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 vs. 창조과학

 

창조과학은 성경이 20세기의 과학 잡지를 읽을 때와 동일한 정확성을 가진 과학적 진술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헨리 모리스의 논제처럼, “성경은 과학교과서이다”일뿐만 아니라 과학교과서여야 한다. p. 35

 

윤철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

CLC | 2013. 5. 30 | 초판발행 | 244쪽 | 13,000원

 

 

저자 윤철민은 서문에서 이 책의 발행 목적을 소개하고 있다. 그 중 첫째 단락의 일부를 소개한다.

 

창조신앙에 관심이 있는 평범한 신자들은 과학적 이슈보다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가에 더 관심 있다. 또한 평범한 신자들은 과학이 아니라 성경으로 창조신앙을 공부하길 원한다. 그래서 이 책은 과학에는 문외한이지만 성경을 사랑하는 신실한 분들에게 창조신앙과 관련된 성경본문을 개혁주의적 시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처음에 제목을 보고, ‘왜 “개혁신학 VS. 보수신학” 이 아니라, “개혁신학 VS, 창조과학”이지?’라는 의문을 가졌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개혁신학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작가의 서문과 첫 문단의 본문 인용구에서 볼 수 있듯이, 오늘날 보수신학은 이미 창조과학과 그 맥을 같이 하게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치 자랑처럼 ‘우리 교단이 얼마나 보수적인데’라고 떠들고 다닌다. 그 때는 초신자였기에 보수적이지 않은 교회에 다니는 것이 창피했다. 그리고 창조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도 창피했다.

 

지금 이 책은 과.신.대 추천도서 네 번째 책이다. 아마 처음부터 이 책을 읽었다면 평범한 주부인 나에게는 이 책이 많이 부담스러웠을 것 같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용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창조론 연대기] -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 [아론의 송아지]를 지나오는 동안 약간의 지식이 쌓였기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그동안 마치 상식처럼 알고 있던 ‘에덴동산에서는 모두 초식을 했을 것이다.’, ‘휴거’, ‘천년왕국’,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동산과 같은 것이다.’ 등등의 지식이 크나큰 착각이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네페쉬’라는 용어에 대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네페쉬는 피를 가지고 있고 호흡을 하는 생물, 즉, 동물과 인간만이 네페쉬이다. 따라서 태초에는 죽음이 없었는데, 식물은 네페쉬가 아니므로 죽는 게 아니다. 인간의 몸 속에 있는 장내 세균의 죽음도 죽음이 아니다, 라는 식의 논리가 네페쉬 교리이다. 이 네페쉬 교리 때문에 재미있는 질문들이 많이 나온다. 그중 하나는 ‘타락 전에는 육식을 하지 않았을까?’라는 질문까지 간다. 작가는 네페쉬 교리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를 여러 장을 할애하여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전혀 몰라도 매우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아주 쉽게 풀어서 이야기하고 있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앞서 ‘아론의 송아지’에서도 잠깐 나왔듯이, 억지스러운 한자풀이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있는데, 여기서는 한자의 근원인 갑골문자까지 다루고 있다. 갑골문과 그것의 변천, 현대에 어떤 뜻으로 쓰이고 있는지 표를 삽입하여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결론은 한자에 창세기가 담겼다고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원래 그 한자의 갑골문이 무슨 뜻을 품고 있지도 모르는 체, 현대에 나타내고 있는 뜻을 역으로 이용해 한자에 끼워 맞춘다는 것이다. 현대의 내 지식으로 성경의 배경지식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바로 이것이 ‘겉보기식 해석’이다.

 

 

개혁주의는 ‘겉보기식 해석’을 탈피하고 ‘속보기식 해석’을 하려는 움직임이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나의 믿음에 끼워 맞춰 성경을 해석하는 큐티를 하고 있지 않은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바로 내가 그런 사람이었다.

 

내 상황에 맞추어 성경 말씀을 떠올리며, 그 말씀을 내 행위의 정당성으로 삼고 있었고, 내가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기도응답을 받은 것이고, 내가 선하다고 생각하던 일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이 선하신 분이며, 나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면 사단의 농간이라 생각했다. 이것이 기복신앙이 아니고 무엇인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성경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보아야 한다. 그리하여 ‘창조과학적 신앙’이 아닌, ‘창조신앙’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 방법의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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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윤신영 |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 | 2014 | Mid

 

 

요즘 우리나라나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 Covid 19 바이러스이다.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이 바이러스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한편으로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조그만 바이러스가 이렇게 세계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끈다는 것이 아이러니한 점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은 살아가는 여러 일들에 관심을 가지기 마련인데, 그중에서도 자신의 필요나 이익, 생존에 직접 관련된 것에는 예민하게 반응을 보이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는 많은 것들이 있다. 특히 언 듯 봐서는 사람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 급하게 해결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 것, 나 말고 누군가 다른 사람이 하고 있으려니 생각하는 것 등. 그 중에 하나가 환경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책은 환경과 생태에 대한 인간의 책임감을 묵직하게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이다. 책을 처음 접할 때 ‘사라져 가는 것들의 안부를 묻다’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어왔다. 사라져 간다는 것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나도 잘 알지 못하는 것들을 다루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차례를 훑어보고 나서는 흠.. 이 정도는 어느 만큼은 알고 있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쉽게 읽을 수 있겠군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래서 얼른 손에 잡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리 쉽게 읽어 넘어가는 그런 책이 아니었다. 이 책은 환경의 관점에서 사람들이 생각할 문제를 여러 동물의 입장에서 편지를 쓰는 형식의 독특한 방식으로 써진 책이다. 인간에서 출발해서 박쥐, 꿀벌, 호랑이, 까치, 돼지, 고래, 비둘기, 십자매, 공룡, 버팔로, 사자, 그리고 네안데르탈인에서 다시 인간에게로. 편지 형식을 띄기는 했지만 아주 상세한 연구 자료를 포함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학자들의 자료도 많이 인용하고 있어서 우리의 현실을 좀 더 가까이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았다. 김선숙 박사의 박쥐 연구에 대한 인용이나 꿀벌에 대한 내용에서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세세한 상황 제시, 우리나라 호랑이에 대한 역사적인 내용 인용, 이상임 교수와 최재천, 피오트르 야브윈스키 교수 등의 우리나라 까치 연구 결과 등의 인용은 다른 나라의 연구 결과가 아닌 우리 주위 환경에서의 연구 결과여서 한결 친숙하게 다가온 내용이었다.

 

이 책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박쥐, 꿀벌, 호랑이, 까치를 통해서 서식지 파괴의 심각성을 이야기한다. 2부에서는 돼지와 고래, 비둘기, 십자매, 공룡을 다루면서 육종과 진화와 관련된 내용을 다룬다. 3부에서는 버펄로, 사자, 네안데르탈인을 통해 경쟁과 협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전체가 3부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속에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내용이 있었다. 첫째로 인간에 의한 환경파괴나 동물 멸종에 대한 내용이다. 까치와 비둘기의 경우에는 나 자신도 까치와 비둘기 숫자가 너무 많은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을 정도이고 그래서 까치나 비둘기 숫자를 좀 줄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가면서 까치나 비둘기의 숫자가 필요 이상을 늘어나도록 한 것에는 인간에 의한 서식지의 파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숫자를 늘어나게 했다는 점을 알게 되면서 인간의 책임이 더 크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한편, 꿀벌과 고래는 그 숫자가 급감하고 있는 상황을 보다 명확해졌고, 그에 대한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두 번째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은 각 생물을 다루면서 각 생물에게 진화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잘 설명해 주고 있는 부분이다. 환경보전이나 생태 문제를 이야기하는데 왜 진화 이야기를 하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진화를 이야기 하는 중요한 이유는 생물에게 있어 진화는 환경에 의한 자연선택의 결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환경의 변화는 그 속에 살아가는 생물에게 항상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건조한 지역에 사는 생물과 물이 풍부한 지역에 사는 생물은 형태나 생태가 상당히 다르다. 또한 환경 요소도 생물에 의해 변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에 의한 화석연료 사용이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양을 증가시키는 것이 생물에 의한 환경 요소 변화의 사례가 될 수 있다. 현재의 환경 문제를 무시하고 인간의 필요나 욕심에만 집중해서 살아가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어쩌면 지구 생태계 내에서 퇴출될 수도 있다는 경고를 주고 있는 셈이다.

 

세 번째로는 동물에 대한, 더 확장하자면 생태계에 대한 인간의 책임이다. 당장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하지만, 결국 인간은 모든 동물, 식물, 곰팡이, 세균, 바이러스 등과 생태계 일원을 구성하고 살아간다. 생태계의 유지에서 중요한 것은 다양성과 이를 통한 협력이다. 인간이 인간 자신만의 이익과 필요만을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결국은 인간의 멸종을 초래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를 방지하려면 인간은 자신만을 생각하는 관점을 벗어나 전 지구적인 생태계를 생각하고 보호하는 관점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요즘 약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고 살자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정말 필요한 말이다. 여기에 덧붙여 약하고 가난하고 멸종되어 가는 지구의 생물들을 배려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 또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글_ 윤세진 (과신대 교사팀, 구일고등학교 생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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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의 송아지』를 읽고

 

"시내 산 정상으로 십계명을 받기 위해 올라간 모세가 사십일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그를 기다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아론을 강요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다. (중략) 우주와 지구의 기원과 관련해 성경의 문자적 표현과는 다른 설명을 제공하는 현대 과학에 대해 위기의식과 불안감을 가진 사람들이 만들어낸 “창조과학”이라는 것도 결국 아론의 송아지의 현대적 변형일 것이다."

 

 

임택규 | 아론의 송아지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 334쪽 | 16,000원

 

 

“먼저 숲을 보고, 다음에 나무를 보십시오.”

 

과.신.대 [기초과정 1]을 마친 사람이라면 아마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문장인지 알 것이다. 기초과정 말미에 우종학 교수님은 책 두 권을 권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신다. 과.신.대 권장도서 목록 제일 첫 번째 책인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 먼저 숲을 보고, 그다음 책인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통해 나무를 보라는 얘기다.

 

처음 과.신.대를 접했을 때는 마구잡이식으로 이 글, 저 글, 이 책, 저 책을 읽어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 과.신.대 추천도서를 순차적으로 읽어가며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창조론 연대기』를 통해서는 과학과 신학은 대립구도가 아니라는 것과, 창조론에 대한 견해가 매우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를 읽으며 과학과 신학이 왜 대립구도가 아닌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또, 하나님이 주신 두 가지 책, 즉 성경과 자연은 신학과 과학이라는 서로 다른 도구로 읽으면 된다는 것도 알았다.

 

 

『아론의 송아지』에서는 더 나아가 창조과학이 펼치고 있는 여러 주장들에 대해 조목조목 따져가며 그것이 왜 틀렸는지 알려주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내가 근본주의, 문자주의를 신봉하고 있었던 때라서, 읽으면서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이 저자 왜 이래? 왜 이리 글투가 공격적이지? 싸우자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꾸역꾸역 끝까지 읽었다. 그런데 입장이 바뀐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렇게 유쾌, 상쾌, 통쾌할 수가 없는 책이다.

 

저자인 임택규 님은 성균관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태양력 발전소와 관련한 대규모 송전 시절 프로젝트팀의 엔지니어로 일하고 계신다 (책날개 참고). 본인이 직접 겪은 일화들을 섞어가며 알기 쉽게 과학 이야기를 풀어주셔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다.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창조과학을 제일 처음 접했을 때 유행했던 것이, ‘배 선(船)’자에 얽힌 이야기이다. 노아의 방주에 타고 있던 여덟 명의 사람들을 나타내는 거라고, 현직 한문선생님이 특강시간에 침까지 튀기시며 열렬히 강의를 하셨기 때문에 정말 찰떡같이 믿었다. 그리고 당연히 ‘한자에 담긴 창세기의 발견’이라는 책을 당장 구입했고,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글을 읽을 때쯤에 이 기가 막히게 멋진(?!) 이야기를 들려줄 생각에 보물처럼 갖고 있었다. 그러나『아론의 송아지』를 읽자마자, 너무 창피해서 그 책은 바로 쓰레기통으로 들어갔다.

 

책 내용을 빌리자면, 우선 한국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배 선(船)’ 자의 ‘입 구(口)’자 위에 있는 글자는 ‘여덟 팔(八)’이 아니라, ‘몇 기(几)’자라는 것이다. 전혀 다른 글자인데도 이것이 진리인 것처럼 책으로 출판되고, 20년이 지난 지금은 어린이용 창조한자 따라 쓰기 워크북이 있을 정도다.

 

 

이 책에서는 이 사안들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창조과학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됐는지 명쾌하게 짚어주고 있다. 특히 1부는 ‘신앙의 눈으로 바라본 과학’, 2부는 ‘과학의 눈으로 바라본 신앙’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가, 서로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생각하게 해준다.

 

앞의 두 책 – 창조론 연대기, 무신론 기자 크리스찬 과학자에게 따지다 – 에서 갈증을 느낀 독자라면, 이 책 아론의 송아지를 통해서 쾌감을 맛볼 것이라고 장담한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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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를 읽고

블랙홀 시뮬레이션 사진

 

우종학 교수의 블랙홀 강의를 읽고

 

 

우종학 교수님의 책 블랙홀 강의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은 아래와 같습니다.

 

  • 첫 문장: 우주가 끝없이 우리를 부릅니다.
  • 지막 문장: 알마는 외계행성 연구와 블랙홀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획기적인 발견을 거듭해가고 있습니다.

 

아마 교수님의 마음이 계속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 듯합니다. 저는 창세기 원 역사 논쟁이나 복잡다단한 현재의 삶에 골치 아플 때, 나사에서 찍은 우주 사진들을 바라보면 머리가 시원해지는 경험을 자주 합니다. 이 책은 지식보다 상상력이 더 중요함을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 이성의 끝없는 도전과 발전에 대한 가능성도 열어 놓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봤을 때, 우주를 창조하신 분과 우리에게 이성을 주신 분이 같으므로, 우리 앞에 펼쳐진 우주는 하나님의 성품과 예술성에 관해 우리가 배우고 향유할 수 있는 엄청 큰 책인 것 같습니다. 물론 우주에 관해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한 과학적 사실들이 시사하고 있는 영적인 의미들은 더 엄청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별의 죽음에 한 편의 서사시를 기록하여 블랙홀의 일생을 체계화시킨 인도의 위대한 천체물리학자 찬드라세카르의 말에 따르면, 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대상 중 가장 완벽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블랙홀은 “물리법칙을 무너뜨리는 괴물”이라서, 심지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에딩턴조차도 블랙홀을 인정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요컨대 블랙홀은 인간의 현재 과학지식을 넘어선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블랙홀을 생각하면 두려움도 생기지만, 수많은 상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영어학 전공자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면서, 블랙홀에 대한 과학적 팩트보다는 블랙홀이 일으키는 상상력에 매료되었습니다. 이 책에서 우주와 상상력에 대해 정리한 구절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주와 상상력:

 

  1.  32쪽 우주는 우리의 상상보다 더 신기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신기하다(J.B.S. 홀데인)
  2. 38쪽 인류가 위대해지는 순간은 바로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지적 지평선을 뛰어넘는 놀라운 상상력이 발휘될 때입니다. 그 상상력을 가지고 미지의 세계로 뛰어들어 끊임없이 도전하는 과정이 바로 인간의 위대함을 드러냅니다. 인간이 가진 능력 중에서 상상력만큼 뛰어난 것도 없습니다. 상상력은 지식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3. 39쪽 이 광대한 우주는 어디서 기원했으며, 지구라는 작은 행성에 사는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는 근원적 질문 아래, 수많은 작은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집니다. 이미 답을 아는 수수께끼는 절대로 흥미롭지 않습니다.
  4. 41쪽 과학을 통해 더 많은 것을 배울수록 미지의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집니다.
  5. 89쪽 우리는 비록 3차원 공간에 살고 있지만 4차원 공간이 존재한다고 상상할 수도 있습니다.
  6. 101쪽 우주는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 세계가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세계가 블랙홀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7. 123쪽 물론 우리가 모르는 어떤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블랙홀 안에 존재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탐구되지 않은 영역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는 것이니까요

  8. 136쪽 우주여행은 상상만 해도 꿈만 같습니다. 신비로운 블랙홀이 우주여행에 이용된다면 기가 막히게 신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우주는 블랙홀이 살기에 적합한 환경이지만 오히려 인간의 지성세계가 블랙홀이 살아남기 힘든 곳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천체관찰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실제로 가족들 데리고 천문대를 방문하여 실제로 안드로메다 은하도 관찰하였습니다. 전문가의 눈으로 블랙홀과 천체물리학의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설명한 이 책은 눈으로 직접 은하들, 별자리들, 성운들을 보고 싶게 만들었습니다. 블랙홀을 직접 관찰하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주인공인 블랙홀에 대한 묘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블랙홀에 대한 묘사

 

  1. 30쪽 무한한 영감의 세계인 우주에서 그 무엇보다도 더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면서 지성의 한계까지 우리를 내모는 대상은 바로 블랙홀입니다. ...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무한이라는 세계를 새롭게 펼쳐줌... 너무나 기괴한 존재... 블랙홀 같은 괴물은 우주에 존재할 수 없다.”(알베르트 아인슈타인)
  2. 31쪽 우주 역사를 이끌어온 주인공
  3. 33쪽 다크 원더러: 별들 사이 공간을 떠돌아다니는 블랙홀, 빛을 내지 않는 블랙홀
  4. 35쪽 우주여행에서 맞닥뜨린 블랙홀처럼 인생에서도 종종 다양한 블랙홀들과 마주치게 됩니다.
  5. 42블랙홀은 우주에 존재하는 대상 중 가장 완벽하다(찬드라세카르)
  6. 43쪽 블랙홀은 가장 인기 있는 후보
  7. 48쪽 블랙홀은 거의 무한밀도를 갖는 시공간의 작은 영역 혹은 질량체라고 하겠습니다.
  8. 59쪽 블랙홀은 상상력에서 태어난 검은 별
  9. 71쪽 블랙홀의 경우도 상상력이 발견을 앞선 경우입니다.
  10. 97쪽 블랙홀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기 전에 슈바르츠실트의 특이점(singularity)’라고 블림. 특이점이란 수학적으로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
  11. 100쪽 회전하지 않는 블랙홀을 슈바르츠실트 블랙홀’, 회전하는 블랙홀은 커 블랙홀
  12. 103쪽 블랙홀의 존재가 학계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이유는 아마도 블랙홀이 너무나 엽기적이기 때문...코스모스라는 말은 질서, 법칙이라는 의미이지만, 블랙홀은 이런 질서와 법칙에 도전하는 셈. 우리의 블랙홀은 모든 물리학의 지식을 얼려버린다고나 할까요?
  13. 104쪽 이렇게 많은 질문을 낳는 괴물
  14. 124쪽 블랙홀과 반대되는 개념이 화이트홀입니다, 블랙홀은 물질을 집어삼키기만 한다면 화이트홀은 물질을 내뱉기만 합니다. 과거에 물리학자들은 블랙홀과 화이트홀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이론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는 시나리오입니다.... 하지만 화이트홀은 그저 이론적 개념에 불과합니다
  15. 126쪽 블랙홀은 결코 배가 부르지 않습니다.
  16. 127쪽 물리법칙에 위배되는 괴물
  17. 128쪽 퀘이사라는 블랙홀들은 1년에 태양 하나 정도 되는 막대한 양의 가스를 집어삼킵니다.
  18. 136쪽 물론 과학이 발전해서 블랙홀과 웜홀의 비밀이 풀리면 3대 법칙(로또, 일방통행, 묻지마)이 깨지고 실제로 우주여행이 가능해질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현대 과학의 지식으로 보면 한계가 많지만 인간의 이성은 끝없는 도전을 감당할 테니까요.
  19. 228쪽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서 블랙홀의 증거가 나왔습니다. 이 블랙홀들은 퀘이사와 달리 막대한 빛과 에너지를 방출하는 활동성 블랙홀이 아닙니다. 잠자는 사자처럼 그저 조용히 암흑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 있던 보이지 않는 블랙홀들입니다. 블랙홀에 가스가 공급되면 블랙홀의 엔진이 작동하며 퀘이사가 되지만, 반면에 블랙홀에 가스 공급이 없다면 빛을 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게 됩니다.

 

허블망원경과 찬드라엑스선 망원경 등에 의해서 우주선을 타고 나가지 않아도 우주의 황홀한 모습들을 볼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은 더 황홀한 복음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것을 우리가 다 기업으로 물려받을 것이라고 성경이 약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덮으면서 단 한 가지 생각나는 단어는 “Speechless!”(말로 할 수 없다!)이었습니다. 그리고 블랙홀은 인간 이성을 마비시키기 때문에 저의 서평도 이렇게 횡설수설할 수밖에 없음을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덧붙인 것은 블랙홀과 관련된 팩트들입니다. 수많은 밤들을 춥고 외로운 관측소에서 보내면서 이러한 관측적 증거들을 발견하신 천문학자들 그리고 우종학 교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Facts

 

  1. 18세기 존 미첼이 빛의 속도가 느려질 수 있다는 아이디어 – 검은 별의 개념 착안
  2. 19195월 에딩턴 빛이 휘어짐 발견
  3. 1965우주 배경 복사 발견
  4. 95쪽 탈출속도가 빛의 속도가 되는 별의 한계 반지름을 슈바르츠실트 반지름(Schwarzschield radius) 태양의 경우 약 3 킬로미터.
  5. 104쪽 그러나 우주가 어떠해야 한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과학은 때론 매우 위험합니다. 그토록 위대한 과학자들도 형이상학적 혹은 철학적 심지어는 신학적인 전제를 갖고 색안경을 낀 과학을 하는 바람에 많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6. 130쪽 중력파는 블랙홀들의 충돌로 생기는 시공간의 떨림과 같은 현상임.
  7. 138쪽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로 꼽히는 퀘이사들이 우주의 무대로 등장한 사건
  8. 149쪽 퀘이사(quasar) - 별과 비슷하지만 실제로 별은 아니며 그 대신 전파를 방출한다는 뜻으로 ‘quasi-stellar-radio source’라고 명명. 1964년 한 천체물리학자가 4개 단어의 머리글자로 quasar로 부름. 우리말로는 준성 또는 유사별
  9. 163쪽 그 엄청난 빛을 내는 에너지의 원천(퀘이사)이 결국 거대질량 블랙홀입니다.
  10. 192쪽 은하는 우주라는 거대한 집을 구성하는 벽돌 한 장과 같습니다. 광대한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가 바로 은하입니다. 가장 작은 단위라고는 하지만, 광대한 크기를 갖는 은하는 우주의 축소판입니다. 은하 하나하나가 작은 우주들입니다. 1000억 개 가량의 별들, 그리고 그 별들이 거느리고 있는 수많은 행성들, 그리고 인터스텔라 공간을 채우고 있는 방대한 양의 가스,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하의 중심에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은 거대질량 블랙홀이 은하를 구성하는 식구들입니다.
  11. 202쪽 스스로 빛을 방출하지 못하는 암흑물질은 별들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별과 가스처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물질보다 암흑물질의 양이 대략 5배는 많습니다.
  12. 2342019410일 최초로 블랙홀 그림자를 확인했다는 뉴스가 전 세계를 흔들었습니다.
  13. 255쪽 빛이 블랙홀에 의해 포획되는 영역을 블랙홀 그림자’(black hole shadow)라고 부릅니다, 블랙홀이 빛을 포획하는 영역의 크기는 광자 포획 반지름(photon capture radius)’라고 부릅니다.
  14. 270쪽 태양보다 무거운 큰 별들의 경우, 핵융합 반응을 하는 수명이 1,000만 년 정도 됩니다. 별의 일생을 100년의 시간에 비유한다면 인간의 수명은 고작 몇 분에 해당될 뿐입니다.
  15. 284쪽 찬드라세카르의 계산 결과는 백색왜성의 질량은 태양 질량의 1.4배보다 작아야 한다는 걸 보여주었고, 그래서 태양 질량의 1.4배를 찬드라세카르의 한계(Chandrasekhar limit)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16. 285쪽 블랙홀이 되려면 중심부의 질량이 태양보다 3배 이상 무거워야 합니다.
  17. 302쪽 조슬린 벨의 회고를 들어보면 그녀는 이 규칙적인 신호가 작은 녹색인이라는 뜻을 가진 LGM(Little Green Man)들이 보내는 거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 영화 콘택트(1997)의 소재
  18. 304쪽 마침 그 학회에서 휠러의 강연을 듣던 청중 한 사람이 블랙홀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합니다. 귀가 번쩍 뜨인 휠러는 블랙홀이라는 표현이 바로 자기가 기다렸던 이름임을 깨닫습니다. 휠러 박사는 그해 12월 강연에서 블랙홀이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했지요. 이 강연 내용이 그다음 해인 1968년에 출판되면서 블랙홀이라는 명칭이 정식으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글_ 최성일 기자 (ultrach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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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책 내용을 잘 정리해주셨네요... 뇌의 무의식계에 대한 설명 잘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휘페르테스 2020.04.30 22:29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엘리에저 J. 스턴버그 |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 | 조성숙 역 | 다산사이언스 | 2019년 | 432쪽

 

 

“지금으로부터 150억 년 전, 우주가 생겨났다. 50억 년 전, 지구가 생겨났다. 30억 년 전, 지구에 생명이 출현했다. 5억 년 전, 최초의 신경계가 나타났다. 3백만 년 전, 인류가 출현했다. 2백만 년 전, 인간의 뇌가 도구를 고안하여 노동 생산성을 증가시켰다. 13만 년 전, 인간이 머릿속에서 상상한 사건을 벽에 그리기 시작했다. 50년 전, 인간의 뇌가 최초의 인공 지능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5년 전, 컴퓨터가 저 혼자서 논리적 사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일주일 전, 컴퓨터의 지원을 받은 한 인간의 뇌가 《최후의 비밀》에 도달한다.”

 

위 내용은 2002년에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L’ Ultime Secret)』의 거창한 홍보 문구다. 이 소설은 인간의 뇌에 관한 당시의 최신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쾌감중추의 비밀을 파헤쳐 나가는 과학 추리소설로,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인간 탐구의 새로운 지평을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았다.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 컴퓨터,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이 두 과학기술이 만나 이루어지는 상반된 인간의 두 가지 모습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록트인 신드롬’ 환자로 식물인간 상태인 장 루이 마르탱을 통해 움직이지 못하는 몸을 가지고 있지만 AI를 사용하며 비약적인 뇌의 발전을 이룬 모습을, 그리고 현명하고 도덕적인 천재 의사가 ‘최후 비밀’을 접하며 절제가 안된 인간의 욕망으로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이번에 소개할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를 읽으면서 ‘뇌의 숨겨진 논리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탐구하는 진지한 주제 의식과 흥미를 끄는 추리소설적 구성 때문인지 장르는 다르지만 오래전에 읽었던 베르베르의 이 소설이 생각났다. 뇌의 ‘최후의 비밀’인 쾌락중추 자극기술을 이용한 천재적인 정신과 의사가 인공지능 컴퓨터가 보유한 체스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다시 찾아오는 승리의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하는데, 우리가 몇 년 전에 충격받았던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을 떠올리게 한다. AI와 뇌과학의 눈부신 발전으로 20년 전의 소설의 내용은 이제 현실이 되어 가고 있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에저 스턴버그는 30대 초반의 천재적인 신경과 의사이다. 17세 때 이미 철학과 신경과학을 아우르는 첫 저서 『우리는 기계일 뿐인가』를 출간했고, 22세에는 뇌에 결함이 있는 사람의 도덕적 책임이라는 문제의식을 풀어낸 두 번째 책을 저술했다.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는 세 번째 책으로 신경계 질환 환자들을 직접 진료한 사례와 기존의 연구들 또 기술 발전으로 근거가 보강된 이론들을 통해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의 근본적인 이유’인 뇌의 신경 논리구조(NeuroLogic: The brain’s hidden rationale)를 발견하고 의식과 무의식의 체계로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사례 별로 기존 임상 연구의 가설과 최신의 신경과학 연구, 특히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를 통해 일반인의 뇌와 뇌질환자의 뇌가 서로 다르게 활성화되는 부분들의 차이점을 비교 분석한 최신의 연구자료를 통합하여 과거의 개별적 행동 연구를 넘어서는 과학적 근거를 제시하며 뇌의 논리구조에 대한 통합적 이해를 추구하고 있다.

 

이 책의 뛰어난 점은 8장에 걸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이야기로 구성되는 각 장이 뇌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기이한 상담 사례로 시작되며 앞장에서 제시된 문제가 해결되면서 잇따라 제기되는 의문을 연결해서 풀어가는 추리소설과 같은 흥미로운 전개 방식이다.

 

1장은 ‘시각장애인은 꿈속에서 무엇을 보는가?’는 질문으로 의식계와 무의식계가 어떻게 나뉘어 작동하는지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가 세상을 볼 때 뇌의 두 시스템이 우리의 지각을 만들어낸다. 무의식계가 패턴을 인식하고 그 패턴을 바탕으로 예측한 다음 지각한 조각들을 끼워 맞출 방법을 추론하고, 의식계가 무의식의 계산을 받아들이고 자신이 접근할 수 있는 풍부한 배경지식을 바탕으로 결정을 내린다. 모든 감각은 정보의 흐름이다. 시각 경로든 청각 경로든, 아니면 다른 경로든 이 정보를 상황적 맥락에 맞게 해석하고 종합해 세상을 의미 있게 표현하는 것이 뇌의 무의식계에 주어진 과제다. 무의식의 처리과정은 동시에 들어오는 오감의 흐름을 분석하고 비슷한 특정이 없는지 꼼꼼히 조사한 후 의식적으로 경험하는 추상적 개념을 만들어 낸다. 감각 신호는 처음에는 병렬 경로에서 처리되다가 마지막에 하나의 개념적 네트워크로 통합되고 해석되고 조직된다. 감각들이 합쳐져 세상을 하나로 유연하게 지각한다. 오감의 협업은 의식적 경험을 강화해줄 뿐 아니라 감각 하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백업 시스템까지 만들어준다. 실명하면 다른 감각계가 지각의 빈틈을 메우려 작동하기 시작한다. 뇌는 최선을 다해 우리가 지각하는 세상을 재건한다. 다른 감각들끼리 결합해 제 기능을 잃은 감각을 새롭게 재창조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그래서 시각장애인의 뇌는 지각의 빈틈을 메우기 위해 시각적 환각을 만들어내거나 다른 감각을 동원해 시야를 재건하기도 한다. 그들은 다른 감각을 최대한 사용해 시각이라는 감각에 생긴 빈틈을 채워 넣을 수 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들도 상상하고 꿈을 꾸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2장에서는 ‘좀비도 차를 몰고 출퇴근할 수 있는가?’ 질문을 던지며 습관, 자기통제와 자동행동에 대해 설명한다. 우리는 뇌가 가진 두 개의 평행 시스템을 이용해 행동을 통제한다. 습관체계와 비습관체계인데 두 시스템은 기억 형태에 따라 강점도 다르고 접근법도 다르다. 행동을 지배할 수 있는 자동 시스템인 습관 체계는 절차 위주이며 프로그래밍이 가능하고 빠르다. 습관과 비습관체계가 동시에 작동할 수 있기 때문에 소위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진다. 어떤 행동을 충분히 많이 연습하면 습관체계에 통제권이 넘어가 무의식적으로 그 행동을 하게 되고, 비습관체계는 그 행동에서 해방되어 다른 일에 몰두할 수 있게 된다.

 

3장은 ‘상상만으로도 운동 실력이 좋아질 수 있는가?’는 질문으로 의식과 무의식계의 상호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상상으로 하는 심상 훈련이 자극하는 뇌 영역은 실제 신체 동작에 영향을 미치는 뇌 영역과 동일하므로 뇌에서 근육을 연결하는 신경경로가 파괴된 경우가 아니라면 심상훈련으로 그 동작을 수행하는 신경 근육 회로에 습관이 형성되어 회로 기능이 강화될 수 있다. 그리고 신체를 직접 움직일 때와 그 움직임을 상상할 때 쓰는 뇌 영역이 동일하듯이 누군가의 움직임을 관찰할 때에도 똑같은 뇌세포를 사용하는데 행동 실행과 관찰에 모두 반응하는 이 뇌세포를 거울신경(mirror neuron)이라고 부른다. 거울신경은 하품 전염과 관련 있다고 여겨지는데, 무의식적으로 활성화되는 거울신경은 공감 능력을 형성하게 도와준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본능적으로 시뮬레이션해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기본 정보를 습득함으로써 우리의 의식을 발달시킨다. 한편,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할 때마다 특정 감정이나 몸의 상태가 그 사건에 대한 기억과 관계를 유지하는 생물학적 잔재를 신경계에 남기는데, 이런 감정적 잔재를 신체표지(somatic marker)라고 부른다. 거울신경이 다른 사람의 경험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처럼 신체표지는 우리 자신의 과거 경험을 시뮬레이션 한다. 이런 감정적 기억은 무의식적으로 저장되었다가 비슷한 사건과 맞닥뜨리는 순간 등장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게 이끌어주는 ‘직감’이 된다.

 

 

4장에서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기억할 수 있을까?’는 질문으로 의식계와 무의식계가 어떻게 한 사람의 서사를 써내려 가는가를 다룬다. 뇌의 무의식계는 어떤 사건을 기억해낼 때 자기중심적으로 접근하는데 자신의 자아인식과 일치하는 일은 쉽게 기억하지만 자아인식과 충돌하는 기억이나 감정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억의 조각이 사라지거나 왜곡되고 자아의 존재감과 안정성이 위협받을 때 거짓기억으로 빈틈을 메우는 ‘말짓기증’이 나타나거나 기억억제가 일어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자의식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뇌는 기저의 논리에 따라 우리의 경험을 해석하고 기억을 암호화하고 개인사를 기억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스냅사진 간에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빈틈에 가장 설득력 있게 딱 들어맞을 것 같은 기억과 생각의 조각을 찾아내서 가져온다.

 

5장에서는 ‘왜 사람들은 외계인 납치설을 믿는가?’고 질문을 던지며 건강을 잃은 뇌가 왜곡된 서사를 지어내는 경우를 설명한다. 뇌의 무의식계는 나름의 논리를 따르는 단순한 시스템이다. 뇌는 양립 불가능한 자극을 동시에 느끼는 순간에도 우리의 인식에 통일된 이야기의 틀을 씌워 삶에 대한 경험을 만들어 내려한다. 그래서 서로 맞지 않는 자극을 조합해 이야기를 만들어 낼 때 뇌는 깊숙이 파묻힌 신념과 성향, 의문점을 끄집어내어 초자연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수면마비(sleep paralysis, 가위눌림)와 연관된 외계인 납치 경험, 관자엽 뇌전증을 앓는 환자들이 겪는 과종교증(hyperreligiosity)의 신비한 영적 체험, 뇌의 일시적인 산소 결핍 상태에서 일어나는 임사체험 등이 그 사례이다. 뇌가 건강하면 우리는 교육의 도움을 받아 저장 창고의 지식을 수정하고 넓혀 믿을 만한 정보를 무의식계에 제공할 수 있고, 무의식계는 그런 정보의 안내를 받아 더 합리적이고 현실에 맞는 설명을 이끌어낼 수 있다. 하지만 뇌가 건강하지 않다면 뇌는 날조된 이야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게 되어 우리는 초자연적 경험을 평생 동안 믿게 될 것이다.

 

6장은 ‘조현병 환자에게 환청이 들리는 이유는?’이라는 질문으로 뇌가 자아와 비자아를 구분하지 못할 경우 발생하는 일에 대해 다룬다. 전기물고기가 자신이 보낸 신호와 외부의 전기신호를 구분할 수 있게 해주는 수반방출이라는 것이 있는데, 인간의 뇌에서도 어떤 명령을 보낼 때마다 그 명령 신호를 복사해서 감각계에 보내고 감각계는 그에 응하여 수반방출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신호와 외부의 신호를 구분해낼 수 있게 한다. 수반방출계의 결함으로 조현병 환자는 자신의 목소리를 인식하는 기능뿐 아니라 자기 생각을 인지하는 기능도 잃어 환청을 듣게 된다.

 

7장에서 ‘최면 살인은 가능한가?’ 질문을 던진다. 최면이든 광고든 잠재의식 메시지이든 외부 암시는 뇌 활동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외부 영향에 지배되는 순간 뇌는 그런 영향을 우리가 자발적 동기라고 믿고 있던 동기와 합쳐버린다. 외부의 무의식적 영향이 행동방식을 어떤 식으로든 바꾼다면 무의식계는 우리가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합리화하도록 도와준다. 뇌의 무의식계는 빈틈을 메우고, 비합리적인 행동을 합리화시키고 매우 비논리적인 상황을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설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왜 무의식계는 혼란스럽거나 모순된 경험을 억지로 이어 붙이는 해석을 만들어내는가? 이유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지키기 위해서다. 무의식계는 자아의 통일성과 연속성을 유지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극단적 행동도 일삼는다.

 

8장 ‘다중인격은 똑같은 안경을 공유하지 못한다?’에서는 앞 장들에서 다뤘던 사실들을 ‘해리성 정체감장애’ 즉 ‘다중인격’의 사례에 대입해 총정리해 준다. 뇌의 좌우는 별개로 행동하지 않는다. 좌우의 뇌는 서로의 행동에 조화를 이루려 노력하면서 어떻게 든 통일된 자아의식을 유지할 방법을 찾아낸다. 뇌는 불안전한 사고와 인식의 빈틈을 메우려는 습성이 있고, 그 빈틈을 메울 때마다 자아의식 유지라는 목적에 충실한다. 무의식계는 개인의 이야기를 인간으로서 갖는 안정된 정체성을 보호하는데 철저히 중점을 둔다. 또한 뇌는 트라우마 기억과 감정으로부터 정체성을 보호하기 위해 그런 기억과 감정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려 하고 의식과도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애쓰는데 이런 격리작업을 하다가 도를 넘기도 한다. 이렇게 무의식계가 과도한 격리작업을 한 결과가 ‘해리성 정체감 장애’이며, 이 경우 각각의 정체성에 따라 뇌를 사용하는 부위, 근육을 사용하는 것 등 모든 것이 달라지게 된다.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우리의 정체성은 의식계와 무의식계의 공조에 의존한다. 의식계는 자아의식을 경험하게 해 주며 뇌가 만드는 이야기를 의지를 갖고 정신과 신체를 제어하여 실행에 옮길 수 있게 한다. 무의식계는 그런 이야기를 만든다. 무의식계는 단편으로 끊어진 경험 조각들을 끌어와 빈 틈을 메우고 우리의 인생사를 순서대로 배열한다. 무의식계는 우리의 자아의식을 구축한다. 뇌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조각조각 들어오는 인식을 합리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일련의 과정을 우리가 죽을 때까지 반복하며, 이를 통해 우리는 삶의 경험을 쌓고 자신의 감정이나 기분을 스스로 느끼며 ‘자아’를 만들고 지켜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체성을 유지하여 우리가 자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뇌의 신경 로직(NeuroLogic)의 지향점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서두에 언급한 베르베르의 소설 『뇌』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기자로 등장하는 주인공 뤼크레스와 이지도르는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인간은 결국… 인간으로 향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것의 바탕은 바로 사랑이고… 너무 포괄적일 수도 있고… 또 너무 신파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여기서 말하고픈 사랑이란, 용서와 배려, 사람과 사람 간의 신뢰, 에로스적 의미, 집착 등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의미이다.”라고 결론적으로 읊조린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그의 소설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으로서 인간을 향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가 파악한 인간의 정체성은 사랑이라는 인간 관계성이 바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소설은 인공지능과 결합된 최초의 트랜스휴먼인 장 루이 마르탱의 이야기가 아닌 뤼크레스와 이지도르의 사랑 이야기로 마무리된다. (이 통속적인 마침으로 많은 독자들은 실망했고 나도 그 독자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이 점이 『뇌가 지어낸 모든 세계』의 서평을 쓰면서 20여 년 전 읽었던 소설을 소환한 이유이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지 않은 아쉬운 내용 중 하나가 뇌의 발달과 관련된 사항이다. 인간은 생후 2년 동안 우반구에서 급속 성장이 일어나는데, 이는 감각운동, 감정적 능력과 대인관계 능력의 빠른 발달과 연관되고 감정조절과 애착과 관련된 기본적 구조물을 형성하게 되며, 이런 과정은 모자관계의 애착 형성과 함께 일어난다. 우뇌의 발달은 주로 2세 중반까지 급격하게 이루어지다가 2세 중반이 되면 좌반구의 급속 성장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이때 전전두엽의 본격적인 성장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처럼 생후 2세 중반까지 아직 유아가 언어로 충분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어 모든 기억이 내현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 저장되고, 어머니와의 비언어적 의사소통(nonverbal communication)을 통해 변연계의 성장, 우뇌 반구의 성장이 충분하게 이루어지게 되면 안정 애착을 형성하게 되어 이후의 대인관계에서도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이다. 이 시기의 내현적 기억과 비언어적 관계성이 이 책에서 스턴버그가 주장하는 뇌의 무의식계의 바탕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실제로 이 시기의 정신적 외상은 유전적 요소와 신경해부학적인 요소들에 영향을 주어 적절한 좌우반구의 통합과 조절을 방해해 병리적인 증상으로 나타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이 책의 저자인 스턴버그가 주장하는 ‘자아의식’이라는 인간 정체성을 지향하는 뇌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신경 로직’의 가장 중요한 바탕의 하나가 관계성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이 관계성의 가장 중요한 바탕이 사랑-모자관계와 같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잘 밝혀낸 우리의 뇌가 만들어 내는 정체성의 서사들은 한편으로 관계성의 서사, 즉 사랑의 이야기로 향하고 있지 않을까 조용히 읊조려 본다.

 

오늘날 뇌에 대한 연구는 인공지능의 본격적인 출현과 더불어 그 잠재적 기능의 극대화라는 실제적 이용이 강조되는 측면이 많다. 그래서 뇌과학와 인공지능의 기술이 이끄는 역사적 특이점에 이르고 있다는 트랜스휴머니즘적 전망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로서 더욱 근본적으로 추구해야 방향은 창조(또는 진화)의 절정으로 여겨지는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를 통해 우리의 존재가 우주적 이야기에 통합되는 질문과 시도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뇌의 신경 로직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가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이 책이 보여주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완전한 우주적 이야기의 완성을 위해서 과학과 신학(종교)은 서로의 빈틈 메우기를 경주해야 한다. 우리 뇌의 “NeuroLogic”이 가르치듯이……

 

"Science without religion is lame, religion without science is blind." – Albert Einstein

 

박우민 (woomin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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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우종학,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IVP | 2014. 12. 5 | 개정판 2쇄 | 260쪽 | 13,000원

 

‘에라, 잘 모르겠다. 구원에 관련된 중요한 이슈는 아니잖아!’

물론 이런 태도는 결코 건강하지 않다. 하나님이 주신 지성의 전통을 맛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한 숙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문제가 직접적으로 구원에 관련된 중요한 이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창조-진화 논쟁이 수많은 지성인을 신앙의 길에서 몰아내는 심각한 방해꾼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프롤로그 중)

 

 

과학은 나에게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수학을 포기하는 사람을 ‘수포자’라고 부르던데, 수포자는 필연적으로 과포자가 될 수밖에 없다. 과학은 결국 온갖 수학공식들이 난무하는 장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포자였으므로 과포자가 되었다.

 

그런데 크리스천이 되었더니, 과학으로 하나님을 증명한다는 말이 들린다. 솔깃하긴 했지만, 방사선동위원소니 하는 말들이 예사로 등장하는 창조과학 강의는 어렵기만 했다. ‘에라, 모르겠다. 과학은 과학자들이 하라지. 그게 꼭 구원과 관계된 것은 아니잖아? 과학 몰라도 복음은 잘 전할 수 있는데 뭘.’ 이것이 내 입장이었다. 그래서 프롤로그를 읽으며 가슴이 뜨끔했다.

 

교회에서 대대적으로 창조과학 강의를 얼마간 들었다. 복음을 처음 들었을 때처럼 뭔가 가슴이 뜨겁게 타올랐다. 크리스천으로서 기본적인 과학지식은 알고 있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열심히 강의를 듣던 중, 오직 한 가지 의문만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지금 이 강의, 현대과학이 잘못됐다는 것을, 과학을 이용해서 증명하겠다는 건가?’

 

창조과학, 젊은지구론에 대한 강의는 과학의 여러 가지 성과물들을 이용해 현대를 버젓이 살아가고 있으면서 그 과학이 틀렸다는 것을, 바로 그 과학으로 증명하겠다는 강의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뭔가 오류가 있는데 나는 그것을 반박할 지식이 없었다.

 

 

[무신론 기자, 크리스천 과학자에게 따지다]

 

내가 그 때 이 책을 읽었더라면, 할 말이 아주 많았을 것 같다. 거창하게 구체적인 과학적 지식을 암기해서 논리적 반박을 하는 것이 아니라, 크리스천들이 흔히 오해하고 있는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잘못된 진실들 몇 가지만 짚어보면 큰 그림이 그려진다. 이 책은 친절하게 그 과정을 안내해주고 있다.

 

먼저, ‘과학’과 ‘신학’이라는 키워드를 듣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떠올릴만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유명한 ‘갈릴레오의 종교재판’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나 또한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종교가 과학을 억압한 사례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건은 그 당시의 시대상과 얽힌 복잡한 문제였지 결코 종교가 과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이런 유명한 일화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종교와 과학이 당연히 갈등관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은 자연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객관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일 뿐이다. 즉 가치중립적이라는 얘기다.

 

 

많은 사람들이 ‘진화’의 개념을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 정도의 뜻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진화를 인정하면 크리스천이 아닌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진화는 상태의 변화를 이야기하는 단어이며,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진화론’은 진화주의, 즉 ‘인간은 신에 의해 즉각적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라 진화를 통해 자연적으로 생겨났다.’고 가치를 부여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과 자연이라는 두 가지 책을 주셨다. 그런데 굳이 두 책을 한쪽 틀에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은 신학이라는 도구로 읽고 자연은 과학이라는 도구로 읽으면 된다. 성경을 과학이라는 도구로 읽고 자연을 신학이라는 도구로 읽는 것이 굳이 문제가 될까? 될 수도 있다. 특히 유사과학이 성행할 정도로 보통 사람도 웬만한 과학지식을 갖고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에 얼토당토않는 과학적 지식으로 성경을 읽어낸다면, 비크리스천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에게조차 외면을 당할 것이다. 또한 그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고 있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게 현 기독교의 실정이다.

 

성경과 자연은 하나님이 주셨다. 그 두 책을 읽는 도구도 하나님이 주셨다. [무.크.따]는 신학과 과학이라는 도구를 올바로 사용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용법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서이다. 그동안 신학과 과학 사이에서 갈등을 겪은 경험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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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원역사 논쟁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는 사랑과 연합의 과정

 

제임스 K. 호프마이어 외 2인 | 창세기 원역사 논쟁: 창세기 1-11장의 장르에 대한 세 가지 견해 | 주현규 역 | 새물결플러스 (2020)

 

 

토라의 첫 번째 책이자 정경의 첫 번째 책인 창세기는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책이다. 창세기는 모세 율법의 서론이며, 성경 나머지 부분에 나오는 구속사의 시작이다. 성경은 창조로부터 타락으로, 타락에서 구속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재창조로 나아가는 네 악장(창조-타락-구속-재창조)으로 이루어진 교향곡이라고 묘사될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는 처음의 두 악장을 간략하게 기술함으로써 성경의 나머지 부분의 기초를 놓아주는 것과 아울러 세 번째 악장을 시작한다. 네 번째 악장은 성경의 마지막 두 장(계 21-22장)의 주제인데, 이 두 장에 창조의 이미지들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계 21:1, 5; 22:1-6). 역사의 종말은 하나님과 조화롭고 놀라운 관계가 재건되게 되는 새로운 시작과 같다.

 

일반적으로 창세기는 신학적 플롯에 따라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창조로부터 바벨탑까지(창세기 1-11장), 족장 이야기들(12-36장, 38장), 요셉 이야기(37, 39-50장). 창세기 1장과 2장의 주제는 하나님이 어떻게 세상을 창조하셨는가 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있으며, 또한 세상을 창조하시되 근동의 다른 종교들과는 달리 무로부터 창조하셨다는 것에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보시기에 좋으셨다는 선언을 하셨다는 점이 강조되어 있다. 창세기 3-11장은 하나님의 창조물들이 저지르는 죄와 반역을 강조해 주는 이야기들을 열거하고 있다. 이 이야기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이 급격한 도덕적 타락을 하고 있는 것을 서술하고 있다. 죄가 만연되고 증가하는 것과 더불어 하나님은 자신이 자신의 피조물들에 대해 길이 참으시고 인내하신다는 것을 드러낸다.

 

3-11장의 다섯 개 이야기는 타락, 가인, 네피림, 홍수, 바벨탑 이야기이고 각 이야기는 죄-(심판의) 말씀-완화(은혜)-심판이라는 문학적 구조를 통해 첫째, 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강화된다 둘째, 죄에 대한 심판도 역시 증가한다는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창조는 이후에 오는 모든 것들의 기초이다. 에덴 동산은 과거에 자신들의 죄 때문에 잃어버린 모든 것들, 그리고 현재 그들이 갈망하는 모든 것들을 상징한다. 타락에 대한 이야기(창 3장)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기록할 뿐만 아니라 심판의 완화, 즉 구원의 복음에 대한 최초의 선포로서의 원시복음(창 3:14-15)을 제시되고 있다. 타락 기록은 구속사의 시작점으로서 구약과 신약의 거의 모든 내용과 관련이 있다. 창조의 기록은 특히 계시록 21-22장에서 그 메아리를 찾아볼 수 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에덴 동산의 많은 요소들을 반영하고 있다. 따라서 종말이 최초의 창조의 회복을 내포하고 있다는 신앙이 여기에 반영되어 있다. 또 바벨탑 이야기는 오순절 날 방언(외국어)을 말하는 은사가 내린 것에 대한 신약의 기록에 비추어서 흥미롭게 이해될 수도 있다.

 

 

창세기가 처음 기록된 때와 오늘날 우리 사이에는 수천 년의 시간적 간극이 존재한다. 우리가 창세기의 저자들과 문화적인 맥락을 공유할 수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도 그들처럼 어린 생명의 탄생을 기뻐하고 타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인간됨의 경험을 공유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어떤 일을 이루었다고 자랑하는가 하면, 마음속으로 고민하기도 한다.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과 우리는 아주 큰 차이점을 가진 동시에, 삶의 가장 근본적인 요소들을 함께 공유한다. 이 공유 가능한 경험들을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이 사용했던 문학적인 장르에 대한 이해로 어느 정도나 바꿀 수 있을까?
그들과 우리가 소유한 지식의 간극은 도대체 얼마나 될까?

우리 문화에도 창세기 1-11장과 비슷한 장르가 존재할까?
만일 그렇다면, 어떤 장르의 글일까?

또 창세기 1-11장은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기반으로 쓰인 역사인가?
허구적인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엇을 보아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본문 전체를 아우르는 장르에 대한 이해는 개별 구절들을 해석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들에 대한 연구가 지난 2000여 년 동안 줄곧 진행되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여전히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이 논쟁적인 문제들을 상세히 탐구하고 성경을 읽는 개인과 성도 모두 이 논쟁의 주된 화제에 주목하여 더 많은 지식을 얻도록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집필되었다. 창세기 1-11장의 장르와 역사성 그리고 그에 따른 성경 해석상의 의미에 대하여 제임스 호프마이어, 고든 웬함, 켄톤 스팍스 세 명의 성경학자들이 작성한 짤막한 논문들로 이 책은 구성되어 있다.

 

James K. Hoffmeier

 

먼저 호프마이어는 그의 논문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문헌으로 이해한 창세기 1-11장”에서 창세기 내러티브가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발생한 역사적인 사실들 및 실제 사건들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호프마이어는 고대 독자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창세기의 지리학적 단서들과 문학적인 요소들, 그리고 역사적인 것으로 해석되어야만 하는 여러 특징을 지목하여 설명을 이어간다. 그는 창세기 1-11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실제로 있었던 일이며,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이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에서 여러 가지 신화를 빌려온 것이 아니라, 그 신화적인 이야기들에 대한 정반대의 관점으로 기록되었다는 이해를 기초로 하여 성경의 신학적인 담론이 시작된다고 주장한다. 즉 이스라엘의 서기관들은 권위가 있고 역사적으로도 정확한 기록들을 바탕으로 당대의 오해들과 신화들을 바로잡으려 했다는 것이다.

 

웬함 역시 호프마이어의 주장에 동의하며 창세기를 원형적인 역사로 믿는다. 그러나 웬함은 “원형적인 역사로 이해한 창세기 1-11장”에서 창세기 기저에 창세기 1-11장을 전적으로 역사적인 사건으로 이해하는데 주저하게 만드는 암류(undercurrent)가 깔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역사적인 실재의 근간을 이루는 핵심 부분이 창세기 1-11장에 포함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기술하고 있는 창세기를 통해-마치 인상파 화가가 그린 그림처럼-실제로 발생했었던 일들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뿐이라고 일축한다. 웬함은 창세기를 과거와 연결된 현재를 위해 역사를 해석해놓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스팍스는 창세기의 저자들은 우리가 생각 하는 것처럼 역사를 기록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의 논문 “고대 역사 편찬 문헌으로 이해한 창세기 1-11장”에서 창세기에 기록된 대부분의 사건은 창세기 내러티브가 기술하는 것과 달리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스팍스는 성경을 기록한 저자들 역시 고대 근동 지역에서 역사 문헌 편찬을 위해 널리 사용되던 문학적인 양식들을 채택했지만, 특정 장소와 시대에 발생한 사건들을 정확하게 기록하고 전달하려는 목적은 없었다고 간주한다. 다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성품을 가지셨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하기 위해서 이 성경 저자들이 고대 근동 지역에서 신학적인 이야기들을 차용해서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성경 전체의 서론을 형성하는 창세기 1-11장이 하나님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한다. 호프마이어는 창세기 1-11장을 역사적인 사건들이 문자 그대로 기록된 역사적인 내러티브로 이해하고, 웬함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창세기 1-11장이 거시적인 관점에서 역사적이라고 간주한다. 그러나 스팍스는 하나님은 어떤 특정한 공간과 시대에 실제적으로 일어나지 않은 어떤 사건들에 대한 기록을 기초로 하는 신학적인 담론을 활용해서 말씀하실 수 있다고 생각한다. 즉 스팍스의 논리에 따르자면, 창세기를 기록한 저자들은 하나님에 대한 진리를 실제로 발생하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통해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뛰어난 예술가들이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비유를 통해 교훈하신 것과 아주 흡사하다.

 

Gordon Wenham

 

창세기 1-11장이 역사적 기록인지, 아니면 문학적 양식인지에 관한 물음은 진지하게 성경을 읽고자 마음먹은 독자들에게는 무척 골치 아픈 문제이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최첨단 과학 시대의 다양한 분야에서 쏟아져 나오는 연구 결과물들과, 수천 년 동안 신앙 공동체 형성의 근간이 되어온 성경 상의 담론이 서로 충돌한다는 전제 때문에 그렇다. 따라서 창세기 1-11장의 장르에 관한 문제는 단순히 문학적인 차원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신학적인 문제로 확장된다. 실제로 똑같은 신앙고백을 하고 동일한 교리를 표방하는 신앙 공동체에 속한 지체들이라고 할지라도, 창세기 1-11장에 대해서 반드시 한 가지의 동일한 이해와 해석만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쟁과 불일치가 전문적인 신학 지식이 없는 일반 성도들을 자칫 혼란스럽게 만들 수도 있다는 걱정스러운 시선도 있지만, 건전한 신앙생활과 신학적 토대는 “토론”과 “논쟁”의 과정을 통해 입증되고 또 더 견고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서도 세 명의 학자들이 밝힌 이러한 불일치에 대한 논평을 통해 확인된다.

 

성경 본문에 대한 “나”의 이해와 더불어 다른 이들의 의견에도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이는 자세를 지닌다면, 창세기 1-11장의 장르뿐만 아니라 성경 본문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과 깊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은 물론, 더욱 건설적이고 유의미한 논의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만족스러운 ‘읽기’ 행위는 대개의 경우 저자를 이해하게 된 것만큼이나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여정도 동반한다. 그것은 ‘보는 것’과 ‘보기 원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인식할 때 비로소 시작된다. 성경의 이해도 마찬가지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 저자들을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초기 교회 시대에 믿음의 선조들과 같은 방식으로 창세기 1-11장을 읽지 못하고 또한 읽지 않는다. 초기 교회 시절의 성경 해석가들은 창세기 1-11 장이 실제로 역사를 반영했는지, 안 했는지의 문제에 대해서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그들은 그저 성경이 사실이라고만 생각했으며, 성경을 역사적이거나 과학적인 패러다임 대신에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범주로 다뤘다.

 

오늘날 우리는 과학기술이 급속히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현대의 독자들이 성경을 과학적인 관점으로 읽으려 한다든지, 장르에 관한 질문을 갖는다든지, 창세기 1-11장에 기록된 원시 역사가 천체 물리학자들과 유전 생물학자들 그리고 고대 근동의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들이 재구성한 역사와 조화를 이루는지 따져본다든지 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고대 근동 문헌들이 더 추가적으로 발굴될 것이고 역사적인 연구법과 과학적 지식은 더욱 정교하게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다른 질문과 관심을 가지고 성경을 대할 것이다.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일도 그렇게 계속 바뀌어갈 것이다. 이렇게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을 새로운 통찰력과 상황에 맞게 끊임없이 다시 탐색하고 재평가하는 과정은 기독교 신앙이 어떤 형태로든지 지성적인 일관성과 설득력을 지탱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엘리자베스 존슨은 “기독교 신앙이 모든 세대에 호소력 있게 다가가려면 당대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방식들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창세기를 연구하는데 장르와 역사성이라고 하는 주제들은 이 시대에 존재하는 교회에 속한 많은 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사안들이다. 그러나 그 사안들이 기독교가 하나됨을 저해하는 방해물이 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도 너무나 중요하다. 이런 주제들이 우리의 연합을 깨트리는 자극제가 되거나, 자애로운 사랑 대신에 갈등과 다툼을 조장하게 해서는 안 된다. 창세기 1-11장과 관련해서 직면하게 되는 매우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며 다른 의견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서로 인내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 갖는 기본적인 특징에 대해 한마음으로 의견을 모으고 함께 즐거워하기 위해서는 서로 견해가 다른 부분이 있어도 자비와 사랑을 확장하는 고통을 감내하고 타인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창세기 1-11장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실제로 원시 역사 시대에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 또한 묘사된 그대로 발생했든지 아니든지 여부와 상관없이, 창세기 1-11장은 궁극적으로 모든 기독교인이 뿌리를 내리고 흠모하며 닮아가고자 염원하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사실 초기 교회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믿음에 대해 오늘 우리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상이한 관점과 세계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나님이 최우선적으로 조성하고자 하신 것은 자애로운 사랑이지 정확함을 기초로 한 믿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이 더 옳은지에 대한 열망은 자주 그것이 필요한 목적을 잃게 하곤 한다. 창세기의 첫 부분에 대한 현대적 지성의 탐구적 열정은 그것이 진정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보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알량한 지식으로 대립하고 비난하는 것이 아닌 꾸준한 한계의 인식과 겸손이 탐구의 방향이며 확장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즉 성경을 읽고 바르게 해석하고자 하는 노력은 결국 그리스도 안으로 더 많은 연합을 이끄는 행위이다. 오래 전부터 창세기 1장을 펼 때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데 7일이나 걸리셨나는 의문이 있다. 순식간의 찰나에 창조하실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과학적 지성이 등장한다 하더라도 7일의 창조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담겨있는 스스로 낮추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는 이해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이 스스로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우리의 한계이다. 창세기 논쟁은 우리 사이의 인식의 차이를 극복해가는 사랑과 연합의 과정이 되어야 하며, 위대한 예술작품의 압도적 감동을 표현하려는 다양한 시도와 같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

 

박우민 (woomin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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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E=mc²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데이비드 보더니스 | E=mc² -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방정식의 일생 | 김희봉 역 | 웅진지식하우스(2014)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 사람들이나 초중고 학생들에게 당신이 알고 있는 과학자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1명만 꼽아 보라고 하면, 아마도 아인슈타인이라고 대답하는 비율이 꽤 높을 것이다. 그만큼 아인슈타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과학자의 대명사로 알려져 있고 더불어 그가 제시했던 상대성 이론에 대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이야기되고 있는 유명한 이론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E=mc2은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발견한 공식이다.

 

이 책은 이 공식을 어떻게 유도하는가를 알려주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E=mc2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실들을 이야기하고, 그를 통해서 이 식의 의미를 알려주고자 하는 책이다. 구체적으로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을 이루고 있는 각각의 구성요소인 에너지(E), 질량(m), 빛의 속도(c), 제곱(2), 등호(=) 등과 관련된 여러 과학자의 연구 과정과 논란, 결론 등을 먼저 설명하고 있다. 이런 기초의 이해를 바탕에 두고 아인슈타인에 의해 E=mc2이 태어난 과정을 설명한다. 특히 4부에서는 이 방정식을 이용하여 원자 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을 2차 세계대전의 긴박한 역사적 사실과 각 과학자들의 입장, 각 나라의 상황 등과 연관 지어 설명하는 과정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게 한다.

 

마지막 5부에서는 이 공식이 우리의 삶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설명하고 더불어 이 방정식의 미래를 우주의 진화 과정과 연관지어 설명한다. 또 최근에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했던 블랙홀과의 연관성도 이야기한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언듯 보면 정확하고, 불변하며, 객관적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과학의 특성 중 하나는 변화 가능성(혹은 과학지식의 잠정성)이다. 물론 아침에 비가 내리다가 점심 때가 되면 날이 개는 것과 같이 수시로 날씨가 변화하는 그런 변화는 아니다. 이것은 많은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전의 과학적 사실이나 이론 등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과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과학 지식이 변화하는 것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에 대한 간략한 한 편의 과학사를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원자에 대한 개념의 변화나 빛의 성질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 등을 알 수 있다. 또한 과학자들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고뇌하고, 갈등하면서 선택을 하는... 그래서 과학자의 삶도 우리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따라서 과학도 우리 생활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가끔은 과학적 지식과 우리의 삶이 별로 관계없는 듯 보이고, 종종 과학 지식은 너무 어려워서 그냥 과학자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과학기술의 시대라고 불리는 요즘처럼 과학에 관심을 갖고 과학적 사고방식을 갖추고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멀어 보이는 과학에 좀 더 다가가기 위해서 한번쯤 과학자들이 어떤 연구를 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건 어떨까? 그러기 위해 이 책이 하나의 본보기 같은 역할을 해 줄 수도 있겠다.

 

윤세진_ 과신대 교사팀, 구일고등학교 생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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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론 연대기>를 읽고

“얘들아, 지구 연대를 따져보면 6 천 년밖에 안 된대!”, “사람이랑 공룡이랑 같이 살았었대!” 나는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를 떠들고 다녔다. 과학으로 성경을 증명할 수 있다니, 진짜 신기했다. 어느 날, 교회에서 창조과학 특별집회가 열렸다. 설레어서 가슴이 너무 떨렸다. 열심히 강의를 듣는 도중, 한 가지 생각에 꽂혀서 나머지 이야기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이 틀렸다고, 그래서 지구 나이는 46억 년이라고 측정한 게 틀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과학적으로’ 증명한다고 한다. 과학이 틀렸다는 걸 과학으로 증명한다고? 나는 너무 혼란스러웠다.

 

 

김민석 | 창조론 연대기 | 새물결플러스 | 2017년 | 375쪽

 

 

김민석 작가는 예전에 <마가복음 뒷조사>를 읽어서 알고 있었다. 참 열정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고,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또 뭐가 있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남편이 이 책을 권해주었다. 반가운 마음에 첫 장을 펼쳤는데, 책을 놓을 수 없었다. 사실, 그때는 정말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어서 한 번에 쭉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딱 한 마디였다.

 

“봐봐 ... 저기 저 별들에서 나오는 빛이 우리 눈에 보이려면 ... 그러니까, 10억 광년 떨어진 별이 보인다는 건 ... 그 별빛이 우리 눈에 오기까지 10억 년이 걸린 거잖아.” (p70-71)

 

주인공 중 한 명인 수영이의 대사다.

 

책을 다 읽고 내려놓았는데, 이 대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요즘 웬만한 사람들은 ‘광년’의 개념이 뭔지 대부분 알고 있다. 하지만 이 간단한 개념이 이상하게도 교회 안으로 들어가면 삭제된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게 아니다. 그냥 생각할 여지를 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수영의 대사 때문에 그동안 뇌 한구석에 잠재워 두었던 콩 알만한 과학 지식들을 단편적으로 끌어내게 되었다. 그랬더니 성경이 다시 보였다. 끊임없이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교회에서 ‘이상한 생각을 많이 하는 자매’로 찍히게 되었다. 성경을 더 열심히 읽고, 기도를 더 많이 하라는 권고를 받았다. 여기서 더 나가면, ‘진짜 하나님 믿냐?’라는 질문을 받을 것 같았다.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아무도 풀어주지 못했다.

 

<창조론 연대기>에는 나와 똑같은 고민을 한 수영이 있었고, 유준이 있었다.

 

 

이번에 서평을 쓰려고 다시 책을 찬찬히 읽으면서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이 있다. 첫째, 신앙과 과학은 적대적 관계가 아니다. 나도 예전에는 과학자는 모두 무신론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과학은 어디까지나 중립적인 입장이라는 것을 또 한 번 되새기게 되었다. 

 

둘째, 창조론의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다는 것이다. 사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라면 기본적으로 6일 천지창조를 믿을 것이다. 하루는 24시간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하고. 나도 처음에는 여기에 의문을 가졌지만, 교회를 다니다 보니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계속하면 안 된다고 여겨서 그냥 24시간*6일=144시간에 걸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기로 했다. 중요한 건 자신이 어느 창조론을 믿든, 다른 사람이 믿는 창조론에 대해서 ‘나만 옳다’라고 여기는 독단적인 태도는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복음이 아니라는 거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걸 주장하는 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셋째, 문자 그대로 읽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평소에 문자 그대로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내가 읽고 있는 성경의 문자대로만 읽으면 됐지, ‘원래 문자 그대로’가 무엇인지를 따져보는 건 내가 할 수 없는 영역이니까,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하나님도 내 처지 다 아시는데라는 생각에 안일하게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질문하는 나’를 삶에서 지워버리게 되었다. 

 

넷째, 과학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거였다. 나는 과학과 복음이 아무 상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여러 가지 질문으로 괴로워했던 것처럼 여러 가지 과학적 질문들 때문에 괴로워하며 교회를 떠나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알았다. 물리학자가 꿈이었던 온유가 과학과 신앙이 대립된다고 생각해서 꿈을 버린 부분에서 무척 마음이 아팠다.

 

 

유준, 김수영, 박온유, 박건호, 고민희, 박사무엘.

 

이 등장인물들은 바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다. 과학과 신앙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파하고 갈등하고 있는 사람이다. 주변에 있는 누군가가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다면, 슬며시 이 책을 선물해주면 어떨까? 진지한 물음과 더불어 고등학생들의 알콩달콩한 이야기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한 가지 팁! 나처럼 안면 기억에 장애가 있는 사람은 등장인물을 한 번에 구분하기 어려우니, 앞 페이지에 나오는 인물소개를 꼼꼼히 읽고 들어가는 걸 권한다.^^

 

이혜련 기자 (1221hanna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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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책]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메리 그리빈 & 존 그리빈 | 세상을 바꾼 위대한 과학실험 100 | 오수원 역 | 예문아카이브 (2017)

 

요즘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오는 것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이다. 처음에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하다가 사망자가 나오고 나에게도 바이러스가 감염될 수 있다고 생각 하지만, 현대는 의학과 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질병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능력이 향상되었고 그로 인해 많은 질병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으며,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문제도 잘 해결될 것이다.

 

그러나 고대에 의학이나 생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질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술에 의지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질병이 초자연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의학과 생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면서 조금씩 극복되었다.

 

질병을 고치게 된 것 이외에도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살아가는 과학 기술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과학의 발전은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갈릴레이, 뉴턴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혁명을 이끈 사람들에 의해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이 후 많은 과학자들의 헌신적인 실험과 연구 결과가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의 발전을 이루었다.

 

과학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측면이 여럿 있지만, 과학혁명을 가져오게 한 결정적인 측면이 바로 실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학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대부분의 과학적 지식은 사변적인 생각이 그 중심을 이루었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역학이 생활 속의 경험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에 갈릴레이나 뉴턴에 의해 부정되기 전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곤 하였다. 과학을 이러한 사변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한 것이 실험이었다.

 

 

이 책에는 천문학자이자 작가인 존 그리빈과 과학 교사인 메리 그리빈에 의해 선택된 100가지 과학 실험이 설명되어 있다. 고대로부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는 실험 중에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실험을 100개 선정하여 그 실험의 간략한 내용과 과학적 의미를 설명한다. 그중에는 유레카로 유명한 아르키메데스 실험, 혈액순환을 알아낸 윌리엄 하비 실험, 광속을 계산한 뢰머 실험, 천왕성을 발견한 허셜, 인류 최초의 백신을 만든 제너, 빛의 파동성과 입자성에 대한 실험, 뢴트겐의 엑스선 실험, DNA 구조 발견 등 물리, 화학, 생명공학, 천문학 등과 관련된 실험이 있으며, 과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기술에 대한 몇 가지 실험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한 어떤 실험은 우리가 이해하기 쉬운 것도 있지만, 다른 것은 이해하기 조금 어려운 내용의 실험도 있다. 그럼에도 과학에서 많은 실험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없었던 많은 내용을 알아내고 그 결과 우주와 물질과 생물을 포함하는 자연 세계의 경이로움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실험을 제시하는 가운데 과학자들에 대한 설명이나 그들이 직접 진술한 내용을 통하여 과학실험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서론에서는 윌리엄 길버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실험의 중요성을 제시한다.

 

여기 표명한 나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또 나의 역설(paradoxes)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수많은 실험과 발견만큼은 주목하시라… 우리는 이 실험과 발견들을 캐냈고, 엄청난 노고와 큰돈을 들여 밤잠을 설쳐가며 이들을 입증했다. 여러분은 우리가 제공하는 실험과 발견을 즐겁게 이용하시라. 그리고 가능하다면 더 좋은 목적에 이들을 가져다 사용하시라… 우리가 제시한 많은 추론과 가설은 필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견해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앞으로 우리의 추론과 가설들이 증명을 통해 권위를 얻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가 만든 많은 추론과 가설은 필시 받아들이기 어려워 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견해들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 윌리엄 길버트

 

하지만 추론과 가설은 “증명(실험)을 통해 권위”를 얻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명제, 실험과 일치하지 않는 법칙은 틀린 것이다. 길버트의 이 말을 요약하자면, 실험 결과와 일치하는 이론이나 법칙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는 이론이나 법칙에 대해 실험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 인체 해부에 지대한 공헌을 한 베살리우스 실험에서 저자들은 베살리우스를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그는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서서(말 그대로 손을 더럽히지 않고) 실제 증거뿐 아니라 상상력을 이용한 해부를 통해 밝혀진 내용을 강의한 당시 해부학 교수들과 다르게 그는 직접 해부를 시행하면서 진행 상황을 학생들에게 말로 설명했을 뿐 아니라, 직접 보게 함으로써 인체에 대한 지식을 심화하고 발전시켰다. 베살리우스는 인체 해부에 대한 지식을 향상시켰고, 고대인(갈레노스)의 이른바 우월한 지혜에 의존하지 않고 눈앞에 있는 증거와 자기만의 실험을 통한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 갈릴레오의 연구에 영감을 받은 선구적 과학자였으며 왕립학회(Royal Society)의 창립을 돕기도 했던 보일은 세계를 탐구할 때 “설사 거기서 얻은 정보가 기존 생각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실제로 얻게 된 경험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는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나타내고 있다.

 

4. 17세기 중반에는 생명체를 닮은 이 특이한 암석들이 뭔가 미지의 과정으로 뒤틀린 암석 조각이 생명체처럼 보이도록 변형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훅은 현미경으로 연구한 증거를 통해 화석이 변형된 암석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변형된 암석 조각이라고 하기에는 화석의 세부구조가 생명체의 모양과 지나치게 흡사했기 때문이다. 그는 현재 암모나이트라 불리는 화석이 “특정 갑각류의 껍질로, 대홍수나 범람 또는 지진이나 다른 유사한 수단에 의해 해당 지역으로 옮겨진 후 그곳에서 진흙이나 점토 또는 석화를 일으키는 물로 가득 차게 된 것임에 틀림없다”라고 설명했다. “눌리우스 인 베르바Nullius in Verba”(어떤 말이건 의심하라)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처음부터 왕립학회의 과학자들은 과학적 발견에 대한 풍문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실험을 수행했다. 로버트 훅은 학회 초창기 이런 실험을 행했던 인물이었다.

 

5. 뉴턴은 1704년에 출간된 《광학Opticks》이라는 이 책에 과학적 방법론에 대한 견해를 요약해 놓았다. 그중에 한 가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분석이란 실험과 관찰을 시행하고, 귀납법을 통해 일반적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며, 실험이나 다른 확실한 진리가 아닌 그 어떤 이의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6. 와트는 ‘순수’과학과 ‘실용’과학 사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드는 실험과학자이자 발명가의 원형을 제공했다. 영국의 화학자였던 험프리 데이비가 와트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살펴보자.

 

제임스 와트를 위대한 기계공으로만 간주하는 사람은 그의 본질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와트는 기계를 발명하고 제작하는 능력뿐 아니라 자연철학자이자 화학자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발명품들은 그가 화학과 자연철학에 관한 심오한 지식의 소유자라는 것, 독창적이고 특별한 천재성으로 과학 지식을 융합해 실용적으로 응용하는 출중한 능력의 소유자라는 것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7. 최초의 백신을 만든 제너의 이야기가 전하는 중요한 교훈은 그가 천연두 예방을 위해 사람들에게 우두 접종을 해줬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런 일을 실행했던 사람들은 제너 전에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과 제너의 차이는 제너가 실험을 통해 사람이 천연두에 대한 면역성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충분한 수의 피험자들을 통해 되풀이해서 그 사실을 확증했다는 것이다.

 

8. ‘푸아송 광점Poisson’s spot’이라 불리는 파동 가설의 예측을 증명한 실험은 특정 이론의 오류를 입증할 목적으로 실행한 실험이 오히려 그 정당성을 입증해낸 최고의 사례 중 하나다. 프레넬은 공모전에서 상을 탔고 빛의 파동 이론도 확립됐다. 일부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결과였을 것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뉴턴조차도 항상 옳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9. 어떤 실험의 의의는 처음엔 널리 평가받지 못한다. 주목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거나 실험이 행해지던 당시에 팽배해 있는 사유의 틀과 잘 맞지 않기 때문이거나 또는 둘 다이기 때문이다. 그레고어 멘델Gregor Mendel이 실시했던 완두콩 유전 연구가 바로 그런 경우다. 멘델의 연구가 지닌, 시대를 뛰어넘는 탁월함은 그의 생물학 연구 접근법이 마치 물리학자의 접근법과 같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동일한 실험을 되풀이하고 실험 내용을 늘 상세히 기록해두며, 관찰한 바를 분석하기 위해 본격적인 통계적 검증 방법을 적용하는 접근법을 쓴 것이다.

 

10. 밀리컨은 아인슈타인의 이론을 반대하기 위한 실험을 한 후에 자신의 의도와 다른 결과를 얻고나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실험을 통해 배우고 변화하고 때로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면서 지난 10년을 보냈다. 애초부터 실험의 목적은 실험을 통해 (온도, 파장, 전압의 세기 등을 조절해가며) 광전자가 방출하는 에너지를 정확히 측정하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에너지를 이 일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1914년 현재, 실험을 통해 내가 밝혀낸 것은 애초에 예상했던 바와는 정반대의 사실이었다. 작은 실험적 오류를 인정하는 한, 결국 나의 실험 연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이 타당하다는 실험 증거를 최초로 제시한 연구가 됐다.

 

11. 1919년 일식을 관측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을 검증한 유명한 실험은 과학적 방법의 작동방식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다. 새로운 사상(이 경우 일반 상대성 이론)은 가설을 제시하고, 가설은 실험으로 검증된다. 실험의 검증을 통과한 가설이나 예측은 훌륭한 과학 이론으로 정립된다.

 

12. 비타민 B12 구조 발견으로 노벨상 수상한 호지킨은 노벨상 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모든 결정 구조 문제를 엑스선 결정 분석으로 해결할 수 있다거나 모든 결정 구조가 풀기 쉽다는 인상을 남기고 싶지 않습니다. 제 인생의 시간 중에는 결정 구조를 풀어낸 시간보다 풀어내지 못한 시간이 훨씬 더 깁니다. 인슐린을 엑스선 결정법으로 분석하기 위한 저희의 노력을 예로 들면서, 엑스선결정학이 극복해야 할 난제들 중 일부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과학에서의 실험은 이론이나 법칙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요소들 중 하나다. 이 책에서 다루지 않는 많은 실험들이 흥미롭게 우리에게 다가온다. 또한 앞으로 많은 자연 현상들이 사람들의 상상력과 끈기를 통해 발견되기 위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러한 과학 실험앞에 과감하게 도전해보지 않겠는가? 이를 위해 이 책의 실험들은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윤세진 (과신대 교사팀, 구일고등학교 생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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