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기독교인이 됩시다

과신대 칼럼

철학하는 기독교인이 됩시다


김남호

(울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과신대 연구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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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 10 ‘과학과 신학의 대화(이하 과신대)’ 모임에 참석했을 때를 잊을 없습니다독일에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대화 나눴던 우종학 교수님과 몇몇 회원 분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었지요우리는 자유의지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하면서 과신대의 미래에 대해 의논하였습니다그때 저는 우리 모임이 마치 먼지와 가스가 모여 하나의 눈부신 별로 성장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있었습니다.


  언젠가 과신대라는 이름이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적이 있습니다철학이 없이 과학과 신학만 이름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그러나그런 느낌은 사라졌습니다왜냐하면철학은 과학과 신학의 대화를 하는 데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기 때문입니다공기가 없다면 대화도 없듯이철학이 없으면 과학과 신학의 대화도 가능하지 않습니다.


  철학은 의미와 근거를 묻고 그에 답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철학행위란 의미를 묻고 근거를 묻는 행위인 것이지요철학사란 바로 의미와 근거를 묻고 답해온 사유의 역사인 것입니다


  플라톤의 저작에 등장하는 소크라테스는 철학함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상대로 하여금(물론 자기자신서부터그가 참이라고 믿고 있었던 생각을 다시 돌이켜보도록 만듭니다예를 들어우리는 일상에서 “그는 좋은 삶을 살고 있어”, “대한민국의 19 대통령은 좋은 대통령이야라고 쉽게 말하지만소크라테스는 “좋은 ”, “좋은 대통령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요구합니다그리고그에 대해 나의 주장을 말한다면다시 주장의 근거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요구합니다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자신의 철학적 자서전인  사람을 보라에서 자신의 사상을 다이너마이트라고 표현합니다그러나의미와 근거를 묻는 철학은 자체로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사유의 폭발력과 정치적 혁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남들이 당연시하는 생각의 내용을 다시 검토해볼 것을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것을 객관적으로 설득력 있는 근거를 제시하도록 요구하기 때문입니다권력자들의 미움을 소크라테스가 결국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는 바로 철학활동이 가지는 원초적인 정치적 혁명성 때문인 것이지요.


  기독교인들은  철학을 해야하는 것일까요단지 믿기만 하면 되는 아닐까요혹은 철학을 하면 믿음을 버리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까요누군가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의 어깨에서 날개가 돋아나거나타인의 마음을 읽을 있거나사회의 법을 어겨도 된다거나 하지 않습니다기독교인도 인간이며 사회의 구성원이기 때문입니다철학행위는 인간에게 보편적인 행위이기 때문에 기독교인도 철학행위에 서툴 수는 있어도 아예 담쌓고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에서 철학활동은 더욱 중요합니다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믿음의 내용을 검토하지 않는 기독교인이 너무나 많습니다자신이 익숙해하는 특정한 교회의 문화관습 등을 마치 절대불변의 진리인양 착각하는 기독교인들도 많습니다심지어 교회에 이득을 주는 일을 위해서라면 범법행위를 묵인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습니다그러나내가 믿는 바가 정말로 옳은 것일까요만일 옳다면 근거는 무엇일까요내가 날마다 사용하는 개념과 용어그리고 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할 있는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요?


  이런 물음은 내가 가진 믿음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내가 믿는 바의 내용을 풍성하고 깊이 있게 다질 것을 요구하는 물음들입니다본능과 습관에 이리저리 살아 가는 삶에 대해서 소크라테스는 “비판적으로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만한 가치가 없다 말했습니다한국 기독교의 반지성주의적 신앙관과 폐해를 우리는 소크라테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것입니다


  과학과 신학이 대화하기 위해서는 개념들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형이상학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필요합니다철학이 없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실제로 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대면 어떻고..신대면 어떻고..철이면 어떻겠습니까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개인적으로 과신대가 발음하기에 가장 깔끔하기에 맘에 듭니다중요한 점은 의미와 근거를 따져 묻고 답하는 가장 근본적인 행위로서의 철학 없이는 과학과 신학의 대화는 불가능하며 나아가 한국 기독교도 한국 사회도 건강해지지 못할 것이라는 점입니다의미와 근거에 대한 물음을 방해하고 차단하는 공동체와 사회는 독재와 부정부패비상식이 판치는 곳으로 전락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과신대 여러분 우리가 믿는 바를 검토해봅시다묻고 답하기를 게을리하지 맙시다.  그리고 성경 뿐만 아니라인류의 지성이 만들어낸 고전과 현대 과학을 편견 없이 수용하면서 그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는 ‘신앙인으로서의 지성사 써내려 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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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신대 View Vol.2 / 2017.06

posted by 과학과 신학의 대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