감을 느꼈던 기억들에 대한 해소의 시간이었습니다.

 

광주지역에서도 관신대 북클럽을 통해 기독교계에서 창조와 과학에 대한 자유롭고 폭넓은 대화 문화가 자리잡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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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제주 북클럽]




제주 북클럽은 제주대학교 팽동국 교수님께서 인도해 주십니다.

매주 멋진 카페에서 책을 읽고 토론하는 북클럽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성공회대학교 김기석 교수님이 쓰신 

<신학자의 과학 산책>을 읽었고

다음 모임부터는 새로운 책을 읽는다고 합니다. 

제주에 계신 분들은 꼭 참석해 보세요.



일시: 2019년 3월 8일 금요일 저녁 8시 반

장소: 에스프레소 라운지 (제주시 한라대학로 1, 712-5151)

내용: 김기석 저 <신학자의 과학산책> 4부와 5부


문의: paeng@jejunu.ac.kr (팽동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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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광주에서도 과신대 북클럽이~^^

과신대 북클럽 광주모임을 시작해보려합니다. 첫모임 교재는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입니다. 바른 창조신앙의 관점을 기르기 위한 과학과 신학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하는 많은 신앙인들을 초대합니다. 누구든지 참여 가능합니다.


📌 일시: 3월 9일(토) 6시30분
📌 장소: 광주광역시 북구 서하로 245번길 42, 2F
📌 교재: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 북클럽지기: 김재호 선생님



과신대 북클럽 모임이 확대되어 이제는 청소년 북클럽 모임까지 생겼습니다. 과학과 신앙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관심있는 청소년들이 편하게 참석해서 맘껏 이야기 나누는 시간으로 준비했습니다. 평소 궁금했던 내용을 실컷 이야기해 보아요~


👉  일시: 3월 8일(금) 저녁 7시
👉 장소: 서울시 구로구 디지털로271 디지털밸리 3차 604호
👉교재: 우종학, <과학시대의 도전과 기독교의 응답>, 새물결플러스
👉북클럽지기: 백우인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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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교수님을 만나다!

이상희, 윤신영, <인류의 기원>(사이언스북스, 2015)


김영웅


마침 UC Riverside에서 4시에 출발할 수 있다고 하셨다. 그렇잖아도 임택규 집사님이 저녁 식사의 의사를 먼저 내비치셨던 찰나였다. 문제는 나였다. 퇴근 후 아들을 픽업해서 함께 오기가 좀 그랬기 때문이었다. 3년 간 둘이 함께 살 땐 얌전히 잘 따라 다녔는데, 얼마 전부턴 불편하다는 의사를 확실히 표현하기 시작했고 난 이를 무시할 수 없었다. 모두에게 유익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마침 아내가 오늘은 일찍 퇴근해서 아들을 대신 픽업할 수 있다고 했다. 아싸! 서둘러 몇몇 분에게 연락을 했다. 그러는 와중 이런 생각을 이동우 목사님과 문순옥 박사님도 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두 함께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상희 교수님이 충분히 도착하실 수 있는 5시 30분에 만나기로 했다.


4시 30분쯤 연락이 왔다. 갑자기 뜻밖의 일이 생겨서 조금 늦으시겠다는 메시지였다. 그리고 리버사이드에는 진눈깨비가 날리고 있다고 하셨다! 요즘 캘리포니아 날씨가 기록적인 추위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 리버사이드에는 눈이 된 비가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눈 소식이 참 신선하고 반갑기도 했지만, 그건 함께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지는 순간이기도 했기에 아쉬운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문순옥 박사님께서 맛있고 건강한 저녁을 사주셨고, 이상희 교수님을 위해 투고(to go)용으로 하나를 더 주문하셨다. 그렇잖아도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리버사이드에서 진눈깨비와 교통체증을 뚫고 서둘러 오시는 교수님께 안전하게 오시라고 말씀은 드렸지만, 내심 걱정도 됐고, 아무것도 못 드신 채 강의에 임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문 박사님의 어머니다우신 배려로 그렇게 금방 해결이 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강의 30분 전쯤에 도착하신 이상희 교수님께선 그 음식을 아주 맛있게 잘 드셨다. 마음이 참 좋았다. 과학과 신학, 그리고 고인류학... 이런 것들 이전에 우린 사람이지... 서로 배려하고 챙겨주며 돕는 공동체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다.


'인류의 기원'이라는 책은 이상희 교수님이 고인류학자로서 우리 인간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역사적 연구 결과와 해석들을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춰 쓰신 작품이다. 작년엔 이 책이 총 6개 국어로 번역이 되었고, 5개 국어로 출판이 되었다. 굵직굵직한 상들도 여럿 몰고 왔다. TV와 라디오 방송 출연 기회도 선사했고, 이 책이 각광을 받는 시기와 겹쳐서 이상희 교수님은 학문적인 연구 성과로 테뉴어를 받으셨다. 자칫 따분할 수도 있고 인간이 원숭이로부터 진화했다는 미신 같은 잘못된 지식 때문에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만한 분야를 이렇게 재미있고 일반인의 눈높이에 딱 맞도록 이야기식으로 나왔던 책이 그 동안 존재했던가. 이 책 한 권으로 간략하고 재미나게 인류의 기원에 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정말 독자로선 행운이다.



약 2시간에 걸친 열정적인 강의를 간단히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인류의 기원은 진화라는 개념의 연장선 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특정한 목적성 (이를테면 진보)을 가지지도 않고 무작위적으로 환경변화와 유전자 변이의 복합적인 상호관계에 의해 생겨난 좌충우돌의 역사다. 특히, 지금까지 잘못 알려졌던, 네 발로 기어다니거나 나무를 타고 다니던, 머리가 작은 원숭이 (원숭이가 아니다. 공통조상이라 해야 맞는 말이다. 다윈은 한 번도 원숭이가 사람 됐다고 말한 적 없다)가 어느 날 고등동물 (?, 인간이 가장 고등동물이며 진화의 종착점이라고 보는 건 잘못된 개념이다. 그게 사실이라면, 현재의 다른 생물들은 인간으로 진화하는 어디 즈음엔가 놓여 있다는 말이 된다. 다른 생물들은 불완전하고 인간이 가장 완전한 생물체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건 진화에 관련된 책을 조금만 찾아서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로 진화(?)하기 위해 두 발로 걷기 시작하고 머리가 커지기 시작해서 현생 인류가 탄생했다는, 소위 단선적인 모델은 오류가 많다는 게 밝혀졌다 (허나, 아직 교과서엔 그렇게 배운다 ㅜㅜ). 오류의 이유는 부족한 증거자료를 부풀려 해석한 현생 인류의 한계였다.


우리가 ‘인류의 기원’ 하면 떠오르는 점진적인 그림 하나가 있다. 교과서에서도 나오고 여러 군데에서 아마 한 두 번쯤은 모든 사람이 봤을 것이다. 그 모델이 바로 오류가 많이 발견되어 수정되어야만 하는 단선적인 모델이다. 그러나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머리가 커지기 시작한 사건이라든지 하는 어떤 하나의 관점으로 인류의 진화를 설명할 수 없다는 게 밝혀지고 있다. 인류의 기원은 어떤 단계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시작하는 식의 점진적이고 단선적인 패턴이 아니다. 오히려 백인과 황인과 흑인의 피부색의 경계가 모호하듯 많은 화석기록과 혈청분석결과, 그리고 분자생물학적인 실험결과들이 누적되면서, 각 단계가 상당히 많이 중첩되어 있는, 소위 가지가 많은 나무 형태의 모델을 따른다는 게 현재까지 밝혀진 고인류학의 동태가 되겠다. 아름다운 하나의 수학 방정식으로 보여줄 수 없는, 복잡다단한 좌충우돌의 역사. 바로 우리 인간의 역사가 되겠다. 우리 인간, 그렇게 고귀하거나 퓨어하지도 않다.


난 기독교인으로서 인간이 다른 생물체에 비하여 특별한 존재라고는 믿지만 (하나님 형상), 그것은 결코 육체적인 기원과 그 발달, 진화 과정까지도 특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런 부분까지 확장시키는 것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중세와 그 이전 시대의 우주관, 그리고 지금도 나 자신을 세상의 중심에 놓고 세상을 바라보는 나 중심의 세계관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교만, 그것이 바로 원죄의 의미 아니던가.


마지막 질의 시간에 나온 질문 중에 과신대에서 아주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질문이 하나 나왔었다. 페북 광고를 보고 처음 모임에 참석하셨던 분으로부터였다. 창세기에서 말하는 인간, 아담의 의미에 대한 것이었다. 창세기에는 인간이 여섯 째날 하나님이 직접 흙으로 만드시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의 기원’에 대한 증거자료들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 모순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과학과 신학을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상희 교수님의 ‘인류의 기원’은 물론 이런 질문에는 답을 할 수가 없다. 신학책이 아니라 고인류학의 대중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은 과신대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지난 번 모임부터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과신대의 방향은 창조과학의 모순과 오류를 밝혀내어 그들을 무력화하는 것에 그치면 안 된다. 반동적인 세력에 다시 반동적인 세력으로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목적이라면, 별 의미를 찾을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대로 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성경 해석을 현대 과학의 눈으로 봤을 때도 모순이 없고 갈등이 일어나지 않을 만큼 제대로 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창세기가 신화라는 전제가 부득이하게 필요한데, 이게 참 난제다. 이성적인 문제 같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오래토록 각인된 가치관과 세계관의 문제다. 시대가 지나면서 바른 성경해석으로 진화가 진행되기 위해서 과신대는 바르게 각인된 성경관을 가진 후대들을 많이 양성해야만 한다. 진화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집단, 공동체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시간이 흐르고 후대가 평가할 사항이다. 우리가 늦은 밤까지 모여 이렇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그런 작은 변화에 동조하는 것이다.



약 2시간에 걸친 강의였는데, 어젯밤 3시간밖에 못 주무셨음에도 열정적으로 나눠주신 이상희 교수님께 감사드린다. 이상희 교수님, 영광이었어요! 강의를 마치고 주차장으로 함께 걸어가는 길에서 모임 분위기가 참 좋았다고 말씀해주셨다. 기분이 좋았다. 작년부터 줄곧 일방적이고 딱딱한 형식의 강의에 조금 힘들어지셨는데, 진지하면서도 편하고 중간중간에 스스럼 없는 질문과 답변이 있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다음에 또 와주시기로 하셨다.^^ 언젠가는 나올 다음 책을 기대한다.


다음 파사데나 과신대 모임은 3월 27일 수요일 저녁 7시 같은 장소에서 ‘아담의 역사성 논쟁’이란 책을 함께 읽고 나누기로 했다. 이번처럼 저자 직강이 없는 한 과학 관련 책 하나, 신학 관련 책 하나, 이런 패턴으로 진행할 생각이다. 발제를 담당해 주시기로 하신 이지형 목사님께도 감사를 드린다. 어제 늦은 밤까지 열정을 보여주신 모든 참석자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우리 모임이 하나의 작은 불쏘시개가 되어 바른 성경해석으로 가는 진화에 일조를 할 수 있길 기원한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