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일 과신대 콜로퀴엄에서 김구원 교수님께서 강연하신 내용을 과신대 정회원이신 송윤강님께서 정리해주셨습니다. 그 내용을 공유합니다. (* 출처: 페이스북 '과학과 신학의 대화')

 

 

송윤강 (과신대 정회원)

1. 원죄 교리의 구약적 배경


원죄 교리란 인류의 최초 조상인 아담이 지은 죄가 후손인 인류에게 전가된다는 것이다. 이를 신학적으로 ‘죄의 전가 이론’이라 한다. 장로교 신조 6항은 다음과 같이 원죄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우리의 시조(始祖)가 선악간 택할 자유능(自由能)이 있었는데 시험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한지라 아담으로부터 보통 생육법(生育法)에 의하여 출생하는 모든 인종들이 그의 안에서 그의 범죄에 동참하여 타락하였으니, 사람의 원죄(原罪)와 및 부패한 성품 밖에 범죄할 능(能)이 있는 자가 일부러 짓는 죄도 있은즉 모든 사람이 금세와 내세에 하나님의 공평한 진노와 형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원죄의 기원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원죄가 언급된 창세기가 쓰여진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구약 성경이 완성된 때는 이스라엘의 바벨론 포로기다. 아담의 죄의 전가 이론은 포로기의 묵상에서 비롯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포로기 고통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부했던 민족이 멸망했다는 것은 죽음 이상의 큰 고통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고통의 원인은 죄 때문이라 생각하고 이에 대하여 세 가지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첫 번째 입장은 조상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상 중에서 특히 므낫세 왕의 죄를 언급하고 있다.(열왕기 21:10-15, 24:10-15)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의 고통이 조상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명확히 하고 있다.

 

“우리의 조상들은 범죄하고 없어졌으며 우리는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였나이다.” (애 5:7)

 

‘그들의 죄악을’에 해당하는 ‘아오노테헴’의 원형 ‘아온’은 ‘죄의 형벌’이라는 의미도 있다(욥 13:26). 이처럼 조상 탓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하신 약속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심지어 하나님의 주권, 선하심 조차도 의심하고 있었다.


“주여 주의 성실하심으로 다윗에게 맹세하신 그 전의 인자하심이 어디 있나이까.” (시편 89:49)

 

그래서 구약의 저자들은 이스라엘이 고통 받는 이유가 하나님께서 실패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명백히 할 필요가 있었다. 이방신을 섬기는 바벨론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은 이방신이 하나님께 대적하여 승리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인 것이다. 여전히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고, 그의 선하심은 변함이 없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원인이 조상 대대로 쌓인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라고 조상 탓을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신앙을 회복하려는 몸부림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입장은 나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상 탓 할 것 없다. 바로 네가 지은 죄 때문에 벌 받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 명백하게 밝히고 있다(에스겔 18:2-4). 이렇게 보는 입장 이면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회복하기 위해서는 각 개인의 선한 의지, 즉 회개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에스겔이 이와 같은 입장을 보인 것은 그가 속했던 닙프르 공동체의 영향이 컸다. 닙프르는 그발 강가 있는 유대인 공동체이다. 에스겔은 주전 597년에 유배되어 이 곳에 정착했다(에스겔 1:1). 이 공동체는 바벨론 포로 공동체와 달랐다. 바벨론 포로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메시아를 보내셔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반면에 닙프르 공동체의 이런 상태로는 다시는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하기 위해서는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입장은 역대서에도 찾을 수 있다. 므낫세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므낫세는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통틀어 가장 오래 집권한 왕이다. 그리고 므낫세는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야기도 언급되어 있다(대하 33:12-13).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간 므낫세가 회개하자 다시 왕위에 복귀시켜 주신 것이다.

 

열왕기하 36:12-20을 보면 오히려 형벌 원인을 마지막 왕 시드기야와 당시 종교 지도자와 백성들의 죄에서 찾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드기야 때 이스라엘의 멸망을 명백히 죄에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한 심판보다는 고통을 극복하고 회복하는 비전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에스겔서 20장에서는 이스라엘의 고통의 원인을 더 먼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찾고 있다. 출애굽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 죄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에스겔 20:18-23).

 

이처럼 어떤 원인을 좀더 먼 근원으로까지 올라가 찾는 것을 ‘회귀적 결정주의’라 한다. 죄에 대한 책임을 세대 전가의 차원을 넘어 역사의 원점(태고적)까지 올리려는 경향을 말한다. 당시에는 이스라엘 역사의 원점이 출애굽이었던 것이다. 아담의 원죄의 후손 전가 사상은 이런 회귀적 결정주의의 영향이다. 에덴과 출애굽 광야 생활을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짝을 이룬다.


에덴에서 선악과 금지명령을 주신 것과 광야에서 율법 준수 명령을 주신 것, 선악과 금지 명령을 어김으로써 에덴에서 추방된 것과 출애굽 후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으로 40년간의 광야 유배 생활을 한 것 등이다. 이스라엘이 고통의 원인으로 죄의 기원을 광야 시대까지 소급한 이유는 조상들의 죄가 오랫동안 너무나 많이 쌓여서 지금 그들의 어떤 행위를 하더라도 극복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결국 이스라엘의 회복은 하나님의 새 역사 창조에 달려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에스겔은 인간의 선한 자유의지의 발현은 본인 스스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영이 부어질 때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겔 36:26-27)

 

그런데 에스겔은 18장에서는 이스라엘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권고하고 있다.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겔 18:31)


이렇게 에스겔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스스로 새롭게 하라’고 권하는 것은 이미 쌓인 조상의 죄 때문에 그들 스스로는 어떻게 하든 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야 된다고 말한 것과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고통의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다. 고통의 원인을 조상의 원죄에서 찾든, 자범죄에서 찾든 공통점은 회복, 즉 미래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즉 구약은 고통의 원인을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에스겔의 입장이 18장에서와 20장에서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문제 해결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입장은 누구의 죄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사야서 53장은 메시야 예언 본문으로 유명하다. 여기서는 포로 생활 중 이스라엘이 받는 고통이 이방 민족의 구원을 위한 위대한 고통으로 언급되고 있다. 이스라엘이 마치 고통받는 의인처럼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북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겼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이방 땅에 흩뜨려지고 구속 역사에서 사라졌다. 반면에 남 유다는 죄를 짓는 가운데에도 신앙을 지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남았다. 그래서 이사야 53장은 포로 생활로 고통받는 이스라엘을 그렇게 이해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이사야 53:5)

 

그런데 이러한 입장은 유대교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에스겔의 입장을 받아 들이고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죄악에 대한 구약의 입장은 ‘판단 유보’라 볼 수 있다.

 

 

2. 죄악의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입장

 

창세기 1장과 2-3장에서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개의 의견이 병치되고 있다. 그래서 현대 신학자들은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있다고 보고 있다. 창세기의 저자는 모세로 알려져 있지만 성서비평학에서는 1장(제사장 문서; P문서라 부른다)과 2-3장(여호와 문서; J 문서라 부른다)은 서로 다른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문체, 신학, 창조 기사의 서술이 다르기 때문이다. P문서에 따르면 악은 창조 이전이전부터 존재한 것처럼 보인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히브리 문법에서는 1절이 독립 문장이 아니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처럼 2절에 대한 종속절로 해석될 수 있고, 흑암은 악을 상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행위는 그 자체로서 아름답고 완벽한 것이었다. 창조 행위 여러 곳에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언급이 있고, 7이라는 숫자를 이를 상징한다. 그러나 악의 선재설 주장은 창조자의 주권을 제한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J문서에서는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지만 창조행위는 완벽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에 만족하지 않으신 것 같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창세기 2:18)

 

P문서에는 남자와 여자가 동시에 창조된 것처럼 묘사되고 있는데(창 1:27),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순차적으로 창조하신 것처럼 보인다. 하나님은 남자만 창조하시고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악의 상징으로 뱀이 등장한다. 왜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불완전한 창조를 하시고, 악까지 허락하셨는가? 이는 하나님은 전능하시지만 선하시지 않으신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악을 ‘선의 결여’나 ‘위장된 선(진짜는 선이다)’라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럴 경우 악은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먼저 ‘선의 결여’의 입장에서 3장을 해석하면 선악과 사건은 타락과 죄의 사건이다. 하나님의 율법(선한 것)이 결여된(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과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이다.

 

‘위장된 선’의 입장에서 해석하면 선악과는 인간의 성장을 위한 도구다. 아담과 이브는 선악과를 먹고 성숙한 인간이 된 것이다. 그러면 뱀도 악의 화신이 아니라 인간의 성숙을 도와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신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선악과를 도덕적 판단능력과 관련된 것을 보기 때문이다. 고대 근동 신화에서 도덕적 판단능력은 왕의 특징이다.

 

P문서에는 인간은 처음부터 왕의 이미지(하나님의 형상을 따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J문서에서는 불순종으로 왕의 지위를 얻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성경이 고대 근동신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을 왕적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입장에서는 선악과 금지 명령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신 것으로 보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의도는 다른 데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한 것도 시험이다. 하나님의 의도는 아들을 바치는 것이 아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순종)을 시험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는 불순종했다. 불순종이 무조건 나쁜 것은 아니다. 정의에 반하는 명령에 대하여 반항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수도 있다.


아담과 이브에게 불순종으로 인하여 주어진 형벌도 따지고 보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닐 수 있다.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주셨지만 이 두 가지는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이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인류 번성의 비결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인간의 고통이 죄에서 비롯된 것이라기 보다는 하나님의 섭리로 보는 것이다.

 

구약에는 악의 기원에 대한 상이한 입장이 존재한다. 구약은 어느 한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판단 유보’다.이러한 서로 충돌할 수 있는 다양한 견해 성경 속에 나타나 있다는 것에 대하여 유대인들은 전혀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성경이 인생의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악에 대한 판단보다는 악에 대한 대응이 구약의 초점이다. 악을 무엇으로 보느냐 에 따라 대응이 달라진다. 악을 주권적 역사로 본다면 악에 대하여 적극적이 대항하여 싸워야 한다. 그러나 악이 성장 도구라 본다면 고통에 대한 인내, 희생이 필요하다. 또 악이 선의 결여라고 한다면, 순종하는 삶을 살면 고통의 문제는 저절로 해결되는 것이다. 이는 신앙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싸울 때가 있는가 하면, 참을 때가 있고, 순종할 때가 있는 것이다.

 

3. 아담의 죄 전가 이론과 복음의 순전성

 

아담의 원죄가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도 과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교리가 유효한 것인가? 아담이 역사적 인물이 아니라면 예수 그리스도 구속이 허구가 되는 것은 아닌가?

 

바울은 로마서 5장에서 아담 한 사람으로부터 인류에게 죄가 들어왔고, 예수 그리스도 한 사람의 순종으로 죄의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한 것은 십자가의 구속적 효력의 논리적 귀결을 가져오기 위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사실 바울은 유대교 교리에 밝은 유대인 출신으로서 당시 제2성전기 유대인의 성경해석법에 익숙한 사람이다.

 

이 성경해석의 원칙은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즉 역사적, 문법적 의미보다는 현재 시점 적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역사적, 문법적 의미와 현재적 적용의 의미가 서로 일치하면 가장 이상적이겠지만, 만일 일치하지 않으면 현재적 적용에 보다 더 큰 의미를 두었다.

 

이는 쿰란 공동체의 성경 해석 방법에서 찾을 수 있다. 쿰란 공동체의 성경 해석의 전통은 성경 본문보다는 본문 밖, 즉 성경을 생활에 적용하는 공동체에서 찾았는 것이다. 바울도 이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해석의 목적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가지는 사죄의 효력을 밝히기 위한 것에 두었다. 바울은 이 목적을 위해 전통적으로 구약을 해석하는 방법과 다른 방법을 적용했다.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죄의 기원을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립된 출애굽 광야 시대에 두고 성경을 해석했지만, 이방 선교에 관심 있는 바울은 세상 모든 사람의 구원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좀 더 넓혀 인류의 조상인 아담을 가져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복음의 목적을 달성하기 이하여 당시로서는 창조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한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유비(analogy)는 성령의 확신에 의한 것이었다. 미국의 성서학자 피터 엔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바울은 이방 그리스도인에게 설득력 있게 설명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를 주장했는데, 이는 성령이 주신 확신이었다.”

 

바울의 유비(아담의 원죄의 후손 전가 교리) 교리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장로교 신조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는 구원의 칭의 개념 설명에 유효하다. 마치 하나님이 법정에서 재판장이 형벌을 사면해 주는 것과 같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죄인에게 전가되기 위해서는 아담의 원죄도 전가되어야 한다. 죄인이 형을 사면 받기 위해서는 먼저 죄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칭의 개념이 일반적 정의 개념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 아담의 죄가 내 죄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항의에 대하여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그러나 의의 전가에 대하여는 항의할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칭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다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구원은 칭의보다 더 큰 개념이다. 전가(Imputation) 교리의 확립을 위해서 필요한 아담의 역사성에 대하여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하면 어떤 문제가 있는가? 아담과 이브가 현생 인류의 조상인가? 인류가 최초 인류 아담 부부에서 비롯되지 않고 진화된 것이라면 죄의 전가 이론은 성립될 수 있는 것인가?

 

진화론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아담의 역사성은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아담은 최초 인류의 그룹에서 하나님이 주권적인 섭리로 선택하신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에서도 ‘아담’이라는 명칭이 처음부터 고유명사로 사용된 것이 아니다. 창세기 1장-4:1까지 보면 ‘아담’ 그 사람’ ‘사람’ 등 여러 가지 표현이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아담’이란 표현이 고유 명사로 확립된 것은 역대서와 누가복음의 족보 언급에서였다. 그런데 이 족보는 출생 기준을 작성된 것이 아니라 선택 기준으로 작성된 것이다(택한 백성). 이처럼 아담의 대표성도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이스라엘을 선민으로 선택된 것도 이스라엘 민족이 무슨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그러므로 진화와 아담의 역사성도 함께 수용될 수 있는 것이다. 보수적인 기독교의 신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장로교 신조에는 ‘아담’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대부분의 기독교가 받아들이고 있는 소위 에큐메니칼 신조인 ‘사도신경’에는 ‘아담’에 대한 언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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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기원과 인류의 타락

 

고인류학, 진화생물학, 유전학 등의 발전은 성서해석과 전통적인 교리에 큰 도전을 주었다. 만약 인간이 진화했다면,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의 죄와 타락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은 또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대근동학과 구약학을 전공한 김구원 교수에게 아담과 하와의 역사성에서부터 타락의 의미를 어떻게 재구성할 수 있는지 들어본다. 성서에서 말하는 죄의 기원은 무엇이며, 타락에 숨겨진 성서적,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본다. 

 

* 온라인 등록도 가능합니다. 직접 콜로퀴움 현장에 오실 수 없는 분들, 지방이나 해외에 계신 분들은 생방송으로 콜로퀴움을 시청하실 수 있습니다. (수강신청을 하실 때, 온라인 수강을 선택해 주시면 강연 전에 미리 강연을 보실 수 있는 주소를 알려드립니다.)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19년 7월 1일(월) 저녁 7:30-9:30

장소: 더처치 비전센터 5층 채플실 (관악구 쑥고개로 122, 서울대입구역 5분 거리)

* 오시는 길 안내: https://bit.ly/2EnfTvU
* 강의 장소에는 별도의 주차공간이 없습니다. 오실 때 대중교통을 이용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연 순서

1부 강연(7:30-8:20) "죄의 기원과 타락" (김구원 교수)

     휴식(8:20-8:30) 책 증정 이벤트 
2부 대담(8:30-9:30) 과학자와 신학자의 대화 (김구원 교수, 오세조 목사, 최경환 실장)

 

 

강사 소개

김구원 교수 (개신대학교대학원 구약학)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를, 시카고 대학교 고대근동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우가릿 문헌과 사무엘상 본문을 비교문학적으로 연구한 박사학위 논문이 브릴 출판사의 세계적인 구약 연구 시리즈인 의 145번째 책으로 출판됨으로써 한국인 최초로 이 시리즈의 저자가 되었다. 현재는 서양고대문화사학회 연구이사이며, 개신대학원대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궁금해? 김구원 교수의 구약 꿀팁>, <사무엘상(그리스도인을 위한 통독 주석 시리즈)>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구약 성서로 철학하기> 등이 있다. 

 

패널 소개

오세조 목사 (팔복루터교회, 루터대학교 강사) 
아주대학교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이후 미국 House Research Institute에서 박사 후 연구원을 하다가 귀국해서 루터대학교에서 목회자 과정을 마쳤으며, 목사 안수를 받았다. 평택대학교 피어선신학전문대학원에서 박사과정(구약전공)을 수료했으며, 현재 용인에 위치한 팔복루터교회를 담임하며, 루터대학교에서 '신학과 과학', '자연과학의 이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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