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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SF영화와 기독교] 12. 이터널스: 파편화된 세상의 중심에서 메타내러티브를 외치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1. 11. 19.

이터널스 Eternals, 2021

액션, 드라마, 판타지 / 미국 / 155분 / 2021. 11. 03 개봉
감독 : 클로이 자오
주연 : 안젤리나 졸리(테나), 마동석(길가메시), 리차드 매든(이카리스), 젬마 찬(세르시), 셀마 헤이엑(에이잭), 쿠아밀 난지아니(킨고), 브라이언 타이리 헨리(파스토스), 리아 맥휴(스프라이트), 배리 케오간(드루이그), 로런 리들로프(마카리)

 

영화는 21세기 신화다. 스크린은 신화적 인물의 무대다. 특히 마블의 영화들은 신화적 인물의 각축장이다. 우리는 마블의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냈었다. 아이언 맨, 캡틴 아메리카, 헐크, 블랙 팬서, 스파이더 맨, 닥터 스트레인지 등은 지구의 적들인 우주의 악당들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신화적 인물들이었다.

 

마블은 페이즈 4를 시작하면서 노골적으로 신화를 재현한다.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 [이터널스]는 고대 수메르 신화를 모티브로 만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대전제를 친절하게 설명한다. 태초에 아리셈이라는 전능한 자가 이터널스를 창조해서 지구로 보낸다. 지구에는 아리셈이 만들었으나 반기를 든 데비안츠들이 인간을 공격하기에, 이터널스는 데비안츠로부터 인간을 보호하라는 특별 지시를 받았다.

 

이러한 설정은 고대 아카드 서사시인 [에누마 엘리시]를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에누마 엘리시에는 신들의 아버지인 압수가 창조한 신들이 등장한다. 그 중 킹쿠가 티마아트와 함께 반란을 일으키고, 신들의 전쟁이 벌어진다. 또한 고대 수메르 신화인 [길가메시]도 등장한다. 이어 고대 그리스 신화의 인물들도 등장한다. 아리셈이라는 전능자가 등장하고, 티마아트, 마동석이 연기한 길가메시, 안젤리나 졸리는 그리스의 전쟁의 여신 (아)테나로 등장한다. 리차드 매든은 태양을 향해 날았던 이카루스를, 젬마 찬이 연기한 세르시는 마이다스를 닮았다. 등장인물들이 고대 아카드, 수메르, 그리고 그리스 신화를 반영한다.

 

 

이터널스의 전개는 소위 메타내러티브의 형식을 띤다. 기승전결이 뚜렷하다. 태초에 아리셈이 데비안츠를 창조했으나 그들은 아리셈에게 반란을 일으켰고, 이들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이터널스가 투입된다. 이후 인류의 역사를 마블은 이터널스의 활약상으로 그린다. 이터널스가 최초로 등장한 곳은 약 7천 년 전의 고대 메소포타미아였고, 그들은 인간을 위협하는 데비안츠를 물리친다.

 

이어 클로이 자오 감독은 이터널스가 고대 바벨론의 도시 건축자들로 등장시킨다. 특히 이터널스의 리더인 에이잭은 고대 바벨론의 신전에서 신들과 조우한 사제를 연상시킨다. 에이잭은 그녀의 신전에서 아리셈과 독대하고 아리셈의 명령을 수행한다. 이터널스 중 한 명인 세르시는 농업을 시작하게 해 주었고, 파스토스는 각종 기계를 제작하는 기술을 전수한다. 이어 4세기 경 굽타 제국의 부흥을 이끌었고, 고대 아즈텍의 문명도 이터널스의 결과다. 이들은 중세 전쟁에도 등장해서 전쟁을 종식시키고, 현대의 문명도 이들의 도움으로 이룩한 결과다. 한 마디로 세계사에 대한 마블의 재해석이다. 이터널스라는 존재에 의한 세계사이자 마블의 메타내러티브다.

 

더욱이 인상적인 캐릭터는 파스토스와 드루이그다. 파스토스는 각종 기술을 전수해 준 이터널이다. 그러나 파스토스는 절망하고 갈등한다. 자신이 전수해 준 기술로 인간은 문명을 발전시키는 것 대신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 앞에서 파스토스는 오열하고 다시는 기술을 전수해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반면 드루이그는 인간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다. 드루이그는 인간이 서로 싸우고 전쟁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들의 마음을 장악했다. 전쟁 대신 평화를 누리도록. 그러나 드루이그는 곧 한계를 느낀다. 인간들의 마음을 조종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뿐더러, 그렇게 기계적으로 컨트롤하는 인간은 더이상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반면 세르시는 인간과 지구를 사랑하는 이터널이다. 그녀는 신적 존재이나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어 한다. 아르셈은 그녀에게 인간을 사랑해서는 안 되며 오직 자신의 명령과 원대한 우주적 계획에 따르라 명령한다. 하지만 그녀는 지구에 도착하는 그 순간 그 아름다움에 반했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고백한다. 그녀는 지구와 인간을 사랑하고 보존하기 위해 아리셈의 계획을 따르지 않는 편을 선택한다.

 

마블은 이렇게 자신들의 내러티브를 스크린에 펼쳐놓았다. 우선 마블의 이러한 메타내러티브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이라 볼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대서사시 즉 메타내러티브를 버리는 대신 작은 이야기로 파편화했다. 물론 모더니즘의 역사는 대륙에서 각 민족, 국가주의를 낳았고 더 나아가 인간 개개인을 발견했다. 그러나 파편화된 이야기들은 모이지 않았다. 새로운 창조를 위한 해체였으나 해체에 머물러야 했다. 마블은 이런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큰 이야기, 거대한 스토리, 온 인류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펼쳤다. 어벤저스 인피니티 워, 엔드게임이 1막이었다면, 이터널스는 2막인 셈이다. 전자가 현대의 영웅들을 묘사했다면 후자는 고대 신화를 재현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우리의 메타 내러티브를 생각해야 한다. 성경은 메타 내러티브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고 인류를 창조하셨다. 물론 인류는 사탄이라는 존재에 의해 반역에 가담했고 타락을 경험했다. 하나님은 지속적으로 메신저들을 보냈고 급기야 독생자 예수를 보내어 결정적 타격을 가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를 구속하고 부활을 통해 악과 죽음을 정복하셨다. 예수는 교회를 교두보로 세우시고 마지막 날까지 인류를 구원하신다. 소위 창조-타락-구속-종말이라는 메타 내러티브다.

 

영국의 신학자 톰 라이트는 성경을 6막으로 구성된 메타내러티브로 재구성했다. 1막은 창조, 2막은 타락, 3막은 구약, 4막은 예수의 시대, 5막은 교회 시대 그리고 6막은 종말 즉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오늘날 우리는 제5막을 살고 있다. 톰 라이트는 성경을 교훈 정도로 축소할 것이 아니라 거대한 하나님의 스토리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그 스토리를 구현하는 존재임을 강조했다. 우리가 5막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내러티브다.

 

그런데 성경의 영웅들, 내러티브의 주인공들은 고대 수메르나 마블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고대 수메르에서는 왕이 신의 아들이며 형상이다. 대다수 인간은 신과 그의 아들인 왕의 노예들에 불과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류가 신의 형상이라 선언한다. 더 나아가 신약에서 예수께서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자녀이며 자신의 형제, 자매라 선언하신다.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주인이나 종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언한다. 인간 존재 자체가 신의 형상이요 자녀요 세상을 이끌어 갈 영웅이다.

 

고대 수메르 신화나, 그것을 차용한 마블의 새로운 신화에서 인간은 무기력하고 별 볼 일 없는 존재다. 이터널스가 개입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수행하지 못한다. 개개인의 인간은 존재감이 없다. 그들은 니체의 초인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성경의 메타내러티브에서는 인간 개개인이 영웅이다. 그들은 신의 형상이며 신의 아들들이다.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고 신의 명령을 수행하며, 이 땅의 악을 정복해 가고 사랑과 희생, 섬김으로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존재들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메타내러티브의 주인공들이다. 그러므로 마블의 영웅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대신, 우리가 그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위대한 스토리의 주인공으로 살아가자. 그리하여 우리가 그 드라마의 한 장면이 되자.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이 훨씬 나은 그림이니까.

 


 

글 | 김양현

하울의 움직이는 아빠로 방송과 잡지에 영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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