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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신학도가 바라본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난점과 희망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7. 27.

과신대 칼럼

신학도가 바라본 '과학과 신학의 대화' 난점과 희망

최현진
(
하늘. 성경 아카데미 대표 / 과신대 홍보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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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2017 10 25) 장신대에서장신신학, 한국교회에 걸다!”라는 제하에 학술세미나가 열렸다장신대에서는 신학이 ‘시대적 문제들에 대해 시의적절한 답변을 찾아가는 과제 포함한다는 점을 인식하여 매년 현안과 쟁점과 필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분야의 전문가들과 함께 듣고, 묻고, 논의하는 자리를 마련해왔는데 이번 세미나 첫째 번째 영역의 주제가 바로과학과 신학의 대화였다. 명의 교수가 각각과학적 무신론의 도전 앞에 기독교 창조신앙’, ‘인간지능에 대한 이해’, ‘4 산업혁명과 인공지능이 가져올 새로운 선교의 기회라는 제목의 발표를 하였고 의미 있는 대화들이 오고갔다. 특히 장신대 김정형 교수(장신대 조직신학) 담당했던 [소위과학적 무신론 도전 앞에 기독교 창조 신앙] 필자에게 인상 깊었다.

 
김정형 교수는 발제를 통해과학적 무신론 도전 앞에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창조신앙을 바르게 증언하기 위한  가지 과제를 제시했는데, 첫째는과학적 창조론(혹은창조과학’)’ 잘못된 접근 방법을 반성하고 극복하는 것이고, 번째는 성서학적 과제로서 과학시대를 위해 창세기를 새롭게 읽는 것이고, 번째는 조직신학의 분야인 과학시대를 위해 기독교 창조 신학 교의학적 창조론을 새롭게 쓰는 것이다

 
그는 과학혁명 이후 근대 과학이 전제한 세계관을자연주의적(naturalistic) 세계관이라 언급하였고방법론적 자연주의(methodological naturalism)’형이상학적 자연주의(metaphysical naturalism)’ 구분하여 초자연적인 존재를 상정하는 유신론과 양립불가능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주장인 후자를 무신론적 세계관을 내포하지 않으며 무신론과 유신론 모두에 중립적인 전자로부터 구분하여 신학은방법론적 자연주의 연계하여과학적 무신론 도전을 넘어설 디딤돌을 발견할 있다고 강조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방법론적 자연주의형이상학적 자연주의 구분은 우종학 교수가 평소 강조한 진화론진화주의 구분한 점과 크게 공명을 이룬다. ‘방법적 자연주의진화론 같은 맥락이고형이상학적 자연주의진화주의 같은 궤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 그동안 우종학교수가 강조한 내용이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동일하게 지지되고 있음을 있다.

 
또한 김정형 교수는과학적 무신론 도전 앞에서과학적 창조론(혹은창조과학’)’으로 응대하는 것은 가장 나쁜 전략이라는 견해도 피력했다. ‘과학적 창조론(혹은창조과학’)’ 방법론적 자연주의의 한계 안에서 자연 세계를 탐구하는 근대 과학과 자연 세계의 궁극적 근원과 목적으로서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형이상학적 이해를 추구하는 창조교리를 동일한 지평에 혼합하는 자기모순과 범주 혼동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는 과학시대에 창세기를 바르게 읽기 위해서는 창세기 1장에 근대과학 이전의 고대 근동의 세계관이 반영되었음을 솔직히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월튼의 견해를 소개하였다. 이어과학적 창조론자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진리 외에 다른 무엇이 담겨 있다는 거부감을 따라 창조신앙의 진리와 성경에 내포된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혼동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진리라 주장하면, 결국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성서학적 진리 주장마저 부정하는 결과로 이어질 있음을 경고하였다. 오히려 성경기자가 자신의 신학적 관점에서 당대의과학적지식을 통합하는 방식을 신중하게 살펴신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을 통합시켜주는 바른 방법 배워야 함을 여러 신학자들의 글을 빌어 설득력 있게 진술하였다.
 
 
필자는 김정형 교수의 발제에 적극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제목에서 밝힌 주장을 따라 조금 나아가면과학과 신학의 대화 행함에 있어 겪게 되는 신학 내부의 난점을 만나게 된다

 
필자의 장신대 신학과 재학시절의 일화이다. 당시 신학교들은 각각의 신학적 입장에 심각한 차이가 있음을 인식하여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학술제와 체육대회 다양한 노력들을 전개했었는데, 모임이 이어질수록 소위보수진보 차이와 차이로 말미암아 발생한흉한 도랑만을 절감하고 말았다. 당시 중도적 입장에서 극단의 신학적 견해를 조화시켜 보기 위해 필자를 포함한 모교 장신대의 신학생들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보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도대체 장신대의 신학은 뭐냐? 너희들은 박쥐냐? 너희들조차 견해가 서로 다른 무슨 일치냐?’라는 정당한(?) 비아냥을 받아야 만했다.

  20
년도 지난 과거의 이야기지만, 신학도의 입장에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절박한 과제인 ‘과학과 신학의 대화 있어서  난점은 여전히 심각하다는 사실을 부인할 없다. 우종학 교수의 견해와 장신대의 견해가 공명을 이룬다는 것은 우종학 교수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다른 신학적 학풍들이 상당수 존재한다는 것의 반증이 있다.

 
어쩌면 지점이과신대 몸담고 있는 여러 교단의 목회자와 신학도들이 심각하게 인식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과학과 신학의 대화 바르고 적절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대화하기 위해 여러 신학적 학풍의 다양성의 풍성함을 유지하면서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과 찬미 더욱 풍성하게 하기 위한 신학도들의 유의미한 대화의 문법과 방법론 찾기가 절실하다는 것이다. 20 과학과 신학의 대화의 난점 당황하면서도 각기 다양한 관점과 방법들의 대화와 공명을 통해 창조와 구속의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풍성하게 찬양하고자 하는 포기할 없는 사명을 인식했을 때의 떨림을 중년이 넘어 다시금 경험하는 것은 기쁨이며 부담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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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7 / 20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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