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대 북클럽 이야기 | 분당/판교 북클럽]

 

| 강사은 (분당/판교 북클럽 회원)

 

일시 : 2019년 7월 19일(금) 오후 7시
장소 : 성공회 분당교회(https://www.skhbundang.or.kr/)
책 : 피터앤즈의 ‘성경 영감설’

 

 

— 굽먹이냐 삶먹이냐.

 

부먹/찍먹보다 더 유서 깊은 논쟁이 성서 번역에서의 굽먹/삶먹 논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 유월절에 관한 율법에서 (히브리어 원문 상) 하나님은 출애굽기에서는 ‘구워’ 먹을 것을, 신명기, 역대하에서는 ‘삶아’ 먹을 것을 지시했습니다. 이런 다양성이 NIV에서 ‘구워’ 먹는 것으로 통일된 것은 그 나름의 ‘번역철학’에 기인한 것이었군요.

 

“출 12:12-13(“...그 고기를….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와 신 16:5-7(“... 그 고기를 구워먹고…”)에서 출애굽기의 강조점은 아주 분명하지만 신명기의 경우 히브리어 원문에서 ‘삶아서[베잇-쉰-라멛] 먹고’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NIV 신명기의 구절이 ‘삶다’의 의미가 아니라 ‘굽다’의 의미로 쓰인 것이라고 주장할 지도 모르지만 NIV가 이렇게 다룬 이유는 동일한 법이 서로 모순되게 진술되었을 리가 없다는 성경관에 근거한 ‘번역철학’을 반영한다. 그러나 성경을 ‘보호한다’는 구실 아래 언어적 사실을 숨겨서는 안된다. 대하 35:13절도 ‘삶아’인데 NIV는 ‘굽고’로 번역되었다.”(pp. 127-128 요약)

 

뭐 그렇다고 저자 피터앤즈가 히브리어, 그리스어 원어를 공부해야 한다는 강조를 하지는 않습니다. 원어를 공부하면 뭐하겠습니까? 번역을 하겠지요. “번역은 반역이다”는 말이 생각나네요. 저는 이 말 보다는 “번역은 창작이다”를 더 좋아하긴 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이 된 인간의 책 성서

 

그리스도교 관점에서 66권 정경이 완성된 것은 약 4세기경입니다. 확정된 성서 목록은 367년 아타나시우스 서간에 처음으로 등장하죠. 성서가 ‘하나님의 책’이라고 강조되었던 비중에 비해 ‘인간의 책’이라는 점은 거의 강조되지 않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요. 지난 150년간 고대 근동 문헌들의 발견은 성서를 새로 보게 합니다. 저자는 “성서는 역사적 산물임과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둘은 한쪽만 선택할 수 있거나 충돌되는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한 성육신 유비를 통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성서가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은 정경 형성사에서 보듯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그렇게 인정한 전통을 따르기 때문이죠. 성서는 신앙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전 인류에게도 가치있는 고전이겠습니다.

 

— 오늘날 우리에게 구약은, 성서는

 

다신교적 환경에서 이스라엘을 이끈 신은 제국의 신이 아닌 사회적 약자인 노예들의 신이었습니다. 인간을 노예가 아닌 존귀한 자로, 심지어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로 여긴 것은 당시 사회상에서는 아주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메시지입니다. 성서가 쓰여진 시대의 메시지가 그러할진대 노예 제도의 정당성 제공을 위해, 여성 인권 차별의 근거와 성소수자를 배제하기 위한 용도로 성서가 이용되는 것을 정경 66권이 이미 완성되고 인쇄술과 휴대용 전자기기의 발달에 따라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는 시대에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구약성경의 권위 혹은 규범성에 대해 숙고할 때 성경의 성육신적 차원을 떼어놓아서는 안된다. 구약성경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규칙을 기록한 책이 아니다. 성경의 성육신적 요소는 오늘까지 지속된다. 각 세대는, 성령의 능력으로, 그 세대가 살고 있는 세계와 복음이 어떻게 관계되는지를 고민하면서 복음의 메시지를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 ‘무대 뒤의 하나님’

 

구약성서 안의 제각기 다른 하나님에 대한 묘사들은 다양한 색깔과 질감이 함께 어우러져 하나의 초상화를 이루는 것과도 같은데요. 한편, 인간의 책이기도 한 성서에 기록된 하나님과 ‘무대 뒤의 하나님’ 즉 실재의 하나님에 대한 구분된 이해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더 성서를 가까이 하는 우리가 마치 하나님을 다 아는 것처럼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겠습니다.

 

— 작은 소회

 

이번 모임에서 어떤 분은 삶은 옥수수로 입맛을 돋궈 주셔서, 어떤 분은 미국 출장 후 집에 짐만 풀어 놓고 바로 참석해 주셔서 감동이었습니다. 먹거리를 장만하고 챙기는 것, 출장으로 피곤한 몸으로 참석하는 것 모두 만만치 않은 일인데 말이죠. ^^

 

— 다음 모임 안내

 

다음 모임은 8월 23일(금) 저녁 7:30분에 피터 앤즈의 ‘성서 영감설’ 4장~끝까지 함께 읽고 토론하게 됩니다.
분당/판교 지역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참석하실 분을 언제든 환영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타락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든지, 자연을 연구해 보면 그것이 원자와 분자, 암석과 별이 움직이는 자연법칙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오리진’(IVP) 3장에 나오는 이 짧은 문장이 11장 이후 인간의 기원에 대한 다양한 질문에 대해서 열쇠가 되어줍니다.

 

처음부터 불사의 존재로 지어진 존재가 인간인 것도 아니며(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자연 역시 이전에 없었던 가시와 엉겅퀴를 어느 순간 갑자기 내기 시작한 것도 아니겠습니다.

 

성서는 참 어려운 책입니다. 특히 창세기 앞장은 고대 근동 문화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라도 있어야 이해 가능합니다. 과학의 도움이 없으면 할머니의 옛날 이야기처럼 이해되기도 합니다.

 

지성이라는 훈련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어른이라면 독서를 하고 토론에 참가하며 시행착오를 견뎌내어서 성서와 과학의 간극을 메꿔내겠습니다만 아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중학교 시절에 진화론 문제에 정답을 쓰면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껴서 일부러 틀린 답안을 선택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런 저로서는 자녀 세대에게조차 그런 인지부조화의 상황을 죄책감까지 안고 맞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창조과학을 가르치거나 앞뒤 가리지 않고 진화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면 소리소문없이 고민하는 자녀의 입장을 헤아리실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로 ‘오리진’ 13장에는 자녀 연령에 따라 이 주제를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가이드가 있습니다.

 

 

발제를 준비한 최윤희 님이 “자유의지를 인간에게 주면 하나님을 배신할 위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시는 걸 포기할 수 없었다'라는 것은 자유의지가 그만큼 가치 있는 것이라는 것이겠죠” 하셨던 말씀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의 창조를 성서를 통해서든 과학을 통해서든 스스로 판단하고 이해할 자유의지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5.18 때 왜 사람들이 가족과 소중한 것들을 희생하며 자유를 위해 싸웠는지가, 절절히 깨달아지는 순간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모든 걸 감수하고서라도, 부여한 자유 의지라는 것을요” / 박철성 님)

 

 

다음 모임은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과학, 전통, 신학, 성경에 대한 보다 창의적인 사고를 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인간의 타락과 진화’(새물결플러스)를 읽고 토론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분당/판교 북클럽]

 

글_ 강사은

 

2018년 2월에 시작한 분당/판교 북클럽이 1년을 훌쩍 넘어 새 봄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 읽고 있는 ‘오리진(IVP)’을 포함하여 총 8권의 책을 발제하고 토론하고 후기를 쓰는 시간으로 가득 채웠는데요. 첫 모임부터 꾸준히 이 모임을 지지하고 함께 하는 멤버들이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종학 교수님이 멀리 판교에까지 오셔서 <기초과정 1>을 강의해 주시기도 했고 최근에는 김근주 교수님을 모시고 과신톡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첫 돌을 전후해서 ‘오리진’을 읽는 것은 돌잔치 이벤트처럼 느껴졌습니다. 왜 이 모임을 시작했는지를 되새기고 과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들을 재점검하는 시간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코 만년 이내로 지어졌을 리가 없는 증거가 곳곳에 널려 있는 우주와 동식물의 진화 증거는 제 신앙의 지평도 넓혀 주었습니다. 이 과학의 증거들이 아니었다면 문자적인 성서 해석/적용과 경험적인 사실들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을 제가 연상됩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살아가는 삶’(디트리히 본 회퍼)이 그리스도인의 삶 아니겠습니까? 신이 없는 것만 같은 세상에서 그리스도교 신앙을 선택하고 오롯이 홀로 서서 믿음을 붙들고 있는 삶이죠. 한 마디 더 붙이자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이죠.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북클럽이지만 단독자의 삶들을 엮어 외롭지 않게 꿋꿋이 서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북클럽이 하고 있다 싶습니다.

 

분당/판교 북클럽에서는 1년에 1회 정도는 과학과 신학에 대한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을 선정해서 새로 참여하는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합니다. 다음 달에 ‘오리진’의 남은 1/3을 읽고 토론합니다. 1년에 한번 있는 기회가 남아있는 분당/판교 북클럽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