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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이야기

“겁나” 가슴에 와 닿았던 『창세기와 성경해석』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20. 3. 23.

 

과신대 핵심과정 "창세기와 성경해석"(김근주 교수)을 듣고

 

 

이번 과신대 핵심 강의가 뜻하지 않게 오프라인 강의에서 온라인으로 바뀌면서 아쉬움 가득한 건 모두가 같은 마음이리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님의 강의는 정말 유익했고 “겁나” 가슴에 와 닿았던, 명불허전(名不虛傳) 그 자체였습니다. 이번 강의에서 김근주 교수님은 성경이 어떤 책이며 어떻게 읽을 것인지에 대해 창세기를 중심으로 신구약을 관통하는 해석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이번 강의를 진행해 주셨습니다.

 

『창세기와 성경해석』 이라는 주제 하에 2개 강의로 나누어서 진행해 주셨는데요. 첫 번째 강의인 ‘창세기는 어떤 책인가?’에서는 성경을 ‘정확과 무오’의 관점으로 보는 게 맞는지, ‘문자나 문맥’을 충분히 고려해서 보면 옳게 보는 것인지, 과연 성경 본문을 보는 기준이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하였고, 두 번째 강의인 ‘창세기 1, 2장 해석’에서는 ‘창조 기사 논쟁(새물결플러스)’에 나오는 신학자 5명의 창세기 1, 2장에 대한 해석 방법을 개략적으로 설명함과 아울러 욥기, 시편, 이사야, 아모스 등 구약 본문에서 창조 신앙을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와 외경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창조는 어떤 의미로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여 주셨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마음에 많이 와 닿았고 같이 나누고 싶은 세 가지 부분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 성경은 어떤 책인가?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말씀대로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으로 텍스트나 문맥의 무오류성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어떻게 변화되느냐, 어떻게 실천적인 삶으로 나아가느냐와 직접적 연관이 있다는 말씀에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성경의 무오류성을 강조하여 텍스트나 문맥을 해석하게 되면 천동설이나 인종차별주의와 같은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요, 루터가 여호수아서 내용을 근거로 태양이 돈다고 생각하여 코페르니쿠스를 비난한 일이나, 창세기의 ‘흩어짐’을 근거로 인종 차별(분리)로 까지 이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가 그 예가 되겠습니다. 성경 읽기의 모든 초점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깨닫는 것이며, 이 깨달음은 그 읽는 자를 바로 잡으며 자라가게 하고, 하나님의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말씀은 마음에 깊이 새기고 싶습니다.

 

 

경은 어떤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가?

 

성경은 그 당시의 문화와 세계관과 그리고 우주관에 기초하여 기록된 것으로서 현재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데요, 문화와 세계관, 우주관은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며 그 전달 수단에 담겨진 내용 즉 본질을 보는 것이 올바른 성경해석 및 성경을 보는 기준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예로써, 여성을 성폭행했으면 했으면 함께 살아야 된다는 신명기의 내용은 인권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는 전달 수단이지 목적으로 보면 잘못된 해석이 되겠습니다. 전달 수단과 목적을 혼동하여 이를 현재에도 적용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창세기 1장은 고대 이스라엘의 우주관과 세계관에 기반하여 영원하신 하나님의 조화로운 창조를 전달하는 책으로서 그 당시의 우주관과 세계관은 전달 수단이 되겠습니다.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올바르고 본질적인 해석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대접 받고자 하는 대로 대접하라’는 말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올바른 창조신앙이란 무엇인가?

 

올바른 창조신앙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의 부르심을 받은 인류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리스도인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에 대해 아는 것이라는 말씀은 과거 시제에 머물러 있던 저의 창조신앙에 새로운 시각과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창세기는 바벨론 포로기의 끝자락인 절망적인 상황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생각하며 좌절하지 않고 희망을 갖게 하기 위해 쓰인 책이며, 아모스는 창조신앙의 의미를 뚜렷하게 보여주는 책으로서 천재지변인 지진을 배경으로 창조주 되시는 하나님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욥기에서는 뜬금없이 창조신앙이 등장하지만 이것이 바로 의인이 고난을 대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을 시와 노래로 표현한다면 시편 8편이 될 텐데요, 이러한 시편의 전체적인 개념은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는 주체이시다 라는 것입니다. 외경 마카베오서에 보면 순교하는 아들을 향해 ‘무로부터 창조하신 하나님이 계시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어머니의 신앙이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창조신앙은 과학적인 설명을 하려는게 아니라 극심한 고난 속에서도 눈 앞에 있는 세계 너머를 바라보고 돌파하게 만들며 꿈꿀 수 없는 시대에 꿈을 꾸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에서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과신대 기초과정Ⅱ에서 김근주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번 강의가 핵심강의라서 그런지 온라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느낌이 있었고 마음에 와 닿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읽게 된 ‘창조는 과학적 사실인가?’라는 책을 통해 30년이 넘도록 ‘젊은 지구론’에 대해 마음 속 옹호자였던 저에게 과신대 강의는 어찌 보면 제 신앙의 근간을 다시 세우는 작업과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좀 더 불편함과 마주해야 하고 많은 생각을 해야 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될 제 자신에 대해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한다는 호세아의 말씀이 가슴에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합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강의도 겸손한 마음으로 경청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글_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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