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로고스 Common Questions] 10. 다윈 이전,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해석은 어떠했나요?

 

다윈 이전, 창조에 대한 창세기의 해석은 어떠했나요?

How was the Genesis account of creation interpreted before Darwin?

 

 

서론

 

많은 사람들은 다윈의 이론이 진화와 6일 창조 개념 사이의 뚜렷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흔들 거라고 추측합니다. 사실 창세기 1-2장의 문자적 6일 해석은 1859년 <종의 기원>이 출판되기 이전에도 기독교 사상가들이 지지하는 유일한 관점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초기의 기독교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의 작품들은 다윈의 이론과 양립할 수 있는 창세기의 해석을 보여줍니다. 

 

 

초기 기독교 사상

 

고대세계의 위대한 지식 센터 중 하나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3세기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오리게네스는 창조에 대한 초기 기독교 사상의 예를 보여줍니다. 

 

<원리론>과 <켈수스를 논박함>으로 잘 알려진 오리게네스는 기독교 핵심 교리들을 제시하였고, 이교도들의 비난으로부터 그 교리들을 지켜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창조 이야기가 어떻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에 대한 문자적이고 역사적인 설명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오리게네스 이전에 창조 이야기에 대한 상징적인 해석을 옹호한 다른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견해는 그를 따르는 초기 교회 사상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1]

 

초기 5세기 동안 북아프리카의 주교였던 히포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시대의 또 다른 중요한 인물이었습니다. 비록 그는 <고백록>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수십 편의 작품을 썼으며, 그 중 몇몇은 창세기 1-2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2]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라는 책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앞 두 장은 그 시대 사람들의 이해에 맞춰서 쓰여졌다고 주장합니다.[3]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소통하기 위해서 창조 이야기는 더 단순하고 비유적인 형식으로 들려졌던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또한 하나님이 세상을 발전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창조하셨다고 믿습니다. 이는 생물진화와 양립하는 견해입니다.[4]

 

 

 

후기 기독교 사상

 

역사에서는 창세기 1-2장에 대한 비문자적인 해석이 많습니다. 13세기 저명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특별히 과학과 종교의 만남에 관심이 많았으며, 아우구스티누스의 강력한 영향 아래 있었습니다. 아퀴나스는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와 과학적 발견 사이에 가능할 수 있는 갈등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신학대전>에서 그는 창조의 모든 6일이 실제로는 하루를 말하는 게 아니냐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안했었던 이론)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아퀴나스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가능성을 가지도록 창조하셨다는 견해에 동조합니다.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날, 하나님은 실제로는 아니지만 “땅에 나타나기 전에” 밭의 모든 식물들을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땅에 식물들이 생겨나기 이전에”, 다시 말해, 잠재적으로…모든 것들은 구별 되지 않고 함께 창조되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세상이 창조될 때 관찰될 수 있는 적당한 질서 때문이었습니다.[5]

 

아우구스티누스의 창조 관점은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하기 직전인 18세기 말 존 웨슬리의 작업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영국 성공회 성직자이자 감리교 운동의 초기 지도자였던 웨슬리는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성경은 청중에 적합한 관점에서 쓰여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역사(창세기)에서 이 영감받은 필자는 … 먼저 유대인을 위해 썼습니다. 교회의 유아 시절에 맞게 그의 내러티브를 맞추면서 사물을 그 드러난 지각할 수 있는 모양에 따라 묘사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빛에 대한 이후의 발전에 따라 그 겉모양 아래에 놓여 있는 신비를 이해하는 데로 나아가도록 남겨 두었습니다.[6]

 

웨슬리는 또한 성경은 "우리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려고 쓰진 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도록 쓰였다"고 주장했습니다.[7] 

 

19세기 프린스턴 신학교는 보수적인 칼빈주의와 성경의 절대적인 권위를 견고하게 수호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마도 그 시대의 가장 유명한 프린스턴 신학자 B. B. 워필드는 진화를 인간의 기원에 대한 적절한 과학적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음성과 확고한 과학적 연구 결과가 서로 조화로울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역사가 마크 놀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경무오성에 대한 신학적으로 보수적인 교리의 가장 현대적인 수호자였던 B. B. 워필드 역시 진화론자였다.”[8]



결론

 

기독교 사상의 역사에서 창세기의 문자적인 해석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군림하지는 못했습니다. 현대 과학의 발견은 성경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는 선동으로 여겨져서는 안되고, 성경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한 도우미로 간주되어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조언을 했습니다.

 

매우 불분명하고 우리의 시야를 훨씬 벗어나는 사안들에서, 우리는 우리가 받았던 믿음을 침해하지 않으 면서도 성경이 매우 다른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러한 경우, 우리는 서두르지 말 아야 하며, 단호하게 한 입장을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만약 진리추구에서 더 많은 진전이 이러한 위치를 전복시키게 된다면, 우리 역시 무너질 것이라는 입장입니다. 그것은 성경의 가르침이 우리의 가르침과 일치하기를 바라면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한 전투가 될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기를 바라야 합니다.[9]

 


 

[1] Peter C. Bouteneff, Beginnings: Ancient Christian Readings of the Biblical Creation Narratives(Grand Rapids, MI: Baker, 2008).

[2] Gillian Clark, Augustine: The Confessions (New York: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3).

[3] Bishop of Hippo Saint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Ancient Christian Writers, no. 41 (New York: Newman Press, 1982).

[4] For a further discussion of Augustine’s perspective on creation, see chapter 6 of Francis Collins’ The Language of God: A Scientist Presents Evidence for Belief (New York: Free Press, 2006), as well as chapters 8 and 15 of Alister McGrath’s A Fine-Tuned Universe: The Quest for God in Science and Theology (Louisville, KY: Westminster John Knox Press, 2009).

[5] St. Thomas Aquinas, “Question 74: All the Seven Days in Common,” in The Summa Theologica of St. Thomas Aquinas, 2nd ed., trans. Fathers of the English Dominican Province (London: Burns Oates and Washbourne, 1920). Also available online at “Summa Theologica,” New Advent (accessed Oct 21, 2011).

[6] John Wesley, Wesley’s Notes on the Bible (Grand Rapids, MI: Francis Asbury Press, 1987), 22, quoted in Falk, Coming to Peace, 35. Also available online at John Wesley, “John Wesley’s Notes on the Bible,” Wesley Center Online (accessed Oct 21, 2011).

[7] John Wesley, A Survey of the Wisdom of God in the Creation: or, A Compendium of Natural Philosophy, 3rd ed. (London: J. Fry, 1777), 2:463, quoted in Falk, Coming to Peace, 35.

[8 Mark A. Noll and David N. Livingston, eds., B. B. Warfield: Evolution, Science, and Scripture (Grand Rapids: Baker, 2000), 14.

[9] Augustine, The Literal Meaning of Genesis, 41.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기후변화제국의 프로테스탄트] 5. 기후변화의 요단강, 티핑 포인트

 

글_ 김진수  (스위스 취리히 대학교 선임연구원, 과신대 정회원)

 

 

이산화탄소 피드백


첫 연재글(352호·2020년 3월호)에서 이산화탄소 이야기를 했지요. 매년 인류가 화석연료 사용과 토지사용 변화로 방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이 5ppm 이상인데, 약 3ppm 정도는 해양과 육상의 식생(주로 숲)이 흡수하여 대기 중에는 약 2ppm씩 쌓이고 있다고 설명했는데요. 해양과 육상의 식생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더 극심한 지구온난화에 시달렸을 것이란 말도 덧붙였습니다. 즉, 지구의 기후시스템 자체가 지구온난화를 완화해주고 있다는 것이죠. 

그럼에도 많은 과학자가 연구한 미래의 전망은 매우 어둡습니다. 지난 글에서 살펴본 양의 피드백(feedback)이 현재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고, 미래에는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는 예측이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지구의 허파라고 불리는 아마존 산림에서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폭염과 토양 수분 손실 등 건조 현상이 잦아지면 산림은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를 예전처럼 흡수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경우 식생으로 흡수되어야 할 이산화탄소가 대기 중에 더 많이 쌓여 지구온난화는 증폭합니다. 

그뿐 아니라, 해양의 이산화탄소 용해도는 온도와 반비례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올라갈수록 대기 중 이산화탄소의 양이 늘어납니다. 예를 들면 차가운 탄산음료 안에는 많은 이산화탄소가 녹아(용해) 있는데 상온에 두면 김이 빠지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따라서 지구온난화로 해양이 따뜻해지면 온난화 진행 속도도 가속화하는 악순환이 예상됩니다.

 

 

메탄 피드백


지구 대기를 오염시켜 온실 효과를 일으키는 온실가스는 이산화탄소 외에도 메탄, 이산화질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이 있습니다.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눈여겨볼 온실가스는 메탄인데, 메탄은 같은 양의 이산화탄소와 비교하면 지구온난화를 28배나 더 일으킨다고 합니다. 다행히 대기에 존재하는 메탄의 농도는 이산화탄소보다 현저하게 낮지만,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메탄은 일반적으로 습지(22%)에서 가장 많이 배출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외에도 화석연료 및 천연가스(19%), 가축의 되새김질(16%), 쌀을 생산하는 논(12%), 화재(8%), 쓰레기 매립(6%) 등에서 배출됩니다. 자연적 발생뿐 아니라 인위적인 요소가 작용하며 대기 중 메탄가스 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북극 주변의 영구동토층(永久凍土層)입니다. 영구동토층이란 지층의 온도가 연중 0℃ 이하인 부분을 말합니다. 지난 연재에서 얘기했다시피, 북극 일대는 가장 빠르게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는 지역인데 해빙뿐 아니라 얼어 있던 육지가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그곳엔 다량의 유기물이 지표 아래에 매몰되어 있는데요. 지구온난화로 온도가 상승하면서 지표면에 두껍게 덮여 있던 눈이 녹고 습지가 형성되며, 얼어 있던 미생물들이 토양에서 활성화해 메탄가스를 방출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래 사진은 ‘불타는 얼음’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인데, 일부 영구동토층이 녹은 지점에 불을 붙이면 가스레인지보다도 잘 타는 것을 가리킵니다. 바로 땅속 메탄가스가 타면서 만들어내는 현상인데요. 이렇듯 지구온난화 때문에 극 지역이 녹으면 메탄가스를 통해 양의 피드백을 만들어내고 계속 지구온난화가 가속되기 때문에 현재 학계의 관심은 이곳에 쏠려 있습니다.

 

 

 

기후 티핑 포인트


티핑(tipping)은 ‘균형을 깨뜨리는 것’ ‘갑자기 뒤집히는 점’이란 뜻으로 엄청난 변화가 작은 일들에서 시작될 수 있고 대단히 급속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개념입니다. 앞서 언급한 피드백이 처음에는 미미하게 진행되다가 특정 순간 갑자기 급격하게 변하기 시작하면 이를 ‘기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30cm 막대자를 책상 위에서 천천히 밀어낼 경우, 무게중심이 되는 자의 15cm지점이 책상을 벗어나는 순간, 자는 툭하고 떨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는 임계점이 기후 현상에서도 존재한다는 이론이 바로 기후 티핑 포인트입니다. 과거 빙하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온도에 관해 기록된 자료를 보면 급격한 기후변화의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11,500년 전쯤에 그린란드의 온도가 40년 동안 무려 8℃나 상승한 기록이 있습니다. 

영화 <투모로우>(2004)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전 세계에 빙하기가 닥쳐오는 대재앙 상황을 그려냅니다. 영화에서 북극의 빙하가 다량으로 녹아서 해양의 염도가 낮아지고, 그 결과 난류의 흐름이 끊겨 갑자기 빙하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설정은 고기후 연구에서 발견한 과학적 내용을 배경으로 삼은 것입니다. 아직도 과학자들은 이러한 기후 티핑 포인트가 어느 시점에 생길지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구 시스템 모형이라는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도입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아직 불확실성이 매우 큽니다. 하지만 자명한 것은 지금 기후 시스템이 언제 있을지 모르는 기후 임계점, 기후 티핑 포인트를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산화탄소의 수명


국제에너지기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으로 인류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세계 에너지 소비가 6% 감소함에 따라 이산화탄소 배출도 8% 정도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을 하였습니다. 이는 1930년대 대공황 기간이나 2차 세계대전 끝 무렵보다도 훨씬 큰 폭의 이산화탄소 감소량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국제에너지기구 사무총장은 조기 사망과 경제적 트라우마로 인해 일시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감소하였을 뿐 경제 상황이 회복되면 배출량이 가파르게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와해되면 그동안 분출하지 못했던 소비심리가 단기간에 증폭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미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온실가스 배출을 기반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이산화탄소 문명’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고는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 구조입니다. 한 가지 슬픈 소식을 전하면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당장 이산화탄소를 줄이면 그래도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하시겠지만, 이미 우리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요단강을 건너는 중입니다. 

아래 그래프를 보시면 미래의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 변화를 예측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도 지금처럼 이산화탄소를 계속 배출해서 1,500ppm이 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현재는 410ppm 수준입니다.) 늘어난 이산화탄소 중 65%에서 80%는 20년에서 200년 사이에 해양이 흡수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화학적 풍화작용으로 몇 백 년에서 몇 천 년 동안 서서히 줄어든다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중 일부는 수천 년간 계속 대기 중에 남아서 계속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입니다. 즉, 이번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소 현상처럼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인다고 한들 이미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 중 일부는 몇 천 년 동안 대기 중에 남아서 계속 지구온난화를 일으킬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지구온난화라는 큰 짐을 지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비가역성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산화탄소 농도 미래 전망 결과. (출처: Inman, 2008 Nature Climate Change)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