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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이 신에게 도전하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9. 4. 23.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 송기원 엮음 | 동아시아 | 2017

 

윤세진(구일고등학교 생명과학 교사)

 

 

2018년 11월 26일 중국 남방과기대 허 젠쿠이(贺建奎) 교수는 유전자 가위 기법을 이용해 에이즈 바이러스(HIV)에 면역력을 가진 쌍둥이 아기인 ‘루루’와 ‘나나’를 얻는 데 성공했다고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이 쌍둥이 아이는 유전자를 교정한 최초의 인간인 셈이다.[1] 이 발표 이후, 과학자들은 물론이고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과학 윤리, 유전자 가위 기법, 생명경시 풍조 등에 대한 다양한 논란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전자 가위 기법을 비롯한 최근의 생명공학 기법들의 발달은 생명과학 또는 생명공학을 연구하는 연구자들로 하여금 합성 생물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영역을 제시하는 단계까지 진전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최근에 합성 생물학이나 유전자 가위에 대한 관심을 반영하여 관련된 기사들이 국내외에서 많이 쏟아지고 있으며 책도 출판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라는 책은 이 문제를 과학적인 측면에서만 다루지 않고 철학적, 윤리적, 제도적 관점의 논의도 함께 다루고 있다. 과학적 기법만을 다루면 자칫 건조해질 수도 있고, 윤리적, 철학적 측면만 다루면 실제적인 부분에 속하는 과학 영역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편집을 한 느낌이다. 특히 합성 생물학과 관련된 제도적인 측면을 함께 다루어 줌으로써 합성 생물학의 다양한 논의 분야를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는 괜찮은 책이다.

 

 

합성 생물학은 생명체의 기본 구성단위인 유전자 수준부터 직접 설계하고 합성해 하나의 온전한 생명체나 세포 소기관, 단백질들로 구성되어 있는 생체 시스템을 만들어 내는 것을 통칭한다.[2] 이러한 합성 생물학에서는 생명체를 이해할 때 모듈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한다. 모듈적인 접근 방법이란 명확히 구별되는 기능을 갖는 모듈들이 네트워크로 조직화되어 기능을 수행한다는 개념으로 접근하는 방법을 말한다.[3] 합성 생물학의 생물학적 기술의 기반을 살펴보면 근본적으로는 멘델에 의해 시작된 유전학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왓슨과 크릭에 의해 DNA의 분자 구조가 밝혀지면서 분자생물학의 출현하였고, 계속해서 발전된 생명 공학과 최근에 급속도로 발전된 유전자 합성 기술의 발전과 그 비용 감소,차세대 염기서열 해독기술의 발전 등이 합성 생물학의 발전을 뒷받침하는 직접적인 기반 기술이라 할 수 있다.[4]

 

합성 생물학이 다루는 범위와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5] 첫째로, 합성생물학을 이용해 지구에 나타난 최초의 생명체 탄생의 비밀을 밝히려고 하는 것이다. 둘째로, 세포를 기계적인 장치의 하나로 인식하여 공학적으로 접근하는 방법이 있다. 이 방법은 원하는 기능을 가진 세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셋째로는 기존과는 다른 생명체를 만들어 보자는 것으로 지구상에 사는 생명체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다. 넷째로는 기존의 DNA 재조합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공학에 대한 개념과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작년 허 젠쿠이 교수 논란과도 연관이 있으면서 합성 생물학에서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기술이 크리스퍼-카스(CRISPR-Cas9) 유전자 가위 기법이다. 이 기법을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크리스퍼-카스 기법에 사용하는 것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크리스퍼 유전자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잘라낼 유전자 부위를 저장 지정하는 역할을 하는데, 이 부분은 21개 염기쌍으로 구성되어 있다. 21개 염기쌍으로 구성된 DNA 사슬은 생물체 내에서 아주 정확하게, 거의 오류가 없이 특정 유전자 부분을 찾아내는 기능을 한다. 다음으로 카스 9 단백질 부분이 있는데, 이 부분은 찾아낸 특정 유전자를 자르는 가위 역할을 한다. 이 시스템은 세균이 자신에게 침입한 바이러스를 물리치는 과정을 연구하던 중에 발견된 것이다.

 

크리스퍼 작동 원리 .  출처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4225775/figure/F1/

 

이 책에서는 이런 기법들을 이용하여 합성된 합성 생물체를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한 철학적인 관점을 여러 관점들을 묶어 세 가지의 대비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6] 먼저 기계라는 관점과 생물이라는 관점을 대비적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생물체를 기계적인 관점으로 보는 것은 데카르트에서 완성되었으며, 다윈의 진화론은 사람과 동물의 경계를 확실하게 허무는 계기가 되었다. 합성 생물학의 관점은 생물체를 기계적인 관점으로 보며 사람도 동물과 동일하다는 견해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본다. 두번째로는 공학적인 관점과 비공학적 관점의 대비이다. 공학적인 관점은 당연히 기계적인 관점과 연결되는 것이며, 비공학적인 관점은 공학적인 관점에 비판적인 입장을 제시하고 있는 관점이다.. 마지막으로는 지향적 느낌[7](목적을 위한 수단)을 갖는 관점 대 지향적 느낌과 비지향적 느낌[8]의 혼합적인 관점이다. 지향적 느낌은 수단적 관점이 강하고, 그에 비해 두 느낌이 혼합된 부분은 기존에 사람들이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 느끼는 전통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있다.

 

합성 생물학에 의해 생물이 창조된다고 보는 것은 그것과 동일하게 사람도 창조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다르게 말한다면, 도덕적 윤리적인 인간도 과학기술을 통해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9] 이에 따라 고민해야 할 중대한 한 가지 문제는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의 향상이 늘 긍정적인 방향으로 갈 것인가?’하는 문제이다. 왜냐하면 현재 인간의 능력이 바람직한 방향뿐만이 아니라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도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기술로 인간의 바람직한 부분을 증가시킬 수 있다는 것은 동시에 바람직하지 않은 쪽의 증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을 초래할 수 도 있다는 것을 내포한다. 합성 생물학에 의해 인간이 새롭게 만들어진다면, 그 인간의 도덕성까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한편, 합성생물학에 대해 종교계는 아직도 무관심한 상태인데, 이는 앞으로 나타나게 될 도덕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제시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점에서 심각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생명의 한계, 생태계 문제, 신과 인간의 재 개념화 등과 같은 문제를 고민하지 않은 채로 기술만 발전하게 된다면, 합성 생물학으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논의가 있어야 합성 생물학의 발전으로 인해 나타날 결과의 비예측성에 대한 연구자의 책임, 생물체와 생태계에서 연구자의 책임을 명확하게 할 수 있게 된다. 또한 그에 따른 후속조치도 각각의 책임에 걸맞도록 명확하게 세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합성 생물학의 연구 또는 발전의 한계를 어디까지로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도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부분이다.

 

합성 생물학의 생명체(혹은 생물)에 대한 접근 방법은 환원주의적인 접근이며, 물리 화학적인 접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접근은 생물체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를 하는데 부족한 부분이 존재 한다.[10] 그 중의 하나가 “창발성”이라는 개념이다. 물리 화학적인 접근만으로는 생물의 “창발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생물을 기계로 본다면, 또는 생물이 물질이라고 본다면, 또는 생물을 공학적으로 합성할 수 있는 모듈의 네트워크라고 본다면, 이는 ‘생명이 무엇인가?' 라는 각자의 개념을 반영하는 것이며,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어떤 의미에서 현재 합성 생물학은 생물체에 대한 공학적인 접근을 하고 있으면서, 과학적인 혹은 종교적인 주장을(생물을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아닌가? 합성 생물학이 생물을 창조했다고 선언하는 것은 실제로 생물을 창조하기보다는 유전자를 바꿔치기한 것이 아닌가? 일견 합성 생물학이 보여주는 결과는 생물을 새롭게 창조했을 때 나타날 만한 특징들을 보여준다.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합성 생물학이 달성하고 추구해 온 것은 “생명 시스템 전체를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라 “기존의 시스템을 이용”할 뿐이다. 따라서 생명을 새롭게 창조하여 신에게 도전하고 있다는 진술은 조금은 과장되고 선정적인 선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다시 던져야 할 질문은 “결국은 생물/생명은 무엇인가?”이다.

 

 


[1]) https://www.sciencetimes.co.kr/?news=중국서-유전자-편집-아기-출산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46352815https://www.nature.com/articles/d41586-018-07607-3

[2]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2017). 송기원 엮음, 18.

[3] 같은 책, 21.

[4] 같은 책, 26~27.

[5] 같은 책, 28~36.

[6] 같은 책, 243~248.

[7] 같은 책, 244. 수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거나 목적을 성취하도록 우리를 충동하는 느낌.

[8] 같은 책, 244. 어떤 원인의 결과로 발생하지만 뚜렷한 실체를 지향하지 않는 하나의 상태로서의 느낌.

[9] 같은 책, 148.

[10] 이것이 생물학이다(2016). 에른스트 마이어,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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