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일시 : 2019년 7월 19일(금) 오후 7시
장소 : 성공회 분당교회(https://www.skhbundang.or.kr/)
책 : 피터앤즈의 ‘성경 영감설’

 

 

— 굽먹이냐 삶먹이냐.

 

부먹/찍먹보다 더 유서 깊은 논쟁이 성서 번역에서의 굽먹/삶먹 논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유월절에 관한 율법에서 (히브리어 원문 상)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는 ‘구워’ 먹을 것을, 신명기, 역대하에서는 ‘삶아’ 먹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NIV에서 ‘구워’ 먹는 것으로 통일된 것은 그 나름의 ‘번역철학’에 기인한 것이었군요.

 

“출 12:12-13(“...그 고기를….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와 신 16:5-7(“... 그 고기를 구워먹고…”)에서 출애굽기의 강조점은 아주 분명하지만 신명기의 경우 히브리어 원문에서 ‘삶아서[베잇-쉰-라멛] 먹고’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NIV 신명기의 구절이 ‘삶다’의 의미가 아니라 ‘굽다’의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NIV가 이렇게 다룬 이유는 동일한 법이 서로 모순되게 진술되었을 리가 없다는 성경관에 근거한 ‘번역철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언어적 사실을 숨겨서는 안된다. 대하 35:13절도 ‘삶아’인데 NIV는 ‘굽고’로 번역되었다.”(pp. 127-128 요약)

 

뭐 그렇다고 저자 피터앤즈가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강조를 하지는 않습니다. 원어를 공부하면 뭐하겠습니까? 번역을 하겠지요.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저는 이 말 보다는 “번역은 창작이다”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된 인간의 책 성서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66권 정경이 완성된 것은 약 4세기경입니다. 확정된 성서 목록은 367년 아타나시우스 서간에 처음으로 등장하죠. 성서가 ‘하나님의 책’이라고 강조되었던 비중에 비해 ‘인간의 책’이라는 점은 거의 강조되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150년간 고대 근동 문헌들의 발견은 성서를 새로 보게 합니다. 저자는 “성서는 역사적 산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둘은 한쪽만 선택할 수 있거나 충돌되는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한 성육신 유비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정경 형성사에서 보듯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인정한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죠. 성서는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전 인류에게도 가치있는 고전이겠습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 구약은, 성서는

 

다신교적 환경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신은 제국의 신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노예들의 신이었습니다. 인간을 노예가 아닌 존귀한 자로, 심지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여긴 것은 당시 사회상에서는 아주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입니다. 성서가 쓰여진 시대의 메시지가 그러할진대 노예 제도의 정당성 제공을 위해, 여성 인권 차별의 근거와 성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용도로 성서가 이용되는 것을 정경 66권이 이미 완성되고 인쇄술과 휴대용 전자기기의 발달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구약성경의 권위 혹은 규범성에 대해 숙고할 때 성경의 성육신적 차원을 떼어놓아서는 안된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규칙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경의 성육신적 요소는 오늘까지 지속된다. 각 세대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 세대가 살고 있는 세계와 복음이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무대 뒤의 하나님’

 

구약성서 안의 제각기 다른 하나님에 대한 묘사들은 다양한 색깔과 질감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초상화를 이루는 것과도 같은데요. 한편, 인간의 책이기도 한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과 ‘무대 뒤의 하나님’ 즉 실재의 하나님에 대한 구분된 이해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성서를 가까이 하는 우리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 작은 소회

 

이번 모임에서 어떤 분은 삶은 옥수수로 입맛을 돋궈 주셔서, 어떤 분은 미국 출장 후 집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참석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먹거리를 장만하고 챙기는 것, 출장으로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는 것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인데 말이죠. ^^

 

— 다음 모임 안내

 

다음 모임은 8월 23일(금) 저녁 7:30분에 피터 앤즈의 ‘성서 영감설’ 4장~끝까지 함께 읽고 토론하게 됩니다.
분당/판교 지역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참석하실 분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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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 남부 북클럽]

 

 

일시 : 2019년 7월 6일(토) 오전 10:30분
장소 : 성공회 제자교회(http://www.agnes.or.kr)

 

어색한 상황에서 ‘날씨 이야기’로 먼저 대화를 시작해 보는 것은 고전적이지만 참 좋은 방법입니다. 아이 엄지 손가락에 생긴 습진 이야기나 언제 ios 새 버전이 나올지와 같은 개인적인 관심사보다 훨씬 공감을 얻을 확률도 높고 어색함도 쉽게 풀리기 마련이지요.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가나안 성도가 모인 7월 모임에서는 날씨보다 공감대를 형성하기 더 쉬운 ‘아주 오래되고 역동적인 우주’ 이야기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해 보니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래층 이웃에게 “우리 우주가 참 오래되고 역동적이죠?” 또는 “얼마 전 지구를 위협할 수 있는 소행성을 한국 천문학자들이 찾았다지요?”라고 했다가는 아마 ‘이것은 뭥미~?’ 하는 무안함을 대하게 될 것 같습니다. 우주는 하늘보다 더 크고 외계인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가 당연히 관심을 가질 것 같지만 이런 주제는 북클럽이니까 가능한 것이겠습니다.

 

 

우주는 이런 질문을 갖게 합니다.

 

1. 광대한 우주는 꼭 존재해야 하는가? 물질은 어디서 기원했는가? 우주 존재의 의미는 무엇인가?
2. 우주는 왜 수학적인가? 자연법칙은 어떻게 기원했는가?
3. 우주의 우발성은 어떻게 지성을 탄생시켰나?
4. 인간은 어떻게 우주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나? 우주의 수학성과 인간의 이성은 어떻게 연결되었나?
5. 우주는 왜 인간이 탄생하기에 적합한 역사를 가졌나?
/ 대화(강영안, 우종학)

 

우주 만큼이나 동식물 진화의 역사도 여러 질문과 신학적 쟁점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합니다. ‘기적적인 창조’와 ‘자연적 방법’은 대립되는 것일까요? ‘기적적인 창조’로 인간이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신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것일까요? 진화를 통해 현생 인류로 이어지는 호모 사피엔스가 나왔다는 것은 인간을 그저 하등한 동물로 취급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야 할까요?

 

우스갯소리로 먹고 사는 고민 없이 과학 연구를 하려면 찰스다윈처럼 결혼을 잘하든지, 멘델처럼 수도원 수사가 되든지 해야 하지 않겠냐며 한바탕 웃기도 했습니다. 재정 확보를 위해 정부 연구 과제를 따내야 하는 한국 과학자들의 어려움이 생각나서이기도 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교회 옆 사제관에서 놀고 있는 딸아이를 기다리던 중에 북클럽 멤버인 박상용 성공회 부제님으로부터 몇 권의 책을 소개받았습니다. 대니얼 데닛의 책을 좋아한다고 하시는데요. ‘오리진’이 끝나고 어떤 책이 다음 도서로 선정될지 기대됩니다.

 

 

수원남부 북클럽은 8월은 쉬고 9월 7일(토)에 ‘오리진’(IVP) 11장~끝까지를 대상으로 모입니다. 정기/비정기적으로 참가하실 분들을 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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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강서/구로 북클럽]

 

 

6월 27일 저녁에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

네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먹북클럽 답게 백우인 선생님이

평소보다 더 신경써서 준비하신 맛있고 건강한 샌드위치와

샐러드로 즐거운 식사를 하고

책 나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인간, Great Mystery' 두번째 시간이었는데,

아쉽게 못오신 분들도 계셨지만

장현일 이사님과 김고운님이 함께 해주셔서

더 풍성한 나눔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주욱 함께 하실 것을 기대합니다. ^^

 

 

* 다음 모임은 7월 25일(목)에 가질 예정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댓글이나 메시지로 말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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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강서/구로 북클럽의 먹방 사진들이 무척 부러웠던 다음날 분당/판교 북클럽 6월 28일(금) 모임은 사실 🍻 비어 데이였습니다. 😁


안 그래도 평소 허심탄회한 대화가 오가는 모임인데 이 날은 3시간 30분 동안 긴 대화를 나눴더랬습니다. 🍺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사진에서 보다시피 양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플라시보 효과는 충분했습니다. ^^

 

지난 주일 교회력에 따른 성서 본문은 누가복음 8:26 이하의 마귀 들린 사람 이야기였습니다. 기억하실 겁니다. 돼지떼가 떼죽음 당하는 이야기로 이어지죠.


인공지능, 빅뱅, 블랙홀, 양자역학을 충분히 이해하는 석학이 아니더라도 성서 속의 이런 이야기를 보면서 마귀를 내쫓는다는 이야기는 현 시대의 시각으로 보기에 좀 불편한 구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에 들린 사람을 정신 질환이나 발작 증세를 앓았던 사람으로, 마귀를 쫓는 행위는 이를 치유하는 것이었다는 ‘세련된’ 해석에 귀가 솔깃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런 해석은 유사과학이 창세기 앞 장을 과학적 사실이라고 보며 해석하는 방식과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마귀 들림을 정신질환으로 치환하는 순간 예수님의 치유 행위도 일종의 (고도의) 의료행위처럼 보이죠. 제게는 저자의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는 해석으로 보입니다.

 

 

인류 다지역 기원설과 인류 역사 30만년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아담과 하와가 역사 속에 실존한 인물이었다 할지라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가 (후하게 쳐서 만 년 전의) 이 부부의 후손일 확률은 매우 희박해 보입니다. 이 희박한 연결성 안에서 전통적인 타락,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의) 원죄의 개념이 우리에게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생각은 충분히 개연성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5장에서 언급한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에 대해서 마치 마귀 내쫓음을 신경정신과적으로 해석하듯이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그런 해석은 뭔가를 놓치는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교리 경찰을 배출하는 결과를 내는 한국의 배타적인 기독교 역사 속에서 우리는 “A는 B이다” 식의 깔끔한 명제를 요구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싶습니다. 그런데 삶이 그다지 만만치 않던데 혹시 어떠신가요? “내가 해봤는데 말이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

 

*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 7월 모임에서는 피터 앤즈의 <성육신의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CLC) 책으로 토론 시간을 갖습니다. 정기/비정기적으로 참여를 희망하시는 분을 언제나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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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수원 남부 북클럽]

 

 

글_ 오세조

 


여행을 성공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좋은 안내서는 필수이다. 물론 사전 정보 없이 여행을 할 수도 있지만, 그런 경우 경험적으로 보면 여행을 통해 얻는 것이 별로 없다. 이런 현상은 책도 마찬가지이다. 출판시장에 나오는 책들은 엄청나지만, 독자로서 과연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지 난감할 때가 많다. 책의 사전 정보 없이 출판사의 화려한 홍보에 책을 구입하면, 낭패를 볼 때가 많다. 이런 이유로 대중들은 일단 유명 저자들의 책은 믿고 사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유명 저자라고 해도 다 신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유명 저자의 책에 대해 각 분야 전문가들의 평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책은 재미가 없고, 너무 어렵다. 이처럼 책의 독자로서는 전문가들에게도 인정받으며, 쉬운 책을 고르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특별히 과학책의 경우는 더욱더 심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정모 관장의 『과학책은 처음입니다만』은 가뭄 속의 단비와 같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은 이정모 관장 스스로가 밝혀 듯이 2007년부터 그동안 쓴 서평들을 모은 책이다. 물론 출판을 위해 새로 손질은 했다. 과신대 회원으로서 반가웠던 점은 과신대의 대표인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교향곡』의 서평과, 과신대 자문위원인 이상희 교수의 『인류의 기원』의 서평도 함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모든 책들을 요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의미도 없다. 대신 머리말에 등장하는 이정모 관장의 대학교 선배의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이정모 관장에 따르면, 그 대학선배는 노트를 4등분한 후, 두 번째와 세 번째 칸을 합하고는 이곳에 ‘책에서 얻은 정보’를 파란색 볼펜으로 쓴 후, 첫 번째 칸에는 관련 있는 ‘다른 책의 정보’를 빨간색 볼펜으로 적고, 네 번째 칸에는 검은색 볼펜으로 ‘독후감’을 썼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약 200권 정도를 정리했다고 한다. 물론 이정모 관장도 따라 했지만, 볼펜을 자주 잊어버려서 곧 포기했다고 한다. 하긴 이정모 관장이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컴퓨터가 발달하지 않은 시절이라, 볼펜이 필수였다.

 

하지만 컴퓨터와 인터넷이 보급화 된 현대에 이런 형식의 자신만의 책 노트를 볼펜이 없다고 못한다는 것은 핑계인 것 같다. 충분히 한 번 시도해볼만한 좋은 방법이다. 인터뷰를 기회로 이정모 관장과 페이스북 친구 된 지금, 한 가지 부러운 점은 이정모 관장이 다른 과학작가들과 매우 친하다는 것이다. 하긴 이런 이정모 관장의 성격 때문인지 그의 글은 딱딱하지 않고 부드럽게 읽힌다. 그러나 신뢰가 간다.

 

요즈음에 ‘뇌호흡’ 등의 사이비과학이 점점 더 극성이다. 캐나다 오타와 대학의 김우재 교수가 이를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이런 시대에 신뢰할만한 책을 추천하는 이정모 관장의 이 책은 올바른 과학지식을 얻고자 하는 독자들에게는 좋은 여행안내서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장점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한 가지 단점이 있다. 그것도 아주 치명적인 단점. 바로 이정모 관장이 추천한 책을 사기 위해서 경제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정모 관장의 말대로 책은 읽으려고 사는 것이 아니다. 구입한 책 가운데 읽게 되는 것이다. 이 말에 나는 전적으로 동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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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심왕찬

 

어제는 서울 강서/구로 북클럽 세 번째 모임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먹기 위해 모이는 북클럽으로, 책 나눔은 2순위입니다. 이름을 바꿔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얘기가 나올 정도입니다. ^^

 

어제는 백우인 선생님의 몸에 좋고 맛도 좋은 샌드위치 대신 북클럽 지기가 요리한 닭볶음탕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가끔 이렇게 주 메뉴인 샌드위치 말고 다른 요리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식사를 맛있게 하고,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인간, Great Mystery' 1-7장을 읽고 나누었습니다.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이해와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나누는 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자 1장씩 발제를 준비하고 있는데, 어느 한 사람에 부담이 집중되지 않고, 각자 준비해온 발제를 듣고 나누게 되니 더 유익하고 풍성한 것 같습니다. 어제는 박용덕 목사님과 서종원 선생님이 처음으로 참석해주셔서 어느덧 회원이 8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만남과 나눔이 이어지길 소망합니다.

 

 

6월에는 마지막 목요일인 27일 저녁에 모여서 '인간, Great Mystery' 나머지 부분을 나눌 예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저녁 메뉴는 이변이 없는 한 샌드위치입니다. ^^ 관심 있으신 분들은 댓글이나 메시지로 문의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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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김찬영

 

이번 모임에서는 <신 인간 과학>의 챕터 3에 해당하는 ‘정신’을 주제로 모임이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정신, 의식, 영혼에 대해서 이야기가 진행되었는데 특히, 영어에서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과 한국어에서의 마음을 가리키는 표현이 다름을 지적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마음을 가리키는 영단어 ‘Mind’는 ‘심리철학(Mind of Philosophy)’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에서 가슴이나 감정으로 이해되는 'Heart'가 아니라 머리나 이성으로 이해되는 ‘Mind’입니다. 즉, 서양권에서의 'Mind'는 마음의 이성적인 부분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반면, 우리가 사용하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이성적인 능력보다는 감정적인 능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언어의 차이로 인해 개념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이해가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에는 최경환 실장님이 심신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셨고 육체와 영혼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이는 책에 나왔던 이야기 중 하나인데 라디오에 비유하면서, ‘영혼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주파수와 연결되는 방식으로 우리의 심리가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와 관련하여 틸리히 신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박영식 교수님께서 설명하시기도 하고 또 다른 신학 이야기로 나갔는데 맥락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박영식 교수님께서 흥미로운 설명을 해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에 대해서 인격적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신이 인격적인 속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과 관계하는 데에 있어서 인격적이기 때문에 인격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요약하자면 이는 아마도 신의 자체적 속성으로서의 인격성이 아니라 인간과 신의 관계 속에서의 인격성을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과학보다는 신학적인 이야기가 많았지만 이런저런 이야기도 자유로이 오가는 분위기에서 다과를 즐기면서 즐겁게 논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다음에는 1학기 종강 모임으로 모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참여해 주세요.

 

  • 다음 모임: 6월 25일 낮 12시
  •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8층 박영식 교수 연구실
  • 읽을 책: <신 인간 과학> 4부 새로운 세계관을 향하여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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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최경환

 

박영식 교수님 연구실에서 <신 인간 과학> 2부 “생명”을 함께 읽었습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맘 편히 이야기하며 질문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함께 나눈 이야기를 간략하게 정리해서 올립니다.

 

1. 신학은 항상 '성서 적합성'과 '현실 적합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2. 성경에서 말하는 ‘생명’과 생물학에서 말하는 ‘생명’을 같은 수준에서 생각해야 하는가? 부활은 생물학적 죽음의 극복인가? 예수는 생명을 주러 왔다고 했을 때, 그건 생물학적 생명을 말하는 건가? 만약 그게 아니라면 그건 또 뭔가?

 

3. 우리는 흔히 창조라고 하면,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있는 것 중에서 뭔가를 나누기도 하고, 분류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어둠'을 만드셨는가? 하나님이 '물'을 만드셨는가? 아니다. 있는 것 중에서 가르고, 나누고, 모으시면서 창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 이해해야 하나님의 창조를 역동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있은 것 중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막고, 보호하는 것도 창조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창조에 대해서 은연중에 어떤 선입견을 갖기고 있는 것 같다.

 

4. 즉각적 섭리가 아니라 시간적이고 매개적인 섭리로 이해해야 물리적인 세계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에게 엄청난 지식을 집어 넣을 때, 그 아이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질병을 갑자기(순식간에) 치료한다고 했을 때, 과연 몸에 어떤 무리가 생기지 않을까? 하나님께서 오랜 역사를 통해서 진화를 일으키시고 느리게 창조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우주의 진화도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담아내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신유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치유 활동을 하시는데, 우리 생각으로는 뭔가 빨리 진행되면 좋겠지만, 오히려 그게 병일 수도 있다.

 

5. '하나님에게는 우연이 없다.' 이 말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오늘날 물리 세계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의 연속이다. 어쩌면 우연이야말로 실재고, 우리는 그걸로 필연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자연법칙이라는 것도 결국 우연의 사건이다. 우연 속에서 리듬을 만든 것이다. 사건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든 것이다. 자연의 습관이 자연법칙이다.

 

6. 신학적 의미에서 '죄'를 자연과학적으로 번역하면 어떻게 될까? '폭력'이지 않을까? 하나님의 자유는 나의 자유가 아니라 상대방을 자유케 하는 자유이지 않을까? 하나님이 전능하다는 것은 상대방에서 힘을 주는 전능이다.

 

 

부천 북클럽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언제든지 참여해 주세요.

 

  • 다음 모임: 5월 28일 저녁 7시
  • 장소: 서울신학대학교 100주년기념관 8층 박영식 교수 연구실
  • 읽을 책: <신 인간 과학> 3부 인간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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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 우종학 

 

과신대 관악북클럽 모임 장소를 이번 한 번만 바꾸어 모이게 되어 구로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렸습니다. 이 동네에 마지막으로 온 것이 20년도 넘은 듯한데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변해서. ^^

 

어제 북클럽 모임에서 지구의 태고성에 관해 주로 과학적 관점의 내용을 나누었습니다. 데이비스 영의 두꺼운 책을 마지막으로 다루는 날이었고, 구형규 선생님의 발제로 지층, 화석, 시간 측정, 변성암 화성암 들을 다루는 챕터들을 훑으며 공부했고, 저는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중에서 아이소크론법에 대해 주로 발제를 했습니다.

 

다양한 책들을 공부하지만 주제가 주제이다 보니, 그리고 책의 내용이 그렇다 보니 아무래도 창조과학자들의 주장과 지질학자들의 주장을 비교해서 다루는 내용이 많이 나왔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도 있었는데, 반창조과학 모임 같은 느낌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 오늘은 주제가 그래서 어쩔 수 없었지요. 과신대는 무신론의 도전과 과학시대에 건전한 창조신학을 세우려는 목표를 갖고 있는 단체입니다.

 

카페 '거기'를 처음 가보았습니다. 백우인 목사님이 카페를 시작한 지 꽤 되었는데 많이 늦었네요. 건강식 그리고 맛도 최고인 샌드위치와 커피가 먼저 몸을 달래주었습니다.

 

 

그리곤 오랜만에 보는 분들의 수다로 워밍업을 하다가 책의 내용으로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저에게는 과학자가 아닌 분들, 평범하게 교회 다니는 분들이 신앙과 과학의 문제, 그리고 전반적인 신앙과 교회, 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종종 바쁠 때는 북클럽 모임에 가는 게 힘들 때도 있지만 오가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만 쏟지 않는다면 항상 모임을 통해서 재충전이 됩니다.

 

이 두꺼운 책을 끝냈고 6월에는 얇은 책으로 모입니다. 바로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입니다. 과학적이고 신학적인 내용보다는 15명의 저자들의 경험담과 스토리가 담겨있는 책이라 쑤욱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함께 하시면 좋습니다.

 

 

  • 6월 관악북클럽 모임
  • 책: <진화는 어떻게 내 생각을 바꾸었나?> (IVP, 2019)
  • 날짜: 6월 14일 금 저녁 7시
  • 장소: 서울대입구역 더처치
  • 문의: 070-4320-2123 / scitheo.offic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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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자연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원자와 분자, 암석과 별이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리진’(IVP) 3장에 나오는 이 짧은 문장이 11장 이후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열쇠가 되어줍니다.

 

처음부터 불사의 존재로 지어진 존재가 인간인 것도 아니며(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자연 역시 이전에 없었던 가시와 엉겅퀴를 어느 순간 갑자기 내기 시작한 것도 아니겠습니다.

 

성서는 참 어려운 책입니다. 특히 창세기 앞장은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이해 가능합니다. 과학의 도움이 없으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지성이라는 훈련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독서를 하고 토론에 참가하며 시행착오를 견뎌내어서 성서와 과학의 간극을 메꿔내겠습니다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학교 시절에 진화론 문제에 정답을 쓰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서 일부러 틀린 답안을 선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자녀 세대에게조차 그런 인지부조화의 상황을 죄책감까지 안고 맞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창조과학을 가르치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진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소리소문없이 고민하는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실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오리진’ 13장에는 자녀 연령에 따라 이 주제를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있습니다.

 

 

발제를 준비한 최윤희 님이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면 하나님을 배신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라는 것은 자유의지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이겠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성서를 통해서든 과학을 통해서든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할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5.18 때 왜 사람들이 가족과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며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가, 절절히 깨달아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부여한 자유 의지라는 것을요” / 박철성 님)

 

 

다음 모임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과학, 전통, 신학, 성경에 대한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인간의 타락과 진화’(새물결플러스)를 읽고 토론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