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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북클럽 이야기

전주 북클럽 이야기 (18-10)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10. 22.

[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전주 북클럽]





| 김재상 (전주 북클럽 회원)



7장 의미 추구와 과학의 한계


7장에서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앞에서 논의해왔던 작은 결론을 적고 있다. 기독 신앙과 의미라는 맥락에서 과학과 기독신앙의 대화에 대한 한 꼭지를 마무리하고 있다. <우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를 시작하면서, 맥그라스는 과학과 기독교의 전쟁/갈등 서사는 두 진영의 본질적 관계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보았다. 도리어 그는 기독신앙의 서사와 과학의 서사가 함께 할 때 우주 실재가 지니고 있는 풍성한 의미들이 드러난다고 보았다. 


실재는 한 측면이나 한 관점에서만 읽히지 않는다. 실재는 다양한 측면이나 층위에서 여러 의미를 보인다. 실재에 대한 건전한 이해는 여러 관점에서 찾을 수 있는 다양한 의미를 종합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맥그라스는 이러한 비판적 실재론을 근간으로 하여, 실재에 대한 과학과 기독교 각각의 설명이 지니고 있는 의미들을 조화시키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4장에서 우주, 5장에서 다윈 진화론, 6장에서는 인간 본성에 대해 과학과 기독교가 지닌 다양한 의미들을 제시하며 그 의미 가운데 과학과 기독교의 만남이 지닌 의의를 적었다. 그리고 7장에서는 작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알리스터 맥그라스에 따르면, 인간은 궁극적 질문을 던지는 존재이다. 그 질문에 대한 답 가운데서 실재의 의미를 발견해간다. 그 의미들은 삶에 가치를 부여하며 생존의지를 불러일으킨다. 실재에 대한 의미를 품고 있는 답을 기독교만이 주지는 않는다. 과학 역시 줄 수 있다. 그런데 우주를 탐구하며 의미를 주는 과학은 결코 전체 그림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맥그라스는 마치 전체 그림을 보는 듯이 의미가 담긴 답을 하려는, 왜곡된 과학을 과학제국주의라고 하고 있다. 과학제국주의는 수정이 가능한 우연적 참인 특정 과학 이론이나 체계를 필연적이며 보편적 참으로 확장시키는 우를 범한다. 그리고 형이상학적이며 초월적인 주장이나 신념을 방법론상으로 제거하는 과학제국주의가 실재에 대한 건전한 의미를 준다는 것은 만무하다. 


맥그라스는 과학제국주의를 거부하는 과학이 기독신앙과 함께 상호보완하며 실재에 대한 의미를 풍성히 제시할 수 있다고 보았다. 과학은 인간에 대해 물리학, 유전학, 생리학 설명을 제공한다. 인간의 몸, 기관, 조직, 세포, 유전자 등의 기능과 형성에 대한 설명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들만으로 인간의 정체성이나 본성을 우리는 알 수 없다. 인생의 의미를 다 파악할 수 없다. 기독신앙이 드러내는 인생의 조명이 여기에 필요하다. 삶에 대한 신의 계시와 섭리에 대한 이해와 과학이 주는 설명이 서로 씨줄과 날줄이 되어 인생의 의미를 엮어간다. 과학이 그림의 일부를 세밀히 설명해준다면, 기독신앙은 그림의 큰 틀을 보여준다. 


생각해볼 점


* 알리스터 맥그라스는 과학이 그림의 부분을 설명한다면 종교는 전체 그림을 설명한다고 비유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종교가 전체 그림을 설명한다고 보아야 하는가? 종교도 전체 그림의 작은 퍼즐들을 제공한다고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종교는 계시 그 자체가 아니다. 계시에 대한 해석 결과가 종교를 형성한다. 그리고 계시가 온전한 그림 전체를 보여준다 하더라도 그 계시에 대한 인간의 인식과 해석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기에 우주 실재가 지닌 의미를 파악해 가는 데에는, 과학만으로 종교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과 종교가 제시하는 의미의 지도를 함께 모아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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