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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뷰/과신대 칼럼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 2018. 7. 27.

과신대 칼럼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이택환 목사
(
그소망교회 담임 / 과신대 자문위원,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장신대신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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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생명윤리학자들이 종종 거론하는미끄러운 경사길 논증”(slippery slope arguments)이라는 것이 있다. 만약 “A" 허용하면 자동적으로 “B,” “C” 허용해야 하고, 결과 절대로 허용해서는 “N" 까지 허용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가령 처음부터 모든 낙태를 금지해야지, 유전병, 강간에 의한 임신 , 낙태가 가능한 예외 규정들을 두다 보면 낙태의 범위가 계속 늘어나, 결국 낙태가 일상화 것이며, 이로 인해 우리 사회에 생명 경시 풍조가 확산된다는 것이다.


  요즘은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주장을 한다. 동성애를 허용하면, 소아 성애, 근친상간도 금지할 방법이 없고 마침내는 수간까지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성경에 고스란히 적용하는 단체가 기독교 근본주의 문자주의 그룹인 창조과학회다. 그들이 창세기 1장의 6 창조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6 창조를 문자적으로 믿지 않으면,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게 되며, 그렇게 성경을 하나님 말씀으로 믿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도 문자적으로 믿을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아도 실은 6 창조를 믿지 않으면 구원도 없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갖고 있을 것이다. 이런 입장은 단지 6 창조만이 아니라, 노아의 홍수가 지구적이라는 사실, 여호수아가 태양을 멈추게 사실 등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그들은 요나를 삼킨 물고기가 실재한다는 사실, 발람의 나귀가 사람의 말을 했다는 사실 , 성경의 모든 사건과 이야기를 과학적이고 역사적인 사실로 굳게 믿는다. 하나라도 부정하면, 마치 미끄러운 경사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성경의 모든 기적을 부정해야 하고, 이는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것이며, 결국 구원을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 100% 오류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길이 항상 미끄러운 것은 아니며, 내리막 경사길이 아닌 평지도 있고 때로는 오르막길도 있다. 무엇보다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에는 종종 무리한 비약이 많다. 민수기 22장의 발람의 나귀 이야기를 보자. 소위 하나님의 예언자라는 발람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자, 나귀가 직접 사람의 언어로 그를 질타했다는 이야기다. 주제는 돈에 눈이 멀어 짐승만도 못한 상태로 타락한 하나님의 예언자에 대한 비판이다. 이야기는 우화적 상징과 과장, 풍자와 같은 문학적 장치를 사용한다. 최소한 중학교 국어 교육을 받은 사람들 중에 이를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렇다면 발람의 말하는 나귀 사건은 과연미끄러운 경사길 타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까지 그대로 내려가는가? 이는 발람의 나귀 사건이 예수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과 동일한 기독교의 진리를 드러낸다고 보는지를 묻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지난 2000년간 교회가 목숨 걸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했는데, 그것으로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번도 교회가 발람의 말하는 나귀 사건을 목숨을 걸고 증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건은 애초에 비교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사건을 동일선상에서 보는 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언약 성취요, 절대적인 구원 계시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성경의 무수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로 상대화시키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이런 오류는 6 창조를 비롯한 창조과학회가 주장하는 다른 모든 이야기에도 대부분 적용된다. 창조과학회는 성경을 미끄러운 경사길이라는 허구적 시스템으로 파악하는 그릇된 성경 이해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요구되는 것이 성경의 각각의 사건에 대한 올바른 해석이다. 창조과학회가 제대로 배워야 것은 단지 과학만이 아니다. 그들은 이제라도 기존의 아마츄어적인 성경이해와 저급한 성경해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개 목회자의 지적이야 그렇다 하더라도, 창조과학회를 향한 전문 성서신학자들의 비판에는 부디 기울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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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4 / 20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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