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몇 마리의 공룡을 드셨나요?


그동안 몇 마리의 공룡을 드셨나요?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듣는 공룡 이야기'를 다녀오고


심기주 기자




오오

오늘은 <과신톡> '부모와 자녀가 함께 듣는 공룡 이야기'를 다녀왔어요.


이번에 과신대에서 새로 연 프로그램이라는데 기대가 됐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더처치에서 프로그램 장소를 제공해주셨다고 하시더라구요! 

항상 감사드립니다!





자 그러면 더처치를 찾아가보도록 하죠.


저는 이번에 버스를 타고 갔지만, 

보통은 지하철을 애용해서 지하철역에서 가는 법을 설명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2호선 서울대입구 3번출구로 나옵니다. 

나와서 앞으로 쭈우우우우욱 한 5분 정도 걸어갑니다.







5분정도 걷고 나면 사거리가 나오고 큰 횡단보도가 나옵니다. 

그리고 길 건너편에는 보시다시피 커다란 관악구청 건물이 있죠.

(위 사진에서 유리로된 큰 건물)

관악구청 쪽으로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횡단보도를 건넜으면 오른쪽으로 꺾어서 또 5분 정도를 쭈우우우욱 갑니다.

(위의 사진에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관악구청!)








그러면 1층에 이렇게 왕돈까스와 왕냉면을 파는 집이 보일텐데요. 다왔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죠?

일단 들어가셔서 맛있는 돈까스를 드시면 됩니다. (지인 서울대생 말로는 맛있는 집이라네요 허헣)


가성비 넘나 좋은 것~~~!








자 맛있게 드셨으면 식당 오른쪽에 있는 건물 입구로 들어가서 오른쪽 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사진처럼 입구에 크게 '더처치'라고 써 있습니다!







계단을 조금 올라오면 엘리베이터가 있는데요.

전 편의를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프로그램이 있을 5층 본당으로 올라갑니다!

5층에서 내려서 계단으로 반층만 내려오면 도착!







제목에 부모와 자녀라는 말이 있어 가족단위가 대상인 줄 알아서 그런지 가족단위로 주로 오셨더라구요!

그래도 개인 단위로 오신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저처럼 말이죠? ㅎㅎ







아이들을 위해서는 츄파츕스가 준비되었는데요.

어떤 걸 먹을까 신중하게 고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아주 귀엽더라구요 ㅎㅎ








드디어 시작된 이정모 서울시립관장님의 강의!

솔직히 아이들이 오랫동안 앉아서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근데! 관장님 너무 재밌으시더라구요

남녀노소 다 재밌게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진짜 호기심을 자극한달까요?







넓게 보면 사실 새들도 공룡이라는 거!







한 번은 공룡 뼈 사진을 ppt에 띄워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심오하게 오오하면서 보고 있는데(위 사진의 맨 왼쪽 사진)

알고 보니까 3년전에 먹은 닭뼈 사진이라는 거 보고 빵 터졌습니다 ㅎㅎㅎ(닭도 공룡의 일종이거든요 ㅎㅎ)

닭의 뼈 구조가 데이노니쿠스와 비슷하다는 설명을 이렇게 참신하게 할 수 있음에 감탄했습니다 ㅋㅋ







순간포착!

왼쪽부터 항상 든든한 이진호 간사님과 항상 과신대에 도움 주시는 고마운 정준 목사님! 

역시 강의를 경청하고 계시는군요 ㅎㅎ 





오늘 새롭게 알게 된 사실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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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공룡은 백악기 말에 멸종했다.

그런데 사실 분류하자면 파충류 안에 공룡이 있고, 공룡 안에 조류가 있다.

따라서 따지고 보면 공룡 중에 조류의 조상이 있으니까 공룡은 멸종한 게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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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런 내용이었어요. 멸종한 줄 알았는데 사실 저번주에 먹은 치킨도 공룡이라니...

뭔가 허무하면서도 새롭달까요?





그리고 오늘 프로그램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역시 과학의 태도였던 것 같습니다.


강의 후 질문 시간에 나왔던 내용인데요~


과학은 절대 진리가 아니라 지금까지 가장 합리적인 거라는 것!


아직 티라노 같은 공룡이 사람과 함께 살았거나 뱃속에서 발견되었거나 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았죠.

그런데 '만약 그런 것이 발견되면 얼마든지 기존의 이론을 버리고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과학자들은 되어있다!'는 것을 이 관장님이 말씀해주셨어요.


과학은 "의심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면 신뢰할 수 있다!" 과학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라고 말씀하시는 부분도 인상깊었어요.






공룡 좋아하는 아이들은 공룡들 이름도 달달 외우더군요! 

역시... 흥미를 가지면 찾아서도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핫

어린이들의 수준 높은 질문을 듣는 것도 정말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아요.

크으 얘들아 너희가 나보다 낫다.......ㅎㅎ







끝으로 좋은 프로그램을 채워주신 이정모 관장님과도 찰칵!

좋은 강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포스팅은 여기까지구요~


다음에 또 더처치에서 과신대 프로그램이 있을 때 참고하시라고 지도 올려둘게요!


그럼 모두 안녕히~!











이모티콘 출처 : ‘디셉 어밴드 브이 이모티콘’

(이 후기는 어떠한 원고료도 받지 않고 쓰였습니다.)

posted by 과신대 기자단

성서비평을 수용하는 창조 신앙



성서비평을 수용하는 창조 신앙[각주:1]


김정형[각주:2]



신앙 교육 내용에 있어 많은 한국 교회는 여전히 16-17세기 종교개혁 시대의 세계관, 언어, 성경 해석, 신학 교리를 가르치고 있다. 사실 지난 수 세기를 지나는 동안 수많은 전문 성서학자들과 교의학자들이 과학 혁명 이후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여 신실한 기도와 학문적 열정 가운데 기독교 신앙에 대한 보다 폭 넓고 깊이 있는 이해를 도모해 왔다. 하지만 한국 교회의 현장 교육 담당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지난 세기 성경 이해 및 신학적 이해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에 대해 거의 아무런 지식이 없다. 오히려 과거 종교개혁 시대 혹은 이후 정통주의 시대의 성경 해석과 교리 전통을 불변하는 진리로 인식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성경 해석과 신학 전통을 정죄하는 일부 신학자들의 영향 아래, 종교개혁자들보다 더욱 경직된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과 근본주의적 교리 전통을 고수하며 그것을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전수하고 있다. 

 

혹자는 교회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평신도 교사가 신학교에서나 배우는 성경 주석 방법이나 신학 이론을 배울 여유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할지 모르겠다. 나는 이러한 생각이 매우 안일하고 무책임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음세대 청소년들은 이미 학교에서 최근 과학 이론을 교육 받고 있다. 과학 교사들은 자신들이 학창 시절 배운 과학 이론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최근의 과학 이론을 스스로 배워서 가르친다. 그런데 교회 교사들은 어린 시절 배웠던 그 내용을 거의 그대로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말하자면, 교사들은 물론 교역자들에게서도 최근 성경 해석과 최근 신학 이론에 대해서 배우려는 의지도 노력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학교 교육과 신앙 교육 사이의 시간적 불균형이 더욱 극심해지는 상황에서, 교육 내용에 있어서조차 둘 사이에 질적 차이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신앙 교육의 내용과 관련한 이 같은 수구적 태도는 마치 자라나는 아이들은 물론이고 다 자란 성인에게도 유아기적 사고방식을 계속해서 강요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 교회의 그리스도인들의 지성은 대체로 이미 상당한 정도로 성숙했지만, 성경 해석 및 신앙 이해에 있어서만큼은 많은 경우 아직까지 유아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과학 교육을 받은 사람이 과거에 배운 과학 이론은 대부분 잊어버렸다고 할지라도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방식만은 그 사람의 삶 전반에 녹아들어 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한국 교회의 신앙 교육에서는 성경의 문자적 진리나 교리의 명제적 진리를 주입하는 식으로 이루어지고 해석학적 사고 훈련이나 신학적 사고 훈련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성세대와 다음세대를 불문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변화하는 세계관과 변화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성경을 시의 적절하게 해석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나서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명제적, 문자적 진리를 고집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필자가 볼 때 바로 이와 같은 신학적 미숙함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 시대의 창조 신앙은 신앙 교육의 내용 면에서 축자영감설에 기초한 문자주의적 성경해석과 근본주의적 교리 신학을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 대안으로 신앙 교육은 성서 비평을 포함하여 최근 성서학 연구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한편, 그것을 넘어서 스스로 또한 공동체적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신학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하는 신앙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최근까지의 성서학 연구가 반영된 해설 성경이나 최근 성서신학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 단행본을 소개하고 함께 공부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대한성서공회에서 편찬한 관주 해설 성경은 성경 각 책, 각 단락에 대한 역사비평, 문학비평, 신학비평의 연구 결과들을 엄선하여 담고 있으며, 문자주의적 성경 해석을 극복하는 한편 신학적 사고를 결여하고 있는 단순한 역사적 연구를 넘어서는 데도 도움을 준다. 교육목회를 담당하는 교역자는 물론이고 교회학교의 교사와 기독교가정의 부모까지 최근 성서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숙지할 필요가 있다. 물론 성경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통해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듣는 일을 대체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적으로나 신앙적으로 교만한 일이지만, 성경에 대한 엄밀하고 정직한 지적 탐구 결과를 무시하고서 성경의 진정한 메시지를 읽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지적으로나 신앙적으로 태만한 일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에 헌신하는 모든 지도자는 성경이 형성된 과정, 성경의 기본적인 줄거리, 성경 각 권이 기록된 역사적 배경, 성경에 기록된 글의 다양한 문학 장르, 때로는 공명하지만 때로는 상충하는 다양한 신학적 관점 등 성경의 문자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기본적인 지식을 함께 배우며 쌓아갈 필요가 있다. 이 과정을 통해서 성경 본문의 피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이면을 관통하고 있는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진리를 볼 수 있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성경의 문자를 관통해서 하나님의 진리에 이르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성령님의 조명이 필요하고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은 이미 주어진 정답을 암기하도록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관통해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법을 훈련시키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첫째, 신앙은 과학보다 더 심오한 진리를 다룬다. 둘째,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맹목적인 신앙이 아니고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이다. 과학적 진리보다 더 심오한 진리에 접근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은 과학적 진리를 이해하고 가르치는 일보다 더 깊은 차원을 요구한다. 신앙의 진리는 단순히 머리로 암기하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으로만 소화될 수 있는 성질의 명제적 진리가 아니다. 물리적, 자연적 원인을 다루는 자연과학의 진리와 달리 신앙의 진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속성과 계획을 다룬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이 그 신앙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비단 전문 신학자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모든 목회자, 기독교교육 지도자, 교회학교 교사, 기독교가정의 부모, 자라나는 다음세대 아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삼위일체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하기 위해 진력하는 신학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서 신학은 신학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모든 신자의 책무이다. 이를 위해 유아기나 아동기의 아이들에게는 성경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주는 것이 필요하고 또한 유익하지만,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이들에게는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 교육의 수준에 걸맞게 성경 교육과 신학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1. 이 글은 김정형 교수가 '문화선교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s://www.cricum.org/1418) [본문으로]
  2. 장로회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과신대 자문위원이다. [본문으로]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과학의 도전과 기독교 교육

  • 고등학교와 교회 고등부라는 현장에 있는 교사로서 참 반갑고 귀한 내용의 칼럼입니다. 감사합니다~!

    휘페르티스 2019.03.02 09:59


과학의 도전과 기독교 교육[각주:1]


김정형 교수[각주:2]



과학 시대의 도전


오늘날 우리는 21세기 과학 시대를 살고 있다. 21세기 과학 시대는 17-18세기 과학 혁명 시대에 큰 빚을 지고 있지만 과거와는 많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과학 혁명의 시대는 근대 과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근대 이전의 세계관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기였다면, 오늘날 과학 시대는 과학적 세계관이 사회문화 전반에서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시기이다. 과학 혁명의 시대에는 여전히 전통적 세계관과 과학적 세계관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었다면, 과학 시대에는 전통적 세계관이 아직까지 완전하게 소멸된 것은 아니지만 과학적 세계관과 경쟁할 만큼의 영향력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은 스마트폰을 상징으로 하는 과학기술이 가져온 문명의 이기를 빼놓고는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가 21세기 과학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한편, 과학 시대는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모든 현대인들에게 큰 도전을 주고 있다. 과학 시대의 도전은 크게 세계관, 인간관, 무신론의 세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변화하는 세계관. 과학 혁명 이후 지난 수백 년 간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는 참으로 놀랍기 그지없다. 최근에는 구글의 빌 게이츠 재단이 지원하는 빅 히스토리 프로젝트가 최근까지의 과학의 발전을 집대성하여 그린 하나의 큰 그림(세계관)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https://school.bighistoryproject.com/bhplive). 적어도 상당수의 다음세대가 빅 히스토리를 ‘표준적인’ 세계관으로 배우며 성장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이 세계관을 진지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는 (천동설에서 지동설로의 패러다임 전환처럼) 우리가 가진 신앙의 본질적인 내용과는 직접적으로 큰 상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과학적 세계관의 내용 중 일부는 전통적 기독교 세계관과 충돌하는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반대로 과학적 세계관을 통해 기독교 신앙의 내용이 더욱 풍성해지는 경우도 있다. 또한 기독교 신앙이 세계관의 문제로 고민하는 현대인들에게 빛을 던져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과학의 발전이 가져온 세계관의 변화라는 현실 앞에서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2) 변화하는 인간관. 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두 번째 도전은 인간관의 문제와 관계된다. 과학의 발전을 통해 밝혀진 바, 인간이 우주의 중심에 있지 않다는 사실, 인간이 다른 모든 생물들과 같이 공통 조상으로부터 기원했다는 사실 등은 인간의 자기 이해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나 오늘날 기술의 비약적 발전은 인간이 기계와 공존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 문명이 기계 문명에 의해 대체되는 어두운 미래를 전망하게 할 때도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관의 변화는 앞서 언급한 세계관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상관없이 모든 현대인에게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 것인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질문을 두고 씨름하고 있는 현대인들과 함께 고민하고 대하며 그들을 섬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달에 따른 인간관, 가치관의 변화 가운데 일부는 전통적인 기독교 인간관에 큰 도전을 안긴다. 예를 들어, 인간의 기원과 본성에 관한 최근 과학 이론들은 인간의 특별 창조, 아담과 하와 및 타락의 역사성, 원죄의 유전, 영혼과 육체의 관계, 기독교의 고유성과 절대성, 인간과 자연의 관계 등의 이슈들에 있어 전통적인 견해를 재고하게 만들고 있다. 과학 기술의 발전과 함께 가치관이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3) 과학적 무신론. 마지막으로, 과학 시대가 우리에게 던지는 세 번째 도전은 세속주의 혹은 무신론의 도전이다. 과학의 발전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을 요청하지 않고도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가 충분히 설명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하고 있고, 기술의 발전은 초월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이 땅의 역사를 결정하는 주권자라는 인상을 준다. 말하자면,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어 보이는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역사 속 그 어디에서도 하나님이 설 자리가 없어 보인다. 


“새로운 무신론자들”으로 알려진 이들은 현대 사회에서 과학 기술이 누리고 있는 권위에 호소하여 자신들의 세속주의적, 유물론적, 무신론적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물론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논리에는 과학의 ‘방법론적 자연주의’와 무신론의 ‘형이상학적 자연주의’를 혼동하는 큰 맹점이 있다. 하지만 기독교에 적대적인 한국의 사회문화 속에서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사실은 심각하게 우려할 사항이다. 과학적 무신론의 득세는 한편으로 오늘날 과학이 누리는 권위를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 역시 과학적 무신론에는 거부감을 갖지만 현대 과학 기술이 누리는 권위에는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학의 권위에 기댄 무신론자들, 유물론자들, 세속주의자들의 주장 앞에서 과연 우리는 물리적인 세계를 넘어선 초월적인 세계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믿음, 나아가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자” 곧 사랑과 능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고백을 지켜낼 수 있을까? 




과학 신앙을 품은 신앙 교육


먼저 기억할 것은 한국 교회 안에서 신앙 교육을 담당하는 교역자나 교사들 중에 현대 과학에 대해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사람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과학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보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것은 교회 안이나 밖에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대 과학에 대해 무지하다는 사실 자체는 신앙 교육과 관련해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적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이 현대 과학을 공부하는 것이 신앙에 걸림돌이 되거나 신앙을 위협할 수 있다는 막연한 생각에 과학에 무관심하거나 거부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한국 교회 내 신앙 교육은 청소년들이 학교나 미디어를 통해서 배우는 과학 이론을 전혀 언급하지 않거나 혹은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 대체로 과학 교육에 무관심하거나 적대적인 태도를 취해 왔다. 


하지만 진화론을 포함하여 과학적으로 확고한 입지를 갖고 있는 현대 과학 이론을 맹목적으로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신앙 교육은 불가불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과학 교육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아울러 과학 교육과 신앙 교육이 함께 갈 수 없다는 암묵적인 전제는 과학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엄청나게 큰 짐이 된다. 전반적으로 한국 교회가 과학 교육에 대해 가진 부정적 인식과 태도는 신앙을 가진 다음세대 아이들이 과학 교육을 중심으로 한 학교 교육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들거나 반대로 교회를 떠나게 만드는 중요한 동인이 된다. 다음세대 아이들이 현대 과학 이론뿐 아니라 현대 과학의 괄목할 만한 성공을 가능하게 했던 과학적 사고방식마저도 거부하고 제대로 훈련받지 못한다면, 그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은 심각하게 왜곡되고 말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들과 상식에 근거한 합리적인 소통에 장애가 발생함으로 인해서 장차 교회 밖 공공 영역에서 리더십과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결정적인 한계를 갖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 교육 안에 과학 교육을 품을 수 있는 전략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나의 예로, 미국에서는 지난 2004년부터 일군의 기독교 성직자들이 창조과학과 지적설계 운동에 반대하여 진화 이론을 최상의 과학으로 인정하는 ‘성직자 서한 프로젝트’(The Clergy Letter Project)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기독교 성직자들의 편지 내용 전문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비롯하여 논쟁과 갈등의 영역들이 존재한다. 사실상 모든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신앙과 실천의 문제에 있어 권위 있는 문서로 받아들이지만, 그 중에 상당한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문자적으로 읽지는 않는다. 창조, 아담과 이브, 노아의 방주 등 성경에 기록된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들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창조주와 창조세계 사이의 올바른 관계에 관한 무시간적인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 종교적 진리는 과학적 진리와 그 성격이 다르다. 종교적 진리의 목적은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데 있지 않고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여기에 서명한 우리들은 다양한 전통에 속한 기독교 성직자들로서 성경의 무시간적 진리와 근대과학의 발견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진화 이론이 엄격한 검증을 거친 기초적인 과학적 진리로서 그 위에 인간의 많은 지식과 업적이 기초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진리를 거부하거나 이것을 단순히 “다양한 이론들 가운데 하나의 이론”으로 취급하는 것은 의도적으로 과학적 무지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무지를 우리의 자녀들에게 대물림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한 은사들 가운데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또한 포함되며 따라서 이러한 은사를 충분히 활용하지 않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믿는다.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이 하나님이 주신 이성능력의 충분한 활용을 배제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을 제한하는 교만한 행위에 해당한다. 우리는 학교 이사진들이 진화 이론을 인간 지식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가르치는 일을 지지함으로써 과학 교과과정의 순수성을 보전하길 요청한다. 우리는 과학은 과학으로, 종교는 종교로, 서로 구별되지만 동시에 서로를 보완하는 진리 형태로 남기를 원한다.




과학 혁명 이후 현대 과학의 발전이 성경에 대한 문자적 해석과 충돌하고, 전통적 세계관의 붕괴를 초래하고, 무신론이 등장하는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대 과학이 가져온 이러한 세계관의 변화가 과연 기독교 신앙의 핵심 내용 곧 기독교의 핵심 진리라고 말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을까? 오히려 현대 과학이 절제된 방법으로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 대한 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을 가져다줌으로써 기존의 잘못되고 편협한 생각을 교정하고 보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교회가 기독교의 핵심 진리와는 무관한 고대의 세계관을 고수하기 위해서 현대 과학의 발전에 맞서는 바람에 오히려 과학적 무신론이 득세할 근거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이제서라도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닌가? 오히려 과학 교육을 긍정적으로 수용함으로써 과학적 무신론의 존재 근거를 뿌리부터 제거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요컨대,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다음세대를 위한 신앙 교육은 과학 시대의 상식을 가르치는 과학 교육을 적극적으로 품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교회와 믿음의 가정에서 성경이 제시하는 하나님 나라 이야기와 현대 과학이 제시하는 우주와 생명과 인간의 빅 히스토리를 함께 가르치는 장면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지금까지의 신앙 교육 현장에서는 낯선 풍경이지만, 신앙 교육이 과학 교육을 품고 있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이와 같은 연출은 그 자체만으로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현대 과학이 신앙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시사해준다. 문자주의적 해석을 고집하는 일부 창조론자들의 우려와 달리, 신앙 교육의 현장에서 과학 교육을 병행하는 이 같은 시도는 과학의 언어와 달리 성경의 언어를 포함한 종교 언어가 시적, 은유적, 문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면 별다른 어려움 없이 성공적으로 수행될 수 있을 것이다.


  1. 1. 이 글은 김정형 교수가 '문화선교연구원'에 기고한 글을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보기 http://www.cricum.org/1391?category=643369) [본문으로]
  2. 2. 예수님을 사랑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평화의 나라를 소망하고, 교회의 미래를 고민하며, 과학 시대를 살아가는 신학자. 우주의 종말에 관한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 작성, <분단 한국을 위한 평화의 신학>의 저자, 현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조교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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