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신대 연구팀장을 맡고 계시는 정대경 박사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정대경 박사님은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과학신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홍대 근처 카페 '산책'에서 짧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인터뷰이 | 정대경 박사
인터뷰어 | 최경환, 이진호 

 

 

1. 어떻게 과학신학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얼마 전에 이정모 관장님도 오셨더라고요. 저도 어려서부터 공룡을 좋아했는데, 보통 이런 관심이 유년기에 그치는데, 중고등학교 때까지도 그 관심이 가더라고요. 한 번은 중학교 때, 저희 교회에서도 창조과학에 대한 강의가 있었는데, 공룡에 대한 질문이 많았던 거죠. 그때 조목조목 질문을 했었는데, 대답이 시원치 않았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답은 “공룡들이 노아의 방주에 탔을 거다. 그 많은 종이. 탔다가 내린 이후에 아마 활동을 하다가 절벽에 떨어져 죽지 않았을까?” 이런 식으로 설명을 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도 그게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그때는 신앙도 별로 없었고, 그냥 그런가 보다, 묻어 놨다가, 고등학교 때 회심 체험을 하면서 진로를 고민하게 결국 신학대학교까지 가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석사 과정을 하면서 신학적인 고민을 진지하게 했습니다.

 

석사 과정에서 논문을 지도해 주셨던 교수님 중에 테드 피터스(Ted Peters) 교수님이 썼던 Evolution from Creation to New Creation이라는 책이 있어요. 이 책을 쉽게 풀어서 쓴 책이 『하나님과 진화를 동시에 믿을 수 있는가』(동연, 2015)로 번역됐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신학이 자연과학과 양립 가능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에 석사 마치고 박사 들어가면서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2. 이후에 구체적으로 어떤 분야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셨나요?

 

저의 신학적 고민은 오래전부터 신정론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사촌 형도 루게릭 비슷한 병 때문에 일찍 돌아가셨어요. 친구도 중학교 때 당뇨 합병으로 죽게 되면서 신정론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죠. 그러다가 신학과 과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이 질문을 연결시켰던 거죠. 하지만 아직까지도 정립은 잘 안 됩니다.(ㅎㅎ) 여전히 왔다 갔다 합니다. 때로는 이신론으로 갔다가, 몰트만처럼 케노시스로 갔다가, 판넨베르크처럼 결정하는 주체로 갔다가, 어떤 때는 또 결정론으로 확 갔다가 합니다.

 

3. 예전에 저희 과신대 콜로퀴움에서도 강의를 하셨잖아요. 그때 어떤 강의를 하셨는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제 논문 주제 자체가 ‘생명의 기원과 하나님의 행위’입니다. 유기화학 이론에서 무생물에서 생물로 넘어가는 이론을 2장에서 다루고, 이런 자연과학 이론들이 가지고 있는 함의를 다룹니다. 자연현상만으로도 생명체의 출현이 가능하다는 입장이 주류 과학계의 입장인데, 이것을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논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행위(Divine Action)에 대한 이론으로 가장 유명했던 학자들, 예를 들면 폴킹혼, 피콕, 러셀의 하나님의 행위 이론을 다뤘습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하나님의 행위 이론으로 생명의 현상을 다루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들의 이론을 생명의 현상에 적용해 보고, 그 한계는 무엇인지 집어 봤습니다.

 

1세대 하나님의 행위 이론가들의 한계는 이 사람들이 너무 물리적인 차원에서만 이야기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지적을 했습니다. 어쩌면 의미나 가치라는 것이 실제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명체가 처음 출현을 할 때부터 인식 작용이라는 것이 같이 출현했다는 입장도 상당히 많거든요. 예를 들면, 훔베르토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나 프란시스코 바레라(Francisco Varela)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명의 출현과 함께 인식 행위 그리고 기호현상이라는 것도 같이 출현했다는 것을 고민해 본 논문입니다.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콜로퀴움 때 전달하려고 했는데, 너무 욕심이 과했던 것 같습니다.^^

 

 

4. 박사님을 만나면 드리고 싶었던 질문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먼저 기적과 기도입니다. 과학신학자로서 기적과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간단하게 대중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기도에 대해서 기독교 전통 내에 두 가지 전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토미스트 전통인데, 어떻게 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미 결정된 거죠. 그러면 기도는 왜 하는가?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죠. 두 번째 전통에서는 실제로 하나님께서 인간의 기도에 맞춰서 리액션을 하는 거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고 사건을 바꾸기도 하는 것이죠. 이런 맥락에서 하나님의 행위를 설명해 본다면, (기적을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일단 대중적인 이해에 따라 소위 ‘자연법칙을 위배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의 행위가 있겠는가?’라고 묻는다면 저는 그러한 방식은 없을 거라는 입장입니다. 그런데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면, 자연법칙 내에서, 자연법칙을 위배하지 않는 범위에서 확률적으로 상당히 불가능한 일들, 예를 들면 사람이 질병에서 ‘기적적으로’ 치유되는 사건들이 있잖아요. 생리학적인 설명은 가능한 거니깐요. 그런 방식의 사건은 일어날 수 있다고 봐요. 다만 그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것 자체가 신의 존재나 신이 하셨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직접 데이터로 사용될 수는 없는 거죠. 왜냐하면 여전히 해석이 개입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동일한 사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철학적이고 무신론적인 입장에서 순수하게 우연적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있고,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것이 하나님에 의해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실상 기적적인 사건이 우리의 신앙을 보증하는 방식으로 사용될 수는 없는 거죠. 다만 그러한 기적들은 가능하다고 결론지으면 될까요?^^

 

 

5. 두 번째 질문은 요즘 국내에서 말도 많고 오해도 많은 유신론적 진화에 대한 것입니다. 역시 알기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가장 간단하게 설명하면, 유신론적 진화론이라는 것은 ‘하나님이 자연 과정을 통해서 창조하신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이는 겁니다. 이것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 있는 명제입니다. 그런데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진화라는 단어 자체가 잘못 오해되어 왔기 때문인 거 같아요. 진화 과정 자체가 마치 하나님의 행위를 배제하는 것처럼 여겨진 거죠. 그런데 이미 대중적으로 관련 서적들이 많이 나왔듯이, 유신론적 진화라는 것은 진화를 믿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자들이 생명체의 출현이나 자연발생에 대한 모든 현상을 설명하는데, ‘그 모든 과정의 이면에 하나님이 행위를 하셨다’ 혹은 ‘그 자연 과정을 매개로 하나님이 창조하셨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신론적 진화론입니다.

 

그리고 저는 유신론적 진화론이 전통신학과도 부합 가능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왜냐하면 바질이나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들은 그 당시의 자연철학 이론인 자연발생설(Spontaneous generation)을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에서 성서를 해석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자연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자연과학을 받아들이는 입장, 이 입장이 전통신학의 한 방법론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전통신학과 충분히 양립 가능하다고 봅니다.

 

 

6. 과신대 연구모임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연구모임은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연구를 하고 있나요?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2017년 4월쯤 본격적으로 모임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때 수학자, 생물학자, 천체물리학자, 신학자, 철학자, 과학신학자, 과학철학자, 이런 식으로 모여서 시작했습니다. 매달 한 번씩 모여서 함께 읽고 싶은 책을 선정해 읽으면서 토론하는 방식으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독서 모임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생각했던 것은 옥스퍼드, 캠브리지, 시카고, GTU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과학과 신학 연구소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 연구소들은 하나의 주제를 선정하고 그것을 연구한 뒤에 그 결과물로 대중강연을 합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는 세속주의와 관련된 연구를 한다거나 생태 환경과 관련된 연구를 하기도 합니다. 3월부터 새로운 커리큘럼을 가지고 과신대 연구모임이 새롭게 시작하는데, 1년 동안은 기존 방식을 벗어나서 연구자들이 과학신학이라는 분야가 어떤 토픽을 가지고 진행하고 있는지 개론적인 수준에서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다룹니다. 과학과 신학의 방법론이라든가, 신학이 실재를 반영할 수 있는 학문인가, 하나님의 행위 이론,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과학과 신학에서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트랜스휴먼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이런 어젠다 중심으로 1년 정도 다루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내년 중후반부터는 하나의 주제를 선정해서 그 주제에 대한 심화연구를 하고 그 결과를 학술대회나 포럼 차원에서 발표를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걸 대중 형식의 포럼으로 연결하려 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한국의 신학계에도 기여할 수 있고, 과학철학이나 자연과학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창구가 열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대화 파트너는 단순히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기독교인들과도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글_ 정대경 박사

 

2017년 초부터 과신대 연구모임에 참여해서 자연과학, 철학, 신학의 다양한 전공 교수님들과 “자유의지,” “뇌과학과 인간” 등에 관한 논문과 책을 같이 읽어왔습니다. 올 3월부터는 1년 반 정도의 커리큘럼을 가지고 체계적으로 과학과 신학 학제 간 연구 업데이트를 시작합니다.

 

그 일환으로 지난 모임에서 Peter Harrison의 기포드 강연 출판물인 “The Territories of Science and Religion” 챕터 1과 2를 읽고 토론했습니다. 해당 챕터들에서 해리슨은 현대인들이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지금의 방식대로 이해되어온 역사가 길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과연 종교와 과학 사이 갈등이라는 것이 원칙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두 학제 간 갈등이라는 것이 실상 “과학”과 “종교”라는 개념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해리슨은 고대로부터 종교와 과학이라는 개념들이 실제로 어떻게 이해되어 오는가를 탐구합니다. 그 가운데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소위 종교(신학)와 과학(자연철학)이라는 학문적 태도가 고대에도 구분은 되지만, 두 학문적 태도 모두 존중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철학자와 과학자는 신학적 태도를 가지고, 신학자 또한 철학적, 자연과학적 태도를 가지고 세계에 대한 이해를 추구했다는 것이지요. 또한 그렇게 파악된 지식과 이해는 단순히 호기심을 채우는 것을 넘어 인간의 윤리적 태도 또한 고취하는 방향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번 과신대 연구모임에서는 우종학, 박희주, 신희성, 황소현, 전진권, 장재호, 이성호, 정대경 박사님이 참석하셨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안타까운 지점은 종교현상이라는 것이 모든 인간에게 보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일 텐데 (만약 종교라는 것이 폴 틸리히가 지적하는 방식대로 각 개인의 "궁극적인 관심과 그것에 대한 표현"이라면), 공적인 자리에서 의사 결정 등이 이루어질 때 관련된 정책이나 프로젝트의 종교적 의미 혹은 종교 윤리학 의미 등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의 참여가 독려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종교라는 것이 지극히 사적인 영역으로 치부되어와서 그렇겠지요.

 

박사논문을 지도해주셨던 교수님들이 신학자 혹은 신학적 윤리학자의 입장에서 나사 (NASA) 등에서 진행하는 자연과학, 과학기술 프로젝트에 참여해 그 프로젝트들에 관한 윤리적 의미, 신학적 의미 등을 종종 강연하시는 것을 참 부러워했던 적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과신대 연구모임이 추후 자연과학과 신학 사이 학제 간 연구 뿐만 아니라, 공적인 자리에서 자연과학, 과학기술 발전이나 정책결정 등에 있어 신학적, 종교적 의미 등을 풀어낼 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