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신Q] 4. 창세기 1장을 비유로 읽으면 소설이 되는 거 아닌가요? 

 

우종학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고백하며 높은 권위를 부여하는 그리스도인들도 막상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고민하거나 배운 적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성경을 읽는다는 건 하나님이 우리 귀에 대고 속삭여 주는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문자로 기록된 글이며 모든 글은 나름대로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창세기 1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문학적 표현들이 들어 있고 고대 근동의 상식과 세계관이 담겨있습니다. 편평하고 바다에 둘러싸여 있는 지구, 해와 달과 별들이 들어있는 궁창, 궁창 위에 물층, 그리고 그 위에 신의 자리가 있다는 당대의 상식은 창세기 1장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하지만 이런 고대의 우주관은 성경이 가르치려는 지식이 아닙니다. 그런 내용들은 단지 성경이 계시하는 내용을 담는 그릇에 불과합니다.

 

창세기 1장을 과학 교과서처럼 읽지 말라는 구약학자들의 조언을 들려주면, ‘그럼 창세기 1장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책이 아니고 단지 소설에 불과한가?’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비유나 과장법, 혹은 문학적 표현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 오래전에 폐기 처분한 고대 근동의 상식과 우주관도 담겨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창세기를 그저 소설에 불과하다고 결론 내린다면 참 어이없는 일입니다. 성경을 과학 교과서처럼 읽는 것도 문제지만, 반대로 성경을 소설이나 허구로 읽는 것도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비유는 사실을 허구로 만들지 않습니다. 예화를 들어볼까요? 옆집 친구에게 이상한 이야기를 듣고 온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와 대화를 나눕니다.

 

“누가 그러는데 엄마는 내 친엄마가 아니래. 엄마가 나를 낳은 거 맞아?”

“그럼, 친엄마 맞지. 내가 너를 낳았지.”

“진짜로 낳은 거 맞지? 어떻게 낳았어?”

 

잠시 고민하던 엄마는 이렇게 답합니다.

 

“내가 너를 배꼽에서 낳았지. 친엄마 맞단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의심을 거둡니다.

 

도킨스와 창조과학자가 이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도킨스가 먼저 아이에게 말합니다. “얘야, 아기는 배꼽에서 나올 수가 없단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하는 걸 보니 이 여인은 너의 친엄마가 아님이 분명하다.” 창조과학자도 아이에게 말합니다. “얘야, 도킨스의 말에 흔들리면 안 된단다. 엄마가 너에게 거짓말을 할 리가 있겠니? 배꼽으로 너를 낳았다는 말이 믿기 힘들 수도 있겠지만 엄마를 신뢰하고 그대로 믿어야 한다.”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준 이야기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아기를 낳는 방법일까요? 배꼽의 중요성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너를 낳았다는, 내가 너의 친엄마라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그 수준에 맞게 배꼽이라는 문학적 표현을 썼을 뿐입니다. 배꼽으로 아기를 낳았다는 표현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다고 해서, 엄마가 아이를 낳았다는 사실을 의심해야 할까요? 반대로 배꼽으로 낳았다는 말을 비유로 이해하면 친엄마라는 사실도 허구로 전락하게 되는 걸까요? 아이가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서, 아기가 배꼽에서 태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친엄마가 맞다는 엄마의 말을 더 이상 믿지 않고 폐기 처분해야 할까요?

 

창세기 1장이 그렇습니다.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을 가진 히브리인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창세기 1장은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어휘를 사용하였고 그들에게 익숙한 상식과 지식을 담고 있습니다.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를 이해하듯,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임을 알려주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목적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우주의 기원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고대 근동의 히브리인들에게 누가 창조주이며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것이 목적이라면, 비유를 비롯한 다양한 문학적 표현과 더불어 현대 과학과는 맞지 않는 고대 근동의 상식과 세계관이 사용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대 과학과 맞지 않는 표현들이 담겨 있다고 해서, 창세기 1장을 허구라고 판단한다면 배꼽 때문에 생모를 버리는 격입니다.

 

비유와 같은 문학적 장치나 고대 근동의 상식은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구체적인 시공간 안에서 역사적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을 과연 누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제한된 세계관과 이해를 가진 고대 근동 히브리인들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알려주는 책이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비유 때문에 사실을 버리거나, 혹은 비유를 사실로 여기는 두 가지 실수를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비유는 사실을 허구로 만들지 않습니다.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