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사진은 지난 기초과정 1후에 우종학 교수님과의 대담 장면입니다.)



| 김진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이번에는 피터 엔즈<아담의 진화> 책 1~4장으로 독서모임을 하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아담과는 진화가 별 상관없다고 보는 편이어서, 책 제목이 그리 내키지 않아 이런 자리가 없었다면 혼자 읽지는 않을 법한 책 제목이었는데요, 이번 모임을 통해서 저는 책 맨 앞에 있는 추천사, 역자 서문부터 서론, 본문 1~4장까지 읽었습니다.

첫 부분부터 계속 읽어 나가보니까 책 제목이 ‘아담의 진화’인 이유는 ‘아담이 진화했다’는 아니고, 현대 과학의 발견에 따라서 ‘아담’에 대한 성경 해석은 진화해왔다는 뜻이고 또 이 책은 ‘진화’를 밝혀내는 목적의 책이 아니라 ‘진화’를 사실로 전제하여 ‘아담’을 어떻게 해석할 지를 이야기하기 위한 책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으며, 대상 독자는 진화론을 거부할 수 없는 진리라고 인정하여 신앙이 흔들리는 사람, 진화를 인정하고 진지하게 다루는 사람이며, 역자는 진화에 대한 판단을 유보하거나 진화론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도 유익할 것이라고 합니다.  -역자 서문 첫 페이지





이 책의 추천사, 역자 서문에는 이 책의 주제, 특징, 구성, 대상 독자 정도를 이야기 하였고, 서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중요성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서론까지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 다루는 주제의 심각성을 알게 되었고, 본문은 '1부: 창세기 해석', '2부: 바울이 언급한 아담 해석'으로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번 독서 모임에서는 1~4장까지 다루기로 하였기 때문에 본문은 4장까지만 읽었습니다.


본문까지 읽어보니까 창조 기사의 실체를 폭로한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 과정에서 나타난 창조 기사의 특징을 이야기 함으로서 또 다른 의미를 도출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에게는 창조기사가 이런 특징을 가진 문학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다만 이 책이 저에게 가져다 주는 의미는 창세기를 좀더 자세하게 알려준다는 점에 의의가 있었는데요, 독서모임에 참석해보니까, 이 주제의 이야기는 교계에서 금기시되고 이런 주제를 다루다가 쫓겨난 사례도 있다고 해서 이 주제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있어서 이 책은 정보를 좀더 얻을 수 있는 수단이지만, 주제가 금기시되는 만큼 대중적으로 읽히기에는 어렵다는 점이 정말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왜 이런 주제가 금기시되고, 아담을 역사 인물로 보는 기괴한 성경해석이 왜 판을 치는가에 대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저같이 어느정도 공부를 하고, 20세 이후부터 교회를 다니기 시작하면, 어렸을 때부터 생겨온 사고 체계가 있기 때문에 성경 해석이 이상하면 성경해석을 의심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 과학과 배치되는 성경얘기부터 들으면, 과학을 의심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 문제는 정말 심각하다고 봅니다. 어떤 것이든 비판적으로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렸을 때 기괴한 해석을 듣고 자라면,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못 하게 된다는 점이 정말 심각하게 보입니다. 그렇게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성경을 다각도로 자유롭게 보기 어려워진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음 시간에는 제2부 “바울이 생각한 아담을 이해하기”를 다루는데요, 지금까지 봐왔듯이 많은 교인들은 성경 해석에 대한 의심없이 문자주의적으로 읽어보며 창세기나 바울 기사를 읽어왔었는데, ‘문자주의’라는 틀을 벗었을 때, 바울의 말들을 어떻게 해석할 지 알아보는 것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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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정훈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6명이 모였을 때 조중식 님의 발제로 10장부터 시작.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에서 나온 견해에 대한 저자의 비판을 다루는 부분에서 시작했습니다.. 도킨스는 인도되지 않은 자연적 과정들이 생물학적 정보의 기원을 설명할 수 있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누적적 체가름 또는 ‘선택’과 체가름 과정의 결과가 다음 번 과정에 되먹임 되었을 것이라고 하며 낮은 확률을 높이려 합니다. 28마리의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28자로 된 구절을 무작위하게 한글자씩 타이핑하는 것으로 시뮬레이션도 합니다. 지나치게 낮은 확률을 높이기 위해 표적글자에 대한 비교 및 보존 단계가 추가됩니다. 저자는 이러한 도킨스의 해결책이 자기 기만에 불과하다고 비판합니다. ‘눈먼 진화’를 얘기하면서 실제로는 정보의 기원이 유기체 안의 어딘가에 들어 있다고 가정했다는 점이 비판점이었습니다.


정훈재: 도킨스가 이러한 기제들을 가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 이유없이 이런 주장을 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한 부분은 다루지 않았기에 궁금하게 된다. 물론 저자의 얘기대로라면 도킨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주장이긴 하다.

김진희: 도킨스가 어떤 때는 더 논리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저자는 조금 논리적 비약이 보이기도 한다.

조중식: 확률을 줄이려는 목적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그 의도는 이해가 된다.

김진희: 단순한 우연이 아니고 우연과 필연의 결합. 중간 진화 단계도 있지 않았을까.

조중식: 선택된 형질이 보존되어야 하는데, 그 보존의 판단에는 지적인 정보가 필요한 것 아닌가 라는게 저자의 입장

석기병: 이게 꼭 확률의 문제인가? 확률이 낮다에 대한 판단 기준은 무엇인가?

석기병: 생명의 탄생이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개입하셨는가? 우리가 진화를 바라보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듯.

심현준: 레녹스는 도킨스 같은 사람들이 지적 설계론을 과학이 아니라 하는 데에 대하여, 도킨스의 설명도 그리 과학적이지 않다는 지적을 하는 것 같다.


이렇게 10장을 시작하였습니다. 열정적인 조중식 샘, 차분하고 정확하게 포인트를 잡아주신 석기병 샘, 늘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선을 담아내는 김진희 샘, 작가의 희화화 코드를 읽어내신 심현준 샘의 말씀을 들으면서 후기를 정리하였습니다. 11장에서 정보 이론은 저자의 설명도 부족하거니와, 관련된 내용을 이전에 알고 있던 사람도 없었어서 논의가 그렇게 진전되지는 못했습니다. 8월달에 오신다는 우 교수님께 물어보자는 의견도 있었지요. 레녹스의 입장은 지적 설계론을 과학으로 인정 받고자 하는 목적이 보인다는 심현준 샘의 의견에는 동의하지만, 가정이나 전제가 좀 엄밀하지 않아서 약점이 보이는 듯 해서 아쉽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빈틈의 신’이란 주제로 여러가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지적 설계론’ 진영과 ‘진화적 창조론’ 진영의 차이와 과연 ‘과학’이란 무엇인가 등에 대해서도 나누었습니다. 그러면서 논의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전에 대해서 기독교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 아니냐, 창조과학이나 지적 설계론을 얘기하는 것 보다 그게 더 중요한게 아니냐는 심현준 샘의 문제제기에 여러가지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많이 흘러, 12장의 내용은 빨리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조중식 샘의 탁월한 설명을 들으면서 데이비드 흄의 오류에 대한 저자의 논의를 따라갔지만, 제 입장에서는 흄의 논리에 대해서 ‘이 괴상한 논리는 뭘까?’ 라는 인상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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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레녹스는 '지적 설계론'의 전통적 입장에 충실한 것으로 보입니다. 제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도킨스에 대응하는 그의 논리는 다소 약해 보입니다. 논리의 가정이 엄밀하지 않다는 느낌이어서 안타까왔습니다. 이런 제 개인적인 느낌과 상관없이 북클럽 자체는 매우 재미있는 토론들이 이루어졌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으면서, 현재의 교회의 상태에 걱정하면서, 다가올 새로운 과학의 변화에 어떻게 생각을 해야할지 같이 고민하면서 많은 얘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다음 책은 피터 엔즈의 <아담의 진화> 입니다. 모임 날짜는 8/14일 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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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 김유정 (서울남부 북클럽 회원)


6월 서울 남부 북클럽에서는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마지막 부분인 7장에서 9장까지를 읽고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리스터 맥그래스는 7장에서 “과학이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의미 추구에 답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파고들며, 과학이 그러한 답을 하고자 할 때에 생기는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8장에서는 과학으로부터 윤리의 토대를 찾으려는 시도들에서 생기는 문제들을 여러 사례를 들며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인 9장에서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 등 여러 이야기들이 한데 모여 서로 보완하며 건강하게 대화를 나눌 때, 삶과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된다며 결론을 맺습니다.


맥그래스는 궁극적인 질문들에 대한 반응을 세 가지로 분류했습니다. 그러한 질문들에 대해 첫째는 답하기를 피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을 통해 대답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며, 셋째는 다중적인 의미 지도를 사용해서 답하려는 것입니다. 맥그래스는 세 번째 방법을 지지하는 입장, 즉 과학과 신앙이 상호 보완적으로 만들어가는 풍성한 실재관을 통해 궁극적 질문에 답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번 북클럽 모임에서, 맥그래스의 분류에 기반해 자신은 궁극적 질문들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돌아보고, 나누어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과학과 도덕의 관계에 대해 토론하면서, (멜서스의 인구론에서 주장하는 차별과 동성애와 에이즈의 관계 등) 과학을 기반으로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하고자 하는 시도에 대한 사례들을 공유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난민 문제 등 현재의 한국 기독교가 봉착한 윤리, 사회적 이슈와 연결지어서도 이야기를 나누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하여 세 차례에 걸친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책 모임을 마무리지었습니다. 이는 과학의 서사와 신앙의 서사가 이루는 조화에 대해 배우는 시간이었을 뿐 아니라, 책의 내용과 관련된 토론을 통해 실제적 이슈에 대한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나누어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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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혜리 (전주 북클럽 회원)





이번 모임에서는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의 3장과 4장을 함께 읽고 고민하였다. 두 장 모두 과학에 대한 종교적 환상을 걷어내는 작업과 같았다. 먼저 관측기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과학철학자 이언 해킹에 따르면, 관측기구는 과학자의 이론으로부터 독립적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관측기구에 따른 결과가 이론과 상반될 수도, 일치할 수도 있는 거다. 만약, 과학자가 자신의 이론에 반하는 관측 결과가 나올 때는 어떠할까? 이 질문은 모임을 뜨겁게 달구는 흥밋거리였다.


우리는 세 가지 경우에 대해 생각을 나누었다. 첫째는 변칙 사례 해결을 위해 과학자가 대응하는 것이다. 더욱 발전적인 과학자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관측 결과가 이론과 다를 지라도, 이론의 설명력에 손을 드는 것이었다. 이 경우에 과학자들은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사례를 무시하고 지나간다. 마지막으로는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변칙 사례가 늘어나 쌓이게 되면, 과학자들은 변칙 사례 문제를 해결하는 이론으로 마음을 돌린다. 이는 논증실증주의가 무너지고 토마스 쿤이 말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과학처럼 객관적 데이터를 놓고 활동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진리의 탐구와 같은 ‘예측’을 하는 과학 활동을 하는 것이 아닌, ‘설명’이 가능한 과학을 추구한다. 이것이 비판적 실재에 대한 수용이며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다. 이번 6월 모임을 통해서 각자가 비판적 실재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면 어떠할까 생각했다. 나와 의견이 다를지라도, 상대방의 또 다른 설명을 덧붙여가며 사랑을 키워나갈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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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빈틈의 신’ vs. ‘빈틈의 진화’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9장 발제를 준비하며)


아래 3개의 언어를 혹시 이해하시겠는지요?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
שיחה בין מדע לתיאולוגיה
Συζήτηση μεταξύ επιστήμης και θεολογίας

몰라도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Google이 있으니까요. ^^ (굳이 번역기를 돌리지 않아도 이 글 아래에서 알려드릴테니 찾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의 저자 ‘존 레녹스’는 굳이 구분하자면 지적설계론자인 것 같습니다. 이 점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내내 총기를 잃지 말아야겠다는, 약간은 불편한 생각으로 읽고 있습니다. 그 총기가 다 닳지 않았나 모르겠습니다만 이 책에서 배울 만한 점도 자주 발견하게 되는데요. 특히 무신론주의에 대해서 논증하는 태도나 방법에 대해서는 배울 것이 있다 싶습니다. 비록 ‘이건 아닌데’ 싶은 경우도 있지만 말이죠. 그리고 최근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설교하신 모 목사님이 이 책의 추천글을 썼다는 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는 무척 새삼스럽습니다.


생명의 기원과 관련해, 지적 설계론자는 ‘빈틈의 신’을 내세운다는 비판을 받고 존 레녹스는 이 책 9장에서 ‘빈틈의 진화’(또는 ‘빈틈의 다윈’)으로 그 비판을 미러링합니다. ‘과학과 신학’이라는 양날의 검을 들고 어느 부분은 과학의 날로 또 어느 부분은 신학의 날로, 혹은 두 날로 동시에 재단해야 할지를 고민하게 되는데요. 매우 그럴듯해 보이는 문구를 발견하면 “어? 이거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싶다가도 ‘과학’과 ‘신학’이라는 두 날을 적절히 사용해 보면 평정심을 다시 유지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한편으론 내공이 많이 부족하니 날을 좀더 갈아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합니다.


이제 앞서 3개의 언어로 적어본 ‘과학과 신학의 대화’ 문구에 대해서 정리를 해야겠습니다. 존 레녹스는 이 3개의 언어를 번역기 혹은 언어에 대한 지식을 활용해 이해 가능한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하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이것은 여러 단어의 가능한 조합으로부터 이 글을 읽고 있는 분께 언어로 읽히는 과정이겠습니다. (지금 우리는 힌두어 ‘विज्ञान और धर्मशास्त्र के बीच एक बातचीत’를 한글 ‘과학과 신학의 대화’로 번역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구문론적 정보’를 획득했다고 해서 ‘의미론적 정보’를 얻었다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 ‘우주의 중심이 지구이다’ 혹은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말은 종교적 의미로는 은혜로울 수도 있겠지만 과학의 의미로 보면 말이 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과학으로 볼 때 말이 되지 않는 것을 굳이 종교에서 차용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다. 인간 마음 속의 종교적 깨달음이 한 창조주가 지으신 우주의 이치와도 상통하는 것이 신비롭게도 맞을테니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은 종교의 ‘우주의 중심이 인간이다’는 (종교적) 표현에 대해서 관용하는 자세가 있는 것 같지만 종교가 최근의 발언처럼 종교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 과학적 사실이라고 우기는 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요.


어떤 ‘과학’의 날과 ‘신학’의 날을 들고 계신지요?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의미론적 정보를 획득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저희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오셔서 함께 대화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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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이종탄 (전주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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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화요일, 세 번째로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3개월만의 만남에 첫 발제를 맡은 터라 긴장되었지만 미리 준비된 컵라면과 김밥 앞에서 긴장감은 공복감에 묻혔습니다. 저녁을 먹으며, 북스터디를 하며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지난 두 번의 모임에서도 느꼈지만 '대화'의 기능과 힘은 매우 폭이 넓습니다. 사실 처음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을 때에는 과학과 신학 간 진솔한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해 미심쩍었습니다. 일단 과신대에 대해 알지 못했고 오늘날 과학과 신학의 간극이 매우 커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장 흔한 예로 진화론과 창조과학의 대립이 있으며, 현대 학문과 소통하는 대신 '세상'의 것으로 취급하며 무관심한 교회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에 결국 자기 목소리만 내는 데 신경 쓰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임에 참석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임을 소개하신 김재상 교수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지만 과학 또는 신학을, 혹은 둘 다 공부하는 이들의 의견을 들으며 내 지평을 확장하고, 그것이 한 가지에만 매여 있는 것보다 정직하게 진리를 탐구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저의 바람은 예상보다 더욱 많이 충족되었으며 앞으로도 좋은 시간을 갖게 되리라는 기대가 가득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지난 과신대 모임에서 얻은 유익은 크게 3가지입니다. 하나는 '과학 지식에 대한 관심과 이해'입니다. 과신대는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전공했고 자연과학에 대한 관심이 부족했던 제게 우주와 진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했고, 티끌만큼이나마 이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사고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 하나는 '모임원들과의 인격적인 교제'입니다. 여러 종류의 모임이 있지만 상당수는 개인이나 집단의 특정 이익을 위해 모입니다. 그렇기에 계산이 들어가고 자칫하면 모임이 딱딱해지기도 합니다. 과신대가 '대화'를 전면에 내세우기 때문에 얻는 효과도 있겠지만 모임원들 모두가 학문에 대한 의견 뿐만 아니라 소소한 대화를 할 때에도 꾸밈없이 진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시간은 또한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교제하는 시간이기도 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리 탐구에 대한 열망과 반성의 기회 제공'입니다. 과학 전공자와 신학 전공자들 사이에서 전문적이고도 다양한 의견을 들으며 알지 못했던 것들을 알았고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제 자신의 시각이 얼마나 좁고 얕았는지 깨달았습니다. 구덩이를 팔 때 처음에는 땅을 넓게 파다가 점점 한 점을 향해 깊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전의 저는 처음 팔 때부터 한 점에만 집중했다면, 과신대를 통해 주변을 파고 있습니다. 한 삽 한 삽 퍼 나르는 흙들이, 각각 고유한 색깔과 향을 갖고 있음에 신기하고 더욱 파고 싶어집니다.


이번 모임부터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시작했습니다. 끝을 측량할 수 없는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활짝 열린 사고와 마음을 갖고 진리를 탐구하는 여정이 되길 소망합니다. 벌써 다음 모임이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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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김진희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이번 독서 모임의 주제는 “존 레녹스의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5장까지였고, 사정상 못 오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총 네 명이 모였습니다. 저 같은 경우 책을 읽어 오지는 못 했지만, 목차를 보고서 관심 있는 주제여서 시간 내서 온 모임이었는데요, 발제문을 써오신 발제자의 느낀 점을 들어보고 발제문의 내용을 읽어보면, 책 저자 존 레녹스의 문체를 대강 느낄 수 있는 재미난 경험이었습니다. 내용 면에서는 프롤로그 부분에서 지적 설계라는 창조를 설명하는 한 방식에 대해서 볼 수 있었고, 1장에서는 신앙에는 증거가 있는지에 대해서 “신앙에는 증거가 없기 때문에 무신론이 옳다”라는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봄으로서 과학적 사고에 신앙이 어느 정도 개입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이외에 2장에서는 과학적 설명은 현상의 작동 메커니즘 만을 설명하는 데에 비해, 신을 믿는 것은 그 현상을 작동시킨 이는 누구인지에 대한 가설을 제공한다는 점, 4장에서는 법칙의 주체가 누군지를 말하는 우주의 미세조정 개념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이번 독서 모임의 발제문을 보고 들음으로써 책이 어떤 느낌으로 쓰여 있는지, 어떤 내용을 다루는지를 볼 수 있어서 나중에 시간 내서 이 책을 읽어보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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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서울남부 북클럽]




남부 북클럽 모임 후기 (알리스터 맥그래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알리스터 맥그래스의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라는 책으로 북클럽을 진행 하였습니다. 평소와는 달리 참석인원이 줄어서 8명이서 조촐한 책모임을 했습니다. 


책은 맥그래스가 과학과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던 개인적인 경험들과 그 가운데서 깨달았던 것들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형식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고백만 담겨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과 종교가 서로 공존하고 대화해왔던 것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적절히 나열하며 과학과 종교의 갈등이라는 신화를 깨트리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좀더 풍성하고 실재적으로 이해하는데 필요한 것이 다중적인 이야기라고 합니다. 종교라는 서사와 과학이라는 서사는 서로 상보적으로 실재를 조명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지도라는 비유를 통해 실재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하나의 지도가 아닌 다중적인 지도가 필요함을 주장합니다. 이를 통해 실재의 깊이와 상세한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실제는 다중적인 층위가 있기 때문에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라고 주장하는 환원주의의 위험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합니다.


과학과 종교가 실재를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비슷한 점을 말하며 각각의 이론은 완전하게 증명될 수 없다는 것과 각각에는 어느 정도의 믿음이 필요함을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론 자체를 증명할 수 없어도 통합하고 설명하는 능력에 근거해 그 이론을 채택하는 것이 지적으로 적법하다는 루이스의 발언은 우리가 과학과 종교에서 어떤 이론을 신뢰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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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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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장신대 근처 카페에서 전주 과신대 4월 모임을 가졌습니다. 몇 개월 동안 읽어온 『오리진』 마지막 모임이었는데, 11장에 나오는 중요 키워드를 바탕으로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화생물학과 포스트휴먼이라는 맥락에서 하나님 형상, 영혼, 원죄, 영생은 어떤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지 의견을 나누면서, 기존의 신학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 다들 동의하였습니다. 하나님형상과 영혼을 기존처럼 하나의 실체로 본다기보다는 이제 ‘관계’ 중심으로 그 의미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진화생물학 맥락에서 본다면 하나님 형상은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여러 생물체와의 관계를 강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상호의존의 양상을 지니게 됩니다. 포스트휴먼 맥락에서 영혼과 영생의 의미에 대한 토론도 이어갔습니다. 정신(영혼)과 물질은 인식론적으로는 구분이 되나 형이상학적으로는 구분이 모호하기에 기존 신학의 이분적 인간 구성은 적절한 방식이 아니라는 점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모임에서는 라운드테이블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시간은 분기별로 진행되며, 과학기술관련 이슈와 교회활동과 관련한 생각을 자유롭게 나누는 토크 타임입니다. 이번 모임에서는 과학기술위험에 대한 교회의 공적 활동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과학기술위험을 방지하여 안전도를 높이고자 과학사회학은 어떤 제안을 하고 있는지를 살폈습니다. 그리고 이 제안들이 교회의 공적 활동에 어떤 의미와 방법들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나누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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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석기병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과신대 분당/판교 북클럽은 4월9일(월) “아론의 송아지” 저자 임택규님을 모시고 뜻깊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토론에 앞서 각자 분담해 요약한 내용을 온라인으로 공유했던 바, 토론은 책에 대한 내용소개보다는 과학과 신앙에 대한 저자와의 열린 대화 형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토론의 자리에는 저자 외에 강사은님, 김란희님, 정훈재님, 김자현님, 김진희님, 조충연님이 오셨고, 논술가 조중식님은 갑작스런 수업시간 변동에 아쉽게도 참석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래도 반가운 것은, 병원연구소에서 박테리아를 연구하시고 주일학교에서 중고등부교사를 맡고계시는 백진양님이 처음 오신 것입니다. 백진양님은 교회에서 과학동아리를 준비하고 계신데, 창조에 대한 관심으로 우교수님 책을 읽던중 북클럽에 합류하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론의 송아지에 오타를 발견하셨다는데 꼼꼼하신 활동이 기대가 됩니다. (작가님께 오타 어딘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임택규님 오신다는 소식에 온누리 교회에 다니시는 네트웍 엔지니어 황재혁님도 멀리서 참석하셨습니다.


모임이 저녁 7시 반인지라 예전에는 준비된 빵을 토론 후 귀가전에 급히 먹었는데, 배려 깊으신 강사은님께서 이번에는 다과로 준비하셔서 저는 먹으면서 토론하기에 좋았습니다. 아마도 다음부터는 간식이 과자로 계속 공급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기대합니다.


임택규 작가님은, 미국 온누리교회(All Nations Church)에서 아이들에게 과학 특강을 준비하던 중 창조과학의 현실에 놀라 연구를 시작하였고, 9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창조과학을 조사하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면서 금번 과신대 콜로퀴움에 패널로 나오실 이택환목사님, 당시 CA에 연구원으로 계셨던 우종학교수님을 알게 되었는데, 아론의 송아지를 쓰는데는 우교수님이 권유("총대를 같이 메자")도 한 몫을 했다고 하네요. 그런데 기대와는 달리, 책의 영향력이 적어서 창조과학측에서 연락도 없고, 이재만 선교사도, 같은 동네 살지만, 자신에게 신경도 안쓰는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래도 2016년 12월30일 1,500부 발행후 2주만에 2쇄를 발행한 것은 책의 인기가 증명된한 것 아닐까요.


작가님은 미국에도 이 책과 같이 조목조목 창조과학의 오류를 집대성한 책은 없는 것으로 아신다 했습니다. 미국도 기독교 근본주의적 풍토에 한국과 똑같이 창조과학이 범람하고, 그런 기독교 영향으로 진화론에 부정적인 사회라 최근 지적설계론을 둘러싼 도버재판 사례와 같이 창조과학을 교육제도에 포함시키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이에 우리는 이런 책의 도입이 시급한거 아니냐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다만, 英譯하게 된다면, 아.송.에 담긴 작가님의 집요하면서 cynical하고 chic한 맛을 제대로 담아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100여편의 독서를 통해 깨달은 창조과학의 다양한 오류를 엔지니어 특유의 디테일한 칼질과 격정적 문투(우매함은 악보다 휠씬 위험하다-본회퍼)로 소개하고, 다소 모욕적일 수 있는 제목(아론의 송아지)도 붙였지만. 그나마 이것도 새물결플러스에서 편집으로 순화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누구는 책이 수식이 많아 어렵고 이과적/엔지니어간 논리대결 같은 느낌이 들고, 또 누구는 이것이 오히려 적절한(강성,직설적) 비유로 핵사이다 느낌이 든다고 했습니다. 어쨌든 이런 책 한권 쯤은 꼭 있어야겠다는 공통된 의견이었습니다. 느낌적으로 우교수님과 비교하자면 우교수님은 선비, 임작가님은 팩트체커(숫자로 신뢰), 무크따는 갑옷, 아론은 창같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이제는 과학과 신앙에 대한 토의내용을 조금 적어보겠습니다.


창조과학자들은 인간의 기원 뿐 아니라 실제로 물 위를 걷는 기적, 만나 기적, 가나 혼인잔치 포도주 기적, 선상에서 육지를 향한 설교의 과학성, 출생 후 8일 할례의 적합성 등 다방면으로 성경에 역사적, 과학적 해석 접붙이기를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변증하겠다는 그 의도는 비록 선할지라도, 도그마적으로 목적(세계관)을 앞세워 사실(데이터)을 왜곡하는 등 잘못된 방법에다가 지적 성실성도 없어, 결국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고 기적을 사라지게 하고 있다. 타임지 기사를 왜곡해 인용하고, 항의받으니 자신은 전문가가 아니니, 틀렸다면 무시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말인가, 신문방송은 전부 가짜라면서 맹목적으로 조작된 뉴스만 카톡으로 열심히 퍼나르는 무리들과 다른게 무언가. 

非과학적(사이비과학적, 유사과학적) 사고는 창조과학 外에도 많다. 아폴로 달착륙 음모론이나 GMO 유해론(!) 등. 이런 주장을 과학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인용된 이론이나 배경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연을 잘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학과 신앙은 과연 상보적 관계일까? 독립적 관계일까?
과학이 신앙에 영향을 주거나, 신앙이 과학에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신앙은 개인의 몫인가?
유신진화론자라면 착한 과학의 대안으로 바른 과학, 기독교 과학을 세워야 할까?
신을 과학의 범주로 끌어들이면 과학은 더 이상 과학이 아니라 세계관의 문제가 된다.
무신론자 도킨스와 마찬가지로 창조과학도 이와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과학과 신앙은 독립적이나, 상보를 지향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사 과학의 헛점을 집고 대안을 탐구)

이 외에도, 창조는 이신론인가, 계획된 진화인가, 우연을 통한 인도된 진화인가?
(유신진화론은 창조 방법의 물음에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노아의 방주는 신화인가, 실화인가, 아담과 하와는 어떤 존재인가 등


향후 북클럽을 통해 습득해야 할 것이 많음을 느끼며 토론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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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규 작가님이 추천하신 창조과학과 유신진화론 사이 논쟁 (빌 나이 vs 켄 햄)
https://youtu.be/AMlseAmPBcw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