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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포럼

물리학자가 본 창조 (feat. 신학자가 본 빅뱅)

by 면으로만 2019. 10. 10.

 

2019 과신대 심포지움을 다녀와서

 

글_심기주

 

 

9월 30일 하루종일 과학신학 심포지움이 있었지만, 나는 일이 끝나고 특별강연인 세션4부터 참여할 수 있었다. 세션4의 강연자는 버클리연합 신학대학원(GTU & CTNS)의 로버트 러셀(Robert J. Russell) 교수님이셨다. 통역은 이형주 박사님이 담당해주셨다. 위트 넘치는 교수님의 강연과 또 통역도 잘 해주신 박사님 덕에 재밌게 들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기원에 대한 다양한 스펙트럼의 견해들을 ppt로 잘 분류하여 소개해주셔서 정리가 쉬웠다. 흥미로웠던 건 자연에서의 신의 개입에 대한 보수적 견해인 "기적"으로 개입하신다는 견해와 진보적 견해인 "신의 개입은 단지 자연 현상에 대한 주관적 해석"을 잘 보완한 "NIODA"라는 교수님의 견해였다.

 

“Non-interventionist objective divine action”

 

즉, 비간섭적 객관적 신적 행위의 약어인 NIODA양자역학적 개념을 도입했다. 그래서 이 개념을 통해 신적 행위를 존재론적 비결정론으로 해석하면서 하나님을 단지 이신론적인 신으로 보지도 않고(진보적 견해 보완), 그렇다고 하나님이 '기적'만을 통해서 이 세상에 개입한다고 보지도 않는 것이다(보수적 견해 보완).

 

 

우주론과 종말론의 주제에 대해서는, 과학의 예측과 신학에서의 종말론이 온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주목할 만했다. NIODA를 통해 유신 진화로 하나님의 개입을 설명할 수 있다면, 과연 자연 세계에서의 고통과 하나님은 어떻게 관계하실 것인가?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고통받으신다는 것에는 과학과의 마찰이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세상 구속에서의 "새 창조"를 말할 때, 종말론은 과학으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게 된다.

 

이제껏 나는 인간 생존을 기준으로 볼 때, 기술의 극대화로 인해 인간 스스로 새 창조에 이른다거나, 인간이 자멸하거나, 혹은 지구의 서식 수명이 다할 때를 종말로 보는 견해 등을 주로 들어봤다. 또 우주 전체를 기준으로 볼 때,  열린 우주, 평평한 우주, 닫힌 우주의 세 가지 모형으로 우주의 미래를 전망하는 것을 들어봤다.

 

이런 전망과는 달리 교수님은 '하나님은 과학의 예측을 깨고 새로운 방식과 질서로 하나님의 창조를 새창조로 변혁시킬 것을 말하신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 지점은 언제일 것인가? 과학이 전망하는 종말이 오기 직전인가? 그보다 훨씬 전인가? 그렇다면 과학의 전망에 대해 어디까지, 언제까지를 신뢰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이때까지 과학적 규칙성을 계속 유지하시기로 선택하셨고, 그로써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셨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통해 종말 때의 "새로운 질서"를 미리 보여주셨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 새로운 질서를 우리가 "예측"할 수나 있을까? 논의하는 것조차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그 힌트는 새 창조가 현 창조의 연장선 상에 있다는 것과 예수님의 부활 사건에 있을 수도 있다. 

 

이 다음의 논의는 어떻게 해야할까? 교수님은 ctns 홈페이지를 알려주시며 그 여정에 함께 하기를 초청하시며 강연을 마무리하셨다. 

 


마지막 세션은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모여 오늘의 세션 전체를 종합하고 피드백하는 자리였다. 사회는 서울신대의 박영식 교수님이 맡아주셨다.

 

인상깊었던 것은 윤철호 교수님의 말씀이었다. "예전에는 하나님의 개입을 말하려면 초자연적인 것을 가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이제는 양자역학적 우연으로도 하나님의 개입의 설명이 가능하다."

 

허견 교수님은 "뇌과학에서는 의식 부분이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과 맞닿아 있으며 이 의식 부분은 모두 생물학적으로 환원할 수가 없다."고 하셨다.

 

또 최승언 교수님의 말씀도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이 자꾸 과학하고 신학하는 교수들은 기도 안하는 줄 아는데 우리도 기도합니다."

 

오늘 심포지움 장소를 제공해주신 강남새사람교회의 전기철 목사님의 질문이 와닿았다. 과학신학적 주제를 교회 안에서 얘기하기에는 그 갭이 너무 커서 얘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힘들고, 오히려 교인들은 삶에서 맞닿뜨리는 고통과 문제를 다루는 것을 거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역자라고 소개한 또다른 청중은 "요즘 아이들은 기성 세대의 '권위있는 하나님'보다 '소통하는 하나님'을 더 좋아한다"면서 "이런 과학신학적 얘기를 꺼내고 나누는 것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고 어렵지 않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 대해 우종학 교수님은 "교회 차원에서의 젊은 세대의 교육이 이 신학과 목회의 갭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하셨다.

 

목회와 신학과의 갭, 그리고 현장에서의 고민, 과학신학의 현시대의 과제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이 기회를 마련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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