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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95

'확실성', 역사의 뒤안길 확실성이라는 신기루는 어디에서 출몰하였을까? 길에 있는 돌멩이 하나에도 그것의 기원이 있으니 확실성의 화석을 찾아 역사의 지층을 탐색해 보자.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신교와 구교의 싸움으로 시작된 30년 전쟁은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했기 때문에 '확실성'에 대해 목마르게 하였다. 확고한 진리가 없다는 것은 마치 반드시 지켜야 할 '선'이 없어지거나 '신'이 사라져버린 것과 같다. 마땅히 해야만 한다는 인간 내면에서 울리는 정언명령은 메아리 없는 목소리가 된다. 인간 세상은 만인이 만인을 향해 적이 되어 아비규환의 장이 되고 만다. 투쟁을 규압할 횃불이 있어야 한다. 리바이어던을 깨우는 신호다. 정치 철학자인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벌거벗은 시민의 평화를 위해 정치적인 통일체를 .. 2022. 12. 22.
확실성이라는 신기루 퇴화해 버린 심해어류의 시력만큼이나 침침한 밤. 밖을 보여주던 유리창은 거울이 되어 바깥 대신 안에 있는 나를 비춘다. 거울이 된 유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와 안에 있으면서 밖에 있는 나를 세어본다. 내 안에 내가 도대체 몇이나 있는지 모르겠어서, 많은 모습 중에 진짜인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서 참으로 하염없는 미궁이다. 몇 해 전 제주도에 갔을 때, 거울의 방에서 수도 없이 반사되어 보이는 내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바라보고 있을수록 실재와 허상을 구별할 자신이 없어 난감하고 혼란스러웠다. 단정 지을 수 없는 모호하고 애매한 상황은 불안하다. 인간의 원형질은 감각(지각)을 함과 동시에 '무엇이다'로 규정짓는 것에 익숙하다. 먼먼 인류의 조상에게 혹독한 삶의 터전에서 생존은 곧 순간의 판단과 직결되는 .. 2022. 11. 9.
새의 알이 부화하기까지 새 중에 가장 큰 새가 타조라면 가장 작은 새는 벌새일 것이다. 이들이 낳은 알의 크기나 무게는 그들의 몸집 크기에 비례한다. 타조 알이 대략 1.5킬로그램이고 벌새는 이보다 4,500배 정도 가벼운 0.35그램이다. 몸집이 어마어마하게 큰 타조도 너무나 미미한 벌새도 그들의 처지와 형편에 맞는 알을 낳는다. 물론 그 알은 성장했을 때 부모의 모습이 될 요소와 가능성이 담긴 완벽한 알이다. 크기가 아무리 차이가 나더라도 타조와 벌새는 그들의 알을 낳고 알을 지키며, 알을 부화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다. 하나의 알을 낳아서 부화시키는 데에는 새마다 다르다. 타조는 42일 정도가 걸리고 벌새는 14~17일 정도 걸린다. 부화하는 데 걸리는 시간, 즉 42와 14 혹은 17이라는 숫자는 참 많은 것들을 검.. 2022. 10. 11.
인간, 공생공산적인 혼종 과학과 예술로 만나는 인간의 존재론 "인간, 공생공산적인 혼종" 최영미 작가의 작품 세계는 인간의 존재론에 대한 스케치다. 마네가 그린 ⟨경마장의 말⟩처럼 역동적인 움직임과 속력이 그대로 전해오며 존재의 관능미가 느껴진다. 관능의 사전적 의미에는 생물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기관의 기능, 다시 말해 폐로 호흡하고 눈으로 보고 혀로 맛보고, 코로 냄새 맡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등 오관(五官) 및 감각 기관의 작용을 말한다. 작가의 화면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생동하는 유기물과 무기물 덩어리로 있되 그 자체가 감각기관의 신경 다발이다. 인간 세포 지도는 사람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개수, 세포의 종류, 세포의 위치와 상태 그리고 세포의 역사적 계보가 모두 담겨있으며 그 기능도 파악할 수 있다. 최영미 작.. 2022. 9. 7.
신앙의 열정적인 아이러니스트(Ironist) 7월이 바람같이 휘익 흘러가고 구름같이 부웅 떠간다. 천지 사방은 모조리 저마다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고 회전하고 있다. 그렇더라도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는 시간의 속도와 길이와 두께는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다양하다. 1시간이 60분이며 3,600초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진 선형적인 시간이 결코 아니다. 생명이 등장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100억 년의 시간보다, 인류가 등장하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200만 년 전까지의 시간보다, 어느 때는 24시간인 하루가 더 길게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의 의식에 경험 이전의 천문학적이고 지질학적인 거리와 연대기는 어쩌면 일상에서 무감각의 지대와 구간일 것이다. 또 우린 실재 객체에 대한 감각보다 몸과 정신과 사유를 통해 감각 객체(정서, 감정, 기분,심리적 상태)를 경험함.. 2022. 8. 10.
숫자, 굶주린 욕망 숫자에는 이상한 마력이 있다. 숫자는 문어의 빨판을 갖고 있거나 욕망으로 펄펄 끓는 마그마임에 틀림이 없다. 그 숫자가 내 의식을 잡아당긴다. 매일 밤. 춤을 추는 마법에 걸린 이야기가 나오는 동화가 있었다. 빨간 구두를 신으면 춤을 추는데, 마법에 걸린 주인공은 아침이 올 때까지 밤새도록 춤을 멈출 수 없다. 걷기를 마치고 돌아오는데 문득 이 동화가 생각이 난다. 나는 춤 대신 걷기 마법에 걸린 것은 아닌지 살짝 두렵다. 정확히 말해 걸음 숫자의 기록을 보면 걷기를 멈출 수 없다.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숫자가 증가하는데, 이상하게 내가 걸을 수 있는 한계가 어디일까 궁금해지는 것이다. 과연 숫자를 어디까지 갱신할 수 있는지, 그랬을 때 나는 어떤 상태가 되는지 끝까지 가보고 싶은 충동이 걸음을 자꾸 .. 2022. 7. 8.
[SF영화와 기독교] 13. 스파이더 맨: 심판이 아닌 회복을 스파이더 맨: 노 웨이 홈 Spider-Man: No Way Home, 2021 액션, 어드벤처, SF / 미국 / 148분 / 2021. 12. 15 개봉 감독 : 존 왓츠 주연 : 톰 홀랜드(스파이더맨, 피터 파커), 젠데이아 콜먼(MJ), 베네딕트 컴버배치(닥터 스트레인지), 제이콥 배털런(네드) 우리는 우주를 유니버스(Universe)라고 부른다. uni + verse 즉 하나의 통합된 세계다. 이것이 진리이며 모두가 동의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이 정말 사실일까? 눈에 보이는 단 하나의 세계만이 있을까? 고대로부터 세상은 하나가 아니며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영역의 다른 세상이 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그 세상을 이데아(idea)라고 불렀다. 완벽한 원형을 .. 2022. 1. 11.
[SF영화와 기독교] 12. 이터널스: 너와 나의 메타내러티브 이터널스 Eternals, 2021 액션, 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55분 / 2021. 11. 03 개봉 감독 : 클로이 자오 주연 : 안젤리나 졸리(테나), 마동석(길가메시), 리차드 매든(이카리스), 젬마 찬(세르시), 셀마 헤이엑(에이잭), 쿠아밀 난지아니(킨고),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파스토스), 리아 맥휴(스프라이트), 배리 케오간(드루이그), 로런 리들로프(마카리) 영화는 21세기 신화다. 스크린은 신화적 인물의 무대다. 특히 마블의 영화들은 신화적 인물의 각축장이다. 우리는 마블의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냈었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블랙 팬서, 스파이더 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은 지구의 적들인 우주의 악당들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신화적 인물들이었다. 마블은 페이즈 4를 .. 2021. 11. 19.
과신대 교사모임 후기 예기치 못한 기후 변화와 기후 위기의 시절을 지나고 있다지만,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은 왔다. 계절에 맞춰 울긋불긋 변하는 캠퍼스를 거닐다 보니 여전하신 하나님의 손길에 그저 감탄하게 된다. 곧 추수감사절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생각에 이르자 자연스레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과신대와 관련해서 올 한해 감사할 일이 적지 않다. 과신대에는 초창기부터 가입했지만, 활동은 지지부진했다. 아무래도 지방에 있다 보니 서울에서 진행되는 콜로퀴움이나 소모임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러나 코로나가 많은 부분을 온라인으로 돌려놓은 덕분에 작년부터 이런저런 강의와 모임들에 참석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연말에 열린 과신대 송년모임도 줌으로 열렸기에 참석할 수 있었다. 일면식 없는 분들과의 만남이 어색하면서도 긴장이 됐었는데.. 2021.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