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국 소식 202009

 

1. 비대면 온라인 강의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매번 50명 이상이 참석해서

열띤 강의와 대담을 나누던

콜로퀴움의 현장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으로

예기치 못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기쁨도 있습니다.

 

이제 자리를 어느 정도 잡은

과신대 <기초과정>과 <핵심과정>은

입소문을 타고 꾸준하게

신청을 해주고 있습니다.

 

지역북클럽 모임과 교사 모임도

온라인으로 꾸준하게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사무국에서도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과신대 필독서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과신대 유뷰트는

강연 녹화 영상을 업로드하거나

홍보 영상을 올리는 용도로 많이 사용했는데,

앞으로는 사무국 소식도 유튜브로 올리고

다양한 시도를 해보려고 합니다.

 

현재 구독자가 약 2,500명 정도인데,

1만명을 목표로 한 번 달려보겠습니다.^^

 

인스타그램도 꾸준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팔로워는 600명 정도 됩니다.

장민혁 간사님께서 과신대의 강연이나

책 속 명언을 편집해서 카드뉴스로 만드는데

내용이 아주 상당히 좋습니다.

인스타그램도 멈추지 않고 계속 달리겠습니다. 

 

* 과신대 유튜브: bit.ly/35ixWkJ

* 과신대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citheo_official/

 

 

3. 매월 월말 정산을 하면서

과신대 정회원들의 후원에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옵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입니다.

그럼에도 매주 한 두 분씩 정회원으로

등록해주시는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한국교회가 여러 모양으로 욕을 먹고 있습니다.

다시 처음부터 기초를 닦아야 할 때인 거 같습니다.

성서를 새롭게 읽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두려움 없이 타자를 품을 수 있을 때

교회는 다시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과신대도 미약하지만

새로운 기독교를 세우기 위한 노력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함께 동역해주시기 바랍니다.

 

 

"사랑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요한1서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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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온라인 북클럽 “코로나19와 하나님”

 

“코로나19와 하나님”

 

 

지난 8월 19일과 26일, 2주간 과신대 온라인 북클럽이 진행되었습니다. 북클럽에서 다루었던 책은 『하나님과 팬데믹』 (톰 라이트 지음, 비아토르, 2020)과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 (월터 브루그만 지음, IVP, 2020)라는 책이었습니다. 북클럽에서 대담을 나누어주신 분은 박영식 교수님(서울신학대학교 조직신학, 과신대 자문위원)이셨습니다. 각각의 북클럽은 총 2부로 구성되어 진행되었는데, 1부는 책에 대한 간략한 설명 및 정리를, 2부는 참여자들의 자유로운 토론과 질문, 논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본 지면에서는 1부에서 다루어진 책의 내용을 중심으로 언급된 이야기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먼저 박영식 교수님께서 총 5장으로 구성된 톰 라이트의 『하나님과 팬데믹』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주셨습니다. 우선 재난과 고대철학의 입장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뉠 수 있는데 스토아학파는 숙명을, 에피쿠로스학파는 우연을, 플라톤학파는 초월을 주장합니다. 톰 라이트는 이러한 입장들 사이에서 그렇다면 기독교는 어떻게 질문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기독교적인 질문은 ‘왜’가 아닌 ‘무엇’을 물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톰 라이트는 이러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전체적인 책 내용을 이끌어갑니다. 그동안 재난은 죄에 대한 징벌로 인식되어 온 경향이 강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논리에 해당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톰 라이트는 반드시 죄의 대가로만 재난이 일어나지는 않음을 환기합니다. 대표적으로 욥과 태어나면서부터 소경된 자(요9:1-3)를 거론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죄에 대한 징벌로 고난당한 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 자들이었습니다.

 

톰 라이트는 팬데믹 상황에서 종말에 관한 음모론도 경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보다는 주님의 기도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하나님의 현존을 간구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묵상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톰 라이트는 코로나19 사태를 예수님과 나사로 일화와 연관시켜 보았습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은 그의 죽음이 죄에 대한 결과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단지 눈물을 흘릴 뿐이셨습니다. 이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가 결정론적이지만은 않으며, 속죄가 인과응보적 개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누군가가 아픔과 고통스러움이 단지 ‘죄’ 때문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재난을 해석하기보다 교회의 역할에 더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는 세상의 신음을 들을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곧 교회의 신음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이는 곧 성령의 신음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즉, 기독교인은 애통하는 자가 되어서 세상을 향해 섬기는 봉사를 해야 하며, 나아가 창조 세계 회복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고 톰 라이트는 단언합니다.

 

 

한 주 뒤에는 월터 브루그만의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성경 본문 해석을 중심으로 내용이 전개되는 특징을 가집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구약학자답게 구약성경 본문을 분석하면서 코로나19를 조명합니다. 그는 구약성경에서 전염병이 나타나는 배경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첫째는 언약의 집행 방식, 둘째는 하나님의 권능의 현현, 셋째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을 위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브루그만은 전염병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비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박영식 교수님께서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언급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심판은 결코 하나님께서 인간을 징벌하기 위한 도구로만 인식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홍수 뒤에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심판을 내리지 않겠다는 자비의 모습을 함께 드러내시기 때문입니다.

 

한편, 브루그만은 기도와 권력 혹은 기도와 마술이 혼합되는 일을 주의해야 한다고 환기합니다. 또한, 기도 자체를 신앙하지 말고 기도를 통한 하나님을 신앙하는 일에 더욱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동일한 선상에서 현재의 한국교회가 기도로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고 외치는 주먹구구식 신앙지상주의(fidelism)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브루그만은 코로나19 시대에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동안 신자의 자기중심적이었던 삶은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하며,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섬김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말입니다. 여기에 덧붙여 박영식 교수님은 뉴노멀의 시대에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에 관심을 가져야 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코로나19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이 없었는지 성찰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현재에 대한 탄식과 미래에 대한 희망은 동시에 필요합니다. 이는 십자가의 부활을 신뢰할 때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코로나19와 하나님”을 논하는 두 권의 책을 살펴보았습니다. 본 북클럽에서 참여자들은 책의 내용을 인지하였을 뿐만 아니라, 박영식 교수님의 해설을 통해 새롭게 생각할 거리와 통찰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이 세상에 지속하는 한, 관련된 논의는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바라기는 앞으로 이와 관련된 연구와 담론이 발전되기를 기대하며 여러분도 그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이준봉 기자 (joonbong96@st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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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순 교수 인터뷰]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다문화 인문학

 

"역동적인 공존을 말하다."

 

인하대에는 다문화융합연구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소를 설립한 곳입니다. 다문화 융합연구소는 다문화 연구 관련 학과를 만들고, 타 학교와 연계해 공동 연구를 하면서 다문화의 감수성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학교의 담장을 너머 일반 시민사회 속으로까지  다문화인지 코드를 확산시키는데 앞장서고 있는 곳입니다. 

다문화융합연구소는 7월 7일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다문화 인문학>이라는 주제로 콜로퀴움을 개최했고, 7월 17일에는 <다문화사회와  다종교 교육포럼>이 개최되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과학과 신학만의 대화에만 선을 그을 수 없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와 대화의 장은 사회 전반의 주도적인 이슈와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양한 분야가 서로 상호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에서 과신대 백우인 팀장님이 다문화 융합연구소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김영순 교수님을 인터뷰하게 되었습니다. 아래 글은 교수님과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백우인(이하 백팀장):  다문화라는 말에는 휴머니티의 울림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양한 문화 안에는 어쩐지 차이보다는 공통점이 더 크게 다가오는데요. 어떤가요 교수님? 

김영순 교수(이하 김교수): 혹시  어린왕자 읽어보셨어요? 앙트완 드 생텍쥐베리는 휴머니스트입니다. 그의 관심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는 민족과 인종을 이어줄 수는 없을까? 고민했고 누구라도 공감하는 따뜻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인종, 종교, 언어, 사회적 환경이 다르다고 해서 인간의 가슴의 온도까지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의 책 어린왕자는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어린왕자는 실제로, 너무나 다른 그 수많은 사람들의 친구가 되었잖아요. 남녀노소를 가리지도 않습니다.

백팀장: 어린왕자는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서로 친구가 되어 공존하게 하며 같은 진동수로 공명하게 한다는 말씀인 거죠?

김교수: 네 맞습니다. 사실 이상적인 다문화사회의 키워드는 공존입니다. 함께하는 것이 공존이며 공존은 공감으로 나아갑니다.

백팀장: 공존의 중요성은 알지만 우리 피부에 와 닿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위협적이라고 느껴지고, 꺼려지고, 배타적인 마음이 앞서잖아요. 이번 코로나의 근원지인 중국을 혐오하는 정서도 그런 예가 되지 않나요? 또 종교 간의 갈등은 각 종교의 신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고요. 

김교수: 물론 공존이 잔잔한 물결 같은 평화로운 상태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바다를 생각해 봅시다. 바람에 물결이 일렁이고 커다란 파도가 치고, 밀물과 썰물이 있듯이 그러한 모든 변화를 함께 겪습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경쟁도 있고, 갈등도 있는 공존인 것이죠. 협동도 하고 교환도 하는 공존, 다시 말해 꿈틀꿈틀 하는 역동적인  공존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팀장: 자연의 본래 모습은 다채로움, 다양성이니까, 자연은 다양성들의 조화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존의 대상 혹은 주체, 혹은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김교수: 좋은 질문입니다. 공존은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사회라는 관계성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다양성은 창조적이고 지속적이며 균형 잡힌 관계를 만들 수 있게 합니다. 다양성은 창의적인 새로움을 창발해냅니다. 공존의 공동체는 자연의 본성이며, 따라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당연히  공존체적입니다. 

백팀장: 인류의 기원을 보면, 인간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날 때부터 누군가가 옆에서 돕지 않으면 온전한 생명의 탄생은 위험하다고 말합니다. 생명의 탄생은 늘 누군가의 손길과 눈길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죠. 교수님! 다종교 교육 관련 포럼에서 연구소 일원 중 한 분 가정에 아이가 태어났다는 소식이 있었죠? 모두들 박수를 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김교수: 생명의 탄생에 대한 기쁨은 모든 민족과 인종과 나라의 경계를 허물고 긴장과 분열, 갈등을 녹여버립니다. 생명의 탄생만큼 하나 된 마음으로 온전히 기뻐하는 것은 없을 겁니다. 누구나 심장은 뜨겁고 생명을 갈구하며 조화를 희망하니까요.

 


백팀장: <포스트코로나시대의 다문화 인문학>콜로키움에서는 인류세와 자본세로 인한 전 지구적인 위기에 대해 미래를 조망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언컨택트 시대에  뉴노멀에 대한 논의도 있었고요. 긍정적인 전망과 비관적인 전망이 엇갈렸는데, 공존이라는 키워드에서 바라본 교수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김교수: 어느 한 나라의 위기나 아픔 혹은 고통은 이제 그 나라 혼자만의 것일 수 없습니다. 예컨대 어느 나라의 경제적인 파산은 세계 경제에 영향력을 미치며, 어느 나라의  테러사건이나 스트라이크는 전 세계적인 시민들의 정서에 영향을 줍니다. 이것은 지독한 얽힘이죠. 촘촘한 그물망으로 엮어진 전 지구적 시민의식, 즉 세계시민이라는 의식이 저절로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 다인종, 다국가를 하나의 원자화된 개체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관점의 지평을 거시적으로 넓혀야 하는 시대적인 요청에 응답해야 합니다. 

백팀장: 세계시민 의식의 함양이 중요시된다는 말씀인데요. 그것은 실천의 문제와 직결될 텐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김교수: 맞습니다. 실천의 문제죠. 이러한 세계시민의식과 공존체라는 인식은 하루아침에 자연스럽게 체화되지 않습니다. 연습과 훈련이 요청된다는 의미죠. 일차적으로는 나와 타자 사이에서 타자를 이해하고 경청하고 배려하며 양보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때 타자의 범위는 내 이웃, 내가 속한 공동체와 사회, 그리고 국가, 다문화에 속한 이들, 다민족, 다국가 등이 될 것이며, 결국은 전 세계가 하나의 커뮤니티로 연결될 것입니다. 
 
전 지구적인 세계시민으로 공존하는 세상, 나는 이런 아름다운 세상을 희망합니다. 

 


** 분주한 일정 가운데에도 시간을 내주신 김영순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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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베리타스포럼 2020을 보고

 

온라인 베리타스 포럼 2020을 보고

 

 

1992년 하버드대에서 시작된 베리타스 포럼은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다가 국내에는 고려대가 중심대학이 되어 2018년 1회를 시작하였고, 올해 3회째가 되었습니다. 1회에서는 오스 기니스 교수를 주강사로 모시고, 강영안 교수, 우종학 교수가 과학자와 철학자의 기독교적 사유라는 주제로 대담을 했고, 2회에서는 제임스 스미스 교수를 주 강사로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는가"라는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올해는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명예교수이신 존 레녹스(John Lennox) 교수를 모시고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라는 시의적절한 주제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존 레녹스 교수는 과학과 신학과의 대화에 관심을 가지고 무신론자들과의 논쟁에 대해 알아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들었을 법한 분입니다. 저도 레녹스 교수가 리차드 도킨스와의 논쟁에서 논리적으로 무력화시켰다는 말을 여러 번 읽고, 들었었는데, 영상으로나마 모습과 육성을 보고 들으니 감회가 무척 남달랐습니다.

 

1부 영상 대담을 진행하신 김익환 교수는 “최초의 7일” 과신대 북토크에서 존 레녹스 교수에 대해 “C. S. Lewis 이래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라고 소개하셨었는데, 제가 이번에 더 감명 깊게 느낀 것은 레녹스 교수의 논리 정연한 변증만이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순수한 신앙심이었습니다. C. S. 루이스의 글을 읽을 때에 느꼈던 자연스러움과 자유로움, 그리고 하나님을 거짓 없이 믿는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표현들과 확신 같은 것을 이번 온라인 베리타스 포럼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김익환 교수는 미리 선별한 여섯 가지의 질문을 차례로 존 레녹스 교수에게 물었습니다. 그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 계실까?(Where is God in a Coronavirus World?)”라는 책을 쓴 이유와 주요 논점은?
(2)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주는 영적인 의미는?
(3) 무신론적 세계관으로는 재앙과 고통의 문제를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이유는?
(4) 코로나 희생자들을 돕고, 평화롭고 안전한 세계를 만들려고 하는 무신론자들이 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무신론에는 선이나 도덕이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은 너무 편협한 것은 아닌가? 인간의 도덕의 기원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설명을 해 주신다면?
(5)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기독교의 희망은 무엇이며, 다른 종교에는 그런 희망이 없는 것인가?
(6) 부활에 대한 소망과 영원을 생각하라는 말씀을 강조하셨는데, 한국 교회 내의 내세를 강조하는 신앙이 현실 세계를 부정하게 된다는 우려가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레녹스 교수는 이 여섯 가지 질문 중 (4)번 '인간의 도덕의 기원에 대한 사회생물학적 설명'이 왜 잘 못 되었는지를 가장 길고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마치 리처드 도킨스와 논쟁할 때처럼 먼저 사회생물학자들의 핵심 주장들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왜 그것이 자체 모순인지를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설명 중 문외한인 제 귀에 쏙 들어온 것은 다음과 같은 결론이었습니다.

 

사회생물학자들은 우리는 그저 유전자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우리는 유전자의 힘을 거스를 수 있다는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합니다. 그렇다면 유전자를 거스를 수 있는 힘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타종교와의 관계를 묻는 다섯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귀에 쏙 들어온 것은 결혼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레녹스 교수는 타 종교와 기독교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간단히 정리한 후 차이점을 결혼을 비유로 아주 선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 타종교와의 공통점: 수많은 윤리적 가치들

- 타종교와의 차이점: 신과의 관계. 타종교들은 “공로 종교(merit religion)”이지만, 기독교는 신과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하고 있으며, 기독교의 구원은 선물이다.

 

레녹스 교수가 든 결혼 비유는 간단히 다음과 같습니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자신과 결혼해달라고 청혼한 뒤, 선물로 그녀에게 온갖 규칙과 법칙들로 가득한 요리책을 주면서 앞으로 4~50년간 이 요리책대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야 내 아내가 될 수 있다고 조건을 내거는 것은 결혼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비유를 들으면 웃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교생활을 이런 식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교회 내에 문제가 되고 있는 내세 중심의 신앙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습니다. 그는 부활 신앙과 내세에 대한 소망이 있다고 하면서 현실에 대해 무관심한 신앙 행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강력하게 일갈하였습니다.

 

샤머니즘적 세계관의 유물과는 아주 다르게 기독교는 전적으로 현실적인 종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를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영원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정말 놀랍고도 거대한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이 스토리의 일부가 될 수 있고, 바로 이점이 제게는 가장 흥분되는 기독교의 가르침 중에 하나입니다. 이 세상을 등한시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 사람이 과연 정말 그리스도인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2부 Q&A 시간은 갈릴리침례교회 앤디 박 목사께서 통역과 진행을 맡았습니다. 약 40분간 6명의 참여자가 온라인으로 다양한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 중 기독교 변증학의 효과와 무신론자들의 반응에 대한 질문이 있었습니다. 순수한 기독교 신앙을 가진 수학자로 평생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무신론자들과 논쟁을 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의 질문에 답을 해온 이 시대 최고의 기독교 변증가로 알려진 존 레녹스 교수이지만, 그는 “기독교 변증학(Christian Apologetics)”이라는 말 대신에 “설득력 있는 복음주의 Persuasive Evangelism”라는 말을 더 좋아한다 합니다. 레녹스 교수는 베드로전서 3장 15절(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의 말씀을 근거로 고백하셨는데, 저도 “설득력 있는 복음주의”라는 말이 변증학보다는 더 좋게 들렸습니다.

 

답변 속에 레녹스 교수의 무신론자들에 대한 열린 마음이 느껴져서 더욱 좋았습니다. 포이에르바흐는 현실을 부정하는 종교인을 신랄하게 비판했고, 칼 맑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경제 문제를 도외시한 종교, 특히 기독교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뼈 때리는 지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최근에 기독교회가 여러 면에서 잘못한 것이 많아서 방어적인 복음주의가 되어버렸지만, 레녹스 교수처럼 복음을 가슴에 간직하고, 열린 마음으로 무신론자들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공통의 윤리적 가치를 위해서 함께 일한다면, “코로나바이러스 시대에 하나님이 어디 계시는가?”에 대한 세상의 질문에 조금이라도 설득력 있는 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지막 질문자는 C . S. 루이스 연구 모임을 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1962년 루이스 교수의 마지막 강의를 존 레녹스 교수가 직접 들었을 때의 소감이 어떠했는지 질문하였습니다. 루이스는 1963년에 소천하셔서 1962년의 강의가 꽤 뜻깊은 강의였을 것 같은데, 그 마지막 강의를 옥스퍼드에서 레녹스 교수께서 직접 들었다고 하니 어떤 소감이었을까 매우 궁금했습니다. 레녹스 교수는 루이스 교수께서 존 돈(John Donne)에 대해 강의를 하셨다고 짧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루이스 교수가 지금 살아있다면 무슨 말을 하셨을까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아마 “고통의 역할(function of pain)”에 대해서 말씀하셨을 거라고 하면서, 고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게 소리치시는 메가폰이다라고 요약하며 대담을 마치었습니다.

 

3부는 소그룹 별 토론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1, 2부를 유투브 영상을 통해 시청했습니다. 시청 후 소감은 유럽과 미국의 과학자나 수학자들이 이렇게 건전한 신앙을 가지고 복음을 힘 있게 전하며, 부드럽게 과격한 무신론의 예봉을 무디게 하는 모습이 참 너무 부러웠습니다. 지금은 과학시대이기 때문에 테야르 드 샤르뎅, 프랜시스 콜린스, 러셀, 존 폴킹혼 등등 과학분야의 전문가들이 증언하는 신앙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신대를 통해서 이런 분들의 목소리가 국내에도 많이 소개되어 다음 세대 중에서도 과학과 신학(신앙)의 두 날개로 훨훨 날으시는 분들이 많이 나오기를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 최성일 (ultracharm@naver.com)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사무국소식 202007

2020년 상반기가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뭘 한 것보다 안 한 것이 더 많은 시간이 아니었나 합니다.

현장 강의가 온라인 강의로 모두 바뀌고

모든 회의가 비대면으로 바뀌면서

새로운 일상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는 세 번의 콜로퀴움을 진행했습니다.

 

19회 뇌과학과 기독교 신앙(김성신)

20회 케노시스 창조론(강태영)

21회 자연주의 철학과 창조론(장왕식)

 

 

 작년에 새로 영상 간사님을 영입한 것은

모두 이때를 위함이었나 봅니다.^^

정말 탁월한 선견지명이었습니다.

 

날로 수준이 높아지는 영상을 보면서

과신대가 변하는 시대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영상으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하나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이테오그램'에 이어

'온라인 북토크' 프로그램도 시작했습니다.

 

과신대 추천도서를 기억하시나요?

궁금한 분은 아래 링크를 클릭!! 

https://www.scitheo.org/140

 

과신대 독서 길라잡이 카드뉴스

- 과신대 독서 길라잡이 - (고화질 이미지 다운로드) ** 과신대에서 제작하는 카드뉴스는 누구나 사용 또는 재배포가 가능합니다. (사용 시 출처를 밝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www.scitheo.org

 

앞으로 매 월 과신대 추천도서를 한 권씩 소개하는

온라인 북토크를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합니다.

 

1회 방송으로는 <창조론 연대기>의

김민석 작가님을 모시고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2회 방송은 과신대 정회원이신 차수진 박사님과 함께

프랜시스 콜린스의 <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곧 영상이 올라갈 겁니다. 

 

7월 16일(목) 오후 2시에 3회 북토크가 진행됩니다.

고려대학교 생명과학부 김익환 교수님과 함께

존 레녹스의 <최초의 7일>로 방송을 합니다.

유튜브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하니 꼭 참여해주세요.

 

 

저희 사무국 간사님들의 소식도 간단히 전합니다.

2020년 7월부터 사무국 간사님들의

근무시간이 약간 조정됩니다.

 

최경환 사무국장은 주 35시간 근무이고

주 5일 출근합니다.

장민혁 행정간사님은 20시간 근무이고

2일 출근을 합니다.

이슬기 영상간사님도 20시간 근무이고

주로 재택근무로 영상 촬영과 편집을 맡습니다. 

 

사무국 팀웍이 너무 좋습니다.

좋은 사람과 즐겁게 일하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있을까요?^^

 

앞으로 좋은 컨텐츠와 영상으로 한국교회와

성도들을 섬기는 과신대가 되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응원과 후원 부탁드립니다.

 


과신대 사역에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회원가입과 후원약정을 통해 정회원이 되실 수 있습니다. 

* 입회신청서 작성 링크: goo.gl/YYP76E

* CMS 후원서 작성 링크: bit.ly/2VLxHa6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이제는 『만들어진 신』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습니다.

 

이제는 『만들어진 신』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습니다.

-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

 

 

과신대 핵심과정 제7강은 서울신학대학교 박영식 교수님께서 <무신론에 대한 이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강의 내용도 무척 유익하고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더 좋았던 것은 차분하고 겸손하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강의 모습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무신론자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으면 교수님처럼 대화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에 교수님께서 강의해주신 내용은 주로 '새로운 무신론(New Atheism)'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새로운 무신론은 영국의 진화생물학자이며 <만들어진 신>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중심에 서 있는 과학주의 무신론입니다. 과신대 강의라서 그런지 무신론 중에서도 과학주의 무신론에 무게를 많이 두신 것 같습니다. 그럼 교수님께서 강의해주신 내용 중에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과학주의 무신론 

 

과학주의 무신론은 ‘새로운 무신론(New Atheism)’ 이라고도 하며 그것이 주로 하는 일은 과학이라는 무기를 들고 종교를 사정없이 매도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무신론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서두에 말씀드린 리처드 도킨스 외에 크리스토퍼 히친스, 샘 해리스, 대니얼 데닛 등이 있습니다. 과학주의란 과학을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이념으로서 과학을 모든 영역에 적용하여 과학적인 답변을 제시하려고 합니다. 과학으로 탐구할 수 없는 영역을 과학보다 열등하다거나 거짓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과학이 많은 것을 해명할 수는 있겠으나 모든 것을 해명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나는 것에 대하여 생물학적 또는 의학적인 분석과 설명은 가능하겠지만 그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부의 사랑과 열망을 과학적으로 어떻게 분석하고 설명할 수가 있을까요?

 

 

 

도킨스의 무신론과 그의 오류

 

리처드 도킨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가장 활발하게 무신론 운동에 앞장서는 인물입니다. 특히, 그의 책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16)은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그는 책과 강연을 통해 거침없이 종교는 악이며, 신은 망상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가 현실 종교만을 보고 종교는 악하므로 박멸해야 한다고 한다면, 같은 논리로 TV 뉴스나 언론매체에서 보도되는 수많은 인간의 악행을 보고 인간은 악한 존재이니 모두 박멸되어야 한다고 주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도킨스는 현실 종교와 그 종교의 지향점이나 본질을 서로 구분하지 않고 동일시하여 비판합니다. 그렇다면 그가 그렇게 숭배하고 있는 과학이 인류사에 과연 선한 것만 남겼는지 질문을 해봅니다. 우생학적 연구, 원자폭탄 개발,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인한 환경 파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러한 것들 때문에 과학을 악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놓고 볼 때 과학이나 종교나 그 자체로는 악이라고 말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도킨스가 반과학적이라고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기독교는 창조과학을 주장하는 근본주의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건전한 이성과 참된 과학의 주장을 부정하는 창조과학회와 지적설계가 마치 기독교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기독교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오늘날의 신학과 폭넓게 대화하지 않고, 오히려 기독교 전통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이미 내부적으로 결점과 오류를 지적받았던 기독교의 특정 부분인 창조과학과 지적설계를 소환해서 마치 기독교 전체가 그런 오류에 빠진 것처럼 비판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과학이 아직 해명하지 못한 부분에 신의 설계를 슬쩍 집어 넣는 지적 설계론의 ‘틈새의 신’을 비판합니다. 하지만 지적 설계론이나 도킨스나 모두 동급의 오류에 빠져 있습니다. 도킨스는 생물체의 진화과정에서 해명되기 어려운 부분을 ‘우연’으로 환원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지적 설계론이 ‘틈새의 신’을 요청했던 것처럼 도킨스는 ‘우연의 악마’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도킨스의 또 다른 책인 <이기적 유전자>에서 그는 ‘모든 것은 유전자가 결정한다’는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도킨스는 그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유전자결정론이나 유전자 환원주의를 전제해 놓고 여러 사례들을 자기주장에 꿰맞춰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기 주장의 틀 안에서만 정합성을 갖는 순환논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킨스의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도킨스는 종교 비판을 할 때 그가 신봉하는 과학으로 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무신론적 신념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과학과 신학의 관계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카를로 로벨리의 <보이는 것은 실제가 아니다>라는 책에 보면 조르주 르메트르의 일화가 나옵니다. 벨기에의 로마 카톨릭 사제이자 천문학자이며 빅뱅의 최초 발견자인 조르주 르메트르는 교황 비오 12세가 어느 연설에서 빅뱅 이론이 창세기의 이야기를 확증하는 것이라고 선언하자 교황이 창조와 빅뱅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삼가도록 설득합니다. 르메트르의 생각은 과학과 종교를 이런 식으로 섞어서는 안 되며, 성서는 물리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물리학은 하나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비오 12세는 설득되었으며 다시는 공개적으로 빅뱅과 창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과학은 과학의 방법으로 진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과학이 많은 부분들을 증명하고 원리를 밝혀주고 있지만 오늘날 과학이 진리 자체를 말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신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아무리 자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 표현의 넓이와 깊이에는 인간적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르메트르가 말한 것처럼 과학과 종교가 각자의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섞여서는 곤란할 것입니다. 과학은 종교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또한 종교는 과학이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듯이 과학과 신앙은 서로의 한계 안에서 서로의 영역을 지키면서 공명해야 합니다.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사무국소식 202005

코로나19는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꿨습니다.

저희 과신대와 같은 비영리단체의 운영이나 사업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화상으로 회의를 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강의나 세미나도 온라인으로 진행하게 됐으니 말이죠.

 

그래도 저희 과신대는 변화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온라인으로 진행하는 핵심과정과 콜로퀴움도 무사히 잘 마쳤습니다.

방구석에서 열심히 강의를 듣고 계실 모습을 상상하니 흐믓합니다.^^

 

핵심과정 촬영을 위해 국립과천과학관을 사무국 간사님들이 다녀왔습니다.

 

물론 온라인 강의를 위해 사무국 간사님들은

영상 촬영과 편집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더 좋은 영상과 콘텐츠 제작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두 가지 콘텐츠를 소개합니다.

먼저, "과신책갈피" 프로그램입니다. 

 

 

 

과신책갈피는 함께 나누고 싶은 짧은 '과학-신학 명언'을 제보해주시면

카드뉴스로 만들어 드리는 프로젝트입니다.

아래 링크로 제보해주세요.

 

참여하시는 분에게는 과신대에서 준비한

작은 선물도 보내드립니다. 

https://forms.gle/UZVk2tJUgNb2KXKUA

 

 

 

두 번째 콘텐츠는 "SCITHEOSTAGRAM"입니다.

그동안 과신대에서 진행한 콜로퀴움 강연 중

명강의만을 쏙쏙 뽑아서 클립영상으로 제작합니다.

매주 하나씩 제작해서 페이스북과 유튜브

그리고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외에도 온라인 과신Q과신톡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할 일이 많네요.^^

 

 

 

지난 4월 28일에는 과신대에서 특별한 강좌가 열렸습니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예배가 갑자기 활성화됐는데

규모가 작은 교회에서는 여러가지 여건 상

힘들어 하는 곳이 많습니다. 

 

그래서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을 모시고

"스마트 예배" 온라인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스티림야드와 구글 클래스룸을 활용해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누군든지 쉽게 온라인 방송국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방송 보기: www.youtu.be/jreQumm18F4

 

 

 

많은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크게 바뀔 거라고 말합니다.

아니 꼭 바뀌어야 하겠죠. 

사회 안정망을 구축하고,

자연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청지기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책임감이 더욱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함께 하나님 나라를 성실하게 가꾸는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가길 기도합니다. 

한 달 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 사무국장 최경환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

- 이정모 관장님의 과신대 핵심과정 강의를 듣고 -

 

 

과신대 핵심과정 5강은 국립과천과학관 이정모 관장님의 "과학으로 보는 창조 역사"였습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생화학을 전공한 과학자로서 서울시립과학관과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도 계셨습니다. 과학관 관장님이 과학자이실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다가 이번 기회를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관장님에 대해 인터넷을 통해 좀 더 확인을 해보니 지금은 종영된 TV 방송 프로그램인 ‘어쩌다 어른’에 출연하셔서 과학강연을 한 적이 있으셨습니다. 아마 편안한 이미지와 재미있는 강의로 많은 시청자 분들이 좋아하셨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관장님은 이번 강의에서 신학과 과학의 최초 충돌이었던 천동설과 지동설, 그리고 두 번째 충돌인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해 설명하시면서 더 이상의 충돌은 자제하고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자고 하셨으며 아울러 충돌에 대한 해결법을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교수님 강의의 주요 내용과 제가 느낀 점을 간단히 설명드리고 과학과 신학의 갈등 해결법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천동설과 지동설 갈등의 단면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자연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따라서 신앙과 이성은 대립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치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에는, 자연에 관한 문제에서 만큼은 과학이 신학보다 우월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일반인의 이해를 목적으로 씌여졌고 쉽게 재해석할 수 있지만, 자연은 변경할 수 없는 실제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성경에 있는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자연에 관한 진실을 과학자들이 증명하면, 신학자들은 그 문장의 의미를 재해석하여 명확히 해야 합니다." - 갈릴레오가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 -

 

위의 글은 종교재판과 관련하여 입장이 난처해진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자신의 후견인인 크리스티나 대공 부인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입니다. 이 편지에서 갈릴레이는 코페르니쿠스 가설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과학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 필요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편지의 내용 이면에는 종교재판에 대한 갈릴레이의 걱정과 염려가 스며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편지가 천동설과 지동설의 문제가 아닌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 때문에 요즘 시대에 쓰였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고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16세기, 천동설에 기반하여 우주의 중심이 지구라고 모두가 믿고 있을 때, 지동설을 주장하며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은 잘못되었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도 아닐뿐더러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다고 한다면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수용하기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신앙적 자존감이 무너지게 되듯이, 인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에 의해서 그분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존재임을 믿고 있는데 창조가 아닌 진화에 의해 인류가 시작되었고 발전하여 왔다고 한다면 지동설을 주장했을 때와 마찬가지 반응은 당연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 진화발생생물학 (EVO-DEVO) >

 

진화발생생물학은 다양한 동물과 식물의 발생과정을 비교하여 공통 조상에서부터 진화한 생물의 공통 요소와 변이를 연구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입니다 (위키백과 참조). 이것의 예를 들자면, 닭과 생쥐와 구렁이는 기본적으로 같은 유전자 설계도를 가지고 있지만 레고처럼 유전자를 여러 번 사용하는 것에 따라 가슴의 길이가 길어지거나 짧아지게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자면, 초파리의 Eyelsss 유전자를 뜯어내서 생쥐의 배아에 이식하거나, 반대로 생쥐의 유전자를 초파리에 이식하게 되면 신기하게도 이식 여부에 상관없이 생쥐에서는 생쥐의 눈이, 초파리에서는 초파리의 눈이 생기게 됩니다. 즉, 같은 유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용이 가능하다는 이야기입니다.

 

결론적으로 진화라는 것은 새로운 유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조합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으로서 15~20년이면 진화의 과정을 무인도나 실험실에서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하물며 생명의 역사 38억년일까요?

 

 

< 우리의 숙제 >

 

강의 시작부에 종교재판과 관련한 갈릴레오의 편지를 보면서 얼마 전에 읽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나오는 그리스의 여성 수학자 히파티아가 떠올랐습니다. 남성 편력의 시대에 수학과 철학에 능통했고 매우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나 철학과 결혼했다는 소리까지 들어가며 독신의 삶을 살았던 그녀는 결국 종교적인 이유로 발가벗겨지고, 조개껍데기와 같은 날카로운 것에 온몸이 난자된 뒤, 불에 태워져 비극적으로 생을 마치게 됩니다. 기독교 역사에는 이토록 무섭고 마음 아픈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많은 환난과 핍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실제 그렇게 되었지만, 그와는 정반대의 일들도 너무 많이 일어났습니다. 어쩌면 기독교의 그런 모습이 낳은 존재들이 니체요 도킨스가 아닌가 합니다.

 

이정모 관장님은 도킨스가 싫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사람이 싫은 게 아니라 그의 사상이 싫으신 거라고 하셨습니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도킨스는 과학의 이름으로 신념과 이념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신앙인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과학, 그중에서도 진화론이라고 하면 긴장부터 하고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의 자세를 취하곤 합니다.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이는 행위로 옮겨지지 않을 뿐 중세시대의 종교에 의한 탄압과 다를 바가 없는 것 같습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입장에서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한 갈등은 없을 수는 없으나 이를 올바르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숙제인 것 같습니다.

 

 

< 창조와 과학의 갈등 해결법 >

 

"겸손이란 본능과 지식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모른다’고 말하는 걸 꺼리지 않는 것이자,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을 때 기존 의견을 기꺼이 바꾸는 것이다." 한스 로슬링의 FACTFULLNESS』 에서 -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관계에서 위와 같은 ‘겸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다면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정모 관장님께서 말씀하신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갈등-분리-접촉-지지라는 절차를 바탕으로 합니다. 이 시대의 창조론과 진화론 간의 상태가 바로 ‘갈등’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갈등이 있으면 일단은 서로가 ‘분리’ 상태로 있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접촉’을 하여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지지’ 하거나 아직까지 서로의 입장 차이가 크다면 다시 ‘분리’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이견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가 함께 해결할 문제는 무엇인지 그리고 협력할 부분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입니다. 바로 21세기에는 21세기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결하자는 것입니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언급했던 진화론의 문제를 창조과학에서 공격의 빌미로 삼는 행위는 이제 접어두고 지구 온난화나 기후 문제 등 인류가 21세기에 직면한 문제를 함께 풀어가자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왜?’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고, 과학에서는 ‘어떻게?’라는 차원에서 접근을 하여 폭넓게 해결책을 찾는다면 서로의 갈등은 어쩌면 어렵지 않게 해결될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뇌과학자 김성신 박사님을 만났습니다.

  • 오타가 있습니다. 뇌와 관련된 사이버 과학이 아니라 “사이비 과학”인듯 합니다. 수고하세요!

    궁금 2020.04.27 16:58

 

* 과신대 기자단에서 제19회 콜로퀴움 발표자이신 김성신 박사님(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 연구단)을 만나고 왔습니다. 김성신 박사님의 안내를 따라 뇌과학 실험실과 장비를 소개받고 재미있는 뇌과학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콜로퀴움은 아래 링크를 통해 신청해주세요. [수강신청 바로가기]

 

일시: 2020년 4월 10일

인터뷰어: 백우인, 최경환

 

 

과신대 회원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기초과학연구원 뇌과학이미징연구단의 김성신 박사입니다. 저는 최첨단 뇌과학 장비를 사용해서 인간의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학습을 하고, 그것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저희 과신대는 어떻게 아시게 되셨나요?

 

한 4년 전인가, 제가 시카고에 있을 때, 제가 있는 시카고 온누리 교회에 우종학 교수님이 오신 적이 있어요. 우종학 교수님이 강연을 하셨는데, 아마 우 교수님은 기억을 못 하시겠지만, 같이 식사를 하면서 제가 식사 기도를 했습니다.^^

 

어쩌다 뇌과학을 공부하게 되셨나요?

 

우연인데요. 저는 원래 화학을 전공했습니다. 그때 트랜드가 정보통신 분야여서 그쪽을 기웃거리다 마친 응용생체공학을 전공하신 교수님을 만나게 됐습니다. 그래서 그 분야를 복수전공하고, 그러면서 인간의 뇌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유학을 가서는 뇌과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됐습니다. 다양하게 이것저것 공부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뇌과학이라는 학문이 뭔지 소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실 저는 뇌과학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영어로는 Neuroscience라고 하는데, 이걸 그대로 번역하면 신경과학이라는 말이 더 맞습니다. 암튼, 뇌과학은 학제 간 연구인데, 뇌과학과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심지어는 법학에서 학제 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뇌에 대한 이해를 다양한 분야에서 하는 거죠. 융합 학문의 성격이 강합니다.

 

실제로 어떤 실험을 하나요? 뇌를 분해해서 조사하나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고, 동물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쥐나 원숭이나 새의 뇌를 연구하기도 합니다. 또 다양한 레벨에서 실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유전자 레벨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고, 세포 레벨 혹은 상위 레벨인 뇌의 네트워크를 연구할 수도 있습니다. 뇌의 기능 별로 연구가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인지나 행동의 수준에서 연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특별히 인지신경과학(Cognitive Neuroscience)이라고 불리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는 기억이나 학습과 같은 좀 더 고등 인지기능을 연구합니다. 주로 원숭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했었는데, 지금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고 인지할 때 어떤 방식으로 하는 건가요?

 

우리가 외부 사물을 인식할 때, 감각 기관으로부터 오는 정보를 뇌가 인지하기도 하지만, top-down 방식으로 인식하기도 해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사물을 인지하기도 하죠. 이렇게 되면 착시 현상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존 지식으로 인해 왜곡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각 영역에서 이런 실험도 많습니다. 실제로 시각이 인식하는 것과 다르게 뇌가 인식하는 것이죠. 많이 아시는 것처럼, 같은 길이인데 어떤 건 더 길게 보이기도 하고 짧게 보이기도 하죠. 우리의 실제로 지각하는 것이 실제 지각이 아닐 수 있다는 거죠. 뇌가 어떤 해석을 하고 판단을 하는 경우가 많죠.

 

고무 팔 착시 현상이라고 있습니다. 책상 위에 실제 자기 팔과 고무 팔을 하나씩 올려놓고, 붓으로 양쪽을 모두 간질이면 어떻게 될까요? 처음에는 고무 팔이 실제 자신의 팔이 아님에도 그 고무 팔이 마치 자기 팔처럼 느껴지는 착시 현상이 일어납니다. 소위 이것을 embodiment 체화된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누가 고무 팔을 바늘로 찌르려고 하면, 실제로 자기 팔을 찌르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일종의 착시죠. 뇌가 이것을 동기화시키는 거죠.

 

자전거를 탈 때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죠. 누군가 끼어들면, 마치 자신의 신체를 훼손하는 것처럼 느끼는 거죠. 사물과 자기 자신이 일치되는 현상을 경험하는 거죠. 이처럼 우리가 정말 실체를 인식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죠.

 

합리적 의사결정도 우리의 생각과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릴 때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그 결정과 붙어 있는 감정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그냥 그게 좋아서 결정을 내리는 거죠. 분명 합리적인 결정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감정과 관련된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있죠.

 

요즘 이와 관련된 책을 보면 ‘신경중심주의’나 ‘뇌결정론’과 같은 용어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아직 우리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어찌 됐던 모든 것들이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라고 말합니다. 종교적 신앙도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제 지도교수님도 ‘종교는 그저 망상(illusion)이다’라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뇌에서 일어나는 착시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시더라고요. 현실과 인식의 괴리로 인한 착시라는 거죠.

 

수학이나 물리학처럼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적용하거나 어떤 법칙으로 뇌과학을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떤 질문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말할 수 없는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대부분의 경우는 상관관계입니다. A와 B가 어떤 관련이 있는 건데, 마치 이것이 인과관계인 것처럼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뇌과학은 그런 유혹에 시달립니다. 제가 하는 fMRI도 상관관계입니다. 관련이 있는 거죠. 그런데 이것이 마치 A가 B의 원인이 되는 것처럼 단정적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저희는 그 인과관계를 밝혀내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죠. 하지만 그렇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 거죠. 저는 뇌라는 것이 워낙 복잡한 시스템이라서 이것을 환원주의적으로 설명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을 듣다보니 뇌과학을 공부하면서 신앙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해졌습니다.

 

우리의 뇌는 소우주입니다. 뇌를 연구하면 할수록 우리가 아는 것이 정말 너무 적다는 것을 느낍니다. 사실 저한테 뇌에 대해서 뭘 물어보면, 태반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어요. 그만큼 우리가 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설령 먼 미래에 과학이 엄청나게 발달한다고 해도 과연 우리가 얼마나 알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해요. 의식과 같은 주제들이 현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또 한편, 의식에 대한 질문은 과연 이것이 과학의 영역이냐, 과학이 대답할 수 있는 영역이냐 하는 것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이번 과신대 콜로퀴움에서 다룰 내용에 대해서 간단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뇌과학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뇌과학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뇌와 관련된 사이비과학, 유사과학도 많습니다. 뇌호흡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도 있고. 그리고 뇌와 관련된 영화도 많이 있어서 그런 것도 소개하려고 합니다. 뇌과학과 관련된 윤리적이고 철학적인 문제도 간단하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뇌의 특정 부분이 손상돼서 사람의 정체성이나 성격이 바뀌는 사례라든가, 기억이 사라지는 사례를 통해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물음을 다뤄보려고 합니다.

 

저는 과학철학이나 신경윤리를 전공한 사람은 아니라서 제가 전공하고 있는 분야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인지신경과학에 대한 소개, 기억과 학습에 대한 연구, 뇌이미징 최신 기술이나 신경조절기술 같은 최근 뇌과학의 연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앞으로 뇌과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또 제가 연구하는 분야의 한계도 말씀드리려 합니다. 왜냐하면 일반인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을 보면 당장 뭐라도 될 것처럼 알고 있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뇌과학의 실상과 기술의 한계도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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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번개 특강]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께 배우는 '스마트 예배'

[과신대 번개 특강]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께 배우는

'스마트 예배'

 

최근 COVID-19 사태로 인해 인터넷 예배, 주일학교 등의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교회가 많을 줄 압니다. 과신대가 이런 교회에 작게라도 도움을 드리고자 구글 이노베이터 김정준 목사님을 모시고 소형 교회를 위한 "스마트 예배" 온라인 특강을 준비했습니다.

 

이번에 김정준 목사님께서 강의해 주실 내용은 중소형 교회부터 대형 교회가 적용 가능한 온라인 예배 솔루션입니다. 구글 클래스룸 활용법과 스트림야드에 대한 소개까지 초보자도 쉽게 배울 수 있도록 강의해 주실 예정입니다. 이번 COVID-19 사태 이후에도 지속 가능한 온라인 예배를 위한 교육이 될 것입니다.

 

** 영상 강의 링크: https://youtu.be/ch2HUW3zbKE

 

  • 강의 내용: 주일학교에서 클래스룸 사용하기,  온라인 교회에 사용 가능한 솔루션 소개, 온라인 방송국을 위한 준비물, 스트림야드streemyard 소개, 스트림야드에서 방송 만들기, 온라인 예배 실습 등

  • 일시: 2020년 4월 28일(화) 저녁 8시 (약 2시간)

  • 수강료 무료

  • 수강방법: 수업 전에 미리 아래 순서에 따라 구글 클래스룸에 가입하시기 바랍니다.

 

1) gmail로 로그인을 한 후, 메뉴에서 클래스룸(classroom)으로 이동 혹은 https://classroom.google.com 접속

 

2) 오른쪽 위 + 버튼을 누르고 수업 참가하기 선택

 

3) 접속 수업코드 gi4myto을 입력하고 클래스룸 들어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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