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13회 콜로퀴움은 ‘판넨베르크가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라는 주제로 더처치 교회비전센터에서 지난 3월 18일에 진행되었다. 발표자는 숭실대 기독교학과의 이용주 교수였고, 대담자는 서울대 지구과학교육과의 최승언 교수, 사회자는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의 우종학 교수였다. 이 날 발표자 이용주 교수는 판넨베르크의 『조직신학』 Ⅱ(새물결플러스/2018) 중 창조론을 중심으로 다루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이 세계를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활동으로 존재하게 된 피조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과학적 진술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강의했다. 1부 강연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해 봤다. 

 

 

글_ 심기주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우리가 자연의 사물들을 연구하는 것처럼 우리가 직접 주체가 되어서 하나님을 연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게 알려주셔야 우리가 알 수 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라고 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자기자신을 알려주시는 특별하고도 배타적인 방식이 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고 흘러가고 이 세상의 의미는 어떤 것인지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알려주신 방식에 집중할 때만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할 때만 기독교적 신학을 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기독론적 집중이라고 한다. 여기서부터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말하는 신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믿는 유일신과 유대교, 이슬람에서 믿는 유일신론은 좀 다르다. 한 하나님이 그냥 하나가 아니다. 기독교는 성부, 성자, 성령의 세 인격이 하나님 한 분 안에서 하나의 신성을 이루시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자기 자신을 알려주셨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삼위일체 하나님과 이 세계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다루고자 한다. 그것이 조직신학이 다루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관계 맺으면서도, 자신과는 구분 짓는 그 독특함에 굉장히 주목을 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운 주님이나 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빠’라고 굉장히 친밀하게 칭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하나님이 아니야(요18장)’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을 자기 자신과 구분 지으셨다. 즉, 나사렛 예수의 삶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굉장히 긴밀한 관계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그런데 예수께서 공생애 활동을 하실 때 꼭 성령이 함께 하신다. 잉태하실 때도 그렇고, 세례 받으실 때도 그렇고 항상 함께 하셨다. 이렇듯, 예수 그리스도에 집중하다 보면 예수라는 한 인간의 사건 가운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라는 이 세 인격들이 함께 작용한다는 것을 기독교 신앙은 기본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삼위일체라는 말은 나오지 않지만 심층적으로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판넨베르크는 이렇게 말한다. “세 인격들은 하나님의 인격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형태들이다.”

 

초대교회 혹은 고대 교회 때부터 삼위일체 신앙이 교회 안에 고백되고 형성되었다. 그렇다면 삼위일체는 무슨 뜻인가? Trinity라는 것은 tri + unity이다. 세 분이 하나의 통일성을 이룬다는 뜻이고,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세 힘이 상호작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데 이 관계를 통틀어서 하나님의 속성을 알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세 인격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데 그것을 통해서 비로소 하나님이라는 신성이 구성된다. 하나님이 삼위일체라는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한 분 안에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있어서, 이 인격들이 서로 다른 행동들을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아무 것도 안 하시는 분이 아니라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보통 기독교인들이 구약의 하나님 이미지에 익숙하다 보니 보좌에 앉으시고 높으신 왕의 이미지에 익숙하다. 마치 ‘착한 타노스’의 느낌이다. 앉아서 멀리 계신 느낌이다. 그런데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고, 서로서로가 존재하게 해주는 상호의존적인 활동을 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낳음으로써 아들이 아닌 인격체가 되고, 아들은 ‘나는 아버지가 아닙니다’라고 아버지와 자신을 구분하면서 아버지가 아버지 되게 하는 활동을 하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 가운데 띠로써 연합하도록 하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성령을 가리켜 ‘사랑의 띠다.’라고 교회는 오래전부터 얘기해왔다.

 

따라서 ‘일체’라는 것은 세 인격들이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사랑의 활동을 하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삼위’라는 것은 세 인격들이 서로서로 구분되는 독립적인 자유로운 활동 가운데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본질상 ‘나와 다른 존재(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활동을 하는 관계 가운데 계신’ 분이시고, 이를 기독교적 용어로는 ‘사랑’이라고 한다.

 

간단하게 말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관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저 높은 보좌에 홀로 계시는 분이 아니라 언제나 다른 존재와의 관계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 그리고 그 관계 가운데 자유롭게 일하신다. 이 자유는 나를 위한 자유뿐만 아니라 상대방을 위한 자유다. 따라서 아들은 이 자유를 아버지를 위해 씀으로써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여 아버지가 아버지 되게 한다. 즉, 아들은 자신의 사랑 활동을 아버지를 위해 하고, 아버지도 역시 아들을 위해 이 자유를 쓴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은 그 자체로 자유로운 사랑의 사귐 가운데 계신 분이시다. 즉, 관계 가운데, 서로 사랑하는 가운데 자유로운 사랑의 사귐 가운데 타자를 존재하게 하는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바르트는 하나님의 다른 이름은 ‘자유 가운데 사랑하는 분’이라고 정의했다.

  

그렇다면 이 세계는 어떻게 존재하게 된 것인가? 하나님은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계를 창조해야만 했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렇지 않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이미 그 자체로 관계 가운데 사랑의 사귐 가운데 계셨고, 그 관계는 완벽한 관계였다. 하나님은 이 세계를 반드시 만드셔야 했던 것이 아니고, 무한한 자유 속에서 만들기로 선택하신 것이다. 따라서, 우발성을 “그것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실제로는 존재함”이라고 정의하면, 이 세계의 우발성은 곧 세계를 창조하기로 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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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가 오려낸 과학과 신앙

 

멸종동물 복원, 난치병 치료, 맞춤아기 등 생명과학은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로 인한 윤리적, 신학적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바이오테러, 우생학적 문제 등 인류가 풀어야 할 숙제가 남아 있습니다. 특별히 과학계의 빅 이슈인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은 과학이 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기도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는 현대 생명과학의 이슈와 과학적 사실에 대한 정확한 정보 전달 그리고 우리가 고민해봐야 할 윤리, 철학, 신학의 문제가 무엇인지 다뤄보고자 합니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4월 29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합성생물학과 유전자 가위" (송기원 교수)
2부 대담(8:20-9:20) 과학자와 신학자의 대화 (송기원 교수, 방연상 교수, 우종학 교수)

 

강사 소개

송기원 교수 (연세대학교 생화학과)
연세 대학교 생화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미국 코넬 대학교에서 생화학 및 분자 유전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밴더빌트 대학교 의과 대학의 박사 후 연구원을 거쳐 1996년부터 연세대학교 생명 시스템 대학 생화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2004년 풀브라이트 장학금(Fulbright Scholar)을 받으며 밴더빌트 대학교 화학과 및 사이언스 커뮤니케이션 전공 방문 교수를 지냈고, 2014년부터 연세 대학교 언더우드 국제 대학의 과학 기술 및 정책(Science Technology and Policy) 전공 겸직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50여 편의 SCI 논문을 게재했다. 대통령 소속 국가 생명 윤리 심의 위원회 제5기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생명 과학에 관한 사회적·윤리적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연세 대학교에서 ‘과학 기술과 사회’ 포럼을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포럼 참여 교수들을 중심으로 2014년 연세 대학교 언더우드 국제 대학 내에 과학 기술 및 정책 전공을 개설하여 전공 교수를 역임하고 있다. 저서로는 『송기원의 포스트 게놈 시대』, 『생명 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공저), 『과학은 논쟁이다』(공저)가, 옮긴 책으로는 『미래에서 온 편지』(공역), 『분자 세포 생물학』(공역) 등이 있다. 

 

패널 소개

방연상 교수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미국 뉴욕 주립대학교와 영국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신과대학과 연합신학대학원에서 문화 간 연구Inter-Cultural Studies와 세계 기독교World Christianity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생명 과학, 신에게 도전하다』(공저), 『타자를 향한, 타자와 함께하는 선교』, 『우분투』, 『타자와 책임』, 『Ethical Responsibility Beyond Interpretation』이 있고, 옮긴 책으로 『좋은 세계화 나쁜 세계화』(공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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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 가위가 오려낸 과학과 신앙  (0)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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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8일에 진행된 제13회 과신대 콜로퀴움은 "판넨베르크가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이용주 교수님께서 강의해 주셨습니다. 1시간 정도의 강의가 끝나고 2부 대담 시간에는 우종학 교수님의 사회로 이용주 교수님과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최승언 교수님께서 패널로 참여해 주셨습니다. 2부 대담 시간에 나왔던 이야기를 손이 가는대로 적어봤습니다. (역시 콜로퀴움의 하이라이트는 대담시간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면 좋겠지만 강의를 들으며 필기한 내용이라 부정확한 부분도 많고 생략도 많습니다.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대담 정리: 최경환 실장



최승언: 판네베르크만큼 현대 과학을 잘 사용한 신학자가 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에 판넨베르크가 복잡계 과학을 조금만 더 알았더라면 더 풍성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우종학: 판네베르크가 우발성과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용주: 우발성은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네.' 이런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필연성도 아닙니다. 판넨베르크는 신플라톤주의의 필연성에 강력히 반대합니다. 신이 왜 세상을 창조했느냐? 창조신앙은 반드시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성서의 창조이야기에 따르면 신은 이 세계와 인간이 신을 섬기기 위해 창조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신이 이 세상을 보시기에 좋았다고 말합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을 말한 것입니다.



: 과학에서는 우발성이 어떤 의미인가요?


: 우리는 우연을 상당히 맹목적이고 무목적으로 사용합니다. 천문학자들은 spontaneous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말이 상당히 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자연의 법칙들이 상당히 규칙적인 것 같지만, 하나 하나의 개체들은 상당히 우발적인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자연현상을 우리가 보기에 우연과 법칙이라고 말하는 것이죠. 이 둘이 서로 작용하고, 이 둘을 매개하는 그 무엇이 있을 때, 새로운 것을 발현시킵니다.



: 기독교의 창조론은 유일신론과 다른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은 법칙성, 영은 우발성이 주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부분도 한 번 더 설명해 주시죠.


: 아들은 서로 다른 것들이 규칙성 가운데 작용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영원한 아들을 로고스라고 말합니다. 로고스는 질서를 부여하는 존재입니다. 판넨베르크는 성서에 나오는 이야기를 철학적 매개를 사용해서 설명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영의 개념도 스토아 철학을 차용합니다.


: 판넨베르크는 영을 장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고 하는데, 이 부분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 가시적으로 보이는 물체의 비가시적 근원, 유한한 세계의 근원으로서의 장처럼 활동하는 영,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유비적인 관계를 설명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활동에 기초해서 세계를 체계적으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맞추다 보니 인위적이라는 비판을 안 받을 수 없습니다.


판넨베르크의 과제이기도 한데, 그는 세상의 혼동과 무질서를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는 태초에 근원적 혼돈에 대해서 알고 있었음에도 하나님의 주권과 일원론을 강조하기 위해 무로부터의 창조를 형성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이 전통을 따라갑니다.


신에 대한 우리의 고백이 ‘참’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판넨베르크는 열심히 노력합니다. top-down 방식을 취하지만 과학적인 실재와 공명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판넨베르크는 기본적으로 자연의 법칙성을 강조합니다. 우발성은 법칙성을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둘을 배타적으로 보면 안됩니다. 초월성이라는 것은 설명될 수 없는 뭔가 신기한 것, 법칙성과 다른 그 무엇이 아니라, 하나님은 법칙성과 우발성 가운데 계신다면, 하나님의 내재성이 초월성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말은 이미 일어난 사건에서 이미 일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초월성은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아니라, 설명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 자연현상 가운데도 우연성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때만 하나님이 행하신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분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 우리는 영이 무엇인지 잘 모릅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파악되지 못하기 때문에 희미하게 볼 뿐이죠. 영이신 하나님의 특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사랑입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본성을 알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우리와 관계맺고 일하고 계신다는 의미에서 하나님은 자기 초월의 근원입니다. 초월을 공간적으로나 무관계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공간과 시간의 제한을 받지 않지만, 스스로 공간과 시간 안에 들어오시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기 초월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초월이죠.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지난 월요일에는 과신대 콜로퀴움을 잘 마쳤습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독일의 조직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크의 삼위일체론과 창조론을 소개받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려운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고 온라인으로도 많은 분들이 시청해 주셨습니다. 2부 대담 시간에 우종학 교수님께서 작성하신 질문 내용을 올려드립니다. 함께 고민하고 생각해 보시죠~



1. 우발성과 자연법칙 - 하나님의 자유와 사랑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가?


판넨베르크는 신의 자유와 신의 사랑, 두 개의 키워드를 사용해서 창조를 표현합니다. 우주는 반드시 존재해야 했던 것은 아닙니다. 신이 자신의 내적 필요성에 의해 필연적으로 창조해야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즉, 우주의 존재는 우발적이고 우연적입니다. 이것은 신의 자유를 드러냅니다.


그렇다고 해서 창조된 우주가 단지 신이 자기실현을 위해서 소모적으로 사용하고 버리는 소멸적 특성만 갖는 것도 아닙니다. 만물이 존재하도록 붙들고, 창조된 모든 것이 그 완성된 형태로 나가도록 하는 신의 행위는 바로 사랑입니다.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방식으로 혹은 우발성과 우연성을 제거하여 기계적으로 명령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피조물들이 고유한 완성의 형태로 나가도록 보존하고 협력하고 돕는 사랑입니다.


보존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만들어진 창조물의 본성을 잃지 않도록 돕는, 시간의 방향으로 따지자면 과거가 기준이 되는 사랑이고, 섭리는 피조물들이 완성되도록 돕는 미래적 목표를 위한 사랑입니다.



2. 자연법칙과 틈새 찾기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자연 사건들의 우발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규칙성들의 한계를 숙고하면서, 문제를 자연 사건들의 규칙성의 틈새를 찾으려는 방향으로 몰아가서는 안될 것이다. 오늘날의 신학은 이 자연 사건들의 틈새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유혹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은 자연 과정들 속에 담지된 그 틈새들을 메우고 있으며, 만일 그렇지 않다면 세계는 그 자체로 자동적인 것이 되고 따라서 하나님은 전체 세계의 창조자가 아니라는 식이기 때문이다. 경험적으로 볼 때 그런 틈새들은 자연 과학이 진보함에 따라 언제나 다시금 메워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를 들어 비유기적 과정들로부터 생명이 기원한다는 사실이 물리학적으로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왜 그런 주장이 미래에도 설득력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가? 기본적으로 물리학이 대답할 수 없는 물음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추측할 수 있는 것이라곤, 각 새로운 연구 결과가 제시되면, 또한 그에 따른 새로운 문제들이 야기될 것이라는 것뿐이다."


판넨베르크가 틈새의 신 방식의 접근을 비판하는 관점이 흥미롭군요. 심지어 무생물에서 생물이 출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에도 무게를 두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합니다. 과학이 새로운 발견을 하면 새로운 신학적 문제가 대두되겠지요. 생명의 출현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란 얘깁니다.



3. 진화에 대한 판넨베르크의 관점은? - 우발성은 이신론적, 기계론적 신관을 오히려 깨트려 주었다.


"다윈주의에 반대하는 투쟁은 신학과 자연과학의 관계 속에서 일어난 가장 심각한 오류에 속한다.…신학은 (모든 종이 세계의 시작 이래로 변하지 않는다는) 불변이론의 세계관적 전제에 갇혀있었고 인간에 대한 관념론적 과대평가를 통해 눈이 흐릿해져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신학에 경고음을 일으킨 것은 다윈의 종의기원설이 일으킨 의문, 곧 창조 속에서 인간이 갖는 특별한 지위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 의문이란 바로 신의 목적을 설정하는 목적론적 자연관이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 속에서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의 우연성에 대한 강조로 대체되었다고 생각해서 그런 의문을 품게 된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유전과 자연선택의 상호작용은 유기체적 생명의 출현이 갖는 목적적합성을 설명해주었다. 목적적합성의 설명은 목적론적 신 존재 증명에 따르면 오로지 계획하는 이성을 가정할 때만 가능하다고 여겨졌다. 그렇기에 자연선택설은 친구들과 적들 모두에게 유신론적 하나님 표상에 대한 반박으로 보였다. 양측 모두에게 진화의 자연선택설은 종들의 생성에 대해 원칙적으로 단지 기계론적인 설명만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사실이 간과된 것입니다.


"알트너가 지적했던 것처럼 진화의 새로운 세계상은 창조 사건의 역동성을 시간 안에서 열려 있는 과정으로 성찰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기계론적인 자연관은 하나님을 기껏해야 이신론적으로 보아 과거 한때의 자연질서의 창시자로 받아들이도록 했고, 자연사건 과정 속에서 계속 창조적으로 활동하시는 분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반면, 진화는 이런 기계론적인 자연관과 이신론적인 신관을 깨트리게 해 주었다는 것이지요.



4. 장이론 - 과학과 신학의 결합인가? 차용인가?


판넨베르크의 입장이 창조과학식으로 물리학과 신학을 직접적으로 결합하려는 건 아닌가? 자연과학과 대화하려는 판넨베르크의 접근이 성령의 내재적 역사를 장이라는 물리학적 개념을 사용하여 직접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인지, 혹은 과학적 설명과 신학적 설명 사이에 일정 정도 선을 긋고 장과 같은 물리학적 개념을 차용하여 성령의 일하심을 유비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지 불명확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판넨베르크는 장의 개념을 유비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성령을 어떤 에너지 개념으로 물리적 실체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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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넨베르크가 들려주는 창조 이야기


2019년 첫 콜로퀴움은 20세기 대표적인 신학자로 손꼽히는 볼프하르트 판넨베르트의 창조론을 소개받는 강의로 준비했습니다. 판넨베르크는 현대 자연과학이 제시하는 대부분의 법칙과 원리들, 곧 진화론, 열역학 제2법칙, 인간원리, 상대성이론, 나아가 양자역학에 이르는 과학 이론을 전통적인 삼위일체 신학 안으로 통합합니다. 이용주 교수님으로부터 현대 자연과학의 중심 내용을 포괄할 수 있는 판넨베르크의 창조론을 들어 봅니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3월 18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삼위일체 창조자와 그의 피조세계로서의 세계" (이용주 교수)
2부 대담(8:20-9:20) 과학자와 신학자의 대화 (이용주 교수, 최승언 교수)


강사 소개

이용주 교수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연세대학교 신과대학(M.A.)과 대학원(Th.M.),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공부하였다. 이후 독일의 마인츠,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수학하였고, 튀빙겐대학에서 셸링 철학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신학적, 체계적 해석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Dr. Theol.)를 취득하였다. 독일의 De Gruyter 출판사의 TBT 시리즈에서 학위 논문을 출판하였고, 현재 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번역한 책으로는 <편안한 침묵보다는 불편한 외침을>(새물결플러스)를 비롯해 여러 권의 책이 있다.


패널 소개

최승언 교수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천문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지구과학교육과 교수로 재직했고, 한국지구과학회 회장(2011) , 서울대학교 과학영재교육원 원장(2001~2006) , 서울대학교 관악영재교육원 원장(2008~2016)을 엮임했다. 지은 책으로는 <천문학의 이해>(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비롯해 13권의 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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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to Damascus(이하 다마스커스)’ 단체 사람들과 함께 과신대 12 콜로퀴움을 다녀왔다. 저번 11 콜로퀴움이 전통적 창조론부터 현대의 창발론까지 창조에 대한 신학적인 내용을 주로 깊게 다뤘다면 이번에는 한국 개신교인들의 창조와 진화 인식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내용을 다뤘다. 이번 주제가 가볍고 직관적으로 알아들을  있는 부분이 많아서 후속 모임을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후속 모임에서는 먼저 이번 설문 조사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고 관련해서 코멘트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솔직한 과신대 콜로퀴움 후속모임 뒷담화


심기주



 주제는 단순히 과학뿐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굉장히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콜로퀴움에서 인상적인 것이 무엇보다도 창조와 진화라는 프레임은 2번이나 범주를 잘못 잡은 것이었다 이야기가 나왔다.  범주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으면 대화가 전혀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창조는 세상의 기원 대한 것이다. 반면 진화는 세상 만물이 어떤 과정 거쳐 생성되었는지를 말한다. 진화가 창조를 반드시 부정하는 것도 아니고 진화가 반드시 무신론을 입증하는 것도 아니기에 범주 설정부터 교통정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당장 오늘 모였던 사람들도 모두 개신교인이었지만 창조의 방법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렸다. 여기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수렴되는 부분은 결국 문제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얼마나 초점을 맞추느냐였다. 하나님의 초월성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사실  세계의 현상에 대해 자체적, 논리적으로 설명할  있는 말이 없다. 과학은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학문인데  설명 기제에 우리가 과학적 탐구를 수행할  없는 초월적인 것을 넣는 것이 얼마나 타당한가 하는 지적도 나왔다. 반면 내재성에만 너무 집중하면 반대로  땅에 임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도, 하지만 주로 자연적인 방법으로 일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세상을 바라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먼저 개신교인들끼리 생각이 다르더라도 서로의 신앙을 먼저 인정하고, 비하하지 않고 대화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특히 교회에 과연 터놓고 신앙에 대해 토론할  있는 3 지대가 있는가? 일방적인 주입만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콜로퀴움에서 나온 날카로운 지적은 우리의 공감을 자아내었다. 


다마스커스는 기독교 변증 모임으로서 실시간 스트리밍 방송에서나 시청자 오픈 채팅방에서 페이스북에서 그리고 정기모임에서 끊임없이 우리의 신앙에 대해 고민하고 질문하고  함께 솔직하게 답을 찾아간다. 감사한 것은 신앙에 대한 질문에 목마른 사람들이 꾸준히 오픈채팅방에 들어온다. 그중에는 불가지론자도 있고, 신앙에 대해 진지하게 검증해보려는 무신론자도 있고, 새신자도 있고, 교회에서 질문할  없어 여기에서나마 질문하려고 오는 사람도 있다. 우리(그 중 크리스천들) 복음이 진리라고 생각하기에 머리가 아플 때도 있고 두려울 때도 있지만 계속 솔직하게 신앙에 대해 질문하고 때론 의심하면서 다시금 신앙 가운데로 나아가는 것이다. 



한국 교회는 지금 무엇이 두려운 걸까? 서서히 삶과 상관없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점점 신앙에서 멀어지다가, 교회를 떠난 친구들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자기도 어릴  교회를 다녔다면서 웃으면서 아직도 교회에 희망을 조금은 가지고 있는 친구도 있고, 교회에서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교회 밖에서 신앙을 유지하는 친구도 있다. 가끔씩 마주치는 교인들의 반지성적, 막무가내식 전도에 질려 안티크리스천이  친구도 있다. 이상하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교회는 지금 안녕한가? 우리는 과연 복음을 온전히 살아내고 있고 전하고 있는가? 나는 그러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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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과 지식: 조화의 길을 걷는 그리스도인
제12회 콜로퀴움 후기


백우인



제12 과신대 콜로퀴움은 창조와 진화: 교회 안의 긴장과 공존이라는 주제로 더처치 교회비전센터에서 지난 12() 개최됐다. 이날 발표자는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대담자는 박희주 교수(명지대)였고, 온라인 동시 방송으로  세계에 있는 과신대 수강생들에게 영상으로 전달됐다. 이날 발표자 정재영 교수(실천신대) 2018 상반기 전국 19 이상 개신교인 1,000명을 대상으로 ‘창조와 진화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인식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다양한 창조론에 대한 지지 정도, 성경과 과학적 사실에 대한 양립 가능성, 정보를 받아들이는 채널과 비판적 수용 정도  세분화된 질문들에 대한 조사 결과였다.  


창세기 본문대로 하나님이 모든 생물을 각각 종류대로 창조하셨다는 즉각적 창조론(64.5%) 과학이 생명체에 대해 설명하는 다양한 정보와 함께 하나님의 섭리 하에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되었다는 진화적 창조론(16.9%), 하나님 없이 현재의 생물 종류로 진화되었다는 무신 진화론(11.5%)  창조에 관해 지지하는 내용은 어떤 기독교인이냐에 따라 다양했다. 기독교인이라는 스펙트럼 안에는 이름만 기독교인에서부터 독실한 기독교인까지  적극적으로 탐구하며 알아가는 신앙인, 그냥 무조건 믿는 신앙인, 귀차니즘 신앙인 등등 다양한 기독교인이 있으니 그들의 해석 또한 다양할 것이다.



대담자인 박희주 교수의 발언 중에 “창조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궁극적 기원 관한 이야기이다. 진화는  세상 만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성되었는지 ‘과정 대한 답변이다 정재영 교수가 발표한 보고서는 무엇을 함의하고 있을까? 믿음 좋은 신앙은 어떤 신앙인지를 고민하게 했으며 또한 창조냐 진화냐라는 잘못 던져진 물음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해주었다. 어떤 결과들은 기독교가 가부장적이고 위계적인 구조임을 보여주었다.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와 지식들을 비판적으로 수용할  있는 합리적 이성이 필요함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창조와 진화, 기독교와 과학이 상호공존 가능한지, 가능하다면 어디까지이고,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설명해주었다. 세계- 존재인 우리 현존재는 우리가 생각해온 ‘믿음이 좋은 신앙인이라는 믿음과 지식이 분열된 퇴락된 상태를 넘어서서 종합적이고 조화로운 믿음과 지식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기독교인, 탄탄한 믿음의 신앙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여러 개의 질문 가운데 흥미로운 것과 박희주 교수의 대담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경 내용을 과학적으로 의심해  경험 있는가?
있다’ 59.0%

- ‘있다 이들의 대처 방법은

하나님 말씀이므로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37.2%

여전히 의심을 품고만 있다’ 25.3%

의심이 가는 내용은 과학적 사실을  믿는다’ 21.0%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아본다’ 13.7%

기타’ 2.8%
 
- ‘없다 답한 41.0% 응답자들에게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은 과학을 다루는 책이 아니어서’ 72.6%

과학적으로 위배되는 내용이 있을  없으므로’ 23.2%

'기타' 4.2%

 
◆‘성경 내용과 과학의 주장이 엇갈릴  어떻게 하는가?

 ‘성경의 기록을 믿는다’76.1%
 ‘어려운 문제이므로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12.6%
 ‘어떤 것이 맞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7.5%
 ‘과학의 주장을 믿는다’ 3.8%

성경을 과학적으로 의심해   있다 이들 중에서는 
 ‘성경의 기록을 믿는다’50.0%
 ‘어려운 문제이므로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24.9%
 ‘어떤 것이 맞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14.2%
 ‘과학의 주장을 믿는다’ 10.8%


ㅡ성경을 과학적으로 의심해   없다 이들은 
 ‘성경의 기록을 믿는다' 31.9%
 ‘어려운 문제이므로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33.6%
 ‘어떤 것이 맞는지 알기 위해 노력한다’ 18.8%
 ‘과학의 주장을 믿는다’ 15.7%
 
위의 결과는 성경 내용에 대해 의심이 들거나 과학적 사실과 맞지 않는다고 느껴질  우리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탐구하기보다는 쉽게 포기하거나 한쪽만을 선택하려 한다는 것과 귀찮아서 혹은 빨리 결정해버리고 불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혹은 무조건 성경을 믿는 쪽으로 믿음 좋은 신앙인을 자처하기도 한다는 것으로 추론할  있다.
 


 다른 설문 내용 중에 
 
◆‘진화론과 기독교 신앙이 양립할  있느냐 질문에 
 ‘없다’ 48.1%, ‘있다’ 40.3%,  모르겠다 11.7%


양립할  없다 여성, ‘있다 남성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이것은  여성들이 성경을 보다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었고 “보수적 신앙 층과 중직자 층에서 ‘양립할  없다, 상대적으로 높게 나왔다.
 
우주, 지구, 생명의 기원 등에 대한 생각에 영향을 받은 요소 질문한 결과(복수응답), 교회 설교/강의 ‘학교 수업 61.9% 58.2% 가장 높았다. ‘’ 40.9%, ‘언론매체’ 26.4%, ‘인터넷/SNS’ 25.7%, ‘사회단체 강의/교육’ 12.4%, ‘주위 사람’ 9,8%, ‘기타’ 2.3%, ‘없다’ 2.8% 등이었다. 


여성은 교회 설교/강의를 통해서, 남성은 학교 수업과 책에 각각 영향을 받는 비율이 높았다.  보수적 신앙 층과 중직자 층은 교회 설교/강의를 통해서, 진보적 신앙 층과 일반 성도 층은 학교 수업과 책에 각각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결과로부터 정재영 교수는 “신앙관이 진보적인 사람들은 교회 설교나 강의를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서, 학교 수업이나 책에서 얻는 정보와 함께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추론했다.
 


대담 시간에  박희주 교수(명지대학교) 창조냐 진화냐라는 질문에 대해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창조냐 진화냐는 층위가 다른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창조에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궁극적 기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떻게 물어볼  없다. 기적의 영역은 인간의 이해가 닿을  없는 부분  논의의 대상이 아니다. 진화는  세상 만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생성되었는지 과정에 대한 답변이다. 창조냐 진화냐는 질문 자체가 본질을 잃어버린 질문이고 창조에 관한 얘기는 종교와 철학 영역이고 진화는 과학의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박희주 교수는 ' 교회에서는 진화를 말할  없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1980년대에 들어온 창조과학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왜곡된 반진화주의자들로 창조냐 진화냐라는 양자택일적 틀을 제시하여 창조만 선택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가 맞으면 하나가 틀리므로 잘못된 틀이라고 비판하며, 기원에 관한 입장이 2가지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고 중도적 입장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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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콜로퀴움 내용 요약



공감적 사랑의 실천을 통한 하나님의 형상

백우인 기자



108일 과신대 콜로퀴움은 신비로 가득한 인간이 주제였다. 이날 발표자인 장신대 윤철호 교수는 기독교 역사에서 다양한 기독교 전통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견해를 바탕으로 인간이라는 존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개괄했다. 윤철호 교수에 의하면 전통적으로 기독교 인간론은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영혼과 육체의 관계, 그리고 죽음 이후의 인간의 최종적 운명을 다루어왔다. 히브리적 인간론은 대체로 일원론적인 육체와 영혼의 합일을 이야기하고,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은 서구 기독교 전통의 인간론은 대체로 이원론적으로 육체와 영혼의 구분을 이야기한다.


구약성서는 인간이 다른 피조물과 달리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성서의 구절들은 기독교 인간론을 위한 근본 토대를 제공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영혼, 지배력, 자유, 관계 능력 등)의 원천이 되었다. 초기교회 교부들은 플라톤처럼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있으며 창조자에 의해 영혼이 만들어졌다고 믿었다. 고전적 기독교 인간론은 성서에 표현된 하나님의 형상을 플라톤적 개념인 '이성적 영혼'과 동일시했다. 그러나 중세에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처럼 영혼을 전인적 인간에게 형상을 부여하는 생명의 원리로 보고 인간을 정신육체의 통일체로 이해했다.


루터는 인간은 육체와 살아있는 영혼으로 구성되어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애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고 죄가 없으며 따라서 번성하고 창조세계를 지배하며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지성, 의지, 기억, 육체적 능력에 있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자유롭게 부여받은 삶,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삶에 있다.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본래적으로 온전하다고 강조한다. 인간의 부패와 악의와 죄는 본성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본성의 부패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형상은 죄로 인해 파괴되었고 완전히 말살되지는 않았다고 해도 끔찍하게 부패했고 기형으로 남아있다.


근대에 들어 데카르트는 이원론적 인간론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몸과 영혼은 각기 서로 다른 종류의 실체로부터 구성된다. 몸은 물질 즉 연장된 실체인 반면 영혼은 형체가 없는 의식적 또는 사고적 실체로서 자아의 본질을 구성한다. 그러나 근대 이후 전통적인 이원론적 인간론에 대한 도전이 여러 방면에서 일어났다. 신경물리학자들은 인간의 정신적 능력이 뇌와 유기체에 의존한다고 본다. 만약 정신 현상이 전적으로 뇌의 산물이라면 형이상학적으로 구별된 영혼이라는 실체를 상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은 공감적 ,관계적 , 창발적 전일적 인간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관계성 즉 인간이 하나님과 다른 피조물과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 관계 능력으로서의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은 세 위격의 친교적 연합 안에서 하나됨을 이루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론적 존재 방식, 즉 페리코레시스라는 상호내재 안에서의 친교적 연합을 의미한다. 페리코레시스는 상호적인 공감적 사랑 안에서의 친교적 연합을 의미한다. 공감적 사랑 안에서 친교적 연합을 이루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계성은 단지 내재적 차원 안에 닫혀있지 않고 세상을 향한 경세적 차원에 열려있다. 기독교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함께 고통당하는 공감적 사랑이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킨다고 말한다.


윤철호 교수는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인간을 이원론적 관점에서 이해해 왔는데 오늘날 일원론의 도전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일원론의 관점에 의하면 인간의 영혼과 몸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고 몸이 죽으면 영혼도 죽는다. 신경생물학자들은 인간의 정서적 능력이 뇌와 유기체에 의존한다고 본다. 정신 현상이 뇌의 산물이라면 영혼이란 실체를 상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이것은 다윈 이래 영혼이 독립적 실체라는 믿음에 도전하는 것이다.


윤철호 교수는 성서의 인간론을 고찰하면서 몸과 영혼이 함께 죽는다는 일원론적 인간론뿐만 몸이 없이도 영혼이 존재한다는 이원론적 인간론을 모두 극복하는 인간론의 전망 즉 창발적 전일론의 관점을 소개했다. 성서에 기초한 인간론 논의에서 죽음 이후의 인격적 실존(영혼)을 인정하는 것이 곧 이원론을 인정하는 것이냐 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창발론적 인간 이해가 이원론적 사고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예컨대, 인간은 물질적인 유기체로서 존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유기체가 발달하고 성장함에 따라 정신적. 영적 능력을 가진 인격이 창발한다. 따라서 인격은 자신의 유기체와 구별된 실재로서 유기체로부터 생겨나고 유기체와 상호작용한다. 인격은 유기체 없이는 자연적으로 존재할 수도 없고 기능할 수도 없다. 하나님은 인간의 죽음 이후에도 창발된 영혼의 실존을 계속 유지하실 수 있다. 영혼은 몸으로부터 창발된 실재로서 몸과 구별되는 존재론적 위상을 갖는다. 영혼 안에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인격적 관계 능력이 바로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의 핵심이다.

 

윤철호 교수는 과거의 플라톤적인 이원론적 인간론을 완전히 극복하며, 오늘날 현대의 과학이 말하는 일원론적인 물질적 인간론도 완전히 극복하고 있는 인간이해를 소개했다인간의 본질은 관계에서 시작된다. 인간이 자연 및 사회 공동체 내에서 타자와 올바른 관계를 맺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성에 기초할 때에 참된 인간적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


판넨베르크가 말하고 있듯이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도달해야 할 목표, 즉 운명이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속에서 관계적이고 공감적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인간 본성의 본유적 특성이 관계성에 있으며 특히 공감적 사랑이 있음을 강조했다. 영원한 삼위일체적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은 본유적으로 세상을 향해 열려있는 관계성 안에 계신 하나님이다. 인간 안의 하나님 형상은 이 신적 관계성을 반영하며 인간은 동료 인간과 창조 세계의 모든 피조물과의 상호 의존적 관계성 안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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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회 과신대 콜로퀴움]


"창조와 진화: 교회 안의 긴장과 공존"




2018년 마지막 콜로퀴움은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창조와 진화에 대해서 어떤 생각과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강의를 준비했습니다. 최근에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창조와 진화에 대한 인식"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종교사회학자 정재영 교수님으로부터 그동안 조사한 연구 결과를 들을 수 있는 자리입니다. 대담자로는 과학사를 전공하신 명지대학교의 박희주 교수님을 모셨습니다. 박희주 교수님은 창조과학을 비롯한 반진화 운동의 역사에 대한 전문가이시고 과학철학과 과학사적 시각으로 한국교회 안에 창조-진화 논쟁에 대한 귀한 식견을 나눠 주실 예정입니다. 


* 특별히 이번 콜로퀴움부터는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진행순서


7:30~8:30 1부 강연: "창조와 진화에 대한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인식" (정재영 교수)

8:30~8:40 휴식

8:40~9:30 2부 대담: 정재영 교수, 박희주 교수 / 사회: 우종학 교수


강사: 정재영 교수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 연세대에서 사회학을 전공(Ph. D)하고,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종교사회학 교수와 21세기교회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종교사회학회 재무이사, 바른교회아카데미 연구위원, 도시공동체연구소 연구위원과 목회사회학연구소 부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 교회의 종교사회학적 이해』(열린출판사), 『한국교회 10년의 미래』(SFC), 『교회 안 나가는 그리스도인』(IVP), 『함께 살아나는 마을과 교회』(SFC)가 있다.

대담: 박희주 교수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호주 멜버른 대학에서 과학사 및 과학철학사를 전공(Ph.D)했다. 기독교학문연구소 연구원, 한국 과학사 간사 등으로 활동한 바 있으며, 현재 명지대학교 방목기초교육대학 교수로 근무하며 강의와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그동안 과학과 종교, 진화과학과 창조론의 논쟁에 대한 연구를 해 왔다.

✓ 일시: 2018년 11월 12일 (월) 오후 7:30
✓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서울 관악구 쑥고개로 122)
✓ 등록비: 5,000원 (청소년 무료)

✓ 수강신청: goo.gl/z4Rx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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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과신대 콜로퀴움 후기


하나님의 역동성을 드러내는 진화


글_ 심기주 기자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개최한 10번째 콜로퀴움을 다녀왔다. 지난 9월 3일에 열린 이번 콜로퀴움의 주제는 "진화과학과 창세기: 공명인가 대립인가?"였다. 이번 콜로퀴움에서 1부에서는 진화과학자가 말하는 진화에 대한 과학적 설명과 창세기와의 하모니에 대해 말하고, 2부 순서에서는 기독교 신앙과 진화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에 대해 진화과학자와 구약학자가 대담을 가졌다.

먼저
1부 순서에서는진화론과 창세기의 하모니라는 제목으로 김익환 교수(고려대학교 생명공학부)가 진화과학자로서 우주와 지구 생물의 진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창세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강의했다. 김 교수는모태신앙이고 생물학을 전공하면서 기독교도 맞고 진화도 맞는 것 같은데 무엇이 맞을지 10년 동안 고민했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진화가 사실이라고 알려주는 아마존닷컴의 진화에 관한 서적만 13만권이고, 진화(evolution)에 관한 sci 저널이 50개가 넘고, ‘생태와 진화라는 저널이 작년 1월부터 nature의 자매지로 나왔으며, 진화에 관련된 논문만 매년 수 천 편이 나오는데 이는 진화가 얼마나 사실인지 알려준다.”라고 설명하며매년 nature지에 나오는 생물학에 대한 논문을 다 합쳐보면이 새로운 유전자는 생물의 진화과정에서 생겼을 것이다.’ 이런 식으로 진화를 꼭 얘기한다. 과학자들이 진화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죠.”라고 덧붙였다.

사실 전세계에서 진화와 창조 사이에 논란이 가장 큰 나라는 미국이다
. 미국의 교회들이 법정에서 진화와 창조 논란을 일으켜왔다. 김 교수는미국 최고의 과학자들이 모여있는 집단이 바로 국립과학원인데 이 과학자들이 1987년, 1999년, 2008년 세 번에 걸쳐 여기에 대한 보고서를 썼다. 그 내용에는진화는 과학적인 사실이다. 진화에 대해서는 증거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는 없다.’ 라는 내용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김 교수는
미국의 화학회, 물리학회에서도 선언을 했다. 이 선언에서는진화는 과학의 가장 핵심적인 이론 중 하나다. 진화는 하나의 가설이 아니고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이론이다. 창조에 대한 신앙은 과학이 아니다. 진화는 지구에 있는 다양한 생물들의 다양성을 설명하는 유일한 이론이다.’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창조과학에서는
진화론자들이 사용하는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다. 진화론에 대한 결과 해석도 문제가 있다고 공격을 한다. 그러면 실제 진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연구방법에 문제가 있을까?

과학자들은 의문이 있으면 가설을 세우고
, 가설을 뒷받침할 실험 또는 관찰을 하고 그에 따른 이론이 나오면 검증을 하고, 끊임없는 검증을 통해 법칙을 세운다. 진화는 지난 159년 동안 끊임없이 검증을 통하여 법칙의 수준까지 왔다.

김 교수는
과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재현성이다. 반드시 세 번 반복해서 재현성이 있으면 논문을 제출하게 되고, nature에 기고하면 제3의 과학자가 끊임없이 다시 검증한다. 그리고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밝힌 것이 다시 논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끊임 없는 검증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진화론은 지난 159년 동안 검증 절차를 걸쳐서 사실과 법칙 수준으로 얘기되고 있다.”라고 역설했다.



김 교수는 그렇다면 창조과학자들은 왜 끊임없이 진화론에 대해서 반대하고 진화론에 문제를 제기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을 해보았다고 한다.

과학자들이 연구할 때는 가장 중요한 자세가 객관성이다
. 그런데 과학에서 주관성이 필요할 때가 있는데 바로 처음 주제를 가지고 연구를 시작할 때이다. 이 때 주관적인 창의성을 가지고 주제를 접근한다. 그 외에 본인의 생각을 여러 연구 방법을 통해 결과 해석을 할 때는 철저한 객관성을 가져야 한다. “해석할 때 사상적 편향, 종교적 신념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라고 김 교수는 강조했다.

이어서
창조과학자들은 신앙이 깊으신 분들이 많다. 그리고 창조과학회의 기본적인 신조는 성경 말씀은 일점 일획도 틀린 것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나도 그렇게 믿는다. 그런데 그들은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고, 특히 창세기 1장에 나오는 모든 단어들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만이 옳다는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있다. 과학에서는 그런 신념을 주관적 신념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주관적 신념을 가지고 과학적인 데이터를 판단하는 것은 잘못된 자세이다.“라고 김 교수는 말한다.

반면 김 교수는 무신론 과학자들에게도 주관적인 판단을 버리고 객관성을 가지라고 권면했다
. “이들은 과학적인 연구를 할 때는 객관성이 있지만 성경을 바라볼 때는 주관적인 해석을 한다. 따라서 무신론 과학자들도 성경을 바라볼 때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권한다. 마찬가지로 창조과학자들에게도 과학의 데이터를 바라볼 때 객관적으로 바라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 후 진화에 대해 더 설명을 하면서 창세기의 내용은 진화론과 어떻게 조화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 ‘창세기의 내용은 문자적으로 세세하게는 우주역사와 일치하지 않지만 그 138억년의 긴 역사를 아주 짧게 요약했다는 것이다. 일종의 골격 해석(framework interpretation/theory)인 듯 했다. 창세기는 우주의 역사를 주제별로 요약했다는 것이다.



2부 순서에서는 우종학 교수(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가 사회를 맡고, 김구원 교수(개신대학원대학교 구약학)가 김익환 교수와 함께 대담을 가졌다.

인상 깊었던 것은 김구원 교수의 골격 해석에 대한 말이었다
. 창세기를 시간 순서로 이해하는 것은고대인의 관점에서 이상하다. 태양 없이 식물이 자란다. 태양 없이 빛이 먼저 만들어졌다. 고대인의 입장에서는 태양이 우선이다. 태양이 없는데 첫째 날, 둘째 날이라는 개념이 이상하다. 이 세 가지 이상한 점은 모두 태양과 관련된 것이다. 그 당시 태양은 사람들의 신이었다. 창세기 1장의 내용은 '태양 없이 빛이 있을 수 있다. 식물이 살 수 있다. 날이 있을 수 있다'는 비판이다.”

셋 째 날과 여섯 째 날이 대구를 이루는데 두 날의 특징이 창조의 하나님이 두 번 나온다는 것이다. 셋 째 날의 두 번 째 창조 명령이 나오는 대상이 식물이고, 여섯 째 날의 두 번 째 창조 명령이 나오는 대상이 사람이다. 6일 동안이면 6번 창조 명령이 나와야 하는데 셋 째 날과 여섯 째 날에는 두 번씩 나와서 8번이 나온다. 4번째와 8번째가 식물과 사람에 대한 창조다. 뭔가 느낌이 나지 않는가? 이후의 얘기를 암시하는 것이다. 이후에 인간이 식물과 관련해서 범죄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성경은 의미를 준다는 것이다라고 김구원 교수는 강조했다.

진화를 들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부분이 바로 아담의 원죄 문제와 진화의 속성 때문인 것 같다
. 오늘 나온 질문에서도 역시나 관련된 질문이 나왔다.

원죄의 문제에 대해서 김구원 교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원죄의 주창자는 어거스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담의 죄가 유전적으로, 혹은 성적인 관계에 의해서 후손으로 전달된다는 입장인데, 이는 바울 자신의 입장보다도 진일보한 입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원죄가 나왔음을 바울이 말한다. 구약시대의 유대인들은 자유의지에 따른 율법에 대한 불순종을 죄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죄를 아담과 연결시키지 않았다. 그 연결을 시킨 것이 사도 바울이다. 사도 바울의 포인트는 우리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힘으로는 벗어날 수 없다는 실존적인 사실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을 아담과 연결시킨 이유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가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는 논리를 전하기에 가장 좋은 것이 죄의 보편성이었기 때문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죄인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의 죄가 깊고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고백이고 깨달음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신앙고백은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 때 유대인들이 아담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사도 바울이 채택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담을 꼭 바울처럼 해석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죄를 보편적이고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라고 볼 수 있고, 바울이 아담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되었다는 설명은 바울이 그 당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우 교수는 이 원죄 문제가 다양한 견해가 있고 스펙트럼이 넓어서 따로 콜로퀴움을 마련하는 것도 좋겠다고 말했다
. 이 문제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아담으로부터 모든 죄가 왔다는 설명이 자칫하면 아담에게 모든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담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지 않았으면 하지만, 사실 아담이 그 열매를 먹었을 때 우리 모두가 그것을 먹은 게 아닐까? 죄를 지을 때마다 우리는 그 열매를 먹고 있는 게 아닐까?

진화의 우연성과 자연선택은 하나님의 속성과 너무 반대되는 것 같다는 질문에 대해서 김구원 교수는
진화의 속성에 우발이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것과 우발성은 상충되는 것 같다. 그런데 성경에도 우연인 줄 알았던 것이 나중에 하나님의 섭리로 드러나는 것이 너무나 많이 나온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 부음 받는 장면도 사울이 당나귀를 찾으러 가다가 된 것이다. 진화가 우연인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을 수도 있다.”라고 대답했다.

진화가 하나님의 창조의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후로 이 문제로 몇 년간 씨름을 했다
. 하지만 모든 순간에 나와 동행하시고 매 순간 모든 것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 진화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동성을 더 잘 드러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자연적인 방법으로도 일하시지만 자연적인 방법으로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더 느끼고 그 피조 세계를 탐구하는 것이 과학이라고 할 때, 그 하나님의 역사를 가슴 벅차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 신앙은 진화과학 등으로 폄하되고 위험해지기에는 너무 깊고 놀라운 것 같다
. 과학이 신앙을 막거나 신앙이 과학을 막는 것은 사실 범주 설정이 잘못된 헛된 싸움이 아닐까?

“(
유대 기독교 문화에서는)유대인들은 안식일이 끝나고 세속의 첫날에 촛불을 붙이면서 제사장이 이렇게 설명을 한다. 인간이 죄를 짓고 에덴에서 쫓겨날 때, 바로 쫓겨난 것이 아니라 안식일을 같이 보냈다. 에덴은 빛으로 가득했고, 세상은 깜깜했다. 아담과 하와가 어둠으로 나갈 때 두려워했는데 그 때 하나님이 불을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신다. 그리스의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완전히 뒤집는 것이다.”라는 말로 김구원 교수가 대담의 마지막을 마무리했다.

죄를 짓고 부끄러워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린 아담과 하와에게조차 가죽옷을 입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해본다
.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