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핵심과정 후기)

 

케노시스 신앙으로 돌아보는 창조 신앙

- 과신대 핵심과정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 강의 후기 -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교수이자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표이신 우종학 교수님께서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이라는 주제로 창조의 다면적 이해와 창조 관점의 발전 과정, 현대 창조론의 스펙트럼과 이슈들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며, 강의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창조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과학적 이해를 종합한 건강한 창조신학을 세워야 함을 강조하셨습니다.

 

이번 강의를 들으며 영화 <건축학 개론>이 생각났습니다. 영화는 주인공 승민(이제훈 분)과 서연(수지 분)이 대학교 시절에 서로가 서로의 첫사랑이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다는 풋풋하고 애틋한 로맨스를 그리고 있습니다. 엊그제 나온 영화 같은데 어느덧 10년 가까이 되어가는군요. 승민과 서연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결별하게 된 것은 다름 아닌 서로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상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끝내 마음을 닫아 버린 승민, 오랜 세월이 지나 둘은 다시 만나게 되지만 결국 서로가 각자의 길을 택한다는 스토리로 끝을 맺게 됩니다.

 

 

이번 강의에서 우종학 대표님은 창조의 다양한 관점들에 대해 말씀해주셨습니다. 말 그대로 지금의 기독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대해 다양한 관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은 곧 하나님의 창조 역사는 변함이 없지만 해석하는 입장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서로의 입장이 다르다는 뜻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오해할 수 있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해는 오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비난하는 단계까지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강의 내용 중 제빵사의 비유는 서로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이 됩니다. 이 비유에는 무신론자와 크리스천 과학자, 그리고 창조과학자가 나옵니다. 무신론자는 오븐 안에서 빵이 스스로 진화했다고 봅니다. 크리스천 과학자는 무신론자와 같이 빵의 진화는 인정하지만 스스로 진화한 것이 아니고 제빵사가 오븐을 사용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창조과학자는 오븐 자체를 부정합니다. 오븐은 보지 못하고 빵이라는 결과물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빵 하나를 놓고도 이토록 관점이 다른데 천지창조는 오죽할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창조의 관점은 크게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와 인정하는 부류로 나누어지며, 생물진화를 인정하지 않는 부류는 세부적으로 젊은 지구론, 점진적 창조론, 지적설계로 분류되며, 생물진화를 인정하는 부류는 열린 진화, 계획된 진화, 인도된 진화, 지적 설계로 분류가 됩니다. 이중 지적설계는 신이 설계한 자연계를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두 부류에 공통적으로 위치하게 됩니다. 참으로 다양한 창조의 관점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제가 염려하는 바는 이러한 관점들 사이의 편견과 선입견이 오해를 낳고 더 나아가서는 닫힌 마음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영화 <건축학개론>과 같이 끝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가 타인과 같은 존재로서 살아간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하나가 되기를 원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기꺼이 수용하셨던 숭고한 예수님의 사랑이 빛이 바라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가 됩니다.

 

 

오히려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이러한 다양한 창조의 관점을 두고 갈등과 대립으로 반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는 혼돈이며 무질서입니다. 창조 이전의 상태인 것입니다. 창조의 하나님을 해석하는 우리의 모습이 혼돈이요 무질서라면 이런 모순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직도 희망이 있는 것은 이러한 과정이 무질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질서의 모습을 갖출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질서로 나아가기 위해서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면 우종학 대표님께서 강의 중에 말씀하셨던 케노시스(Kenosis), 즉 예수님의 자기비움일 것입니다. 전능성을 비우시고, 영원성도 비우시고, 전지하심과 지위까지 비우시면서 우리의 가슴에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신 창조주를 우리는 기억해야겠습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의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장 7~8절)

 

 

과신대 김완식 기자 (comebyhere@daum.net)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