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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책

[과신책]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공적이다.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12. 24.


[과신책] 그동안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서평을 써온 김영웅 박사님의 글을 연재합니다. 학자가 읽은 은 어떤 모습일지 기대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은 근본적으로 공적이다.

복음의 공공성 | 김근주 | 비아토르 | 2017


김영웅[각주:1]


서론에서부터 김근주 교수는 만약 기독교인들이 정치와 구별하여 개인의 영적 문제에 치중하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복음의 본질을 훼손하는 견해라고 명료하게 밝힌다.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마치 영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과 다름 없는 한국 교회의 분위기는 이를 잘 뒷받침하는 듯하다.


정치 뿐만이 아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부활만을 마치 복음의 전부인 듯 부각시켜, 다른 것들은 모두 영적이지 않다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만들어 그 동안 많은 교회는 복음을 사적인 영역에 가두었고, 교인들에게는 바울의 칭의 개념만을 강조하여 개인구원론을 복음의 전부인 것마냥 가르쳐왔다. 그러나 바울의 칭의 개념은 바울이 읽고 묵상하며 깨달은 성경 말씀이 배경이 되었고, 그 성경은 신약이 아닌 구약이었다는 점을 우린 간과해선 안 된다.


또한 사복음서는 예수님의 공생애를 다루면서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책이다. 예수님이 어릴 적 공부하셨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으며,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과 하신 논쟁의 근거 역시 신약이 아닌 구약이었다. 예수님은 모든 구약이 말하는 약속의 성취셨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나라의 본체셨다. 그러므로 신약의 예수님을 다룬 사복음서나 바울이 쓴 서신들 모두 구약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구약을 이해하지 않은 채 복음의 본질을 파악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김근주 교수는 토로한다. 이 책의 부제가 '구약으로 읽는 복음의 본질'이라는 것이 명징하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리고 이 책이 던지고 있는, 표지에도 적힌 큰 질문은 다음과 같다. "기독교 신앙은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제한되는가?" 복음의 공공성은 복음의 또 다른 부분 정도가 아니라, 복음의 핵심이며 본질이라는 사실을 이 책 '복음의 공공성'은 말하고 있다.



평안함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불의가 판을 치며, 거짓과 위선이 난무하는 사회와 국가에서 나 혼자 평안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기란 불가능하다. 복음은 결코 개인적인 마음의 평안함만을 가지도록 요구하거나, 윤리적이고 경건한 마음가짐만 강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한마디로 복음의 목적은 개인의 구원이나 해탈에 있지 않다. 오히려, 예수의 탄생과 죽음이 로마와 유대인들의 정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듯이, 복음은 정치적으로 사회와 국가를 이루는 구조적인 악과 사탄의 체제에 예수의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저항하며, 그곳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복음의 시작과 목적과 방향, 모두가 공적인 속성을 가지는 것이다.


이 시대에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사적이고 개인적인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닌 온 나라와 열방들, 그리고 창조 세계 전반에 걸쳐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앞서 경험하는 것이다. 즉 복음의 공공성은 창조 질서와 직접 연결이 되어있는 복음의 본질 중 하나이며, 이는 곧 구약의 복음이 지속해서 말하는 바와 일치한다. 저자는, 교회를 통하여 우리들이 구약을 무시한 채 신약만을 복음의 전부로 배우거나 이해해왔기에 비역사적인 개인 교훈집이나 경건 도서로 전락해 버린 것이라며 울분을 토한다.


또한 복음의 공공성은, 하나님의 통치가 인간을 통해 발현되는 증거인,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과도 곧장 연결된다. 남에게로 향하는 삶,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는 이웃 사랑, 나를 넘어서 열방을 위해 쓰임 받는 삶, 하나님을 닮는 거룩한 삶,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개념이 바로 복음의 공공성인 것이다. 이에 반하여 사적인 복음만을 강조하는 것은 어쩌면 번영 신학보다도 더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원죄의 흔적이 만들어낸 거짓 묻은 복음일지도 모른다. 톰 라이트가 말한 빈 망토와도 같은 복음의 변질과 왜곡, 바로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문제다.


보수, 진보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새겨 듣는 말씀인 마태복음 6장 33절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에서의 '의'가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에게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을 불러 명령하셨던 정의와 공의를 현실 세계를 살면서 구하는 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린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는 삶이 사적인 복음보다는 공적인 복음에 무게중심을 둔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더 이상 이 구절이 개인의 윤리와 경건을 요구하는 말씀에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근주 교수는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의 의미 자체가 단수가 아닌 복수, 개인이 아닌 공동체적이라는 근거를 들며, 우리 신앙은 수많은 관계 속에서 함께 살아가길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공적일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출발부터가 공적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죄와 타락이 기술된 창세기 3장에서도 김근주 교수는 복음의 공공성을 찾는다. 뱀의 유혹이 근본적으로 인간의 자기애를 충동질하여 함께 해야 할 사람들과 창조물들과의 관계를 파괴했는데, 이를 달리 말하면 공동체의 삶, 즉 공적인 삶을 무너뜨린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또한 선악과를 따먹고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을 선악의 기준으로 삼지 않고, 자기 유익에 따라 선악을 마음대로 판단하게 되었는데, 그 결과 사리사욕이 선악의 기준이 되어버렸으며, 이는 곧 공적 삶의 파괴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공적 삶을 지향했고, 인간의 죄는 그 공적 삶을 파괴했다. 여기서 우리는 신약에서 말하는 사탄의 실체와 그의 목적과 패턴을 어렵지 않게 가늠할 수 있다.


저자는 이렇게 창세기를 훑어가며 공적인 복음의 속성을 들춰낸다. 하나님의 선교, 복음의 시작인 아브라함의 선택과 부르심은 아브라함 가문만이 아닌 열방이 복을 받기 위함임을 볼 때도 우린 복음의 시작부터가 사적인 유익의 충족이 아닌 공적인 속성을 띠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창조-타락-새창조의 맥락이 모두 복음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어쩌면 복음의 반대말은 사리사욕일지도 모르겠다.


아브라함 뿐만이 아닌 창세기 후반부에 나오는 요셉 이야기 속에서도, 출애굽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거룩한 삶을 가르치는 레위기 19장에서도, 구조적인 조정으로써 가난의 대물림을 없애며 온갖 질곡와 멍에로부터의 해방과 자유 선포를 의미하는 희년법이 설명되는 레위기 25장에서도,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다윗의 아둘람 공동체와 그일라 전투에서도, 우상숭배가 보여졌던 구약 여러 본문에서도, 그리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이스라엘의 왕정시대가 기록된 역사서에서도, 마지막으로 이사야를 중심으로 여러 예언자들이 등장하여 회개를 선포했던 여러 예언서에서도, 김근주 교수는 공적인 복음의 본질을 낱낱이 파헤쳐 우리에게 조근조근 알려준다. 그리고 이러한 공적인 속성을 가지는 복음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의 배경이 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이렇게 저자의 구약을 죽 훑어가며 들춰내는 팩트 체크를 통해 우린 복음의 공공성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되고, 그 동안 사리사욕을 위해 복음을 내면화하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해준다.



책을 읽어오며 수 차례, 아니 수십 차례 저자의 숨막히는 구약 해설을 통해 압도당한 독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 '내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에 이르러, 공적 복음의 본질이 '이웃 사랑'으로 압축된다는 사실에 아멘으로 화답할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랬듯 말이다.


하나님나라가 어떤 곳인지 이 책을 읽고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가 된다. 이웃 사랑이라는 의미가 이젠 다르게 다가온다. 다분히 막연했던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이 어떤 것인지 좀 더 선명해졌다. 죄와 사탄의 실체가 무엇인지, 우상숭배의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여호와의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도 좀 더 명확해졌다. 그 동안 이 책 저 책 읽어오며 산재되어있던 지식의 파편들이 복음의 공공성이란 개념에 의해 하나로 모아지는 느낌이다. 김근주 교수의 이 책 '복음의 공공성'을 보수와 진보를 떠나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이 책을 통하여 숨겨졌고 잊혀졌던 복음의 본질을 뒤늦게나마 발견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나라 공동체가 곳곳에서 회복되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길 간절히 소망한다.



  1. 분자생물학과 마우스 유전학을 기반으로 혈액암을 연구하는 과학자다. 미국 City of Hope에서 Staff Scientist로 일하고, 과신대 파사데나 북클럽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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